사외컬럼

 
종이에 담채, 129×57.6㎝, 간송미술관 소장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심사정(1707~1769) '어약영일'

예전에는 그림의 쓸모가 인생사의 굽이굽이에 무척 많았다. 탄생, 생일, 회갑 등 한 사람이 태어나 어른이 되어가는 것을 그림으로 축하하기도 했고, 병에 걸렸다 낫거나 통과의례의 기쁜 일에 그림을 선물하기도 했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었을 때는 합격을 그림으로 기원해 주었으며 합격 후의 취직, 승진, 전근, 퇴직을 축화(祝畵)로 기념해 주기도 했다. 그런 사연을 그림 속에 직접 써넣기도, 시구(詩句)로 은근히 나타내기도 했다. 지금은 화환이나 화분, 기념사진, 현금, 축하케이크, 합격 엿 등이 대신해 그림의 그런 용도는 대부분 사라졌다. 창작물로서의 존재감에 충실할 뿐 화가나 의뢰자, 소장자의 인생사와 관련되는 어떤 스토리가 스며있는 그림은 드물다.그래서 옛 그림 중에는 그릴 내용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특정한 도상(圖像)의 그림이 있었다. 이 그림은 여차여차한 이야기로군, 하면서 주고받는 당사자는 물론 주변에서 다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합격 엿이 철썩 붙으라는 뜻인 것처럼. 물론 일정한 양식이 있더라도 그 주제가 어떤 방식으로 소화되고, 어떤 구도로 설정되어 어떤 작품으로 창작될 것인가 하는 것은 오로지 화가의 손에 달려 있다.'어약영일(魚躍迎日)'은 거센 물결 속에서 잉어 한 마리가 태양을 향해 솟구치는 장면을 그렸다. 중국 황하의 용문을 뛰어 넘은 잉어는 용으로 변한다는 어변성룡(魚變成龍)의 등용문(登龍門) 고사로 널리 알려진 과거급제 기원 그림이다. 화면 위쪽에 "정해 춘중(丁亥春仲) 위 삼현 희초(爲三玄戱艸) 현재(玄齋)"라고 써 넣어 심사정이 회갑 된 해인 1767년 2월 '삼현'에게 그려준 것을 알 수 있다. 삼현은 과거 준비생이었던가 보다. 과거 급제는 조선의 양반에게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과거에 합격해 관직에 진출하는 것 외에 마땅한 직업을 찾을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화제가 유달리 눈에 잘 뜨이는 것을 보면 심사정은 삼현의 급제를 각별히 축원했던 것 같다.등용문의 빤한 도상을 해돋이의 장관과 결합해 회화미 넘치는 감상화로 완성시킨 것은 역시 심사정의 실력이다. 화면 가득한 물결의 파노라마는 옅은 푸른색 선염과 어울려 강약과 농담의 스스럼없는 필치로 수평선까지 수렴되고, 자칫 촌스럽게 되기 쉬운 붉은 해는 거의 다 떠오른 우아한 둥근 모습으로 은은한 서기(瑞氣)가 감돈다. 도약에 성공한 잉어는 용이 되어 승천한다. 새해의 다짐을 담을 그림으로도 더없이 훌륭하다. 미술사 연구자

2020-01-05 06:30:00

이종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이종문의 한시산책] 눈보라 치는 밤 누가 돌아오는가 - 유장경

날 저물자 푸른 산 멀어져가고 / 日暮蒼山遠(일모창산원)찬 하늘, 가난한 하얀 초가집 / 天寒白屋貧(천한백옥빈)사립문 멍멍이가 멍멍 짖으니 / 柴門聞犬吠(시문문견폐)눈보라 치는 밤 누가 돌아오는가 / 風雪夜歸人(풍설야귀인)* 원제: 逢雪宿芙蓉山(봉설숙부용산: 눈을 만나 부용산에서 자다.)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 폴 발레리는 노벨문학상을 타야 마땅한데 상복이 없어서 못 탄 사람이다. "내 시는 그것을 읽는 독자들이 부여하는 의미를 지닌다." 바로 그 상복 없는 시인이 남긴 명언이다. 그러니까 시의 의미는 처음부터 확고하게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에 의하여 부여되는 것이라는 뜻이 되겠다.발레리의 말이 아니더라도 시는 일단 발표되고 나면, 더 이상 시인의 시가 아니라 독자들의 시다. 그 시를 읽는 독자들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양하게 읽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설사 시인의 의도와 다르게 읽혔다고 하더라도 그게 큰 문제가 될 일도 없다. 오히려 다양하게 읽힐 가능성이 높은 작품이야말로 훌륭한 작품일 가능성이 높고, 세계의 명작들도 대부분 그런 작품이다.당나라의 시인 유장경(劉長卿)이 지은 위의 시도 이해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은 작품이다. 대번에 그림이 떠오르지만, 독자마다 그 그림이 얼마든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물론 상상하기 나름이다. 실제로 이 시를 소재로 한 그림 '풍설야귀도(風雪夜歸圖)'가 많이 남아 있는데, 그들은 모두 천차만별의 다양한 구도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마지막 구절은 마당개가 짖고 있는 초가로 누군가가 돌아오고 있는 것을 그린 것이 대부분이나, 그 초가 앞으로 나그네가 그냥 지나가고 있는 그림도 있다.조선 후기의 화가 최북(崔北)의 '풍설야귀도'가 그런 경우다. 최북의 그림 속에는 개가 대문 밖까지 쫓아 나와 맹렬하게 짖어대고 있는데, 노인과 아이가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뚫고 짖고 있는 개를 지나가고 있다. 한밤중 혹독한 추위 속에서 그들은 도대체 어디로 갈까? 이 첩첩산중에 어디 갈 데가 있기는 할까? 저러다가 혹시 얼어 죽지는 않을는지, 겁이 덜컥 나는 상황이다. 최북은 왜 그렇게 그렸을까? 가혹하고 혹독했던 그의 생애가 이 시의 이해에 은연중에 반영된 결과일 게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실제로 오랜 굶주림 끝에, 그림 한 장 팔아서 술을 퍼마시고 돌아가다가 눈보라 속에서 얼어 죽어버렸다. 새해 벽두부터 날씨가 찬데, 돌아갈 데도 없으면서 돌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자꾸 눈에 밟히는 연유다.이종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2020-01-04 06:30:00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광장] 대구만 분지(盆地)일까?

위성사진에서 대구 지역을 살펴보면 남쪽과 북쪽에 비교적 높은 산지로 둘러싸인 '대구분지'가 뚜렷이 나타난다. 북쪽은 팔공산지(1,193m)가 동-서로 가로놓여 있고, 남쪽은 비슬산지(1,084m)가 역시 동-서로 가로놓여 있다. 분지 가운데를 금호강이 동에서 서로 흘러 화원읍 사문진교 부근에서 낙동강으로 합류한다. 자세히 보면 팔공산 자락과 비슬산 자락 사이의 평평한 공간을 볼 수 있다. 그 평평한 공간이 바로 대구분지다. 분지 동쪽과 서쪽의 잘록한 부분은 금호강에 의해 침식된 부분이다. 분지 내부 평지도 금호강과 그 지류에 의해 침식과 퇴적이 반복하여 이루어진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사전적 의미의 분지는 산지나 대지(臺地)로 둘러싸인 평평한 지역으로 설명된다. 분지(盆地)의 한자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내부가 움푹하게 파인 그릇 모양의 땅이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분지는 보다 넓은 의미로 사용되어 오고 있다. 평평한 땅이 산지로 완전히 에워싸여 있는 분지를 비롯해 대구분지처럼 좌·우가 열려 있는 분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그릇처럼 생긴 분지로는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의 해안분지가 대표적이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 종군기자가 화채 그릇을 닮았다 하여 '펀치볼'(punch bowl)이라는 이름을 붙여 지금도 그렇게 부르고 있다.학창 시절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분지 도시가 대구라는 얘기를 한 번 정도는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유독 분지 하면 대구를 사례로 드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렇다면 왜 대구가 분지의 대명사처럼 인식되어 온 것일까? 아마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 팔공산에 대한 인식이 일반인들에게 강하게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에서 공산당의 침략으로부터 우리 영토를 끝까지 지켜낸 낙동강 방어선의 보루가 팔공산이었다. 또한 세계적 명소 갓바위가 위치한 곳이 팔공산이란 사실과 대구의 무더운 여름 날씨의 원인이 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높은 산지라는 점이 대구를 분지 도시로 각인시키는 데 일조했을 것이라 본다. 어쨌든 대구가 분지인 것은 분명하다.그런데 대구분지와 관련하여 떠도는 허황된 루머 중 하나가 대구를 '고담도시' '수구 보수의 도시'라고 비꼬는 경우다. 하기야 전직 모 대통령조차 대구에 들러 지역민들에게 "대구 사람은 분지적 사고를 떨칠 필요가 있다"고 한 적이 있었다. '분지적 사고'란 용어 자체도 없을뿐더러 분지를 폐쇄적, 수구 보수적 개념과 연계시키는 것 또한 잘못된 생각이다.학창 시절에 배운 기억을 떠올려 보자. 우리나라는 육지 면적의 70%가 산지다. 부산, 인천, 울산, 포항 등 해안가에 인접한 삶터를 제외한 내륙의 삶터는 대부분 분지다. 서울이 대표적인 분지 도시다. 서울 외에도 남양주, 여주-이천, 대전, 충주, 광주, 남원, 춘천, 밀양, 거창, 안동, 영주 등지가 분지임에도 분지라는 지형적 특성과 연관시켜 비꼬는 경우는 없다.그런데 유독 대구분지만큼은 예외였다. 아마도 먹고살기 힘들었던 1960, 70년대 후진국 상황에서 고도의 경제성장을 거치는 동안 그나마 잘나가던 도시가 대구였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대통령 역시 지역 출신이다 보니 온갖 시샘을 받게 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분지라는 이유만으로 대구가 공격을 당할 필요는 없다. 또다시 그런 루머가 떠돌면 우리 지역민들은 이렇게 얘기해주면 어떨까? 우리나라는 국토의 70%가 산지여서 해안가를 제외하면 모두가 분지라는데, 귀하는 어디에 살고 계시는지요?

2020-01-03 19:24:01

영화 '21 브릿지:테러 셧다운' 스틸컷

[김중기의 필름통] 새 영화… '21 브릿지:테러 셧다운', '파바로티', '피아니스트의 전설'

◆21 브릿지:테러 셧다운감독: 브라이언 커크출연: 채드윅 보스만, J.K. 시몬스뉴욕 맨해튼 다리 21개를 봉쇄를 해야 할 최악의 사건을 그린 범죄 스릴러다. 해외 파병 미군 출신의 2명의 무장 강도가 범죄조직의 마약을 강탈한다. 그 와중에 뉴욕 경찰 8명이 사살된다. 냉철하고 공격적인 강력계 형사 안드레 데이비스(채드윅 보스만 분)가 사건을 맡는다. 경찰은 도주로 차단을 위해 일부 다리를 봉쇄하지만 일부 경찰들이 죽은 동료에 대한 복수를 위해 나서면서 체포 작전은 더욱 꼬이기 시작한다. 시내 곳곳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면서 집요한 추격과 도주가 이어진다. 21개의 다리를 모두 막았다. 이제 주어진 시간은 단 3시간, 과연 그들을 잡을 수 있을까. '블랙 팬서'의 채드윅 보스만이 주연을 맡고, '위플래쉬'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연기파 배우 J.K.시몬스가 고위경찰로 출연한다. 99분. 15세 이상 관람가◆파바로티감독: 론 하워드출연: 루치아노 파바로티, 안젤라 게오르규'다빈치 코드'의 론 하워드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불멸의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1935~2007)의 치열한 음악인생을 담고 있다. 파바로티가 초등학교 교사직을 접고 테너로 데뷔해 세계 최정상에 오르는 과정을 그의 아름답고 감미로운 노래와 함께 그려내고 있다. 결혼과 불륜, 이혼과 재혼에 이르는 사생활도 담았다.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출연한 '쓰리 테너' 콘서트 무대의 뒷이야기도 펼쳐낸다. 라이브 공연 당시 무려 13억 명의 시청자가 관람했다. 이외 푸치니 '토스카'의 '별은 빛나건만', '투란도트의 '네순 도르마', 베르디 리골레토의 '여자의 마음' 등 주옥같은 아리아가 파바로티의 목소리로 관객을 감동시킨다. 영화 속에 흐르는 파바로티의 아리아는 22곡이다. 114분. 12세 이상 관람가◆피아니스트의 전설감독: 쥬세페 토르나토레출연: 팀 로스, 프룻 테일러 빈스'시네마천국'의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이 1998년 연출한 감동적인 영화. 새해 1월 1일 22년만에 국내 첫 정식 개봉을 했다. 1900년 새해 유럽과 미국을 오가는 버지니아호에서 태어난 아이가 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 나인틴 헌드레드(1900).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이 아이는 화부에 의해 길러진다. 크면서 처음 본 피아노를 자유자재로 치는 천재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배 안의 피아니스트가 된다. 평생 육지를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그의 삶이 아름다운 음악과 유쾌한 이야기들로 스크린에 펼쳐진다. 영화음악의 거장 엔리오 모리꼬네가 음악을, '펄프 픽션'의 팀 로스가 주연을 맡았다. 이번 국내 최초 정식 개봉에서는 4K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상영된다. 121분. 15세 이상 관람가

