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이른 아침에] 네 편 내편 편 가르기

'113수사본부'는 꽤 인기 있는 TV 드라마였다. 1970년대부터 80년대 초까지, 안방극장에 모여 앉은 이들에겐 우리의 안위와 평화가 마치 이로써 유지되는 것처럼 보였다. 매주 한 번씩 우리 편인 '수사본부'는 우리의 적인 '북한 간첩'을 잡았다.그땐 그랬다. TV도 그렇고 학교에서 배우는 것도 그렇고 대체로 둘로 나눠 놓고 보면 쉽고 빠르게 이해가 되었다. 내 편인지 네 편인지, 그래서 둘 중 누가 이기고 지는지를 보며 거기서 교훈을 얻으면 되는 거였다. 이때, 언제나 우린 정의, 상대편은 곧 반대편이며 적이자 악이었다. 그리고 그 악의 정점엔 북한 공산집단이 있었다. 그러니 싸워서 이겨야 했고 싸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그러고 보면 나라도 두 부류, 즉 우리처럼 정상적인 나라와 북한처럼 공산당이 지배하는 나쁜 나라가 있었다. 이스라엘은 좋은 나라, 아랍 국가들은 그렇지 않은 나라라는 도식이 부록처럼 따라다니긴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세계평화를 위해, 정의구현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공산당을 무찌르는 거였다. 모두 함께해야 했고 어린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열심히 반공 표어를 만들었고 미술시간엔 공산군이 국군의 총칼에 찔려 죽는 장면을 그렸다. 물론 피가 흐르는 것도 붉은색 크레파스로 정성들여 그렸다. 그때가 열 살 안팎이었다.드라마를 보면 북한은 매주 간첩을 내려보냈다. 여기저기 '의심나면 다시보고 수상하면 신고하자'는 글귀가 붙어 있었다. 그러니 봄이 온다고 해서, 꽃이 핀다고 해서 마냥 그런 것만 쳐다보고 있어선 안 될 일이었다. 그보단 혹시라도 주변에 수상한 사람이 있는지, 동네 어귀에 북한이 날려 보낸 삐라가 떨어져 있지는 않은지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착한 아이라면 그래야 했다.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나이가 들면서 정의와 불의, 단순했던 양자대결구도의 세상에 갑자기 새로운 전선들이 생겨났다. 세상만사를 '건전한 우리'와 '공산 세력' 간의 대결로 보는 이들은 여전했다. 그런데 일각에선 깨어 있는 국민과 그렇지 않은 국민이 있다고 했다. 또 한편에선 우리나라를 '식민지 반봉건사회'로 볼 것인지 아니면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 사회'로 볼 것인지를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며 세력을 다투었다. 다자 대결 구도가 된 것이다.그래도 따지고 보면 이들 또한 이쪽 아니면 저쪽, 둘로 나뉘어 싸우긴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누가 무엇을 주장했는가보다 세간의 관심은 오랜 습관처럼 둘 중 누가 이겼는가에 더 쏠렸다. 그랬다. 누구도 세상을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았고 누구도 세상을 계획대로 바꾸지 못했다. 그게 1980년대였다.그리고 1990년대, 작가 주인석이 "나는 식민지 반봉건사회에 태어나서, 제3세계적 개발독재사회에서 교육받고, 예속적 국가독점자본주의 사회에서 젊은 날을 보냈으며, 이제 포스트모던 사회로 이민가고 있다. 나는 혼란스럽다"라고 한 그 90년대도 이미 지난 지 오래다.2019년 지금, 새로운 연결, 새로운 세상, 새로운 인류가 등장했다. 거리엔 휴대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여기는 포노사피엔스(Phono Sapiens)가 넘쳐난다. 이들은 전에 없던 방식으로 생각하고 전에 없던 방식으로 움직인다. 그런데 이토록 새로운 세상, 새로운 시대에도 둘로 나뉘어 싸우는 건 여전하다. 오히려 여느 때보다 극단적이다. 그리고 싸우는 방식이 전에 없이 야비하고 전에 없이 졸렬하며 전에 없이 비겁하다.권력을 지닌 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싸움을 선동하고 권력을 좇는 자들이 이를 추동한다. 그들은 나라야 망하든 말든 국민이야 죽든 말든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워 때론 교묘하게 때론 노골적으로 싸움을 부추긴다. 언론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이를 '보수우파'와 '진보좌파'의 대결이라 하지만 그럴 리 없다.수도권의 한 라디오 방송 진행자가 방송 내내 모든 것의 앞에 보수 아니면 진보를 갖다 붙이기 전까지 언론은 보수정당, 진보정당이라는 말조차 잘 쓰지 않았다. 그때 그랬던 것처럼 이들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부끄러움을 모른다. 그저 보는 이가 낯 뜨거울 뿐이다.

2019-06-30 16:01:01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광장] 말의 대상과 의의, 그리고 품격

논리철학자 프레게는 말의 '대상'(對象)과 '의의'(意義)를 구분하였다. 가령 '책'이라는 말은 세상에 있는 어떤 대상을 가리키며, "지식을 글로 표현하여…"와 같은 의의가 있다. 또한 '동그라미'라는 말은 세상에 있는 대상인 '○'를 가리키며, "중심에서 같은 거리에 있는 점들의…"와 같은 의의가 있다.말과 대상의 관계를 자의적(恣意的)이라고 하는데 특정한 대상을 반드시 그렇게 불러야 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가령 우리가 '책'이라고 부르는 대상을 영‧미인은 'book'이라고 부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말과 대상의 관계가 자의적일지라도 말은 그 나름의 의의도 갖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좋은 의의를 지닌 말을 쓰고 싶어 한다. 그래서 사람 또는 단체의 이름을 지을 때 남의 도움을 받을 때가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개명할 때도 있다.대체로 대상이 하나의 말을 갖지만 두 개 이상일 때도 있다. 지구보다 태양에 더 가까운 금성이 새벽에 보일 때는 '샛별'이라 부르고 해질녘에 보일 때는 '개밥바라기'라 부른다. '샛별'과 '개밥바라기'는 금성이라는 동일한 대상을 가리키지만 '샛별'은 "새벽에 뜨는 새로 난 별", '개밥바라기'는 "개의 밥그릇을 연상시키는 해질녘에 뜨는 별"이라는 서로 다른 의의를 지니고 있다.'샛별'과 '개밥바라기'는 의의가 다르지만 어느 것이 더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지는 않다. 이런 경우에는 의의의 차이가 가치중립적인데, 이때는 언어 표현을 더 풍부하게 해줄 뿐 특정한 말의 선택이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진 않는다. 그러나 어떤 대상을 가리키는 말들이 가치중립적이지 않을 때는 어느 말을 선택하는가가 논란의 소지가 있고 말의 품격과도 연관되므로 말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특히 감정과 이념이 개입되어 있을 때는 더욱더 그러하다.최근에 특정 그룹을 '달빛 기사단' 대신 '달창'(달빛 ○○단), 대통령의 '외교 순방'을 '천렵질'이라고 불러 논란이 되었다. 각각의 전자는 긍정, 후자는 부정적인 의의를 지녔으므로 의의의 차이가 가치중립적이지 않고, 그래서 논란이 된 것이다. 한국이 '평화의 소녀상'이라고 부르는 상(像)을 일본은 '위안부상'이라 부른다. 이 두 말의 차이도 가치중립적이지 않으므로 한일 간에 명칭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한국은 좋은 말을 써 대중들이 사랑하기를 원하지만 일본은 나쁜 말을 써 혐오의 대상이 되길 바라는 것이다.말은 말을 하는 사람의 품격도 나타내지만 듣는 사람의 품격도 나타낸다. 특히 정치인의 언어는 본인의 인격뿐만 아니라 국민의 품격도 보여주는 것이기에 품위 없는 말은 국민을 무시하는 오만한 처사이고 청소년들에게도 본이 될 수가 없다. 말의 격(格)에서 인격이 나오기 때문에 감정과 이념이 개입된 영역에서는 말이 가리키는 대상뿐만 아니라 의의도 특히 더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 듣는 이의 출신 지역, 인종, 종교, 계층뿐만 아니라 이념, 학력, 연령, 성별까지 고려하여 역지사지함이 말의 격을 높이는 길이다.김윤나의 '말 그릇'(2017)에 따르면 말은 그 사람의 내면과 닮았다고 한다. 나를 닮은 말을 생각나는 대로 내뱉어 나의 말이 막말의 대명사인 '귀태'(鬼胎)가 되어 세상을 떠돌아서는 안 된다.

2019-06-28 06:30:00

장혁주(1905-1998)

[정혜영의 근대문학을 읽다] '춘향'이 만들어낸 사랑의 의미

언제부터인가 TV에서 '춘향전'이 사라졌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춘향전'은 명절 단골 연속극이었다. 매년 새로운 배우들로 새롭게 만들어지긴 했지만 기본 내용은 변함이 없었다. 197•80년대라면 시청률 50프로를 넘는 국민 연속극이 심심찮게 등장하던 시기였다. 그 전설적 연속극 사이에서 '춘향전'은 변함없는 힘을 지니고 사람들을 TV앞으로 끌어들였다.일제강점기 동안에도 '춘향전'은 소설로, 영화로, 창극으로 쉴 새 없이 대중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었다. 명창들이 모여 부른 '춘향전' 창극이 유성기음반으로 발매되는가 하면 일본 전통극 가부키와 접목시킨 일본화된 '춘향전'이 현해탄을 넘어와 조선에서 일본어로 공연되기도 했다. 장혁주의 일본어 희곡 '춘향전'(1938)은 이와 같은 '춘향전' 열풍 속에서 발표된다.장혁주가 풀어내는 '춘향전'은 서정적이고 아름답다. 복숭아꽃이 질 무렵, 봄비가 지독하게 내리는 밤. 이몽룡이 비에 흠뻑 젖으면서 춘향을 만나러 온다. 희곡 '춘향전'에는 이와 같은 몽룡과 춘향의 열정적인 사랑의 기운이 극 전체에 흐르고 있다. 이몽룡의 사랑은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에도 변함이 없다. 4년이라는 긴 세월, 그가 춘향에게 소식조차 전하지 않고 공부에 집중했던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춘향과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변함없기는 춘향도 마찬가지이다. 그녀는 어떤 잔혹한 운명에도 흔들림 없이 몽룡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지켜낸다.또한 춘향은 봄날처럼 따뜻한 사람이어서 오랜 세월 소식 한 자 전하지 않은 몽룡을 탓하기보다는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몽룡의 편안한 잠자리와 안위를 신경 쓰는 인물이다. 따뜻한 마음과 신념을 지켜내는 강직함이 춘향의 내면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춘향이 만들어내는 사랑은 강하면서도 부드럽다. '춘향전'이 발표된 1938년의 조선은 이 부드러움과 강인함이 필요한 때였다. 이 시기 일제는 조선적인 모든 것을 지워가고 있었다. 조선신문을 탄압하고, 조선말을 없애고, 일본을 위해 이국(異國)의 전쟁터에서 죽을 것을 강요하던 때였다.조선의 현실은 암울했고, 사람들은 마음 둘 곳이 없었다. 조선인이 조선인으로 있을 수 없었던 시기, 소설가 장혁주는 조선전통소설 '춘향전'을 근대 문학으로 부활시킨 것이다. 친일을 내걸고, 공공연하게 일본인이 되고 싶어 한 장혁주였던 만큼 그가 어떤 마음에서 일본어 희곡 '춘향전'을 창작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의 '춘향전'이 조선인들이 조선을 기억하고, 일본인들이 조선 정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춘향전'은 일제가 조선의 기억을 강압적으로 제거해가던 그 순간에도 조선인들과 함께 하고 있었다. 그 잔혹한 시절을 살아남은 '춘향전'이 더 이상 우리 사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잊힌 역사 속 인물들이 새롭게 조명되는 이 시기, 오랜 기간 조선 문화의 상징적 역할을 담당해온 '춘향전' 역시 재조명되어야 하지 않을까. 대구대학교 인문교양대학 초빙교수

2019-06-27 15:34:46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춘추칼럼] 이제 남북·북미 대화의 시동을 걸어야 한다

