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광고 카피 한 줄이 상품의 매출을 좌지우지한다. 사진: pixabay 제공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SNS에서 광고 카피 쓰는 6가지 방법-1

우리의 하루는 글쓰기로 가득 차 있다. 회사에 가면 기획서를, 학교에 가면 과제를 쓰며 하루를 시작한다. 영업직이나 자영업 종사자들도 마찬가지다. 고객에게 메일을 쓰며, SNS로 홍보를 하며 글을 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말은 '쓰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말로 바뀌어야 할 것 같다.그렇다면 글쓰기 능력만 좋아져도 우리의 하루가 바뀔 수 있다는 결론이 난다. 필자는 대기업, 중소기업부터 소상공인까지 강의를 다니며 '광고 카피 잘 쓰는 법'에 대한 질문을 157회 정도 들었다. SNS의 카피 한 줄이 상품 매출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숱한 질문에 대한 대답인 만큼 필자는 다음 주까지 2회 분량으로 카피 쓰는 법을 설명하려 한다.첫째, SNS의 사람들은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 이 사실을 먼저 인지해야 한다. 그들은 철저하게 당신의 브랜드에 관심이 없다. 그런 관계는 당신 역시 마찬가지다. 당신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를 볼 때 관심 있게 혹은 진지하게 보는가? 그렇지 않다. 게시물을 넘기는 손가락이 바쁘기만 하다. 그중 아주 자극적인 이미지나 문장을 봤을 때 멈추게 된다. 그리고 의무적으로 라이크를 누르고 또 다른 게시물을 찾아 떠난다. SNS는 이런 패턴의 반복이다. SNS는 매우 바쁜 공간이다. 친절하지 않은 사람들의 장이다. SNS에 글을 쓰려면 이 사실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람들은 당신과 당신의 브랜드에 전혀 관심이 없다.둘째, 숫자의 활용은 가독률이 높인다. 예를 들어 '소상공인 매출을 올리는 방법들'이라는 글은 위험하다. 그 방법들이 몇 가지인지 알 수 없다. 사람들은 내 시간을 오랫동안 빼앗기기 싫어한다. 숫자는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소상공인 매출을 올리는 7가지 방법'이 훨씬 가독률이 높다. 좋은 글은 이미지로 그려지며 예측 가능하다. 7가지 방법이라고 하면 우리의 뇌는 7장의 카드뉴스의 이미지를 그린다. 그리고 뇌는 안심한다.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마찬가지로 '명함 한장으로 대박 매출 올리기'보다 '100원짜리 명함으로 1,000만원 매출 올리기'가 훨씬 더 읽고 싶다. 이미지가 그려지고 측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SNS 마케터가 자주 쓰는 카피라이팅 기술이 있다. 카드 뉴스를 포스팅한 후 "8번째 방법은 정말 팩트 폭행! 7번은 실화냐?" 같은 형식으로 콘텐츠를 읽게 한다. 하지만 너도나도 이런 글을 쓰니 너무 식상해져버렸다. 이제는 이런 방법을 추천하고 싶지 않다. 숫자를 활용하되 담백하게 쓰자.셋째, 타깃을 명확하게 밝힌다. 광고 카피라이팅에는 이런 법칙이 있다. '당신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문장과 아닌 문장은 천지 차이라고. 예를 들어 '누구나 좋아할 법한 레스토랑'이라는 카피보다 '당신이 좋아할 맛집'이라는 카피가 훨씬 좋다는 것이다. 이유는 바로 '지목 효과'에 있다. 이 지목 효과는 응급처치에서도 빛을 발한다. 길 가다 쓰러진 사람을 만났을 때 "누가 119에 전화 좀 해주세요!"라는 말보다 "파란 티셔츠 입으신 분이 119 불러주세요. 그리고 흰색 남방 입으신 분은 물 좀 가져와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말이다.카피에서도 마찬가지다. '당신이'라는 단어는 나를 지목하는 것 같다. 더 나아가 '당신'이라는 단어도 좋지만, 더 구체적으로 지목해보자. 예를 들어, '미용사라면 꼭 알아야 할 트리트먼트'라든지 '스타트업 대표라면 꼭 알아야 할 세무 법칙'이라고 쓰는 것이다. 당신이 미용사라면, 스타트업 대표라면 이 글을 지나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다. 대상층이 명확할수록 메시지의 흡수율은 높다. (2편에서 계속)㈜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광고를 보는 건 3초이지만 광고인은 3초를 위해 3개월을 준비한다. 광고판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를 연재한다.

2019-05-08 15:48:27

[종교칼럼] 부처님 탄생하신 룸비니

오늘도 수많은 순례자가 부처님이 태어나신 룸비니를 찾는다.룸비니(Lumbini)는 네팔 테라이 지방 남서부에 있다. 인도의 불교 쇠퇴와 함께 15세기 이후 황폐해져 19세기 말까지 기록상에만 전해지는 성지였고 정확한 위치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렇게 수백 년 동안 방치되었다가 1896년 독일 고고학자인 포이러(Feuhrer) 박사가 히말라야 산기슭의 작은 언덕을 배회하다가 석주 하나를 발견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석주에는 바라미(Brāhmī) 문자로 "신들의 사랑을 받는 아쇼카는 즉위한 지 20년이 지나 친히 이곳을 찾아 참배하였다. 여기서 부처님이 탄생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돌로 말의 형상을 만들고 석주를 세우도록 했다. 이곳에서 위대한 분이 탄생한바 경배하기 위한 것이다. 룸비니 마을은 조세를 면제하고 생산물의 8분의 1만 징수하게 한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부처님이 실존했던 분인가를 두고 19세기 말에 서구학자들 사이에는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나 아쇼카 석주의 명문으로 석가가 신화 속 인물이 아니라 역사적 실존 인물임을 확인하고 논란은 사라졌다. 룸비니는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아놀드 토인비는 아쇼카 왕을 "인류 역사상 수많은 군주 가운데 가장 훌륭한 업적을 남긴 군주이자 성왕"이라고 칭송했다. 인도 역사에서 가장 넓은 통일제국을 건설했던 그는 아쌈 지역과 현재의 인도 전역과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네팔 등을 포함하는 인도 대륙의 대부분을 지배했다.그는 살육과 폭력에 의한 승리는 진정한 승리가 아니며 '법에 의한 승리'만이 진정한 승리라고 생각했다. 그 뒤 전쟁과 물리적 점령을 포기하고 "인간의 본질은 평등하다"는 불교의 진리에 귀의하여 일체의 생명을 사랑하고 관용과 인내, 이익과 안락을 도모하는 문화 정책으로 전환하여 위대한 군주가 되었다.룸비니는 현재의 네팔 남부와 인도의 국경 부근인 히말라야 산 기슭의 카필라성을 중심으로 한 석가족의 작은 나라였다. 석가모니 붓다는 그 나라의 왕 슈도다나(Suddhodana·淨飯王)와 왕비 마야(Maya·摩耶)부인 사이에서 왕자로 태어났다.기원전 563년 마야부인은 당시의 관습에 따라 출산을 하기 위해 친정으로 가던 중 룸비니 동산에 있는 무우수(無憂樹·sal tree) 나무 아래에서 잠시 쉬게 되고 그곳에서 아기를 낳았다. 아기가 태어나면서 오른손은 하늘을 왼손은 땅을 가리키고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 외친 탄생게가 그 유명한 '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 하늘 위아래에 오직 나 홀로 존귀하나니 온갖 괴로움으로 덮인 세상 내 마땅히 평안하게 하리라)이다.석가는 샤카(Sakya)라는 민족의 명칭을 한자로 발음한 것이고 모니(muni)는 '성인'(聖人)이라는 의미이다. 석가모니는 '샤키아 족 출신의 성자'라는 뜻이다. 그분의 성은 고타마(Gautama)이고 이름은 싯다르타(Siddhartha)이다. 35세 깨달음을 얻어 붓다(Buddha·佛陀)라 불리게 되었다."천상천하에 현재 자신이 가장 존귀하다"는 이유를 일러주신 부처님의 말씀은 나보다 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진리를 담고 있다. 그분이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는 무한한 능력과 무한한 지혜를 본래 자신이 지니고 있었는지 사람들은 모르고 살아왔다. 사람이 하늘이고 부처이다. 부처님은 자유와 평등의 인간 존엄성을 회복하고 사회의 주인으로 살아가라고 우리 곁에 오셨다.현 정부의 한쪽으로 치우쳐진 적패 청산과 경제 실책에서 벗어나 이땅의 모든 국민을 하늘로, 예수님으로, 부처님으로 예우하며 지역 간 계층 간 서로를 존중하고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온 국민이 잘사는 경제를 지향하는 쪽으로 궤도를 수정하지 않는다면 국민으로부터 외면받는 정부가 될 것이다. 부디 대한민국이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가 되길 바란다.5월 12일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진리의 등불을 밝혀 나라의 행복을 실천해야 한다.망월사 백련차문화원장

2019-05-08 10:22:26

현동헌 테너

[매일춘추]인생은 짧고 할일은 많다

디즈니월드가 처음 개장되었을 때 월트 디즈니는 별세한 후였다. 때문에 개장식 연설을 그의 아내 디즈니 여사가 하게 되었다. 사회자가 디즈니 여사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디즈니 여사님, 디즈니 씨가 이 개장식을 보았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참 아쉽습니다." 이 말에 디즈니 여사는 "그는 이미 디즈니월드를 제일 먼저 본 사람이고 꿈 꾼 사람입니다"라고 말했다. 디즈니월드가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그는 디즈니월드를 꿈꾸었고 보았던 것이다.꿈은 사람을 만든다. 꿈은 사람을 이끌어 간다. 꿈은 한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열쇠이기도 하다. 꿈을 가진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꿈이 있으면 어떤 장애물도 뚫고 나갈 수 있다. 꿈은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것이다.필자는 S그룹 계열사의 기술연구원에서 음악을 하고 싶다는 꿈 하나로 성악의 길을 선택했다. 그 생각을 가지게 된 동기는 다소 만족스러운 직장 생활을 하던 중 막연히 들었던 10년 후의 내 모습에 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이대로 일을 계속하게 된다면 가족도 만족하고 남들도 부러워할만한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 자신도 행복할까 라는 스스에게의 질문은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대답이었다. 나에겐 더 간절한 꿈이 있었기에 한 번 뿐인 인생 못 해보고 후회할 인생은 살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난 막연히 10년 후에 오페라 무대에 주역으로 서있을 내 모습을 그리며 직장을 그만두고 성악을 시작했다. 결국 운이 좋게도 정확히 10년 후 오페라하우스에서 '라 트라비아타'의 주인공을 맡았다.이같이 나의 선택의 조건은 꿈이었고 나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오페라 주역의 꿈을 이룬 뒤 다시 10년 후의 내 모습은 문화기획자이자 제작자였고 지금은 지트리아트컴퍼니 대표로서 그 길을 열심히 걷고 있으며 오페라와 다수의 기획공연들이 성공적인 성과를 내며 지금도 성장하고 있다.가끔 사람들과의 자리에서 구구절절 남을 비방하거나 험담을 하는 얘기를 듣고 있으면 나조차 기가 뺏기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좋은 얘기만 하기에도 인생은 길지 않다는 생각과 좀 더 생산적인 일을 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다는 생각을 한다.미국의 작가이자 사회주의 운동가인 동시에 태어난지 19개월 만에 시각과 청각을 모두 잃었던 헬렌 켈러의 말을 인용하자면 "나에게는 너무나 많은 것이 주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무엇이 없는지 생각하며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는 그녀의 말이 오늘도 나에게 울림을 준다. 현동헌 테너

