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장정옥 소설가

[매일춘추] 연꽃이 필 즈음에

창녕 수생식물원과 수목원에 빅토리아연이 피었더라고, 사진작가 친구가 일러주었다. 꽃 중의 여왕으로 찬사를 받는 빅토리아연의 생멸 과정을 보기 위해 수목원으로 갔다. 빅토리아연은 흰 봉우리가 열리고 왕관을 쓴 채로 스러지기까지 사흘 안에 생멸 과정을 다 한다.사진작가들이 수목원 연지를 둘러싸고 있었다. 모기 때문에 일찍 자리를 뜨지 않기 위해 긴 셔츠와 긴 바지를 입었다. 등으로 땀이 흘렀다. 사람이 올라앉아도 끄떡없을 정도로 크고 단단한 잎사귀 십여 장이 물에 떠 있고, 뜨거운 해를 받으며 연꽃 두 송이가 피어 있다. 열 송이 스무 송이도 아닌 달랑 한 송이, 인심 쓰듯이 그 옆에 또 한 송이. 그 두 송이의 꽃이 사진작가 삼십여 명을 불러 모았다. 빅토리아 연꽃 피어 있는 곳이 수목원뿐이랴. 지난 밤에 생을 마감한 꽃은 생을 다하고도 여전히 붉기만 한데.새벽에 흰색이었던 꽃이 분홍빛으로 변하다 오후부터 초벌 꽃잎을 벗기 시작했다. 연이 꽃잎을 한 겹 열고 나머지 한 겹마저 열고 있을 때 연지에 꽃의 몸 내음인 듯 향기가 가득 서렸다. 단단히 오므리고 있던 꽃잎이 손으로 젖힌 듯 발딱 일어서며 천천히 뒤로 젖혀지는 모양을 슬로우 비디오를 보듯이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긴 오후가 지나고 어둠이 덮일 즈음 대관식이 가속화되었다. 한 장씩 벗겨진 꽃잎이 꽃받침인 듯 몸을 눕히자 가운데서 꽃술이 올라왔다. 소복하게 자란 꽃술 끝부분이 살짝 젖혀지고 왕관모양이 되며 절정을 이루었다. 서른 명 넘는 사람이 연지를 둘러싸고 있지만 비어 있는 듯 조용했다. 카메라는 꽃이 변하는 매순간을 잡아채어 자동접사로 저장하고, 여왕은 왕관을 쓴 채로 우아하게 스러진다.단 하루 만에 최고의 순간을 누리고 미련 없이 생을 접는 꽃, 빅토리아연은 겸손과 절제를 아는 꽃이었다. 여느 연과 달리 푸른 잎사귀는 최대한 몸을 낮춰 수면에 납작하게 깔려 있고, 물 위로 얼굴만 살짝 내민 꽃은 그 낮음으로 하여 바라보는 사람들을 고개 숙이게 만든다. 사진작가들이 빅토리아 연의 생멸을 두고 단순히 연꽃이 핀다고 하지 않고, 여왕의 대관식이 열린다고 호들갑을 떠는 이유에 공감했다. 그 찬란한 지존의 아름다움을 꽃의 자존심이라고 해야 할까. 빅토리아 연이 하루 이틀 사흘이 아니라 열흘 보름 끄떡없이 피어 있어도 그렇게 여왕이라는 찬사를 보내며 환호할까. 여름 끝자락의 후덥지근한 더위에 온몸이 땀에 젖고 모기가 극성을 부려 연신 긁어대면서도 차마 발길을 돌리기 어려웠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저물고 만 것이 아쉬웠던지, 스러진 꽃 옆에 어느새 흰 봉우리 하나가 솟아오르고 있어서 내일을 예약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꽃 또한 내일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생생하게 보여줄 터여서. 장정옥 소설가

2019-08-29 11:08:20

김광묵 대구시 산단진흥과장

[기고]성서산업단지가 나아가야 할 길

대구 성서산업단지(이하 성서산단)는 1988년 1차 단지 준공 이후 지역경제 발전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2017년 기준 성서산단의 총생산액은 16조4천375억원으로 대구 산단 입주기업 전체의 총생산액 28조1천645억원의 58%를 차지했다.전체 면적 1천267만㎡로 국내 최대 규모의 일반산단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혁신성장의 원천인 제조업을 집적화해 우리나라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그러나 올 3월 말 기준 성서산단의 가동률은 69.53%로 전 분기 대비 0.7%포인트(p) 하락했다. 6월에는 0.06%p 더 하락해 69.47%에 머물렀다. 성서산단은 경제적 파급효과가 크고, 지역경제 상황을 가늠하는 바로미터인 만큼 파장이 크다.반면 테크노폴리스나 대구국가산단 등 대구시가 최근 조성한 신규 산단의 경우 가동률이 77.7% 등으로 상대적으로 높고, 생산과 고용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정부는 4차 산업혁명과 환경규제 강화, 무역질서 재편, 최저임금 인상 및 근로시간 단축 등 대내외 경제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주력산업의 활력이 떨어지고 신산업 창출이 지연되는 등 한계에 달했다고 우려한다.조성된 지 30년 이상이 지난 성서산단도 생산설비 노후화에 따른 생산성 저하, 도로·주차장 등 기반시설 부족, 열악한 근로환경 등으로 점차 청년들의 외면을 받는 상황이다.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대구시는 산단 재생, 혁신 및 구조고도화 사업 등을 통해 인프라를 개선하고 창업공간 제공 및 근로환경 개선 등에 많은 노력을 해왔다.성서 1·2차 산단의 경우 올 연말까지 재생시행계획 수립과 설계를 끝내고 편입부지 보상 및 기반시설 공사에 착수, 2022년 말까지 493억원을 투입해 재생사업을 완료할 계획이다.지식산업센터 및 복합시설을 민간자력으로 개발하는 구조고도화사업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휴·폐업 공장을 개보수해 창업 기업 등에게 저렴하게 임대하고, 일부 공간은 산단에 활력을 불어넣을 다양한 공간으로 활용하는 사업도 추진할 계획이다.더불어 대구시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주관하는 스마트 선도 산단 조성사업에 참여하고자 노력 중이다. 지난 5월부터 대구테크노파크와 공동으로 성서산단 스마트 선도 산단 조성 계획도 수립하고 있다.스마트 선도 산단은 기존 노후 산단을 '제조혁신' '근로자 친화공간' '미래형 산단'으로 바꾸는 게 목표다. 데이터와 자원의 연결, 공유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환경적으로도 주변 지역과 공존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미래형 산단으로 만드는 것이다.현재 시행 중인 노후 산단 재생사업과 구조고도화사업의 토대 위에 스마트 선도 산단 조성사업이 추가된다면 노후 산단이 신산업 창출과 제조업 혁신의 전진기지로 대전환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스마트 선도 산단은 기존 산단을 스마트·친환경·융복합 혁신 테스트베드로 조성, 기업과 관련 지원시설이 집적된 제조혁신 클러스터로 조성된다. 이를 통해 창업과 혁신역량, 편의·복지시설 부족 등으로 외면받던 노후 산단을 청년이 다시 찾는 희망 산단으로 바꾸게 된다.대구에는 조성된 지 20년이 넘어 성숙 단계에 접어든 국가산단이 없다. 대구 국가산단은 1단계 구역 592만㎡가 2016년에야 준공됐을 정도로 신생 산단에 속한다.따라서 일반산단이지만 규모나 경제적 역할 면에서 국가산단에 버금가는 성서산단에 지역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각종 정부 시책들이 우선 적용될 필요가 있다.