오늘부터 오사카에서 G20 정상회의가 개최된다. G20 정상회의도 국제적으로 중요한 행사이지만 우리로서는 G20 직후 방한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이 무엇보다 큰 관심사이다.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은 시기상으로 보나 여건상으로 보나 중요한 의미가 있다. 우선 상반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있다. 지난 2월 말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정확히 4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하노이 회담이 성과 없이 종료된 이후 북미 간에 이렇다 할 대화가 이어지지 못했다. 오히려 북한은 미국이 셈법을 바꾸지 않는 한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드러냈고 미국 또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전까지 제재 해제는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였다.다만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직접 비난은 하지 않았고 트럼프 대통령 또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약속을 지키고 있다고 치켜세웠다. 그러는 과정에 최근 양 정상 간에 친서 교환이 있었다. 친서의 내용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흥미로운 제안이 오가는 등 분위기는 나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와중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전격적으로 방북하였다. 중국은 대화의 모멘텀 실종과 함께 미국의 대북·대중 압박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 출구전략을 찾던 북한으로서도 시진핑 방북 카드를 활용하는 것이 나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정부도 한중 회담 전에 북중 회담이 새로운 전기를 만들 수 있다면 먼저 진행되어도 무방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 한다. 그리고 핀란드, 스웨덴 순방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신뢰를 통한 대화를 강조해 왔고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인도적 지원을 추진하고 있다.상반기가 지나는 시점에 전개되는 이러한 상황들의 핵심은 대화 재개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방한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와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가 중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하는 계기에 남-북-미 3자 정상 간 깜짝 만남이 이뤄지면 좋겠지만 아직 그러한 분위기까지는 연결되지 못한 것 같다.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두 정상 간의 신뢰는 존재하지만 북미 간에는 아직 물러서긴 곤란한 쟁점들이 존재한다. 실무적으로 이러한 쟁점들을 다시 좁히지 못하면 정상 간 회담이 어렵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북미 실무 대화를 재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 서면 인터뷰에서 "미국의 실무협상 제의에 응하는 것이 비핵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언급을 하였다. 북한이 결단만 하면 북미 간 실무협상은 다시 재개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며칠 전부터 북한 외무성 등 실무자들이 다시 날 선 비난들을 쏟아내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대북 제재 발언을 격렬히 비난하였고 권정근 외무성 미국 담당 국장은 미국이 올바른 셈법을 가져와야 대화가 재개될 수 있다고 다시 엄포를 놓았다. 실무회담이 개최되기 전 주도권을 잡으려는 의도가 다분하다.이번 G20 정상회의 계기로 미중 및 한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방북 결과를 전달할 것이다.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와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 원칙을 견지하는 가운데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나오도록 설득했음을 강조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과 한미 정상회담 과정에서 북한과의 대화 의지를 분명히 한다면 하반기부터는 다시 대화 국면으로 진입하게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 기간 중 남북 분단의 최전선인 DMZ를 방문하여 평화와 대화의 메시지를 발신하길 바란다.이 과정에서 남북 간의 대화도 복원되어야 한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한은 내부적인 단속을 강화하고 협상 결렬의 책임을 총화하는 시기를 가졌다. 당국 간 대화뿐 아니라 민간 차원의 남북 교류에 있어서도 소극적인 자세를 견지하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언제든지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준비가 되어 있으며 남북이 합의한 교류협력 사업을 지속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합의의 이행은 평화를 만들어 내는 신뢰의 힘을 보여준다고 언급하고 남북 관계가 제대로 발전해 나가기 위한 경제협력의 중요성도 강조하였다.아직 북미 간 담판이 남은 북한은 전면적으로 남북 관계를 복원시킬 생각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미 정상회담 직후 어떤 형태로든 대화가 재개되는 것이 시급하다. 김정은 위원장의 판단이 중요하다. 남북 간에 담을 쳐 놓고서는 북미 대화가 잘될 수 없다. 지난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남북 및 북중 간 대화가 활발했다는 점을 상기할 때 하반기에는 이러한 국면이 조성되어 조속히 남북 관계가 복원되고 제3차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되기를 기대한다.

2019-06-27 14:05:10

장정옥 소설가

[매일춘추] 맑은 가난

대구문인협회 편집회의에 가던 중 예술회관 호수 쪽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았다. 점심시간이었다. 무료급식을 위해 모여든 노인들이 밥을 받아들고 나무그늘을 찾았다. 여느 맛집에 모여든 손님들처럼 식판을 들고 웅성대는 모습이 정겨워 보였다. 식판을 받아든 분들 중에는 그 밥이 아니면 점심을 굶어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혼자 밥 먹는 것이 싫어서 무료급식소를 찾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대구의 평균임금이 전국 광역시에서 최하위를 기록했다. 손꼽을만한 대기업 하나 없는 도시여서 청년들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일자리를 찾아 떠나기 바쁘고 나날이 노년층만 늘어나니 실은 평균이란 말이 무의미한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일할 사람이 줄어드는 도시에 터무니없이 집값만 비싸다. 아직도 집이 부족한지 재개발이라는 명분으로 쉬지 않고 짓는 새 아파트가 정말 이 도시가 필요로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다른 도시로 출퇴근하는 역외 의존도가 높다는 통계가 홀로서기에 실패한 도시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것처럼 들린다. 도시를 빠져나가는 청년들은 붙잡을 길이 없고, 소득꼴찌의 불명예는 도시의 다른 이름 같고, 사방 아파트 숲에 둘러싸인 이 도시의 인상은 쓰임새가 불확실한 5만원권 지폐 같다.5만원권이 발행된 지 10년이다. 큰돈은 계좌이체하고, 친인척 경조사에 부조를 하거나 용돈을 줄 때 말고는 대개 1만원권을 많이 쓰는 주부 입장에서는 5만원권이 있으나마나 한 존재다. 지금까지 발행된 5만원권이 총 39억3400만여 장이고, 금액으로는 196조7024억 원이라고 한다. 그 중의 절반이 은행으로 돌아오고 절반이 시중에 유통이 된다지만, 지하로 숨은 돈이 70%고 시중에 유통되는 5만원권은 불과 30% 정도라는 말도 들린다. 고액체납자들의 싱크대와 인형 뱃속에서 찾아낸 5만원권이 한 집에서만 5억원이라니, 70%가 지하로 숨었다는 말이 웬만큼 맞는 말 같다. 애초에 5만원권의 발행의도가 감추기 위한 목적으로 발행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혹이 괜한 것일까. 싱크대나 인형의 뱃속, 마늘밭에 숨긴 돈다발이 건강한 돈이었으면 그렇게까지 숨바꼭질을 해가며 감추고 빼돌리는 블랙코미디를 시도했을지.법정스님이 남기신 '무소유'를 잠깐 들여다본다. 무소유는 아무 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필요치 않은 것을 갖지 않는 뜻이라고 한다. 세상에 태어날 때 빈부를 선택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 맑은 삶을 가꿀 수는 있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라고 하신 여운이 짙다. 장정옥 소설가

2019-06-27 11:35:20

김수경 국악밴드 나릿 대표

[매일춘추]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

한 방송사에서 2주에 걸쳐 방영된 스페셜 '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에도 없었던 요한 씨돌 용현'. 예고편을 보면서 다른 삶을 사는 세 사람의 이야기인가보다 했다. 하지만 '요한 씨돌 용현' 은 세 개의 이름으로 너무 다른, 그러면서도 한결같은 삶을 사는 한 사람의 이야기였다.강원도 정선 봉화치 마을의 천진난만한 괴짜 자연인 씨돌이는 땅바닥에 벌렁 누워 벌거벗은 배에 모이를 올려놓고 참새를 부르고, 지렁이와 이야기하고, 겨울 눈길에 고라니 발자국을 지우는 등 동물과 자연을 귀하게 여긴다. 1987년 민주항쟁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쳤던 요한은 민주화 운동으로 목숨을 잃은 가족 모임 '한울삶' 과 함께 투쟁했다. 발로 뛰며 증거를 수집해 '군 의문사' 진상을 밝혀내기도 했고,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가 구조를 돕기도 했다. 요한은 한국 현대사의 중요 고비마다 나타나 몸을 사리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았고 내세우며 생색내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어디에나 있었지만 어디에도 없게 된 것이다.그와 함께 했던 사람들의 기억을 듣고 보며, 요한과 씨돌을 살다 이젠 용현이란 이름으로 사는 그의 모습을 마주하며 가슴에 무거운 돌을 얹은 것 마냥 먹먹하고 답답해져 왔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의 진심과 정성, 한결같음, 흉내 내지 않는 진실한 삶이 내 가슴 속에 쉽게 식지 않으면서 피할 수 없는 부끄러움으로 남아서였을 것이고, 다른 이유로는 저토록 열정을 다 해 살았는데 왜 지금은 아픈 용현 씨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느냐는 일 것이다. 병상에 있는 용현에게 투쟁에 몸사리지 않고 남을 위해 희생하여 생색내지 않고 시키지도 알아주지도 않을 자연보호를 솔선수범한 이유에 대해 묻자 용현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라고.뜻하는 바, 꿈꾸는 바는 많으나 실천하지 못했던 지난 날. 환경을 탓하고 여건을 탓하며 미루어 오던 일들. 삶을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이 부끄러움은 비교에서 온 것이라기보다 이미 내 속에 있던 것들 이었다. 나는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일에 마음을 쏟았고 어떤 당연한 일을 실천하며 살고 있나하고 자문하며 답을 찾고자 하지만 잘 찾아지지 않는다. 아기 기저귀가 만드는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를 보고 천기저귀를 겸해 쓰고 일회용 줄이기를 위해 텀블러를 사용하고, 비닐봉투 일절 쓰지 않기, 세제 줄이기 등 내가 실천하고 있는 사소하지만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을 해나감에 있어 조금 더 용기를 내보기로 마음먹는다. 오래오래 간직하고 두고두고 용기 내어 나에게 부끄럽지 않는 내가 되기를, 더 많은 당연한 일에 주저하지 않는 내가 되기를 다짐해 본다. 김수경 국악밴드 나릿 대표

2019-06-27 11:28:09

종이에 수묵담채, 41.7×48㎝, 간송미술관 소장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김홍도 '절학송폭'

소나무를 그린 그림일까?사실은 저 멀리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를 그린 그림이다. 아니다. 진짜는 여백을 그린 그림이다. 백지로 남은 부분인 여백(餘白)은 무언가를 그린 후 그려지지 않은 공백이다. 그러나 비었다고 하지 않고 남았다고 한다. 일부러 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경까지 전부 물감을 칠하는 유화와 달리 수묵화는 여백의 종이 바탕을 그대로 남겨둔다. 유화와 크게 차이 나는 점이다.화면이라는 회화적 공간을 다 그리거나 칠해서 활용하지 않고 남기는 것은 그것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것을 수묵화가들이 잘 알았기 때문이다. 수묵화에서 여백은 텅 비어 있으면서 변화무쌍한 공령(空靈)의 공간이 된다. 여백을 그리는 것은 아니지만 여백이 그려져야 그림이 깊어진다.여백은 수묵이 그렇듯 의미 깊은 발명이었다. 먹색의 농담만 사용해 흑백으로 그리는 수묵화는 당나라 말에, 덜 그려 비워둠으로서 꽉 채워 자세히 그리는 것을 능가하는 공간 활용인 여백은 남송 시대부터 적극 활용된다. 컬러를 배제하고 흑백을 택한 수묵화의 극적인 추상성과 채움 대신 비움을 선호한 여백의 미학은 동아시아 회화의 중요한 특징이 되었다.'절학송폭'(絶壑松瀑)은 여백을 부리는 김홍도의 솜씨가 잘 드러난 그림이다. 사람들이 대화를 통해 하지 않은 말로 서로의 속마음을 전하듯 그림도 그렇다. 그리지 않은 곳, 여백에서 실력이 나타난다. 소나무는 위아래와 좌우를 과감하게 생략했고, 폭포는 최소한으로 붓을 대어 여운이 더욱 진하다. 떨어지는 폭포 물줄기 아래 '홍도'(弘道)로 이름 두 자만 써넣었고, 주문방인(朱文方印) '김홍도' 한 방을 찍었다. 호 대신 이름을 쓴 것은 겸손한 뜻을 나타낸다. 아마도 이 그림을 받은 분이 귀인(貴人)이었을 것이다. 김홍도의 많은 걸작, 대작, 명작에 비한다면 이 작품은 작은 화첩 그림에 불과하지만 너무도 우아한 소품이다.옛 사람들의 피서법은 정약용이 제시한 '소서팔사'(消暑八事)의 8가지를 비롯해 여러 비법이 있었다. 서늘한 계곡을 찾아가 발을 담그는 탁족(濯足), 시원한 강바람 맞으며 뱃놀이 하는 선유(船遊), 장쾌하게 쏟아지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귀와 마음을 씻는 관폭(觀瀑) 등이 그림으로 그려진 여름나기이다. 김홍도가 그려낸 비움의 미학을 마음으로 느끼며, 소나무에 기대 앉아 솔가지 그늘 아래서 폭포 소리 듣는다면 올 여름 지구상에서 가장 우아한 피서가 될듯하다. 미술사 연구자

2019-06-27 10:15:19

김경덕 컴퍼니비 대구경북센터장

[김경덕의 스타트업 스토리] 고마워요 스타트업

스타트업 멘토가 전해준 일화 하나. "저녁 10시가 훨씬 넘은 시간에 몇 년 전 멘토링을 했던 스타트업 대표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극단적인 선택도 고민할 만큼 형편이 어려운 스타트업이라 받을지 말지 고민했어요. 다행히 좋은 기회를 살려 20억원의 매출을 올리게 되어 여러모로 고맙다는 말을 해주더군요. '고마워요'라는 단어가 계속 머리를 맴돌며 최근 들어본 말 중 가장 기분이 좋았어요."스타트업 생태계에서는 컨설팅보다 멘토링이 어울리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사업 진행 시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분석하고 전략을 제안하는 컨설팅은 스타트업에는 꽤 버거운 프로세스이다. 그러나 미래 비전 설계를 도와주고, 목표 설정을 함께 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는 멘토의 멘토링은 반드시 필요한 존재이다.특히 창업 경험을 가진 멘토는 아이템 성공 여부보다는 후배를 바라보는 입장에서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조언을 건네주며 연대감을 전해주지만 소양이 부족한 일부 멘토들로 인해 자주 비난의 대상이 된다. 심지어 일부 정부 사업에서는 멘토의 지문 입력까지 의무로 시행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창업을 경험하는 세대가 젊어지고 창업이 미래가 될수록 뛰어난 멘토의 존재는 더욱 부각되고 생태계에서도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필자도 멘토링으로 큰 보람을 느낀 경우가 있었다. 1년 전쯤 위기 상황에 있는 하드웨어 스타트업 대표에게 연락이 왔다. 서로 힘든 상황이 많아서인지 편하게 다양한 이야기와 위로를 나누었는데 마지막에 '고마워요'라는 말을 듣고 나서는 많이 울컥했던 기억이 있다. 다행히 그 대표는 시련을 딛고 일어서 최근에는 대통령 앞에서 아이템과 기술을 시연했고 대기업 협업과 광고 론칭을 준비하는 등 성공 직전의 단계에 와 있다. 이제는 내가 전해주고 싶다. "고마워요 대표님."

