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매일춘추] 청년의 눈에만 보이는 장벽

[매일춘추] 청년의 눈에만 보이는 장벽

창의력만 있다면 작은 디지털 카메라로 광고, 드라마, 영화까지도 찍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영상 분야의 진입장벽을 허문 기술 발전이 재능과 감각으로 무장한 젊은 창작자들의 등장도 촉진하고 있다.대구영상미디어센터를 찾는 청년 중에도 눈에 띄는 재능을 가진 이들이 많다. 몇몇은 어린 나이에 영화 데뷔작을 찍기도 했고, 영상 제작 사업자로 등록해 일찌감치 창업한 친구도 있다. 역시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가 다르긴 다르구나 싶다.얼마 전 창업한 K도 그 중 하나다. 매사에 열심인 그가 내심 기특해서, 광고 경력이 있는 선배로서 도움을 주고 싶었다. "관공서나 공기업 입찰을 공략하라"고 조언했더니, "그러고 싶지만 갓 시작한 1인 사업자라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K는 답했다. 나는 속으로 '청년이여, 도전도 않고 이 무슨 나약한 소리인가'라고 생각했다.얼마 뒤 대구시의 홍보영상 입찰 정보를 찾아봤다. 영상 분야의 증명 취득 최소 기준이 2인 이상, 4대 보험 가입 사업장이었다. 카메라, 음향, 편집 장비의 보유 여부도 현장 확인을 받아야 하고 생산 공정, 납품 실적 등 제출서류도 많았다. 진입 장벽 자체가 높았던 것이다. 불가능한 일을 노력하라 닦달했던 이 꼰대유망주를 보며 K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의 겸연쩍은 미소가 떠올라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직접 생산 확인 증명 제도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부정입찰, 허위입찰을 막고 중소기업 육성을 위해 꼭 필요한 제도다. 다만 모든 분야에 일괄적용하기에는 산업의 변화가 너무 빠르다. 광고, 드라마 등 영상분야가 대표적이다. 규모 있는 회사를 능가하는 1인 사업자가 넘쳐난다. 민간기업들도 이들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바이럴 광고 분야를 중심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대구시가 변화에 먼저 반응해보면 어떨까. 광고홍보 제작 예산 일부를 청년 1인 제작자를 위한 공모로 할당하면 어떨까. 건당 제작비를 낮추고 여러 사업자를 선정한다면 규정 위반 여지도 줄일 수 있다.무엇보다 광고효과 측면에서도 낫다. 청년들의 도전을 가로막는 비가시적 장벽을 없애려 세심하게 배려하는 대구시의 시도 자체가 홍보거리가 된다. 청년 1인 기업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처진 분야가 비단 영상제작뿐일까.비록 이 꼰대유망주는 사정도 모르고 도전을 설파했지만, 정책을 입안하시는 분들께서는 청년의 눈에만 보이는 장벽이 없는지 다시 한 번 세심하게 살펴봐 주시길 바란다.이승우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창작지원팀장

2021-01-19 11:40:13

[종교칼럼]네가 있어야 내가 있다

[종교칼럼]네가 있어야 내가 있다

새 신을 갈아 신은 신축년 새해가 따뜻한 발걸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올해도 우리는 건강한 가정, 아름다운 사회를 기대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어떤 사회를 소망하며 달려왔는가. 1945년에 나온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이란 두 권의 책은 이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었다. 그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회는 닫힌 사회가 아니라 열린 사회라고 했다. 그가 말한 닫힌 사회는 '배타적 원리주의', '닫힌 민족주의', '집단 열광주의' 등이 활개 치는 곳이다. 그러면서 그는 열린 사회야말로 우리 인간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유일한 사회라고 했다.열린 사회란 비판을 수용하는 사회, 잘못을 인정하고 실수를 받아들이는 사회, 다른 사람과 집단을 배제하지 않고 내가 틀릴 수도 당신이 옳을 수도 있음이 자연스럽게 수용되는 사회다. 칼 포퍼는 단지 2차대전 당시 히틀러가 자신의 고향 오스트리아를 침공한 것에 대한 분노 때문에 이런 열린 사회를 주장한 것이 아니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고, 성이 다르고 인종이 달라도 차별받지 않고 배제당하지 않는 사회가 모두가 꿈꾸는 사회이기 때문이다.그렇다. 배제와 차별은 좋은 가정, 열린 사회의 적이다. 우리가 사회의 제반 활동에 참여할 수 없고, 기회조차 박탈당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가 수도권에 살든, 중소도시에 살든, 높은 위치에 있든, 낮은 위치에 있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그 위치에서 차별받는다면 삶이 싫을 정도로 모멸감을 느낄 것이다. 우리는 가난은 참을 수 있고 차이는 견딜 수 있지만, 차별만은 참을 수 없다. 정부의 코로나 방역을 지지하지 않을 국민이 없고,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방역에도 기꺼이 동참할 것이다. 그런데 방역이 강화되자 스키장에 이어 헬스장과 카페 사업자의 불만이 분노로 바뀌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가? 코로나 방역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방역에 차별받는다는 생각이 그들을 힘들게 했을 것이다.우리 사회에는 크고 작은 차별이 존재한다. 심지어 일본의 철학자 나카지마 요시미치는 '인간이 타자를 구분하고 차별하는 마음이 본능'이라고까지 한다. 더 절망적인 것은 '교육 수준이 높고, 공감 능력이 있는 사람이 더 차별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인류는 끊임없이 차별을 없애려고 노력해 왔다. 사회 복지에서 사용하는 노멀라이제이션(Normalization) 이론의 기여는 놀랍다. 노멀라이제이션은 우리말로 일상화, 보편화, 정상화가 아닌가? 이 이념의 본질은 장애인이 격리와 배제의 대상이 아니라 다른 사회 구성원들과 함께 더불어 사는 정상화이다.그러나 돌이켜보자. 차별의 벽을 쳤던 사람들이 과연 정상적인 사람들인가. 우리가 장애인을 정상인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 우리를 정상인으로 만들고 있었다. 가족이나 공동체의 구성원 가운데 장애인이 있는 가족이나 공동체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더 배려심이 많고, 따뜻하다. 사실 우리가 장애인을 정상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 우리를 정상인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예수님의 제자들이 어린 아이들이 예수님께 오는 것을 막았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을 꾸짖으며 어린 아이들이 가까이 오는 것을 막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눅18:16)고 하셨다. 어린 아이야말로 변변찮은 존재고, 약자가 아니었던가? 예수님은 연약한 어린 아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게 하셨다. 올해는 차별과 배제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보듬는 따뜻한 마음으로 한 해를 시작하면 어떨까.

2021-01-19 11:38:28

[세계의 창] 사담은 떠나고

[세계의 창] 사담은 떠나고

1990년 5월, 필자는 바그다드에 있었다. 티그리스강 변에 위치한 호텔에 묵었는데, 그 이름도 '바그다드 호텔'이었다. 이 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유서 깊은 호텔은 티그리스강 서쪽의 카르흐 지역에 있었다. 5월이면 흐드러지게 핀 협죽도가 티그리스강 변을 분홍빛으로 물들였고 간혹 바람이 불면 강변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지금이야 이라크 하면, 도시를 뒤집을 듯 퍼붓던 포탄과 함께 불의 도시가 된 바그다드를 떠올리지만 1990년 5월만 해도 바그다드는 평온한 도시였다. 저녁이면 손에 손을 잡은 가족들이 잉어 구이 마스구프를 먹으러 티그리스강 변의 아부누아스 거리로 몰려들었고, 식당에서는 원시적 욕망을 일깨우는 아랍 음악들이 귀를 사로잡았다. 그때만 해도 이라크는 '정상 국가'였다는 말이다.1990년 5월의 바그다드는 그랬다. 1980년에서 1988년까지 무려 8년을 지속하던 이란과의 전쟁은 승자 없는 전쟁으로 끝이 났고, 국민들은 이제야 미래를 위한 설계를 할 수 있겠구나 믿었다. 희망은 석 달 만에 끝이 났다. 1990년 8월 2일 사담 후세인의 명령을 받은 이라크 군대가 쿠웨이트의 국경을 넘었다. 당시 쿠웨이트 군대는 1만6천 명, 이라크 군대는 정규군만 95만 명이었다. 전력만으로 보아도 상대가 되지 않는 전쟁이었다. 쿠웨이트는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이라크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20세기 마지막 전쟁의 시작이었다.사담 후세인의 시각에서 보자면 전쟁은 명분이 있었다. 이란과의 8년 전쟁은 사실상 미국을 위한 대리전이었다. 1979년 호메이니가 주도한 이슬람 혁명은 친미 팔레비 정권을 무너뜨렸고, 미국민들은 외교관 등 52명의 미국인들이 444일 동안 테헤란의 미국 대사관에 인질로 붙잡혀 있던 악몽을 겪어야 했다. 1980년 이라크가 이란과 전쟁을 벌였을 때 미국은 얼마나 이를 환영했겠는가. 반미를 부르짖는 이슬람근본주의를 사담 후세인이 막아 주었으니 말이다. 레이건 대통령이 후에 국방장관이 되는 도널드 럼스펠드를 특사로 파견해 사담 후세인을 만나도록 할 만큼 이라크는 미국에 필요한 존재였다. 각종 지원도 했다. 그러나 1990년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이 해체하면서 미국은 '역사의 종언'을 선언했고 '마지막 인류'로 스스로를 기록했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작이었다.미국을 위한 대리전을 치렀는데, 이라크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등 아랍국들에 거액의 빚만 지게 되었다. 쿠웨이트에 진 채무만도 140억달러(15조원)로 기록된다. 사담 후세인은 사우디와 쿠웨이트에 채무 탕감을 요구했지만 두 나라는 거부했다. 게다가 쿠웨이트는 하는 일마다 눈엣가시였다. 이라크의 주 수입원은 원유 수출, 그런데 쿠웨이트는 오펙(OPEC)의 생산 할당량보다 증산을 해서 유가를 떨어뜨리는가 하면 이라크와의 국경지대에서 이라크 쪽 원유를 빼가는 것이었다.(이라크 측 주장) 이라크 국민들의 불만도 한몫을 했다. 전쟁이 끝나고 귀가한 청년들에게 일자리는 없었고, 클린턴이 부르짖은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가 이라크에서도 작동했다. 내부 불만을 돌릴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전쟁이라는 말을 사담 후세인은 믿었을까, 걸프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1991년의 걸프전과 2003년의 이라크전은 사담 후세인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두 차례의 대전으로 이라크는 삼등분되었다. 이라크의 쿠르드족은 사실상 독립 상태이고, 시아파가 권력을 잡았다. 수니파는 해체되어 일부는 21세기의 테러 집단 이슬람국가(IS·Islamic State)로 흡수되었다. 아들과 사위들은 살해되고 부인은 망명, 후세인 가문은 공중분해되었다. 그 가족뿐인가. 1991년에 태어난 아이들은 서른 살이 된 지금, 삶 전체를 전쟁과 함께 보내야 했다. 이라크 사람들은 한 세대를 압류당한 셈이다. 폭포처럼 쏟아지던 포탄에 목숨을 잃거나 사지를 절단해야 했던 국민들, 그들은 누구의 잘못으로 삶을 압류당했나. 그것은 지도자의 판단 때문이었다. 지도자가 잘못된 판단을 하면 그 결과는 본인은 물론 국민 전체가 뒤집어쓴다. 지도자의 판단력이 중요한 이유이며, 지도자 선택을 잘 해야 하는 이유이다.

2021-01-18 11:48:54

[매일춘추] 트로트, 제대로 알고 부르자

[매일춘추] 트로트, 제대로 알고 부르자

요즈음 트로트 열풍은 그 어느 때 보다 뜨겁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19로 지친 사람들 마음에 트로트는 시원한 청량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온 국민이 트로트에 울고 웃는다. 하지만 트로트 역사를 되돌아보면 우리가 이토록 트로트에 열광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1914년 이후 영국과 미국에서 4박자 스텝의 사교댄스 폭스트롯이 유행했다. 앞서 일본에서는 1880년대 메이지유신 때 대중 계몽을 위한 연설과 관련하여 엔카(演歌)가 생겨났다. 1920년대 말 우리나라에 들어온 트로트는 엔카와 폭스트롯을 접목한 것으로 흔히 뽕짝이라 부르는 2박 계통의 요나누키음계로 이루어진 가요를 말하게 됐다.요나누키(よなぬき)음계는 7음계에서 네 번째와 일곱 번째 음을 제거한 5음계로, 요나누키장음계(도레미솔라)와 요나누키단음계(라시도미파)로 나눈다. 요나누키장음계는 우리나라 평조와 비슷하지만 율(律)음계라 하여 가가쿠(아악)에 사용되었고 일본국가인 기미가요와 제2 국가로 불리는 우미유가바에도 사용되었다.일제강점기 말 군국정신을 고취하고 일왕에 충성을 맹세하는 군가의 대부분은 이들 음계로 만들어졌다. 이것의 국내 전파는 전통음악을 짓밟고 민족정신을 말살시키는 것이다. 이 시기에 세뇌당한 한국 작곡가들은 자발적으로 이 음계를 사용하여 곡을 만들었는데 춘원 이광수 시, 임동혁 곡 '애국일의 노래'와 홍난파의 '희망의 아침'은 내선일체를 강조하고, 황국신민으로 일왕에 충성을 다짐한다. 이 음계로 만든 가요에는 '홍도야 울지마라', '나그네 설움', '신사동 그 사람' 등이 있다.미야코부시(都節)라 불리는 요나누키단음계는 인(陰)음계로 일본적 색채가 짙고 그들의 민족혼이 강하게 드러난다. 이 음계로 만들어진 엔카는 슬픈 느낌으로 일본의 험악하고 퇴폐화되어 가는 도시적 세태를 반영한다. 이 음계로 작곡된 곡으로 '목포의 눈물', '눈물 젖은 두만강', '비나리는 고모령', '단장의 미아리고개', '돌아와요 부산항에', '세상은 요지경' 등 수없이 많다. 심지어 '독도는 우리 땅', '나의 조국'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 음계의 어두운 면은 암울했던 우리 민족의 식민 정서와 맞닿아 있기도 했다.그렇다 하더라도 일제의 식음(植音)정책으로 만들어진 노래가 해방된 지 어언 75년이 지난 지금도 '전통가요'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우리의 안방을 차지하고 있다. 얼마 전 모 방송국에서는 '트로트의 민족'이란 타이틀로 트로트를 방영했다. 누가 트로트 민족인지, 무엇을 '전통'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어린아이들까지 장래희망이 트로트 가수란다. 지금 온 국민이 트로트에 열광하고 있다. 하지만 트로트의 본질을 알고 부르자.유대안 대구시합창연합회 회장