2019-05-08 10:19:13

이장우 경북대 교수

[경제칼럼] 뮤지컬 도시를 넘어 청년문화산업 도시로

다음 달 21일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이 개막한다. 13번째 열리는 뮤지컬 축제이다. 그동안 DIMF는 뮤지컬 대중화에 앞장서며 대구를 '뮤지컬 도시'로 브랜딩하는 데 큰 성과를 거뒀다.하지만 모든 것이 연결되고 융합하는 시대 흐름에 맞추어 한 단계 더 도약할 필요가 있다. 특히 청년들에게 꿈과 활력을 제공함으로써 도시를 젊게 만들기 위한 새로운 프로젝트들을 과감하게 시도해야 한다.지난 12년간 DIMF에서 선보인 작품 수만 269개에 이르고, 62만여 명이 뮤지컬을 관람했다. 공연장을 벗어나 거리에서 펼쳐지는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한 인원을 포함하면 188만여 명에 달한다.올해도 영국, 러시아, 프랑스, 스페인, 중국, 대만 등 세계 각국으로부터 8편의 공식 초청작과 초연하게 될 4편의 창작 지원작, 지역의 우수한 창작 뮤지컬 3편, 패기와 열정이 가득한 대학생 뮤지컬 8편 등 23편의 뮤지컬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뮤지컬이라는 단일 장르의 세계 최초 글로벌 축제인 DIMF는 매년 국내외 뮤지컬 관계자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함으로써 교류와 시장 역할을 하는 하나의 '플랫폼'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작년 폐막작인 영국 뮤지컬 '플래시댄스'는 지난 2월 서울 세종문화회관을 시작으로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안동 등 6개 도시 투어공연을 성황리에 마쳤다. 또한 개막작으로 소개됐던 체코 '메피스토'는 5월 말 국내 라이선스 초연을 앞두고 있다.DIMF가 한국 창작 뮤지컬 활성화를 위해 제작을 지원하는 '창작 뮤지컬 지원 사업'은 지금까지 총 58개의 신작 뮤지컬을 탄생시켰으며 '대학생 뮤지컬 페스티벌'을 통해 108개의 대학생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한편 2011년 초연된 DIMF 제작 '투란도트'는 누적 공연 100회를 넘은 대표적 창작 뮤지컬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이 작품은 지난해 한국 대형 창작 뮤지컬로는 최초로 슬로바키아 노바스쩨나 국립극장과 동유럽 6개 도시 라이선스 수출 계약을 맺고 내년 초 현지 공연을 앞두고 있다.그러나 지금까지 쌓아온 잠재력을 미래 흐름에 맞추어 키우고 활용하려는 노력이 더욱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특히 음악과 공연이 갖는 특징을 살려 다양한 분야와 협력융합함으로써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필요가 있다.첫째, 관광과 결합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차별적인 문화관광 콘텐츠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올해 DIMF는 한국관광공사의 후원과 대구 관광뷰로, 인터파크 투어 등과의 협력을 통해 뮤지컬과 대구 관광을 연계시킨 다양한 시도를 본격화할 예정이다. 예를 들면 수준 높은 뮤지컬 공연 관람과 서문시장 야시장·대구 근대골목·김광석 거리 등 대구의 관광지, 그리고 막창·납작만두 등 대구만의 먹거리를 연계한 관광상품으로 새로운 형태의 문화관광 콘텐츠를 개발할 예정이다.둘째, K-POP·인디밴드·게임·웹툰·영화·스포츠 등 다른 문화 장르와의 활발한 협업을 통해 새로운 기회들을 창출해 나가야 한다. 올해부터 세계적 아이돌 그룹 엑소의 수호가 DIMF 홍보대사로 참여하며 바로 이웃인 DGB대구은행파크에서 새로운 축구 붐을 조성하고 있는 대구FC와도 협력을 모색하고자 한다.셋째, 청년에게 꿈과 미래를 주는 사업에 동참할 필요가 있다. 특히 창업은 해외 사례에서 보듯이 문화 콘텐츠들과 융합하고 축제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DIMF는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와 MOU를 체결하고 축제 기간 동안 문화 콘텐츠로 차별화된 창업 행사를 함께 기획하고 있다.끝으로, 인재 발굴 및 육성 사업을 글로벌하게 확장할 필요가 있다. 2015년부터 시작한 국내 최초 청소년 뮤지컬 오디션 'DIMF 뮤지컬 스타'는 최근 지원팀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올해 중국 상하이에서 현지 오디션을 성공적으로 진행함으로써 명실상부 아시아 최고 뮤지컬 오디션으로 성장하고 있다.21세기는 꿈꾸는 자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시대이다. DIMF가 대구를 꿈꾸는 도시로 만드는 데 기여하기를 바란다.이장우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이사장(경북대 교수)

2019-05-08 06:30:00

김동훈 연극 배우

[매일춘추]비 내리는 고모령

어버이날을 맞아 부모님 생각이 짙어지는 요즈음 어느 때보다도 부모님께 죄송하고 감사함이 넘친다. 아직 짧은 인생의 절반정도를 학창시절로 보내면서 겪었던 사춘기와 반항, 제멋대로 굴던 과거의 나에게 '부모님'과 '가족'이란 존재는 그리 소중하지 않았다. 그러나 배우의 인생을 걷기 시작하면서 뜻밖에도 이 일을 통해 나는 부모님에 대한 생각의 전환을 맞게 된다.2013년 대구 수성아트피아 용지홀에서 공연하였던 '비 내리는 고모령'이라는 작품은 부모님의 존재에 대해 새롭게 각성시킨 작품이다. 이 작품은 '동영'과 '연홍'이라는 두 남매가 출세를 위해 대구에서 서울로 상경하여 고된 일을 하며 살아오지만, 우연히 살인사건에 휘말리게 되어 '동영'은 법적 처벌을 받게 되고 그 충격으로 어머니가 죽게 되는 이야기이다. 극에서의 하이라이트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무덤을 보며 '동영'과 '연홍'이 건네는 마지막 인사다. 아래는 극중 장면의 대사이다."어머니 제가 잘못했습니다. 어머니를 두고 떠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출세를 하면 얼마나 할 것이며 돈을 벌면 얼마나 번다고…. 모두 저 때문입니다. 함께 모여 살아야 그게 가족인데 헤어져서 행복한 가족은 없다는 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발 돌아오셔서 다리가 부러지도록 종아리를 때려주이소. 제가 잘못했다고 야단을 쳐 주이소. 이게 꿈이라고 생시가 아니라고 말해주이소. 꿈에서 깰 때 까지 또 때리고 또 때려 주이소. 어머니."공연을 준비하면서 어머니의 부재에 대해 '동영'으로서 상상하며 연기해 왔지만 마지막 공연 당시 실제로 친할머니의 임종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위 장면 속 동영의 감정에 대해 실체적 공감을 할 수 있었다. 공연으로 인해 다가오는 임종을 지켜볼 수 없었던 나는 그동안 할머니를 종종 찾아뵙지 않았던 것과 평소 자주 안부전화를 드리지 않았던 죄송한 마음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나는 오열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관객에게 전하는 작품 속 대사는 할머니께 전하는 나의 마지막 말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작품의 막이 내린 후 나에게 동영은 부모님의 존재를 다시금 생각하도록 만들어주었다. 20대 후반의 나는 부모님의 존재가 늘 그 자리에 머무는 분들 일거라 생각하며 살았었다. 그러나 작품 속 인물이 겪는 부모님의 죽음과 그에 따른 감정을 연기하는 것은 실제와도 같은 간접경험으로 작용하였다. 부모는 늙어가며 영원불멸하지 않는다는 자연의 흐름을 모른 척 하며 살던 날들과 달리 공연 이후 부모님의 부재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오늘은 어버이날(5월 8일)이다. 이제는 건강히 계시는 부모님의 존재만으로도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무탈하시기를 바란다. 김동훈 연극배우

2019-05-07 12:05:14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반려견 건강체크 어떻게 하나요?

가정에서도 반려견의 건강을 쉽게 체크할 수 있도록 신체 부위별로 가벼운 증상부터 심각한 증상 순으로 나열했다. 가벼운 증상이더라도 빨리 호전되지 않거나 증상이 심해질 경우 동물병원을 내원하여 검진과 치료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눈눈곱이 많아졌다 < 자주 비빈다 < 결막이 충혈되었다 < 눈을 깜박이며 아파한다▷귀냄새가 난다 < 귀지가 늘었다 < 자주 긁는다 < 귀뿌리(이도)를 만지면 단단하고 아파한다▷코코가 말라 있다 < 각질이 생긴다 < 콧물이 난다 < 코피가 난다▷구강냄새가 난다 < 치석이 있다 < 잇몸이 충혈되었다 < 잘 씹지 못한다 < 침을 흘린다 < 치아가 흔들린다▷피부가려워한다 < 특정 부위를 자주 핥는다 < 털이 거칠고 가늘다 < 냄새가 난다 < 피부염이 생겼다 < 탈모가 생겼다 < 상처나 혹이 생겼다▷호흡기침한다 < 콧물이 심하다 < 숨소리가 거칠다 < 깊은 기침이 반복된다 < 입으로 호흡한다 < 숨쉬기 어려워한다▷소화식욕이 줄었다 < 변이 묽다 < 구토를 한다 < 먹지 않는다 < 설사가 심하다 < 배를 아파한다▷심장기침한다 < 산책을 기피한다 < 안았을 때 개의 심장박동을 느낄 수 있다 < 밤에 기침이 심하다 < 입으로 호흡한다 < 숨쉬기 어려워한다▷대변단단하다< 배변하는 데 오래 걸린다 < 변이 묽다 < 설사를 한다 < 점액이나 출혈이 발견된다▷소변냄새가 심하다 < 소변색이 진하고 탁하다 < 배뇨를 오래 한다 < 배뇨 시 통증을 호소한다 < 소변에 피가 비친다▷걸음걸이다리를 들고 걷는다 < 다리를 만지면 아파한다▷신경계어두운 곳에 숨으려 한다 < 안을 때 통증을 호소한다 < 머리를 들지 못한다 < 걸을 때 비틀거린다 < 마비 증상을 보인다 < 경련한다▷활동성활달하지 않다 < 빨리 피곤해한다 < 구석진 곳에 숨어든다 < 몸을 만지면 싫어한다▷체중체중이 증가했다 < 자는 시간이 많다 < 운동을 기피한다 < 갈비뼈가 만져지지 않는다 < 등뼈가 만져지지 않는다매우 심각한 건강 이상 징후는 다음과 같다.▷경련한다 ▷혀가 보라색이다 ▷잇몸이 창백하다 ▷피부색이 노랗다 ▷몸을 가누지 못한다 ▷머리가 기울어 있다 ▷2일 이상 식욕이 없다 ▷구토나 설사에 출혈이 있다 ▷소변색이 붉다 ▷통증을 느낀다 ▷몸의 일부가 마비됐다 ▷의식이 불분명하다 ▷숨쉬기 힘들어한다가정에서 응급 처치가 우선된 후 동물병원으로 이송해야 하는 위급 상황도 소개한다.▷저혈당증어린 강아지, 허약견, 당뇨병이 있는 개가 갑자기 혈당이 떨어지면 몸을 떨고 의식을 잃게 된다. 설탕이나 꿀을 묽게 희석해 소량씩 입안에 넣어준다. 의식을 찾고 몸을 가눌 정도가 되면 급여를 중단하고 체온 유지에 신경 써 동물병원으로 이송한다▷경련(발작) 증상경련을 일으키면 주변에 담요를 둘러 머리에 충격이 가지 않도록 한다. 주변은 조용히 하고 약간 어둡게 하여야 도움이 된다. 간질 증상은 대부분 1분 내외로 호전되므로 몸을 마사지하거나 소리를 지르면 오히려 뇌 신경계의 흥분을 조장하여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 경련 증상이 3분 이상 지속되거나 반복될 경우 신속히 동물병원으로 이송한다.▷출혈출혈이 발생한 부위를 압박하는 것이 도움 되지만 개가 흥분하면 혈압이 상승해 지혈에 방해되므로 최소한의 압박으로 지혈하며, 개를 안정시키는 것이 급선무이다. 발톱지혈제는 피부에 난 상처에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출혈이 멈추지 않을 경우 신속히 동물병원으로 이송한다.▷외상교통사고, 낙상, 물림 사고, 급성 디스크 환자견을 보호자가 안고 이송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흥분한 개에게 물리거나 개의 증상이 악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동 캐리어나 큰 종이박스에 담요를 깔아 이동 시 움직임을 최소화하며 신속히 동물병원으로 이송한다.반려견 건강 체크는 반려인의 일상이 되어야 한다. 3~10세의 개는 매년 1회, 10세 이상의 노령견은 6개월 간격으로 종합건강검진을 받길 권한다.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SBS TV동물농장 수의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 원장은 개와 고양이,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한 30년간의 임상 경험을 토대로 올바른 동물 의학 정보를 제공하고 바람직한 반려동물 문화를 제시하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2019-05-07 09:47:57

인수일(DGIST 에너지공학전공 교수·(사)초일류달성경제연구소장)

[인수일 교수의 과학산책] 5월의 파란 하늘, 하얀 구름

계절의 여왕 5월이다. 어린이날을 기념해서 전국적으로 각종 과학체험 행사가 열리고 공상과학영화를 모티브로 한 완구와 게임기 등이 날개 돋친 듯 팔린다. 고속도로 휴게소나 공원의 상점 앞에는 실물처럼 움직이는 로봇 공룡들이 아이들의 시선을 끈다. 연신 비눗방울을 뿜어내는 돌고래총도 인기다. 헬륨 가스로 채워진 형형색색의 풍선도 아이들의 손과 발을 분주하게 만든다. 과거에는 조잡하기만 하던 장난감들이 첨단 기술을 만나서 화려하면서도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다시 태어났다. 문제는 대부분 중국에서 만들어져 안전사고에 취약하고 내구성이 떨어져 금방 고장 난다는 것이다. 그래도 아이들의 기쁨을 위해서 지갑을 여는 부모의 마음은 한결 가벼운 날이다. 공원 잔디밭에 누워 있는 가족들도 함박웃음이고 아이들의 즐거운 비명 소리도 낯설지 않다. 하늘도 파랗고 화창하다. 간혹 하얀 구름은 끼지만 먹구름은 보이지 않는다. 팔베개하고 누워 있는 아이들에게 자연현상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과학적인 내용을 하나 알아보자. 연인에게 들려주면 더 점수를 딸 수 있겠다.하늘은 왜 파랗고 노을은 왜 붉은가요? 아이들과 파란 하늘이나 붉은 노을을 보면서 감상에 젖다 보면 쉽게 나오는 질문이다. 하늘이 파란 이유는 지구의 대기 때문이다. 대기가 없는 달은 파랗게 보이지 않는다. 태양에서 오는 빛은 대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질소나 산소 분자에 의해서 산란을 하게 되는데 이를 레일라이 산란(Rayleigh Scattering)이라고 한다. 즉, 파장이 입자의 크기보다 커서 생기는 산란을 말한다. 대기 중에서는 파란빛처럼 빛의 파장이 짧을수록 상대적으로 산란이 더 많이 일어난다. 그래서 화창한 날 하늘은 파랗게 보이는 것이다. 노을의 경우는 해가 지면서 빛이 지나오는 경로가 점점 더 길어진다. 거리가 멀어지기 때문에 산란이 심한 파란빛은 지표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하지만 산란이 적은 붉은빛은 지표까지 도달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녁에는 세상이 온통 아름다운 붉은색으로 덮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름은 왜 다른 색의 옷을 입을까? 입자가 큰 물방울로 채워진 구름은 모든 빛을 동일한 정도로 산란하기 때문에 하얗게 보이는 것이다. 이를 미산란(Mie Scattering)이라고 한다. 구름이 두꺼워지면 빛이 투과하지 못해서 시커멓게 보인다. 바닷물의 색이 깊이에 따라 다른 이유도 마찬가지로 설명된다.아이들과 무심히 바라본 하늘에 이토록 과학적이고 신비한 자연현상이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된다. 위대한 과학의 시작은 자연현상에 대한 감동에서 출발한다. 신기한 자연현상을 관찰하면 자연스럽게 의문이 생기고, 탐구하고, 이를 증명하려고 시도하게 마련이다. 자연현상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물리이고 화학이며 수학이다. 과학이야말로 우리가 이성적으로 사고하게 만드는 깊이 있고 합리적인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는 것보다 지식을 쇼핑하는 즐거움이 더 크다는 것을 5월의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을 가리키며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19-05-06 18:00:00

이춘희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이춘희의 시사로 읽는 한자] 生生之樂(생생지락): 세종대왕은 생업 보장이 정치라 했다.