2020-01-03 06:30:00

영화 '미드웨이' 스틸컷

[김중기의 필름통] 제2차 세계대전 미·일 해전 다룬 영화 '미드웨이', 스펙터클한 영상미 돋보여

미드웨이 해전은 전쟁사에 길이 남을 기적 같은 전투였다.열세의 전력으로 네 척의 일본 항공모함을 격침시키면서 일본의 야욕을 처절하게 응징한 태평양 전쟁의 최대 승전보였다.'고질라', '인디펜던스 데이' '2012' 등 화려한 볼거리를 스크린에 펼쳐놓았던 독일 출신 감독 롤랜드 에머리히가 78년 전 그 전투를 실감나게 그려냈다. 영화 '미드웨이'는 그 기적의 순간과 병사들의 영웅적인 활약을 철저한 고증으로 재현한 전쟁 블록버스터 영화다.미드웨이 해전은 '잠자는 사자의 콧털을 건드린'(1970년 영화 '도라 도라 도라'의 대사) 일본의 오판과 '일본놈들 쓸어버려!'(1976년 영화 '미드웨이' 대사)라며 전의를 불태운 미국의 자존심이 맞붙은 전투였다.1900년대 들어 군사강국으로 급부상한 일본은 한국과 중국 등을 침략한데 이어 동남아까지 장악했다. 그러나 석유의 80%를 미국에 의존하던 일본은 미국이 금수조치를 단행하자, 인도네시아에서 석유를 조달하려고 했다. 그러자면 미국이 지배하던 필리핀이 걸림돌. 결국 미국과의 한판 승부는 불가피했다.그래서 단행한 것이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기습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성과에 도취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다. 진주만 유류저장창고와 조선시설 등을 폭파시키지 못한 것이다. 거기에 주 목표였던 항공모함도 발견할 수 없었다.평화로운 일요일 아침의 이 기습은 미국의 적개심을 불러온다. 일본 도쿄 폭격이라는 불가능에 가까운 임무를 두리틀 폭격대가 성공한다. 그리고 일본 해군의 미드웨이 기습을 예견하고 잠복에 들어간다.미드웨이 해전(1942년 6월 5일)의 기적은 정보전에서 시작됐다. 일본군의 암호문에 등장한 AF라는 지명이 미드웨이란 것을 간파한 미군이 항공모함 3척으로 미리 진을 친 것이다. 일본은 미군 항공모함이 진주만에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작전을 펼치지만, 어느새 하늘에는 미국 전투기가 몰려오기 시작한다.그러나 이때 일본 해군은 세계 최강이었다. 항공모함 4척에 8척의 구축함과 6척의 순양함, 함재기 250대가 미드웨이 해전에 투입됐다. 반면 미군의 항공모함은 3척이지만, 그나마 한 척(요크타운)은 수리중이었다. 초반에 하늘을 뒤덮었던 뇌격기는 '날으는 관'이라는 별명이 붙은 비행기로 불발탄 어뢰에 느리고 호위기도 없이 일본 항공모함에 달려들었다. '모닥불에 뛰어드는 불나방 같았다'고 당시 일본 해군이 묘사했다.그러나 병사들의 영웅적인 전투로 일본은 항공모함 4척과 유능한 제로센 전투기의 조종사를 모두 잃고 패퇴한다. 일본이 이 해전에서 승리했다면, 태평양 전쟁의 양상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며 한국 등은 일본 제국주의의 등쌀에 더욱 오래 고통받았을 것이다.에머리히판 '미드웨이'는 이 전투를 가상의 캐릭터 없이 전투에 참가한 병사들의 영웅적인 실제 모습만을 다큐멘터리처럼 엮어냈다. 1976년 찰톤 헤스턴 주연의 '미드웨이'가 기록영상 등을 활용해서 전투장면을 묘사한 반면, 에머리히는 독보적인 스펙터클 영상연출로 이 장면을 모두 그려냈다.항공모함의 웅장한 폭발과 미군 전투기의 낡은 소음과 이착륙의 마찰음, 거기에 공중전의 총격 등 관람석이 들썩이는 현장감 넘치는 사운드까지 들려준다. 특히 마지막 급강하 폭격기들의 활약은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단 한발의 폭탄으로 일본 항공모함을 침몰시킨 미군 급강하 폭격기 조종사 딕 베스트 역을 '데드풀' 등에서 악역 연기를 펼쳤던 에드 스크레인이 연기하고, 미해군 총사령관 니미츠 제독에 우디 해럴슨, 일본 해군 나구모 주이치 제독에 '곡성'의 쿠니무라 준 등이 출연한다.사실에 근거한 충실한 묘사는 좋지만, 드라마의 구성 등에서는 아쉬운 점이 있다. 136분에 방대한 스토리를 다 담으려다보니 나열식 묘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차라리 진주만 공습과 두리틀 폭격대의 묘사는 기록 영상으로 대체하고, 미드웨이 해전 묘사에 더 밀도를 높였으면 좋았을 것이다.또 AF라는 지명을 둘러싼 정보전, 나구모 주이치 제독의 오판, 정찰을 허술하게 한 일본군의 자만, 연료가 바닥난 상태에서 일본 항공모함을 찾아낸 미군 폭격기의 집요함, 전멸에 가까운 미군 뇌격기 비행사들의 영웅적인 행동 등 미드웨이 해전의 기적 같은 순간에 더 강조점을 찍었으면 드라마틱했을 것이다.그럼에도 '미드웨이'는 전쟁영화 팬이라면 꼭 봐야할 전쟁영화다. 미드웨이 해전은 드라마 없이 그 자체가 이미 감동적인 기적 이야기다. 더욱 실감나는 영화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사전 지식을 얻는 수고도 필요하다. 135분. 15세 이상 관람가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2020-01-03 06:30:00

2019 MBC 연예대상을 수상한 코미디언 박나래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2020년 예능 트렌드 전망

2020년에는 어떤 예능프로그램들이 트렌드를 만들어낼까. 트렌드 전망이라는 것이 변수가 많기 마련이지만 2019년의 흐름들을 들여다보면 새해의 트렌드 역시 어느 정도는 그려볼 수 있다.◆김구라 일침, 지상파 예능도 달라질까2019년 지상파 예능들이 생각만큼 선전하지 못했다는 건 연말에 열린 방송3사의 '연예대상' 결과를 보면 단박에 드러난다. 특히 대상 수상자만큼 큰 화제가 된 김구라의 일침은 현재 지상파 예능이 처해있는 위기감을 실감하게 한다. "연예대상도 물갈이를 해야 될 때가 아닌가 싶다. KBS도 시청률이 안 나왔다. 5년, 10년 된 국민 프로가 많다보니 돌려막기 식으로 상 받고 있다. 더 이상 대상 후보 8명 뽑아놓고 콘텐츠 없이 개인기로 1~2시간 때우는 거 하면 안 된다." 김구라의 이 말은 그다지 지상파 예능프로그램들이 새로운 성취를 이룬 게 많지 않았다는 걸 공감하게 한다.지상파들은 이제 관찰카메라 형식을 예능의 중심축으로 세우고 있다. 'KBS 연예대상'이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대상과 최고의 프로그램상을 준 사실이나, SBS가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최우수프로그램상을 받은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물론 거의 유일하게 MBC가 '놀면 뭐하니?'나 '같이펀딩', '구해줘 홈즈' 같은 신규 예능 프로그램을 성공시켜 성과를 냈지만, MBC도 역시 '나 혼자 산다'같은 관찰카메라가 대표 프로그램이라는 사실을 박나래 대상을 통해 입증시켰다.2020년에도 관찰카메라는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의 중심 형식으로 자리할 전망이다. 케이블, 종편에 유튜브나 넷플릭스까지 등장해 프로그램들이 다양해지는 상황 속에서 지상파는 그 플랫폼에 가장 효과적인 형식으로 관찰카메라를 버리기가 어렵다. 가족, 친구, 자녀, 반려동물 같은 관찰카메라가 담아내는 보편적인 일상의 소재들은 그간 지상파들이 주로 보여줬던 관전 포인트와 일맥상통한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KBS가 '1박2일'을 버리지 못하고 SBS가 '런닝맨'을 못 버리는 것처럼 장수프로그램이라는 안전한 선택도 지상파는 계속 이어갈 전망이다. 그나마 MBC처럼 '놀면 뭐하니?' 같은 유튜브 시대에 맞는 새로운 시도들이 변화에 대한 갈증을 채워줄 전망이다.◆비지상파 시즌제 예능, 그 이상의 시도 나올까사실 2019년에는 tvN이나 JTBC 같은 비지상파 강자들도 예능 프로그램에 있어서 이렇다 할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tvN은 여전히 나영석표 예능 프로그램들이 시즌을 바꿔 약간의 스토리텔링 방식 변화들을 가미하면서 등장했고, JTBC 역시 시즌제 예능 프로그램들이 대거 등장했을 뿐 신규 예능프로그램의 성취를 보기는 쉽지 않았다. 물론 tvN은 '스페인하숙' 같은 새로운 시도가 주목받았고, '삼시세끼' 산촌편이 여성 출연자들을 세워 새로운 이야기를 보여주며 호평 받았으며 나아가 '신서유기'의 외전으로서 '아이슬란드 간 세끼'나 '라끼남' 같은 프로그램이 유튜브 버전으로 주목받았지만 전반적으로는 여행과 먹방이라는 소재를 벗어나진 못했다.그나마 JTBC는 조금 성적이 나은 편이다. '슈퍼밴드'라는 신규 프로그램과 '비긴어게인3', '슈가맨3'가 연달아 성공을 거두며 금요일 밤 JTBC만의 음악 프로그램 블록을 만들었고, 이효리는 물론이고 핑클 멤버들을 모두 끌어 모아 시도한 '캠핑클럽'은 큰 성취를 거뒀으며 '뭉쳐야 찬다'는 스포츠 스타들을 대거 기용해 스포츠 예능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특히 '슈가맨3'는 최근 뉴트로 열풍과 맞물리면서 이전 시즌보다 더 큰 화제를 불러오고 있다. 또 새롭게 런칭한 '이태리 오징어순대집'과 '막나가쇼'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하지만 JTBC 역시 몇몇 레귤러 장수 프로그램들은 종영하거나 정체된 상황이라 초창기 JTBC 예능이 해왔던 참신한 시도들이 절실해지는 시점이다.tvN은 새해를 맞아 달리기 리얼리티 'Run', 추억을 소환하는 음악 프로그램 '좋은가요', 고양이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냐옹은 페이크다', 아이들을 사회생활의 관점으로 들여다보는 '나의 첫 사회생활' 그리고 나영석 PD가 도전하는 숏폼 옴니버스 예능 '금요일 금요일 밤에' 등이 새롭게 시작한다. 특히 유튜브 시대의 짧아지는 콘텐츠 트렌드를 반영한 '금요일 금요일 밤에'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오디션 타고 온 종편 예능의 약진 계속될까올해 예능가에 가장 큰 파장은 Mnet '프로듀스' 시리즈의 조작 파문이다. 한때는 오디션의 명가로 불렸던 Mnet이 주춤하는 사이, 오디션 형식은 이제 종편의 성공 형식으로 자리해가고 있다. TV조선 '미스트롯'이 최고시청률 18%(닐슨 코리아)라는 놀라운 기록을 거두며 '송가인 신드롬'을 일으켰던데 이어, MBN '보이스퀸' 역시 8%를 넘기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과거 종편이 '황금알', '동치미' 같은 프로그램들이 화제를 모으며 이른바 '집단 토크쇼' 붐을 이뤘던 것처럼 이제는 중장년층을 집중적으로 겨냥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또 하나의 종편 트렌드로 자리할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TV조선이 '미스트롯'의 성공에 힘입어 시즌2라고 할 수 있는 '미스터트롯'을 1월2일부터 방송하는 건 단적인 사례다.종편이 시도하고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은 Mnet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미스트롯'처럼 중장년층의 음악 장르를 시도하거나, '보이스퀸'처럼 주부들의 현실을 오디션 형식에 엮어 노래만이 아닌 감동적인 스토리로 그려내는 방식이 그것이다. '보이스퀸'은 마치 과거 '주부가요열창'의 종편 버전을 보는 듯한 느낌이지만, 그 플랫폼의 고정시청층과 잘 맞아 떨어져 좋은 반응이 나오고 있다. 종편 예능은 이처럼 지상파나 케이블이 해온 완성도 높고 스타일도 세련된 형식을 추구하기보다는 종편의 시청층에 맞는 눈높이를 찾아감으로써 조금씩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2019년의 예능은 전반적으로 지상파, 케이블, 종편 등이 저마다의 플랫폼 성격에 맞는 효과적인 방식들을 모색했던 해였다. 거기에는 일정한 성과들도 있었지만 한계 또한 분명히 존재했다. 올해는 그 모색한 결과들이 플랫폼에 맞는 예능 형식으로 등장해 경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과연 올해는 어떤 프로그램들이 화제가 될까. 자못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2020-01-03 06:30:00

권경우(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춘추칼럼] "때는 와요"