2021-01-18 11:33:37

[기고] 갑질, 뿌린대로 거둔다

[기고] 갑질, 뿌린대로 거둔다

'당신 자리를 보존하고 싶으면, 나를 잘 접대하라.''인사권이 나한테 있으니, 내 마음대로 한다.''회사에서도 날 자를 순 없으니, 신고하면 신고한 사람을 나가게 하겠다.'이런 말을 매일 듣는다면, 그 직장에 다닐 수 있을까?갑질은 사회·경제적 관계에서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 그 지위를 이용해 상대방에게 부당한 대우를 요구하거나 처우를 행하는 것을 말한다.갑질 행위의 가해자들은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갑질 사건은 당사자 간 해결이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피해가 발생할 시 이를 해당 기관의 상급자나 감사 부서에 신고하더라도 개인정보 보호가 잘 이뤄지지 않아 2차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2018년 이후 갑질 행위 근절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있었음에도 현행법에서는 사용자와 근로자 간 갑질 행위를 제외한 조직 내에서 발생하는 갑질 행위는 해당 조직 내에서 해결하도록 하고 있다.(근로기준법 제76조의 3)이 때문에, 피해자는 여전히 갑질 상황에 놓인 채 해당 기관의 조치만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이어지고 있다. 또한 사내 고충 제도와 담당 부서가 있더라도 피해자와 갑질 행위자의 분리조차 잘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갑질 행위자가 조직 내에서 우월한 위치에 있는 까닭에 그와 관련한 조사와 조치가 미흡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이런 갑질로 인한 피해가 대구 몇몇 공공기관에서도 몇 년째 발생하고 있다. DGIST의 한 청소 용역업체의 경우 이미 3년 전에 갑질 피해 사실을 알리고 퇴사한 피해자들이 있었다. 올해도 다른 피해자가 발생해 해당 조직에 피해 사실을 알렸으나 조치가 늦어지는 사이 2차 피해가 발생했고 수많은 피해자들은 견디다 못해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갑질을 단순히 그 조직 내부의 인간관계 문제로 여기고 당사자들에게 맡겨 놓는 동안 피해자들은 최소한의 구제도 받지 못한 채 직장을 떠나게 된다.따라서 갑질 행위의 근절과 피해자 구제를 위해서는 해당 조직 내에서 발생한 갑질 행위에 대해 자유로운 피해 호소가 가능한 별도의 창구가 있어야 한다. 대구 시민의 복리 향상과 지역 내 선진적인 근로 분위기 형성을 위해 시 차원의 갑질신고센터 등 지역 근로자의 근로 인권 향상을 위한 조직을 구성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자 한다.또한 필자는 DGIST 청소 용역업체의 갑질 사건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대구시 인권 옴부즈만의 도움을 받아 효율적인 대응을 할 수 있었다. 현재 대구시 인권 옴부즈만의 업무는 사회복지시설 거주자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그 대상을 대구 시민 전체로 확대한다면 대구 시민의 인권 신장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이러한 제도적 지원 체계를 바탕으로 대구시 산하 기관뿐 아니라 우리 지역에 위치한 각종 공공기관 및 대학교와 근로자 인권 보호를 위한 상호 협력을 통해, 해당 기관과 관련된 용역업체에서 발생하고 있을지도 모를 갑질 행위에 대한 철저한 조사·점검과 구제도 시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우리 지역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을 외면하면서 성공적인 지방분권과 행정통합의 시대를 열어 갈 수는 없다.대구시는 지방행정을 관할하는 행정관청인 만큼 시 소속이 아니더라도, 공공성 또는 준공공성을 지닌 대구의 모든 공공기관과의 협업 및 관련 조직의 신설을 통해 지역 발전을 위해 애쓰는 모든 분들의 어려움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광역 행정기관이 되어야 한다.

2021-01-18 11:28:42

[매일춘추] 이젠, 독서모임도 온라인으로

[매일춘추] 이젠, 독서모임도 온라인으로

2015년 1월은 나에게 큰 전환점이 된 시점이다. 혼자 읽기에서 벗어나 함께 읽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독서토론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 결단하고 서울에 있는 유료 독서모임에 가입하고 참여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두 달 간 매주 토요일 새벽마다 기차에 몸을 싣고 서울로 향했다. 그 전까지는 주로 혼자서 책을 읽었다. 간혹 도서관에서 독서회를 맡아 진행한 적은 있었지만, 업무의 연장선에서 빠듯한 일과 중 하나일 뿐이었다.긴장과 설렘을 안고 모임에 참석했다. 처음 만난 낯선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느낌은 어떨까? 내 사투리가 투박하고 촌스럽게 들리지는 않을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참여자는 30대에서 60대까지의 교사, 회사원, 출판인, 주부 등 다양했다.첫 모임에서 진행자는 세련된 태도와 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독서토론은 골방 독서에서 광장 독서로, 평면적인 독서에서 입체적인 독서로 나아가는 활동입니다. 다른 사람의 가치관과 의견을 공유하며 자신의 주장을 조리있게 말하는 소통의 자리입니다."매주 토요일을 기다리면서 바쁜 업무도 즐겁게 하며, 매주 한 권씩 과제로 주어진 책도 열심히 읽었다.독서모임에 여덟 번 참여하면서 혼자 읽을 때 알지 못했던 것들을 깨달았다. 여러 사람이 한 권의 책으로 각자의 감상과 평가, 성찰과 해석 등을 나눌 때 같은 책이 다르게 보였다. 다양한 해석과 관점을 나누다보니 한 권의 책을 여러 번 읽는 것 같았다.다른 사람의 의견을 귀 기울여 듣는 경청의 소중함도 배웠다. 사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고 오직 책에만 집중하는 토론이 이루어져 신선한 지적 자극을 받았다. 그렇게 나는 독서토론의 '찐팬'이 되었다.문화체육관광부는 2018년 5월부터 10월까지 전국 독서동아리 현황을 조사했다. 그 결과 시민들의 독서동아리 참여가 독서 진흥에 효과가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동아리 참가자들은 독서모임을 하면서 크게 변화된 점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게 된 점, 타인과 소통으로 생활의 활력을 얻었다는 점, 독서와 토론을 통해 스스로 학습역량을 키울 수 있다는 점 등이다. 이 조사 결과는 제3차 독서문화진흥 기본계획(2019~2023)에 반영되어 독서 정책의 목표가 홀로 읽기에서 함께 읽기로 전환되었다.지역 공공도서관에서는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연령대별 독서동아리 140여 개 운영하고 있다. 작년에는 코로나19 사태로 독서동아리 모임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필자도 수년간 지속해 오던 독서모임을 작년 하반기부터 온라인으로 변경했다. 비대면 모임이 대면 모임보다는 '함께하는 에너지'가 조금 약하지만, 회원들은 화상으로나마 독서토론을 이어갈 수 있어서 만족감이 높았다.코로나 시대 2년 차에 접어들었다. 예전처럼 회원들이 만나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독서모임은 여전히 힘들다. 그렇기에 도서관 독서모임도 변화하고 진화해야 한다. 대안이 필요하다. 랜선 독서모임에 기대를 거는 이유다.

2021-01-18 06:30:00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신위(1769-1847), ‘방대도’(訪戴圖)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신위(1769-1847), ‘방대도’(訪戴圖)

시, 글씨, 그림 세 가지를 다 잘 한 삼절이 조선시대에 여럿 있지만 그 중 자하(紫霞) 신위를 첫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다. 시서화 중 방점을 어디 찍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문인예술의 으뜸인 시를 기준으로 한다면 신위가 으뜸이 될 것 같다. 신위의 시는 그가 직접 정리한 4천여 수가 전하는데 근대 전환기의 문학가 김택영은 그 중 932수를 고른 '신자하시집'(1907년)을 중국 남통(南通)에서 간행하며 서문에서 조선 최고의 시인으로 신위를 꼽았다.신위의 그림은 묵죽이 유명하지만 산수화도 다수 남아 있다. '방대도'는 제화시를 먼저 읽어야 그림이 이해되는 문인화의 한 전형이다. 일각응빙풍노호(日脚凝氷風怒呼) 햇발은 얼어붙고 바람은 거세게 부르짖으니루음산대합모호(樓陰山黛合糢糊) 그늘진 누각 검은 산 모두 어렴풋하네몽회주기전소석(夢回酒氣全消席) 꿈에서 돌아오니 술기운 모두 사라진 자리에인정향연상재로(人靜香煙尙在罏) 인적은 고요한데 향 연기는 술항아리에 여전하네일점사비융난연(一點斜飛融㬉硯) 한 점 눈 날아들어 벼루에 떨어져 녹고건성취지변한노(乾聲驟至變寒蘆) 건조한 소리 휘몰아치니 차가운 갈대 요동치네우연수묵참황미(偶然水墨參黃米) 우연히 수묵으로 황공망과 미불을 참조해맥지신유방대도(驀地神遊訪戴圖) 홀연히 정신을 노닐으니 방대도라네 초설주후(初雪酒後) 자제(自題) 황불황미불미법(黃不黃米不米法)첫눈이 내려 술 마신 후 쓰다. 황공망이면서 황공망이 아니고, 미불이면서 미불이 아닌 화법이다. 신위는 그 해 눈이 처음 내린 날 "왕휘지가 대규를 찾아간 그림"인 '방대도'를 그렸다. 왕휘지가 어느 날 밤중에 깨어보니 세상이 온통 하얗게 바뀌어 있었다. 술 한 잔에 시 한 수를 읊노라니 문득 대규가 보고 싶었다. 왕휘지는 소흥에 대규는 소주에 살고 있었다. 곧 배를 타고 찾아갔으나 왕휘지는 대규의 집 문 앞에서 그냥 돌아왔다. 이 이야기는 중국 위진시대 명사들의 별난 언행을 기록한 '세설신어(世說新語)'에 나온다. 왕휘지는 서성(書聖) 왕희지의 다섯째 아들로 그도 유명한 서예가이다.사람들이 밤중에 그 먼 길을 가서 왜 만나지 않았냐고 묻자 "흥이 일어나서 갔고, 흥이 다해 돌아왔을 뿐 꼭 만나야 하나?"라고 대답했다. 마음이 가는대로 행위의 과정을 향유할 뿐 목적에 구애받지 않았던 왕휘지의 천진한 흥취와 초탈한 태도를 보여주는 이 에피소드에 많은 사람이 공감해 고사도(故事圖)의 한 주제가 되었다. 눈이 내리면, 특히 첫눈이 내릴 때면 누군가가 생각나는 것은 고금에 같은가 보다.미술사 연구자

2021-01-18 06:30:00

[노동일의 이른 아침에]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질문

[노동일의 이른 아침에]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질문

"기자가 질문하지 않으면 대통령은 왕이 된다." 최장수 미국 백악관 출입기자 기록을 가진 고(故) 헬렌 토머스 기자의 말이다. 토머스는 "대통령에 관한 한 기자들에게 무례한 질문은 없다. 기자회견은 국민을 대신해서 기자들이 대통령에게 질문하고 추궁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며 "대통령에게 질문할 수 없는 사회는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다"라고도 했다.그의 말처럼 생중계되는 백악관 기자회견 장면에선 긴장감이 흐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11월 기자회견 석상에서 CNN 짐 아코스타 기자와 말싸움을 벌였다.이민자 배척, 러시아 스캔들 관련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폭발한 것이다. "가짜 뉴스" "부끄러운 줄 알아라"는 삿대질에 이어 마이크를 빼앗던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대로 '적대적 언론 환경'이라서 벌어진 일만은 아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르윈스키의 옷에 묻은 액체는 대통령 것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오바마 케어에 대한 말이 수시로 바뀐다" "지지율이 최저인데, 올해가 최악의 해인가요?" 등의 질문에 답하지 않으면 안 됐다.기자들이 악의로 대통령을 곤란하게 하려는 게 아니다. 백악관이 아코스타 기자에 대해 출입금지 조치를 내리자 백악관 출입기자단은 성명을 발표했다."기자들은 업무 수행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고, 기자단은 회원들이 대통령을 포함한 힘 센 공직자들에게 하는 질문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며 "이런 상호작용은 불편해 보이지만 우리 국가기관들의 힘을 정의하는 데 도움이 된다." 기자들이 어렵고 불편한 질문을 하는 것은 대통령이 힘을 남용하지 못 하도록 견제하는 구실을 한다는 말이다. 자기 검열 없는 기자의 질문이 필요한 핵심적 이유이다.18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 열린다. 연례행사인 기자회견도 문제지만 내용 면에서도 미국과 같은 질문은 언감생심이다. 후속 질문은 물론 추궁성 질문도 없다. 조금만 불편하거나 날카로운 질문이라도 할라치면 '무례' 운운하는 극렬 지지자들의 표적이 된다. 기자들 탓만이 아니라 바탕이 되는 문화가 판이한 것이다."대통령께서는 신년사에서 부동산 문제에 관해 사과하셨습니다. 하지만 부동산만은 자신 있다거나 가격이 안정되고 있다는 말을 하신 적도 있습니다. 과거 판단의 근거가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청와대 참모들의 장밋빛 보고서였는지, 국토부 장관의 장담인지, 그걸 포함한 여러 경로로 청취한 의견을 종합한 결과인지 궁금합니다.""추미애·윤석열 갈등이 국정의 블랙홀이 되어도 대통령께서 전혀 언급이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결국 대통령께서 사과할 수밖에 없도록 방치한 건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의 임무를 포기한 게 아닌가요? 윤 총장에 이어 최재형 감사원장에 대한 여권의 비난 공세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윤 총장, 최 원장 모두 우리가 임명한 공직자들입니다. 검찰은 검찰의 일을, 감사원은 감사원의 일을 하도록 쓸데없는 간섭을 하지 맙시다'라고 당부하실 생각은 없으신지요?""북한이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로 대통령 개인과 대한민국을 모욕할 때 대통령님의 생각은 무엇인지 정말 궁금합니다. 특등 머저리라는 김여정의 비난이 과감히 대화하자는 요구라는 해석에 동의하시는지도 알고 싶습니다. 북한의 조롱과 모욕에는 한없이 관대하고 우리의 국민적 자존심이 구겨지는데도 못 들은 체하는 이유가 있는 건가요?"부동산 문제, 추·윤 갈등, 남북 대화 등에 대한 문 대통령의 인식과 대처는 실망스러웠다. 국민은 현실과 동떨어진 대통령의 인식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알 권리가 있다. 대통령의 현실 인식과 그에 따른 정책 방향은 국민 모두의 삶에 너무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벼슬의 높고 낮음에 근거하여 의견을 듣고, 여러 사람 말을 견주어 판단하지 않으며,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사람 의견만 참고하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한비자)라는 경고를 상기할 필요도 있다. 대통령직에 대한 존중은 당연하다. 하지만 대통령이 왕이 아닌 국민의 공복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라도 나의 질문이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게 아니기를 바란다.