2019-08-29 10:27:13

정철원 극단 한울림 대표

[매일춘추]시의 상상력으로

나는 흔히 사람들이 일컫는 연극쟁이다. 그것도 현장성을 매우 중요시 하는 현장예술인이다. 이 말인 즉, 감성과 이성 그리고 충동의 본질을 행동하고 표현하여 그것으로 인해 관객과의 소통을 바로 그 순간의 찰나를 통하여 교감하고 짜릿함을 느끼며 내가 비로서 무엇을 하고 있다고 느끼는 쟁이인 것이다.이러한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굉장히 이성적이면서도 지적인 면을 갖추면서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도 있으며 자기 스스로의 본능과 감정 그리고 자기의 억압욕구를 자아세계에 맞춰 비논리적으로 표현하는 이들도 있다. 전자는 이론적 무장으로 인하여 굉장히 논리적이나 약간의 딱딱함을 주며 후자는 감성적이고 창의성은 있으나 자아도취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나는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며 전자에 대해 약간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어 그것에 대한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많은 노력들을 한다.그러나 작금에 들어서는 이성적이든 논리적이든 본능적이든 감성적이든 간에 예술에 있어서는 '재미 있는' 것이 최고의 화두가 되고 있으며 재미나게 표현할줄 알아야지만 살아남는 시대가 된듯하다. 그래서 많은 쟁이들이 자기의 유형을 버리고 너도 나도 재미를 쫒다보니 각자의 색깔이 없어지고 일률적이며 보편적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그런데 '시' 라는 존재는 이러한 경향이 완전히 무시되는 그야말로 인간에 의한 자연의 예술물인것 같다. 왜냐하면 시는 느끼는 대로 말하고 인식되는 대로 표현하며 깨닫는 대로 충만해진다. 이 과정들 속에서 어느 한가지만 '의미'를 가지더라도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만족하고 흥얼거리며 묘한 자기 만족감을 준다. 시는 압축적이며 무한하여 모든 것을 만들게 해준다. 아름다운 시 한편은 미술로도 음악으로도 연극으로도 탄생될수 있다. 또 역으로 모든 예술장르를 한편의 시로 변화시킬 수도 있다. 그만큼 시는 우리에게 다양성을 준다. 바로 각기 다른 자기만의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어느날 누구나 다 알고 있는 한편의 시를 흥얼 거렸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그리고 다시 이렇게 해 보았다. "난 네가 정말 좋은데 넌 내가 그렇게 싫어 한번 말해봐! 말해보라구! 왜 말이없지. 그래 이제와서 내가 역겹다 이거지. 날 사랑한다 말할 땐 언제고 다른 여자라도 생긴거야! 이 비열한 자식 가! 가버려! 너같은 자식 두 번다시 보기싫어 다시는 내곁에 있어 달라고 말하지도 않을거야. 어서 가버려!"시의 풍부한 상상력으로 자기 나름대로의 감정으로 느끼고 표현하고 말할 수 있는 다양성을 연극하는 나에게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수 있는 해법이 될지도 모르겠다. 정철원 극단 한울림 대표

2019-08-29 10:24:34

종이에 먹, 167×266㎝, 대전 이응노미술관 소장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이응노(1904~1989) '군상'

미술관에 걸어도 큰 그림인데 이렇게 작게 보여드리자니 민망하지만 이 작품이 가장 마음을 끌었다. 화면 가득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역동적인 인간상을 그렸다. 사람인 것은 분명하지만 성별도 노소도 미추도 구별되지 않는 인간의 모습일 뿐이다. 이 동작은 춤이다. 몸짓으로 이루어지는 춤은 인류가 원시인일 때부터 향유한 예술일 것이다. 이들은 팔다리를 격렬하게 움직여 춤을 추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서기 2019년인 지금 지구에 약 77억 명이 살고 있다고 하는데 이 그림에 2천명은 그린 것 같다.'군상'(群像, people)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서로 다른 동작이 모여 이룬 군무이다. 집단지성의 현장 행동 광경인 것이다. 몸집도 비슷하게 그려진 이들은 서로 동등한 익명의 개성이다. 국적 불명, 시공 불명의 감각 즉 보편성의 층위를 매체의 국지성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서 느끼는 것은 이응노가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살며 작업했다는 이유도 있는 것 같다.수천의 군중이 출현하는 군상 시리즈는 1980년대에 나타나는데 그가 자신의 예술을 6기로 나눈 중 마지막인 '서예적 추상' 시대에 속한다. '군상'의 메시지를 우리나라 사람들은 198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에서 오일팔광주민주화운동이나 학생과 시민의 데모를 연상하고, 유럽 사람들은 반핵운동으로 보았지만 이응노는 양쪽 모두 자신의 심정을 잘 파악해 준 것이라고 했다. 20대부터 평생을 지치지 않고, 손을 쉬지 않으며 왕성하게 창작력을 발휘해 온 그는 80대의 나이에 민족과 민중이 생동하는 이런 꼭지 점을 이루었다. 붓이 움직이는 찰나의 순간 검은 먹이 흰 종이에 스며든 획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리퀴드 드로잉(liquid drawing)이라고 할 수 있는 수묵화 형식이어서 더욱 강력한 울림을 주는 '군상'은 지필묵이라는 매체의 전달력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모필 붓에 먹을 찍어 종이에 그리는 것은 그가 회화를 배운 처음의 방식이며 마지막에도 진행한 방식이다. 충남 홍성 출신인 이응노는 화가가 되고 싶어 1923년 19살 때 상경하여 해강 김규진의 문하에서 대나무 그림을 배우며 죽사(竹史)로 호를 받았다. 이듬해 조선미술전람회에 '묵죽'으로 입선했고, 1935년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에서 살며 미술 공부와 작품 활동을 하다 광복 후 돌아왔다. 1954년 국전의 짬짜미를 고발하며 추천작가 추대를 거절했던 그는 1958년 12월 한국을 떠나 프랑스로 갔다. 자신의 예술을 넓은 곳에서 높게 펼치고 싶었을 것이다. 고암(顧菴)이라는 이응노의 호는 중국의 화성(畵聖) 고개지에서 딴 것인데, 고암은 파리에 살며 그의 호처럼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미술사 연구자

2019-08-29 10:14:46

격추된 독일 항공기로 만든 승리의 종

[이재태의 세상속의 종소리] 격추된 독일 전투기로 만든 승리의 종

제2차 세계대전은 합계 5천500만 명의 민간인과 군인이 희생된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이었다. 독일은 개전 직후인 1940년 6월 프랑스의 항복을 받으며 유럽 대륙을 점령한다.동서 두 개의 전선을 마주했던 히틀러는 영국에 "제국 유지를 보장할 테니 독일의 유럽 지배도 인정하라"며 타협하려 한다. 처칠이 이를 일축하자 히틀러는 7월 영국 상륙전을 준비하며 영국 공군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두 나라의 공군은 잉글랜드 남부 바다 위에서 필사적으로 격돌했다.그러나 독일은 훈련된 영국 공군과 잘 정비된 연안 레이더망을 극복하지 못했다. 조급해진 히틀러는 런던 등 도시에 대한 무차별 폭격을 명령한다. 영국과 독일은 각각 1천963대와 2천550대의 항공기를 투입하였다. 1940년 여름 3개월간의 공중전에서 영국은 승무원 500여 명과 항공기 1천500여 대를, 독일은 2천500여 명과 1천900여 대를 잃었다. 결국 영국이 승리하며 독일군의 본토 상륙을 좌절시켰고, 1년 뒤 미국이 참전할 때까지의 시간도 벌었다. 이는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과 독일의 항복으로 이어진다. 연합국이 승기를 잡은 1944년, 영국은 자국 하늘에서 격추된 독일 전투기 잔해를 용해해 2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축하하는 '승리의 종'을 만들었다. 손잡이에는 승리를 뜻하는 'V'(victory), 몸체에는 얄타회담에 참석한 연합 3국의 지도자 처칠, 루스벨트와 스탈린의 얼굴을 조각하였다. 그리고 영국 공군 전상자와 그 가족들을 후원하는 기금을 위하여 이 종을 제작하였다고 새겼다. 둔탁한 두랄루민 종에는 오랫동안 공습을 피해 방공호를 전전하던 런던 시민들의 환호와 기쁨의 눈물이 함께 묻어 있다.매년 광복의 달 8월이 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묵직한 종소리이다.경북대 의대 교수