소망을 품고 때를 기다리는 새해 같은 고통이 계속된다면 절망뿐 개인이 서로 힘을 합치지 않고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건 별로 없어새로운 해가 밝았다. 하루하루가 항상 새로운 날이지만, 해가 바뀌는 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오랜 세월 인류가 '시간'과 함께해 온 까닭이다. 이렇게 새로운 해가 되면 사람들은 결심을 하거나 소망을 품는다. 결심이든 소망이든 결론은 모두 같은 지점을 향한다. 개인이나 공동체의 변화이다. 문제는 개인의 노력으로는 그러한 변화를 일굴 수 없을 때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절망의 영역이다. 실제로 누군가는 그럴 수 있다. 죽을 것만 같은 고통이 새해가 되었는데도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면, 자신이 처한 상황이 절대로 변할 것 같지 않은 현실이라면, 절망하는 수밖에 무엇이 있겠는가.그럼에도 인간은 꿈을 꾸고, 노래하고, 기다린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다. 그 기다림이야말로 지금까지 인류 역사를 이끌어온 가장 중요한 동력이 아니었을까. 역사 속 인물들을 보면 갑작스럽게 중요한 일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과정은 기다림의 연속이었음을 알 수 있다.기다림은 포기나 판단 중지가 아니다. 그것은 현실에 대한 직면을 뜻하며 나아가 내일을 모색하는 일이다. 현실은 우리를 가만두지 않는다. 강한 비바람으로 흔들거나 적신다. 이런 상황에서 가만히 서서 무언가를 기다리는 일은 쉽지 않다. 기다림은 단단해지는 일이다. 딱딱해지는 것이 아니라 단단해져야 한다. 단단함은 두껍고 튼튼한 껍데기로 포장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층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낸 결과이다. 기다림만이 단단함을 만들어낸다.기다림은 태도의 문제이다. 단순히 결심한다고 기다릴 수 있는 게 아니고, 소망한다고 기다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기다림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과 맞닿아 있다. 태도는 그 일상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결국 개인은 어떤 목표에 한순간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통해 살아가고, 어느 순간 목표에 이르게 된다. 공동체의 변화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서로 힘을 합치지 않고서 바꿀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태도가 중요한 이유이다.자칫 태도를 예의나 싸가지의 문제로 볼 수 있다. 타자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태도는 존중이자 배려이다. 어떤 태도를 갖겠다, 혹은 유지하겠다는 선언은 단순히 개인적인 결심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며, 동시에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것으로써 목표 달성을 위해 다른 사람, 다른 가치 등을 무시하지 않는 자세이다. 타자와의 관계에서 태도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태도를 생각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폭력을 거부하는 자세를 포함한다. 모든 폭력은 위계적이며, 어느 한쪽의 일방적 관계에서 비롯된다. 사이와 관계를 바라보는 태도는 서로를 바라보게 한다. 태도는 오히려 내면과 외면이 만나는 지점에서 나타나며, 나와 너가 만나는 그 사이와 경계에서 드러난다.새해를 맞아 많은 사람들이 다시 소망을 품고 때를 기다린다. 자신의 때, 공동체의 때, 인류의 때를 생각하고 기다린다. 때는 올 것인가. 지난해 50주기를 맞은 신동엽 시인은 1970년에 발표한 '좋은 언어'라는 시에서 "때는 와요"라고 말한다."외치지 마세요/ 바람만 재티처럼 날려가버려요.// 조용히/ 될수록 당신의 자리를/ 아래로 낮추세요.// 그리고 기다려보세요./ 모여들 와도// 하거든 바닥에서부터/ 가슴으로 머리로/ 속속들이 굽어돌아 적셔보세요.// 하잘것없는 일로 지난날/ 언어들을 고되게/ 부려만 먹었군요.// 때는 와요./ 우리들이 조용히 눈으로만/ 이야기할 때// 허지만/ 그때까진/ 좋은 언어로 이 세상을/ 채워야 해요."시인은 '때는 온다'거나 '때는 올 것이다'라는 단정적 표현이 아니라 '때는 와요'라고 슬며시 말을 내려놓는다. 외치지 말고, 자리를 낮추고, 기다리자고 말한다. 심지어 '그때까진 이 세상을 좋은 언어로 채우자'고 한다. '때는 와요'라는 속삭임은 정치의 언어가 아니라 사랑의 언어이다. 비난과 저주의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을 '좋은 언어'로 채우고 가장 낮은 곳에서 기다리고 단단해져야 한다. 나와 너, 우리의 '때'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위로 받는 한 해를 소망한다. "여러분, 때는 와요."

2020-01-02 17:31:49

박천 독립큐레이터

[매일춘추] from A to B

우리가 새해를 맞이하며 하는 일반적인 행동은 어떤 것들을 정리하고, 올 한 해 좋은 일들이 생기기를 소망하며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기도 한다. 즉 작년 한 해를 돌아보며 반성하고, 올 한 해를 계획한다. 이렇게 한 해를 계획할 수 있는 이유는 '작년'이라는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예술에도 이러한 기준이 되는 대상이 있는데, 작가가 작업을 할 때, 어떤 것을 보고 느꼈는지가 그 대상이 되어 작업에 투영된다. 그리고 이 작업은 '예술'이라는 매체로 우리 앞에 서게 된다. 이러한 작업들의 기준은 예술의 본질적 탐구에서 시작되기도 하고, 일련의 경험들로부터 비롯되기도 한다. 혹은 당시 시대의 시대정신을 반영하기도 하며, 스스로를 비판하거나 의심하고, 심지어 아무 의미 없음에 대해 말하기도 한다.이렇게 놓고 보니, 단어로만 '예술'이라고 포괄하지, 결국 제각각이다. 우리가 전시장에 들어서면 이해 못 할 것들 투성이로 가득 찬 이유가 이렇듯 기준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있는 예술의 개념과 실제로 마주한 예술과의 간극이 너무 크다 보니 혼란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전시장의 난해한 작업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싶어한다. 그 작업이 예술적 가치가 어떠한지는 차치하더라도, 예술에 대해 이해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들의 작업이 어디에서 출발하여 예술로 도달했는지 추적하여 들어간다면, 조금은 고개를 끄덕일 수 있지 않을까.영천의 시안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from A to B'라는 전시는 이러한 부분에 대해 고찰하는 전시이다. 'From A to B'는 말 그대로 'A'지점에서 'B'지점으로의 이동을 뜻하지만, 전시에서는 장소에서 장소로의 이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이 아닌 'A(대상)'가 작가를 통해 'B(예술)'로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전시는 시안미술관의 전관에서 진행되는데, 1관에는 이우수, 백지훈 작가의 작업이, 3관에는 이소진, 심윤 작가의 작업이 있다. 1, 3관에서는 네 작가들의 완성된 작업들을 볼 수 있으며, 2관에서는 작가들의 작업적 원형이 어디에서 왔는지, 혹은 어디로 가는지를 상상해 볼 수 있다. 결국 2관을 통해 전시는 끝을 맺음과 동시에 'A'가 되고, 다시 관객에게 'B'로의 이동을 제안한다.관객에게 'A(예술)'를 통해 'B(불특정 대상)'로의 사고적 이동을 제안하는 이유는 우리가 유연하게 사고할 수 있도록 유도함에 있다. 2019년에서 2020년으로의 이동은 그저 하루가 지나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작년과 올해를 구분하고, 이를 통해 더 나은 가능성을 모색하려 한다. 전시를 관람하더라도 앞서 언급된 '난해함'에 대한 답을 찾을 수는 없겠지만, 예술이 어떤 경로로 우리와 마주하는지, 그리고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각자 고민하는 것에 대해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기회와 조우할 수 있을 것이다.박천 독립큐레이터

2020-01-02 11:35:39

김완준 대구예총 대구예술문화대학 학장

[기고] 문화가 흐르는 대구의 센트럴파크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이때, 세계적인 문화예술도시의 풍경들은 대개 멋진 공연과 함께 펼쳐진다. 반짝이는 샹젤리제 가로수가 아름다운 파리에서는 파리오페라극장 등에서 오페라와 발레 공연이 해를 넘기며 이어진다.런던에서는 새해맞이 불꽃축제와 함께 온 가족을 위한 발레 공연이 펼쳐진다. 독일에서는 베를린, 뮌헨, 함부르크 등 20개가 넘는 도시에서 훔퍼딩크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을 무대에 올리고, 수많은 공연장에서 '질베스트(12월 31일) 콘서트'가 펼쳐진다. 뉴욕에서는 12월 마지막 날 뉴욕 필하모닉이 모처럼 뮤지컬 음악들로 레퍼토리를 구성해서 공연을 준비한다. 같은 날 열리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송년 음악회로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가 오페라 '라 보엠'과 '토스카', '투란도트'의 아리아를 준비한다. 새해가 시작되면,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세계인의 눈길은 오스트리아 빈으로 향한다. 해마다 1월 1일 오전 11시에 열리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 음악회 때문이다. 이 음악회는 영상 중계로도 함께할 수 있는데, 전 세계에서 무려 5천만 명의 시청자가 감상한다고 한다.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우리도 얼마든지 이런 여유와 아름다운 풍경들을 가꾸어갈 수 있다. 대구에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대구오페라하우스가 있고, 콘서트홀로는 국내 최고라고 해도 손색없는 대구콘서트하우스가 존재하며, 각 구마다 골고루 특색 있는 공연장들이 잘 갖춰져 있다.2019년 마지막 날에는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유명 오페라 아리아와 와인 파티가 있는 제야 음악회를 열었고, 같은 시각 수성아트피아에서는 클래식과 탱고, 국악과 대중가요까지 음악의 만찬을 즐길 수 있는 제야 음악회가 펼쳐졌다. 북구의 어울아트센터에서도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는 제야음악회가 열렸다. 대구 시민 누구나 음악이 흐르는 제야의 콘서트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여기에 또 하나, 최근 날아온 반가운 소식을 더함으로써 우리 도시의 장밋빛 미래를 그려본다. 2025년 완공될 대구시 새 청사 부지가 달서구 두류동 옛 두류정수장 터로 결정되었다는 사실이다. 권영진 대구시장의 정책적 판단으로 대구의 새 시대를 여는 중요한 결정의 권한을 시민이 직접 행사할 수 있도록 한 결과이며, 그동안 공정한 경쟁을 펼쳐왔던 여러 구·군에서도 이제 우리 도시의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마음을 모으는 과정에 있다.이곳 두류정수장 터에 기대가 더하는 것은, 이 장소를 둘러싼 외부 환경에 있다. 대구의 '허파'로 불리는 165만㎡ 규모의 두류공원을 끼고 있기 때문이다. 두류공원 한 자락에는 대구문화예술회관이 30년째 터를 잡고 있고, 공원 내 드넓은 야외음악당은 치맥축제, 보자기축제 등 대규모 관광문화축제의 현장으로 시민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바로 그 야외음악당에서 필자는 대구시립오페라단 감독을 맡고 있던 지난 2000년, 그리고 2002년에 각각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와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를 공연한 바 있다. 매 회 2만 명의 관객이 인산인해를 이뤄 지역 최고의 야외 오페라로 이름을 올렸던 기억이 여태 생생하다.가을이면 대형 야외 오페라가 펼쳐지고, 해가 바뀔 때마다 신년 콘서트가 공연되며 크고 작은 축제가 열리는 대구시청사 잔디광장이 우리 시민에게 선사할 아름다운 시간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우리 대구는 문화가 흐르는 센트럴파크의 도시가 된다.

2020-01-01 18:05:28

임언미 대구문화 편집장

[찬란한 예술의 기억] '기록'과 '기억'에 대한 책임감

지역 예술단체 창단의 주역에 대해 언급한 지난달 신문 칼럼이 나간 뒤, 한 원로 예술인이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지금까지 그 단체 창단 역사에서 가려진 부분이 있다. 주역이 바로 나였다. 오랜 세월 대구를 떠나 생활하다 보니 대구에 남은 사람에 의해 주관적으로 성과가 정리된 것 같다. 이제라도 바로 알아주길 바란다고 했다.어느 장르든, 예술단체가 만들어지고 수십 년을 이어오는 것이 한두 사람만의 노력으로 가능했을 리는 없다. 그분께 조만간 찾아뵙겠다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다.이런 경우는 문화예술단체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월간 '대구문화' 창간(1985년 12월)에 얽힌 이야기도 많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필자가 처음 '대구문화'를 맡았을 무렵, 시민회관(현 대구콘서트하우스)에 배부하러 가면 청경 아저씨들이 반기며 책자들을 소중하게 받아 올려 주셨다. 그분들은 매번 '이거 창간했을 때 우리도 같이 (배부)했는데…'라는 말을 항상 덧붙이셨다. 처음에는 반겨주시니 고마운 마음이 들었고 그다음에는 '우리도 같이'라는 말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됐다.'같이 했다'는 사람은 그분들만이 아니었다. 일을 제대로 하려면 '뿌리 찾기'부터 해야겠다 싶을 정도였다. 그때부터 창간의 주역으로 언급되는 사람들을 모두 찾아가서 만났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연극인 이필동 선생님을 비롯해서 언론인 이태수 선생님, 장긍표 당시 시민회관 관장님, 행정가 김선오 선생님, 시립예술단 사무국 권혁문 국장님, 그리고 현재 대구교육박물관을 맡고 계신 김정학 관장님….그들은 모두 '대구의 문화예술'을 기록한 이 잡지가 한두 사람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니, 잘 이어가야 한다는 말을 덧붙이셨다. 제대로 이어가겠냐는 '걱정'과 잘 이어가 주길 바라는 '당부'의 마음이 함께 전해졌다.어찌 보면 대구 문화예술계에 첫발을 내디뎠던 그때, 이미 수많은 문화예술계 선배님들이 이런 '기록'과 '기억'에 대한 책임감을 지워주셨던 것 같다. 이 글이 얼마 전 어느 예술기획자가 필자에게 "새로운 콘텐츠들이 넘쳐 나는데 굳이 과거를 자꾸 들추고 챙기려 하냐"고 질문한 것에 대한 대답이 될지 모르겠다.원고가 급할 때마다 부탁드리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단숨에 글을 써주셨던 고(故) 이필동 선생은 '대구연극사'를 두 번이나 펴내셨다. 그는 "대구의 연극이 언제까지나 서울 연극의 변방에서 한낱 지방 연극으로만 머물 것이 아니라 자기 색깔을 확보한 특성 있는 지역극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대구연극의 뿌리를 찾고 선배들의 업적을 정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일평생 국내외 헌책방을 다니며 자료를 모아 향토문학관에 900여 권을 기증한 고(故) 윤장근 선생은 생전에 '대구 문화사 최후의 증인'으로 불렸다. 지금의 대구근대골목에 표기된 주요 지점들은 그의 증언에 따른 것이 많다. 그는 젊은 시절 오상순, 조지훈, 최태웅, 구상 등 기라성 같은 문인들과 녹향과 르네상스 음악감상실, 백록과 백조다방 등을 오가며 어울렸고, 그들이 떠난 뒤에는 그들의 흔적을 기록했다. '대구문단인물사'를 펴냈고 작고 문인들의 시비 건립에도 앞장섰다. 그는 필자에게 대구와 작은 인연이라도 있는 예술인들은 반드시 찾아서 기록하고 기려야 한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작은 인연이라도 먼저 '찜'하면 그가 바로 대구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2020년이 시작됐다. 대구시는 2020년 한 해 동안 장르별 원로 예술인들을 추천받아, 구술 아카이빙을 하고 그들의 소장 자료를 기증·위탁받을 계획이다. 연초에는 지역의 연구자들을 위해 지역 문화예술 관련 잡지와 기록물들을 온라인으로 공개한다. 또 지난해 개정된 문화예술 진흥 조례에 따라 문화예술 기관별 자료 아카이빙을 의무화하고 해당 매뉴얼도 만들어 배포할 계획이다.크게 팽창한 대구 문화예술계의 역사 정리가 짧은 기간에, 소수의 노력만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다. 시스템도 필요하지만 개개인의 애정과 관심이 가장 중요하다. 2020년, 대구문화예술 아카이브 구축의 주인공이 되어 주시길 부탁드린다.