백성의 삶(生生)의 즐거움(樂)이라는 뜻이다. 중국 고대의 정치 교과서인 서경(書經)의 '반경'(盤庚) 편에 있는 말이다. 반경은 상(商)나라 탕(湯) 임금의 10세손으로 수재(水災)를 피해 엄에서 은(殷)으로 도읍을 옮겨 나라의 중흥을 꾀한 임금이다. '반경' 편에는 천도(遷都)할 때 신하와 백성들을 설득하기 위한 이야기가 있다. 반경은 내가 정치를 잘못하여 너희 백성들이 생업에 종사하며 즐겁게 살지 못하게 되면(不生生) 탕 임금은 나에게 죄를 물을 것이요, 신하들이 천도에 마음을 모으지 않으면 탕 임금은 "어찌하여 짐의 손자와 더불어 친하지 않는가?"라며 벌을 내릴 것이라고 했다. 또 "오만과 향락을 일삼으며 유언비어로 민심을 혼란하게 하는 자는 코를 베고 죽여서 이들의 씨조차 새 도읍에 옮겨놓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러니 너희 백성들은 가서 생업을 즐기며 살아라(往哉生生)"고 했다. 정치는 백성의 생업을 제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세종대왕은 평소 반경의 '생생' 정치를 자주 입에 올렸다. 한글을 창제했을 즈음의 1444년 7월 26일 자에 내린 교지에 '생생지락'(生生之樂)이 나온다.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하고(國以民爲本)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民以食爲天). 농사는 옷과 먹는 것의 근원으로 정치에서 가장 먼저 힘써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백성을 살리는 천명에 관계되는 까닭에 천하의 지극한 노고(勞苦)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위에 있는 사람이 성심으로 지도하여 거느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백성이 부지런히 힘써서 농사에 종사하여 생생지락(生生之樂)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세종이 바라는 정치는 백성이 생업에 종사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다.최근의 한국 국회를 '동물국회' '식물국회'라 한다. 동물과 식물이 민생을 알겠는가. '생생지락'의 민생을 돌보는 국회를 보고 싶다.

2019-05-06 18:00:00

이은주 힐링드라마아트센터 대표, 심리치료사

[이은주의 잉여현실] 공감의 법칙 III - '자기공감'을 위한 실타래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마음속은 모른다 했던가! 내 마음 나도 몰라 때론 화로 가득해 사랑하는 이를 때리고, 때론 알지 못할 두려움에 고통 받기도 한다. 누군가는 주는 것 없이 밉고, 또 누군가는 괜히 마음이 간다. 이 모든 마음의 작용은 의식의 차원에서 보다 무의식의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자기공감, 즉 나를 알기 어려운 것은 그래서이다. 무의식의 차원은 곰곰이 생각한다고 알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깊은 차원의 의식을 알아차리기 위해 사람들은 명상이나 앎을 위한 수많은 방식의 수행법을 만들어오지 않았던가!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가 준 실을 잡고 크레타의 미궁으로 들어가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 미노타우르스를 죽이고 아테네인들을 구한다.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는 테세우스를 살리고 아테네인들을 구했으며, 현재는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뜻하게 되었다.자기공감을 위한 비법,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는 무엇일까! 나를 알아차리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다. 사이코드라마에서 그 실타래는 바로 감정과 몸의 반응들이다. 지금 내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몸의 떨림이고 심장의 벌렁거림이다. 떨림과 벌렁거림을 따라 기억의 미궁으로 들어가 몸의 감각과 감정이 일어났던 사건을 떠올리고 그 순간을 재연해봄으로써, 그 순간을 다시, 다르게 살고 지금 여기로 안전하게 돌아오도록 한다. 그리고 그 전과는 다른 나를 만나게 된다. 아주 조금 인생이 달라지고 길이 달라진다. 똑 같이 어제와 같은 일상이지만 오늘은 다른 빛깔을 느끼고 다른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것이다.자신을 알고, 자기를 들여다보라는 말은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감정과 감각을 따라가면서, 일어나는 나의 역사를 들여다보라는 말이다. 그때는 눈을 감고 두려워 보지 못했던 그 그림자 속에 빛나는 보석을 발견하게 되리라!이은주 힐링드라마아트센터 대표, 심리치료사

2019-05-06 18:00:00

신병주(건국대 사학과 교수)

[신병주 교수의 역사와의 대화]집현전과 규장각에서 찾는 성군의 향기

'천성이 총민하고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아 비록 몹시 춥고 더운 날씨라도 밤을 새워 글을 읽으며…'(세종실록), '임금이 어느 날이나 파조(罷朝)하고 나면 밤중이 되도록 글을 보는 것이 상례였는데 이날 밤에도 존현각(尊賢閣)에 나아가 촛불을 켜고서 책을 펼쳐 놓았고…'(정조실록).위에서 인용한 글의 주인공은 우리 역사 속 대표적 성군으로 평가받고 있는 세종과 정조다. 두 왕은 늘 책을 가까이하며 백성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정책들을 연구해 나갔다. 아예 도서관이자 연구소 기능을 하는 국가기관을 만들기도 했다. 세종 시대 집현전(集賢殿)과 정조시대 규장각(奎章閣)이다.세종은 1420년 집현전을 본격적으로 운영했다. 집현전에 '재행연소자'(才行年少者)라 하여 재주와 행실이 뛰어난 젊은 인재들을 모아 방대한 책을 바탕으로 정책을 연구하게 했다. 집현전이 있던 곳은 현재의 경복궁 수정전 자리로 왕의 집무실과 매우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만큼 왕의 관심이 컸던 것이다.집현전에 불이 꺼지지 않은 것을 본 세종이 이곳에서 깜빡 잠이 든 신숙주에게 입고 있던 용포(龍袍)를 덮어준 일화는 지금도 전해오는 미담이다. 또한 세종은 집현전 학자들에게 진상품이었던 귤을 하사해 이들의 사기를 높여 주었다. 오랜 기간 근무한 학자에게는 왕이 직접 휴가를 주는 '사가독서'(賜暇讀書) 제도를 시행하여 학자들의 재충전을 돕기도 했다.집현전은 세종의 적극적인 후원 속에서 수백 종의 연구 보고서와 50여 종의 책을 편찬했다. '향약집성방' '삼강행실도' '역대병요' '칠정산 내외편'과 같이 의학, 역사, 의례, 국방, 과학 등 전 분야에 걸쳐 편찬된 다수의 책들은 세종 시대 문화의 꽃을 활짝 피우게 했다.정조는 즉위 직후인 1776년 6월 창덕궁 후원 중심에 규장각을 세웠다. 세종이 집현전을 설치해 학문 연구와 정책 결정의 중심 기관으로 삼은 사례를 계승한 것이었다. 정조는 창덕궁에서 경관이 뛰어난 영화당 옆 언덕을 골라 2층 누각을 짓고 규장각이라 했다. 정조는 당파나 신분에 구애 없이 인재들을 규장각에 모았다.규장각의 주요 업무는 역대 주요 책들을 수집, 정리, 연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책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었다. 정조는 규장각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해 관직이 높은 신하라도 함부로 규장각에 들어올 수 없게 해 정치적 간섭을 배제했다. '객래불기'(客來不起·손님이 와도 일어나지 말아라)와 같은 현판을 내려서 규장각 신하들이 학문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했다. 때로는 이곳에서 학자들과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규장각에서는 '경국대전'과 '속대전'을 계승한 법전인 '대전통편'을 비롯해 외교 문서를 정리한 '동문휘고', 병법서 '병학통', 그리고 각 관청의 연혁과 기능을 정리한 '탁지지' '춘관통고' '추관지' '규장각지'와 같은 책들이 저술되면서 국가기관의 역사와 활동이 기록으로 남을 수 있었다. 백과사전 성격의 '증정문헌비고', 사전과 같은 '규장전운', 이순신 장군 전집인 '이충무공전서'도 편찬되었다. 청대의 학술 사조가 총정리되어 있는 '고금도서집성' 5천22책을 수입, 연구하도록 해 선진 학문 수용에도 적극성을 보였다.성군들은 스스로 책을 가까이하였음은 물론이고 도서의 체계적인 수집과 정리, 연구를 통해 문화 국가로 나아가는 기반을 조성했다.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 하지만 봄볕이 화사하게 들어오는 창가에서, 꽃들로 대궐을 차린 공원 벤치에서 책을 접하는 것은 봄날에만 누릴 수 있는 호사다. 세종과 정조를 떠올려 보며 이 봄날에 독서삼매경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2019-05-06 18:00:00

이성환 계명대 일본학전공 교수/국경연구소장

[세계의창] 미국과 '천황'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자 가장 먼저 달려갔다. 지금까지 10번이나 만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 25일 국빈방문, 6월 28일 G20 정상회의로 일본에 온다. 그럼에도 아베 총리는 지난 4월 26일 미국을 방문했다. 트럼프 대통령 부인 멜라니아 여사의 생일 축하를 위해서였다.미국 ABC방송은 트럼프는 협상의 기술자이지만, 아베는 한 수 위 아첨의 달인이라 평했다. 일본 언론은 양국의 친밀함이라고 했다. 아베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친분을 외교의 최우선으로 삼고 그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도 했다. 5월 말 트럼프 대통령은 나루히토 천황(일본 왕의 고유명사)의 즉위를 축하하는 첫 국빈이다. 아베가 멜라니아 여사의 생일 파티에 참석한 데 대한 답방 격이다. 지금 미일 관계는 전통적으로 최고의 동맹이라 평가받는 미국과 영국의 관계를 능가한다.불과 70년 전 미국과 일본은 서로를 귀축(鬼畜·아귀와 축생)이라 비난했다. 일본은 미국 영토를 공격한 최초의 국가이며 자살특공대로 결사 항전했다. 미국은 원자폭탄으로 응수했다. 일본 국민은 천황 수호를 위해 옥쇄를 다짐했다. 자기 목숨보다 천황이 소중했다.8월 9일 소련(현 러시아)이 참전했다. 천황도 군부도 항복을 택했다. 원자폭탄보다 소련이 더 무서웠다. 공산 국가 소련이 점령하면 봉건제의 잔재인 천황제는 소멸하기 때문이다. 당시까지(지금도) 일본은 천황의 나라, 즉 황국(皇國)이었다. 일본의 군대가 아니라 천황의 군대(皇軍)이며, 국민이 아니라 적자(赤子·왕의 사랑을 받는 갓난아이)이며, 일본 만세가 아니라 천황 만세였다. 소련이 상륙하기 전 미국에 항복하는 것이 천황을 지키는 길이었다.일본 정부는 국영매춘소(특수위안시설)를 설치하고, 미군의 상륙을 환영했다. 어제의 적을 해방군으로 맞았다. 마지막 저항을 우려했던 맥아더는 혼란스러웠다. 맥아더 상륙 약 한 달 후 천황은 그를 찾았다. 늠름한 맥아더 옆에 서 있는 왜소한 천황의 모습이 당시 미국과 일본을 상징했다.연합국은 천황을 전범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했다. 맥아더는 비무장과 상징천황제로 연합국의 분노를 달랬다. 그리고 아시아에 대한 공산 세력의 팽창을 막기 위한 방파제로 천황의 나라 일본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렇게 천황제는 살아남았으며, 일본은 미국에 항복한 목적을 달성했다. 맥아더는 귀국 후 상원 공청회에서 일본을 '12살의 교육 가능한 소년'이라고 했다. 소년은 미국의 보호 속에 1969년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항복 이후 일본은 미국에 한 번도 각을 세우지 않았다. 각을 세우면 정권이 붕괴한다는 설도 있다. 여기에 가장 충실한 정치인이 아베 총리이다. 문명충돌론으로 유명한 새뮤얼 헌팅턴은 일본의 미국 의존성을 강자에의 편승으로 설명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장 강한 미국, 중국, 러시아와 전쟁을 한 나라는 일본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생존 전략일까, 천황을 지켜준 고마움 때문일까.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천황의 사죄 요구 발언 이후 한일관계는 회복 불능의 늪에 빠진 듯하다. 일본이 겉으로는 독도 문제를 내세우나, 천황 사죄 발언이 훨씬 충격이었다고 한다. 천황의 사죄를 요구할 만큼 국력이 커진 한국의 존재감에 대한 시의심(猜疑心)도 작용했다.천황이 바뀌었으니 한일 관계에도 변화가 올까. 지금 미일 관계와 한일 관계는 대조적이다. 문제는 미일 관계가 한반도 정세와 한미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친분을 배경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회담을 제안하고 있다. 비핵화보다 일본인 납치자 문제가 앞서 가는 것은 아닐까. 지금의 한일 관계가 우려스러운 이유이다. 게다가 G20에서의 한일 정상회담도, 트럼프의 한국 방문도 미정이다.계명대 일본학전공 교수/국경연구소장