2019-08-28 18:30:00

영남중 교사

[김태훈의 대구 옛 이야기] 수운 최제우

수운 최제우(1824~1864)는 경주 출신으로 동학을 창시했던 인물이었다. 조선 사회의 부조리와 부정부패로 인해 백성들의 생활이 도탄에 빠진 것을 목격한 최제우는 비참한 현실을 극복하고자 경주로 돌아와 용담정(龍潭亭)에서 다양한 학문과 사상을 절차탁마하고 득도를 위한 명상과 수양을 이어나갔다. 결국 최제우는 1860년 5월 25일 무아지경 속에서 한울님의 말씀을 전해 듣고 동학을 창도하기에 이르렀다.최제우는 서학에 대해, 개인의 구원만을 빌며 부모 형제의 제사를 지내려 하지 않고 서양 세력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종교라고 비판하였다. 또한 최제우는 시천주(侍天主) 사상을 제시하였는데, 사람은 신분고하·남녀노소·빈부격차를 막론하고 누구나 마음속에 한울님을 모신다고 주장하며 평등사상을 내세웠다.최제우는 인류 역사를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으로 구분하였는데, 조선 말기인 현재를 '선천'으로 규정하여 곧 종말할 것이고 동학이 등장한 지금을 '후천'으로 여겨 새로운 희망의 시대가 비로소 개벽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끝으로 최제우는 각자가 동학에 귀의하여 수양을 철저히 실천하면 모두가 '지상신선'(地上神仙)과 '지상군자'(地上君子)가 되어 지상천국을 건설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조선의 지배층은 양반중심사회를 부정한 동학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이를 탄압하고자 최제우를 체포하여 '혹세무민'(惑世誣民)이라는 이유로 1864년 4월 15일 대구 관덕당에서 참형하였다. 대구에는 달성공원에 우뚝 솟은 최제우 동상, 현대백화점 앞에 세워진 동학교조 수운 최제우 순도비, 종로초등학교 안에 자리 잡은 최제우 나무를 통해 최제우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최제우의 동학은 근대화의 척도인 평등사상을 내포하였고, '개 같은 왜적놈'이라는 표현에서 훗날 2차 동학농민운동에 영향을 끼쳤으며, 3대 교주 손병희에 의해 천도교로 변경한 후에 천도구국단을 결성하고 3·1운동과 6·10만세운동을 추진하는 데 사상적 토대를 마련하였다.영남중 교사

2019-08-28 18:00:00

준비하는 미래 대표

[시대산책]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10일과 16일 '북한판 에이태킴스'로 불리는 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했고, 며칠 전인 24일에도 동해상으로 '초대형 방사포'로 명명한 단거리 발사체 2발을 발사하는 등 이달 들어서만 5번 미사일에 준하는 발사체 시험 발사를 했다.미국 미들베리연구소 제임스 마틴 비확산연구센터의 셰어 코튼 선임연구원은 1984년부터 올 8월 9일까지 지난 36년 동안 북한이 총 128차례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으며, 이 중 75%인 97차례는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이뤄졌다고 분석했다. 그 후 3차례 더 발사했으니 김정은 시대에 100회를 채운 셈이다.그와 동시에 29일 남측의 국회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를 개최한다. 최고인민회의는 보통 1년에 한 번 열리는데 연 2회 개최하는 것은 5년 만이다.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에서는 헌법 개정을 통해 국무위원장인 김정은을 확실한 공식적 국가 수반으로 명시했고 경제 관리에서 내각의 역할을 강조하고 경제주체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내용의 '국가의 경제관리 방법'을 공표했으며 대외적으로 '통미봉남'의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다.김정은이 문재인 정부를 향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하지 말라"고 말한 것도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서다. 이번 최고인민회의의 주제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경제자율화를 더욱 확대하고 구체화하며 기존의 대외정책을 더욱 자신감 있는 태도로 밀어붙이는 모습을 연출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북한은 상반된 세 가지 모습 즉, 첫째 미사일의 개발과 성능 개선에 광적으로 매달리는 모습, 둘째 경제자율화를 중심으로 경제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 셋째 한국 정부를 적대시하고 공격적인 언사를 멈추지 않는 모습 등을 동시에 보여 우리를 무척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북한의 미사일이 무조건 방어 용도라고 주장하는 일부 논자들이 있는데 이는 지나친 주장이다. 미사일은 공격 용도로도 방어 용도로도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명확한 일이다. 문제는 북한의 종합적인 국력이나 종합적인 군사력이 공격적인 전쟁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냐 하는 것이다.북한은 1960년대 후반부터 지난 50여 년간 정상적인 국가 발전을 해오지 못했고 한국은 그 기간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발전을 지속했다. 북한은 한때는 한반도 전체의 적화를 위해, 또 그 뒤에는 생존을 위해 GDP 대비 군사비는 한국의 10배, 인구 대비 병력은 한국의 4배를 두는 등 거의 일반 국가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극한적인 군사국가를 유지하고 있지만 종합 국력에서의 엄청난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이 군사력의 격차를 메우기 위해 전형적인 비대칭 전력인 핵과 미사일에 집중해온 것이다. 충분한 수의 핵무기와 정교하고 레이더에 잘 잡히지 않는 미사일만 있다면 국방 예산과 병력을 정상국가처럼 줄인다고 하더라도 안보상의 큰 위험 없이 경제 발전에 매진할 수 있다.핵과 미사일로 국가 방위를 추구한다는 것은 한국 입장에서도 용납할 수 없고 미국을 포함하여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은 북한을 침공할 생각이 없으니 안심하고 핵을 포기하라'고 해서 이를 믿을 북한이 아니며 '미군이 북한에 들어가서 북한을 지켜줄 테니 핵을 포기하라'고 할 수도 없고 'F35 스텔스기 100대를 공짜로 줄 테니 핵을 포기하라'고 할 수도 없다.북한을 다른 길로 인도할 유인책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이 경제개발에 관심이 큰 만큼 현재와 같은 고강도 제재를 지속한다면 핵무기를 포기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북한이 이렇게 단순한 집단이었다면 그동안 걱정거리도 없었을 것이다.지난 70여 년 동안 북한이 보인 모습을 고려한다면 그런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런 모든 것을 고려해본다면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전략을 포기할 가능성은 1%도 되지 않는다고 본다.우리가 북한의 핵무기를 포기시키기 위한 노력을 완전히 포기할 단계는 아니지만 핵을 가진 북한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집중적으로 고민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2019-08-28 18:00:00