2021-01-17 20:30:00

[기고]지방분권 개헌이 답

[기고]지방분권 개헌이 답

1991년 지방자치가 부활한 후 30년이 됐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강산이 3번이나 변할 때까지 '2할 자치'에 머물러 지방분권 운동을 하는 한 사람으로서 아쉬움과 안타까움보다 자괴감이 앞선다.문재인 정부 출범 시에 연방제 수준의 지방자치를 하겠다고 국민과 약속할 때 큰 기대를 했는데 립서비스로 끝났다.그러나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 중심으로 지방 4단체와 연대하여 조직적이고 치열하게 준비, 정부와 국회에 강력하게 요구한 결과 1988년 이후 32년 만에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이 지난 12월 정기국회에서 통과되었다.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앞으로 하나하나 채워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주요 내용을 들여다보면 우선 주민 주권과 참여를 확대하는 내용들이 신설되었다.첫째, 따로 법률로 정하는 바에 따라 지방단체장의 선임 방법을 포함해 의회, 단체장 등 기관의 형태를 지역 여건에 맞게 정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이 경우는 주민투표를 거쳐야 한다.둘째, 주민이 지방자치단체의 정책 결정 및 집행 과정에 참여할 권리가 명시되어 있으며 조례 규칙의 개정, 폐지 및 감사 청구권을 위한 기준 인원과 연령을 낮추는 등 주민의 참여 문턱도 낮추었다.셋째, 지방의회 의정활동 및 집행기관의 조직, 재무 등 주요 지방자치 정보를 주민에게 공개하도록 하였다.넷째, 지방의회 독립성 차원에서 지방자치 단체장의 의회사무처 인사 권한을 지방의회 의장에게 부여하게 되었다.다섯째, 지방의회 의원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정책인력지원을 둘 수 있도록 하였다. 다만 의원 정수 범위 내에서 충원하도록 제한하였고 최초 충원 인원의 절반은 2022년, 나머지는 2023년에 순차적으로 충원하도록 하였다.또 법률에서 조례로 정하도록 위임한 사항을 위해 하위 행정입법에서 제한하는 것을 금지해 지방의회 자치입법권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이어 지방의회 의원의 겸직 신고를 공개하고 겸직 규정도 구체화해 이해충돌을 방지하게 했고, 균형발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가 중요 정책에 지방자치단체가 참여할 수 있도록 중앙지방협력회의를 신설하도록 한 것도 성과다.그뿐만 아니라 지방의회 의결을 거쳐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지방자치 관할 구역 경계 변경 조정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지방자치 단체 간 상호 협력을 위한 지원 근거를 신설, 지방자치 단체 간 원만한 갈등 해결과 협력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특히 대도시 등 특례 부여 기준으로 ▷인구 100만 명 이상 대도시이거나 ▷실질적인 행정수요, 국가 균형 발전, 지방소멸 위기를 고려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과 절차에 따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정하는 시·군·구에 대하여는 관계 법률에서 행정, 재정, 운영 및 국가 지도 감독에 대한 특례를 둘 수 있도록 하였다.하지만 선진국처럼 진정한 지방화시대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입법권, 조직권, 재정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방분권 개헌을 헌법정신에 담아야 한다. 우리도 헌법 제1조에 '대한민국은 지방국가다'라고 천명하여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지방자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기 때문이다.내년은 대선, 지방선거로 선거 정국으로 들어간다. 전국의 지방분권 단체들은 작은 이해관계를 떠나 연대와 협력을 통해 지방분권 개헌을 달성할 수 있도록 지혜와 역량을 결집할 때이다.최백영 대구지방분권협의회 의장(대통령소속 자치분권위원회 위원)

2021-01-17 15:50:20

[황수영의 자카르타 체류기] 4. 인도네시아 섬 여행, 블리퉁

[황수영의 자카르타 체류기] 4. 인도네시아 섬 여행, 블리퉁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인도네시아의 섬은 발리다. 섬나라인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관광지답게 한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연결되는 직항이 많고, 영어도 잘 통하는 편이다. 하지만 짧은 일정으로 자카르타에서 발리로 여행하려면 최선은 아니다. 자카르타에서 발리까지 비행 거리는 약 2시간, 1시간 시차가 있어 최소 2박 3일은 있어야 여행다운 여행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알게 된 섬이 바로 블리퉁(Belitung)이다. 자카르타에서 비행기로 50분이면 도착하는 블리퉁은 1박2일 빠듯한 일정으로 자카르타를 벗어나기에 적격이다.지난해 코로나 19가 터지기 직전에 친구와 함께 주변에서 주워들은 정보를 중심으로 블리퉁 여행 계획을 짰다. 발리행 비행기엔 외국인 승객이 많았지만, 블리퉁행 비행기에는 대부분 가족 단위의 인도네시아 여행객들이었다. 블리퉁은(4,800km²)은 제주도 면적(1,849km²)보다 2.5배 정도 큰 섬이다. 블리퉁을 찾는 여행객들은 아름다운 화강암과 백사장으로 유명한 탄중 팅기(Tanjung Tinggi), 탄중 클라양(Tanjung Kelayang) 해변을 비롯해 스노클링 등 바다 체험을 할 수 있는 호핑 투어를 즐긴다. 특히, 블리퉁의 시골 학교를 살리려는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담은 인도네시아 영화 '무지개 분대 (Lakar Pelangi)'가 2008년 개봉해 흥행에 성공하면서, 영화 배경인 블리퉁의 인기도 인도네시아에서 더 높아졌다고 한다.인도네시아에서 섬이라곤 발리만 경험한 나는 블리퉁에서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힌두교가 중심인 발리에서는 술을 찾아 헤맨 적이 없었지만, 인구 대부분이 무슬림인 블리퉁에서는 술에 엄격한 문화 때문에 호텔을 벗어나면 식당에서도 맥주를 찾기 어려웠다(참고로, 자카르타도 슈퍼마켓, 편의점에서 술을 팔지 않는다. 그래서 맥주가 그리울 때면 귀찮지만 대형 마트 식품관에 마련된 별도 공간을 찾아야 한다). 저녁 식사를 한 해산물 식당에서 맥주를 주문하자, 종업원은 당황하더니 콜라, 생과일주스가 잔뜩 적힌 음료 메뉴를 가져왔다. 그래도 자카르타에선 식당에 가면 맥주를 마실 수 있었는데, 해산물 요리와 파파야 주스 조합은 아무래도 아쉬웠다.우리는 맥주에 대한 집착을 다음 날에도 포기하지 못했다. 구글 지도의 식당 후기를 검색해 맥주를 파는 식당을 어렵사리 찾은 뒤 택시로 타고 달려갔지만, 그 식당은 망해버렸는지 입구조차 찾기 힘들었다. 그래도 "이 식당에 가면 맥주를 마실 수 있다"고 구체적인 정보를 남겨준 이름 모를 외국인이 고마웠다. 아마 그들도 우리처럼 블리퉁에서 맥주 파는 식당을 찾아다니다가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맥주 후기'를 남겼을 테다. 그렇게 다시 구글 지도를 검색해 맥줏집 한 곳을 겨우 찾았다. 한국인의 집념으로 찾은 그 식당에서 에어컨도 없이 땀을 뻘뻘 흘리며 마신 인도네시아 맥주 빈땅(Bintang)은 이번 여행의 최고 성취였다.블리퉁에서 유명한 해변인 탄중 팅기에 갔을 때도 신선한 문화 차이를 경험했다. 해변에 도착해 비키니로 갈아입고 입수 준비를 한 뒤 주변을 둘러보자 이질감이 느껴졌다. 아무리 둘러봐도 몸을 노출하고 수영하는 여성이 보이지 않았다. 성인 여성들은 물론 다섯 살 정도 된 여자아이들도 히잡을 쓴 채 물놀이를 하는 모습은 인도네시아가 무슬림 국가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블리퉁은 발리 같은 유명 관광지에서 느끼지 못한 시골의 순박한 맛이 있었다. 여행 첫날 택시 기사님에게 구글 검색으로 알게 된 식당으로 가달라고 부탁하자 영어가 서툰 기사님은 구글 번역기를 통해 '가게가 문 닫았다'고 했고, 우리가 두 번째로 선택한 식당을 말하자 '그곳은 맛이 없다'는 번역이 돌아왔다. 충격이었다. 목적지까지 손님을 데려가면 그만일 텐데, 맛없는 식당에 가서 실망할 우리가 걱정됐던 것일까. 기사님은 해산물 전문점 한 곳을 적극적으로 추천했고, 의심이 많은 나는 기사님이 추천한 식당을 구글에 검색해 후기를 확인했다. 나쁘지 않았다. 책임감 있는 동네 주민의 추천을 믿고 가보기로 했다. 기사님 추천 식당이 바로 위에서 언급한 해산물 전문점이다. 식당에 도착해 택시비를 계산할 때 잔돈이 부족했는데 기사님은 괜찮다며 택시비를 할인해 주셨다. 자카르타와 발리에서 겪지 못했던 호의였다.1만7천 개가 넘는 섬이 있는 인도네시아에는 가보고 싶은 섬이 많다. 인도네시아의 몰디브라고 불리는 까리문자와(Karimun Jawa), 코모도왕도마뱀을 볼 수 있는 코모도섬과 서핑 성지인 발리 등 마음 속에는 여행 목록이 가득하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나서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그 날을 간절히 기다려 본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있는 국제기구에서 홍보 업무를 담당하는 직장인. 우리나라에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도시 자카르타와 이곳에서의 생활을 소개한다.

2021-01-17 05:00:00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끈끈이 붙은 고양이 살리는 콩기름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끈끈이 붙은 고양이 살리는 콩기름

어린 고양이가 '끈끈이'(mousetrap glue)가 붙어 내원했다. 사무실 구석에 바퀴벌레를 잡으려 비치해둔 끈끈이 트랩에 예삐가 붙어버렸다. 예삐가 끈끈이를 떼어내려 몸부림칠수록 초강력 본드 같은 끈끈이는 뒷다리며 꼬리까지 엉켜 붙여버렸다.쥐와 해충을 잡기 위한 끈끈이 트랩은 초강력 점착력을 가지는 물질이라 고양이에게 매우 위험하다. 끈끈이가 묻은 털은 피부와 밀착되며 살이 짓이겨지는 통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심할 경우 사지가 엉겨 붙은 채 고통스러워하다 탈진으로 사망하기도 한다.끈끈이 트랩이 고양이 몸에 붙었을 경우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처치법을 소개한다.1. 티슈나 종이 타월로 끈끈이가 붙은 부위를 감싸준다. (끈끈이가 더 넓은 부위로 확산되는 걸 막아준다). 빵가루를 두텁게 발라줄 수도 있다.2. 넥카라를 착용한다. (끈끈이가 얼굴 부위로 확산되는 걸 막아준다)3. 라텍스 장갑을 끼고 콩기름을 부어 엉킨 부위를 비벼준다. (콩기름이 끈끈이를 희석시킨다)4. 종이 타월로 희석된 끈끈이 성분을 흡착 시켜 제거하는 과정을 반복한다.5. 제거 과정이 오래 걸려 휴식이 필요할 경우 빵가루를 몸에 묻혀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빵가루가 끈끈이에 부착되어 확산을 방지하고 일부 제거하는 효과를 가진다)6. 건조된 털을 만졌을 때 점착력이 사라질 때까지 콩기름 마사지, 종이 타월 흡착, 빵가루 목욕을 반복한다.7. 끈끈이를 충분히 제거했다고 판단되면 샴푸와 린스를 하고 털을 말려준다.테레핀유, 아세톤, 등유, 스티커 자국 제거제는 고양이에게 매우 해롭다. 소량이라도 호흡기로 흡인되면 치명적일 수 있다.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끈끈이가 피부 속까지 엉겨 붙은 상황이라면 가위로 털을 잘라 내려다 피부를 자를 수도 있다. 하지 말아야 한다.끈끈이 제거는 털을 말렸을 때 점착력이 사라질 때까지 반복돼야 한다. 며칠이 걸릴 수도 있다.동물병원에 의뢰해야 경우는 고양이가 예민해 다룰 수 없거나, 얼굴 주변에 끈끈이가 붙어 진정 마취가 필요한 경우로 이해하시면 된다. 동물병원에서도 오랜 시간을 할애해 치료해야 하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진료비 부담을 각오하셔야 한다.유성페인트가 묻은 고양이 처치도 동일하다. 몇 해 전 SBS TV 동물농장에서 방영한 녹색 고양이 치료 과정을 소개해 드린다. 당시 유성페인트를 보관한 드럼통에 빠져버린 고양이는 온몸이 녹색이었으며, 자신의 몸을 핥는 과정에서 이미 많은 양의 페인트를 먹어버린 상황이었다.내과적인 치료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온몸에 범벅된 페인트를 제거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콩기름으로 마사지하며 희석된 페인트를 종이 타월로 닦아내는 과정이 무한 반복됐다. 방송에서는 치료 과정의 일부만 소개되었지만 실상은 8시간 이상이 소요됐다. 고양이가 털을 핥아도 유해물질이 섭취되지 않아야 했기 때문이다.고양이가 입양갈 때의 뿌듯함보다는 그 과정의 수고스러움이 유난히 기억나는 케이스였다.끈끈이를 제거하는 과정은 무한 반복돼야 함을 다시 한번 강조드리고 싶다. 고양이가 털과 피부에 남겨진 유해물질을 섭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호자와 고양이 모두 인내심을 가지고 노력해주시길 부탁드린다. 수의학박사 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 SBS TV 동물농장 동물수호천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 원장은 개와 고양이,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치료한 30여년간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올바른 동물의학정보와 반려동물문화를 알리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동물명은 가명을 사용한다.)

2021-01-16 06:30:00

[대학 도서관을 가다-경북대] '유럽: 지리학 독본'

[대학 도서관을 가다-경북대] '유럽: 지리학 독본'

도서관 고문헌 목록을 검색하다가 보면 누가 어떤 이유로 이 책을 선택해서 도서관에 들여왔는지 그 경로가 궁금해지는 책이 있다. 'EUROPE: A Geographical Reader'(유럽: 지리학 독본)가 그런 책이다. 1925년 미국 뉴욕의 한 출판사에서 발행된 이 책의 초판본이 대한민국에는 단 한 권, 경북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경북대학교 도서관이 건립된 것은 1952년, 이 책의 출판으로부터 20년도 훨씬 지난 때였다. 그러니 이 책은 상당시간 여기저기 떠돌다가 도서관에 안착한 것이다. 책이 떠돈 그곳이 어디였건 간에 이 책은 자립을 꿈꾼 여성과 바깥세상을 알고 싶어 한 모험가, 그리고 제국의 속국 상황에 있던 가난한 나라의 지식인들에게는 큰 힘이 되었을 듯하다.'유럽: 지리학 독본'은 유럽 여러 나라의 문화 지리적 풍토를 소개한 책이다. '어린이 교육서'를 내걸고 있지만 실제 내용은 그 이상을 담고 있다. 저자 비니 비 클락(Vinnie B. Clark)은 1878년 태생으로 작가이자 세계 여러 나라를 탐사한 지리학자이다. 미국에서 여성참정권이 인정된 것이 1920년이었으니 그녀는 여성의 자립에 우호적이지 않은 보수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것이었다. 그 젊은 시절 동안 클락은 여성에 대한 미국 사회 내의 편견에 맞서는 한편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경험의 영역을 넓혀갔다. '유럽: 지리학 독본'에는 그런 그녀의 다양한 경험과 강인한 마음의 힘이 녹아있다.책은 덴마크에서 시작해서 식민지 상태에서 막 벗어난 알바니아를 거쳐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도시 콘스탄티노플에서 끝난다. 1921년 독립국의 위치를 차지한 알바니아를 목차에 넣은 것도 의외이지만 국가가 아닌, 터키의 수도 콘스탄티노플로 책의 끝을 맺는 것은 신선하면서 파격적이다. 마지막 페이지에 게재된 콘스탄티노플 시장 사진 밑에는 상점의 간판에 쓰인 다양한 언어를 주목하라는 설명이 첨가되어 있다. 저자 클락은 세계 여러 나라 문화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실제로 사진 속 간판을 채운 다양한 언어를 보고 있으면 서양과 동양을 구별하고 문명의 우열을 거론하는 것이 참으로 부질없이 느껴진다. 그 시절의 서양이 제 아무리 동양을 두고 미개한 계몽의 대상이라고 소리를 높였던들 콘스탄티노플의 좁은 시장 간판에서는 동등하게 취급되고 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아시아 대다수 나라들이 서구의 식민지로 전락해있던 1920년대, 미국 지리학자 클락은 적어도 서양과 동양의 관계를 '차등'이 아닌 '차이'로서 인식하고 있었다.이처럼 흥미로운 한 권의 지리학 서적이 언제 누구를 통해 한국에 유입되어 경북대학교 도서관에까지 이르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식민지 시기였을 수도 있고 해방 이후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 이 책을 선택했을 때 분명히 그의 마음을 끈 무엇인가가 있었을 것이다. 그 무엇 중에는 콘스탄티노플 좁은 시장가 사진도 있지 않았을까. 이 사진이야말로 '동양과 서양은 상호의존적 관계'라는 저자의 생각을 독자들에게 선명하게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정혜영 경북대 교수