2019-06-26 18:00:00

권미강 작가

[권미강의 생각의 숲] 슬픔의 차이는 없다

얼마 전, 작은 도움을 드린 한 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랜만에 안부를 묻고 소소한 일상의 말들이 오갔다. 이윽고 핸드폰을 통해 나직하게 전해지는 말이 발끝에서부터 소름을 만들며 온몸으로 번졌다. "선생님, 저 죽고 싶어요." 아, 속을 몇 번이나 훑어낸 말이 그분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냈을까? "어머니, 그러시면 안 돼요. 아이 몫까지 살아내셔야 해요." 그분의 상처가 전이돼 내 속까지 훑어내는 듯했다. 세월호 참사로 딸을 잃은 어머니는 한 정치인의 막말이 비수처럼 가슴을 내내 찌른다며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남들에게는 오래된 일들이 자신에게는 어제 일처럼 선명하고 하루도 제대로 잠들 수 없다고 했다.우리에게 봄은 유독 슬픔이 많은 계절이다. 마치 보릿고개처럼 넘어서기가 힘들다. 제주 4·3 사건, 4·16 세월호 참사,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지나고 시작되는 6월에는 급기야 전쟁의 상처까지 드러난다. '동족상잔의 비극'이란 필체가 선명하게 박혀버린 6·25전쟁. 가족이 흩어지고 부모를 잃고 자식을 잃고 민족이 민족의 몸에 총구를 들이대는 비극은 분단으로 이어졌으니 말이다.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기록에 의하면 6·25전쟁 희생자는 남북한 합쳐 137만4천195명이다. 1950년 6월 25일부터 3년 1개월 2일 동안 인구의 5분의 1이 희생됐다. 지난 25일 6·25전쟁 69주년에도 희생자 가족들은 묻어뒀던 슬픔으로 목멨을 것이다. 먼 이국의 전쟁터에서 젊음을 던진 유엔군도, 적의 입장으로 내려와 총알받이가 된 중공군도, 전쟁이 나지 않았다면 남쪽 처자와 가정을 꾸릴 수도 있었을 북한군도, 조국을 위해 싸우다가 포화 속에서 산화한 우리의 젊은 군인들도,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누나와 형, 동생들도 행복한 삶의 권리를 빼앗긴 전쟁의 희생자들이다. 그런데 간혹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며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 아프다. 누구의 슬픔이든 슬픔은 차이가 없는데 말이다.

2019-06-26 18:00:00

신창환 경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같이&따로] 봉준호와 복지

캠퍼스에 방학이 찾아왔다. 방학을 맞이해 그동안 마음의 여유가 없어 가지 못했던 영화관에 갔다. 지난달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기생충'을 보았다. 봉준호 감독의 팬은 아니지만, 작품들이 다 재미있어서 그의 흥행작들은 대부분 본 것 같다. 설국열차,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등. 영화 평론가나 영화 전문가도 아니기에 그의 영화를 예술과 문화 측면에서 비평할 정도는 아니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봉준호라는 영화감독이 가진 사회에 대한 문제 인식과 그것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풀어가는 감독으로서의 역량이 빛을 발한 결과가 황금종려상 수상을 가져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2013년 송강호, 크리스 에반스, 틸다 스윈턴이 출연한 '설국열차'는 필자가 기생충을 보고 난 후 오버랩되는 영화였다. 기상이변으로 모든 것이 얼어붙은 지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태운 쉬지 않고 달리는 열차가 스토리 전개의 공간이다. 열차는 계속해서 달려야만 열차 안 사람들이 살 수 있다. 안에는 바퀴벌레로 만든 양갱을 먹으면서 추위와 배고픔에 살아가는 꼬리칸의 사람들, 기차 안에서 가능할까 싶을 정도의 화려한 삶을 살아가는 상류층의 사람들과 그리고 선두칸의 절대권력자까지 다양한 계층들이 있다. 영화의 스토리가 전개되는 공간은 달리는 기차였지만, 그것은 하나의 상징일 뿐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였다.꼬리칸의 젊은 지도자는 그 나름 치밀한 준비 끝에 폭동을 일으켜 기차의 엔진실을 점령하고 선두칸으로 나아가지만 결국 자신의 폭동이 절대권력자와 꼬리칸 리더의 은밀한 계획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열차가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었던 것은 꼬리칸에서 데려간 아이가 열차 부품으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기생충에서는 두 개의 공간이 스토리 전개의 핵심적 모티브가 된다. 유명한 건축가가 만든 호화 저택과 정작 살고 있던 사람들도 몰랐던 호화 저택의 은밀한 지하실. 주인공 가족이 살고 있는 낡고 오래된 다세대 주택의 반지하집. 호화 저택의 푸른 잔디밭과 밝은 햇빛이 들어오는 커다란 통유리창은 부유층의 삶을 상징하고, 작은 부엌 겸 거실에 유일하게 난 조그만 창이 유일한 외부의 빛이 들어오는 공간이지만 항상 취객이 그 앞에서 소변을 보는 반지하집은 빈곤층의 삶을 상징한다. 반지하집에서 살아가는 주인공 기택 가족은 호화 저택에 기생하는 삶을 살아가지만, 반지하 삶의 냄새로 인해 파국을 맞게 된다. 더 이상 스토리를 언급하는 것은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에게 스포가 되는 것 같아 생략하기로 한다.과거와 같은 신분제 계급은 아니지만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사람들을 분류하고 차별하는 계층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계층 간의 갈등으로 인해 많은 일들이 발생한다. 설국열차에서 절대통치자의 하수인은 자신을 생포한 꼬리칸의 젊은 지도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누구도 신발을 머리에 쓰지 않지. 신발은 그러라고 만든 게 아니니까. 애초부터 자리는 정해져 있어. 나는 앞칸, 너는 꼬리칸. 그러니 네 자리를 지켜." 상류층, 중산층, 차상위층, 빈곤층, 어떤 식으로든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린 일정한 계층으로 분류된다. 기생충에서도 지상과 지하라는 공간은 계층의 알레고리이다.자본주의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계층 간의 불평등과 갈등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와 기생충 두 영화는 '복지'적 요소를 많이 담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층 간의 불평등과 갈등의 산물이 바로 복지이기 때문이다.그런데 영화관을 나오면서부터 내 머릿속에 계속 다음 대사가 맴돈다. "기택: 부자인데 착해, 부잣집 애인데 구김살이 없어/ 기택 아내: 부자라서 착한 것이고 부잣집 애들이라 구김살이 없는 거야, 나도 이런 데서 살면 착하게 살 수 있어."우리는 부(富)와 빈(貧)이 인성의 좋고 나쁨마저도 결정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것일까? 그렇다면 복지는 인성을 만들어가는 것일까?

2019-06-26 18:00:00

정우창 대구가톨릭대 교수

[경제칼럼] 경제는 창의에서, 창의는 관심에서 시작된다

영국의 해리 브리얼리는 철강회사 연구원이었다. 1912년 점심을 먹고 공장을 산책하다가 고철 더미에서 반짝거리는 물건을 발견했다. 가까이 가 보았더니 오래전에 자신이 실험하다가 버린 쇳조각이었다.순간 실망했지만 버린 지 한참 시간이 지났는데도 녹슬지 않고 여전히 반짝거리는 쇳조각이 신기해 연구실로 가져갔다. 녹슬지 않는 스테인리스강(Stainless Steel)은 이렇게 발명되었다.그가 반짝거리는 쇳조각을 재수 없다고 걷어찼더라면 우리는 오늘도 숟가락의 녹을 닦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작은 관심에 열정과 기술이 합해져 스테인리스강이라는 보석이 탄생된 것이다.1896년 프랑스 물리학자 기욤에 관한 얘기다. 그는 철에 36%의 니켈을 첨가했더니 온도가 올라가도 열팽창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그 공로로 1920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이 합금은 '열팽창이 없는 강'(Invariable Steel)의 의미로 '인바'(Invar)라고 불린다. 흥미로운 사실은 니켈양이 36%보다 많거나 적으면 열팽창이 급격히 커진다는 점이다. 신기하게도 36% 니켈이 첨가된 합금에서만 갑자기 열팽창이 없어지는 마법이 일어나는 것이다.석·박사 과정 학생이 이런 실험 결과를 가져오면 대개 지도 교수는 실험을 잘못한 것 아니냐고 혼을 낼 가능성이 높다. 사소한 것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기욤의 관심이 인바 탄생의 시작이었다.인바는 다양한 산업 분야에 사용되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인바는 전성기를 맞이했다. 인바가 스마트폰과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의 핵심 소재이기 때문이다.문제는 우리가 인바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의 소형 OLED는 삼성, OLED TV는 LG가 세계 1등이지만 필수 부품인 인바는 100%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다. 히타치금속의 인바 제조 기술과 다이니폰프린팅(DNP)의 에칭(Etching) 기술이 합해져 만든 섀도우 마스크(Shadow Mask)를 우리가 고가에 수입하고 있는 것이다.요즈음 한일 관계가 최악이다. 2010년 센카쿠 열도 분쟁 때 중국이 희토류를 무기로 일본을 굴복시켰듯이 일본이 인바를 수출하지 않는다면 삼성 휴대폰도, LG OLED TV도 생산이 불가능하다. 전쟁보다 무서운 게 자원 전쟁이고 소재 전쟁이다.필자는 1988년부터 1997년까지 거의 10년에 걸친 연구개발 끝에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브라운관 컬러 TV의 섀도우 마스크를 국산화시켰다. 개발 과정이 힘들었지만 가격이 수입재의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져 보람도 컸다. 개발 효과가 엄청난 OLED 인바 섀도우 마스크 국산화를 위한 연구개발이 시작되었다는 뉴스라도 듣고 싶다.일본은 1949년 교토대 유가와 히데키 교수가 첫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이래 2018년 노벨생리의학상까지 27명(외국 국적 취득자 3명 포함)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아직 수상자가 없다.이명박 정부가 노벨상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초과학연구원(IBS)을 만들었는데, 일주일 전 방송 뉴스에 이틀 연속으로 보도됐다. '비즈니스 타고 1년 중 100일 출장' '나랏돈 선심' 'IBS에 퇴직 공무원들 요직 차지'가 뉴스 헤드라인이었다. GDP 대비 우리의 기초연구 투자는 0.69%로 주요국들 중 압도적인 1위다. 이스라엘이 0.49%, 미국이 0.46%, 일본은 0.39%, 중국은 0.11%이다. 무엇이 문제일까?포스코 포항제철소 정문에 '자원은 유한(Resources are limited), 창의는 무한(Creativity is unlimited)'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관심은 창의를 부르고, 창의는 경제를 살린다. 인적 자원이 유한한 대한민국은 브리얼리, 기욤의 탄생을 절실하게 기다리고 있다.정우창 대구가톨릭대 기계자동차공학부 교수. KAIST 공학박사

2019-06-26 16:30:00

상황을 반전시키는 것이 슈퍼 빅아이디어이다. 사진 제공: pixabay

[김종섭의 광고이야기] 가장 보수적인 도시에서 아이디어 팔기-1

"대구에서 광고회사 차리면 안 돼!"광고회사 창업한다고 하니 지인들이 극구 반대했다. 왜 그럴까? 나도 창업해서 먹고살겠다는데. 심지어 왜 그런지 이유조차 말해주지 않았다. 무조건 "안 된다"였다. 이유가 궁금했다. 사람들이 만류했던 이유를 처음 영업 나갔을 때 알게 됐다."세상에 아이디어 비용이 어디 있어?"머리가 띵했다. 광고회사는 아이디어가 생명인데 그 비용이 없다니? 알고 보니 대구의 시장 상황은 이랬다. 콘텐츠를 제작하는 회사는 거의 없었고, 대부분이 매체 회사였다. 쉽게 말해 대부분이 지하철, 버스 광고판을 사두고 거기에 광고를 붙이는 수수료를 받는 회사였던 것이다. 아이디어, 카피, 디자인 비용이 공짜라고? 내가 미국에서 배워온 게 바로 그런 것들인데. 즉, 고향에서 나의 가치는 0원이었다. 하지만 광고인의 재주가 무엇인가? 시선을 바꿔보기다. 부정적이었던 나의 성장 환경을 긍정적으로 보는 연습을 나는 계속하지 않았던가. 0원짜리 인간을 가치 있는 인간으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시선만 바뀌어도 문제는 쉽게 풀린다. '대구에 콘텐츠 시장이 없으니 내가 만들면 되겠네'라는 게 그 답이었다. 허망하리만큼 단순한 아이디어였다. (물론 그 답을 이루어가는데 엄청난 고통이 따랐지만). 어차피 망하고 잘되는 건 50 대 50의 확률이다. 잘되면 내가 선구자가 되는 게 아닌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니 대구는 오히려 블루오션이었다.다만 감수해야 할 게 있었다. 사기꾼이라는 시선이었다."이봐, 젊은 양반, 다른 광고회사는 다 공짜로 만들어줘요. 그런데 아이디어 비용이라고?""카피 비용, 디자인 비용? 보아하니 이제 서른 살 정도 된 거 같은데 왜 이렇게 사기를 치고 다니나?"광고주들의 반응은 항상 이랬다. 대구도 예전에는 광고 개발 비용이 있었다고 한다. 다만,돈 되는 매체 시장으로 회사들이 몰리면서 경쟁을 하다 보니 콘텐츠 개발 비용이 떨어진 것이다. 매체를 팔기 위해서 광고, 즉 아이디어는 끼워 팔기식으로 가치가 떨어졌다.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런 피해는 고스란히 광고주가 떠안게 된다. 세상에 싸고 좋은 게 있을까? 공짜로 만들어주는 광고회사들이 과연 광고주의 브랜드에 대해서 얼마나 고민할까? 그거까지도 좋다. 좋은 장소에 광고를 걸면 효과를 보기 마련이니까. 필요한 건 그것과 동시에 브랜드에 대한 고민도 함께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아무런 고민 없이 공짜로 만든 광고로 매체를 쓰고 돈만 날리는 경우가 많다.대구의 한 병원장님과 미팅할 때의 일이다."난 아무나 만나주지 않아. 견적서 보니 황당해서 한번 보자고 했어."처음 본 원장님은 시원하게 말을 놓으셨다."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당신 같은 사람은 그냥 공짜라도 좋으니 내 광고 한번 걸어주시라고 나한테 부탁해야 해." (다음 편에 계속)㈜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 광고를 보는 건 3초이지만 광고인은 3초를 위해 3개월을 준비한다. 광고판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를 연재한다.