[종교칼럼] 꼰대 탈출기

요즘 젊은 세대에서 꼰대란 말을 빈번하게 사용한다. 그 말을 들으면 새삼 옛 생각이 난다. 우리 세대가 젊은 시절 비속어로 사용하다가 한동안 사라졌던 어휘이기 때문이다. 나는 입으로 그 말을 소리내어 말한 기억이 없다. 선생님, 부모님 등 세대를 비하하는 말이라 입에 담기가 거북했다.그런 말이 한 세대를 지나 되살아났다. 그리고 과거보다 더 자주 쓰이고 있다. 드문 현상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에는 수직적 위계질서에 순응적이었다면 현재는 모든 것이 수평적 질서이므로 현재 20, 30대가 상명하복의 문화에 느끼는 반감은 훨씬 더 클 것이다. '세대 차이'나 '세대 갈등'이란 점잖은 표현을 마다하고 젊은 세대는 '꼰대질'이라 표현한다.최근 임홍택 저 '90년생이 온다'를 읽었다. 1990년대생의 언어 생활부터 소비 성향, 가치관까지 세상을 주도하는 90년대생을 파헤치는 책이었다. 이 책에는 두 초점이 있다. 한 초점은 '90년대생'이고 다른 초점은 '꼰대'이다.기성세대는 90년대생을 낯선 세대로 본다. 반대로 90년대생 입장에서 본 세상은 얼마나 힘들까? 달리 표현하면 기성세대가 90년대생에게 얼마나 꼰대질하기 쉬운지를 말하고, 90년대생이 그 꼰대질을 얼마나 힘들어하는지를 설명하고 있었다.요즘 신입사원의 이직률이 전 세대와는 다르게 급상승했다. 소위 꿈의 직장, 고연봉의 대기업에 입사하고도 1년 내, 3년 내에 퇴사를 한다. 그리고 공무원 시험에 매달린다. 공무원 준비에 그렇게 몰두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회사 상관들의 꼰대질을 견디기 어려워서라고 한다.90년대생의 꿈의 직업은 공무원이다. 9급 공무원 시험에 수십만 명이 지원하기 때문에 최종 합격률이 2%가 채 되지 않는다. 가히 90년대생을 '9급 공무원 세대'라 부를 만하다.기성세대는 90년대생을 피상적으로 이해하거나,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세태를 비판하곤 한다. 하지만 그런 태도는 급변하는 세상에서 '꼰대'로 남는 지름길일 뿐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이 책이 기성세대를 위한 꼰대 탈출기임을 알게 되었다.90년대생의 꼰대 세대가 누구인가? 베이비부머인 부모 세대이다. 가정에서는 자기 자녀를 민주시민으로 창조적인 인물로 금이야 옥이야 키우면서, 사회에서는 다음 세대에게 꼰대질을 하는 모순된 행동을 하고 있다. 나 역시 베이비부머이고 90년대생 딸을 두었으니 이 책은 우리 가정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베이비부머인 나도 자칫 꼰대가 될 위험에 처했다. 임홍택의 책에 있는 꼰대 테스트를 해보니 나는 다행히 꼰대는 아니었다. 아마도 평소 20, 30대 젊은 세대의 여론, 취향, 성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이해하고 수용하려 했던 노력의 결과인가 보다. 그래도 다시 한 번 다짐한다. 나의 '탈꼰대선언'이다. 1.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는다. 2.침묵을 습관화한다. 3.자기 자랑을 하지 않는다. 4.꼰대질을 하는 사람과 어울리지 않는다. 5.다음 세대 탓을 하지 않는다. 6.후배들을 칭찬한다.'요즘은 왜 이런가?' 하고 큰소리쳐 보아도 결국은 구시대의 연장이다. 주장하는 내용도 복고풍이다. 한 번 지나간 세월은 돌아오지 않는다. 기성세대는 다음 세대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고 떠나야 한다. 다음 세대는 여전히 우리 노년의 보험이고, 현재와 미래의 주인이다. 세대 간의 화해와 공존의 길을 열자.대구중앙교회대표목사

2019-08-28 13:37:09

최경규 경영학 박사, 스트레스 행복강연가

[광장] 마음을 가진 자는 행복하다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가 세상을 호령한다 하였다.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라 할 수 있다. 고양이를 잡기 위해서는 목을 잡으면 되고, 뱀을 잡기 위해서는 머리를 잡아야 한다. 사람을 얻기 위해서는 목을 잡을 수도 없고 멱살을 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럼 무엇을 잡아야만 하는가? 바로 마음을 잡아야 한다. 신은 인간에게 세상을 보라 눈을 주셨지만, 오직 사람 마음만은 눈에 보이질 않는다. 그러면 누군가의 마음을 보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답은 '오늘 자기 마음을 닦는 일'이라 말하고 싶다.필자가 강연을 하며 강조하는 말이 있다. 바로 "지금을 살아야 한다", "一日一念"이라는 말이다. 하루를 잘 살기 위해서는 지금 마음을 잘 잡아야 한다고 풀이한다. 생각 '염'(念) 자는 참 의미가 있는 한자이다. 지금을 뜻하는 '금'(今)에 '심'(心)이 합쳐져서 지금의 마음을 뜻한다. 바르게 살기 위해서는 오늘을 잘 보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때로는 사람의 눈으로도 다른 이의 마음이 보일 때가 있다. 내일 해야 할 복잡한 생각에 사로잡혀 현재 눈앞의 어떤 것도 보이질 않는 사람, 과거 속에 살고 오늘을 원망하며 어둡게 사는 사람들은 눈에 보인다.오늘을 제대로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맑고 거침이 없다. 사람들과의 만남에 숨김도 과장도 없다. 왜냐하면 지나간 화려했던 과거 이야기를 하며 자신을 포장할 필요도 없고, 미래의 계획으로 잘난 척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그냥 오늘을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은 향기로운 꽃처럼 늘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 들게 마련이다. 사람의 마음을 굳이 알려고 그리고 얻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에게 사람들은 마치 마음의 문을 지키는 병사가 스스로 무장해제하는 것처럼 타인들도 편하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바닥만 보아서는 앞도 옆도 뒤도 볼 수 없다. 그래서 바닥"이라 했던 김별아 작가의 말처럼 과거라는 울타리에 갇혀 사는 사람은 바닥만 보는 사람들과 같다. 날아오는 삶의 기쁨도 바닥만 보아서는 잡을 수 없다. 과학의 발전으로 신선초가 홈쇼핑에 나오지 않는 이상, 누구나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제한된 시간이란 물리적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고 더 이상 과거 속에서 후회로 오늘을 살지 않았으면 한다.또한 필자의 두 번째 책, '나는 행복을 선택했다'에서 말했듯이 내일만을 꿈꾸는 사람은 오늘의 상처를 돌볼 마음의 여유가 없다. 내일의 행복만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원하는 내일이 된다 하더라도 오늘 자신의 소중한 것이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에 자신하지는 못한다. 즉 10년 노력 끝에 얻은 미래의 행복 앞에 이미 무너진 건강이나 가족 관계는 더 이상 행복일 수 없기 때문이다.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남이 아닌 자신의 오늘을 살아야 한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생각과 말들을 하나하나 곱씹어보고 나 자신을 항상 아기 돌보듯 사랑해 주어야 한다. 오늘의 내가 존재하지 않고 내일의 나는 절대 존재할 수 없다. 행복도 불행도 타인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자신의 생에 행복하고 불행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기 때문이다.