2021-01-16 06:30:00

[임종대의 우리나라 고사성어]포산조응(捕山沠鷹)

[임종대의 우리나라 고사성어]포산조응(捕山沠鷹)

'포산(捕山)'은 산을 잡아들이는 것이고, '조응(沠鷹)'은 매를 붙잡는다는 뜻이다. 예로 소가 밭에 자라는 보리 싹을 먹었다면 그 주인을 찾아 해결하듯, 산으로 도망간 매를 산을 잡아들여 해결한다는 '국조인물고'에 전한다.박문수(朴文秀1669~1756)는 호가 기은(耆隱)이고 암행어사로 눈부신 행적을 남겼는데, 군정(軍政)과 세정(稅政)에도 밝아 국정 개혁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암행어사의 유명한 업적은 그만큼 백성들의 질고를 살피고 방백들의 횡포를 올바로 평정한 공이다. 그 중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붙잡아 꽃피운 일화다. 1730년 도승지로 있다가 왕명을 받아 암행어사로 전라도를 순시할 때 벌어진 일이다. 해가 뉘엿뉘엿 저무는데 어느 마을의 서당 앞을 지나게 되었다. 하루 밤 묵을까하고 서당에 들렀는데 훈장은 자리를 비우고 글 읽는 학동(學童)들만 있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하룻밤 머물 수 있을까하고 찾았는데 어른이 안 계시는 구나! 해는 지고 어떡하면 좋을까."그러자 한 학동이 말했다."이 공부방 말고 딸린 사랑채도 있는데 주무시고 가시죠?"기은은 못이긴 척 앉아 있는데 서당 아이들이 여름인지라 문을 열어 놓고 개구리 울듯 어울려 책을 읽었다. 한참 소리 내어 읽다가 한 학동이 글을 이만큼 읽었으니 쉬자고 말했다. 그 말에 책을 덮고 썰물 빠지듯 마당으로 나가더니 한 아이가 말했다."오늘은 우리 수령과 감사놀이나 하며 놀자."그러자 한 아이가 대뜸 짚으로 만든 자리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서 말했다."내가 수령이니까 여기에 앉는다."그러자 한 아이가 수령될 자격이 있는지 시험해 보겠다며 했다."저기 하늘에 떼 지어 나는 까마귀 중 어느 놈이 수놈인지 말하시오.""으음, 날아오를 때 먼저 날아오르는 놈이 수놈이요, 뒤따라 날아가는 놈이 암놈이다."기은은 제법 신통하다고 생각하며 듣고 있으려니 긴한 송사가 있다며 한 아이가 엎드리며 말했다."제가 매를 잡아서 그 매로 사냥을 하려고 했는데, 매가 갑자기 산으로 도망가 버렸습니다. 매를 찾아 주시오."기은은 산으로 날아간 매를 어떻게 찾아줄지 궁금했다. 그러데 원님으로 앉아있던 학동이 명쾌한 판결을 내리는 것이었다."오라, 산이 매를 가져간 게로군! 내가 찾아주지. '매는 청산의 소유물(鷹者靑山之物)이니' '청산에서 얻고 청산이 잃었도다(得於靑山 失於靑山)' '어서 가서 청산에 물어보고(問於靑山)' '청산이 대답을 않거든 청산을 잡아오너라(靑山不答捕來)'"이 말을 듣고 기은은 학동들의 기지에 감탄하며 껄껄 웃었다. 그리고 수령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학동이 정색을 하며 호통을 쳤다."도대체, 어느 놈이 관아에 들어와서 원님을 모욕하느냐! 여봐라! 이 놈을 당장 잡아다가 하옥시켜라."사또의 명령에 따라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기은을 헛간에 넣고 문을 채워 버렸다. 갑자기 봉변을 당한 기은은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놀이가 너무나 진지하여 풀려 나가기만 기다렸다. 잠시 후 헛간의 문이 열리며 원님으로 있던 아이가 공손히 절을 하며 말했다."저희가 어른께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죄송합니다.""아니다. 이번 놀이에서 내린 판결은 명 판결로 내게 내린 판결도 마땅한 판결이니라." (사)효창원7위선열기념사업회 이사

2021-01-16 06:30:00

[책]박물관에서 읽는 세계사

[책]박물관에서 읽는 세계사

박물관에서 읽는 세계사/ 김문환 지음/ 홀리데이북스 펴냄 "고대인들도 맥주를 마셨을까?"신석기 농사문명의 요람인 메소포타미아 수메르인들은 보리로 맥주를 빚었다. 당시 맥주는 요즘처럼 맑은 술이 아니고 걸쭉했다. 빨대를 꽂고 빨아먹는 일종의 밥이었다. 베를린 노이에스 박물관에 가면 B.C 14세기 빨대로 맥주를 마시는 메소포타미아 사람을 그린 프레스코 그림을 만난다.국립중앙박물관 신라 전시실 유리 진열장에 흙으로 빚은 인형 토우(土偶)들이 눈길을 끈다. 1926년 경주 황남동에서 출토한 5세기 유물들의 주제는 '사랑'이다. 신라 향가 처용가 가사의 '가랑이 넷'처럼 정을 나누는 남녀의 모습이 선정적으로 묘사됐다. 신라의 선정적 포즈의 유물은 어느 문명권도 따라잡을 수 없는 로마의 노골적인 성문화 관련 유물과 겹쳐진다.1924년 2월 12일. 이집트 투탕카멘(재위 B.C 1334-B.C 1325년) 무덤 현실의 12t짜리 분홍 화강암 관 뚜껑이 열렸다. 값비싼 원석과 유리로 장식된 길이 2.25m짜리 금박 목관 안에 2m짜리 금박 목관, 그 안에 다시 길이 1.87m, 무게 110.4kg의 순금관이 나왔다. 170여개 부적과 보석, 장신구로 치장한 3300년 된 미라는 룩소르 왕가의 계곡 투탕카멘 묘 전시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이런 흥미로운 역사와 문명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훌륭한 역사 선생님은 박물관이다. 지구촌의 인류역사를 수놓은 중요 문화 예술품을 대거 소장한 파리 루브르나 런던 대영박물관뿐 아니라 중국의 한적한 지방 유적지, 중앙아시아 초원 한가운데, 흑해 바닷가, 서아시아나 북아프리카의 사막 지대 구석진 박물관까지. 어디랄 것 없이 박물관은 인류의 삶이 녹아든 유물을 전시중이다. 박물관은 고대와 현대를, 옛사람과 현대인을, 옛날 문화와 현대문화를 잇는 오작교다.유라시아 대륙 동쪽 끝 한국에서 서쪽 끝 포르투갈까지 24개국 100개 박물관에서 취재한 유물을 통해 고대의 역사와 문명이 되살아난다. 흥미진진한 1만 여년 인류역사와 문명 이야기가 눈 앞에 펼쳐진다. 박물관이 왜 필요한지, 박물관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설명해주는 책이다.저자 김문환은 전직 매일경제신문, SBS 기자로 현재 문명 탐방 저술가겸 역사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유적으로 읽는 로마문명', '비키니 입은 그리스로마', '유물로 읽는 이집트 문명', '취재기사 작성법' 등 다수가 있다. 294쪽. 1만9천원

2021-01-16 06:30:00

[책CHECK]낭만농부의 시골편지

[책CHECK]낭만농부의 시골편지

포항 죽장 상사리에서 농사를 지으며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권현구 씨가 산문집 '낭만농부의 시골편지를 펴냈다.이 책에는 1994년에 귀농해 지금까지 농촌에 정착하며 느낀 투박한 삶과 애환들을 행복으로 승화시킨 여정을 담았다. 농촌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낭만적이겠느냐마는 그래도 작가는 바쁜 농촌 생활 중에서도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이 책에는 농사만 짓는 것이 농촌의 삶이 아니라 농사와 더불어 얻어지는 소소한 이야기들이 있다는 것을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간접적으로나마 들려주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 보인다.책에 소개된 160편의 글에는 농촌에 대한 작가의 사랑이 듬뿍 담겨 있어 귀농이나 귀촌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작은 가이드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311쪽. 1만5천원

2021-01-16 06:30:00

[내가 읽은 책]톨스토이의 인생수업

[내가 읽은 책]톨스토이의 인생수업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레프 톨스토이 글/ 조화로운삶/ 2017)얼마 전 문무학 시인의 독서코칭강연에서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우리는 그동안 독서를 잘못 가르쳐왔습니다." 무조건 많이 읽는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한 권을 읽어도 제대로 읽도록 가르쳤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 다독(多讀)이 무조건 좋다는 식의 생각은, 최근 어느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이 한 말을 빌리자면 '족보가 어디에 있는' 발상인가.필자는 대학 시절, 프란츠 카프카의 '단식광대'를 읽고 '단독(斷讀)하는 세대'에 대한 문제의식을 표명한 짧은 글을 썼던 기억이 난다. 단독과 폭독(暴讀)…. 어떤 독(讀)은 독(毒)이다. 이는 필자의 말이 아니라 세계인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 일컬어지는 레프 톨스토이의 말이다. "독자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면 쓸데없는 독서를 줄일 수 있다. 너무 많이 읽는 것은 해롭다. 내가 만나본 위대한 사상가들은 적게 읽는 이들이었다. 나쁜 책은 아무리 조금 읽어도 해롭다. 좋은 책은 아무리 많이 읽어도 부족하다. 나쁜 책은 정신의 독약이나 다름없다."(73쪽)톨스토이는 82세로 영면에 들기 전 2년에 걸쳐 잠언집을 집필했다. 바로 그의 마지막 저서로 알려진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다. 몇 해 전에 읽은 적이 있고, 지난해에도 읽었지만 이 책을 연말연시에 즈음하여 재차 펼쳐보았다. 문장이 간결하여 술술 읽혀 내려가는데 그 내용을 삶 속에서 실천하기는 결코 만만치 않다. 예컨대 그가 쓴 다음의 구절을 보자. "불교에서는 살인, 도둑질, 정욕, 거짓말, 음주를 다섯 가지 죄로 여긴다. 이들 죄를 피하는 방법은 자기 절제, 소박한 삶, 노동, 겸손, 믿음이다."(68쪽)오계(五戒: 불살생不殺生, 불투도不偸盜, 불사음不邪婬, 불망어不妄語, 불음주不飮酒)의 실제에 대한 톨스토이의 해석이 불교의 계율과 본질상 다름이 없는 듯하다. 문제는 덜 움직이고 더 가지며 더 먹고 싶은 욕심과, 성경의 가르침인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남보다 나를 낫게 여기는 마음가짐이다. 최근 어느 강좌에서 모 교수도 고백하기를 "해가 가고 나이가 들수록 느는 것은 참회요, 주는 것은 겸손이다."고 하였으니, 동시대 석학의 겸허한 성찰도 110여 년 전 톨스토이의 잠언과 세대 공감을 이루고 있음을 본다.서문에서 톨스토이는 이 책이 논리적 체계를 갖추었다고 말하고 '인생의 손님들인 사랑, 행복, 영혼, 신, 믿음, 삶, 죽음, 말, 행동, 진리, 거짓, 노동, 고통, 학문, 분노, 오만' 등의 주제들이 반복되도록 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서문 말미에 "이 책은 인류에 대한 나 자신의 가장 큰 사랑의 표현"이라고 했으니 그가 스스로 쓰고 반복해서 읽으며 경험한 이 책의 감동을 얼마나 함께 나누고 싶어 했는지 그의 문장으로, 독자의 심장에 느껴진다.그의 명저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에 비해 덜 알려져 있고 그 내용이 다소 교조적이다. 그러나 생의 끝자락에 남긴 대문호의 잠언집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를 가벼이 여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류의 삶이 겉모습은 몰라보게 달라졌어도 내면의 가치는 변함이 없다. 정교회에서 파문당하면서까지 그가 말하고자 했던 그의 사상과 인류애,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담백하게 서술된 이 책은 개개인의 독법에 따라, 또한 반복해서 읽을 수록 그 깊이와 넓이를 더해갈 것이다.김서윤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2021-01-16 06:30:00