2020-01-01 17:26:00

김태훈 대구 영남중 교사

[대구 옛 이야기] 대구 출신 의병장 문석봉

대구시 달성군 현풍읍 출신인 문석봉(1851~1896)은 별시 문과에 급제하고 1894년 진잠(현재 대전광역시 유성구 진잠동) 현감으로 부임하였다. 그해 양호소모사(전라도와 충청도 지역에서 군사를 모으는 관리)에 임명되고 동학농민군을 진압하여 큰 공을 세웠는데 인근의 유림들이 그를 위해 선정비를 건립했을 정도였다.그러다가 돌연 문석봉은 1895년 전반 공주부 관군에게 군사훈련을 시키고 의병을 일으켜서 일본을 조선에서 몰아낼 계획을 세우려다가 적발되어 '토왜죄'(討倭罪)라는 죄목으로 공주부에 구금되었다. 문석봉은 법부대신 서광범의 공초를 거쳐 실형을 선고받았는데, 이를 통해 그가 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발생하기 전부터 일부 유생들과 공모하여 의병활동을 계획·준비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1895년 중순에 석방된 문석봉은 을미사변 소식을 듣고, '천고(千古)에 없는 강상(綱常,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의 대변(大變)'이라고 격분하여 국모의 복수를 위해 거병해서 흉적을 토벌하기로 다짐하였다. 문석봉이 상경해서, 훗날 을사늑약 체결에 통탄하여 자정 순국하였던 민영환을 만나 자신의 포부를 밝히자, 민영환은 그에게 환도 한 자루를 풀어주며 격려하였다. 또한 문석봉은 을미사변 당시 훈련대 제2대대장으로서 일본군의 극악무도한 만행에 협조했던 우범선(농학자 우장춘의 아버지)을 처단했던 고영근과도 의견을 나누었다. 이미 고영근은 문석봉이 봉기하기 직전에 편지를 보내어 그의 결단에 힘을 실어주었던 적이 있었다.드디어 문석봉은 1895년 11월 4일에 충청도 유성으로 내려가 창의하여 유성의병을 조직하고 대장에 취임하였다. 문석봉은 지휘부를 편성한 이후 통문을 각지에 발송하였는데, '을미사변을 천고에 없는 대변'으로 규정하고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토벌하여 사직(社稷)을 지켜야 할 것을 호소하였다.문석봉 의병진은 먼저 회덕현을 습격하여 무기를 탈취한 후로, 1895년 12월 6일에 300여 명의 의병이 유성 장터에 모였고, 이곳에서 '아당(我黨, 유성의병)에 드는 자는 살 것이요, 들지 않는 자는 죽을 것이다'라고 외치면서 주민들의 의병 합류를 촉구하였다. 다음 날 오전에 문석봉은 의병을 이끌고 진잠으로 들어갔고, 일주일 뒤인 1895년 12월 14일에 공암을 거쳐 공주로 진격하였다. 유성의병은 공주부 관군과 공주 와야동(충남 공주시 소학동)에서 격전을 벌이다가 매복해 있던 관군의 공격으로 패퇴하였다.문석봉은 유성의병을 해산하고, 지휘부와 함께 경상도 고령·초계 일대에서 재봉기를 준비하였다. 문석봉은 고령 현감에게 원조를 요청하였으나, 오히려 고령 현감의 고변으로 순검들에 의해 다시 체포되어 대구부에 구속되었다. 문석봉은 두 차례에 걸친 공초에도 의병투쟁의 결연한 의지를 역설하며 당당하게 맞섰다. 그러다가 함께 갇혀 있던 동료들과 감옥에서 탈출하여 경기도 과천으로 피신하였다. 곧이어 문석봉은 재차 상경하여 정계 인사들과 연락을 취하였고, 원주로 이동하여 '도지휘'(都指揮)가 되어 각 지역 의병장들에게 격문을 발송하였다. 그러나 문석봉은 옥고를 치르는 동안 몸이 쇠약해진 상태에서 병세가 악화되자 현풍으로 돌아왔는데, 귀가한 지 석 달 만인 1896년 11월 19일에 숨을 거두었다.문석봉은 한미한 선비 집안에서 무인으로 출세했음에도 영파재(映波齋)를 지어 후학을 양성할 만큼 문(文)에도 출중한 면모를 보였다. 문석봉의 유성의병은 '존화양이'(尊華攘夷)의 위정척사 성격보다 '주욕신사'(主辱臣死)의 근왕적 성격이 강하였다. 또한 문석봉의 유성의병은 향촌 유림 세력의 지지 기반을 바탕으로 반침략 항일의병을 전개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현재 문석봉 생가터는 대구시 달성군 현풍면 성하길 68-7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그 주변에는 을미사변 이후 최초의 의병봉기를 일으켰던 문석봉에 대한 표식은 찾아볼 수 없다. 그 근처에 문석봉을 기억할 수 있는 상징물이 하루속히 건립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2020-01-01 17:21:12

홍성걸 국민대 교수

[새론새평] 역사의 죄인이 되려 하는가

덕담 주고받아야 할 새해이건만 난장판 정치 피폐한 경제로 우울 발전이냐 퇴보냐 기로에 선 한국 2020년은 국민 행복한 해 되어야세상은 복잡해도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2020년 새해가 되었다. 새해에는 이웃과 덕담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희망과 의지를 다지는 것이 관례지만 올해는 우울하기만 하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국민의 삶은 피폐해지고 있는데도 정치가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2019년의 한국 정치는 '조국 사태'로 얼룩졌다. 많은 의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혹만으로 (장관직에) 임명하지 못하는 선례'를 남길 수 없다면서 조국 씨를 법무장관에 임명하면서 소위 강남좌파의 위선과 불법행위가 백일하에 드러났다. 검찰이 조국 씨를 불구속기소하자 청와대는 즉시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을 인용하며 '수사의 의도마저 의심하게 만드는 결과'라고 비판했다. 대통령이 국기 문란이라면서 철저한 수사를 하명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시기 기무사의 계엄령 검토 문건 사건에 대해 1심에서 관계자 전원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나왔을 때 어떠한 논평이나 사과도 없었던 청와대와 비교하면 달라도 너무 다르다.2019년 12월, 국회는 한국 정치사에서 잊지 못할 선례를 남겼다. 국회선진화법에 의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법이 제1야당의 참여가 없는 상태에서 수적 우위를 점한 소위 '4+1' 결사체에 의해 본회의를 통과한 것이다. 야당 시절 문재인 대통령은 선거법은 게임의 규칙이므로 야당의 참여 없는 일방적 개정은 있을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었다. 그 문재인은 어디로 갔는가.공수처법은 고위 공직자, 특히 검찰의 특권적 행태를 견제한다는 측면도 있지만, 제왕적 대통령에게 수사권과 기소권까지 갖는 최고위 특수검찰을 하나 더 선물한 것이라는 심각한 문제도 있다. 공수처가 권력에 의해 어떻게 사용되느냐는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이라 향후 정권이 교체되었을 때, 정치권에서 공수처를 어떻게 해야 한다고 할지 자못 궁금하다.이 두 사건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여당이 군소 정치 세력과의 합의를 통해 제1야당을 무력화시킨 선례가 되었다는 점에서 향후 의회정치 과정은 근본적으로 변화할 것이 예상된다.정치보다 더 국민을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경제다. 특히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부정적 영향은 중산층에 직격탄을 날렸다.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최저임금을 견디다 못해 폐업하고 있고, 더 많은 청년들과 저소득층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정부로부터의 이전소득에 의존하고 있다.다른 나라는 기업 투자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다투어 법인세와 상속'증여세를 인하하고 있는데 우리만 법인세 인상과 노동 개혁 회피, 규제 강화 등 기업 투자를 막는 정책을 남발하고 있다. 어려워진 저소득층을 위한다고 사상 최대인 512조원 슈퍼 예산을 통과시키고 재정자립도가 50%도 안 되는 지방정부들조차 경쟁적으로 현금 살포형 복지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청와대 대변인은 곳간에 쌓인 쌀도 그냥 두면 썩는다는 비유로 재정이 튼튼하다고 강조한다. 그렇게 재정이 튼튼해서 막대한 국채를 발행해 미래 세대에 부담을 떠넘기고 있는가.2020년, 대한민국은 발전이냐 퇴보냐의 기로에 서 있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건설한 주체인 보수 정치 세력은 바른 보수주의 가치와 이념 아래 과거 일시적인 잘못을 통렬히 반성하고 계속되는 정책 실패로 고통을 겪고 있는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할 역사적 소명이 있다. 보수 정치 세력이 이 소명을 수행하려면 무엇보다 잃었던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각자가 기득권을 모두 버리고 오직 문재인 정부의 정책 실패로 신음하고 있는 국민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뭉쳐야 한다. 보수의 품격과 도덕성, 공동체 정신이 그 바탕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대권을 거머쥔 이후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압도적 승리로 지방 권력을 확보한 문재인 정부는 언론 권력, 사법 권력에 이어 공수처를 통해 검찰 권력까지 확보했다. 4월 총선에서는 마지막 남은 의회 권력을 확보하여 사회주의 인민공화국으로의 개헌을 시도할 것이다. 이를 막지 못하면 이 땅의 보수 정치인들은 모두 역사의 죄인이 된다. 보수 정치의 본산이라는 대구의 보수 정치인들이여, 그대들은 역사의 죄인이 되려 하는가?

2020-01-01 16:14:29

이지영 배우·연출가

[매일춘추] 소통의 블로킹

연극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 중 하나는 배우의 움직임을 만드는 것이다.작품의 흐름과 관객의 몰입감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인데, 그것을 블로킹(Blocking)이라고 한다. 스포츠 용어로 잘 알고 있는 블로킹이 연극에서는 무대 위 '동선'을 의미하는 말이다.독일출신의 연출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는 블로킹에 대해 "무대와 객석이 두꺼운 유리벽으로 막혀 있어 배우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더라도 관객은 등장인물의 움직임만을 보고서 스토리를 알 수 있어야 한다. 그 의미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블로킹이다" 라고 정의한 바 있다.블로킹은 연출자와 배우가 함께 만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배우들은 장면을 만들며 의견대립으로 다투기도 하고 타협하기도 한다. 그 움직임에 연출자는 아이디어를 더하고, 더 좋은 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해 배우들과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며 블로킹을 완성시켜나간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 교감하며 조율하고 타협하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한다.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관객의 관점에서 작품을 보기도 하는 연출자와 작품 속의 등장인물이 되어 현장에서 관객과 소통하는 배우 사이에는 상호 이해와 배려가 반드시 필요하다.10년 전 배우로 활동하던 당시 연출자가 던지는 말에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 '연기 왜 그렇게 편하게 하려고 하냐. 그게 그렇게 힘들어? 하라면 좀 해!' 생전 처음으로 마주하는 상황이 그저 낯설었고 그 움직임이 너무 어색했다. 배우가 불편하면 관객들도 불편할 것 이라는 생각에 연출자에 대한 부정과 야속한 마음이 컸다.연출자가 되어보니 블로킹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배우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시각적으로 좋은 그림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소통하고 배려하며 장면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세심한 연출자와 총명한 배우의 소통이 관객과의 진정한 소통을 만들어 낸다 할 수 있다.연극은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가 만나 작품을 완성 시키는 공동체작업이기도 하며, '협력'으로 만들어내는 '소통과 공감'의 예술이다. 그 긍정적인 에너지로 만들어진 공연을 본 관객들은 가족과 친구 나아가 누군가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나누며 소통 할 것이다.누군가와 뜻이 통하고 마음이 통한다는 것.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 이것이야 말로 연극의 진정한 매력이 아닐까? 2020년 경자년 누군가에게 조그마한 소통의 블로킹이 시작되기를 희망한다. 이지영 배우·연출가