2019-08-28 11:57:39

김정하 공연예술학 박사

[매일춘추] 예술강사의 힘

학교 공교육 안에서 예술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예술강사 지원사업에 의해 가능해졌다. 예술강사라면 보통 예술장르를 가르치는 사설 학원의 강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예술강사 지원사업은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감수성을 기르고 바른 인성을 갖춘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문화예술 전문 강사(이하 예술강사)를 학교로 파견·지원하는 정책 사업이다.이 사업은 문화예술교육 지원법 및 문화예술·체육교육 활성화를 위한 교육부-문체부 공동협렵의 정부 정책에 의한 사업으로 2006년은 사회적 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되어 2007년은 기획재정부 사회서비스일자리 사업으로 포함되었고, 2011년은 고용노동부의 재정지원 일자리 사업 가이드라인(합동지침)이 마련되면서 체계적 지원을 받게 되었다.예술강사의 근로 신분은 기간제 근로자로 시·도 교육청 및 지방자치단체,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시·도 광역센터 및 국악운영단체, 공모사업에 선정된 민간운영단체에서 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예술강사가 기간제 근로자인 이유는 매년 3월부터 10개월 간 배치 받은 학교에 출강하여 교육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필자는 26일자 매일신문 1면에 '예술강사들, 일자리일몰제에 내몰릴 위기'라는 기사를 접하면서 학교에서 예술이라는 특성의 교육으로 학생들과 교감하고 있는 전국의 5천 500여 명의 예술강사들의 열정과 패기가 가슴 뜨겁게 전해 오는 듯 했다.만약 일자리일몰제로 인해 예술강사 지원사업이 폐지된다면 예술강사들의 일자리 박탈과 더불어 학생들이 더 이상 학교안에서 예술가(예술강사)와 함께한 국악·연극·영화·무용·만화·공예·사진·디자인의 예술교육의 혜택도 빼앗기는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예술강사 지원사업에 의해 학생들은 문화예술교육을 통하여 그들의 창의성이나 적성 등과 같이 기존에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잠재적 소질을 일깨우고 그로 인하여 자신감 혹은 자존감을 가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 및 감수성의 증가, 정규 학교수업에 있어서 태도의 개선, 그리고 학생 상호간의 이해수준 증진과 그를 통한 유대감 증진 등의 경험을 가질 수 있게 된다.학생들의 능동적인 참여와 활동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예술강사의 수업은 지식습득이나 기능의 숙달차원에 한정된 교육적 효과에만 주목하지 않고, 학생들의 정서적 태도의 환기와 각성을 유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과정으로 재편된 예술교육이 아닌 진정한 예술가로부터 생생한 예술적 체험을 접함으로써 학생들의 전인적 성장이 나타날 수 있는 교육이다. 일자리일몰제로 인한 예술강사 지원사업의 폐지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기재부는 다른 일자리 사업과는 다른 예술강사의 지원사업이 우리 사회에서 교육적 역할과 공교육안에서 많은 학생들이 얻고 있는 효과성에 더 집중해야 할 것이다. 김정하 공연예술학 박사

2019-08-28 11:33:56

박진웅 주칭다오 총영사

[기고]유학으로 한·산둥성 교류 증진 이끌자

역사적으로 19세기 중엽 이래 서양 문물이 유입되던 창구가 광둥이었다면, 한국과의 교류는 전통적으로 산둥이었다. 산둥 지역은 공자와 맹자의 고향이자, 유학의 발상지로 유학이 문화의 중심을 이루고 있어 산둥성을 문화대성이라 부르고 있다.한·산둥성 간 교류의 역사는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진시황제의 명을 받은 서복이 3천여 명의 아이와 성인 남녀를 데리고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산둥반도를 출발, 제주도로 향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통일신라시대에는 산둥반도에 신라방이 형성될 정도로 교류가 매우 활발했다. 당시 신라 장수 장보고는 신라방에 신라 사찰인 적산법화원을 설립하였으며, 현재 산둥성 웨이하이시에 소재하고 있다.원(元), 명(明) 시기에는 한국과 중국이 서로 자주 왕래하였으며, 정몽주는 여섯 차례 명나라로 가는 길에 세 차례나 산둥반도를 통해 명나라 수도 난징을 방문하였다.근대에는 산둥성에서 시작된 의화단 운동으로 산둥성 일대가 전란에 휘말리게 되자, 산둥성 주민들이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국으로 대거 이주를 하였으며, 인천으로 유입된 중국인들이 한국 거주 화교의 시초가 되었다. 한국 화교의 70% 이상이 산둥성 출신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립운동 시기에는 안창호 선생이 중심이 된 신민회와 독립지사들이 산둥성 칭다오에 모여 칭다오회의를 개최하였고, 광복 후 한인들의 무사 귀국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화북구한교선무단칭다오분단을 설치, 운영하였다.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부터 1992년 수교 이전까지 양국 교류는 중단되거나 단절되었다. 하지만, 수교 이전인 1989년 중국 최초로 칭다오에 토프톤전자가 진출하였으며, 1990년부터는 웨이하이-인천 간 골든브릿지호가 운항을 시작하였다. 수교 이후 우리 기업이 가장 많이 진출한 지역도 산둥성으로, 2006년에는 1만여 개가 진출하고, 재외국민도 10만여 명까지 늘어나 전성기를 이루었다.최근에는 중국이 제조업에서 신산업으로 전환을 추진하면서 우리 기업이 동남아 등지로 이전하여 현재 기업은 4천여 개, 재외국민은 6만여 명으로 감소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6년 사드 문제는 한·산둥성 교류를 더욱 위축되게 하였다. 반면, 한중 관계의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고 한·산둥성 교류를 지속적으로 이어온 것은 유학을 통한 교류이다.한중 수교 이후, 2008년 양국 관계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되었으며, 2013년 양국 정상은 동 관계의 내실화를 위해 인문 교류 강화에 합의하였다. 한·산둥성은 인문 교류 강화를 위해 2014년부터 매년 한중유학교류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2018년 5회까지는 산둥성에서 개최되었으나, 금년 6회 대회는 한국 유학의 성지로 일컬어지는 안동에서 11월 중 개최 예정이다. 안동은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9개 서원 중 2개 서원이 있는 문화도시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기념하여 1회 서원포럼도 개최할 예정이다. 2016년 사드 문제로 한중 관계가 악화되어 한·산둥성 교류가 중단되거나 위축되었을 때에도 유학 교류는 지속되었다. 그만큼 한·산둥성은 유학에 뿌리를 둔 유대 관계는 매우 깊다고 볼 수 있다.앞으로 한·산둥성 교류가 유학을 매개로 한 지방정부 간 청소년,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교류로 확대해 나간다면, 향후 양국 관계에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한·산둥성 교류는 변함없이 지속적으로 이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2019-08-28 11:24:06

민경석 대구시수돗물평가위원회 위원장

[새론새평]낙동강 미량유해물질로부터 안전한가?