[안동을 걷다, 먹다] 16. 원이엄마와 월영교

[안동을 걷다, 먹다] 16. 원이엄마와 월영교

안동에 살기 시작했다. 서울이나 대구 등 대도시에 비해 안동에 사니 편안하다. 안동은 좋다. 날마다 안동을 걷고 안동음식을 먹는다.익숙한 그것들이 어느 날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동의 주름살이 보이기 시작했고 안동이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안동국시와 안동찜닭, 안동간고등어 혹은 헛제사밥의 심심한 내력도 내 귀에 속삭거리기 시작했다.무심했던 안동에 대한 내 시선이 한결 부드러워졌고 투박한 내 입맛도 호사스럽게 안동을 먹게 됐다.안동에 대한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그냥 안동이야기다.16번째 이야기. 원이엄마와 월영교사랑이 사라진 시대, 사랑의 감각이 무뎌진 시대, 사랑이 부족하거나 혹은 사랑이 메말라 버린 시대다.우리는 늘 '사랑한다'고 속삭이지만 인스턴트커피처럼 달콤하면서도 새털처럼 가벼워서 매일 한 잔씩 소비하고 버리는 종이컵같은 사랑일지도 모른다. 아니라고? 우리 시대의 사랑이 그렇게 가벼울 리가 없다고 우겨대지만 목숨보다 더 소중하고 아름다운 그런 사랑은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다.날마다 사랑하고 헤어져도 내일은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나는 것이 일상이다. 사랑을 소비하는 시대에 우리는 영화를 통해 을 느끼고 소설 속에서나 을 읽는다.그래도 요즘은 사랑하기 좋은 계절이다. 첫 눈이 펑펑 내렸고, 교통정체가 짜증나고 집에 갈 일이 걱정되기는 해도 눈 내리는 풍경에는 마음이 설렌다. 오늘도 걷고 또 걸었다. 걷는 것이 무슨 대단한 건강비법은 아니지만 코로나시대 정신건강을 유지하는 방법 중의 하나다.오늘은 안동대교에서 시작해서 안동댐 쪽으로 향했다. 강변 둔치는 걷기에 딱 좋은 길이다. 시베리아 한파가 사라진 오늘처럼 낮 기온이 영상 10도까지 치솟아 오른 날에는 마치 차가운 강바람도 봄바람처럼 느껴진다. 미세먼지만 없다면 금상첨화였다.강변길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안동철교는 이제 폐로가 됐다. 안동역이 이전하는 바람에 기차는 더 이상 이 다리를 지나지 않는다. 다리를 지날 때마다 꽥~하며 기적을 울리던 풍경을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조금 더 걸으면 인도교로 바뀐 옛 안동교가 나오고 그 옆으로 안동의 강·남북을 잇는 영호대교가 있다. 그 다음 만나는 다리가 영가대교로 안동의 신도시 '정하동'으로 통하는 길목이다. 법원과 한전 경북본부 등이 들어섰고 아파트 등 주거단지가 줄줄이 조성됐다.원이엄마 편지500년 전의 한 조선여인이 '원이엄마'라는 호칭으로 비련(悲戀)의 주인공이 등장하게 된 것은 정하동 신도시 택지 조성 때문이었다. 1998년 안동 신도시 택지개발지구 조성을 위해 주인없는 무덤을 이장하는 과정에서 '철성 이씨'라 적힌 명정(무덤에 덮는 천)이 발견됐다. 이에 고성 이씨 문중 입회 아래 발굴 작업이 이뤄졌다. 이 무덤의 주인은 서른 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이응태(李應台1556~1586)로 밝혀졌고 부장물 중에는 아내가 쓴 장문의 한글 편지와 '미투리' 한 쌍이 온전한 형태로 있었다.무덤 속에 봉인돼 있다가 412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아내의 편지는 사랑하는 남편을 떠나보내는 젊은 아내의 절절한 심정이 담겨있어 사랑에 무심해진 우리 시대에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원이엄마'는 아들 원이와 뱃속에 유복자를 둔 채 세상을 떠난 원이아빠를 그리며 가로 58㎝, 세로 34㎝의 한지에 붓으로 빼곡히 쓰다가 할 말을 다 쓰지 못한 것인지 한지의 위쪽 여백에도 돌아가면서 썼다.조선여인이 사랑하는 남편의 호칭은 '여보'나 '자기'가 아닌 자내'였다."자내 샹해 날다려 닐오대 둘히 머리 셰도록 사다가 함께 죽쟈 하시더니 엇디하야 나를 두고 자내 몬져 가시노. 날하고 자식하며 뉘 긔걸하야 엇디하야 살라하야 다 더디고 자내 몬져 가시난고."(당신 늘 나에게 이르되, 둘이서 머리가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자식은 누구한테 기대어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시나요.)우리가 결혼식에서 늘 듣던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사랑하겠느냐'는 말을 원이엄마는 '둘히 머리셰도록 사다가 함께 죽쟈하시더니 엇디하야 나를 두고 자내 몬져 가시노'라고 원망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구구절절이 담겨있다.이어지는 편지를 우리가 이해하기 쉽도록 옮겨본다."...당신이 나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고,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었나요?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 가요.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수 없어요. 빨리 당신에게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요.이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 주세요.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써서 넣어 드립니다.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 하고 그렇게 가시니,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이런 슬픈 일이 또 있겠습니까?당신은 한갖 그 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이 서럽겠습니까?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 쓰고 대강만 적습니다.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 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 주세요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병술 유월 초하룻날 집에서 아내 올림서른 즈음의 젊은 아내가 사랑하던 남편을 떠나보내는 안타까운 심경이 구구절절 담긴 편지 한 장은 조선시대의 한 여인의 애틋한 사랑이 어쩌면 이토록 우리 가슴에도 와 닿는지 눈물이 난다. 사랑이란 시간을 거스를 수도 있고 시대와 국경을 뛰어넘기도 한다.현재 원이엄마의 편지와 무덤에서 발굴된 수의 등 부장품들은 안동대학교 박물관에 전시돼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이 무덤의 주인은 밝혀졌으나 편지의 주인공은 원이의 엄마라는 사실 외에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았다. 사랑을 잃은 가여운 이름도 모르는 조선의 여인이다.그녀는 원이와 뱃속에 둔 아이까지 두고 떠난 남편을 위해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만든 미투리 한 켤레도 삼아 넣었다. 이 미투리를 싼 한지에도 한글 편지였으나 "이 신 신어보지도 못하고.."라며 미투리 한 켤레를 넣어 보내는 원이엄마의 안타까운 심경을 담은 글귀 외에는 확인할 수 없었다고 한다. 안동대박물관은 코로나10 확산에 따른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문을 닫았다. 코로나사태가 완화되면 박물관을 다시 열어 누구나 볼 수 있을 것이다.원이엄마가 남긴 사랑가는 메마르고 퇴색한 사랑을 노래하는 우리 시대의 사랑에 경종을 울렸다.원이엄마의 편지가 발견된 무덤은 안동법원에서 500m 남짓 떨어진 언덕빼기에 지어진 '현진에버빌' 104동 자리다. 그 곳에서 멀지않은 영가대교 입구 사거리에는 원이엄마 테마공원이 있다. 공원 한켠에는 원이엄마의 편지가 조각된 비석이 박제된 사랑의 표상처럼 세워져있었고 동상으로 세워놓은 '원이엄마'는 저녁놀이 비치는 낙동강을 바라보고 있었다.꽃피는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면 이 거리에는 능소화가 흐드러지게 필 것이다. 이 공원에서 영호루가 있는 낙동강변 1km 거리는 능소화 거리다. 원이 엄마 그녀가 먼저 보낸 남편을 그리워하며 걸었을 그 길에 능소화가 흐드러지게 피고 질 때 우리는 다시 5백년 전 그 사랑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문득 나는 기형도의 시 한편이 떠올랐다.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우리 시대의 사랑표현보다 사랑에 대한 조선여인의 감성이 얼마나 가슴 저미는 아픔이었는지 새삼 느낀다."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 주세요"라는 여인의 속삭임보다 더 절절한 그리움이 있을까.월영교월영교(月映橋)에 도착했다. 달빛이 교교하게 비치는 월영교의 야경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안동호 하부 보조댐 호수를 가로지르는 월영교는 원래 있던 다리가 아니다. 2003년 완공돼 개통된 국내 최대 길이의 목책 인도교다. 원이엄마의 애틋한 사랑을 기린다는 의미로 다리의 전체적인 형상을 원이엄마의 미투리를 모티브로 삼았다. 총 길이는 387m에 이른다. 다리 한 가운데에는 달빛이 비치는 정자라는 의미의 '월영정'(月映亭)이 있다. 동절기에는 동파방지를 위해 분수대를 가동하지 않지만 봄부터 가을까지 저녁에는 시원한 분수를 가동해서 색다른 재미를 주기도 한다.사진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출사지이기도 하다.월영교 건너편 민속박물관 쪽 강변길은 원이엄마 테마길로 조성돼있어 작은 병(상사병)과 사랑의 자물쇠를 걸어 영원한 사랑을 기원할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그러나 인근 박물관 매점에서 파는 상사병이나 자물쇠가 중국 유명관광지에서 볼 수 있는 상술이 그대로 드러날 정도의 조악한 수준이라 관광객들의 호응이 없다.오히려 호젓하게 산책을 원한다면 원이엄마 테마길에서부터 강변에 조성해놓은 나무데크 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보는 것이 더 좋겠다.아니면 원이엄마 테마길 바로 옆 언덕위에 있는 '석빙고'와 '선성현 객사', 수몰지역에서 옮겨 놓은 초가집 등을 둘러보자. 안동 석빙고는 조선 영조 13년 (1737년) 부임한 예안 현감 이매신이 지은 것으로 낙동강에서 많이 잡히는 은어를 왕에게 진상하기 위한 얼음을 저장하기 위한 것이었다.이 석빙고 바로 앞에 이끼가 낀 커다란 장방형의 바위가 하나 있다. 바위에는 '월영대'(月映臺)라는 글자가 새겨져있는데 시기를 알 수 없는 아주 오래 전에 이 곳에 '금하재'라는 정자가 있었다는데 옛 선비들이 달빛을 바라보며 풍류를 즐기던 곳이었던 모양이다. 최근에 지은 월영교는 이 월영대에서 이름을 차용한 셈이다.석빙고 옆에는 조선시대 건물 한 채가 있는데 안동댐 수몰지인 도산에서 이건해 놓은 '선성현 객사'다.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2021-01-16 06:00:00

[광장] '뉴TK 문화운동'을 시작하자

[광장] '뉴TK 문화운동'을 시작하자

'백범일지'(白凡逸志)는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 선생의 자서전이다. 이 책은 종교 경전을 제외하고는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할뿐더러 많이 읽힌 책일 것이다. 보물 1245호로 지정돼 있다. 책이 보물로 지정된 예는 그리 흔치 않다. 그만큼 이 책의 가치와 중요성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독서 풍토를 보면 이 책의 존재와 제목 정도는 알고 있으나 실제로 꼼꼼히 완독한 사람이 어느 정도일지는 짐작할 수 없다. 내가 그런 본보기이다. 나도 이 책을 초등학교 때 요약본을 읽고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나의 소원' 부분을 읽고는 이 책을 다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시 보니 제목이 공무적인 일기에 해당하는 '일지'(日誌)가 아니라 '일지'(逸志)라는 한자 표기도 눈에 띈다.1990년대 후반 우연히 백범의 손자인 김진 선생에게 친필 사인을 한 '백범일지'(도진순 교수 주해)를 받아 이미 다 아는 내용이니 하면서 책장에 모셔 두었다가, 최근에 이사하면서 발견해 다시 읽었다. 모든 책이 읽는 시기나 환경, 독 횟수에 따라 느낌이 각기 다를 수 있지만 이 책에서는 그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깊은 감동을 받았다. 개인의 내면이 드러난 일기이면서, 성장 소설이면서, 우리의 아픈 근현대사이면서 웅혼한 정치적 포부를 드러낸 정론서라는 인상을 받았다.이 책 상권의 앞부분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백범이 과거 시험을 보러 갔다가 과거가 매관매직되고 있는 현실에 좌절하고 시험을 포기하고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께서 백범에게 과거는 포기하고 풍수나 관상 공부를 하라고 권한다. 실제로 백범은 관상 공부를 한다. 관상은 우선 거울로 자신의 관상부터 공부하기 시작하는데, 백범이 본 자신의 관상은 '어느 한 군데 귀격(貴格), 부격(富格)의 좋은 상은 없고, 얼굴과 몸에 천격(賤格), 빈격(貧格), 흉격(凶格)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비관에 빠진다. 그러다가 그 책의 구절 중에 '관상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는 구절을 읽고 관상 좋은 사람(好相人)보다 마음 좋은 사람(好心人)이 되겠다고 결심한다. 이 결심의 결과가 짐작하건데 백범이 동학(東學)에 입교해 접주가 되고, 그 이후 생사를 뛰어넘는 지난한 독립운동에 투신했다가 암살로 생을 비극적으로 끝마치는 게 그의 전 생애라 할 수 있다.이 책의 뒷부분에 실린 '나의 소원'에 보면 백범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잘사는(부강한) 나라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힘이 있어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나라도 아니다. 그러면서 오직 한 가지 갖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인류가 현재 불행한 이유는 인의(仁義)와 자비와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이런 마음을 키우는 게 바로 문화라고 주장한다.오늘날 세상 돌아가는 형세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일찍이 우리 앞에 이런 세상이 있었던가?' 하는 깊은 좌절과 절망을 느끼게 된다. 정치는 정치대로 진영이 나뉘어져 옳고 그름을 분별할 만한 합리적 정론이 실종된 지 오래고, 경제는 비정규직으로 인한 소득 격차, 부동산에 의한 불로소득, 지방 소멸로 양극화가 심화된 지 오래이다. 언론도 사회의 목탁으로 효력을 상실한 지 오래된 듯하고 지식인도 소금 역할을 잃어버렸다. IT의 발달로 SNS 등에서 막말과 가짜 뉴스의 범람, 민초들의 과잉된 의사 표시로 뭐가 뭔지 모를 정도로 혼탁한 현실이 돼버렸다.고결하고 기개 높은 영남 사림의 자긍심과 오랜 선비 문화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대구경북 사람들이 백범 선생의 말씀처럼 먼저 문화를 통한 마음 공부, 상대편을 존중하는 겸손과 관대함, 열린 태도, 올바름을 지키는 정의감을 갖는 문화운동을 새로 시작했으면 좋겠다. 뉴TK 문화운동, 정신운동을 통해 우리나라와 세계 인류에 새 마음과 희망을 주는 신축년 새해가 됐으면 참 좋겠다.

2021-01-16 05:00:00

[임언미의 찬란한 예술의 기억] 예술과 일상의 행복한 만남

[임언미의 찬란한 예술의 기억] 예술과 일상의 행복한 만남

프랑스 파리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필수 코스로 루브르 박물관을 찾는다. 바삐 발걸음을 옮겨 인증샷을 촬영하는 곳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모나리자' 앞이다. 먼저 다빈치의 원화를 실제로 봤다는 사실에 감동하고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눈썹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여기서 조금 더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모나리자는 누구일까'를 생각해본다. 미술사 연구자들은 이 작품의 모델이 다빈치의 이웃이자 피렌체의 상인 조콘도의 부인 '리자'라고 기록하고 있다. 전 세계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모으는 이 작품의 주인공은 다빈치의 '평범한' 이웃 여성이었다.조선시대 화가들 중 김홍도와 신윤복의 그림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도 그들이 일상 속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냈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이 살았던 환경을 표현한 미술작품들을 보면 자연과 삶 그리고 예술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것을 발견하게 된다.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상이 예술가의 손을 거쳐 고도의 미적 경험 안에서 태어난 것이다.유명 예술작품의 예를 들었지만, 우리 가까이에 있는 예술가들도 이렇듯 일상 속에서 소재를 찾는 경우가 많다. 많은 미술작품들이 그러하고 공연예술 작품도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무대로 옮긴 경우가 많다. 올해로 창단 40주년을 맞는 대구시립무용단은 국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국공립 현대무용단이다. 1981년 대구시립무용단 창단 직후 선보인 작품 사진과 영상들을 보면 40년이 흐른 지금 봐도 '현대적'이다.무용가들이 무대 위에서 당시 '신문물'이었던 투명 비닐을 휘감고 움직이고, PVC 파이프를 활용한 무대 소품을 배경으로 춤추는 장면이 눈에 띈다. 야외 공원에 설치된 대형 풍선과 조형물 앞에서 무용수들이 동작을 하고 있는 영상도 이색적이다. 해질 무렵 야외 공연에 필요한 조명은 오토바이 수십 대를 일렬로 세워 라이트 불빛으로 연출하기도 했다. 조명 조작은 무용수들의 가족이나 지인이 맡았다. 안무가의 큐 사인에 따라 오토바이 조명을 켰다 끄기를 반복하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즐겁다. 요즘의 공연 현실에서도 생각하기 힘든 다양한 실험들이었다.부족한 남성 무용수는 대학에서 연기나 음악을 전공하는 남학생들을 불러 무대 위에 세웠다. 그저 서 있는 동작도 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기전 초대안무가는 "예술작품의 소재를 친근한 일상 속에서 찾아야한다는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다"고 말했다. 여러 예술 장르 가운데 무용, 특히 현대무용은 일반 사람들이 어렵다고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듯 일상 속 소재를 작품 속에 녹여내는 것은 관객들과의 거리를 한층 좁히는 계기가 됐다.시립무용단과 함께 1981년 창단된 대구시립합창단의 전신은 아마추어 합창 단체였다. 장영목 초대지휘자는 1958년 아마추어 합창단원들을 모아 전원아카데미합창단을 창단했다. 순수하게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단원이 되었고 또 후원자도 되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모인 만큼 단원들 간의 의리와 우정도 돈독했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관객을 모으는 일 또한 어렵지 않았다. 합창단의 연주가 열릴 때에는 객석이 언제나 가득 찼다.시립합창단 창단 초기 공연에는 정규 단원이 부족해서 전원아카데미합창단 단원이 함께 무대에 올랐다. 지금은 성악을 전공한 연주자들로 구성된 전문 예술단체로 자리 잡았지만, 시립합창단의 출발은 음악을 좋아하는 일반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우리 지역을 대표하는 전문예술단체도 이렇듯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예술을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함께 시작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최근 생활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미국의 철학자이자 교육학자 존 듀이의 저서 『경험으로서의 예술』이 많이 인용되고 있다. 듀이에 따르면 일상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경험들이 재구성되고 통합되어 '하나의 경험'으로 승화될 때 그 모든 것은 예술이 될 수 있다. 예술작품은 '예술가의 생산물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예술적 경험이 작용하는 삶'을 의미한다.올해도 창단 40주년을 맞은 시립무용단과 합창단뿐만 아니라 지역의 예술기관·단체들이 사람들의 일상으로 다가가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준비하고 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일상과 예술이 그리 멀리 떨어져있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021년에도 많은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다양한 '예술적 경험'을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임언미 대구문화 편집장