2020-01-01 14:37:31

유재경 영남신학대학교 기독교 영성학 교수

[종교칼럼] 깊은 성찰, 희망찬 새해

결혼식, 성년식, 새해의 차례 등 '의식'(儀式, ritual)은 우리 삶의 일부분이자, 수천 년에 걸친 인류 문화와 전통의 핵심이다. 종교든 기업이든 교육이든 운동이든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의식은 존재한다. 의식의 실행 속에서 일상의 몸짓은 아름다운 상징이 되고, 의식에 참여하면서 우리의 삶은 더욱 윤택해진다.우리는 운동 경기에 열광하지만 세계적인 선수들은 매 경기마다 자기들만의 의식을 치르며 경기에 임한다. 미국의 테니스 선수 세레나 윌리엄스는 경기 내내 양말을 갈아 신지 않는다. 심지어 몇 주 동안 이어지는 토너먼트 기간에도 양말을 세탁하지 않는다고 한다. 양말을 바꾸거나 세탁하면 경기에 패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골프 선수 타이거 우즈는 빨간색을 승리의 색깔로 여긴다. 주말마다 그는 빨간색 옷을 입고 외출할 정도다. 포르투갈 출신 축구 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축구장에 발을 내디딜 때 오른발이 먼저 잔디에 닿도록 한다.이처럼 경쟁이 치열하고 중요한 경기일수록 선수들은 더 긴장한다. 매 경기마다 긴장의 강도는 높아지고 불확실성은 커진다. 최고의 기량을 뽐내는 선수들도 기술만으로 경기를 이길 수 없음을 안다. 그래서 선수들은 자기 나름의 의식을 수행한다. 스포츠 저널(Journal of Sport Behavior, Vol. 34, No. 1)에 따르면 의식이 운동선수들의 높은 긴장을 완화시켜 경기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의식은 시간의 흐름과 뗄 수 없다. 기독교의 대림절, 성탄절, 주현절, 사순절 등도 시간의 경과에 따른 의식이다. 우리 고유 명절인 설, 추석, 단오와 한식도 시간에 따른 의식이다. 그래서 세시풍속은 음력 정월부터 섣달까지 같은 시기에 반복되는 '주기전승'(週期傳承) 의식이라고 한다. 2020년 경자년(庚子年), 쥐의 해가 시작되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새해맞이 의식이 진행됐다.유대인들의 새해 의식은 나팔절이라 부르는 '로슈 하샤나'(Rosh Hashanah, רֹאשׁ הַשָּׁנָה)다. 로슈 하샤나는 '그 해의 머리'란 뜻이다. 유대인들은 그레고리력이 아니라 유대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가을에 새해를 맞이한다. 그들의 새해 의식은 10일 동안 지속된다. 행사는 전날 오후부터 시작되지만 가족과 친척들이 모여 함께하는 저녁식사가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첫날의 예배, 식사, 나팔 소리는 물론 한 동작 한 동작이 모두 의식이다. 새해 저녁에 먹는 빵도 독특하다. 이날 유대인들은 빵을 소금에 찍어 먹는 대신 꿀에 찍어 먹는다. 희망찬 새해를 향한 그들의 소망을 표현한 것이다. 이뿐 아니다. 그들이 사과를 꿀에 찍어 먹는 독특한 장면도 볼 수 있다.로슈 하샤나의 첫날 오후에는 몸을 물속에 담그거나 강이나 바닷가에 가서 자신의 소지품을 던진다. 이 의식을 그들은 '타쉬리히'(Tashlich)라 부른다. 지난해 지은 모든 죄와 잘못들을 내어 던지며, 용서를 구하는 의식이다.유대인들이 지키는 열흘간의 새해 의식은 대속죄일로 막을 내리는데, 10일의 새해 의식 가운데 9일이 속죄와 성찰의 기간이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잘못한 모든 것들을 샅샅이 살펴 회개하고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진다. 유대인의 새해 의식은 즐거운 축제의 시간, 가슴 벅찬 내일을 기대하는 시간이 아니라 자기의 내면을 보며 깊이 침잠하는 시간이다.경자년 새해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항아리에 담긴 물을 비워내듯 우리 속에 켜켜이 쌓인 묵은 찌꺼기들을 비워내자. 그것이 경도된 생각이든 왜곡된 기억이든. 새해는 더 큰 희망과 기쁨의 시간을 위해 잠시 움츠리는 시간을 가지자. 역경의 계사 편에 나오는 '척확굴이구신'(尺蠖屈以求信)이란 구절을 숙고해 보자. 자벌레가 몸을 구부리는 것은 장차 더 크게 펴기 위함일 것이다.

2020-01-01 10:53:40

반려견의 소변의 색을 관찰하면 다양한 질병정보를 이해할 수 있다. 약간 노랗고 투명하며 냄새가 적은 소변이 건강한 소변이다. ( 사진이미지: sutterstock)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소변에 담긴 건강정보…색깔·배뇨 자세에 주목

해피(3)가 내원했다. 보호자는 평소 건강했던 해피가 소변색이 붉고 기운이 없다고 했다. 검사 결과 해피는 양파 중독으로 적혈구가 파괴돼 혈색소뇨와 빈혈이 진행 중이었다. 보호자 분에게 검사 결과를 알려드리자 보호자는 그제야 며칠 전 해피에게 불고기를 먹였던 사실을 떠올렸다. 불고기 양념에 포함된 양파가 붉은 소변의 원인이었다.반려견의 소변의 색과 배뇨하는 자세를 통해 예측할 수 있는 건강 정보들을 알아보자.건강한 소변은 맑다. 약간 노랗고 투명하며 냄새가 적은 소변이 건강한 소변이다.지나치게 물을 많이 마시고 물처럼 투명한 소변을 자주 보는 경우를 다음다뇨라 한다. 당뇨병, 쿠싱병이 의심된다.소변색이 짙다는 것은 소변의 농축과 수분 섭취 부족을 의미한다. 신장 질환, 결석, 심장질환, 비만한 동물에게는 매우 불리하다. 수분 섭취를 늘리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소변이 뿌옇게 탁하다면 방광 내 슬러지(단백질 찌꺼기)가 많음을 의미한다. 이 경우 단백뇨와 방광염이 의심된다. 다만, 과영양이 지속되면 소변의 탁도가 증가하기도 한다.소변색이 유난히 노랗다면 황달을 의심할 수 있다. 담즙의 빌리루빈이 소변으로 배설되어 유난히 노란색을 띄게 된다. 색소가 포함된 간식이나 비타민 영양제를 먹으면 일시적으로 노란 소변이 나타나기도 한다.담즙의 빌리루빈이 소변으로 배설될 때 소변이 산성일 경우 빌리베르딘 성분으로 변하면서 소변이 녹색을 띄게된다.소변이 마르면 소금처럼 반짝거리는 경우 소변 내에 무기질(크리스탈) 성분이 많음을 의미한다. 크리스탈뇨는 결석의 전단계이므로 수분 섭취를 늘려 소변이 묽어지도록 노력하여야 한다.소변이 붉은 경우 근색소 또는 혈색소를 의미한다. 근색소뇨는 심한 운동 후, 극도의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 열사병, 고열을 동반한 질병 상태에서 근육 세포 파괴로 인해 근색소가 소변으로 배출되는 경우이다.혈색소뇨는 적혈구가 파괴되는 면역매개성용혈성질환(IMH), 약물에의한 용혈, 진드기매개 원충감염에 의한 용혈, 양파중독이 있을 경우 혈색소가 소변으로 배출되는 경우이다.소변에 피가 발견된다면 방광염, 방광종양, 요도염, 결석, 전립선비대 등으로 방광 또는 요도에 염증이나 궤양이 생겼을 수 있다.소변 전체가 혈액인 혈뇨의 경우 심각한 신장의 신세뇨관 손상과 심한 방광의 출혈을 의심해봐야 한다.배뇨를 불편해한다면 결석, 수컷의 전립선 비대, 암컷의 질비대, 방광과 전립선의 종양, 고양이 배뇨장애증후군(FLUTD)의 가능성이 있다.소변이 방울방울 맺히는 경우 배뇨가 깔끔하지 못하고 스며나오는 상황으로 볼 수 있다. 방광염, 요도염, 요도 결석, 디스크 질환, 노령 동물에서 관찰된다.잠자면서 소변을 보거나, 화장실을 가는 도중에 참지 못하고 실례하기도 한다. 요도괄약근의 조절 능력이 약화되는 기력저하, 디스크질환, 노령견의 퇴행성 신경계 질환에서 관찰된다.개는 낯선 공간에 가면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는 경향이 있다. 내원 전 소변을 보지 않고 병원에 오면 신선한 소변을 채취해 소변검사를 실시할 수 있다. 신선한 소변은 성분검사와 세포검사, 결석검사, 종양검사가 가능하다.낯선 병원을 내원한 고양이에게서 신선한 소변을 채취하기는 매우 어렵다. 가정에서도 배뇨할 때 생식기를 모래에 밀착하여 볼일을 보기 때문에 소변을 관찰하고 깨끗하게 채취하기가 쉽지않다.이때 고순도의 벤토나이트 모래를 제공해 소변 직후 굳어진 소변 덩어리를 관찰한다. 소변덩어리가 작아졌거나 여러 개라면 수분 섭취 부족과 배뇨의 불편을 의심해봐야 한다. 소변 덩어리가 단단하지 못하다면 단백뇨와 방괌염을 의심할 수 있다.수컷 고양이는 체형에 비해 요도가 매우 가늘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심리적으로 위축된 고양이는 물 섭취가 줄고 배뇨 간격이 길어질수록 소변이 농축되며 방광염이 잘 발생한다.고양이 방광염은 고양이배뇨장애증후군(FLUTD)의 주원인이 된다. 고양이가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리며, 배뇨 자세를 오래 취하거나, 통증을 호소한다면 FLUTD를 의심하여야 한다. FLUTD는 급성신부전으로 악화되기 쉽기 때문에 발견 즉시 수의사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SBS TV동물농장 수의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 원장은 개와 고양이,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한 30년간의 임상 경험을 토대로 올바른 동물 의학 정보를 제공하고 바람직한 반려동물 문화를 제시하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2019-12-31 10:54:13

이은주 힐링드라마아트센터 대표,심리치료사

[이은주의 잉여현실] 자기 수행이 필요한 시대

거짓과 허위가 진실보다 더 큰소리를 내고, 폭력과 굴종이 백주에도 인륜을 이겨 먹는 일들은 뉴스에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위선적인 사람들은 처음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만 점점 자신의 허위에 잠식당해 버려 자신의 문제를 보지 못하게 된다. 남들도 다 그래! 세상이 다 그렇지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라며 자신의 책임을 세상 탓으로 돌리고 자기 행위에 면죄부를 준다. 자기기만에 빠져 스스로 구덩이를 파고 그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는 형국이지만, 자신은 까마득히 모른다.특히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기만에서 빠져나오기가 힘들다. 오히려 힘이 없는 약자의 위치에서 경험한 것들이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것들을 더 잘 알아보게 하고, 삶의 지혜를 가져다준다. 그것을 '주변성의 자원화'라고 한다. 그래서 세상은 공평한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타인을 이용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고 나이가 들수록 불안해진다. 반면 약자로서의 경험이 우리에게 지혜를 주고, 성실하게 자신을 묵묵히 살아온 사람에게는 평화와 자유가 주어지니 말이다. 그래서 성찰의 시간들이 더 많이 필요하고 더 깨어 있어야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세상이 어두운 기운과 나쁜 의식들로 어지러울수록 더 많은 수행자들이 나온다. 주변을 둘러보면 명상, 요가, 마음챙김, 각종 테라피와 영성 프로그램들, 참선과 같은 수련의 장들은 얼마나 많은지! 지금은 바야흐로 치유와 수행의 시대가 되었다.점점 고립되고 소외가 심화될 시대에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 우리가 한 행위는 선행이든 악행이든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 자신과 타인을 위해 노력하며 때론 희생하고 나누며 사는 삶은 40이 넘고 50이 넘어 나이가 들수록 당당해진다. 두려움과 불안이 사라지고 힘이 생겨, 그리움과 자비로 당당하고 지혜로워진다. 2019년도 다 지나가고 새해에는 좀 더 맑은 정신으로 나를 돌아보고 더 자연스럽게 나답게 살아볼 일이다.

2019-12-30 18:06:51

이춘희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이춘희 시사로 읽는 한자] 海納百川(해납백천): 바다는 모든 물줄기를 받아들인다.

모든 물줄기(百川)는 바다를 향하고, 바다는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인다(納). 진(晉)나라 원굉(袁宏)이 '삼국명신송'(三國名臣頌)에서 삼국시대 위(魏)나라 명신 서막(徐邈)을 기리는 글에서 왔다. 서막은 양주(涼州)의 자사(刺史·지방장관)로 서북의 이민족들을 잘 다스렸다. 원굉은 이러한 서막의 치정(治定)을 "물욕을 버리면(形器不存) 한 치의 마음속에 바다를 담는다(方寸海納)"고 평했다.전국시대 초(楚)나라 사람 이사(李斯)는 진왕(후에 진시황)의 객경(客卿·다른 나라에서 온 고급관료)이 되었다. 이때 이웃의 한(韓)나라는 치수전문가 정국(鄭國)을 진나라에 보내 논밭에 물길을 튼다며 진나라의 국력을 소진시키려 했다. 이를 알고 진나라의 종실 귀족들이 "객경은 조정에서는 진왕을 섬기지만 결국 자기 나라를 위하고 있다"고 상소하자, 객경을 추방하는 축객령(逐客令)이 내려졌다.쫓겨날 위기에 처한 이사는 과거 진나라를 위해 공을 세운 객경들의 예를 들면서 이들을 추방하는 것은 "적에게 병사를 빌려주고 도적에게 식량을 내주는 격"이라며 추방령을 거두어달라는 간축객서(諫逐客書)를 올렸다. 글 말미에서 그는 "태산이 큰 것은 한 줌의 흙도 사양하지 않았음이요(太山不辭土壤), 바다가 깊은 것은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았던 까닭이라(河海不擇細流)"면서 포용의 덕치(德治)를 호소했다. 진왕은 추방령을 거두었고, 20년 뒤 중국 최초의 통일 왕조를 이루었다.천하를 다스리는 포용력이 해납백천이다. 마오쩌둥(毛澤東)도 집무실에 이 글귀를 걸어 놓고 항시 새겼다 한다. 2020년, 새 해의 한국 정치는 다툼과 파행에서 벗어나 해납백천의 자세로 제구포신(除舊布新·묵은 것은 버리고 새 것을 펴다)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2019-12-30 18:05:41

배상식 대구교육대학교 교수

[배상식의 여럿이 하나] 디아스포라의 꿈

지난달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헤로니모'(Jeronimo)는 재외동포의 문제를 새롭게 생각하게 해준다. 이 영화는 쿠바의 에네겐 농장에서 노예처럼 일하면서도 이웃 한인들과 매 끼니마다 쌀 한 숟가락씩을 모아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했던 독립운동가 임천택과 쿠바 한인 최초로 대학에 진학하였을 뿐만 아니라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혁명의 주역이 된 아들 임은조(헤로니모 임) 등 쿠바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 후예들의 삶을 소재로 하고 있다.이 영화의 감독은 세계에 흩어져 사는 한인 동포들에게 자부심을 주고 한국인들이 생각지 못하는 곳에서도 고국을 그리워하는 한국인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 러시아, 일본 등에 거주하고 있는 재외 동포들은 망국과 식민지, 전쟁으로 인해 기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 다른 나라로 집단적으로 강제 이주한 경우가 대부분이며, 그래서 이들의 정착지에서의 고통과 집단적 상흔은 너무나 깊고 또 오래된 것이다.영화에서 잘 보여주지만, 혁명가로서의 삶을 살았던 헤로니모 임에게는 세 가지 꿈이 있었다. 첫째, 쿠바 한인들의 이민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는 일. 둘째, 한글학교를 세워 한국의 문화와 역사, 언어를 가르치는 것. 셋째, 쿠바의 한인회를 살리는 것이었다. 헤로니모는 이러한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디아스포라였다.원래 디아스포라의 전통적 개념은 바빌론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유대인들이 다수의 지역으로 이동하게 되는 강제 이주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디아스포라에는 강제 이주, 민족 분산, 비극적 경험의 공유가 가장 중요한 특성으로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과 같은 세계화 시대에는 한국의 재외동포들을 단지 민족적 동질성을 지닌 집단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이들의 삶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사실 세계경제의 불균등 성장에 따라 지역 간 노동력의 이동이 대규모로 발생하여 디아스포라가 등장하는 사례도 많이 있다. 한인의 이민사에도 이러한 사실들이 등장하는데,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 미국의 하와이 사탕수수와 파인애플 농장이나 멕시코 에네켄 농장 노동자로 이주한 사례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현재 우리 사회도 다양한 디아스포라들이 거주하고 있다. 예를 들면, 공단 지역 인근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도 많이 있고 또 다문화가족을 구성하고 있는 결혼이민여성들도 많이 있다. 한인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미국이나 멕시코로 이주할 때 이들이 품고 있는 꿈은 무엇이었을까. 현재 우리 사회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나 결혼이민여성들이 품고 있는 꿈도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재외동포의 삶과 꿈을 통해 느꼈던 마음을 조금만 반추하여 우리 사회에서 살고 있는 다문화가족을 바라봤으면 한다. 이젠 다문화가족은 우리 사회의 엄연한 구성원이다. 중국 조선족 동포들이든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고려인 동포들이든, 아니면 새롭게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된 결혼이민여성이나 난민들이든 그들의 애환과 아픔을 함께 이해하면서 따뜻한 시선이 항상 머물기를 기대한다.