낙동강 의존도가 높은 부산과 대구는 근본적으로 수돗물 불신 문제를 갖고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우선 양질의 상수원 확보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낙동강은 상수원으로 매우 중요하지만, 상수원의 역할을 넘어 수생태 건강성 확보 또한 중요하다.낙동강의 물환경 문제는 크게 2가지로 유해화학물질과 녹조이다. 산업폐수로부터 배출하는 미량유해화학물질, 의약품 폐기와 수온 상승, 강수량 부족 등으로 발생하는 녹조와 이로 인한 독성물질 및 맛·냄새 문제이다.낙동강의 유해물질 주요 사고는 1991년 페놀오염사태, 2004년 수돗물에서 다이옥산 검출, 2006년 낙동강 원수와 수돗물에서 퍼클로레이트 검출, 2009년 구미공단의 화섬업체에서 다이옥산 가이드라인 초과 배출, 2018년 구미공단 내 반도체 업체 등에서 배출한 과불화화합물 사고 등으로, 규제 대상이 아닌 미지의 유해물질로 인한 수질오염 사고이다. 정부는 유해물질 사고 발생 후, 페놀과 1,4-다이옥산은 특정수질유해물질로, 퍼클로레이트는 수질오염물질로, 과불화화합물은 감시물질로 추가 지정하는 등 사후대책으로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환경부 자료에 의하면, 현재 사용 중인 화학물질은 약 10만 종이고, 유통하는 화학물질은 약 4만여 종이며, 매년 약 400여 종 이상의 신규 화학물질을 개발·유통하고 있다. 산업 발전 및 고도화에 따라 화학물질 사용량은 증가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규제관리체계는 한계를 보이고 있으며, 미규제 유해물질 관리는 사각지대에 놓이고 있는 실정이다. 수질오염물질 중에서 발암성 등을 기준으로 특정수질유해물질을 지정하고 배출허용기준을 설정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2004년 17종에서 2017년 32종으로 확대하였으나, 추가 지정이 필요하다. 낙동강 수계는 상류부터 하류까지 약 60여 곳의 산업단지가 위치하고 있어, 수질유해물질에 노출되어 있으며, 특히 특정수질유해물질 발생량은 전국의 약 35%를 차지하고 있다.환경부는 화학물질의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을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다. 화평법은 2011년 가습기살균제 사태를 계기로 2013년 5월에 제정하여 2015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신규 화학물질 또는 연간 1t 이상 제조·수입하는 기존 화학물질에 대해 유해성 심사를 의무화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화학물질의 등록, 화학물질 및 유해화학물질 함유 제품의 유해성 심사 및 평가, 유해화학물질 지정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를 생산·활용함으로써 국민 건강 및 환경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화관법은 2012년 구미불산 사고를 계기로 2013년 6월에 제정하여 화평법과 같이 2015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화관법은 화학물질의 체계적인 관리를 목적으로 유해화학물질의 취급기준을 강화하는 법률이다. 과거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이 유독물 취급 영업자 중심의 관리였다면, 화관법은 유해화학물질 관리, 유해화학물질 취급시설 관리, 유해화학물질영업자 및 취급자 관리 등을 포괄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주요 내용은 화학물질 통계조사 및 정보공개, 유해화학물질의 취급기준, 취급시설의 설치 및 운영, 화학사고 대비 및 대응 등으로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화평법은 화학물질의 유해성 심사 및 입증에 대한 책임이 기업에 있어 등록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과 비용이 과다하며, 수출제품의 화학물질 조성은 영업비밀로 유출 가능성에 대한 우려 등의 문제점이 있다. 최근 일본의 반도체 주요 소재인 불화수소의 수출규제로 국민적 우려가 큰데, 첨단소재인 화학물질의 개발에 제한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화관법은 강력한 입지규제로 인한 부지 활용의 어려움, 설비 보완 및 교체 비용 과다, 전문인력 확보 등의 문제점을 갖고 있다. 화평법과 화관법은 화학물질의 체계적인 관리를 위한 법이므로 제기하고 있는 문제점을 보완하여 적극 시행할 필요가 있다.낙동강은 새로운 미량유해화학물질로부터 안전성 확보, 쾌적한 친수환경 창출 및 수생태계 건강성 회복을 위해, 유해물질 유출 사전예방대책이 절실하다. 유해물질은 공공하·폐수처리장에서는 처리할 수 없으므로 배출원에서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 산업체의 자발적인 유해물질 배출저감을 유도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강화하거나 또는 보완하여야 한다.

2019-08-28 10:23:19

이장우 경북대 교수

[경제 칼럼] 아시아 뮤지컬 메카로서 DIMF의 도전은 계속돼야 한다

'글로벌 뮤지컬 축제'를 표방하는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은 잘나가는 국제행사에 머물러선 안 된다. 음악의 힘을 통해 다가올 미래를 이끌어야 하는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DIMF는 모든 것이 연결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다양한 분야들을 융합하는 핵심 콘텐츠가 될 수 있다.DIMF는 13번째를 맞아 지난 6월, 7월에 걸쳐 18일간 뮤지컬 작품 23개를 98회 공연으로 이어갔고 다양한 부대행사를 도심 곳곳에서 개최했다. 이를 통해 총 26만여 명이 DIMF를 즐긴 것으로 공식집계 됐다.그러나 DIMF가 "지금까지 뮤지컬 대중화, 활성화에 앞장서며 대구를 '뮤지컬 도시'로 브랜딩해왔고 아시아 뮤지컬 메카(Mecca)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자화자찬하기에는 갈 길이 너무 멀다. 그럼에도 DIMF가 시도한 새로운 도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첫째, 관광과 연계한 지역경제 활성화 노력이다. 국내 최대 여행사이트 '인터파크 투어'와의 협력을 통해 '올여름 대구로 가자!'라는 테마의 DIMF 기획전을 운영했다. 대구시티투어와 연계한 티켓패키지 신설, 한국관광공사 후원으로 진행된 외국인 투어 및 기념품 제공 등으로 관광객 유치를 시도했다.둘째, 모바일 마케팅을 통한 청년과 수도권 수요층 확대 전략이다. 특히 가수이자 뮤지컬배우로 활약하는 글로벌 스타 '수호'(EXO)를 홍보대사로 위촉, 인지도를 끌어올림과 동시에 적극적인 SNS 마케팅으로 전년 대비 키워드 검색량이 4배 이상 증가했다.셋째, 프로듀서와 전문가 등 핵심인사 교류 및 마케팅 기능 확대로, 소위 축제의 '인텔리전스'(Intelligence) 기능 강화이다. 올해는 중국, 대만, 홍콩,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문화예술 관계자들이 대거 참가해 DIMF 기간 동안 다양한 프로그램을 직접 참관했다. 특히 미국 뉴욕, 슬로바키아 등에서 온 해외 뮤지컬 관계자가 대구의 뮤지컬 열기를 확인하고 벤치마킹하는 등 글로벌 축제로서 DIMF에 대한 관심도를 높였다.넷째, 문화와 산업 연계를 통해 신(新)성장동력 마련에 첫발을 내디뎠다. 국내 최초로 문화와 기술이 융합하는 청년문화 창업페스티벌인 '드림메이커스 어워즈'를 개최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또한 국내 한류 문화산업 성장을 주도하고 DIMF 설립에도 영향을 미쳤던 '한국문화산업포럼'이 15년 만에 DIMF 기간 중 개최돼 문화와 관광을 연계한 문화관광산업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를 했다. 이런 시도는 한류 발신지와의 접목을 통해 세계문화산업포럼 같은 행사를 대구가 주도함으로써 중앙에 치우친 문화산업의 균형을 이룰 기대를 갖게 한다.하지만 산적한 과제가 아직 많다. 첫째, 뮤지컬전용극장 건립이다. DIMF는 타 도시에 비해 잘 갖춰진 공연장 인프라를 바탕으로 올해 11개 공연장에서 진행했다. 하지만 뮤지컬 공연에 적합한 환경을 갖춘 공연장은 턱없이 부족하다. '전용극장 없는 세계적인 뮤지컬 도시'가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둘째, 역시 공간 문제다. 뮤지컬 인재 발굴·육성을 위해 전액 무료인 뮤지컬 전문 교육프로그램 'DIMF뮤지컬아카데미', 국내 최대 글로벌 청소년 뮤지컬 오디션 'DIMF 뮤지컬스타' 등이 해를 거듭할수록 주목받고 사업이 확장되고 있지만 이를 수용할 공간이 부족해 매년 어려움을 겪고 있다.셋째, 글로벌 축제로서 위상이 높아지면서 참가를 희망하는 외국 공연단체의 러브콜이 잇따르지만 이를 충족시키기에 역부족이다. 한정된 예산에 맞춰 운영할 수밖에 없는 현실과 DIMF에 대한 높아진 기대감 사이에 간격은 점점 더 커지는 것 같다.지금껏 DIMF가 맺어온 결실과 성과를 기반으로 한 단계 도약하기엔 인프라와 예산 측면에서 크게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인프라 핑계' '예산 타령'만 할 수는 없다. 발상의 전환과 창의적 지혜로 돌파구를 찾는 혁신적 도전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내년 DIMF가 새로운 도전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둘 수 있기를 기대하며, 이를 통해 대구 문화산업을 이끌고 지역경제 활성화의 동력으로서 빛을 발하기를 소망한다.