2019-05-06 14:46:00

강주원 세종스피치 커뮤니케이션 대표/올리비에 헤어살롱 대표

[기고]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  

옛말에 미운 자식은 밥으로 키우고 귀한 자식은 매로 키우라는 말이 있다.얼마 전 신문을 통해 '제설기 부모'라는 신조어를 알게 되었다. 자식이 실패와 좌절을 겪지 않도록 무슨 일이든 서슴지 않고 제설기처럼 해결해 주는 부모를 일컫는 말이다. 출가한 자식의 머리 위에서 맴맴 돌며 평생을 따라 다니며 보살핀다는 '헬리콥터 맘'이 신조어로 회자되더니 이제는 내 자식을 위해 쌓인 눈은 물론 모든 것을 싹 밀어버리는 제설기 부모까지 등장하는 세태가 되었다.미용실 고객 중에 아이가 상전인 부모는 흔히 볼 수 있다. 어떤 젊은 엄마가 다섯 살 된 남자아이를 미용실에 데리고 와서 여러 디자이너들을 가리키며 하는 말이 참 가관이었다."○○야, 여기 있는 이모들 중에 누가 마음에 들어? 어느 이모가 머리 해주면 좋겠는지 한 명 골라 봐."이런 경우도 있었다. 미용 특강 수업 중 수강생이 실습하는 과정에서 기술을 막 익힌 엄마가 중학생 딸아이 앞머리를 잘라주게 되었다. 그런데 앞머리를 조금 짧게 잘랐다는 이유로 아이는 "엄마는 다시 내 머리 자를 생각 하지 마!"라고 화를 내며 말하면서 엄마에게 있는 대로 눈을 흘긴다. 그 상황에서 엄마는 아이의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너무나 안쓰럽다.아이를 상전으로 모시는 엄마들은 얼마든지 많다. 미용실에 와서 파마를 하거나 짧게 자르면 아이에게 혼난다는 엄마, 시종일관 아이에게 예예 하며 존댓말을 하는 엄마도 있다.어떤 아버지는 "나 어릴 때는 아버지가 오실 때까지 먹고 싶어도 아버지가 오셔야 먹을 수 있었는데, 요즘은 퇴근 후 냉장고에 있는 수박이라도 먹으려 들면 아내가 아이 학원 갔다가 올 때까지 손 대지 말라고 한다"며 섭섭함과 난처함을 토로했다.부모가 자식을 기르는 동안 지혜를 발휘하지 못한다면 그 결과와 대가는 고스란히 부모가 떠안게 된다. 자식은 부모가 인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이 인정하는 사람으로 키워야 한다. 일류 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10명 중 7명의 학생이 부모가 많은 재산을 남겨줄 것과 60대까지만 살다가 죽기를 바란다고 답했다고 한다.자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이 변질되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로 스며들 땐 고스란히 악순환의 연속이 될 수밖에 없다. 돈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모를 살해하고, 살해 현장을 빠져나가는 아들에게 숨이 넘어가는 순간에도 피 묻은 옷을 갈아입고 가라고 말한 어머니의 마지막 말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제설기 부모란 신조어가 생겨날 만큼 자식이 실패와 좌절을 겪지 않도록 무슨 일이든 서슴지 않고 해결해 줄 것이 아니라, 자식을 귀하게 여긴다면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을 길러 주어야 한다.'우리 아이가 신발 끈을 잘 못 묶으니 살펴봐 주세요.'유치원 선생님께 부탁하는 쪽지가 아니라 군대 지휘관에게 부탁하는 쪽지다. 부대 앞에 방을 얻어 상사에게 자기 아들의 피부가 예민하다며 선크림을 전달하는 부모도 있다. 부모가 아이를 망치는 데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모름지기 부모라면 자기 자식의 감추어진 본모습을 바라보는 통찰력을 발휘해야 한다.

2019-05-06 14:41:24

김윤정 대구예총 편집장

[매일춘추]권위는 낮게, 품격은 높게

끝날 듯 끝나지 않는 것은?정답은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이다. 나의 학창시절에는 그랬다. 뙤약볕 운동장에서 쉽사리 끝나지 않는 훈화 말씀은 종종 아이들을 쓰러지게 했다. 수업하긴 싫었지만 사무치게 교실행을 그리워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요즘에야 운동장 조회는 보기 드문 일이지만.계절의 왕 5월이 되니 여기저기 행사들이 많기도 하다. 행사에는 어김없이 내빈 소개가 있고 축사와 격려사가 줄줄이 소시지처럼 이어진다. 주요 내빈들의 인사에 시간이 소요되다 보면 조회 때 서있던 학생들처럼 관중들은 지루함을 느낀다. 행사 취지가 무색해지기도 한다. 축사가 끝나면 내용보다는 길이 여하에 따라 폭풍 박수를 받을 수도 있다.행사를 주관하는 입장에서는 손님들이 많이 찾아오면 감사하다. 필자도 행사를 진행하면서 바쁜 시간을 할애해서 찾아준 내빈들을 챙긴다. 그 와중에 소개 순서나 자리배정으로 곤란했던 경험이 있다. 더 큰 문제는 내빈으로 소개받고 축사를 한 뒤면 바로 자리를 뜨는 데 있다. 다른 일정이 있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얼굴 도장을 찍으려는 정치인의 경우도 허다하다. 행사가 끝날 때까지 이석하지 않고 박수치며 즐기는 내빈들과 비교 대상이 아닐 수 없다.행사의 성공여부가 유명 인사들의 참석률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윗분들이 많다고 해서 행사의 격이 올라간다는 생각은 구태의연한 '꼰대'적 발상이다. 주관 단체장의 인사말 정도로 개회식을 꾸미고 내빈의 축사는 과감히 생략하거나 초간단 인사로 대체할 필요가 있다.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부분이어선지 최근 들어 의전의 간소화를 외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권위는 낮게, 품격은 높게'를 슬로건으로 비효율적 의전 관행을 개선하겠다는 동해시도 있다. 내빈 위주의 관행적인 운영은 청중들에 대한 배려를 등한시하는 행위이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적용은 아직 먼 느낌이다. 한국식의 과도한 의전문화는 강철처럼 견고해서 쉽게 변하지 않고 있다.전시회나 공연 팸플릿 또한 주요 인사들의 축사로 앞부분을 차지하기 일쑤다. 주최측의 인맥을 자랑하고 싶은건지. 판에 박힌 축사들을 읽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1인 1페이지 축사 대신 프로그램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내용으로 소중한 지면이 할애되어야 한다.관행이라서 계속 해야 할 필요는 없다. 익숙함에 머무르다 보면 발전하기가 어렵다. 나눔의 정신을 실천해 온 경주 최부자의 고택은 권위의 상징인 솟을 대문이 낮아 오히려 소박하다. 여느 사대부집처럼 높게 솟은 대문이 아니어도 격조와 품격으로 대대손손 존경받아왔다. 형식적 의전의 되물림을 잘라내는 것은 리더의 마인드에 달렸다. 몸에 익은 불필요한 의전의 묵은 각질은 과감히 벗겨내 버리자. 누가 뭐라해도 최고의 vip는 시민들이지 않은가. 김윤정 대구예총 편집장

2019-05-06 14:18:23

류호성 전 대구미래대 교수

[기고]축적된 부(富)의 행방은?

인간이 원시생활을 할 때는 고작 먹는 일을 해결하기 위해 나무 열매나 사냥감을 찾아 이곳저곳 떠돌아다녀야 했다. 그런 인간에게 새로운 큰 변화가 왔다, 그것은 농업의 발명이었다.사람들은 여기저기 떠돌아다니지 않았으며 토지 가까이에 마을과 도시를 형성하면서 정착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농업은 그들이 먹을 수 있는 분량 이상의 식량을 생산할 수 있었고, 또 초과분은 저장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여가와 부유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양상 속에 점차 보이지 않는 계급층이 생기게 된 것이다. 즉 마을의 관리자, 부족의 족장, 왕, 귀족 등 정치적 권력자들이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농민들이 생산해 낸 대량의 잉여 생산량을 나누어 가지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그들은 항상 더 유리하게 가져가곤 하였다.다시 말해 이들은 실질적으로 생산에 필요한 노동에 조금도 기여하지 않았음에도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있었으며 농민들은 그들이 생산해 낸 잉여 생산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가난해야 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런 현상으로 농민들이 만들어 놓은 부는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사회는 놀고먹는 계층, 즉 왕이나 귀족 같은 것들을 서로 차지하려고 끊임없는 투쟁에 몰두하게 되는데 이를 두고 카를 마르크스는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말했던 것이다.18세기 무렵부터 새로운 사회 형태가 나타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산업혁명이었다. 즉 공장이나 철도, 대형 증기선, 그 외에 각종 운송수단의 대변화를 가져오면서 인간은 종전보다 훨씬 더 많은 부를 축적하게 되었고, 사회 문명의 발전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전진하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지구의 환경 문제라는 새로운 과제도 안게 되었지만 노동자들이 만들어 놓은 대량생산의 부는 인간으로서는 실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대단한 부를 가져옴과 함께 우리는 또다시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계급의 출현을 맛보게 된다.바로 생산수단을 독점하는 자본가 계급이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자본가들은 노동자들과의 임금 거래조건에서 항상 우위를 점하고 있었고, 노동자들은 자신의 몸뚱어리를 헐값에 팔 수밖에 없는 그런 환경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자본가들은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만들어 놓은 부를 착취해 갈 수 있었고, 노동자들은 그들이 만든 부가 사라져도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던 것이다.이런 모순에 마르크스는 자본가를 포함하여 왕이나 귀족, 혹은 정치적 관리자라고 하는 모든 계층의 존재를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공동 생산하는 공산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으며, 이에 구소련을 포함하여 중국, 폴란드, 동독, 북한, 헝가리, 체코 등의 공산국가가 생겼던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고 묘하게도 이들 국가들은 모두 경제적 몰락을 하고 말았다. 쉽게 이야기해 이들 국가에선 노동자와 농민들이 쌓아 놓을 수 있는 부, 그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결국, 노동자와 농민이 만들어 놓은 축적된 부는 없다. 어디론가 사라졌다. 어떤 형상으로 어떻게 사라졌는지 모르지만, 그 방법은 상당히 지능적이고 교묘하게 마술처럼 거의 완벽에 가깝도록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이다.

2019-05-05 15:49:05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이른 아침에]축제의 계절, 통제의 거리  

5월이 왔다. 거리에 서면 사방팔방 보이는 글자가 다 '교통통제'다. 빨강 바탕, 노랑 고딕의 현수막, 이젠 스쳐봐도 뭐라 쓰인 건지 짐작이 간다.사실 5월 거리에 '교통통제'라 적힌 깃발이 나부끼면 그건 십중팔구 '대구컬러풀페스티벌' 때문이다. 자세히 보면 그 옆 또는 아래에 '대구컬러풀페스티벌'이라는 이름과 날짜도 적혀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자세히 봐야 보인다. 휙 지나쳐도 뇌리에 남을 정도인 '교통통제'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이건 단순히 글자의 크기나 색깔 때문에 그런 게 아니다. '컬러풀페스티벌'의 시그니처(Signature)가 해마다 바뀌는 데다 실제로도 눈에 잘 띄지 않게 써 놓아서 그렇다. 그에 비하면 몇 년째 일관된 서체와 색상을 유지해온 '교통통제' 글귀는 예쁘진 않아도 한눈에 알아볼 만큼 쉽게 읽힌다. 말하자면 정체성이 생겨난 것이다.물론 그렇다고 '교통통제'라는 보통명사의 조합이 브랜드가 될 수야 없다. 그리고 어떤 도시도 '교통통제'를 브랜드화하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신경 써야 할 건 즉, 우리가 정체성을 불어넣어야 할 대상은 말할 것도 없이 '교통통제'가 아니라 '대구컬러풀페스티벌'이라는 이야기다.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같은 현수막 안에서도 영역을 다퉈야 하고 조금이라도 더 시선을 붙잡아야 하는 게 광고의 텍스트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교통통제'와 '컬러풀페스티벌'의 거리전(戰)은 '교통통제'의 압도적 승리가 분명해 보인다. 게다가 '대구컬러풀페스티벌'에서는 별다른 이미지 전략조차 찾을 수가 없다. 도리어 브랜드의 정체성을 흩어놓은 과정들이 보일 뿐이다.2016년 '컬러풀페스티벌'을 상징하는 기본 색상은 빨강이었다. 그런데 다음 해인 2017년에는 빨강과 파랑 계열, 두 종류의 색을 동시에 기본색으로 사용하는 황당한 일이 있었고, 다시 2018년엔 명도가 높아진 또 다른 빨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올해 2019년에는 대구시의 브랜드 슬로건 '컬러풀대구'를 차용한, 즉 브랜드 아이덴티티(B·I) 사용 규정을 침범해 만든 함량 미달의 시그니처가 등장했다.지난 몇 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축제의 시각적 정체성을 깨뜨리지 않은 해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더구나 2016년부터 2018년까지는 축제의 이름이 '대구컬러풀페스티벌'이 아니라 '컬러풀대구페스티벌'이었다.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이 '국제뮤지컬대구페스티벌'이 된 셈이고 '함평나비축제'가 '나비함평축제'가 된 격이니 축제의 독자성과 차별성을 스스로 뭉개버린 것이다.'시민의 축제'임을 내세우면서 이처럼 심벌과 로고타이프를 해마다 바꾸고 이름마저 이랬다저랬다 하는 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일이다. 그리고 매년 형편없이 디자인되어 배포되는 전단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올해는 첫머리에 '대중교통 이용을 당부드립니다'라고 쓰여 있다. '당부한다'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쓰는 말이다. 250만 대구시민을 상대로 감히 그렇게 말해도 되는 사람은 없다. 더구나 '당부드립니다'는 '교통이 통제됩니다'처럼 어법에도 맞지 않는 문장이니 더욱 쓰면 안 된다.도심에 즐비한 현수막도 그렇다. 보이는 건 온통 '통제'뿐이다. 어디에도 '오시라'는 말은 없다. '함께하자'는 말도 없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통제'는 단속, 금지, 차단으로 읽힌다. 그러니 길 이쪽에 '통제'가 있으면 그 옆이나 저쪽 어딘가에 하나쯤은 '환영' 또는 '개방'을 뜻하는 메시지도 같이 걸려 있어야 한다.덧붙여 '비가 와도 축제는 열립니다'라든가 자동차가 아니면 올 수 없는 장애인이나 노약자의 경우 어떻게 하면 참여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현수막도 간간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축제가 끝나면 특정업체가 아니라 대구시민이 행복해져야 한다. 무엇보다 대구다운 축제, 즉 대구사람이어서 더 멋과 흥이 나는 축제, 대구에서 열려야만 제대로 신명나는 그런 '대구컬러풀페스티벌'을 만들어가야 한다. 거리는 '통제'로 가득하지만 그래도 5월은 의심할 바 없는 '축제의 계절'이다.