2019-12-30 18:00:00

강판권 계명대학교 사학과 교수

[나무와 창의성] '수연'(樹緣):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만남

인생은 만남과 이별의 변증이다. 인류는 지금까지 주로 혈연, 지연, 학연 등을 통해 만남과 이별을 경험하고 있다. 인류가 처음 만든 씨족사회는 공동의 조상을 가진 공동체이다. 이 같은 공동체는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신석기시대의 산물인 씨족사회는 농업사회를 유지하는 데 아주 유익한 공동체였다.우리나라에 씨족 공동체가 아직 적잖은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은 여전히 농업사회의 의식구조가 강고하다는 증거다. 혈연 중심의 공동체는 대부분 같은 지역을 중심으로 유지된다. 지금도 우리나라에는 같은 성을 가진 집성촌이 남아 있고, 전국 혹은 지역 단위의 대종회와 향우회가 활발하다. 학교 출신에 따른 동창회와 동문회가 활발한 데서 보듯이, 학연도 혈연과 지연 못지않은 조직을 갖고 있다.혈연, 지연, 학연은 사회를 지탱하는 하나의 축이다. 그러나 '삼연'은 이성을 둔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따라서 삼연이 크게 작동하면 결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삼연은 각 시대마다 역할을 담당했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큰 걸림돌이다. 왜냐하면 창의성을 발휘하는 데 큰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끝내야 할 시대는 제때 끝내야만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수 있다.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로 살았던 원인 중 하나도 봉건시대를 스스로 끝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끝내야 할 시대를 끝내지 못하면 스스로 불행을 초래한다. "서경(書經)·태갑중(太甲中)"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하늘이 내린 재앙은 오히려 피할 수 있지만 스스로 만든 재앙은 피할 수 없다'. 스스로 재앙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갈등 중 대부분은 시대에 맞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적지 않은 기성세대들의 시대에 걸맞지 않는 의식은 세대의 갈등을 넘어 나라를 위기로 몰아넣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변화는 세상살이의 이치다.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나무를 좋아하는 것도 나무가 때맞춰 변하기 때문이다. 나무는 스스로 변할 뿐, 결코 상대에게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다. 오로지 변화의 주체는 자신일 뿐이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제때 변하지 않는 것은 철저한 성찰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여간해서 변하지 않는다. 대부분 인간은 아주 절박한 상황에 이르러서야 변한다. 현재 한국 사회는 절박한 상황이다. 그래서 반드시 변해야만 한다.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 그래서 하늘이 도와서 이롭지 않는 것이 없다.' 이는 "주역(周易)·계사전하(繫辭傳下)"에 나오는 역(易)의 원리다.4차 산업혁명 시대는 새로운 인연이 절실하다. 나는 나무와의 인연, 즉 '수연'(樹緣)을 주장한다. 수연은 혈연, 지연, 학연보다 앞선다. 나무는 인간이 지구상에 존재하기 전부터 살았을 뿐 아니라 인간은 하루라도 나무 없이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인류가 겪고 있는 고통과 위기의 대부분은 나무에 대한 무지와 무시 때문이다. 그간의 문명은 대부분 숲의 제거를 통해 이룬 것이다. 그 결과 인간의 삶은 점차 위기를 맞았다. 인간이 위기를 맞은 것은 나무와의 만남을 악연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악연의 원인은 나무를 인간보다 못한 존재로 여긴 탓이다. 그래서 인간은 나무를 함부로 다루었다. 나무에 대한 인간의 몰상식적 태도는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수연은 천부 인권처럼 나무가 인간에게 주는 큰 선물이다. 나는 이를 '수권'(樹權)이라 부른다. 수권 인식은 한 사회를 부강하게 만들뿐 아니라 최상의 복지를 만드는 데 매우 중요하다. 한국의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권을 실현해야 한다. '수권시대'는 나무를 인간의 생명처럼 귀하게 여길 때 가능하다. 나무를 생명체처럼 여기는 방법 중 가장 쉬운 것은 한 그루 나무 이름을 가지는 것이고, 모든 국민이 한 그루 나무 이름을 가지면 아주 가까운 장래에 수권시대를 만들 수 있다. 나의 나무 이름은 물푸레나뭇과의 갈잎떨기나무인 쥐똥나무다. 쥐똥나무는 나무의 열매가 '쥐똥'처럼 생겨서 붙인 이름이다. 쥐똥나무의 하얀 꽃향기는 지친 사람의 어깨를 일으켜 세우고도 남는다. 쥐똥나무는 도시든 농촌이든 전국 어디서나 일상에서 만날 수 있어서 더욱 빛난다.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가장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한 그루 나무가 희망이다.

2019-12-30 18:00:00

구현자 대구시교육청 민원담당사무관

[기고] AI 시대의 신문고

대구시교육청에는 월평균 250여 건의 민원이 접수 처리된다. 시설물의 이용 방법부터, 미세먼지 오염 대책과 같은 환경 문제까지 광범위하다.민원에 관한 가장 상징적인 제도는 신문고라 할 수 있다. 신문고는 조선의 태종이 처음 시행했다. 그는 아버지인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에 많은 공을 세웠다. 하지만 태조는 공이 많은 한씨 부인의 아들들을 제쳐 두고 두 번째 부인인 강씨가 낳은 방석을 세자로 책봉했다.이에 반발하여 이복동생인 세자와 정도전 등 수많은 공신들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태종은 재위 중에 야간 통행금지 시행 등을 통해 조선 사회를 엄격하게 통제하려 했다. 이러한 통제하에서도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등 민심은 흉흉했다.태종은 민심을 수습하고 사회를 안정시키는 방편으로 신문고 제도를 시행했다. 1402년, 의금부의 당직청에 북을 달아놓고 백성들이 억울한 일이 있으면 북을 치도록 했다. 그러나 기대한 만큼 민원에 대한 처리가 만족스럽지 못하고 신문고를 울린 사람이 오히려 처벌받는 일도 생기게 되자 백성들에게 신문고는 점차 유명무실한 대상이 되고 말았다.민원을 제기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 상언과 격쟁이 있었다. 상언은 민원의 내용을 글로 적어 임금에게 고하는 것이고 격쟁은 징이나 꽹과리를 치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후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다. 일반 백성들은 상언보다 격쟁을 선호했다.상언은 한문으로 작성해야 해서 문자에 익숙하지 못한 일반 백성들은 격쟁을 하는 것이 더 쉬웠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로 오면서 군역과 환곡 등의 제도 문란으로 일반 백성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고 이에 비례해 상언과 격쟁은 그 빈도가 높아졌다.격쟁과 상언은 정조 시대에 가장 활발했다. 정조는 백성들과 직접 소통하고 그들의 삶에 제일 요긴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 그것을 정치에 녹여내고자 노력했다. 정조 임금 시절 처리한 민원이 3천여 건이 넘는다. 정조는 민의를 알고자 그 통로를 활짝 열었으며 백성들의 민원을 통치를 위한 빅데이터로 활용한 현명한 통치자였다.요즈음 시민들은 교육행정 서비스를 일방적으로 제공만 받는 대상에 머물지 않는다. 권리 주장은 물론이고 아이디어를 내고 제도 개선을 요구한다. 이러한 현상은 시민들의 교육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터넷과 SNS의 발달에 힘입은 바 크다. 인터넷을 통해 행정기관에 쉽게 접근해 민원을 제기할 수 있으며 외국의 제도나 사례도 알아보기가 수월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교육행정과 관련된 수많은 데이터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쌓이고 있다.대구시교육청에서는 시민들에게 수준 높은 민원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민원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교육행정에 대한 요구를 사전에 파악할 수 있다면 이에 맞는 정책을 수립해 행정 낭비를 줄이고 시민들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앞으로는 시민들이 직접 민원을 제기할 필요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인터넷 공간의 빅데이터가 그 역할을 대신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까운 미래에 빅데이터가 신문고이며 상언이고 격쟁이 될 것이다. 처음으로 신문고를 매달았던 태종 임금은 이를 보고 과연 뭐라고 하실까?

2019-12-30 15:45:27

조수정 대구가톨릭대 교수

[세계의 창] 라벤나의 모자이크 - 조수정 교수

이탈리아 북동부의 산 비탈레 성당장엄하고 화려한 모자이크로 유명조각들 모여 전체의 그림 완성하듯내년엔 우리도 조화롭게 어울려야 이탈리아 북동부의 도시 라벤나(Ravenna)는 인구 16만 명이 채 안 되는 자그마한 도시이지만, 여느 대도시 못지않은 풍부한 역사적 유산을 간직하고 있다.이탈리아 르네상스를 태동한 단테(Dante Alighieri·1265~1321)가 생을 마감해 묻힌 묘소가 유명하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장소가 여덟 군데나 있다. 산 비탈레(San Vitale) 성당, 갈라 플라키디아 영묘(the Mausoleum of Galla Placidia), 성 아폴리나레 누오보(Sant'Apollinare Nuovo) 성당, 아리우스파 세례소(the Arian Baptistery), 정교 세례소(the Orthodox Baptistery), 테오도리쿠스 영묘(the Mausoleum of Theodoric), 그리고 성 아폴리나레 인 클라쎄(Sant'Apollinare in Classe) 성당 등은 유럽 역사 연구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준다.라벤나의 문화유산 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산 비탈레 성당이다. 6세기에 완성된 이 건축물은 우선 생김새부터가 눈길을 끈다. 팔각형 몸통 위에 돔(dome·둥그런 지붕)이 얹혀 있어서 이탈리아의 어느 건물과도 비슷한 구석이 없고 그래서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삼각형 지붕에 길쭉하고 네모난 모양의 바실리카를 짓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건물 형태는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것일까?당시 비잔티움의 황제는 유스티니아누스 대제(Justinianus·482~565)였는데, 그는 옛 로마제국의 영토를 탈환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진격하였고, 이때 비잔티움의 건축양식이 이탈리아에 도입되었던 것이다. 산 비탈레 성당은 비잔티움 양식을 따라 건물의 외관은 수수하나 내부는 대리석과 모자이크로 장엄하고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내부로 들어서면 명상적이고 무언가 알 수 없는 신비로운 느낌이 드는데, 높이 솟아 오른 돔과 벽면을 가득 채운 수많은 작은 유리 조각들의 반짝거림, 그리고 영롱한 색채는 한 번 보면 잊기 어려운 강한 인상을 남긴다.모자이크란 다양한 색깔의 돌이나 도자기, 유리, 타일, 조개껍데기 등으로 만든 작은 조각들을 회반죽이나 시멘트, 모르타르 등으로 표면에 눌러 붙여서 만드는 그림이다. 따라서 무수한 조각을 끼워 넣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재료의 특성상 변색이 적고 내구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원 상태가 오래 보존되는 장점이 있다. 최초의 모자이크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기원전 6세기경부터 그리스에서는 백색과 흑색의 자갈을 바닥과 도로 포장에 사용하기 시작했고, 로마인들도 모자이크를 광범위하게 사용하였는데, 특히 건물의 바닥 장식으로 많이 이용했다.모자이크는 비잔티움 시대에 전성기를 이루어, '이콘'(icon)과 더불어 비잔티움 미술의 대표적 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기법과 소재 면에서 비약적 발전을 이루어 다양한 색깔의 불투명 유리 소재를 개발했고, 금박을 넣은 유리 테세라(tessera·모자이크 조각)도 사용해 모자이크에 화려함을 더했다.테세라의 배열은 표면을 평평하게 맞추는 방식을 따르기도 하지만, 각각의 테세라가 빛을 가장 잘 반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끼워 넣어 모자이크 표면에 요철이 생기는 방식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빛은 모자이크 표면 위에서 여러 각도로 반사돼 다양하고 섬세한 색채로 더욱 반짝이는 효과를 낸다. 당시 모자이크는 그리스도교 전례를 위한 영적인 공간을 만드는 데 가장 적합한 매체였다.모자이크는 조각 하나만을 보아서는 명확한 의미를 알 수 없지만, 조각들이 모여 전체를 완성하면 작품의 의미가 드러난다. 우리 사회도 모자이크처럼 구성원 각자의 모양도 다르고 정치적 성향이나 이념도 다르지만, 그것이 분열과 대립의 이유가 아니라, 조화롭게 어울려 거대한 그림을 이루는 긍정적 요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새롭게 완성될 2020 경자년의 모자이크에 희망을 걸어 본다.