2019-06-26 16:26:45

[권영재의 대구음악유사]전우야 잘 자라

해방 다음 해인 1946년 10월 1일 '남조선 노동당'이 대구에서 폭동을 일으킨다. 쌀을 달라는 핑게로 사람들을 죽이며 정부 전복을 기도했다. 해방 뒤 가난한 나라에서 노동자 농민 못지않게 굶주리던 하급 공무원 특히 경찰 공무원들이 혹독한 살육 당했다. 심지어 그들의 가족들 마저도 몽둥이에 맞아 죽거나 죽창에 찔려 죽었다. 이런 무지막지한 수법 탓에 원래 공산당의 본산인 대구인데도 시민들이 호응하지 않았다. 대구가 최초로 남한의 공산당 혁명 기도를 저지한 것이다. 실패한 그들은 지리산으로, 이북으로 각자도생(各自圖生)을 하게 된다. 반란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남로당은 북로당 김일성과 힘을 합쳐 1950년 6월 25일 나라 전체를 향해 본격적인 난리를 일으킨다. 임진왜란의 재판이었다. 김일성의 난이 일어나자 대통령은 수원으로 재빨리 도망가고 한강 다리를 끊어 버린다. 뒤늦게 피란을 나선 서울 시민들은 일부는 한강에 빠져 죽고 나머지는 본의 아니게 서울 시내로 돌아와 북한군에 부역하게 된다. 서울을 수복했을 때 이들 중 많은 사람이 부역죄로 목숨을 잃는다. 단숨에 주력이 낙동강에 도달한 북괴군은 선발대를 대구 무태(無怠)까지 보낸다. 또다시 대구가 조국의 공산화를 막는데 큰 역할을 맞는다. 대구 동촌 비행장은 북으로 출격하는 전투기의 이착륙으로 활주로가 불이 나고 삼덕동 '카다쿠라(편창,片倉)' 제사공장에서는 신병 훈련에 정신이 없었다. 종각 공원 옆에 있던 육군본부와 대봉동에 있던 미8군이 드디어 북한군을 몰아내고 압록강까지 연합군이 진격한다.일제 강점기로부터 한국전쟁까지 신병 훈련소로 떠나는 만촌동 고모령(顧母嶺)의 이별은 슬프다. "어머님의 손을 놓고 떠나 올 때엔/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가랑잎이 휘날리는 산마루턱을/넘어오던 그 날 밤이 그리웁고나./맨드라미 피고 지고 몇 해이던가/물방앗간 뒷전에서 맺은 사랑아/어이해서 못 잊는가 망향초 신세/비 내리던 고모령을 언제 넘느냐."-유호 작시, 박시춘 작곡, 현인 노래(1948년)적은 무태를 떠나 시산인해(屍山人海)의 다부재를 넘고 낙동강을 건너 북으로 도망을 간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꽃잎처럼 떨어져 간 전우야 잘 자라/우거진 수풀을 헤치면서 앞으로 앞으로 추풍령아 잘 있거라. 우리는 돌진한다/ 달빛 어린 고개에서 마지막 나누어 먹던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 -전우야 잘 자라. 유호작사, 박시춘 작곡, 남인수 노래.(1950년)한국 전쟁이 휴전되었다(1953년 7월 27일). 폐허의 땅에 먹고 사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조반석죽(朝飯夕粥)의 시대였다. U.N에서 우유와 밀가루를 공급하여 겨우 아사는 면하였다. 대구는 섬유와 능금농사로 기사회생의 길을 가고 있었다."능금 능금 대구능금 이 나라의 자랑일세/ 너도나도 손을 잡고 힘을 다해 배양하세/에에헤 좋고 좋다. 에에헤 좋고 좋다. 능금 노래를 불러보자"-'대구 능금의 노래', 이응창 작사, 권태호 작곡(1949년).대구는 능금을 대만에 갖고가 바나나로 바꾸어와 한국민의 입을 즐겁게 해주었다. 안정기에 들어가자 '대구 시민의 노래'가 제정되었다."팔공산 줄기마다 힘이 맺히고/ 낙동강 구비 돌아 보담아 주는/질펀한 백리벌은 이름난 복지/그 복판 터를 열어 이룩한 도읍/우리는 명예로운 대구의 시민/들어라 드높으게 희망의 불꽃.-대구 시민의 노래 -백기만 작사, 유재덕 작곡(1955년)5,60년대는 대구와 경북이 합쳐 있던 때라 경북과 대구에서 능금노래와 시민의 노래를 모르면 간첩 취급받았다. 애들은 고무줄 하면서도, 청소하면서도 이 노래를 불렀다. 요즘은 왜 이런 노래를 안 부르는 걸까? 향토 출신 대통령 다섯 명이 암살당하고 사형선고 받고 교도소에 잡혀가 있는 탓에 신명이 준 탓일까?(이번 글로 연재를 마칩니다. 일년 반 동안 졸고를 읽어 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전 대구적십자병원 원장

2019-06-26 11:51:22

현동헌 테너

[매일춘추] I have a dream!

'I have a dream!'1963년 8월 28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침례교 목사이자 미국 내 비폭력 흑인 인권운동을 주도했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라는 연설로 인종차별의 철폐와 인종 간의 공존을 호소했던 유명한 말이다.슬픔을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공감의 능력이 강조되는 말이기도 하다. 필자에게도 꿈이 있다. 그것은 내가 하는 음악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음악가가 되는 것이었다. 음악은 개인마다 각기 다르게 다가가 다른 반응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있다. 어떤이에게는 한 음악이 기쁨을 더하게 하는 역할을 또 어떤이에게는 한 음악이 슬펐던 때를 떠오르게도하는데 결국 그 음악은 어느새 슬픔을 견디고 이겨내게 했던 힘이 되어 시간이 지나면 한 켠의 추억으로 자리잡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음악의 힘이자 존재의 이유이며 내가 이 일을 하게 된 큰 동기이기도하다. 필자는 가끔씩 찾아오는 매너리즘과 슬럼프를 겪을때면 마틴 루터 킹 목사의 'I have a dream!'을 떠올리며 음악을 하게 됐던 초심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한다.시간이 지나면서 꿈은 변질되기 쉽다. 남다른 가치를 가지고 그 꿈이 변질되지 않도록 잘 지켜나가기 위해 우리이겐 초지일관(初志一貫)의 정신도 필요하다. 初(처음 초)志(뜻 지)一(한 일)貫(꿸 관)자로 처음 먹은 마음을 한결같이 꿰뚫어 나간다는 뜻이다. 처음에 세운 뜻을 이루려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마음이 꿈을 이룰 수 있는 기초가 된다는 말일 것이다. 비록 자신의 디즈니월드 완공식을 직접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디즈니월드를 제일 먼저 보았고 꿈 꾼 사람이었던 월트디즈니처럼, 217명의 투자자들에게 투자거절당했지만 물러서지 않은 결과 성공을 이룬 스타벅스 창업자 하워드 슐츠처럼, NBA시절 무려 9천번의 슛을 실패했고 3천회의 경기에 패배하였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여 위대한 농구스타가 된 마이클 조던도 초지일관의 정신이 그런 위대한 일을 해 낼 수 있게 했던 것이 아닐까.꿈은 사람을 만들고 그 사람을 이끌어 간다. 꿈은 한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열쇠다. 꿈을 가진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꿈은 어떤 장애물도 뚫고 나갈 수 있게 한다. 꿈은 결국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것이다.오늘도 'I have a dream!'을 외치며 나에게 주어진 작은 일들에 최선을 다할 때 그것이 바로 위대한 꿈을 이루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현동헌 테너

2019-06-26 11:38:28

김태환 경북농협 원예유통사업단장

[기고] 고향을 생각하며, 양파 소비에 동참을!

요즘 양파를 보니, 1974년 초등학교 3학년 시절이 떠오릅니다. 부모님은 고추 농사를 지었습니다. 당시 고추가 한창 붉어지고 수확 시기가 되면 저도 방과 후에 부모님을 도와 고추를 땄습니다.어느 날 세차게 내리는 소나기 속에서 우의를 입은 채 붉은 고추를 하염없이 수확한 적이 있습니다. 비료 포대에 담은 고추는 빗물과 뒤섞여 무척이나 무거웠고, 땅도 빗물에 젖어 발을 떼기도 힘들었습니다.어렵게 수확한 고추를 고추 굴의 건조대에 나란히 정리하고 연탄불 화로로 열을 가해 건조합니다. 마른 고추를 상'중'하품으로 선별, 큰 보자기에 담아 오일장에 나가 팔았습니다.고추 보자기의 부피는 제 몸보다 컸는데 받는 돈은 얼마 되지 않아 허무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돈으로 사탕과 노트, 필기도구를 사며 참으로 뿌듯했고, 돈 버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습니다.현재 농촌에서 가장 심각한 상황 중 하나가 '인력 부족'과 '비싼 인건비'입니다. 농가에서 인건비를 주고 나면 남는 것은 거의 없고, 고된 작업으로 인해 허리가 아프고 몸이 불편해도 어쩔 수 없이 고통을 참아가며 농사를 지어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이런 상황에서 올해는 작황 호조로 인해 양파 농사가 대풍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자연재해보다 더 무서운 '풍년 기근'으로 경제적으로도, 심적으로도 농민과 우리의 고향에 큰 아픔이 되고 있습니다.성인 남성이 힘겹게 들 수 있는 양파 20㎏을 시장에 판매하면 받는 돈은 고작 6천원 내외입니다. 겨우 국밥 한 그릇 먹을 수 있는 돈입니다. 양파는 기원전 3천500년 이집트에서 재배한 기록이 있고 올림픽 경기에 참가하는 고대 그리스 선수들과 로마의 검투사들은 체력을 강화하기 위해 양파를 섭취했다고 전해집니다.양파의 매운맛을 내는 황화아릴은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해주고, 비타민C와 마그네슘도 풍부해 피로 회복에 도움을 줍니다. 특히 인슐린 작용을 촉진해 혈당 조절을 돕는 성분인 크롬이 풍부해 만병의 근원인 당뇨병 예방을 도와줍니다. 또한 알리신 성분도 풍부해 일산화질소를 배출하고 혈압을 낮춰 심혈관계 질환을 예방해줍니다. 각종 암세포를 퇴치하는 효과도 있고 항산화제 플라보노이드의 일종인 케르세틴은 피로를 푸는 데 좋습니다.심혈관계 질환을 예방해주고 각종 암세포를 퇴치하는 효과 등도 있습니다. 양파는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는 착한 채소입니다. 100g당 40kcal로 낮은 열량에 섬유질은 풍부하고, 케르세틴 성분은 몸에 불필요한 중성지방을 녹여줍니다.필자도 3개월간 양파즙을 먹어보니 콜레스테롤 수치가 많이 낮아져 건강도 좋아지고 덩달아 기분도 좋아졌습니다.농자는 '천하지대본'이라고 합니다. 자연의 근간이 바로 '농사를 근본으로 하는' 땅입니다. 대대손손 유지한 그 농지에서 지금 양파가 계속해서 수확 중입니다. 풍요로운 농토와 농촌의 힘을 얻고 싶은 도시민들의 따뜻한 정을 농민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정이 건강에도 좋은 '양파 소비운동'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봅니다."지금 농심(農心)은 더욱 간절히 당신의 따스한 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2019-06-26 11:36:10