2019-05-05 15:42:37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광장] 반중 조홍감이

자식의 날은 없는데 어버이날이 따로 정해진 이유가 뭘까? 혹시 어른 중심의 사회이기 때문에 어른 중심으로 정한 탓일까? 아니다. 자식을 향한 어버이의 사랑은 거의 본능적인 것이며 365일 한결같아 따로 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1년 내내 자식의 날인 것이다. 그러하다면 어버이날을 따로 정한 이유는 분명해진다. 자식들이 어버이께 보내는 사랑은 어버이의 그것 같이 본능적이지도, 한결같지도 않을 수가 있으므로 이날을 맞아서라도 다하지 못했던 효를 되새겨 행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필자의 장인은 11개월간 암 투병 끝에 어느 해 9월 1일 새벽 2시에 영면하셨다. 장인은 5남매를 두었는데 그중에 맏이가 가장 아픈 손가락이었다. 그 당시 필자의 처형인 맏이는 8여 년간 유학한 후 몇 해 동안 비정규교수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해 여름, 다행히도 모 국립대 교수 공채를 통과하여 9월 1일 임용을 앞두고 있었고 처형은 그 대학이 있는 도시에 머물고 있었다. 소식을 들은 처형은 미처 임명장도 받지 못한 채 달려와야만 했다. 맏이가 정규직 교수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고자 했던 간절한 기원이 그분 생의 마지막을 견디게 하는 힘이었으며 임용이 예정된 당일 새벽에는 힘이 부쳐 운명하신 것이다. 이것이 한결같은 어버이의 마음이다.어버이는 자식을 마음속에 품고 살지만 자식들은 생업에 쫓겨 그러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효를 행하려 할 때는 이미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룰 수 없음을 나타내는 '풍수지탄'(風樹之歎), 즉 '바람과 나무의 탄식'이라는 말이 회자하는 것 같다. 한시외전에 나오는 말로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봉양하려 하나 어버이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문장에서 유래했다.풍수지탄의 회한을 가장 절실하게 나타낸 시조는 노계 박인로가 그의 나이 마흔 하나였던 1601년에 지은 '조홍시가'(早紅柹歌)의 첫 수이다. 쟁반에 담긴 일찍 잘 익은 홍시를 부모님께 가져다 드리고 싶지만 이미 세상을 떠나고 안 계셔서 그럴 수 없음을 한탄하는 시조이다./반중(盤中) 조홍(早紅)감이 고와도 뵈이ᄂᆞ다/ 유자 아니라도 품엄즉도 ᄒᆞ다마ᄂᆞᆫ/ 품어가 반길 사람 없으니 그걸 셜워 ᄒᆞᄂᆞ이다./예전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시조였지만 나이가 들수록, 부모님이 고인이 된 후로는 더욱 절실하게 와 닿는다. 좋은 음식을 먹을 때, 멋진 경치를 볼 때, 문득 문득 떠오르는 모습을 어찌할 수가 없다. 부모 돌아가셔 산에 묻는다는 말도 다 거짓이더라. 내 아버지는 열일곱 해 전, 어머니는 열세 해 전에 돌아가셨지만, 내 가슴에 묻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빙긋이 미소 지으며 떠오르더라. 갚아드리지 못한 은혜가 한이 되어 효의 대명사인 노래자의 옷을 입고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지만 풍수지탄만 메아리가 되어 울릴 뿐이더라.노계는 조홍시가 세 번째 수에서 부모가 늙어 감을 다음과 같이 탄식하였다. /수만 근 쇠를 늘려 길게 길게 노끈을 꼬아/ 구만리 먼 하늘에 가는 해를 잡아매어/ 북당의 머리 흰 양친 더디 늙게 하리다./ 어느 누가 세월을 비껴갈 수 있겠는가? 오는 어버이날, 공경하는 마음으로 찾아뵙고 무고하게 지내고 있음을 보여드리자.

2019-05-04 02:30:00

이재경 대구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특별기고] 가업 승계, 부(富)가 아닌 기술과 노하우의 승계다

우리나라에 100년 넘는 장수 기업이 얼마나 될까? 지난해 기준으로 두산, 동화약품, 신한은행 등 9개 기업만이 100년을 넘었다. 대한민국 기업 평균수명이 15년에 불과한 것을 생각해 보면 이들이 얼마나 대단한가 생각하다가도 일본에는 100년 이상 기업이 3만 개가 넘는다고 하니 괜히 아쉬운 마음이 든다.장수 기업을 어렵게 하는 요인은 다양하겠지만 창업 세대의 은퇴 시기가 다가오면서 가업 승계 절차가 기업 존속을 어렵게 하는 대표적 요인으로 꼽힌다. 흔히 가업 승계는 '부의 대물림'으로 여겨져 대중의 시선이 곱지 않다. 막대한 상속·증여세는 응당 부의 상속에 대해 당연히 내야 할 세금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일반 개인의 상속과 달리 가업 승계는 기술과 경영 노하우의 이전이며, 고용의 승계라는 측면에서 일반 상속과 완전히 구분해 다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기업은 생산과 고용을 통해 소득과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세금과 사회공헌을 통해 국가와 지역경제에 많은 기여를 한다. 이러한 역할 차이를 무시하고 단순히 개인 상속과 같이 부의 이전으로만 가업 승계를 바라보면 많은 오류가 발생하게 된다.우리나라도 여러 세제 지원제도를 제공하고 있는데 '가업상속공제 제도'가 대표적이다. 업력에 따라 최대 500억원까지 상속세 과세 대상에서 공제해 주는 것이 핵심인 이 제도는 이상하게도 활용하는 기업이 연간 70여 개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제조업 강국 독일이 연간 1만7천여 건의 공제제도를 이용한 것과 비교해 보면 너무나 초라한 수준이다.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가업상속공제 제도를 이용하려면 우선 피상속인이 지분 50% 이상을 10년 이상 보유해야 하고, 매출액이 3천억원을 넘으면 안 된다. 또 이 제도를 이용해서 가업을 상속했을 때는 상속 후 10년간 고용의 100%(중견기업은 120%)를 유지해야 하고 업종이나 가업용 자산 변경을 제한받게 된다.10년이라는 상당히 긴 기간 요구되는 현 제도의 사후 요건은 족쇄로 작용한다. 무엇보다 최근 대구상의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잘 나타나듯 응답 기업의 90%가 사후 요건 중 고용 요건 개선이 시급하다고 답했다.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인력난에 대응해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하는 현 상황에 10년간 고용 유지는 현실적으로 너무 큰 부담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우리나라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일본의 대처 방안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일본은 지난해부터 2027년까지 파격적으로 가업 승계를 돕고 있다. 모든 중소기업이 공제 대상이다. 승계받는 주식의 상한선 철폐, 고용 유지 조건 완화, 경영 악화로 인한 폐업 때 폐업 시점 가치로 상속세를 부과하는 제도 등이 대표적 예다. 우리나라에서도 더 많은 100년 기업이 나오려면 일본처럼 한시적 가업 승계 지원책을 시행한다든지 아니면 가업상속공제 제도 요건 중 기업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부분은 과감히 삭제하거나 완화해야 한다."차라리 기업을 매각해 부동산을 사면 더 편하겠지만 창업주인 부모님의 헌신과 종업원을 생각하며 가업을 물려받는다"던 한 기업 임원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오랜 기간 축적해 온 기술과 고용의 승계를 통해 영속기업을 키우고, 지역과 국가 경제 기반을 견고히 해 경제성장과 발전을 이어가야 한다.

2019-05-02 20:03:14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춘추칼럼]장기전은 비핵·평화를 하지 말자는 것이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종료된 이후 두 달여가 지났다. 비핵화 협상의 당사자이면서 중재자인 우리의 당초 목표는 하노이 회담에서의 합의를 근거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답방을 포함한 제4차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여 평화 체제의 일정표를 앞당기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합의 채택이 불발됨으로써 이러한 계획이 차질을 빚게 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협상이라는 것은 늘 희망적(wishful)인 것은 아니다. 잘될 것도 안 되는 경우가 있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가운데 타결의 실마리를 찾기도 한다. 지난 하노이 회담은 결과물 없이 종료되었지만 북미 양측의 주장이 보다 명확히 드러났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이러한 상황 속에서 지난주 우리는 4·27 판문점 남북공동선언 1주년을 맞이하였다. 결론적으로 4·27 판문점 선언이 한반도 평화 발전에 기여한 점은 정당히 평가받아야 한다. 2017년 북미 간 충돌 위기를 극복하고 남북 간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에 합의한 점이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한 상시 협의 틀을 만든 것은 주요한 성과이다. 체육, 문화, 종교 등 사회문화 분야의 민간교류가 활성화된 것도 중요한 진전이다.4·27 판문점 선언 이행이 다소 주춤하고 있지만 이 선언에 담긴 의미와 내용을 감안할 때 남북이 앞으로 견지해야 할 장전임에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안타까운 것은 하노이 회담 이후 북한이 다시 남북 관계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사례를 볼 때 북한은 정세가 유리하지 않은 국면에서는 남북 관계에 속도 조절을 시도해왔고 통미봉남을 통해 우리와의 대화를 배제하려 하였다. 반면 우리는 비핵화 협상과 남북 대화를 병행해 나가는 입장에서 두 가지 트랙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상황을 관리해 왔다.북한이 앞으로 남북미 협상 구도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끌고 가려면 통미봉남으로는 안 된다. 남북 관계에서는 비핵화 협상과 관련 있는 경제협력의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산가족 등 인도적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문화 교류를 활성화해 나감으로써 남북 관계의 토대를 굳건히 하고 정상국가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해 나가는 것은 비핵화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제3차 북미 정상회담의 여건 조성을 위해서는 앞으로 해나가야 할 일이 많다. 우선 한미 정상회담 이후 남북 정상 차원의 만남을 통해 다음 플랜을 준비해야 한다. 하노이 회담 이후 북미 양측은 지금 협상장 밖에서 날 선 비방전을 벌이고 있다. 협상 실무를 관장하는 실무대표들끼리 맞대응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감정적으로 대응해서는 양측 실무대표들이 앞으로 만날 수 없다. 북미 모두 중재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우리를 십분 활용하여 다시 대화의 테이블에 마주하는 명분과 실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우리 스스로 조급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과거 북핵 협상 30년 동안 우리는 '타이밍'의 중요성을 뼈져리게 느꼈다. 무수한 협상의 과정 속에서 협상이 타결될 수 있는 적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기를 놓쳐 30년이 흘렀다. 클린턴 행정부 말기 때가 그랬고 919 공동성명 이후에도 그랬다. 시기가 늘어지게 되면 상수보다는 변수가 많아진다.그간 경험에 비추어보건대 비핵화 협상은 포괄적인 합의와 압축적인 단계 이행을 통해 일거에 끝내야 한다. 협상 시간이 지연되면 주변국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당사국들의 리더십이 바뀐다. 협상무용론이 고개를 들고 회의적인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명분과 자존심 싸움으로 번지게 되면 협상의 동력이 약화된다.냉전 해체는 개혁개방론자인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당시 소련의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여건이 마련될 수 있었다. 독일 통일은 동독 변혁기에 헬무트 콜 총리가 주변국들을 설득하면서 통일의 기회를 살려 나갔기 때문에 이룰 수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서두를 것이 없다는 입장이면서 대선 때까지 핵 동결 국면을 끌고 나갈 것으로 보이고 김정은 위원장은 올해 말까지 시한을 설정해 놓고 미국의 입장 변화를 종용하고 있다. 올해가 지금까지나 앞으로의 비핵화 협상 향배를 가를 중요한 타이밍이다. 올해 제3차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되어 비핵화 방식에 있어서의 포괄적인 합의를 이루고 비핵화에 따른 신뢰 조치가 추진되어야 한다. 남북미 모두 장기전에 대비할 만큼 타이밍이 여유로운 것은 아니다. 남북미 모두 국내 정치적인 요소를 뛰어넘어야 목표를 이룰 수 있다.