2019-08-27 14:08:39

이정호 국악작곡가

[매일춘추] 산조의 멋

국악의 대표적인 민속 기악곡 중에 '산조'라는 음악이 있다. 지난 칼럼에서 무속음악에 뿌리를 둔 '시나위'에 대하여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산조는 이 시나위 같은 민속기악합주곡에서 파생되어 독주악기로 연주되면서 기교가 확대되었고, 거기에 판소리의 진양, 중모리 장단의 선율들과 합해지면서 산조의 형식이 잡힌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진양조의 느린 장단에서 시작하여 중모리, 중중모리를 거쳐 점점 빨라지며 자진모리, 휘모리, 단모리의 아주 빠른 장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속도와 리듬 속에서 선율들이 자유롭게 춤을 춘다. 아주 기교적이며 깊이 있는 성음이 요구되는 이유로 대다수의 국악 연주자들이 평생에 걸쳐서 이 산조음악을 연구하고 내공을 만들어 간다. 류파에 따라 휘모리, 단모리 장단이 빠지기도 하고, 엇모리, 굿거리 장단이 추가되기도 하는데, 여기서 류파 라는 것은 그 가락을 구성하고 작곡한 이의 이름을 따른다. 예를 들어 '김윤덕류 가야금산조' 라고 하면, 김윤덕 명인이 가락을 정리한 가야금산조라는 것이다.산조의 종류는 19세기 말 김창조 명인의 가야금 산조를 시작으로 거문고, 대금, 해금, 피리, 아쟁 등의 악기가 산조로 생기며 발전하였다. 그 이후 지금까지 전해지는 산조는 각 악기에 따라 그 종류가 많은데, 가야금에는 앞서 언급한 김윤덕류 가야금산조를 비롯하여, 김병호류, 강태홍류, 최옥삼류, 성금연류 가야금산조 등과 거문고는 신쾌동류, 한갑득류 거문고산조, 대금에는 김동진류, 서용석류, 원장현류, 이생강류 대금산조 등이 있고, 이 밖에도 각 악기에 따라 일일이 나열하기에도 많은 다양한 산조들이 그 뛰어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나의 곡 '김동진류 대금산조협주곡 '은 제목에서 보이듯이 김동진류 대금산조 가락을 국악관현악과 함께 협연형태로 연주한다. 전통 민속기악독주곡인 산조를 협주곡으로 만들어 창작국악 장르로 불러들인 것인데, 이는 산조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 역시도 이곡 '부활'을 통해서 김동진류 대금산조가 모든 분들의 마음에 새로운 모습으로 각인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 애원성과 절도있는 가락이 돋보이는 김동진류 산조에 국악관현악의 장중함이 더해지고, 또한 산조의 민속악적 선율과 서양화성의 클래식컬한 국악관현악의 색다른 융합은 기존의 다른 산조협주곡과 차별성을 두면서 음악의 정답이 아닌 또 하나의 다양성을 부여하고자 하였다.깊이 있는 내면의 소리는 울림 또한 강하다. 지금은 '김윤덕류 가야금산조협주곡'을 새롭게 쓰고 있다. 이 곡을 통해 또 다른 하나의 다양성을 부여하며, 깊은 가야금의 울림을 더욱 극대화하여 표현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나는 이 시대를 살면서 전통의 소리를 가치있게 보존하고 발전시켜 나아가는 숙명적 의무를 한 발짝 한 발짝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행해 가려 한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조금씩 정진해 나아가서 언젠간 위의 위대한 산조의 명인들처럼 내 음악에도 어떠한 일가를 이루게 되길 바라면서…. 이정호 국악작곡가