천영식 KBS이사

[새론새평]김해신공항 재검토는 악마의 이간질

역사 발전의 주체는 대중이라고 하지만, 주요 역사적 사건에는 항상 권력의 힘이 작용한다. 그래서 우리는 유능한 지도자를 뽑으려 고민하는 것이다.오랫동안 지켜본 정치 지도자의 유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갈등 지향형이고, 다른 하나는 통합형 리더십이다. 갈등 지향형은 끊임없이 대중을 갈라치기 하고, 통합형은 대중의 힘을 모으는 데 고민한다. 갈등 지향형은 현재보다 미래를 강조하고, 현재의 고통은 '불가피한 통과의례'라며 갈등을 증폭시킨다. 우리 역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갈등 지향형으로 보인다. 그나마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통합 지향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3년 전인 2016년 6월 21일 김해신공항 결정이 났을 때 많은 사람들이 환호했다. 그중의 한 명은 심상정 정의당 대표다. 그는 "박근혜 정부가 어려운 결정을 잘 내렸다. 박근혜 정부 아래서 이뤄진 가장 책임 있는 결정"이라고 극찬했다.한국인들은 결정 장애를 갖고 있다. 그래서 프랑스인이 대타로 투입돼 내린 결정이었는지 모른다. 결정을 주도했던 장 마리 슈발리에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 수석 엔지니어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비용과 안전을 따져 오류 없이 결정했다. 가장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강조했다.그때 결정은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푸는 것 같은 짜릿함이 있었다. 가덕도와 밀양이 첨예하게 갈등을 증폭시키는 상황에서 김해공항 확장이라는 예상치 못한 제3의 대안이 나온 것이다. 당시 정부에서 일하고 있었던 필자는 김해신공항 결정이 어떤 반응을 나타낼지 예의주시했지만, 심상정 대표의 말대로 여론이 대체로 칭찬하는 분위기여서 안도했던 기억이 있다. 적어도 국가를 망치게 하는 갈등 지향형 결정은 아니었다.두 달 전 인사청문회에서 낙마한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당시 차관으로 있으면서 슈발리에의 결정을 뒷받침한 김해신공항 전도사였다. 그는 정치권과 각종 단체를 뛰어다니며 김해신공항 결정의 타당성을 설명했다. 그가 문재인 정부 국토교통부 장관에 임명됐어도, 김해신공항 결정을 번복했을지 궁금하다. 그랬다면 대한민국 공무원은 쓰레기 집단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을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장관에 오르지 못했고, 문재인 정부는 정치인 장관 아래에서 김해신공항을 번복하는 '정치적' 결정을 내리기에 이르렀다.이 정부가 김해신공항 논란을 다시 끌어낸 것은 정치적 득실 셈법의 결과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PK(부산경남) 표를 얻기 위해 TK(대구경북)를 버리는 게 정치적으로 득이라고 결론 냈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정부는 최후의 한 가지 명분도 자신하고 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결정을 번복하는 것은 여전히 여론의 지지를 받는 일이라고. 적폐 청산으로 여론을 몰아가면 된다. 그래서 대구는 이 정부가 짜놓은 프레임 전쟁의 희생자가 될 것이다. 정부가 갈등 지향형 결정을 내린 게 아니라 TK 사람이 이기적인 것으로 둔갑할지 모른다. 그런 전쟁에 TK 사람들이 내몰리고 있다.여차하면 국민 일부도 버리고 갈 수 있다는 정치적 결정은 갈등형 리더십의 최절정이다. 북한의 김정은이 평양 사람만 끌어안고 함경도 사람을 방치하듯이, 이 정부는 TK 사람을 버리는 것인가. 적의 침입을 받아 국토와 국민의 일부라도 떼 줘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인가. 역사상 유례없이 국민 일부의 희생을 강요하는 비겁한 결정이다.신공항과 관련한 투쟁은 시작부터 정신 무장을 제대로 해야 한다. 우리는 TK를 위해서 싸우는 게 아니라 이 나라 분열을 막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TK가 희생양이 되면 다음은 충청도로 강원도로 넘어갈 것이다. 국민 일부는 언제든지 정권의 셈법에 희생양이 될 것이다. '분열의 대한민국'에 맞서는 '완전한 대한민국'의 싸움이다. 당당하고 강하게, 분열을 혐오하는 모든 대한민국 국민과 함께 싸워야 한다. 정치권의 버림받은 대한민국 불쌍한 국민을 구하는 일이다.천영식 KBS이사

2019-06-26 11:33:22

박병욱 대구중앙교회대표목사

[종교칼럼] 침묵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나에게 있어서 휴가란 언어와 생산의 시간에서 벗어나 침묵과 관찰과 수용의 시간이다. 매일 듣던 라디오 뉴스도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전혀 보지 않았다. 새로운 소식이 없을까 하여 틀었던 텔레비전에서 종일 무한 반복되는 같은 내용으로부터 해방되어 마음의 공간이 시원해졌다. 갑자기 세상이 조용해진 것 같았다.사건 사고 소식은 앵커가 소개해 주는 제목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잔혹한 범죄에 관하여 시청자의 호기심이 충족될 정도로 보도한다면 그것은 이미 과잉 보도다. 전 국민의 범죄 지식이 올라가는 시간이다. 그러면서 걱정이 시작된다. '모방 범죄를 촉발시키는 거 아냐?'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경찰이 부실 수사로 종결 짓는 건 아닐까?'사건이 보도되고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보험은 들었대? 보상액은 얼마래? 그만하면 많이 받았네' 같은 루머가 퍼지고 성급한 언론 보도까지 나간다. 곧바로 관계자의 신상털기가 시작된다. 불과 며칠 안 되는 애도 기간을 지내고 장례를 치르기 위해 빈소에 영정이 아직 걸려 있는데, 사람들은 애도가 아닌 다른 것에 관심이 더 많다. 유족들은 슬퍼할 시간도 없이 온갖 루머에 고통을 당한다. 사회적 애도의 기간이 너무 짧아져버렸다.우리는 극심한 고통에 처한 이를 어떤 언어로 위로해야 하나? 위로에는 말로 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 언어가 관계의 경계선에서 멈추는 것이 침묵이다. 그때는 언어가 아닌 침묵과 동반과 공감으로 위로하는 것이다. 슬픔은 당사자가 스스로 감당해야만 하는 영역이 있다. 극도의 슬픔 가운데서도 스스로 애도할 충분한 시간과 분위기가 주어져야 한다. 침묵의 때에는 존재로서 위로한다. 존재로서 소통하고 느낀다.성경에 욥이라는 의인이 나온다. 그가 하루 만에 전 재산을 자연재해와 강도를 당해 다 잃고, 10자녀가 다 죽고, 몸에는 불치의 병이 찾아왔다. 아내는 그를 저주하며 떠났다. 욥의 세 친구는 욥을 위로하러 찾아갔다. 그들은 위로의 말조차 찾지 못해 침묵하며 슬픔을 함께했다. 언어의 소통 대신 존재의 소통이다. 좀 더 원초적이다. 위로의 시선, 따뜻한 포옹, 꽉 잡아주는 악수, 음식과 잠자리를 챙겨주는 행위로 소통하는 것이다. 이때가 참 위로의 순간이었다. 그런데 욥의 친구들이 말을 시작했을 때 이것은 위로가 아니라 훈계와 저주와 심판의 말이 되었다. 욥에게는 더 큰 고난이었다. 욥은 너무나 억울하여 자신의 고난도 잊은 채 친구들과 논쟁에 몰입한다.우리는 사고의 궁금증을 어디까지 물어보아야 하는가? 당사자가 설명하는 것을 넘어서서 꼭 한 단계 더 나아가고 싶은 유혹을 어떻게 이길 것인가? 언어 과잉이 문제다. 바닷속의 쓰레기처럼, 우주를 떠도는 쓰레기처럼, 우리 언어가 존재의 쓰레기가 되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우리 언행이 SNS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우리가 평생 소리 내어 말한 음성이 우주를 떠돌며 메아리치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어리석은 말들, 성급한 말들, 잔혹한 말들이 사라지지 않고 우리 영혼의 빈약함과 사악함을 만방에 알려주고 있다. 빨리 거두어 들이는 방법은 없을까? 중세의 침묵수도회는 1천 년 전에 이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는 새로 생산되는 언어 쓰레기를 줄여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언어 소비도 줄이자.

2019-06-26 10:43:43

김동훈 연극 배우

[매일춘추] 커튼콜

배우로서 연극에 참여하거나 또는 관객으로서 공연을 관람할 때 작품의 열기를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커튼콜(Curtain call)이다. 커튼콜은 연극이나 무용, 음악회 등의 공연작품에서 막이 내린 후 공연의 모든 참여자가 무대 앞쪽으로 나와 관객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다. 커튼콜은 작품의 최종 마무리 단계에서만 볼 수 있으며 작품의 일루전(illusion)에서 빠져나와 현실로 돌아가기 위한 마지막 극적 장치라 볼 수 있다.공연의 마지막 장치인 커튼콜을 진행하는 동안 관객은 작품에 대해 느꼈던 감흥에 답하고자 감격에 겨운 박수를 보내거나 작품이 좋지 못한 경험으로 남을 때는 냉소적으로 반응하기도 한다. 한편 배우의 입장에서 커튼콜을 맞이할 때는 귀한 시간을 내어 극장을 찾은 관객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것이며 이 시간 이후 배역으로서의 인물이 아닌 일상으로 돌아가는 이별의 인사를 의미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커튼콜의 경험은 반성과 자책, 배우라는 자긍심을 동시에 가져다주며 무엇보다 무대에서의 연기를 종종 그리워하게 한다.커튼콜은 작품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존재한다. 기약 없는 만남을 서로 약속하듯이, 혹은 무운을 빌어주기라도 하듯이……. 무대 위의 연극배우가 아닌 팬을 쥐고 책상 앞에 앉은 연극배우는 또 다른 커튼콜을 맞이하고 있다. 말은 발화되어 어디론가 사라지지만 글은 스스로의 흔적을 남기기에 부끄럽지 않은 글이란 밤잠을 설쳐도 닿기 어려운 것이었다. 때때로 글에 대한 중압감은 나를 날카롭게 하였지만 오늘은 모든 것을 뒤로한 채 지면에서의 커튼콜을 맞이한다.한 젊은 연극배우의 사색을 읽어보는 독자들은 과연 어떤 생각과 호흡으로 받아들였을지 모르겠다. 연극이었다면 커튼콜을 통해 관객들의 눈을 직접 마주보며 작품의 열기를 체험할 수 있겠지만 지면을 통한 커튼콜은 달리 확인할 길이 없어 이 점은 아쉽다. 독자여러분들 중 일부는 나의 글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연극배우의 현실을 보며 안타까워 하셨을 수도 있고, 희망을 갖고 긍정적으로 바라봐준 분도 있을 것이다. 그 모든 독자의 반응은 하나하나 소중하고 귀한 관객이다.글을 쓰는 데에 있어 스스로의 한계와 부족함을 느꼈지만 최선을 다했다. 이제는 글이 아닌 작품에서의 배역으로 관객과 만나고자 한다. 그때는 커튼콜에서 서로의 눈을 마주보며 힘찬 박수와 호응을 부탁드린다. 오늘도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각자의 커튼콜을 향해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든 분들께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다. 독자 여러분의 축복과 평안을 빈다. 김동훈 연극배우

2019-06-25 11:21:07

여름휴가에 애견을 동반하는 반려 가족이 늘고 있다.(사진출처: www.petmd.com)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반려견 물놀이 하다가 열사병 걸렸을 땐?…여름철 건강 정보

구름이(10·비글)가 고열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다. 구름이는 가족들과 여름휴가를 함께 가 수영을 즐겼다고 한다. 그런데 집에 돌아온 다음 날부터 식욕이 줄며 열이 나고 기력이 없어졌다고 했다.구름이는 내원 당시 체온이 40도를 넘었으며 폐렴이 동반된 것으로 보아 물놀이 과정 중 오연성 폐렴(물이나 이물의 폐 흡인으로 인한 페렴)이 의심되었다. 집중치료를 통해 건강이 호전되어 퇴원하였으나 당분간은 보호자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해 보였다.구름이처럼 휴가 후유증을 겪는 반려견이 적지 않다. 여름철 반려견과 함께 물놀이를 떠나는 반려인에게 도움 될 건강 정보를 알아보자.개들은 물을 좋아하며 수영을 잘한다. 하지만 개들도 돌발 상황에서는 코로 물을 들이켜 재채기를 하며 소량의 물이 폐로 들어가기도 한다.어린이 물놀이 사고 중 '마른 익사' 사고가 있다. 마른 익사란 어린이가 물놀이를 하는 과정에서 소량의 물이 폐에 흡입되었음에도 불편 없이 지내다 며칠 후 폐에 고인 물이 흡수되지 못하고 감염을 유발하거나 폐부종을 악화시켜 사망하는 경우를 말한다.허약견, 노령견, 심장 질환이 있는 개는 마른 익사의 경우처럼 폐로 흡입된 소량의 물이 감염과 폐부종을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물놀이 시 보호자의 주의가 필요하다.위생적이지 못한 애견 수영장은 질병을 전파시킬 수 있다. 물놀이 후 몸을 핥는 과정에서 오염된 세균이나 원충에 의해 장염이 발생하기도 한다. 물놀이장 주변에 방치된 상한 음식물, 포도 껍질, 위해 성분이 함유된 액체를 먹을 수 있으므로 주의하여야 한다.반려견이 이물질을 먹은 것이 분명하다면 약국에서 판매하는 3% 과산화수소수(급여량 체중 1kg당 1cc) 급여하여 구토를 하게 한다. 1시간 내로 구토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동일량을 한 번 더 급여할 수 있다. 두 번 급여 후에도 구토를 하지 않는다면 수의사와 전화 상담 후 응급진료를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물놀이 후 피부 트러블이 발생하기도 한다. 오염된 물로 인한 접촉성 피부염과 귓병, 눈병은 물놀이 후 며칠 뒤 증상이 나타나므로 수의사의 검진 후 적절한 처방을 받길 바란다.강 주변에는 풀이 있다. 풀이 자라는 땅에는 진드기가 존재하며 풀이 젖어있을 때 땅속 진드기가 풀 위로 올라와 지나가는 동물에게 달라붙는다. 산책은 풀이 마른 시간대에 하는 것이 진드기 감염을 줄일 수 있다.여름철 물놀이 중 다발하는 질병은 의외로 열사병이다. 물속을 제외한 한낮의 더운 실외 환경이 반려견에게 고체온증과 과호흡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특히 여름철 차 안은 불과 10여분 사이에 반려견에게 열사병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절대 차 안에 반려견을 혼자 두지 말아야 한다.비만견, 노령견, 심장 질환, 신장 질환이 있는 개는 열사병에 매우 취약하다. 호흡이 빠르고 몸이 뜨거운 상태라면 고체온증을 의심하고 즉시 시원한 물을 소량씩 먹여주고 다리와 엉덩이 부분을 냉찜질을 하거나 차량 내 에어컨을 풀가동하여 체온을 낮춰 주어야 한다. 체온이 안정됨에도 기력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동물병원으로 신속히 이동하여 응급 진료를 받아야 한다.반려견과 여행을 함께하는 것은 일상의 선물이자 행복이다. 더위와 물놀이에 대처할 수 질병 상식들을 익혀두어 반려견의 수호천사가 되어주길 바란다.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SBS TV동물농장 수의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 원장은 개와 고양이,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한 30년간의 임상 경험을 토대로 올바른 동물 의학 정보를 제공하고 바람직한 반려동물 문화를 제시하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2019-06-25 09:46:15