2019-12-30 14:23:36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매일춘추] 대중은 멍청하다

2007년 미술 작품 경매에서 '작가의 똥'이란 작품이 한 캔에 1억원에 거래되었다. 이 작품은 1961년 이탈리아 미술가인 피에로 만초니(Piero Manzoni)가 발표했는데 90개의 깡통 겉면에 '작가의 똥(Merda), 30그램, 신선하게 보존됨, 1961년 5월 제작'이라고 쓰여 있다. 밀봉된 이 깡통 윗면엔 작가의 서명이 있다. 당시 예술계의 작가 네임밸류를 풍자하기 위해 제작되었다고 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씁쓸함에 생각을 곱씹으니 똥내가 나는 듯하다. 도대체 그 작품을 1억원에 구매한 사람은 무슨 이유로 그만한 돈을 낸 것일까?최근 A 배우가 주연을 맡은 어떤 뮤지컬이 티켓 오픈을 하자마자 매진되는 사례가 발생하였다. 똑같은 공연이라도 그 배우가 라인업 된 회 차에만 매진되었으니 배우의 네임밸류는 이제 제작사 입장에서 놓칠 수 없는 캐스팅 요인이 되었다. 수천만원의 개런티를 감당하면서도 어떤 배우를 쓸 수밖에 없는 제작자의 입장은 그 배우가 공연 중에 애드리브로 러닝 타임을 늘려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연출가의 입장으로 전가시켰다. 왜냐하면 관객이 티켓을 구매한 목적은 뮤지컬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배우를 보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특정 배우를 보기 위해 벌떼처럼 몰려다니는 관객을 관객이라 할 수 있는가? 문화향유 시민 집계에 포함되어도 되는가? 뮤지컬 한편을 제작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필요한지 벌떼는 알고 있을까?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무대조명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더듬이 등을 켜고 눈에 불을 밝히는 1번 바이올린 주자의 이름은 알고 있을까? 아니 최소한 작곡가의 이름은 알고 있겠지? 연출가의 이름은? 물론 그 사람들의 이름을, 그 사람들의 노고를 알아달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뮤지컬에 대한, 공연 예술의 특징에 대한 당신의 이해도는 어느 정도인지 질문하고 싶다.대중은 멍청하다. 몇 년 전 열풍을 일으켰던 허니버터칩을 기억할 것이다. SNS를 통해 시식 후기가 공유되었고 사람들은 과자 한 봉지를 사기 위해 마트를 뒤지고 다녔다. 어떤 마트에서는 시간을 정해 판매하기도 했고 인터넷 중고장터에서는 낱개로 과자를 팔고 사기도 하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 뜨거웠던 대중은 지금 어디 있는가?나는 연극 연출가이다. 벌떼 같은 대중을 원하지 않는다. 연극 한편이 당신의 인생에서 어떤 영향을 끼칠지 기대하는 관객, 기대에 못 미쳤다면 화를 내며 나와 싸울 수 있는 관객, 그래서 1시간이 넘는 당신의 시간을 빼앗은 것에 대해 내가 사과할 수 있는 관객을 원한다. 그리고 만약 이 글을 읽으며 화가 난 대중이 있다면 한 연극인의 기우로 토해낸 글에 대해 안도의 사과드린다.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2019-12-30 11:28:55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이른 아침에] 어떤 시청을 지을 것인가?  

시민 민주주의 새 역사를 쓴 대구신청사 건립 마침내 본궤도 올라새 랜드마크'관광명소도 좋지만'시민의 행복'을 최우선 목표로달서구 옛 두류정수장 터가 대구의 새로운 시청이 들어설 장소로 확정되었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그간 무엇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처음 대구시가 공론 민주주의를 들고 나왔을 때, 그리고 그것으로 신청사 입지를 결정하겠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괜히 일만 더 복잡하게 만드는 거 아이가? 오로지 시민의 뜻대로? 말이야 좋지 그게 되나?" 곧이어 비판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어떤 이는 '대구시의 백년대계를 지식과 전문성이 부족한 보통 시민들이 결정한다는 게 과연 타당한가?'라고 했고 또 어떤 이는 '중구와 북구 말고는 더 참여할 지역도 없을 텐데 괜스레 대구시 전역으로 일을 확대해 복잡하고 시끄럽게 만든다'고 했다. '탈락한 지역이 승복하지 않을 게 불 보듯 뻔한데 그 감당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며 공박하는 이도 있었다.게다가 공론화위원회의 핵심가치 '시민의 뜻대로'조차 잘 믿으려 들지 않았다. 말만 그렇게 해놓고 실제로는 '시장(市長)의 뜻대로' 할 게 아니냐는 의심 때문이었다. 그렇다 보니 어찌 보면 새로운 방식, 즉 공론화를 통해 신청사의 입지를 선정한다는 건 어설프고 비현실적이며 비효율적인 데다 심지어 위선적이고 나쁘기까지 했다.물론 이 모든 건 지난 22일 이전까지의 이야기다. 달서구와 달성군이 참여함으로써 북구와 중구가 전부일 거라던 예측은 일찌감치 깨졌다. 시민 참여단이 보여준 진정성과 성실함은 전문성 부족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켰다. 지금까지의 과정과 선정 결과를 보면 시민의 뜻대로 진행되었다는 것 또한 의심할 여지가 없다.일주일이 지난 지금, 아무도 지난 일을 두고 다투지 않는다. 결과에 승복하지 않은 지역 또한 당연히 없다. '신청사 유치 과정에서 보여준 군민들의 단합된 모습과 에너지는 절대로 헛되지 않은 소중한 자산'이라고 한 달성군수의 말처럼 경쟁한 지역들은 신청사 유치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과 긍지를 확인하고 대구시민들에게 그들의 비전과 희망을 각인시켰다. 그리고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선정된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이 과거가 아니라 함께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다. 대구의 진짜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이로써 대구시의 신청사 건립이 마침내 궤도에 올랐다. 시민을 믿고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 대구시와 공론화위원회는 훌륭했고 그걸 받아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새로 쓴 대구시민은 더 위대하고 훌륭했다. 이젠 '어떤 시청을 지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보다 새롭게 해야 한다.2002년에 완공된 런던시청의 모습은 에너지 효율이 높은 원형이다. 건축가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가 원래 직사각형으로 디자인했다가 '친환경'이라는 런던시의 철학에 맞춰 다시 고친 것이다. 건물 전체를 구성하는 투명유리, 3층 회의실 안에 마련된 시민을 위한 방청석 등이 런던이 어떤 도시인가를 한눈에 보여준다. 그들은 자신들의 시청을 짓는 과정에서 한 번도 다른 도시를 본보기로 들지 않았다.대구시청을 도쿄도청처럼 만들겠다는 것도, 두류공원을 센트럴 파크처럼 되게 하겠다는 것도 다 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겠지만 지금은 말조차도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말이 쌓이면 의식이 되고 습관이 되어 결국 방향성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대구의 새로운 시청은 오직 대구답게 짓겠다고 말해야 한다. 세계적인 관광명소, 새로운 랜드마크도 되어야겠지만 그보단 '시민의 행복'이 진짜 목표라고 말해야 한다. 즉, 대구의 새로운 시청은 대구의 산천과 대구의 역사를 닮아야 하고 대구의 색깔, 대구 사람들의 성정을 닮아야 한다. 그리고 대구의 산업과 대구의 미래를 보여줘야 한다. 그러려면 도쿄와 뉴욕이 아니라 '우리는 누구인가?'에 더 집중해야한다.뻔한 해외 사례가 순서대로 나오는 보고서 형식 같은 접근은 이번엔 하지 말아야 한다. 세계의 모델을 따라갈 게 아니라 대구가 세계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 도시를 바꾸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 시민을 위한다면 시청을 저렇게도 지을 수 있구나' 하는 본보기를 만들어 내야 한다.공론 민주주의를 통한 신청사 입지 선정이라는 전례도 없고 사례도 없는 일을 해냄으로써 다시 한 번 '시작의 도시'임을 보여준 대구다. 그걸 왜 못 해내겠는가?

2019-12-29 15:44:35

전창록 경상북도경제진흥원장

[기고]경북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를 꿈꾸며

세계 최대 IT·가전 박람회인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2020'이 1월 7~10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다.지난해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9'는 4천500개가 넘는 업체와 18만 명 이상의 사람들을 끌어모았고, 이들이 호텔·레스토랑·쇼 관람·쇼핑 등에 사용한 금액만 3억5천만달러로 추산된다. 이렇게 사람을 많이 모으고 성공을 거두는 비결은 뭘까?첫째 CES는 4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융합과 공유'의 전시회가 되었다는 점이다. CES는 과거엔 지금처럼 세계적인 미디어 노출을 양산하는 전시회는 아니었다. 매년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 'MWC 2020'에 밀린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던 가전 중심의 전시회 중 하나에 불과했다.그러나 몇 년 전부터 기조연설에 스포츠 의류용품 업체 언더아머의 CEO를 초청해 IT를 결합한 스포츠용품의 미래에 대해 설명하게 하고, 아우디 등 자동차 업체 초청 부스를 열어 자동차와 IT의 융합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는 등 '기술의 융합'이란 4차 산업혁명의 물결에 누구보다 빠르게 편승하면서 현재의 위치에 올라섰다.2019년에도 통신사 버라이존 CEO를 초청, 5G가 가져오는 미래에 대해 기조연설을 하게 하고, 5G 기반의 자율주행차, 스마트 홈 및 스마트 시티의 융복합 중심의 기술을 선보였다. 우리도 세계적 전시회를 만든다면 전자·자동차·디스플레이 등의 산업과 제품 중심의 전시회가 아닌 기술의 융합과 그 사용자 중심의 혜택을 보여주는 전시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둘째, CES가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다는 사실이다. 라스베이거스가 어떤 도시인가? 21만8천여㎡(6만6천 평)의 전시 면적과 15만1천 개의 객실이란 전시 참가자의 편의를 넘어, 분수·레이저 쇼 등 도시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공연장이고 밤이 살아 있는 도시다.1년 내내 세계적인 '태양의 서커스팀'이 공연하는 물쇼·불쇼 및 각종 공연과 퍼포먼스를 내가 묵는 호텔에서 관람할 수 있고,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및 세계적인 브랜드들이 모여 있는 쇼핑 아케이드들이 즐비한 곳이 바로 그곳이다. 한마디로 먹고 쓰고 즐기는 모든 것들이 한자리에 구비된 곳이다.우리도 세계적인 전시회를 만든다면 이제 참가자들의 여가 시간도 고민해야 한다.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는 코나의 노래 제목만은 아니다.셋째는 타이밍이다. 오늘의 시대를 표현하는 단어로 부카(VUCA)가 있다. 환경의 변동(Volatility)이 심하고, 불확실(Uncertainty)하며 복잡(Complexity)하고 모호(Ambiguity)하다는 것이다. 불확실성이 상수인 시대에 역설적으로 확실성을 구하는 게 인간이다.최소한 올 한 해 이런 기술들이 이렇게 세상을 바꾼다는 것을 1월에 가장 먼저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1월 9일 열리는 CES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이다.맹자에 보면 '천시불여지리(天時不如地利) 지리불여인화(地利不如人和)'라는 말이 있다. 일을 도모하는 데 있어 언제보다는 어디가 중요하고, 어디보단 사람들의 화합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여기서 사람들의 화합이란 것은 사람들 생각의 융합과 공유이다.'경북형 CES'의 성공을 바란다면 어디와 시기도 고려돼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단추는 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 시대 정신에 맞는 제품이나 산업이 아닌 생각, 기술의 융합과 공유에 기반한 전시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2019-12-29 15:42:49

서창호 DGB대구은행 본점PB센터 PB팀장

[금융칼럼]생활속의 작은 변화에서 투자의 답을 찾아보길

"아마존에 좀 더 일찍 투자하지 않은 것이 어리석었다."'오마하의 현인'이라 불리는 세계적인 투자자 워렌 버핏이 올해 자신이 운영하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연례 주주종회를 앞두고 한 언론매체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미국 경제전문지가 발표한 세계 부자 3위에 오른 위대한 투자자조차도 이렇게 투자에서 후회를 한다. 주변 변화에 조금만 관심을 가졌더라면 쉽게 찾을 수 있었음에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좋은 투자처를 놓친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 아닐까 한다.좋은 투자처를 찾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쉬운 방법은 우리 생활 주변 변화를 눈여겨 보는 것이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관심을 갖고 투자하면 성공 확률을 상당히 높일 수 있다. 많은 투자자가 장기투자를 하면서도 실패를 하는 이유는 시대적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투자처에 오랜 기간 묻어두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반대로 우리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변화하는 산업에 투자한다면 일정 시간이 흐른 뒤에는 세상의 변화와 함께 투자수익률도 좋은 쪽으로 바뀌어 있을 확률이 높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 더 우리 주변 변화에 민감해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지금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투자처의 예를 들어보면 몇 년 전부터 아파트 주차장에 하나둘씩 늘어나는 전기차 충전소다.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를 봐도 예전에는 잘 보이지 않던 전기차가 자주 눈에 띈다. 심각해지고 있는 대기오염을 생각해보면 앞으로 전기차가 대중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실제로 한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에서는 2021년 이산화탄소 배출규제에 앞서 최근 전기차를 대거 출시 중이고, 2019년 전기차 판매량도 전년 대비 40% 수준의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전기차 시장과 함깨 2차전지 시장이 확대될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다.그러고 보면 내 주변의 변화가 사실은 세계적인 추세인 경우가 많다. 전기차나 2차전지 뿐만 아니라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5G 통신 서비스, OLED 가전제품 등 우리 생활 속에서 변화하고 앞으로 성장하는 산업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요즘 마땅히 투자할 곳이 없어서 고민하고 있다면 생활 주변 변화 속에서 답을 찾아보자.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향후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투자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좋은 투자처를 찾았다면 시간이 흐른 뒤에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부터 투자를 시작하자.투자방법은 직접 주식을 살 수도 있지만 전문가와 상담한 뒤 업종별 ETF(상장지수펀드)를 활용해 소액으로 여러 종목에 분산해 투자하는 것을 추천한다. 주변 변화를 살피고 좋은 투자처에 적절히 분산하고 적립식으로 장기투자한다면 경기불황의 악조건에서도 성공적으로 투자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2019-12-29 14:26:26