2019-05-02 11:18:43

손상호 경북대 교수·시인

[매일춘추]아리랑과 대금

아리랑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말하기는 매우 어려우나 우리 민족의 애환을 나타내는 민요라는 데는 별반 이견이 없을 것이다. '명사십리가 아니라면은 해당화는 왜 피며, 모춘삼월이 아니라면은 두견새는 왜 울어' 정선 아리랑의 이 가락처럼 원한과 아픔을 풀이하는 푸념이 있는가 하면,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밀양아리랑처럼 애틋한 감정을 자연스럽게 토로하는 서정시 같은 가락도 있다.대금은 저 또는 젓대라고도 하며 악기를 가로로 비껴들고 한쪽 끝부분에 있는 취구에 입술을 대고 입김을 불어넣어 소리를 내는 가로로 부는 대표적인 목관악기다. 대금은 중금·소금과 함께 신라 삼죽이라 부르며, '대금을 불면 적군이 물러나고, 병이 낫고, 가뭄에는 비가 오고, 장마가 걷히며, 바람과 파도가 잔잔해진다'고 삼국사기에 적혀있다.추석특집으로 방송에서 '아리랑 대공연'을 내보낸 적이 있었다. 평소에 아리랑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밤이 좀 늦었지만 끝까지 시청을 하였다. 아리랑 가사와 곡에 서려있는 느낌을 '한'이라고 한마디로 나타내기도 하지만 그 이상이 아닌가 한다. 아리랑은 언어로 나타낼 수 없는 느낌을 갖게 하는 신비한 노래다. 아리랑은 노래의 종류도 다양하지만 이것을 표현하는 춤사위도 그에 못지않다. 이날 내가 놀란 점은 아, 글쎄 피아노를 비롯하여 현악기, 관악기를 총동원하여 수 십 명의 관현악단이 연주한 아리랑 곡보다는 한 대금연주가가 대금으로 풀어내는 아리랑의 곡이 더욱 짠하게 가슴을 파고들어 헤집어놓더라는 말이다. 아마도 방송국 홀에 꽉 들어찬 수 천 명의 관객들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경험했을 것이다.(TV화면에 비친 모습도 다들 그렇게 보였다.) 내가 관현악을 폄하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바흐의 곡을 대금 하나로 다 보일 수는 없다.)노래에 얽혀 있는 정서를 나타내는 게 악기라면 그 노래에 가장 어울리는 악기가 있지 않을까. 아리랑은 수많은 금빛 찬란한 서양악기보다 한 개의 순박한 우리 악기만이 그려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노래였다. 어떻게 여섯 개의 구멍뿐인 대나무 막대(대금)에서 그토록 슬프고 아름답게 모습을 드러내는지, 우리의 노래는 우리의 악기만 부를 수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내가 들은 아리랑은 그런 노래였다. 아리랑, 우리는 얼마나 아름다운 노래를 가졌는가. 대금, 우리는 얼마나 맛깔스런 멋을 부리는 악기를 가졌는가. 아리랑과 대금, 말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행복해진다. 손상호 경북대 교수·시인

2019-05-02 11:09:58

장석수 작 '광녀', 베니어 판 위에 유채, 47x32cm, 1955년

[김영동의 시대와 미술]전쟁을 겪고 만든 대구의 초상

일본이 패전의 수렁에서 금방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건 순전히 한국전쟁 덕이었다고 한다. 전쟁물자의 중간 공급지 역할을 하면서 이웃 나라의 참극이 경제발전 추구의 기회였다니. 6.25는 한반도를 초토화로 만들었으나 대구는 건재했다. 폭격으로 인한 파괴도 없었고 적 점령도 없어서 오히려 문화적 르네상스를 맞았다고 하면 그 역시 아이러니다.6.25 후 대구에는 금달래가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도 해방공간에도 있었다 한다. 미치지 않고서야 버텨낼 수 없었던 사람들이 분명 있었다. 누군가의 비극적 삶의 이야기들이 덧씌워져 전형적인 한 인물을 만들어 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실제 인물이었고 또한 시대가 만든 비극의 상징이기도 하다.'광녀'는 장석수선생의 1955년 작이다. 그해 4월에 대구 USIS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고 뒤이어 서울 동화화랑에서 이동전을 했다. 최해룡이 쓴 팸플릿 서문에는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며 오직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려고 묵묵히 정진을 계속해온 성실의 화우"라고 소개했다. 4월 2일자 매일신문은 신명여고 미술실로 전시 준비 중인 선생을 찾아가 취재했는데 "영양실조의 해쓱한 얼굴에 안광은 창작의 정열로 생기를 발하며 텁수룩한 수염은 세잔느의 풍모를 하고, 물체에 파고드는 진격성을" 지녔다고 전했다.출품작은 '가족' 외 30여점의 유화로 특히 '광녀'와 신명학교를 그린 '교사'에서 보듯 표현주의의 화풍이 명백해졌다. 베니어 판 위에 거칠게 두터운 마티에르로 그린 이 초상은 전쟁을 겪고 난 우리 사회의 시대적 리얼리티를 증언하는 거의 유일한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5년은 장석수, 정점식, 서석규, 이복 등이 함께 기존의 대구화단에 저항하며 대구미술가협회를 결성한 해이기도 하다.장석수 선생은 1921년 경북 양포의 부농 집안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릴 때 홍역을 앓고 한쪽 청력에 장애를 입었다. 고향의 장기초교를 다니고 대구 교남학교로 진학했다가 둘째 형(영남대 장기동교수)이 와세다 대학 영문학부에 유학하고 있어서 그도 교토 동산중학교로 갔다. 1940년 태평양미술학교에 들어가 유화를 전공하고 1943년 10월 귀국했다. 1944년 고향에서 제23회 조선미전에 출품했다. 이후 1949년 제1회 국전에 '신생'으로 한차례 입선을 한 후 관전은 멀리했다.해방 이듬해 대구여중 미술교사로 나오면서 삼덕동 한 적산가옥을 살림집으로 마련 작업실을 겸해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대륜중, 경북대 사대부고, 경상중을 거쳐 1954년부터 신명학교에 근무했다.미술평론가

2019-05-02 10:42:18

김수경 국악밴드 나릿 대표

[매일춘추]사랑합니다 선생님

불어오는 봄바람에 반짝이는 연두색 잎사귀들. 천지가 따듯한 기운으로 가득한데 마음 한 켠, 비어 있는 자리가 쓸쓸하고 그저 죄송스럽기만 하여 울컥하고 올라오는 눈물은 애써 삼켜 버린다. 5월 3일은 소리 삶을 살게 해주신 또 한분의 어머니,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 제8호 판소리 예능보유자 고 이명희 선생님의 49재가 있는 날이다.경상도 사람으로 결코 쉽지 않은 전주대사습놀이 대통령상 수상으로 명창의 반열에 올라 KBS 국악대상, 세계문화예술대상, 금복문화상, 대구광역시 문화상, 판소리계 최고 권위의 동리대상 수상 등 그 경력을 인정받아 2017년에는 옥관문화훈장을 받으셨다. 불모지 영남지역의 단절된 판소리 계승, 전승을 위해 오랫동안 사단법인 영남판소리보존회, 전국국악경연대회 대구국악제를 이끌어 오셨으며 17, 18회 대구국악협회 이사장을 역임하시며 대구국악인의 수장으로 대구 지역 최초 대통령상을 유치하셨다. 지도자이며 선구자였던 선생님 덕분에 지역의 국악인, 예술인의 삶이 한 뼘 성장한 것임엔 틀림이 없다.만나는 사람마다 수경이 너 이야기를 한다. 기특하고 고마운 마음이라는 말씀에 무작정 기쁘기도 했지만 자주 찾아뵙고 살뜰히 모시지 못한 못난 제자가 이렇게라도 선생님께 보답하는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었다. 부끄럽지 않은 제자가 되어야지. 마음먹고 도리어 힘을 얻기도 했는데… 갑작스런 선생님의 별세 소식에 처음 뵈었던 선생님 모습부터 소리를 하는 동안 웃고 울었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며 무어라 정의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이 몰려왔다. 고등학생 시절, 취미로 배워 보고자 찾아 갔던 곳이 이명희 판소리 연구소였다. 목소리 한번 들어보자시며 받는 첫 레슨의 긴장과 설렘. 빛나고 매서웠던 선생님의 눈빛,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와 맑고 힘이 넘치는 성음 모든 것이 새삼 생생한데… 그렇게 20여 년이 지나 얼른 찾아 봬야지하고 마음만 앞설 뿐 행동하지 못한 채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이별을 해버렸다. 먹먹한 가슴을 쳐보고 시간을 돌리고 싶다 수없이 생각하지만 언제나 후회는 늦다.시작하면 끝을 보셔야 했던 강건함으로 앞만 보고 나아가셨던 여장부. 작은 일에는 크게 감동하고 큰일은 대범하게 넘기시던 작은 거인, 한편으론 소녀 같이 여리고 정에 약하셨던 선생님. 그래서 호된 회초리 같기도 하고 또 보드라운 손수건 같기도 했던 선생님의 가르침. 잊지 않겠습니다. 아니, 잊을 수 없지요.소리공부 좀 하라시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합니다. 전해주고 가신 소리, 성음, 맵시 잘 다듬고 다듬어 열어주신 소리 삶 열심히 살아내는 자랑스러운 제자가 될게요. 제 마음 속에 영원히 살아계신 우리 선생님. 부디 좋은 곳에서 편히 쉬시길 바라요. 김수경 국악밴드 나릿 대표

2019-05-02 10:27:14

하경식 대구시 청소년보호팀장

[기고]청소년은 우리의 보배이면서 미래다

'청소년은 우리의 보배이면서 미래다.'이 말은 우리 모두가 공감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잘 적용하지 못하는 문구 중 하나이다. 우리 기성세대 모두가 청소년 시기를 거쳐 왔으면서도 청소년들의 세계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이 반영된 결과로 보여진다.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일부 K-POP 스타들의 어긋난 행동과 일그러진 그들만의 문화를 보면서, 청소년 분야에서 근무하는 한 사람으로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라는 깊은 고민을 하게 된다.대구시는 건강하고 건전한 청소년 육성·보호를 위하여 민선 7기를 맞아 여성가족청소년국 및 청소년과를 신설하고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는 시책을 개발 및 운영하는 데 힘쓰고 있다. 청소년 관련 예산은 2014년 92억원에서 올해 228억원으로 늘어났다. 청소년에 대한 바뀐 시각을 반영하고 지역사회 청소년들에게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은 갖춘 셈이다.아울러 한창 자라나는 청소년이 꿈과 끼를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청소년 전용공간들을 확충하는 데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영남권 청소년들에게 직업에 대한 올바른 정보와 전문적이고 체계화된 직업체험 기회를 제공할 '국립청소년진로직업체험수련원'이 내년에 본격적으로 공사를 앞두고 있으며, 증가하고 있는 인터넷·스마트폰 중독 및 정서행동장애로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의 전문적 치유에 가장 효과적인 거주형 치료·재활센터인 '국립청소년치료재활센터'(디딤센터) 역시 달성군 구지면에 유치했다.(2021년 준공 예정)서구 중리동에는 '시립청소년문화의집'이 이달 정식 개관을 준비하고 있다. 동구(9월 준공 예정)와 북구, 수성구의 청소년문화의집도 내년 완공을 목표로 관련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다. 전국 최고 수준의 청소년 인프라가 구축되고 있는 것이다.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스프트웨어 역시 앞서고 있다. 마을의 아이들에게 마을 주민들이 부모가 되고, 학교·도서관 등 마을의 공간이 배움터가 되는 우리마을교육나눔 사업은 19개 마을에서 올해 74개 마을로 확대되었다. 2015년 전국 최초로 대구에서 시행된 우리마을교육나눔 사업은 현재 800개 프로그램에 10만1천여 명이 함께하고 있으며 청소년 참여율이 78%에 달한다. 전국 시·도에서 앞다투어 벤치마킹하는 우수 사업으로 손꼽힌다.또한 지역사회 내 청소년 관련 자원을 연계하여 학업 중단, 가출, 인터넷 중독 등 위기 청소년에 대한 상담·보호·교육·자립 등을 맞춤형 서비스로 제공하는 청소년통합지원체계(CYS-Net)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시·구·군 상담복지센터 및 청소년쉼터 등의 연계를 강화하는 한편, 일촌 맺기와 같은 맞춤형 긴급대응체계 구축에도 애쓰고 있다.이처럼 대구시에서는 자라나는 청소년을 위해 많은 사업을 시행하고는 있으나 지역 간, 학교 간 교육 격차의 심화, 소외되고 방황하는 청소년의 증가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청소년 정책이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청소년들이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자신들의 꿈과 끼를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우리 기성세대들이 끊임없는 관심과 아낌 없는 사랑으로 감싸 안아야 할 것이다.