김준 고려대 사학과 초빙교수

[김준의 시사로 읽는 한자] 樂不思蜀(낙불사촉) : 새 것이 즐거워 고향 생각이 안 난다

263년 위나라가 촉나라에 쳐들어갔다. 촉나라의 황제 유선(劉禪)은 순순히 항복하고, 촉나라는 멸망했다. 위나라에서는 그에게 안락공(安樂公)의 벼슬을 내리고, 위나라 수도 허창(許昌)에서 살게 했다.유선은 아비 유비(劉備)와 달리 포부도 없었다. 허창에서도 그는 여전히 놀기를 즐겼다. 사마중달의 아들 사마소(司馬昭)는 유선을 불러 자주 술을 마셨다. 사마소는 연회를 열고 촉나라 사람에게 촉 음악을 연주하게 했다. 유선을 따라온 촉나라 관리들은 눈물을 흘렸다.사마소가 유선에게 물었다. "촉나라 생각이 안 나시오?" 유선은 "지금 즐겁기만 하오. 고향 생각이 안 나오"라고 했다. 사마소는 더 이상 유선을 감시하지 않았다.즐거워서(樂) 촉나라(蜀)를 생각하지 않는다(不思)는 낙불사촉(樂不思蜀)의 유래이다. 현재의 생활을 즐기며 고향이나 조국을 잊어버리는 사람이나 그 행위를 비유하는 말이다.유선의 운명은 순탄하지 않았다. 조조에게 쫓겨 어린 유선은 아비와 사별할 뻔한 적이 있었다. 다행히 장수 조운(趙雲)이 목숨을 걸고 유선을 구출해 유비에게 바쳤다. 유비는 아기 유선을 팽개치며, "아이 때문에 유능한 장수를 잃을 뻔 했소"라고 했다.유선은 황제가 되어서도 제갈량과 같은 권신들의 눈치를 봐야 했다. 그런데 포로로 위나라에 와서는 시름을 놓고 자신의 삶을 즐길 수 있었다. 적국에서 안락한 삶을 찾은 것이다. 아이러니한 일이다.현재 한국에는 일제 식민지 시대 한반도를 떠났던 사람들의 후손들이 많이 돌아오고 있다. 1940년 통계를 보면 당시 한반도 인구의 10% 정도가 해외에서 (유랑)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후손이 고향으로 오고 있는 것이다. 결혼 이주여성을 비롯해 많은 외국인들도 정착하고 있다. 우리에겐 그들을 낙불사촉하게 하는 너그러움과 지혜가 있을까.

2019-06-24 18:00:00

김구철 경기대 미디어학부 특임교수

[김구철의 富의 비밀수학]수학 참고서 저자들의 엇갈린 인생

학창 시절 학문하면 배고프다, 특히 수학하면 밥 굶는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래서 문과생은 법상, 이과생은 의공으로 모두 몰렸다.그런 판에 수학 참고서를 써서 큰돈을 번 세 사람이 있었다. 정경진(수학의 완성), 홍성대(수학의 정석) 그리고 최용준(해법수학)이다. 정경진 종로학원 회장이 가장 먼저 수학 참고서 시장을 평정했고, 이후 홍성대 상산고 이사장이 쓴 수학의 정석이 수학 참고서의 왕으로 군림했고 아직도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최용준 천재교육 회장의 해법수학은 명문대 입시생들이 많이 찾았지만, 본고사가 폐지되면서 인기를 잃었다. 어쨌든 세 분은 수학을 공부해도 돈을 많이 벌 수 있음을 입증했다. '부자 되려고 좋은 밭 살 필요 없다. 책 속에 천 종 즉 6천 석 녹봉이 있다'.(富家不用買良田 書中自有千鍾粟) 송 진종의 권학문 시 표현대로다.그중 최용준 회장이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이희호 여사의 장례위원으로 다시 한 번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홍성대 이사장은 전주 상산고가 자립형사립고 재지정에서 탈락할 위기라 요즘 핫한 인물이 됐다.남은 한 분 정경진 회장은 10년 전 언론 인터뷰를 마지막으로 특별한 행적이 없었다. 그 인터뷰에서 정경진 회장은 "과정 없이 결과만 따지는 교육으로는 21세기 국제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정당한 경쟁 없이 개인도 나라도 발전할 수 없다"고 말했다.사실 18세기 초까지 서양을 압도하던 동양이 서구에 세계사의 주도권을 넘겨준 것은 신대륙의 발견이나 화약, 나침반의 발명이 아니었다. 18세기 이후 뉴튼, 라이프니츠, 가우스 등 천재들의 맹활약으로 수학과 물리학에서 앞섰기 때문이다.21세기 새로운 경쟁 사회에서 한국이 살아남으려면 수학과 과학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국제 사회에서 통용될 만한 천재를 길러내야 한다. 지난번 U-20 월드컵에서 18세 천재 이강인의 위력을 보고도 '무조건 평준화'인가?

2019-06-24 18:00:00

[세월의 흔적] (28)교동시장…피엑스 물건 밀매 '양키시장' 주얼리 거리 우뚝

교동이란 이름은 옛날 향교가 있었던 동네라는 뜻이다. 그리고 교동시장은 6․25전쟁의 여파로 생겨난 시장이다. 전쟁으로 피난 내려온 사람들이 대구역 주변에 자리를 잡았다. 교동과 동문동 일대에 피란민들의 임시수용소가 여러 곳 있었고, 그들은 생계 수단으로 교동지역에 상권을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주변 건물과 도로변에서 미군부대 피․엑스에서 흘러나온 물건을 팔기 시작함으로써 '양키시장'으로 불리기도 하였다.그 당시 대구역 좌우로 미 군수품 보급창고와 피․엑스가 있었고, 육군본부를 비롯한 군부대가 대구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군수품이 암시장으로 흘러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 같은 물건을 파는 것은 위법이었기 때문에 수시로 단속하였고, 그럴 때면 문을 닫고 피해 달아나곤 했었다. 그래서 '도깨비시장'으로 불리기도 하였다.1956년 '교동시장'으로 정식 허가를 받았다. 보따리 무역, 탈세 수입품, 미군부대 물품 등을 취급하면서 수입품 시장으로 발전하였다. 다닥다닥 붙은 가게에서 갖가지 수입물품을 기반으로 삼아 전자․전기․의류․음식․귀금속 등속의 상권이 넓게 형성되었고, 알음알음으로 단골들도 많았다. 그야말로 '없는 게 없는' 시장으로 불리며 1980년대까지 호경기를 누렸다.교동시장 주변에는 명소가 많이 있었다. 대구 빵 공장의 전설 같은 존재인 수형당(1946년 개업), 도넛으로 유명했던 공주당(1970년대초 석탑베이커리로 개업), 대구 최초의 예식장이었던 대구예식장(1952년 개업), 60여 년의 역사를 가진 강산면옥(1958년 이전개업), 혼수 마련의 명소인 주단거리(현재 10여 개 업소가 성업중), 대중가요 '굳세어라 금순아'의 산실인 오리엔트레코드사(1946년 설립), 중앙극장과 명보극장, 그리고 대구 MBC가 대구상공회의소 회관건물에서 라디오 방송을 하였다.1972년 동아백화점이 문을 열었다. 동화백화점은 건축주의 부도로 화성산업이 떠맡은 것이다. 1971년 화성산업이 동문동의 교동상가아파트 공사를 시공하다가 건축주의 부도로 건축물을 인수하였고, 1970년 설립된 동아수퍼체인 23개를 흡수하여 백화점으로 문을 열었다. 그 뒤 무료 셔틀버스를 운행하였고, 볼링장과 패스트푸드 가게가 들어섰으며, 1984년 KBS의 오픈 스튜디오가 처음으로 문을 열었던 곳이기도 하다.교동시장은 1990년대부터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수입 지유화의 여파로 시장의 중심거리와 교동백화점을 중심으로 형성된 수입품 시장은 개점휴업 상태이다. 그러나 대구역에 롯대백화점이 들어선 뒤로 젊은 사람들의 이동이 늘어나면서 컴퓨터와 연관된 상권이 새롭게 자리 잡아가고 있다. 또한 귀금속을 취급하는 가게들이 들어서면서 새로운 품목 전환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귀금속 거리가 생겼다. 이른바 '주얼리 거리'로 불리는 이곳은 교동시장의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 있다.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게 상가를 새롭게 단장하는 한편, 수리 전문점․귀걸이 판매점․배달 전문업 등으로 세분화함으로써 인기를 얻고 있다.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김 종 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2019-06-24 18:00:00

박창원 톡톡지역문화연구소장·언론학 박사

[박창원의 기록여행] 독도 사건 사망자 배상금 6만원

'위문금 3백15원을 가져온 동인동 공민학교 생도를 대표하여 송안자, 이순란 두 여자가 동교 최단진 교원 인솔하에 13일 본사를 내방한 미화가 있다. 비록 적은 금액이나 동인동 일대의 천막촌에 사는 여자들로서 그 생활은 실로 처참한 지경에 있으면서도 넘치는 동족애는 눈물겨운 기금이라 아니할 수 없다.'(남선경제신문 1948년 7월 14일)하루하루의 삶이 절박한 천막촌의 난민들마저 위문금을 냈다. 바로 독도 조난 동포를 돕는 일이었다. 당시의 표현이 독도 조난 동포였지 항해 중 당한 재앙이 아니었다. 미역을 따다 졸지에 당한 참변이었다. 어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미군 전투기의 무차별한 폭격을 받고 희생되었다. 한 달 보름이 지나서야 위령제를 지냈고 십시일반으로 모은 60여만원의 위문금과 의약품, 대구능금 등이 전달됐다.1948년 6월 8일. 그날따라 독도 해안의 파도는 잠잠했다. 전날인 7일 오후 울릉도서 독도로 출발한 주민들은 뒷날 새벽에 도착했다. 이미 울진의 죽변이나 강원도 묵호 등에서 온 10여 척의 배가 바다 위에 떠 있었다. 조그만 발동선과 범선을 합해 모두 20척은 되었다. 배를 타고 온 승선 인원만 60명에 달했다. 이들은 아침을 지어 먹고는 바로 미역 채취에 들어갔다.허리를 펴고 휴식을 취할 즈음인 오전 11시. 비행기 소리가 들렸지만 주민들은 예사롭지 않게 생각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다시 비행기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곧바로 폭탄이 떨어졌다. 산더미처럼 물이 솟아오르고 비명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주민들은 허겁지겁 바위틈으로 숨어들었다. 그 사이 배가 몰려 있는 곳에도 폭탄이 터졌다.비행기는 미국의 식별 표시가 보일 정도로 낮게 날며 섬 주변을 폭격했다. 기선 5척과 범선 8척이 가라앉고 14명의 선원이 목숨을 잃었다. 독도에서 어민들을 향한 미군 비행기의 사격은 그해 들어서도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어부와 어선을 무차별적으로 겨냥해 쏘지는 않았다. 미군은 폭격 사실을 부인하다 뒤늦게 인정했다. 미군의 B29전투기가 어선을 바위로 잘못 보고 연습 폭격을 했다는 게 다였다.그런 뒤에도 미군의 수습 대응은 안하무인이었다. 현장 조사에서 사망자를 발견하자 위생상 이유로 미군 자신들이 타고 간 배에 싣는 걸 거부했다. 대신에 로프로 매달아 끌겠다는 제안을 했다. 게다가 쥐꼬리만 한 배상금은 기준조차 뒤죽박죽이었다. 경상자가 12만8천원인 데 비해 중상자에게는 1만4천원이 책정되기도 했다. 사망자도 34만원에서 11만원으로 격차가 컸다. 심지어 부상자보다 적은 6만원을 받으라는 경우도 있었다. 이는 그때 쌀 한 말이 1천원을 오르내렸으므로 대략 6가마니 값이었다.독도 사건의 진상은 여전히 묻혀 있다. 희생자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다는 추정이 있을 뿐이다. 6'25전쟁일 아침에 동맹국의 얼굴 위로 당시 승선자의 증언이 오버랩되는 이유다."폭탄이 떨어질 때 비행기를 향해 배에서 죽을 힘을 다해 태극기를 흔들었지만 소용없었다."톡톡지역문화연구소장'언론학 박사