2021-01-15 12:30:00

[황환수 프로의 골프 오디세이] 겨울철 눈내린 필드에서의 요령

[황환수 프로의 골프 오디세이] <43>겨울철 눈내린 필드에서의 요령

설경은 천지를 하얗게 만들어 상큼한 느낌을 전해주기에 충분하다. 메마른 겨울을 적당한 습기로 채워주며 땅의 척박함을 막아주는 자연의 선물이기도 하다.그러나 골프장에서 만난 눈은 골퍼들에게 그다지 반가운 손님은 아닐 듯싶다.페어웨이를 덮은 눈은 잔디의 존재를 잊게 하는 장애로 인식돼 볼을 걷어내는 스윙으로 변하게 하는 주범이 된다. 또 볼을 눈구덩이 속으로 사라지게 하여 벌타를 감수해야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눈이 내렸거나 라운딩 도중 눈이 오면 영하의 기온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십중팔구 바람을 동반하는 까닭에 실제로 느끼는 체감 기온은 수온주보다 몇도 더 낮게 느껴져 추위를 감수해야 한다.습기와 싸라기눈은 페어웨이나 그린에서 정상적인 스윙이나 볼 구름을 방해해 골퍼의 스코어를 가파르게 치솟게 한다.어쨌든 겨울철, 특히 눈 내린 골프장의 라운딩은 영하의 기온만큼 싸늘하고 냉정한 스코어를 각오해야만 한다.이미 말라버린 잔디는 볼과 지면의 간격을 거의 사라지게 하여 자칫 빈번한 뒤땅이나 토핑성 볼을 양산하게 한다. 게다가 벙커의 경우 표면의 부드러움만 확인하고 정상적인 벙커샷을 하면 얕은 모래 밑에 돌덩이처럼 얼어붙은 지면 탓에 팔 부상을 당하기도 한다.이때는 일반적인 벙커샷이 아닌 볼만 살짝 걷어내는 손목벙커샷이 유용하다. 이 샷은 변형된 벙커샷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그린 사이드 50m 이상 일 때 웨지샷으로 볼을 직접 컨택해 그린에 올리는 방식이다.왼손목의 꺾임과 아웃인 궤도로 다운스윙해 클럽페이스가 모래를 건드리지 않고 볼만 살짝 걷어 올리는 테크닉이다. 얼어붙은 모래 위에서 매우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벙커샷인 셈이다.페어웨이나 그린 사이드는 눈의 습기와 얼어붙은 표면, 그리고 타이트하게 바닥에 내려앉은 죽은 잔디는 모든 클럽을 날카롭게 활용해야 하는 요령이 필요하다. 가령 평소 피칭으로 스윙한 거리라면 로프트 각도가 4도가량 더 낮은 9번 아이언을 활용해 낮은 탄도를 유도하며 이로 인해 구르는 볼의 거리를 활용하는 기술적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 점수관리 측면에서 유리하다. 웨지샷도 마찬가지이다. 겨울철 골프에서 평소 56도나 54도 웨지를 사용하던 골퍼는 이보다 4도, 또는 두 클럽에 해당하는 8도까지 낮춰 낮은 탄도의 어프로치 샷을 권유한다.겨울철 눈비가 내리는 기후 조건의 골프는 최악의 환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때 라운딩을 강행하는 것은 부상의 위험이 매우 커 스코어 관리에 연연하는 것은 매우 온당하지 않다. 오히려 드라이버나 우드, 롱아이언 샷을 연습하는 기회로 활용하고 실내에서 머물다 경직된 몸통 회전을 연습한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임할 것을 당부한다.차가운 기온에 골프장을 찾지 않으면 다가오는 봄날에는 한동안 필드 울렁증이 재연돼 애를 태우는 골퍼들이 의외로 많다. 겨울철에는 듬성듬성한 라운딩이 컨디션을 유지하는 요령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골프 칼럼니스트

2021-01-14 13:19:31

[춘추칼럼]호로고루 사적지에서

[춘추칼럼]호로고루 사적지에서

새해 들어 나이를 한 살 더 먹으니 늙는다는 실감이 또렷해진다. 눈이 침침하고 근력은 떨어졌다. 명민함과 정기도 사라졌다. 거울을 볼 때마다 나이 듦의 기색이 완연한 내 모습에 놀란다. 늙는 건 누구나 처음 겪는 일이다. 노년의 실감이 늘 생경하고 쓸쓸한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나이 듦과 죽음은 노력하지 않아도 맞는 실존 사건이다. 오늘 아침 라디오 국영방송 채널을 틀어 놓은 채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걱정으로 제대로 살지 못하고 삶에 대한 걱정으로 제대로 죽지 못한다"라는 구절이 전두엽에 번개처럼 꽂혔다. 나는 죽음을 걱정했던가? 그건 우주의 섭리이고, 풀어야 할 실존의 수수께끼일 뿐인 것을.북극의 한랭전선이 남진하며 매운 추위가 몰려왔다. 한강이 얼음으로 덮이고, 중부 내륙도 얼었다. 오후에 집을 나서 호로고루(瓠蘆古壘) 사적지를 찾았다. 집에서 멀지 않아 답답할 때면 찾는 곳이다. 마스크를 썼는데도 비강(鼻腔)으로 밀려든 찬 기운이 식초인 듯 따가웠다. 평지로 내려서니, 언 강과 응달 쪽 잔설, 쨍하니 파란 하늘, 임진강 너머에서 남쪽을 향해 나는 쇠기러기 떼가 한눈에 들어왔다. 이 지역에서 쇠기러기나 두루미 같은 겨울 철새가 자주 목격되는 것은 철새들 먹잇감이 흔한 들녘과 장항 습지, 임진강이 한데 몰려 있기 때문이리라.호로고루는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의 임진강변 현무암 절벽 위 강안평지성(江岸平地城) 사적지다. 호로고루는 임진강의 옛 이름을 '호로하'(瓠蘆河)라 불렀던 데서 유래한 것이다. 이 일대는 기원 6세기 중엽 이후 200여 년간 고구려와 신라의 접경 지역이었다. 누군가의 아버지, 삼촌, 아들이던 이들이 고향에 부모 형제 처자식을 두고 떠나와 낯선 땅에서 무장을 한 채 국경을 지키느라 낮과 밤을 흘려보냈으리라. 스무 해 전쯤 유적 발굴조사로 땅 속에 묻혀 있던 삼국시대의 성벽과 우물이 나오고, 다수의 연화문·와당, 토기, 철기 유물 등이 출토되었다. 지금은 평평한 구릉에 고구려 점령기에 쌓은 성벽과 성곽 일부가 복원되어 있다.강변 갈대숲에서 날지 않는 쇠기러기를 만났다. 깃털은 윤기를 잃고, 사체는 얼어서 딱딱했다. 함부로 방치된 조류 사체는 죽음이 어디에서나 일어나는 사건임을 말한다. 천지간에서 나고 죽는 건 사람이나 조류나 마찬가지다. 1천500년 전 번성하던 고대 국가의 흔적을 밟고 세월의 무상함 속에서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고 묻는 일은 범상하다. 국가의 부름을 받아 성벽을 쌓고 전쟁을 치른 이들은 무명의 병사들이다. 더러는 전쟁 중 팔다리를 잃은 채 귀향하고 더러는 차디찬 주검이 되어 낯선 땅에 묻혔으리라.공자는 물가에서 이렇게 말했다. 흘러감이 마치 이 물과 같구나. 밤낮으로 쉬지 않는구나! 시간은 저 아득한 근원에서 흘러와서 현재에 닿건만 현재는 유동하는 가운데 또 다른 현재에 닿는다. 인간은 그 유구한 흐름 속에서 이루어지는 생멸의 연쇄라는 굴레를 벗지 못한다. 하지만 내 생명은 나만의 것인가? 생명은 부모에게 받은 것, 내 의지로 살아낸 것, 미래 세대에 물려줄 것이다. 세 겹인 것을 굳이 내 것으로 한정할 때 생명이 품은 뜻은 협소해진다. 사람도, 새도 다음 세대에 자리를 내어주고 떠나간다. 오래된 경전에서 말하듯이 흙은 흙으로, 재는 재로, 티끌은 티끌로 돌아가는 것이다.젊을 땐 이런저런 걱정을 하느라 세월을 헛되이 썼다. 괴로워 술을 마시고 방황하던 젊은 날의 내 어리석은 선택과 행위들이 뼈에 사무친다. 결핍에 허덕이느라 현재에 더 충실하지 못했다. 너무 젊었던 탓이다. 공자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했다. 한 줌 지혜도 품지 못한 채 늙고 죽음을 맞는다는 생각에 쓸쓸해진다. 나이 들어 대리석을 깎아 새 집 지을 욕망 따위는 품지 말아야 한다. 차라리 무덤을 생각하며 비감에 젖는 자에게 한 줌의 지혜가 있으리라. 이제 아무 짝에도 쓸데가 없는 걱정거리는 내려놓자고 다짐한다. 오늘은 호로고루 사적지를 다녀왔고, 날 풀리면 속초의 겨울 바다를 보러 가야겠다.

2021-01-14 11:24:56

[매일춘추] 포용적 예술 활동

[매일춘추] 포용적 예술 활동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이지만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존재합니다."전 세계 32개국 160개 장소에서 1천200만 명 이상이 경험한 국제적인 프로젝트 전시 '어둠 속의 대화' 를 소개하는 문구이다. 1988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안드레아스 하이네케 박사에 의해 시작된 어둠 속의 대화는 2010년 전 세계에서 10번째로 신촌전시장을 개관한 이후, 2014년부터는 현재의 북촌으로 자리를 옮겨 이어나가고 있는 시각장애 체험전시다.어둠이라는 극단적 상황 속에서 관람이 아닌 진정한 소통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을 목표로 모든 과정은 100분 간 로드마스터의 안내에 따라 진행된다. 시각적 판단이 차단된 상태에서 나머지 감각을 통해 공기의 흐름, 온도의 변화, 소리 등을 인지하는 경험은 보이지 않을 때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어떤 편견도 없이 본질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우리들의 눈'은 1996년 설립되어 현재까지 장애학생들에게 비장애학생들과 동등한 미술교육의 기회를 주며, 융복합적 미술교육을 실천하는 문화예술프로젝트 비영리단체이다. 특히 2009년부터 지속되는 '코끼리 만지기 아트 프르젝트'는 시각장애학생들이 태국 치앙마이 등 현지에서 체류하며 코끼리를 각자의 방식으로 경험하고 인식하여 한국으로 돌아와 표현한다. 창의적인 시각을 통해 해석된 작품들은 시각에 의존하여 사물을 관찰하는 것과는 다른 시각세계를 보여준다.장애인복지법 제4조(장애인의 권리) 제2항 "장애인은 국가·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정치·경제·사회·문화, 그 밖의 모든 분야의 활동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에 따라 문화예술기관에서는 차등적 관리시스템을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별없는 기회 제공과 문화 향유권 확대를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쇼케이스 속 유물을 3D 프린팅과 복제를 통해 직접 만지는 경험을 할 수 있으며 부산시립미술관, 대구보건대 보현박물관 등에서는 점자 도록과 촉각 도판을 제작하였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등은 시청각 장애인을 위한 음성 해설, 문자 통역, 수어 통역서비스를 정기적으로 지원한다. 이러한 포용적 예술 활동을 통한 다각적 접근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이를 문화적 다양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시각적 접근을 중요시하는 고전적인 전시 공간에서 체험과 경험을 통한 감각과 인식을 확대할 수 있는 전시공간으로서의 역할 변화는 사회와 커뮤니티 간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통합적 소통을 위한 방안으로 더욱 더 확대되어야 한다.