비단에 담채, 26.8×17.2㎝, 간송미술관 소장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조영석(1686~1761) '노승헐각'

관아재 조영석이 주변에서 찾은 그림거리 중 스님을 그린 그림이다. 왼쪽 위에 '관아재 사(觀我齋寫)'라고 쓰고 백문방인 '관아재'를 찍었다. 노스님이 나무 둥치와 지팡이에 기대 다리쉼을 하고 있는 광경이어서 '노승헐각(老僧歇脚)'으로 제목이 붙여졌다. 눈 꼬리는 처졌지만 눈빛은 또렷한 삼각형 눈에 광대뼈가 튀어나온 얼굴의 스님은 수염이 무척 성글다. 입이 합죽해 보이는 것은 이가 좀 빠졌기 때문인 듯. 길쭉한 모자 안으로는 동그란 민머리가 나지막하다. 목에는 굵은 염주를 둘렀고 짚신이나 미투리일 초혜(草鞋)를 신었다. 메었던 바랑을 풀 섶에 툭 던지고 소나무 뿌리에 걸터앉으며 "휴우~"라고 하셨을 것처럼 생생하다.스님의 이목구비와 차림새, 앉은 자세가 자연스러워 한참을 모델로 모셔두고 그렸을 것이다. 조영석은 굵은 선과 가는 선, 짙은 선과 옅은 선, 속도감 있는 선과 침착한 선 등 필선 자체를 주된 조형요소로 활용해 함축미 있게 대상의 특징을 묘사했고, 옅은 먹과 은은한 담채로 노스님의 모습을 친근하면서도 실감나게 나타냈다. 조영석이 선의 표현력을 통해 보여준 격조 높은 화면은 화가가 자신의 눈으로 본 일상의 회화화가 감상화의 한 분야로 진정하게 시작되었음을 분명히 알려준다.조영석은 이렇게 실물을 직접 대하고 그리는 '즉물사진(卽物寫眞)'을 해야 살아있는 그림인 '활화(活畵)'가 된다고 했다. 그림 교과서인 화보(畵譜)나 옛 그림에 나오는 정형(定型)에 의지해 공인된 레퍼토리를 반복했던 앞 시대 화가들과 다른 태도였다. 고상한 고급 교양인 감상 회화는 오랜 미술의 역사 속에서 다듬어지며 축적된 고전을 모범으로 삼는 상고(尙古)주의의 틀 안에 있었다. 조영석은 그런 고정 관념을 허물어 감상화의 영역에 주변의 삶을 들여놓았고, 이러한 조영석의 생각과 실천으로 인해 조선후기 회화는 '풍속화'라는 새로운 영토를 발견할 수 있었다.조선후기 풍속화에는 양반도 나오고 농공상(農工商)의 생업에 종사하는 백성을 비롯해 기생과 스님 등 특수한 직업과 신분의 인물도 나온다. 스님은 그림에 일찍이 나타났다. 인평대군 이요(1622-1658)가 그린 것으로 전하는 스님 그림도 있고 윤두서(1668-1715)도 스님을 그렸다. 김홍도, 김득신, 신윤복 등 화원화가들도 스님을 그렸다. 신윤복은 비구니 스님과 동자승을 출연시키기도 했지만 풍속화에서 스님은 대부분 노승이다. 왜 노승일까? 혈족의 인연을 끊고 세상을 등지고 출가한 스님의 나이든 모습이 누구나 늙고 결국은 죽는다는 분명한 진실을 더 확실히 일깨워주기 때문인 것 같다. 미술사 연구자

2019-12-29 06:30:00

채명 무용평론가

[매일춘추] 구의원이 알게 해준 일

가까이 지내는 후배 한 명이 정치를 하겠다며, 구의원 선거에 나간다고 했다. 걱정이 돼서 주변 지인들에게 후배가 선거에 나가니 좀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다. 적지 않은 지인들이 구의원은 하는 일도 없는데, 재정이나 축을 내는 불필요한 제도가 아니냐고 반문을 했다. 필자도 당시에 적절한 답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구의원, 시의원이 하는 일과 무관하게 지냈다. 대부분 사람들은 국회의원은 돼야 나랏일을 할 수 있지, 지역의 구와 시의 일은 공무원들이 알아서 한다고 생각을 한다.후배가 의원이 되고 나서야 구의원이 얼마나 많은 일을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뛰고 있는지를 뒤늦게 알게 되었다. 구민들의 민원이 끊임없이 많았고, 그것을 해결해 주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 다녔다. 일반사람들이 그렇게 구의원을 통해서 민원을 많이 넣는지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민원의 구체적인 불편을 파악해서, 직접적으로 뛰지 못하는 공무원을 통해 그 일들을 해결해 주는 것이었다.그리고 선거 때 지역구에 필요한 공약을 내세웠던 것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보고, 국회의원들도 지역의 민원과 공약을 위해 불철주야 뛰고 있는 걸까 둘러보게 되었다.지역의 한 아파트 건설업체로 인해, 필자가 소속되어 있는 작은 종교단체가 많은 피해를 보았다. 아파트 완공될 때까지 근 3년 동안 입은 피해는 참으로 적지 않았다. 그런데 해당 건설회사 법무이사는 우리의 하소연 정도는 가볍게 취급을 했다. 결국 그들과 대응을 하다, 건강까지 다쳐 더 이상 대화를 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그 때서야 후배가 하던 민원해결이 생각났다. 구의원을 찾아 어려움을 호소하자 적극적으로 도와줬다. 참으로 완강했던 그 기업은 구의원이 나서도 계속 시간을 끌다, 준공검사가 끝나고 나서 뒤늦게 자기들 뜻대로 일을 해결했다.이런 일을 겪으면서 얼마나 많은 개인들이 힘 있는 기업의 폭주에 시달리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당시에 TV방송에서도 현장을 찾아와서 취재했지만, 그 기업은 그 정도로는 눈도 꿈쩍하지 않는다며 무시하니, 대화가 되지 않았다. 공무원은 민원을 해결하는 시늉만 하고, 의원들은 시민의 소리에 적극적으로 귀 기울이는 듯 했다. 어려운 일의 해결이 필요할 때, 구의원에게 손을 내밀어라, 대구 시 일이라면 시의원에게 도움 받으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준다.구의원, 시의원, 국회의원이 자신의 분야에서 열심히 뛸 때, 국민들은 그들의 힘으로 나라가 잘 굴러갈 것이라는 신뢰를 보내게 될 것이다. 방송을 타고 연일 보도되는 국회의원들의 투쟁도 당파 싸움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신뢰를 받게 되길 바란다. 대의민주주의의 정치인들은 국민의 요구에 귀 기울일 때, 존재의 의미도 커지는 것이다. 채명 무용평론가

2019-12-29 05:30:00

이광수 '무정'

[정혜영의 근대문학을 읽다] '근대문학을 읽다'를 마치면서

대학생들에게 이광수라는 이름을 말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거의 같다. "친일파잖아요."물론 그들 대답대로다. 조선 청년들이 일본을 위한 전쟁에 끌려 나가 죽음을 맞던 일제말기, 이광수는 학도병 출전을 독려하는 연설을 했다.그렇다고 이광수가 친일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이십대의 이광수는 자주적이고 근대적인 조선을 이루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힘썼다. 그는 근대조선을 향한 열망 속에서 우리 문학의 새로운 장을 여는 최초의 근대소설 '무정'을 썼다.최남선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일제말기 조선 청년의 전쟁 참여를 독려하고, 일본이 중국 땅에 세운 만주국을 '왕도낙토의 실험장'이라고 추켜세우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 역시 젊은 시절 이광수와 함께 자주적이고 근대적인 조선을 이루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힘썼다. 그리고 최초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써서 우리 근대문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한국근대문학을 대표하는 두 사람 모두 친일의 길을 걸은 것은 공교로운 일이다. 이 두 사람만이 아니었다. 주요한, 김동인을 비롯한 수많은 근대문학자 역시 이광수나 최남선처럼 친일의 길을 걸었다. 대다수의 작가들이 일본제국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이 그들의 신념도 허물어뜨렸다.그래서 근대문학의 흐름을 찬찬히 보게 되면 '힘'과 '이익'과 '세월' 앞에서 무너져간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읽을 수가 있다. 이육사나 현진건처럼 칼 날 같은 현실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던 작가들의 삶이 더 빛나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근대문학이란 결국 근대라는 한 시대를 살아간 인간들의 삶의 이야기이다. 긴 세월 동안 이어진 식민지의 굴욕적 삶 속에서 살아간 인간들의 이야기가 거기 들어있다. 누군가는 마지막까지 저항했고, 누군가는 투항했다. 저항한 사람은 인간의 강인한 의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었고, 투항한 사람은 인간의 약함과 시대의 잔혹함을 우리에게 일깨워주었다.우리가 근대문학을 읽으면서 실제로 그런 깨달음을 얻는 것은 쉽지가 않다. 작가들이 쓴 문학작품과 그들의 삶을 일제치하라는 시대 속에서 퍼즐을 맞추듯 복원해나가야 한다. 시대에 대한 세밀한 조사와 편견 없는 시선으로 문학 속 인물과 작가의 삶을 어렵게 따라가다 보면 그 나약함, 혹은 그 강함의 근거가 무엇인지 이해가 된다.그리고 어느 순간 그 이해라는 것이 근대라는 한 시대에 특정된 인간의 삶과 문학을 넘어 나 자신과 내 주변 사람들로 향하게 된다. 문학이 가지는 자기 치유의 힘이다.근대문학만이 아니라 모든 문학이 지닌 힘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근대문학 읽기란 우리가 살아보지 않은 시대의 삶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배우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해는 '연민'을 기반으로 할 때 가능한 것이다.5년 간에 걸친 '근대문학 읽기'를 통해서 내가 많은 분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은 이 '연민'에 대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이 칼럼을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2019-12-28 06:30:00

[내가 읽은 책]가족 뒷모습/최인호/샘터/2009

오래전 재미있게 읽었던 특이한 연재소설이라 쉽게 손이 갔다. 많은 책을 썼고, 영화나 드라마로 많이 알려져 있어 설명이 필요 없는 인기 작가 최인호의 글이다."김수영의 시 구절처럼 좁아도 좋고 넓어도 좋은 가정의 방에서 죄 없는 말을 주고받았던 나의 아내여. 그리고 나를 아빠라고, 아버지라고 부르고, 아버님이라고 부르고,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유순한 가족, 그대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어디서부터 왔는가. 그리고 또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이제 어디로 가는 것일까." (17쪽)이 책은 월간 '샘터'에 35년 동안 연재했던 소설 '가족' 중에서 2000년 이후에 쓴 마지막 부분을 묶은 책이다. '가족'이야말로 고갈되지 않는 최고의 소재라 생각하여 시작했으며, 서른 청년기부터 투병으로 중단한 노년기까지의 이야기를 연재했는데, 이 글은 가장 후반부에 쓴 것이다. 가족들 얘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족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고 성찰도 하는 작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글 중에서 우정에 대해 재미있게 쓴 부분이 있다.젊은 시절에 생각했던 우정에 대한 생각들이 그릇된 편견이었음을 느꼈다는 내용이다. 작가는 친구가 많고 아내는 친구가 많지 않지만 아내 친구가 한결같고 더 진실하다는 거다. 아내는 죽은 친구를 위해 기도를 하기도 한단다.여성들의 우정에 대해 부러워했다. 참된 우정은 여성들이 더 깊다는 것이다. 프랭클린의 말을 인용해, 남자에게는 충실한 세 친구가 있으며 하나는 함께 늙어가는 조강지처이고 나머지 둘은 함께 늙어가는 개 그리고 현금이라는 것이다.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겠지만.3백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 '상도'에 관해서도 썼다.기업인들이나 경제인들이 자부심을 느끼고 자신들의 사표로 삼을 만한 위대한 상인에 대해 쓰고 싶었는데, 딱 맞는 인물을 못 찾아 고심하다 우연히 열 페이지밖에 안 되는 짧은 만화를 보고 영감을 얻어 어렵게 자료를 구해 대하소설 '상도'를 썼다고 했다.작가는 소설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초자연의 음성을 통역하거나 번역하는 일이라고 적었다. 고대 로마 희극작가 테렌티우스의 말을 빌려 모든 책에는 책의 운명이 있다고 한다.소소한 일상까지 드러내는 글이라 그런지 참 솔직하다는 생각이 든다.언제부터인가 청력이 떨어졌는데 두렵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인다고.장 콕토의 시 "내 귀는 소라 껍데기. 바닷소리를 그리워한다."를 인용해 바닷소리를 그리워하면 그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될 거라며 침묵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도 썼다.투병생활에 대해서도 써놓았다.이 책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작가가 연재를 끝내는 마지막 회에서 참말로 다시 일어나고 싶다고 했는데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나는 이제 내 인생의 주인공인 오직 나만을 위해 글을 쓰고 싶다. 단 한 사람의 독자면 충분하다. 그 독자로부터 인정받는 그런 작가가 되고 싶다."(292쪽)작가의 고뇌가 느껴지는 글이다. 가족이 누구이며 나는 누구인가를 묻던 작가는 머리말에서 "'가족'이여, 사랑이여!"라고 불렀다. 가족의 다른 이름은 사랑인가 보다. 신복순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2019-12-28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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