2019-06-24 18:00:00

[유물로 읽는 동서양 생활문화] 로마, 거대한 수도교 세워 도심 수돗물 공급

◆인천 붉은 수돗물 파동, 대구 수도관은?"인천 붉은 수돗물은 수도관 벽에서 떨어진 물때와 침전물 때문이다."환경부가 지난 18일 내놓은 인천지역 '붉은 수돗물' 진상조사 결과다. 인천시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서울 풍납취수장과 성산가압장이 정기 점검으로 5시간 가동을 멈춘 사이 다른 곳에서 물을 끌어왔던 게 화근이었다. 물의 방향이 바뀌면서 상수도관 벽의 때와 침전물이 요동친 거다. 수도관이 그만큼 낡았다는 얘기인데…. 250만 대구 시민의 수돗물은 낙동강 등에서 끌어온다. 낡은 수도관에 유해 물질이 섞이는 일은 없을 거라 믿어보며 고대 로마의 상수도 문화를 들여다본다.◆고흐와 세잔의 프로방스, 로마 프로빈키아 유래프랑스 남부 지방 프로방스(Provence)로 가보자. 그림처럼 아름답다. 기후도 연중 온화하다. 겨울에도 수도 파리와 달리 햇빛이 자주 든다. 그러다 보니 예술 분야에서 돋보인다. 햇빛을 좇아 빈센트 반 고흐가 1888년부터 1889년까지 15개월을 살며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키던 아를이 먼저 떠오른다. 돈 맥클린의 명곡 '빈센트'의 주인공 고흐는 이곳에서 '론강의 별밤'을 그린 데 이어 정신병원에서 '별밤'을 그리며 그의 예술세계를 정점으로 이끈다. 비제의 주옥같은 선율 '아를의 여인' 무대도 아를이다. 프랑스 근대미술의 거장 세잔이 태어나 활약한 엑상 프로방스, 영화의 도시 칸, 니스도 프로방스다. 로마인들이 기후 조건과 환경이 이탈리아 반도와 비슷한 이곳에 속주 프로빈키아(Provincia원래는 통치권이라는 의미)를 세우면서 나온 이름이다. 그러다 보니 로마 유적도 많다. 그중 수도 로마의 콜로세움 다음으로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로마 유적 퐁 뒤 가르(Pont du Gard)를 빼놓을 수 없다.◆로마 최대 수도교, 님의 '퐁 뒤 가르'프랑스어로 퐁(Pont)은 다리, 가르(Gard)는 아비뇽과 님, 아를 사이 지명이다. 가르 지방에는 가르동(Gardon)강이 흐른다. 이 가르동강 계곡을 가로지르는 로마 수도교가 퐁 뒤 가르이다. 수도교란 수도관이 지나는 다리이다. 퐁 뒤 가르의 위용을 보자. 높이는 무려 48.77m. 콜로세움과 비슷하다. 3층 구조인데, 1층의 아치 높이는 21.87m, 2층 아치 19.5m, 3층 7.4m이다. 수돗물은 교량 맨 꼭대기로 지난다. 놀라운 대목은 당시 전동 가압장치가 없어 수원지 위제스에서 님 저수장까지 50㎞를 오직 고도 차이를 이용해 물이 흐르도록 한 점이다. 위제스와 님의 고도차는 해발 76m대 59m. 구불구불 50㎞ 거리에 고도차가 겨우 17m라면 평균 경사도 0.034%를 적용해야 자연스럽게 물줄기가 이어진다. 심지어 일부 지점의 경사도는 0.007%까지 낮췄다. 로마의 공학 수준에 입을 다물기 어렵다. 퐁 뒤 가르를 누가 만들었을까? 미술 화실에서 소묘할 때 접하는 두상, 아그리파 장군이다. B.C 19년에 만든 퐁 뒤 가르의 기술력을 프랑스가 다시 회복한 것은 18세기다.북아프리카 카르타고 수도교 80㎞, 수도 로마 91㎞50㎞는 짧다. 북아프리카 카르타고(B.C 146년 멸망 뒤 로마 도시가 됨)로 가보자. 수원지 자구안에서 지중해안 카르타고까지 오는 수도교는 길이가 80㎞나 됐다. 대구의 수원지는 물론 서울의 팔당 수원지보다 더 먼 거리다. 수도교의 효시는 수도 로마에 B.C 144년에 완공한 아쿠아 마르키아(Aqua Marcia)다. 길이가 91㎞에 이른다. 로마가 처음 상수도를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B.C 312년으로 아쿠아 아피아(Aqua Apia)다. 지상에 수로를 만들거나 수도관을 매설하다 차츰 거리가 멀어지자 아치형 교각으로 고도 차이를 조절할 수 있는 수도교를 세웠다. 3세기 수도 로마에만 11개, 지중해 전역의 속주에 수도교를 설치했다. 지금도 터키, 스페인, 북아프리카를 비롯한 지중해 곳곳에 수도교 잔해가 남아 로마의 위생문화와 토목 기술력을 보여준다.

2019-06-24 18:00:00

장동희 새마을세계화재단 대표이사, 전 주핀란드 대사

[세계의 창] 화웨이 사태, 원칙과 일관성 있는 외교 각성 계기로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이 엄중하다. 북핵 문제는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사카 G20 정상회담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지만 한일 정상회담 개최조차 불확실할 정도로 한·일 관계가 악화되어 있다.미국의 중국 상품에 대한 고율관세 부과로 시작된 미중 간의 무역전쟁은 5G, 인공지능, 사이버 등과 같은 기술 분야를 넘어 양국 간의 패권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한국은 화웨이 사태를 둘러싸고 미·중 양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우리나라가 이렇게 외교적으로 사면초가 상태에 빠지게 된 것은 우리 스스로 자초한 면이 크다. 그간 우리 외교는 국제 규범에 입각한 원칙과 일관성 있는 태도를 보여주지 못했다. 특히, 미·중 간 대립 양상을 보이는 이슈마다 한국은 양측의 눈치를 보며 우왕좌왕하다 양국의 신뢰를 모두 잃었다. 미·일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사이에서 눈치를 보다 한국은 결국 RCEP에 참가한다. 미국이 반대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 시에도 마찬가지였다. 이 때문에 동맹국인 미국을 거슬러가며 중국이 주도하는 무역과 국제금융체제에 가입하고서도 중국으로부터 평가를 받지 못했다.사드(THAAD) 배치 과정에서 보여준 우리 정부의 태도는 더더욱 실망스럽다. 사드 발사대 반입 보고 누락, 환경영향 평가 미실시, 국회 비준 동의 필요성 등 제반 이유를 들어 사드 배치를 지연시키다가 미국 조야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2017년 6월 9일 "정부는 한·미 동맹 차원에서 약속한 내용을 근본적으로 바꿀 의도가 없다"고 발표한다. 이후 우리 정부가 환경영향평가를 조건으로 사드를 임시 배치하기로 결정하자, 중국은 사드 철수를 요구하며 우리나라에 대하여 전 방위적 제재를 가한다. 사드 최종 배치가 지연되자 미국은 미국대로 우리에 대한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많은 전문가들이 중국의 사드 보복 조치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것을 권유하였지만, 청와대 대변인은 북핵 공조 필요성을 들어 제소 불가 입장을 밝혔다. 결국 우리 정부는 국제 규범이나 원칙보다는 시류를 선택했다. 이는 2017년 10월 말 국회 국정감사 시 강경화 외교장관의 삼불 발언으로 이어져 주권 포기 논란까지 야기시켰다.이러한 상황에서 맞이한 화웨이 사태는 우리에게 더욱 어려운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미국은 보안 문제를 들어 화웨이 5G 장비를 사용하지 말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시키는 대로만 하지 말고 옳고 그름을 잘 따져 판단하라고 겁박한다.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는 이달 초 서울에서 개최된 한 콘퍼런스에서 "신뢰할 만한 5G 공급자 선택이 중요하다"며 공개리에 한국을 압박하고 나섰다. 이후 가진 비공개 간담회에서는 화웨이와 화웨이 장비를 쓰는 'LG유플러스'를 콕 집어 '안보 위협'을 거론했다 한다. 지난 6월 7일 청와대 관계자가 "(화웨이 장비 사용이) 한미 군사 안보 분야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고 말하자, 해리스 대사는 "나는 그 발언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정면 반박했다. 화웨이 장비 사용 문제는 단순한 제품 구매 문제가 아니라, 미·중 간 패권 경쟁의 전초전이다.사드 사태가 '국가 안위에 관한 사항은 주권 사항으로서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원칙만 고수하면 되는 2차 방정식이었다면, 화웨이 사태는 경제, 기술, 안보, 국제 전략이 혼재되어 있는 고차 방정식이다. 사드와 화웨이 같은 사태는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것이다. 미·중 사이에서 좌고우면하며 시류에 편승하는 태도를 지속할 경우, 한국은 양측 모두로부터 버림받을 것이다. 위기를 잘 극복하면 기회가 된다. 화웨이 사태가 한국이 국제 규범과 원칙에 따른 일관성 있는 외교의 필요성을 깨닫게 하는 보약이 되길 기대한다.

2019-06-24 14:09:18

[기고]"수돗물 마시면 건강하게 오래 삽니다"

인간의 수명이 연장되면서 최근 '백세시대'라는 말을 많이 한다. 이렇게 우리가 백세시대를 맞이할 수 있었던 가장 핵심 요소는 당연 '물'이라고 할 수 있다. 수도시설의 발전과 함께 각 가정으로 깨끗한 물이 공급되면서 인간의 수명은 연장됐다.특히 인체는 70%의 수분으로 이뤄져 있어 물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체내에 흡수된 물은 신진대사 촉진과 각종 질병 예방, 산소와 영양분 운반 및 공급, 노폐물 배설, 체온 조절, 혈액 농도 조절 등 다양한 역할을 한다. 체내에 수분이 2~3% 부족하면 초조함과 무기력, 불쾌감을 느끼고 5% 부족 시 매스꺼움과 반혼수 상태, 12% 이상 부족 시에는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인간의 노화 또한 체내에서 수분이 줄어드는 현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유아는 약 90%, 청소년·성인은 약 70%, 노인은 약 50%의 수분을 유지한다는 결과만 봐도 알 수 있다. 체내 흡수율이 빠른 '물 마시기'만큼 인체에 여러 가지 영양소를 제공할 수 있는 가장 쉽고 효과적인 방법은 없을 것이다.물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어떤 종류의 물을 마시느냐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다. 사람이 마실 수 있는 물 중에서도 가장 안전하고 미네랄이 균형 있게 포함된 건강한 물을 꼽으라면 단연 '수돗물'이다.수돗물을 꼽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짧은 가장 큰 이유도 수도시설이 없거나 오염된 물을 마시기 때문이라고 판단하는 전문가들이 많다.영국의 저명한 브리티시 메디컬저널은 20세기 들어 인간의 평균수명이 약 35년 늘어난 이유 중 30년은 수도시설의 발전 덕분인 것으로 평가했다. 우리나라를 봐도 수도시설의 발전 전후로 인간의 평균수명이 늘었다는 연구 결과를 쉽게 찾을 수 있다.2016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서는 수돗물 섭취 전·후의 신체 변화에 대한 임상 실험을 했다. 실험 결과 몸에 나쁜 콜레스테롤(LDL)과 중성지방은 감소했으며, 몸에 좋은 콜레스테롤(HDL)은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앞서 녹색소비자연대와 서울시, 고려대학교가 각자 수돗물과 정수기 물을 대상으로 수질 검사한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다. 실험 대상이 된 21∼58%의 정수기 물에서 세균과 대장균 등이 발견, 먹는 물로서의 기준치를 초과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수돗물은 조사 대상 전체 401건 중 1건도 기준을 넘지 않았다.이런 연구 결과에도 수돗물에 대한 거부감이 들 수 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수돗물은 일간과 주간, 월간, 분기, 연간 단위로 수질 검사와 실시간 모니터링을 하고 있어 수도꼭지에서 나온 물을 그대로 마셔도 무방하다.또 한국수자원공사가 수탁받아 관리하는 예천군 등 23개 지자체의 상수도는 더 안전하다. 가정에서 직접 받은 수돗물을 직접 수질 검사한 결과를 바로 알려 주는 '수돗물 안심 확인제'를 실시하고 있어서다.바야흐로 '백세시대'다. 건강관리를 하는 데 가장 손쉽고 효과적인 방법은 '수돗물 마시기'다. 기고를 통해 수돗물에 대한 인식이 바뀌길 기대하며, 많은 사람들이 수돗물 마시기에 동참하시기 바란다.

2019-06-24 14:03:57

김윤정 대구예총 편집장

[매일춘추] 인생을 낭비한 죄

어느새 1년 중 반이 찼다. 나이 들수록 시간이 빠르다더니 한 주가, 한 달이, 일 년이 금방이다. 가끔은 시간 가는 걸 몰라 내 나이 앞자리수가 바뀐 것도 의식하지 못할 때도 있다.고2인 딸이 진로결정을 두고 조바심이 생기는지 중학교 때 허송세월한 게 후회된다고 자책했다. 나도 후회가 됐다. 그때 공부 좀 하라고 잔소리할 걸.예전에 설날 특집 영화로 TV에서 본 빠삐용이 떠오른다. 누명을 쓴 빠삐용이 꿈 속에서 무죄를 주장하자 재판관이 "네 인생을 낭비한 죄"라며 죽음을 선고했다. 소파붙박이로 주말을 보낸 밤이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명대사다.인생을 낭비하지 않으려면 '도전'만한 게 없다. 도전은 인생을 쫀쫀하게 만들고 도전으로 인한 극복은 삶의 깊이를 더해 준다. 이 원고를 쓴 것도 나에겐 도전이었다. A4의 하얀 여백은 언제나 압박감을 준다. 읽는 이의 마음을 뒤흔들며 줄줄줄 써내려 갈 수 있는 필력이 있으면 좋으련만 고만고만한 문장력으로는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참 잘 썼다는 소리를 듣고자 했던 야망을 내려놓으니 글쓰기가 한결 편해지긴 했다. 매주 인증샷까지 찍어가며 피드백을 해 주신 고마운 분들의 격려에 새로운 인생 목표도 생겼다.도전할 것이 있다는 것은 목표가 있다는 것이다. 목표를 이루는 방법은 시작하는데 있다.여차저차 미루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못한다. 자신의 갈 길에 대한 의지와 노력이 있다면 모자란 재능은 뛰어넘을 수 있다. 천재적 능력자라는 사실에 비해 덜 화려할 수는 있겠지만 몹시 훌륭하다. 뉴스에 보도된 75세 보디빌더 할머니도, 취미활동이 직업이 된 내 친구도 하고 싶은 것을 정하고 실천에 옮겼으니 박수받아 마땅하다.오랜 직장을 퇴사하고 인생 2모작, 3모작을 개척하려는 지인들을 자주 본다. 나이를 먹으니 나의 미래가 걱정되고 그들의 미래가 염려되는 오지랖이 생긴다. 100세 시대가 되니 인생은 언제 어느 순간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좋은 점도 있다. 다시 시작할 때에는 생계만 위한 일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도 높일 수 있는 일이면 더 바랄 게 없겠다. 그동안 쌓아 온 지혜와 인생 경험이 2부, 3부의 인생을 디자인하는데 내공이 되어 줄 것이다.'부작위 편향'이라고 무언가를 함으로써 생기는 피해보다 하지 않고 받는 피해가 낫다는 심리로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으면 무기력한 사회가 될 게 뻔하다. 나 또한 무엇을 해야 좋을지 아직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현재에 머물러 있으면 안된다는 사실이다. 내 인생을 낭비한 범법자가 되지 않으려면 선물같은 오늘부터 준비하고 시작해야 한다. 인생 팔홉이라고 하니 너무 욕심은 부리지 말자. 100세 더 이상을 살지 어떻게 알겠는가. 김윤정 대구예총 편집장