2021-01-14 11:23:58

[기고]코로나 세한 송백

[기고]코로나 세한 송백

겨울 날씨가 차가울수록 추사(완당) 김정희와 그의 '세한도'가 생각난다. 최근 세한도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더 높아졌다. 그림을 오랫동안 간직해온 손창근 선생이 국가에 기증했기 때문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이달 31일까지 전시해 추사를 새로운 느낌으로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고 있다.그런데 신문과 TV 등 대중매체에서 세한도를 보도할 때 '발문'(跋文: 그림이나 책을 설명하는 글)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림을 보여줄 때도 세한도 왼쪽의 발문을 빼는 경우가 많다. 이는 세한도를 잘라 절반만 보여주고 훼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세한도의 가치를 알기 위해서는 발문을 살펴야 한다. 발문을 음미해야 세한도의 깊은 뜻을 느낄 수 있다. 추사에게 글씨와 그림은 별개가 아니어서 더욱 그렇다.추사는 송백(소나무와 잣나무)을 그린 뒤 발문을 쓸 때 정성을 쏟았을 것이다. 제주도 서귀포 대정읍에 유배된 지 5년째. 세상에서 잊히던 추사에게 제자(우선 이상적)가 청나라에서 구한 귀한 책을 두 차례 보냈다. 세한도는 그 고마움에 대한 답례 작품이라는 것이 일반적 평가이다. 틀리지 않지만 피상적인 설명이다.세한도 발문에는 제자에 대한 고마움을 넘어서는 차원이 있다. 세한송백 정신에서 나온 세한도는 그림 작품 이전에 추사 자신의 삶을 지탱한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추사체 글씨도 제주 유배 시절에 높은 경지를 이룩했다. 그의 이 같은 태도가 제자의 행동을 계기로 자연스럽게 그림으로 나타난 것이다.'세한연후송백'이라는 말은 논어 자한 편에 공자의 말로 기록되어 있고, 추사는 이를 그림의 제목으로 삼았다. '세한도'는 '세한송백도'의 줄임말이라고 할 수 있다. 송백의 한결같은 푸름을 칭송하는 기록은 논어 이전 문헌에도 많이 등장한다. 세한송백은 공자 자신이 겪었던 어려움을 담은 표현이라는 점에서 송백의 의미가 확장됐다.발문은 290자가량이다. 귀한 책을 어렵게 구해 보내준 사연을 시작으로 공자께서도 칭찬할 만한 일이라고 고마워한다. 발문에서 깊이 음미할 부분은 끝에 언급되어 있다. 추사는 "공자께서 겨울 송백을 특별히 칭송한 이유는 시들지 않는 꿋꿋한 모습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차가운(어려운) 시절에 대한 심정을 드러낸 것이리라."(聖人之特稱, 非徒爲後凋之貞操勁節而已 亦有所感發於歲寒之時者也)라고 했다. 세한송백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삶이 매우 어려운 상황일수록 사람의 바른 성품을 그리워하는 심정이 스며 있다는 말이다.세한은 해마다 돌아오는 그냥 보통의 겨울이 아니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추운(어려운) 특별한 때를 상징한다. 추사는 이를 '세한지시'(歲寒之時)라고 표현했다. 공자에게는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 14년 유랑 생활을 함께한 제자들이, 절해고도에 갇혀 하루하루 이겨내던 추사에게는 책에 마음을 담아 보낸 제자가 세한송백이다.'국보 중의 국보'라는 세한도의 가치는 추사의 이 같은 깊은 마음에서 은은한 향기처럼 피어난다. 제자 이상적이 세한도를 중국에 가져갔을 때 많은 문인들이 앞다퉈 감동한 느낌을 글로 남긴 이유도 삶을 깊이 헤아리는 마음에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 품에 안긴 세한도의 더 큰 가치는 국민이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코로나 세한'의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서로 위하는 마음을 담아 '코로나 세한송백도'를 가슴에 그리는 분위기에서 그 힘이 돋아나리라.

2021-01-13 11:23:34

[최재목의 새론새평]1월, 1과 장(長)을 생각한다

[최재목의 새론새평]1월, 1과 장(長)을 생각한다

다시 1월이다. 1월의 '1'이란 숫자를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오직 하나뿐인, 유일한, 그 무엇을 뜻하는 일(一). 그것은 신(神)일 수도, 태양일 수도, 황제일 수도, 오직 한 번뿐인 나의 인생일 수도 있다. 시작되는 '처음'일 수도, 모든 것이 결국 돌아가야 할 '마지막'일 수도 있다."문명은 문자에서 시작하고, 문자는 숫자에서 시작하며, 숫자는 1에서 시작한다"고 했듯, 모든 것은 하나, 일(一)에서 시작한다. 한 해도 1월에서 출발한다. 1은 시작하는 곳이지만 다시 돌아오는 곳이기도 하다. 지쳐서 돌아가고 싶은 고향. 존재들이 스러져 눕는 흙바닥(대지). 그곳을 향한 향수도 하나를 향한 욕망이다. 사람처럼 곧게 서 있는 1자를, 한자(漢字)로 일(一)이라 써 보면, 무언가 평평히 누워 있는 모습이다. 곧게 서 있던 나무도 결국 땅에 눕는다. 특별하게 솟아났던 것이 결국 수평으로 누워 '그게 그것'인 것으로 변해 가듯, 서 있는 것(1)이나 누워 있는 것(一)이나 다 같은 '하나'이다.어쩌면 1은 0이 낳은 독생자(獨生子)이거나 천상천하유아독존의 독존(獨尊) 같은 것인가. 무한・혼돈・무(無)・제로(空)를 향해 떠나가는 나그네 같은, 모든 존재들의 과정(=소멸・퇴락・멸망)을 기억하라는 영광스럽고도 안타까운 부표인 것일까. "단 한 번,/ 모든 것은 단 한 번뿐 더 이상은 오지 않는다/ 우리도 마찬가지/ 단 한 번뿐 다시라는 건 없어. 그러나/ 단 한 번뿐이긴 하지만, 한 번 존재했었다고 하는 것,/ 바로 이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그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두이노의 비가' 9번째 시에서 이렇게 읊었다. 서양의 전통에서 보면 1은 신이 독점했었다. 그런데 이런 1을 인간에게 적용하는 것이 좀 예외적이긴 하다. 하기사 릴케는 "신이여 내가 죽으면 당신은 뭘 하시겠습니까?"라고 신을 위로하는 시어를 가진 사람이니, 충분히 그럴 자격도 있다.수많은 빛이 있으나 결국 하나의 태양에 귀속된다. 잔잔한 별빛도, 흔들리는 촛불도, 따사로운 모닥불의 불꽃도, 내 눈빛도, 모두 위대한 강렬한 저 빛 앞에선 제압당한다. 인간의 삶에서도 그렇다. 촛대였던 주(主) 자가 한 집안을 밝힐 주인공이라는 뜻에서 '주인'이라 읽게 되었다. 모든 불빛은 거기로 모인다. 한 나라의 대통령도, 한 도시의 시장도, 한 대학의 총장도, 그 자리엔 단 한 사람밖에 없는 '장'(長)이다. 장은 우두머리, 수뇌, 리더, CEO이다. 빛을 발할 자리이자 자격을 가진다.최근 새로 총장이 들어서고, 조만간 보궐선거로 시장도 바뀌게 된다. 나아가 대통령도 바뀔 것이다. 임기를 가진 장들이 가져야 할 덕목은 무엇인가. '어른, 높음, 나음, 오램(항상)'이라 생각한다. 첫째 어른 노릇이다. 어른은 근엄하기도 하나 포용하고 통합하고 중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그 자리는 높지만 낮은 평지여야 한다. 분열하고 이간질하는 자리가 아니다. 목에 힘주고 번쩍대며 큰소리만 친다면 '태양을 꺼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유일한, 환한 빛 아래에 온갖 잔잔한 빛의 수많은 주인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둘째, 안목이 높아야 한다. 그래서 한 수라도 더 볼 수 있어야 한다. 비전을 말한다. 도시는 인구를 잘 챙겨야 살고, 대학은 학생을 잘 받아야 산다. 그렇지 않으면, 벚꽃 '피는 순서'대로가 아닌, 벚꽃 볼 '사람 없는 순서'대로 망해 갈 것이다. 셋째, 뭐가 나아도 더 나아야 한다. 각기 능력대로 일할 자리, 먹고살 자리를 챙겨 주는 게 보통 사람보다 더 나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다. 힘이 아니라 짐이 될 뿐이다. 넷째, 가치 있는 약속을 오래 지킬 능력이다.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 했다. 저질러 놓기만 하지 말고, 실천하고 매듭짓고 지속해 가도록 해야 한다.시작 지점에 있는 1이란 숫자는 둥근 원 속의 한 점처럼, 모든 운동의 시작이며 회귀의 자리이다. 1월, 어느 자리에서든 누구나 주인이 되는 1을 생각한다. 그러나 그 자리는 모든 것의 중심이지만 모든 것을 품고 나누지 않는, 어머니의 품 같은 따스한 자리였으면 한다. 다시 1월. 싸늘한 대립과 모순의 상황 속에서, 1이란 숫자를 가만히 품어 본다.

2021-01-13 11:22:51

[매일춘추] 1985, 차고 작업실

[매일춘추] 1985, 차고 작업실

내 기억 깊은 곳에 숨어 있다가 문득문득 떠오르는 기묘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 나의 대학 학번이기도 하다. 1년 간의 대학 새내기 생활을 끝내고 해가 바뀐 1985년, 나는 새로운 작업실로 이사를 했다. 도시의 변두리, 길가의 차고였다. 당시에는 곧 닥칠 '마이카 시대'를 준비라도 하듯 집집마다 차고가 있었다. 그렇지만 아직 오지 않은 마이카 시대와 비어있는 차고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은 차고에 셔터를 달아 세를 놓곤 했다.그때가 여름이었나? 동네 어머님 몇 분이 양복 차림의 신사 한 분과 함께 작업실로 찾아왔다. 영화 킹스맨의 콜린 퍼스처럼 매너가 뚝뚝 떨어지는 이 젊은 신사의 손에는 사진 한 장이 들려있었다. 젊은 여인이 캔버스 앞에 앉아있는 사진이었다. 야단스런 어머님들의 상황 설명은 이랬다. "아, 이 분이 집나간 여동생을 찾는대요. 서울서 김 서방 찾기도 아니고 그래 가지고 어떻게 찾노. 그래서 우리가 여 화실 있는 거 알고 일로 안 델꼬 왔는교."우선 화실로 들여 대화를 시작했는데 이 젊은 콜린 퍼스는 집이 서울이고, 유명한 의사집안 장남이며, 여동생이 반대하는 그림에 빠져 가출한 뒤로 연락이 닿지 않아 찾아 헤매고 있다는 것이었다.이미 해는 져서 캄캄하고, 사정을 들어보니 참 딱하고 애틋하니 어쩌겠나. 누추한 화실이지만 묵고 가랄 수밖에. 킹스맨 양복 윗옷을 벽에 걸고 되는대로 한 공간에 누웠는데, 이 양반은 어눌한 듯 공손하고 느린 듯 매너 있는 말투로 측은지심을 불러 일으켰다. 초라한 화실의 곰팡이 핀 방에 누워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때 한참 해부학 공부를 할 때였는데, 콜린 퍼스는 병원으로 놀러 오면 인체모형뼈대를 보여주겠다고 했던 것 같다.그럭저럭 잠이 들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갑자기 악몽이라도 꾼 듯 소리를 지르며 콜린 퍼스가 벌떡 일어났다. 팔도 서너 번 휘저었던 것 같다. 나도 덩달아 잠에서 깨 괜찮으냐고 물었다. 아, 그런데 이 양반, 땀을 뻘뻘 흘리며 불안한 눈빛과 두려움 가득한 표정으로 넋이 나갔다. 뭔가 알지 못할 사연이 있는 듯했다.다음날 아침, 간단한 식사를 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지갑마저 잃어버린 그에게 서울 갈 여비를 마련해줬다. 돈이야 돌려받건 말건 간에 나는 진심으로 그가 여동생을 찾기를 바랐다.그렇게 가물가물 그날의 기억이 사라질 때쯤, 나는 희한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즈음 대학가 주변을 돌며 여동생을 찾는 사람이 있는데, 어떤 화실에서는 같이 라면을 먹어가며 며칠씩 묵어가기도 했다는 거다.그는 사기꾼이었을까? 그래봐야 푼돈일 텐데? 그 사진은 여동생이 맞을까? 의사 집안은 아니겠지? 그의 정체는 도대체 뭘까? 요즘도 뜬금없이 떠오르는 숱한 의문 속에서 나는 생각해 본다. SNS와 비대면 시대엔 상상할 수 없는 것.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맨 것은 어쩌면 아날로그 시대의 낭만과 따뜻한 정이 아니었을까?리우 영상설치작가

2021-01-13 11:22:23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최악의 마케팅이 탄생했다.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최악의 마케팅이 탄생했다.

해서는 안 되는 마케팅이 있다. 타인의 슬픔을 팔아 이익을 보는 행위다. 그런 마케팅이 탄생했다. 바로 '정인이 굿즈'다. 최근 인스타그램에는 '정인아 미안해'라는 문구가 적힌 상품을 판매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당연히 사람들은 분개했다. 세상의 빛을 본지 고작 16개월이 된 영아의 죽음이었다. 그 눈물을 이용한 마케팅이라니. '자낳괴(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의 탄생을 목격하는 순간이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해 첫 방송을 볼 수 없었다. 정인이 사건에 대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6년 전 아들이 태어난 이후로부터 생긴 버릇이다. 아빠가 되고 나서부터는 아동 학대에 관해 자동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들이 일어나 걷기 위해 얼마나 숱하게 넘어지는지, 얼마나 우리 어른들이 손을 내밀어 줘야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을 도배한 '정인아 미안해'도 할 수 없었다. 진짜 미안해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바꿀게'라는 말은 무책임하게 들렸다. 특히 이런 문구를 써 스케치북을 든 사진을 언론에 배포한 정치인의 모습은 역겨웠다.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우리의 나약함이 들통 나는 장면이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못했다. 광고인들은 세상에 작품을 선보일 때 다음의 사항을 고민한다. 1. 이 광고로 누군가가 자살하면 어떡하지?2. 이 광고로 생계가 끊어지는 사람이 생기면 어떡하지?3. 이 광고로 어느 가장이 직업을 잃으면 어떡하지?4. 이 광고가 아이들에게 불량식품을 사먹도록 하면 어떡하지?5.이 광고가 교육 수준이 낮은 노년층을 속여서 돈을 빼먹으면 어떡하지?물론 광고를 만들 때마다 항상 이런 부분을 체크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기본이다. 마치 과일 가게에서 사과를 팔 때 썩은 부분이 있는지 확인하고 파는 것과 같다. 광고도 그렇다. 이런 고민을 하지 않고 내놓은 광고엔 어김없이 악플이 달린다. 광고 카피는 토시 하나에 따라서 보는 사람의 기분이 달라진다. 광고 문구가 누군가의 열등감을 자극하기도 한다. 광고 디자인은 남자 이미지를 쓰느냐 여자 이미지를 쓰느냐에 따라 불평등에 관한 악플이 달린다. 그만큼 사람들은 광고에 예민하다. 광고에도 윤리가 있다. 이 윤리가 무너지면 우리 삶이 무너진다. 우리는 하루 5,000여개의 광고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우리는 아침에 눈떠서 밤에 눈감기 직전까지 광고에 노출되어 있다.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같은 채널의 등장으로 누구나 미디어가 된 세상이다. 심지어 요즘은 1인 미디어 커머스가 트랜드이다. 누구나 쉽게 광고하고 마케팅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내 지갑이 두둑해지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누군가의 살집을 도려내어 내 지갑에 쑤셔 넣지는 말자. 그 지갑이 지금은 두툼할지라도 언젠가는 썩는다. 우리 몸은 오프라인에 있지만 우리는 사실상 온라인에 살아가는 시대이다. 그럴수록 예의를 갖추자. 인간관계에만 예절이 있는 것이 아니다. 마케팅에도 도리가 있다. 우리 최소한 그것만은 알고 살아가자.