2019-05-02 10:21:09

1885년에 설립된 세이죠 중학교의 설립 당시 모습

[정혜영의 근대문학을 읽다] 현진건은 왜 일본육군예비학교를 중퇴했을까

현진건은 1910년대 중반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다. 십 대 중반의 나이였다. 유학처는 '나라(城)를 이룬다(成)'는 뜻으로 교명을 지은 육군예비학교 세이죠(成城)중학교였다. 두 명의 조선 총독을 비롯해서 일본제국을 이끈 수많은 군인들이 이 학교 출신이었다. 일본 군인만 배출한 것이 아니었다. 1910년대를 전후한 시기, 강력한 근대국가 건설의 열망을 지닌 청나라와 조선의 젊은이들이 일본의 군사능력을 배우기 위해서 세이죠 중학교로 모여들었다. 그들 중에는 훗날 중국공산당을 설립한 혁명가들, 그리고 조선의 독립운동가 이상정 등이 있었다.현진건이 왜 육군예비학교를 선택한 것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다. 무관이었던 할아버지에서 제정 러시아 사관학교 졸업생 큰 형으로 이어지던 집안의 전통을 따른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에 앞서 세이죠 중학교로 유학을 떠났던 대구출신 독립운동가 이상정의 권유가 있었을 수도 있다. 어쨌건 십대 중반의 현진건은 '무력'을 길러 조선 독립을 이루려고 했다. 이광수, 김동인 등 근대문인들이 근대적 지식을 배워 조선을 일으키려고 했던 것과는 달랐다.그러나 현진건은 어렵게 입학한 세이죠 중학교를 채 2년도 다니지 않고는 중퇴한다. 그로부터 수년 후 그는 혁명가가 아니라 소설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현진건은 일본에서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현진건이 유학을 한 시기, 일본은 새로운 시대를 맞고 있었다. 부국강병의 이상 아래 근대일본 건설에 전력투구한 아버지들의 시대가 끝나고 낭만적이고 자유로운 자식들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1차 세계대전 특수로 경제 호황이 이어지면서, 아사쿠사 극장가에는 밤늦게까지 공연이 이어졌고 서구적 연애에 취한 젊은 남녀들이 카페로 모여들었다. 한 편에서는 서구에서 유입된 사회주의사상과 남녀평등 사상에 몰입한 신청년들이 여기저기서 사회개혁을 외치고 있었다.현진건은 이 새로운 시대가 열리던 시기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군사학교의 강철같은 규율 속에 갇혀있기에는 너무나 자유롭고 낭만적인 시대였다. 그 열정적 시대 분위기가 현진건의 내면 깊숙이 갇혀있던 '시인'적인 감성과 자질을 건드린 것이라고 추정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 추정을 받아들인다면 육군예비학교를 중퇴하고 소설가의 길로 들어선 그 선택의 수수께끼가 다소 풀린다. 물론 소설가를 선택했다고 '혁명가'의 길을 포기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무력'양성이 아니라 글쓰기를 통해서 사회개혁을 이루려고 했을 뿐이었다.처녀작 '희생화'(1920)에서 현진건은 신청년들 간의 비극적 연애를 통하여 불합리한 관습타파를 주장했다. 러시아 소설을 번역한 '행복'(1920)에서는 하층민의 부조리한 삶의 묘사를 통해서 계급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했다. 1943년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는 끊임없이 식민지 조선의 부당한 현실을 비판하는 소설을 썼고, 혁명을 외친 모든 사람들이 신념을 버리는 순간에도 혁명적 정신을 버리지 않았다. 폭탄을 던지며 독립을 외치는 대신 글을 통해서 일제에 대항한 것이다. 대구대학교 인문교양대학 초빙교수

2019-05-02 10:20:23

권미강 프리랜서 작가

[권미강의 생각의 숲] 비밀

2004년 미국의 예술가 프랭크 워랜 씨는 대중을 상대로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도서관, 지하철역 등에 엽서를 비치하고 누구든 자신의 비밀을 써서 보내는 '비밀엽서' 프로젝트다. 사람들이 보내온 엽서에는 기상천외한 비밀들이 쓰여 있었다. '수영장에서 몰래 오줌 누는 걸 즐긴다거나, 월급을 더 받기 위해서 수천 명 직원의 월급을 삭감하라고 명령했다거나, 자신이 상처를 덜 받기 위해서 사람들을 경멸한다거나, 떠날 수 있도록 남편이 나쁜 짓을 했으면 한다거나' 등 몰래 간직했던 비밀들이 엽서를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프로젝트는 대 성공이었다.'비밀엽서'가 각광받은 것은 익명성 때문이다. 비밀은 결코 들키거나 밝히고 싶지 않은 말 그대로 '비밀'이다. 한편으론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다면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 욕구가 '비밀'에 있다. 그게 사람의 욕망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이야기처럼 아무도 없는 대나무 숲에라도 풀어내야 속이 후련한 것이 비밀이다. 비밀, 영어로 'secret'의 어원은 라틴어 'secretus' 다. '분리하다, 따로 떼어놓다, 선별하다, 배설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 어원이 '비밀'의 속성을 다 담아내고 있는 듯하다.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익명으로 비밀을 풀어놓는 '대나무숲'이 있다. 며칠 전 국회 관계자들이 이용하는 SNS '여의도옆 대나무숲'에 공위공직자범죄수사처 패스트트랙으로 시끄러웠던 상황 속에서 고충을 겪었던 불만들이 올라왔다. 보좌진들을 앞장세우고 자기주장을 외치던 국회의원들에 대해서다. 심한 몸싸움으로 몇몇 보좌진들은 상처를 입었을 것이고 차후에 법적 조치를 당할 수도 있는 형편이니 불만이 클 것이다. 하지만 속앓이만 하는 이들이 비밀 아닌 비밀을 '대나무숲'에 털어놓았다. 이들에게 어쩌면 비밀은 '자신들 입맛에 맞게 따로 떼어서 생각하고 선별해서 배설하는' 구태정치가 진저리 나는 사실인지도 모르겠다.권미강 프리랜서 작가

2019-05-01 18:00:00

김경덕 컴퍼니비 대구경북센터장

[김경덕의 스타트업 스토리] 좀비 스타트업

2019년 정부 창업지원사업 예산은 1조1천억원. 지난주 발표된 추가경정예산을 더하면 1조6천억원이 넘는 규모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활성화 정책으로 창업하기 좋은 시기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창업으로 성공하기가 어려운 시대임을 대변하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창업자들이 지원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흔히 발생하고 있다.창업 생태계에서는 이런 창업자를 '좀비 스타트업'이라 부른다. 살아있는 시체와 같은 창업자, 창업 기업이 정부 정책과 지원금으로 연명하고 있어 이를 찾아내려는 숨바꼭질이 계속되어 왔다. 필자도 지원사업을 진행하며 좀비 스타트업을 찾아내기 위해 갖은 애를 써왔고 이로 인해 힘든 일도 많았다. 특히, 어느 창업자와의 줄다리기는 평생 잊을 수 없다.그 창업자는 몇 개월 연속으로 민원을 넣는 등 심사 탈락에 대한 항의를 계속 해 왔다. 어느 날 그 창업자가 보낸 전자우편에서 특이함을 발견했다. 문서에 늘 3자리의 숫자가 적혀 있었는데 민원 관련 메일마다 항상 기재되어 있었다. 제기한 민원에 대한 창업자 본인만의 일련번호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수백여 건의 민원을 정부기관을 상대로 걸어왔던 것이다.어쩔 수 없이 발표 기회까지 준 어느 날. 그 창업자는 발표장에서까지 대단한 소란을 피워 결국 경찰까지 출동했고 이후 그 창업자의 태도는 변해서 말썽은 생기지 않았다. 공권력을 동원해야만 억지를 막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많이 허탈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이러한 예를 들지 않더라도 정부 창업지원사업은 유망 창업자를 선별하는 것만큼 좀비 스타트업과의 전쟁도 늘 겪고 있다. 우수 스타트업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도 중요하지만 제도와 정책을 악용하는 좀비 스타트업에 대한 매뉴얼이라도 확립한다면 스타트업 생태계도 더욱 건강해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김경덕 컴퍼니비 대구경북센터장

2019-05-01 18:00:00

신창환 경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같이&따로] 어른이 존경받는 사회

꼰대!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학생들이 아버지나 선생을 부르는 은어'라고 정의되어 있다. 지금은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가진 나이든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널리 사용된다. 학교에서의 선생님, 가정에서의 아버지, 직장에서의 상사를 부를 때 자주 언급된다.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구태의연한, 그래서 다른 세대와 소통하지 못하는 사람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와 멀어지기 위해 말과 행동에 있어서 필자도 항상 조심하려고 한다.그런데 얼마 전, 모임에서 지인으로부터 요즘 20대 대학생들은 어떤가 하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교수와 학생 사이의 관계 측면에서 '내가 대학을 다닐 때와는 많이 다른 것 같다'는 답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우리 때에는 이랬는데' '내가 그 시절에서는 저랬는데' 하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그런데, 그 사람으로부터 돌아온 반응이 나를 좌절시켰다. 필자의 대답이 바로 '내가, 우리 때는' 사고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꼰대적 사고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어렸던 그 시기에는, 내가 공부할 때는, 우리가 회사에 들어왔을 때는 그랬는데'라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접근하는 순간, 꼰대 냄새를 풍기게 된다.흔히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한다. 어린이날을 비롯하여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성년의 날도 있어 1차적인 관계를 중심으로 한 기념일들이 유달리 많은 달이기도 하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5월에 가정, 학교와 관련된 기념일이 많은 것도 특이한 현상이다.한 개인이 건강한 인격체로 성장하기 위해 가장 일차적인 보호막이라 할 수 있는 가정과 학교는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과 공기에 비유할 수 있다. 사회적 존재로서 사람들 간의 관계를 배우고, 사회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면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지식과 지혜를 배우는 공간이다. 배움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인간으로서 더욱 중요한 정서적 지지와 교류를 통해 안정감과 자존감을 형성하는 공간이기도 하다.그런데 이 공간의 틈이 벌어지고 있다. 사회가 급변하면서 배움의 공간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의 차이는 점점 커져 가고 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세대 간 사고, 판단, 감성의 성향과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 인간과 인간의 만남보다는 디지털화된 세상에서 기계와 인간의 접속이 더 편하게 느껴지는 상황이 되어 가고 있다. 지혜와 지식, 감성의 지원자였던 어른이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조직 속의 한 개체로서만 인식되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어른이 없는 사회에서 어린이는, 학생은, 신입 직원은 무엇을 배울까? 점차 학습도 인간 대 인간의 관계를 벗어나 기계 대 인간의 관계로 변화되면서 어른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사회화의 많은 과정은 가정과 학교를 통해서, 직장에서의 선배를 통해서 이루어진다.시대가 변해도 경륜과 지혜는 삶의 문제 해결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어른은 단지 숫자상의 나이가 많아서, 오래 조직에 있어서 존경을 받는 것이 아니라 경륜과 지혜를 통해서 가족을, 학생을, 직원들을 도와주고 이끌어 갈 때 존경받는다. 꼰대라는 말이 유행하는 것도 요즘은 그런 어른이 많이 없다는 방증일 것이다. 이제는 나이가, 근무연수가, 부모라는 위치가 존경을 보장하는 시대가 아니다. 어른이 가정에서, 학교에서, 조직에서, 어른으로서 자신의 위상에 맞는 역할과 책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우리 사회에서 존경받는 어른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지금처럼 혼란스럽고 타협하지 않는 사회에서 진정한 어른이 나서서 경륜과 지혜를 바탕으로 어른답지 못한 어른들과 철없는 아이들을 훈계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는 더 나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우리 사회에서 진정 존경받는 어른들을 그려보면서 적어본다.신창환 경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2019-05-01 18:00:00

권영희 작 '이토록 뜨거운 순간'

[내가 읽은 책]젊음, 그 황홀한 날 /이토록 뜨거운 순간/에단 호크/오득주 옮김/media 2.0 펴냄

오십이 넘은 즈음부터 나이 듦에 조금씩 젖어든다. 그토록 뜨거웠던 가슴은 어느덧 고스란히 가라앉아 어디에서도 그 뜨거움을 쏟아내지 못한다. 그것이 못내 그리웠던 적도 또한 아쉬웠던 적도 있나 싶게 그냥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워 나가고 있는 심심한 날이 흐르고 있다. 세월감이 무뎌질 때 쯤 다가온 뜨거운 책, '이토록 뜨거운 순간'작가인 에단 호크의 이력은 대단하다. 좋아하는 영화라면 혼자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던 내게 참 매력적인 배우, 그가 바로 에단 호크였다. '비포 선라이즈' '비포 미드나잇' '비포 선셋' 등 비포 시리즈에 출연한 배우로 유명하다. 그는 비포 시리즈를 통해서 이십 대의 젊음과 사십대의 고뇌까지 세심한 연기로 우리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진정한 연기가 무엇인지 보여주었다.영화계에서 확실한 자리를 잡아가는 그의 꿈은 작가였다. 배우로 성장하는 과정에서도 그는 꿈을 놓지 않았다. 뉴욕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며 완성한 작품이 '이토록 뜨거운 순간'이다. 그의 열정만큼 뜨거운 작품이었다. 에단 호크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가 감독으로 참여 하여 2007년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배우가 되고 싶은 텍사스 청년 윌리엄과 가수가 되고 싶은 사라의 꿈같은 젊은 날의 사랑과 열정, 그들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 섬세한 감정 표현과 함께 드러나 있다. 젊은 날,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했던 생각이 어렴풋이 난다. 지금은 그만큼의 뜨거운 열정도, 그만큼의 짜릿한 느낌도 아련하게 기억되는 그 젊은 날. 사라를 향한 윌리엄의 열정을 보며 누군가에게 이토록 집중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난 어린 시절 너무나 많은 시간을 뭔가를 흉내 내는데 소모했어. 외식을 하러 나갈 때면 우리가 완전한 가족인 것처럼 꾸몄어."-104쪽사라와 함께 한 파리 여행에서 결혼을 꿈꾸는 스무 살의 윌리엄이 이해되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부재로 힘겨운 삶을 산 윌리엄은 얼마나 온전한 가족을 꿈꿨을까?하지만 스무 살의 사랑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서로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바라보는 시선이 달랐다. 윌리엄은 사라에게 온전히 자기만을 바라보기를 원했지만 사라는 그렇지 않았다."난 자아를 지키고 싶고, 나만의 인생을 찾고 싶어."-173쪽사라는 윌리엄의 사랑보다 자기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찾는데 더 집중한다. 윌리엄의 뜨거운 사랑도 사라의 진정한 자아도 그때 그 젊은 시절 느낄 수 있는 뜨거운 감정이다. 그 시절 그들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로운 욕망과 열정을 이들은 고스란히 만끽하고 있었다."난 빨리 늙어버렸으면 좋겠어. 그러면 더 이상 장래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없겠 지."-85쪽그때는 우리도 그랬다. 나이가 들면 모든 것이 해결 되리라는……. 하지만 나이 들어보니 알겠다. 젊음, 그 찬란한 날이 너무나 그립다고."우리가 어릴 때는 온 세상이 너의 꿈을 좇으라고 격려해주지, 그런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찌된 영문인지 꿈을 찾아가려고 아주 작은 시도라도 할라치면 사람들은 몹시 불쾌해한단 말이야."-83쪽당혹스런 대사였다. 젊은이들에게 꿈과 가능성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그 젊은이들이 자라날수록 우리들은 꿈을 놓고 현실과 마주하라고 한다. 사라가 말한 것처럼…….윌리엄과 사라의 열정적인 사랑과 혼란, 꿈을 향한 몸부림, 이 모든 것이 아우러진 한 편의 젊은 날의 초상화와 같은 소설이었다. 그들의 젊음, 그 자체만으로도 내겐 황홀했다.권영희 학이사 독서아카데미