2019-06-24 11:12:04

유영애 대구중앙중 교감

[기고] 교사를 가르치는 학생의 질문

초등학교를 마치고 갓 입학한 중학생들의 얼굴은 그래도 맑다. 대한민국 초등생이 겪는 학업 스트레스가 위험 수준에 이른다고 해도 말이다. 중학교에서 1학년은 아직 어설프고 뭔가 잘 모르는, 그리고 조그만 일에도 쪼르르 달려와 이르거나 매달리는 떼쟁이. 뭐 그런 존재로 생각된다.문학 수업을 진행하면 삶의 갈등을 다룰 때가 많다. 이럴 때 기본적으로 깔고 시작하는 것이 '인간의 불완전성'에 대한 강론이다. "인간이 불완전한 이유는 말이야!" 영원히 살지 않는다는 것, 미래를 모른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상상이 위대하다는 것, 그래서 문학이 아름다운 것까지 한데 묶어 열변을 토한다.이런 이야기가 자주 반복되다 보니 하루는 한 학생이 손을 들어 이렇게 질문하는 것이다. "선생님! 그럼 우리는 어디서 완전함을 찾아야 하나요?"순간 교실은 거짓말처럼 조용해졌고 다수의 집중된 눈에서 나온 파란 광선이 정적을 타고 내 얼굴에 마구 꽂혔다. 모두 '맞아! 그게 뭐지?'라는 표정이었다. 머리가 찌르르해지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이런 질문이 나올 거라 생각지 못했기에 당황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조금 뜸을 들이며 속으론 버둥거렸다. "그래! 정말 멋진 질문이다. 이것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결국은 존재에 대한 이타심이 아닐까?"라고 대충 얼버무린 것 같다.한참 지나고 보니 그 아이는 가볍게 털어버린 것 같은데 나는 그 질문을 매달고 지낸 것 같다. 이제 성인이 되었을 그 학생도 지금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동분서주하지 않을까 싶다.최일남의 단편소설 '노새 두 마리'를 수업할 때의 일이다. 이 작품은 가난한 아버지의 눈물겨운 이야기다. 말하기 영역을 마무리 활동으로 정하고 자신의 아버지를 소개하는 '1분 스피치'로 진행했다. 켄트지를 주고 '아버지' 하면 떠오르는 것을 무엇이든 그려 넣고 여백에다 발표할 내용을 적으라고 했다.한창 발표가 무르익어 갈 때 'NO'라는 글자로 켄트지를 가득 채운 학생이 사연을 얘기했다. 아버지께 뭔가를 요청하면 대부분 "하지 마!"라는 답변이 돌아오니 힘이 좀 안 난다고 했다. 힘이 안 난다는 것을 고백하면 어떠냐고 했더니 그 학생은 대답 같은 질문을 했다."내가 아버지 말만 잘 들으면 'NO' 할 일이 없지 않을까요?" 그 순간 뭔가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뒤늦은 깨달음이랄까. '아! 그래, 나는 왜 항상 상대방을 바꿀 생각만 했을까!' 습관이 다른 남편에게 열을 올릴 때마다 개의치 않던 남편의 덤덤한 눈빛과 학생의 건조한 눈빛이 스르르 겹쳤다.학생이 무슨 의미를 갖고 한 질문인지, 아니면 그냥 무심코 던진 질문들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윌리엄 워즈워스의 감탄사에 공감이 간다. 그러면서 학생들에게 더 다가갈 수 있는 힘을 얻곤 한다. 여전히 떼쟁이지만, 그래도 나를 환히 비춰주는 맑은 거울들을 감사하게도 매일매일 만난다.참고로 학생들의 켄트지 속 아버지는 아쉽게도 소주병, 담배, 소파, 텔레비전 등으로 많이 그려졌다. 하지만 아버지가 끓여주는 심야의 라면, 검은색으로 물든 러닝셔츠, 끈 풀린 낡은 구두, 할머니께 입양된 아버지를 위한 커다란 하트도 있었다.

2019-06-24 02:30:00

노동일 경희대 교수

[이른 아침에] 정부 전체의 기강해이다

이쯤 되면 남북통일이 된 거나 진배없다. 그게 아니면 자유 왕래 정도는 실현된 것이다. 적어도 북한 주민들에게는 말이다. 남북을 자유로이 오갈 수 있으니 하는 얘기다. '제집 드나들 듯'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지 싶다. "내레 북에서 왔수다. 서울에 있는 이모하고 통화하고 싶으니 손전화 좀 빌려주시라요." 삼척항에 정박한 북한 선박을 처음 발견한 것은 주민들이었다. 그들 사이의 대화가 이랬을까. 사진을 보면 출동한 경찰도 북한 주민들과 한가로이 대화하고 있다. 국정원은 2명이 돌아가겠다고 하자 즉시 보내 주고 2명만 남았다고 한다. 이게 자유 왕래가 아니고 무엇인가.이번엔 '목선 귀순'이라 해야 하나. 이른바 '노크 귀순'에 이어 처음부터 끝까지 어이가 없는 사건이다. 이른바 '물샐 틈 없는' 경계망은 해상과 해안선에도 펼쳐져 있다. 고속정, 초계정 등과 해상초계기, 해군과 육군의 감시 레이더, 해안 경계 부대와 해경의 감시망까지. 그런데 알고 보니 구멍 뚫린 그물망이 아닌가. 출발부터 도착까지 우리의 어떤 감시망에도 북한 선박은 포착되지 않았다. 새벽에 항구로 유유히 들어오는 동안에도 아무런 경보가 울리지 않았다. 백번 양보하여 통통배 수준의 작은 선박까지 식별하고 적발하는 것을 군의 임무라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하자. 우리 어선들과 확연히 다른 북한 배가 유유히 항구에 들어오는 데도 적발 못한 책임은 군보다는 해경이나 해양수산부가 져야 한다. 그럼에도 왜 모든 질책을 군이 받고 있는 걸까.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함으로써 군 스스로 자초한 수난이라고 해야 한다.군의 처음 브리핑에 따르면 짐짓 별것 아닌 사건이었다. 삼척항 인근에서 표류하던 북한 선박을 우리 군이 발견하여 항구로 예인하였다는 식의 미담(?)이었다. 표류 중이었으니 선원들은 당연히 돌려보낼 것으로 생각했지만 일부가 귀순 의사를 밝혔다는 말에 약간 의아했을 뿐이다. 군이 아닌 주민 신고가 있었고 배는 이미 삼척항에 들어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군을 향한 질타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불필요한 변명은 또 다른 변명을 낳고 군이 뭇매를 맞는 상황이 되었다.군은 '경계 실패' 논란에 대해 파고가 높아서 작은 배를 식별하지 못했다고 변명했다. 당일 평균 파고는 0.2m 내외에 불과했다는 지적에 거짓말이었음이 당장 드러났다. 장비가 좋지 않다는 말이 왜 안 나오나 했지만 여러 변명 끝에 결국 나왔다.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등이 있을 때마다 장비 탓으로 돌리며 막대한 세금을 들여 각종 장비를 보강한 바 있다. 허위 브리핑을 한 국방부를 감싸는 청와대의 변명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다. 국방부는 해경보고서를 보지 못해 혼선이 있었다는 것이다. 청와대 등 안보 관련 기관들과 모두 공유한 보고서를 국방부만 보지 못했다? 정부 부처 간 협조가 그만큼 허술함을 자인한 발언에 다름 아니다. 아직은 전가의 보도인 전 정권 탓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가장 책임을 통감해야 할 국방부 장관은 '문책'만을 강조한 사과문을 읽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기자들의 질문을 무시해도 무탈한 법무부 장관에게서 영감을 받았나 싶다. 대통령과 장관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사과를 했다던가. 국정원의 태도 역시 이해할 수 없다. 사진을 보면 북한 주민들은 깨끗한 차림이다. 며칠 동안 바다를 헤맨 사람들이라고는 믿을 수 없다. 그런데도 그들의 말만 듣고 두 사람을 신속하게 돌려보냈다."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 군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이다. 경계 실패보다 더 용서할 수 없는 것은 국민에 대한 허위 보고이다. 국민에 대한 허위 보고보다 더 용납할 수 없는 것은 총체적으로 나사가 풀린 정부의 기강 해이다. 이제는 북한이라면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기로 작정한 것인가. 정부에 묻고 싶고 대답을 듣고 싶다.

2019-06-23 13:48:44

김종광 소설가

[춘추칼럼] 문학을 사랑하라!

소설이 안 읽히는 이유 중 하나는 뉴스가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허구(그럴듯하게 꾸민 일)보다 실제사건이 더욱 흥미진진하고 날마다 계속된다. 그 어이없고 끔찍하고 무서운 사건들에 대해서 '재미'나 '흥미진진한' 같은 표현을 써서는 안 될 테다. 그러나 그 사건들을 보도하는 미디어의 작태와 대중의 반응을 보면, 너무도 즐기는 듯하다. 어쩌면 그토록 소설보다 더 '허구'스러운 일이 실제 남발하는 까닭은 소설을 안 읽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문학 따위가 사람에게 무슨 필요가 있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로 문학 행위를 하는 사람은, 그러니까 일상적으로 시나 소설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은 극소수다. 10명 중 한 명 있을까 말까 하다. 하지만 우리 국민이 문학의 필요성을 인지하면 초중고에서 문학 교육을 하고, 문학에 최소한의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문학을 종교처럼 떠받들어 줄 것일 테다. 문학을 '긍휼히' 대우해주는 것이다.누가 생각하더라도 가장 먼저 태어난 예술은 미술, 음악, 무용일 것이다. 경험이나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서 그렸든 재미로 그냥 그렸든 동굴 벽화로부터 미술은 발전했을 테고, 신호이든 감정의 반영이든 노래로부터 음악은 성장했을 테고, 제의든 축제든 다 함께 어울리는 행위로부터 무용은 진보했을 테다. 인류가 문자를 만들어 내고서야 문학은 탄생할 수 있었다. 노래를 기록한 것에서 시가 나왔고, 공동체 행사 대본으로부터 희곡이 생성되었다. 시로는 담아 내가 벅찬 이야기들이 수필이 되었고, 비로소 소설이 되었다. 시와 수필과 희곡과 소설을 평가하는 비평이 나왔다.문학이 없었어도 인류는 별문제 없이 존재했을까? 아마도 문학이 없었다면 인류는 지금과 같은 긍정적인 사회를 이루기 힘들을 테다. 문학은 감정을 발달시킨다. 개별적인 인생을 이야기한다. 이해타산이 아니라 감정을 표현한다. 하여 타자의 처지를 헤아리게 만든다. 존중하게 한다. 배려하게 한다. 또한 문학은 생각하게 만든다. 관념이 고정되지 않도록 문제를 제기한다. 불의와 싸우도록 한다. 모순을 파헤치도록 충동한다. 이 끝없는 감정과 생각 행위, 즉 문학은 대단한 정신노동이다. 인류역사에서 문학하는 자는 언제나 소수였고, 문학이 사회 제 분야에서 차지하는 지분은 늘 유명무실했지만, 사실은 절대적인 균형추이거나 없으면 안 되는 심장이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문학과 더불어 발달하지 않았다면, 인류는 동물의 무리에 지나지 않았을 테다.어느 시대나 일정 수준의 문학인(작가뿐만 아니라 문학을 애호하는 독자)은 존재한다. 어느 시대는 문학인의 비율이 현저히 떨어지고, 어느 시대는 급격히 상승한다. 경제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문학인이 많은 시대일수록 상식과 도덕이 통하는 사회일 테다. 문학인이 희박한 시대는 야만 사회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생각하는 훈련을 해본 적이 없는 이들과 감정을 조율할 줄 모르는 이들만 가득한 사회, 생각만 해도 아찔하지 않은가.국어는 의당 가르쳐야겠지만, 국어 가르치듯이 문학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 문학을 자유롭게 감상하도록 이끌고 다각도로 느끼고 생각하는 방법을 도와주는 게 문학 교육이어야 한다. 평가의 조건으로, 시험문제를 풀기 위한 지문으로, 오로지 하나의 해석만 가능한 것으로, 게다가 억지로, 이런 식으로 배우는 건 엉터리다. 그런 식으로 배우니까,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문학이라면 치를 떨고 거들떠도 안 보는 것이다. 시와 소설과 에세이와 희곡과 비평을 즐길 권리를 청춘들에게서 빼앗은 것이다. 제대로 가르칠 수 없다면, 차라리 안 가르치는 게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예컨대 문학을 아예 가르치지 않는다면,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문학을 접하고 자기에게 맞는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문학을 즐길 테다.감정지수가 0인 듯한, 상식이 아예 없는 듯한, 타인의 마음을 한 번도 헤아려본 적이 없는, 시나 소설을 읽고 감동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것 같은 이들이 등장하는 파란만장한 뉴스는 우리들에게 경고하고 있다. 문학을 사랑하라.

2019-06-20 18: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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