2021-01-13 07:38:17

[경제칼럼]코로나 팬데믹이 일깨워 준 제조업의 중요성과 과제

[경제칼럼]코로나 팬데믹이 일깨워 준 제조업의 중요성과 과제

1년 전 이맘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확산으로 소위 마스크 대란이 시작됐다. 마스크 가격이 폭등하고, 요일을 정해 마스크를 사야 하는 낯선 상황을 우리는 맞이했었다. 다행히 이런 비극적 상황이 여름이 끝나기 전 해소됐는데 3, 4개월 만에 국내 마스크 생산량이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하지만 우리나라와 달리, 해외 저개발 국가뿐만 아니라 미국 등 선진국도 아직까지 마스크를 비롯한 의료용품 부족에 시달린다.전 세계 의료용 마스크 생산량 1, 2위 기업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이 코로나 팬데믹 초기부터 지금까지 의료용 마스크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일까? 비행기와 인공위성까지 만드는 미국은 왜 우리처럼 빨리 마스크 생산량을 늘릴 수 없었을까?참고할 만한 하나의 사례가 있다. 세계 최대 정보통신 기업 애플은 2010년대 들어, 중국이 아닌 미국에서 PC와 스마트폰을 생산하기 위해 상당한 투자를 해 왔다. CEO인 팀 쿡이 직접 생방송에 출연해 중국에서 위탁 생산하던 대당 3천달러짜리 최고급 PC를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시에서 생산한다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공장을 세우고, 생산 시설을 갖춘 후, 본격 양산에 돌입하는 과정에서 애플은 큰 난관에 봉착했다.PC 부품으로 특수한 모양의 나사가 사용되는데, 미국 오스틴시에서는 이를 구할 수 없었다. 오스틴에 있는 모든 공장을 다 뒤졌지만, 적정 수량을 공급할 수 있는 기업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애플은 손실을 감수하고 생산 일정을 미뤄야 했고, 중국에서 나사를 수입한 후에야 생산을 시작할 수 있었다.최근 미국은 중국과 그야말로 무역 전쟁을 불사하면서까지 해외 공장을 미국으로 다시 끌어들이고, 제조업을 육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애플의 사례는 아무리 미국이라도 그런 노력이 쉽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이것은 제조업의 핵심에 공급사슬(supply chain)이 자리 잡고 있어서다.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고, 막대한 자금 투자 능력이 있더라도 공급사슬이 무너지면 제조가 불가능하고, 공급사슬을 구축하는 것은 단기간에 가능한 게 아니기에 미국은 우리와 달리 빠르게 마스크 생산량을 늘릴 수 없었던 것이다.지난 수십 년간 대구경북은 제조업 공급사슬이 잘 갖춰진 지역 중 하나였다. 섬유산업과 전자산업이 지역에서 성장한 것도, 완성차 기업은 없지만 수많은 자동차부품 기업이 존재할 수 있는 것도 지역에 제조업 공급사슬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최근 지역의 제조업 공급사슬은 여러 측면에서 큰 도전을 맞이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공급사슬 경쟁력의 핵심인 기술과 인재의 재생산과 혁신이 지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제조업 공급사슬은 외형적으로는 부품과 부분품의 수요-공급 관계 또는 원청-하청 관계로 표현되지만, 그 속에는 기술과 인재가 숨어 있다. 지역의 장인급 소공인들은 점차 은퇴하고 있으나 이를 메울 사람은 부족하다. 심지어 있는 기술조차 전수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기술을 도입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제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 등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가 제조업 분야 전문 인력 양성을 게을리해 온 영향이 적지 않다. 일본의 수출 규제로 소위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국산화 필요성이 대두되기 전까지, 적어도 지난 20년간 정부의 소재, 부품, 장비 분야 고급 전문 인력 양성 프로그램은 손에 꼽을 정도다.나사 하나 때문에 난관에 봉착했던 애플의 사례처럼 한 번 무너진 제조업 공급사슬을 다시 세우는 것은 아주 어렵다. 지역에 존재하는 제조업 공급사슬이 와해되기 전에 체계적인 정책을 세워 빨리 움직일 필요성이 있다.대구시와 경상북도가 자동차, 로봇 등 지역 핵심 제조업과 관련된 인력을 양성하는 '휴스타 프로젝트' 같은 사업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 많은 전문가들이 '코로나 팬데믹 이후' 중국을 중심으로 한 기존 세계적 제조업 분업 체계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대구경북이 이러한 전환기에 세계적인 제조업 거점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

2021-01-12 14:14:04

[종교칼럼]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종교칼럼]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가 되면 누구든지 만나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를 한다. 그러나 그 복은 어디서 오는지? 누가 무엇을 가져다 주는지? 는 고민해 본 사람은 없다. 어릴 때는 복 주머니 안에 복이 들어 있는 줄을 알고 있었으며 막연하게 좋은 것인 것은 분명히 느낌으로는 알고 있었다.복에는 신복(身福), 재복(財福), 인복(人福)이 있다. 첫째 신복이다. 몸을 지탱하고 있는 복에는 눈 밝은 것, 귀 밝은 것, 몸 전체 건강 한 것도, 다 복이다. 복인 것을 느낄 때는 그 한 부분이 불편해 봐야 소중함을 느껴서 복이 됨을 알 수 있다. 둘째는 재복이다. 재물 복이 있어야 살아가는데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본인의 역량을 다 발휘할 수 있다. 셋째는 인복이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는 것을 우리는 "인복이 많은 사람이다"라고 얘기한다. 사람과의 인연은 사회생활에서 어떤 인연보다 중요하다고 하겠다. 좋은 인연을 만나면 행운이지만 나쁜 인연을 만나면 더욱더 인생에 오류가 생겨 무난하게 지나야 할 인생도 꼬이게 된다. 복이 없으면 되는 것이 없다. 공부도 할 수 없고, 먹고, 입고, 하는 것도 힘들어 지며, 인생의 방향설정이 어려워진다.그러면 그 복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복을 지은 것이 없는데 올 리가 없고 사람들과의 인연들에게 베푼 것이 없는데 도와줄 리가 없다. 복은 바로 내가 짓고 내가 받는 것이다.부처님께서는 일곱 가지 재물이 아닌 보시를 말씀하시며 작은 것에서 큰 복을 얻을 수 있는 인성을 제시해 주셨다. 첫째는 눈으로 하는 보시다. 아무리 마음에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눈을 흘기면서 상대를 대한다면 많은 오해를 가질 것이다. 그러나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상대방을 대한다면 누구라도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 중에 한사람 일 것이고 친절과 긍정의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건강에도 유익하게 될 것이다.둘째는 얼굴로 하는 보시다. 처음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이 얼굴이다. 화가 나있는지? 기분이 좋은지? 살아온 세월, 성격, 그리고 마음까지 아무리 좋은 마음을 가졌다고 해도 얼굴을 찌푸리면서 일을 한다거나 말을 한다면 무엇인가 불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생각 하게 될 것이다. 셋째는 입으로 하는 보시다. 입은 재앙의 문이라고 하지만 입을 통해 남을 위로해 줄 수도 있고, 칭찬을 해줘서 더 잘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도 가능하며, 용기를 북돋아 새 희망을 갖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넷째는 몸으로 하는 보시다. 남이 힘들어 할 때, 몸으로서 도와주는 것은 그 어떤 말보다도 대신할 수 없다. 남이 힘들 때 도와주지 않았는데 내가 힘들다고 그들이 내 곁에 와서 도와줄 리 만무하다. 내가 좀 힘들어도 주변을 살피고 봉사하고 베풀고 몸을 아끼지 않았을 때, 그 역시 나의 힘든 것을 헤아려 준다. 다섯째 마음으로 하는 보시다. 현대사회는 물질사회라 물질이 가지 않으면 소용없다고 생각 하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렇지만은 않다. 마음이 있어야 감동을 줄 수 있고, 그 감동이야말로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만들어 준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다.여섯째는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연세 많은 노인이 탔을 때, 그리고 병자가 몸을 가누지 못했을 때, 자리를 양보 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입장을 잘 이해한다는 것이다. 일곱째는 숙박 보시인데 이것은 옛날 어려운 시절에 보따리 행상 하는 사람에게 잠자리를 제공해준다는 것이다.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숙박을 제공해 주면 식사까지 책임 져야하는 부담이 있는데도 기꺼이 나누는 것을 말한다. 현대적으로 해석한다면 장소를 보시하는 것일 것이다. 이 일곱 가지의 무재보시를 근본바탕으로 실천만 해도 우리 마음 속에는 긍정의 에너지가 살아서 숨 쉬며 본인의 신복, 재복, 인복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까지 온 세상이 따뜻한 봄날을 맞이하는 행운을 주게 될 것이다.칠곡 동명 정암사 주지

2021-01-12 11:45:30

[매일춘추] 예술영화를 즐기는 방법

[매일춘추] 예술영화를 즐기는 방법

예술영화, 독립영화하면 으레 듣는 말이 있다. 지루하고, 따분하고, 어렵고, 이해 안 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재미없는 영화, 예술독립영화에 대한 인상이 대개 이렇다.쓰다 보니 필자도 예전에 비슷한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살았던 때가 있었다. 수학을 지독히 싫어해서였다. 이 지루하고 따분하고 어렵고 이해 안 되는 재미없는 과목이 수능 배점마저 높다니, 하며 좌절했던 기억이다. 한때 수포자의 입장에서, 더 많은 '예포자'가 생기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예술독립영화를 조금 더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사실 이 방법은 '맥북이면 다 되지요'로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던 장병기 감독이 일러준 것이다. 그의 방법은 "저 지루한 한 장면에도 분명히 작품을 만든 감독의 의도가 있으니 그걸 찾으면서 보라"는 것이었다. 허벅지를 꼬집고 졸음을 쫓아가며 수많은 예술영화들을 보면서 체득했을 장 감독의 이 방법은 곧 '비평의 눈으로 영화를 보라는 것'이다.대부분의 상업영화는 비평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 '극한직업'이나 '어벤저스: 엔드게임'처럼 너무나 재미있는 상업영화들을 보면서 창작자의 의도를 찾는 일은 무의미하다. 관객은 아무런 부담 없이, 잘 짜인 이야기를 담은 시청각 상품을 그저 소비하기만 하면 된다.영화를 보고나서도 뇌리에 맴도는 숱한 질문들과 영화 속 장면들, 찝찝한 감정이나 당혹감, 혹은 해소되지 못하는 감정 등이 생길 때 비로소 비평이 개입할 여지가 생긴다. 드디어 감상이 시작되는 순간이다.스토리와 내러티브에 대한 지나친 집착도 감상을 해치는 요인일 수 있다. 말이 되냐 안 되냐, 줄거리와 개연성만 따지며 영화를 보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것들은 놓치기 십상이다. 홍상수의 '도망친 여자'를 도대체 누가 언제 도망칠까만 생각하며 보는 것과 같다.거대한 스크린을 통해 만나는 영화는 인과관계의 재미 말고도 찾아볼 것이 많다. 쇼트와 쇼트의 연결, 촬영의 구도와 카메라의 위치(시점), 청각적 요소와 시각적 요소(미장센) 등 재미를 찾을 요소들은 얼마든지 있다. 그것도 아니면 장병기 감독의 조언을 다시 떠올리면 된다."저 영화 만든 감독 머릿속에는 대체 뭐가 든거야?""비평은 하나의 욕망, 즉 경우에 따라 작가의 욕망에 호응했을 때만 정당화된다"는 평론가 세르주 다네의 말처럼 거대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저예산영화들을 보다 보면, 창작자의 심연과 욕망과 직접 조우하는 기적같은 순간을 가끔 만날 수 있다.어떤 덜컥거림도 없고 개성마저 매끈하게 다듬어 버린 상업영화에서는 좀처럼 기대하기 힘든 순간이다. 마침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에서는 이런 기적의 가능성을 품은 몇몇 영화가 상영 중이다. 특히 '겨울밤에', '에듀케이션', '내 언니 전지현과 나'는 놓치지 말아야 한다. 작가의 인장이 뚜렷하게 찍혀있는 영화들이기에, 비평의 눈으로 보면 더없는 충만함을 안겨줄 것이다. 당장의 재미가 덜 할지 모르지만, '좋은 영화'임은 확실하다.이승우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창작지원팀장

2021-01-12 11:41:57

[이상곤 칼럼] 달라이라마의 ‘보리심’ 수행

[이상곤 칼럼] 달라이라마의 ‘보리심’ 수행

"삼보에 귀의합니다.모든 악업을 참회합니다.중생의 선업을 수희 찬탄합니다.부처님의 깨달음을 마음에 새기겠습니다.깨달음에 이르기까지 불'법'승 삼보에 귀의합니다.자타(自他)의 뜻을 이루기 위해 보리심을 일으키겠습니다.최상의 보리심을 일으키고 모든 중생을 나의 귀빈으로 여겨 최상의 보살행을 하겠습니다.중생을 위해 부처를 이루겠습니다." (입보리행론-용수보살)불교에서 '보리심'이란 오로지 남을 위해 사는 마음을 말한다. 자기만을 위한 삶은 허물이고 오직 남을 위한 삶, 즉 이타심만이 공덕이라는 말이다. 오로지 내 몸, 내 가족, 내 편만 우선하는 요즘, 이 보리심의 가르침은 신선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티벳 불교와 한국 선불교 등이 유럽에 크게 붐을 이루고 있다. 자본주의 문명사회를 개척해온 서구에서 이타심의 종교인 불교가 '붐'을 이룬다는 것은 어찌 보면 역설이다. 하지만 문명을 살고 있는 인류는 늘 진리와 이치를 헤쳐가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타'의 가르침은 널리 퍼질수록 좋다.연초 유튜브에 티벳불교의 스승 달라이라마가 불교 반야부 핵심경전인 '반야심경'으로 화상 강의를 한 것을 본 적이 있다. 달라이라마는 이타심을 실천하는 대표적인 불교 스승이다. '간화선'의 나라인 한국에도 요즘 달라이라마의 가르침이 유행하고 있다. 그의 수행의 핵심은 '보리심'과 '공성(空性)'이다. 공성의 지혜 즉 모든 사물은 고정돼 있지 않고 상호 의존해 존재한다는 이치를 바탕으로 보리심 수행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달라이라마는 이 가르침을 매일 실천하는 것을 가장 중시한다. 위의 입보리행론 게송은 달라이라마가 매일 암송하는 기도문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들기 전 제자 아난에게 '게으르지 않는 실천'을 강조한 때문일까? "아난다여,자신을 의지하여 머물고남을 의지하여 머물지 말라. 자신을 섬으로 삼고 머물고,다른 것에 의지하여 머물지 말라. 참으로 그대들에게 당부하노니형성된 것들은 소멸하기 마련이다.게으르지 말고 해야 할 바를 모두 성취하라.이것이 여래의 마지막 유훈이다." (대반열반경) 이같은 보리심 수행과 관련해 달라이라마의 '스승론'은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기회 있을 때마다 윤리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달라이라마는 올바른 스승상에 대해 "제자들을 온전히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는 사람만이 스승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스승의 제1조건으로 제자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실천력'을 말한 것이다. 스승의 10가지 덕목을 제시한 장엄경론에도 '자신의 마음을 챙겨 제자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을 스승의 첫 번째 덕목으로 친다. 물론 자비로우면서 깨달음을 직접 체험한 사람이라야 한다. '스승 부재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던지는 참신한 경책이다.예술가들에게는 남다른 실천력을 당부했다. 그는 "인간이 만든 창작물 중에서 핵무기를 보고 제일 놀랐다"면서 "예술가들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 시기와 질투, 경계심을 일으키는 작품을 만들면 안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예술가들은 창작에 앞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이든 창작이든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는 '마음 챙김' 실천이 바탕이 돼야 한다는 말이다. 코로나19 팬데믹과 혼란한 정치로 악전고투하고 있는 한국 국민들에게 티벳 스승이 연초에 신선한 가르침을 던지고 있다. ​이상곤 전 청와대 행정관

2021-01-11 13: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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