2019-05-01 17:04:42

[권영재의 대구음악유사]쥐나 개나 마이크

공공장소에서 보통 사람들은 마이크 한 번 잡기 힘 든다. 그래서 일단 마이크 한 번 잡으면 좀처럼 놓지 않는다. 예전 서민들은 마이크 잡기는커녕 구경조차도 흔치 않았다. 학교 교장 선생님이나 방송국 아나운서, 쇼 무대 사회자, 약장수 정도는 되어야 마이크를 잡을 수가 있었다. 요즘은 쥐나 개나 마이크 든다. 좁은 회의실인데도 마이크를 쓰고 마니아들은 가정집에서도 마이크 잡고 노래 부른다. 일본에서 가라오케가 들어 온 뒤 서민들도 쉽게 마이크를 드는 세상이 되었다.6.25 전쟁이 일어나자 공평동 있던 중앙국민학교는 미군에게 징발 당한다. 저학년은 경북의대 응급실 앞 공터에 판잣집을 지어 이사를 가고 고학년은 신천가에서 노천 수업을 하게 되었다. 인근에 있는 수창학교는 한국군에게 쫓겨나 전매청 담배창고에서 수업하였다. 나는 이때 마이크에 대한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이런 난장판인데도 아침 점심 조회가 있었다. 조회 때 훈시를 하는 교장 선생님들은 자신의 말을 듣는 학생이 있다고 믿는 걸까? 오랜 의문이다. 어린이에게 해줄 말이 그렇게 많아서일까? 아니면 잡은 마이크를 놓기 싫은 걸까? 어느 교장 선생이라도 그들의 훈시는 길고도 지루하다. 수십 년 학교 다니며 많은 조회를 하였지만 신기하게도 기억에 남는 교장 선생님 말씀은 하나도 없다. 지루한 조회는 끝없이 이어진다. "에또" 하면서 말을 이어가고 "끝으로" 하면서 또 연설은 이어진다. 가관인 것은 "어디까지 했더라" 하며 앞에 했던 자신의 말을 까먹기도 하는 것이다. 더운 운동장에서 약한 어린이들이 픽픽 쓰러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훈시는 끝이지 않는다. 교장 선생의 번들거리는 이마와 반짝짝 머릿기름을 발라 올린 마이크 머리가 역겨웠다. 교단 양 옆에 자리 잡고 있는 스피커는 경복궁 해태 마냥 그 다리를 고추 세우고 앉아 잡음 내었다. 때로는 소리가 안 나기도 하고 삐이익 하고 유리창 긁는 소리를 하며 어린 학생들의 심신을 고문하였다.전쟁이 끝나고 모든 학교는 제자리로 돌아왔다. 중앙국민학교도 공평동으로 원 위치했다. 경대 병원 앞에 있던 임시 교사는 동덕국민학교라는 이름으로 창설되었다. 원래의 학교로 돌아온 뒤 새로운 마이크 공해가 추가로 시작이 되었다. 교장 선생의 횡설수설은 여전하고 매일 두 시간 수업마치면 운동장으로 학생들을 모아 체조를 시켰다. 체조 전에 행진곡이 나오고 다음 체육 교사가 지르는 고함 소리, 구령 소리가 또다시 공해를 만들고 있었다. 요즘 같으면 주민들의 민원도 있었을 테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노동조합이 없었는데도 선생님들이 옳게 행동해 존경받던 시절이다. 그 덕에 매일 체조 시간에 정은락 선생이 구령을 붙이고 악을 써도 공평동 주민들은 참아주었다.희게 반들거리는 마이크를 보면 머리가 아프고 속이 메슥거렸다. 가래 낀 목소리를 들으면 교장 선생의 훈시가 연상되어 어지러웠다. 커서 군대 가니 거기에 또 다른 교장선생들이 있었다. 대대장, 연대장, 사단장들 여러 '장님'들이 사병들을 모아놓고 긴 연설을 하였다.제대하고 회사 회의에 참가해보니 거기에도 또 다른 교장선생이 있었다. 요즘 마이크는 예쁘게 만들어져 번쩍거리지도 않고 스피커도 성능이 좋아 잡음을 내지 않는다.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만 커지게 해줄 뿐 잡음이 없다. 그러나 기구는 개량되었지만 말 내용은 아직도 소음이요. 긴 잡소리다.오늘도 호구지책을 위해 청와대에서, 장관실에서, 기업의 회의실에서, 군대에서, 장님들의 주옥같이 아름다운 말씀 들어야 되는 서민들 귀에는 그 말씀들이 횡설수설과 악쓰는 소리, 빈정대는 소리,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로만 들리는 이 병은 어린 시절 조회 때 입은 마음의 상처 탓이기만 할까? 아님 일그러진 마음의 수양 부족일까?

2019-05-01 15:09:18

천영식 KBS이사

[새론새평]문재인정부 2년, 무엇을 남겼나  

국회에서의 여야 간 극한 대립 속에 문재인 정부는 곧 취임 2주년을 맞는다. 아직 2년밖에 되지 않았느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겠지만, 2년을 넘기면 대체로 내리막길로 가게 된다는 역사의 교훈을 위안 삼아야 할 것 같다. 종착역이 멀지 않았다.문재인 정부는 역사에서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현재로선 좋은 결말을 예상하기 힘들어 보인다. 수많은 정부가 밟았던 권력의 몰락 트랙을 고스란히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독선과 아집이다.'대통령 노무현은 왜 실패했는가'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평가했다."무엇보다 집권 기간 동안 경기회복과 경제성장을 요구하는 국민 여론을 제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1980년대 운동권이 가졌던 진보 이념 중에는 21세기 한국 사회에 잘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과감히 변화시켜야 한다. 대통령은 말이 아니라 업적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선출된 왕이 되고자 했던 진보 대통령 노무현은 실패했다."(이갑윤·이지호, 대통령 노무현은 왜 실패했는가, 2015, 에이도스 출판사, 164·165쪽)노무현 시즌 2를 목표로 했던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 때보다 조금 더 공격적으로 방향을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한국갤럽이 4월 26일 자로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로 첫째가 경제민생 문제 해결 부족, 둘째가 북한 관계 치중 및 친북 성향으로 나왔다. 이 두 가지 부정적인 평가는 여론조사 때마다 압도적으로 1, 2위를 유지하고 있다.여기에 세 번째 부정 평가 이유로 등장한 것이 독단적, 일방적, 편향적이라는 사유다. 문재인 정부의 부정 평가 사유 중 중하위권에 머물던 게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온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나쁜 이미지는 경제 무시, 이념 정치, 독단 정치 등으로 요약된다.문재인 대통령은 2년 전 취임사에서 정치와 관련해 이런 약속을 했다."분열과 갈등의 정치도 바꾸겠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끝나야 한다. 야당은 국정 운영의 동반자이다. 대화를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나겠다."본인의 약속과 달리 현실은 정반대 이미지로 가고 있다. 제1야당만 빼고 선거법 밀어붙여! 국정 동반 운영을 위해 제1야당 대표하고 한 번이라도 만남을 가졌던가. 김정은에 쏟는 열정의 절반이라도 제1야당 대표에게 보여준다면 한국 정치는 달라졌을 것이다.청와대 게시판을 자유한국당 해산 청원의 놀이터로 만드는 게 지금의 정치이다. 반대파를 없애겠다는 여론을 청와대는 즐기고 있다. 낄낄거리며 조롱하고 빈정댄다. 이러니 정국이 풀릴 리 없다. 국민들에게 대결 정치의 완화를 설득해도 시원찮을 판에 갈등을 통치의 우선적 도구로 쓰고 있는 것이다.취임사에는 "전국적으로 고르게 인사를 등용하겠다.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 일을 맡기겠다"는 대목도 나온다. 헛웃음이 나온다. 이건 저잣거리에서 실제 조롱의 대상이다."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다"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 저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다."유효기간이 하루뿐인 이 같은 당일치기용 취임사를 팽개치고, 2년간 온통 취임사를 뒤집는 일들만 벌여왔다. '적의'(敵意) 같은 게 아니면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이 대한민국을 가득 채우고 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법도 화려한 명분과 달리 결국엔 무소불위의 홍위병들이 통제 사회를 가속화시키는 도구로 사용될 것으로 우려된다. 분열의 도구다.꿈은 없고 '적'만 가득하면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리더십을 확보해 가기 어렵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대통령을 비판하는 일은 누워서 침 뱉기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부디 남은 임기 동안 국내 정치와 경제 발전을 위해 결실의 당사자로 나서 주길 바랄 뿐이다. 김정은이 그만하라는 '오지랖'의 반만이라도 국내로 시선을 돌리는 건 어떨까.천영식 KBS 이사·계명대 언론광고학부 초빙교수·전 청와대 홍보기획 비서관

2019-05-01 13:31:17

김재수 경북대 초빙교수(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기고]대구경북 사라질라

2018년 지방소멸보고서에 따르면 30년 내 사라질 위기에 처한 전국 89개 지방자치단체 중 경상북도가 19개이다. 의성군은 경북에서 소멸 시군 1위로 나타난다. 전국적인 인구 감소는 2028년부터로 전망하였으나 훨씬 앞당겨졌다.필자의 고향인 영양군 인구는 1만7천200명 정도로 줄었다. 이 중 60세 이상이 44% 정도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경북 북부는 인구가 소멸되어 시군이 없어지거나 거대한 양로원이 될 판이다. 영국의 인구문제연구소는 한국의 인구 감소가 이런 추세로 가면 2750년에 지구상에서 없어지는 나라가 된다고 했다.인구 소멸을 방지하기 위해 특별 대책반(TF)을 구성하고, 위원회를 만들고, 청년 유입 프로젝트, 이웃사촌 시범마을 사업, 도우미 지원, 출산과 보육지원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미리 효과를 예단하기 어려우나 임기응변식, 일괄적 정책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산업구조 등 본질적인 면에서 고민이 부족하다는 생각이다.얼마 전 강보영 경북도민회장이 인구 소멸을 방지하기 위한 특별 대책을 추진하자고 하였다. 경북 북부지방이 특별히 인구 소멸이 심하다. 농촌을 담당한 장관을 했으니 적극 앞장서 달라는 것이다. 같이 힘을 모아 해결 방안을 찾자고 했다. 농촌 인구 감소 문제 해결에 재정 투입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다.농촌 인구 감소 문제는 농업과 비농업의 융복합 전략으로 풀어야 한다. 경북의 농산물 공급과 대구의 식품 소비가 융복합하고 윈윈할 수 있는 것이 식품클러스터이다. 대구와 경북이 인접하는 지역에 농식품클러스터를 만들어 대학과 연구기관과 업체가 융복합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과 자본과 돈이 몰려들 것이다.네덜란드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인구가 우리의 3분의 1 정도이고 면적도 절반에 불과한 네덜란드가 식품클러스터를 만들어 농촌문제를 해결했다. 대학과 연구기관과 업체를 단지화시켜 60만 명을 고용하고 있고, 세계 2위의 농식품 수출국가가 되었다.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켜 농업 문제를 해결하고 국가를 혁신시킨 나라가 이스라엘이다. 사막에서는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불식하고, 토양을 연구하고 농작물을 키우고 키부츠나 모샤브 같은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농촌을 부흥시켰다.수직형 빌딩 농장 건설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이 개념을 만들어낸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딕슨 데포미어 교수는 필자와의 대담에서 30층 규모의 수직형 빌딩 농장을 지으면 5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하였다. 최첨단 과학과 기술로 만들어진 식물공장은 열대 사막이나 바다, 우주에 설치할 수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첨단 수출상품이 될 수 있고 미래의 먹거리가 될 수 있다. 농촌의 인구 문제는 비농업 분야나 도시와 공생 관점으로 풀어야 지속 가능하다. 국민의 '공생 공간'인 농촌의 인구 감소 문제는 도시와의 상생 협력으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권영진 대구시장이 상생을 추진하고 있다.인구 소멸 방지부터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를 기대한다. '대구와 경북은 하나'라는 '대경불이'(大慶不二) 자세로 상생하고 협력해야 한다. 국가적 과제인 인구 소멸 방지 대책을 성공시키면 대구경북은 우리나라를 주도하는 중심 세력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김재수 경북대 초빙교수(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2019-05-01 13:2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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