2019-08-27 11:18:41

스트레스와 방광염은 수컷에게 배뇨장애 증상 (FLUTD)을 유발시킬 수 있다. (사진출처: https://vcahospitals.com)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우리 고양이가 매일 사용하는 화장실 모래의 진실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의 고민거리는 크게 두 가지다. "우리 고양이에게 뭘 먹이지?" "모래는 뭘 쓰지?"가 그것이다.묘미(5·수컷)가 화장실을 기피하고 이불에 소변을 지린다며 내원하였다. 검사 결과 방광염과 FLUTD(고양이 하부비뇨기질환) 초기로 진단되었다.수컷 고양이는 배뇨를 참거나 물 섭취가 부족하면 소변이 농축되어 방광염이 발생하고 체형에 비해 가느다란 요도가 막혀버리는 해부학적 특성을 가진다. FLUTD가 심해져 요도가 폐색되면 고양이는 매우 괴로워하고 방광확장과 급성신부전이 발생하기 때문에 응급처치를 해주어야 한다.묘미는 요도 세척과 약물 처방으로 증상이 호전되었다가 3주 후 증상이 재발되어 내원하였고 여러 정황상 화장실을 기피하는 심인성 요인이 의심되었다.보호자는 한 달 전부터 모래를 두부모래로 바꾸었는데 묘미 입장에서 모래가 불편했던 모양이다. 화장실 가기를 꺼려한 묘미는 스스로 물을 적게 먹는 바람에 소변이 농축되면서 방광염이 진행된 것이었다.묘미에게 자연의 모래 질감과 유사한 메디컬 벤토나이트 모래를 추천해주고 화장실 청소를 자주 해주실 것을 권했다.묘미는 모래가 바뀌자 화장실을 들락거리기 시작하였고 심지어 모래 위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화장실에 대한 불편함이 사라지자 물 섭취량이 늘어나며 방광염은 재발되지 않았다.묘미는 두부모래의 질감이 싫었거나 그 속에 함유된 첨가물이 불편했던 걸로 추정된다. 예민한 고양이에게 모래 속의 유해한 성분은 후각을 자극시키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는 내재되어 있던 질병을 악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야생 고양이가 선호하는 모래는 무엇일까? 배설물을 쉽게 덮을 수 있고 자신의 발바닥을 그루밍할 때 불쾌하지 않은 고운 입자의 마른 모래다.그렇다면 집 고양이에게 적합한 모래는 무엇일까? 자연의 모래흙과 비슷한 질감의 천연 벤토나이트 모래를 추천한다. 국내에서 시판되는 메디컬모래와 휴먼그레이드 등급의 벤토나이트 모래 제품이 해당된다.벤토나이트는 천연 토양 성분으로 무해하면서도 소변을 즉각 굳혀버리는 성질을 가진다. 순도가 높은 천연 벤토나이트는 제약과 와인 제조에 이용되며 화장품과 사료 첨가제로 사용된다.토양에 버려지더라도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 순도가 높은 벤토나이트는 첨가물 없이도 고양이 소변을 즉각 굳혀 버리고 성분 자체로 세균 증식을 억제시킨다. 이미 오랫동안 유럽이나 미국에서 애용되었으며 미국 와이오밍이 순도 높은 천연 벤토나이트 생산지로 유명하다.그러나 화학물질이 첨가된 벤토나이트 모래는 오히려 건강에 해가 될 수 있다. 불순물 함량이 높은 벤토나이트는 주물공정이나 토목공사의 방수 재료로 사용된다. 저렴하지만 고양이 모래로서의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탄산수소나트륨(베이킹 소다) 등의 다양한 화학물질을 첨가시킨다. 이렇게 첨가된 화학물질 중 일부는 고양이 건강에 해를 끼칠 수 있다. 중국에서 제조돼 국내에 수입 유통되는 원형이나 펠럿 모양의 벤토나이트 가공 모래 제품이 이에 해당된다.특별히 굳기를 강화시킬 목적으로 세제류나 경화제 등을 첨가한 벤토나이트 모래 제품이 있다. 고양이 모래는 피부에 접촉될 뿐 아니라 호흡기로도 흡입된다는 측면을 고려할 때 장기적으로 건강에 위협이 될 수 있다. 모래 알갱이가 매우 작으면서 굳기와 탈취력이 우수한 벤토나이트 모래 제품이 이에 해당된다.두부모래는 친환경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콩이나 옥수수, 밀, 두부 가공의 부산물을 이용한 모래는 식물 섬유질과 전분만으로 소변을 굳히기 어려우며 세균 증식이 잘 된다. 그래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제조사는 탄산칼슘(석회분) 등의 기능성 화학물질을 첨가하게 된다.이렇게 첨가된 화학물질 중 일부는 고양이 건강에 해를 끼칠 수 있다. 두부모래, 콩모래, 밀모래가 이에 해당되며 원가를 줄이기 위해 대부분 중국에서 제조되어 국내에 수입 유통되고 있다. 굳기가 약하기 때문에 변기에 버릴 수 있어 편리하지만 공공주택에서 다수가 사용할 경우 오수정화 시스템에 문제를 유발시킬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목재를 톱밥으로 만들어 압착시킨 펠럿 모래는 소변을 흡수시키는 목적으로 이용된다. 소변에 오염된 부분만을 가려 청소할 수 없기 때문에 부패와 세균증식이 쉽다. 국내에서 폐목재를 파쇄하여 만든 펠럿은 화목용 용도로 유해 성분을 검증조차 하지 않고 있으므로 고양이게 사용은 자제해 주시기 바란다.실리카겔 모래는 소변을 흡수하여 말려버리는 제습기능을 이용한 제품이다. 실리카겔 자체는 먹어도 인체에 무해하지만 일부 고양이의 경우 먼지가 호흡기로 흡입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고양이 성격을 고려하여 선택하시기 바란다.현명한 집사는 모래를 구매할 때 제조사와 판매처를 확인한다. 국내에서 제조되는 고양이 모래는 소비자 보호를 위한 제조 생산 법률에 근거하여 원재료와 첨가물을 명확히 표기하여야 한다. 반면 중국 등에서 저렴하게 수입 유통되는 제품들은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저렴한 가격과 허위 광고에 현혹되어 모래를 선택하다 보면 고양이에게 해가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명심하자.고양이 모래 때문에 눈병이 생길 수 있는지 문의하는 분들도 많다. 화장실 모래 먼지의 일시적인 접촉은 정상적인 눈물 분비와 결막의 면역 기전에 의해 방어되므로 모래가 눈병 발생의 원인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하지만 고양이에게 잠복되어 있는 칼리시, 허퍼스 바이러스 등이 활성화되어 눈의 면역 기능이 떨어졌을 때는 부가적인 악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기억하자.고양이가 좋아하는 모래는 있어도 집사가 만족하는 모래는 없다고 한다. 굳기 정도, 사막화 정도, 냄새, 경제성을 고려하여 각 제품은 나름의 장점으로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다.고양이가 예민하거나 눈병이나 구내염이 관찰된다면 고양이를 키우는 보호자들은 경제적 여유가 가능한 범위에서 건강에 도움되는 모래를 선택하시기 바란다.고양이가 쾌변·쾌뇨하고 항상 건강하다면 좀 더 현실적인 측면과 편의성을 고려하여 모래를 선택하되 하루 3회 이상 반드시 화장실을 청소해주는 습관을 가져주시기 바란다.

2019-08-27 10:27:53

송필용 작

[최진석의 새말 새몸짓] 자기 확신에 갇힌 몽환적 통치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철학자 주희가 차지하는 비중은 서양에서 칸트가 차지하는 그것 만큼이나 무게감이 있다. 그의 말이다. "오늘 배우지 아니하고서 내일이 있다고 하지 말며, 올해에 배우지 아니하고 내년이 있다고 하지 말라."('勸學篇') 더 나은 내일과 더 발전된 내년을 원하거든 반드시 공부해야 한다. 공부(배움)는 지적 활동이다. 미래는 지적 태도를 가진 사람이 연다.인류 역사에서 가장 철저하게 살다간 사람을 꼽을 때, 소크라테스는 빼지 못한다. "나는 숨을 쉬는 한, 그리고 지적 능력을 잃지 않는 한, 철학을 가르치고, 사람들을 훈계하고, 만나는 사람들을 위해서 진리를 명료하게 밝히는 일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오."('변명' 중에서)세상을 진보시키려는 자신의 노력과 '지적 능력'의 발휘를 일치시켰다. 소크라테스에게 있어 지적인 활동에 반대되는 행위는 이미 흡수한 신념을 자세히 점검하지 않은 채 계속 소유하면서, 자신을 거기에 맹목적으로 맡겨버리는 무책임한 태도이다. 이때 소유된 신념이 '스스로 참되다고 확신하는 믿음'(true belief), 즉 '자기 확신'이다.이것은 지적 점검을 거친 '지식'(knowledge)과 구분된다. 중국의 철학자 장자는 이것을 '정해진 마음' 즉 '성심'(成心)이라 했다. 장자에 의하면, 제대로 된 공부는 '성심'을 깨면서 비로소 시작된다. '성심'을 깨지 않는 자에게 미래는 없다.미래는 점검을 거치지 않은 자기 확신이 아니라, 지적인 점검 과정을 통해서만 열린다. '자기 확신'은 지적 활동 능력을 현저히 떨어뜨린다. 자기 확신에서 벗어나려는 지적인 노력이 바로 '반성'이고 '점검'이다. 그래서 지식을 '점검된 자기 확신'(justified true belief)이라고 하는 것이다.'자기 확신'에 빠진 사람은 비이성적이며, 감각이나 감성을 믿고, 과거 지향적이며, 소유한 것을 지키려 하고, 이념으로 현실을 지배하려 하고, 세상을 보고 싶은 대로 보거나 봐야 하는 대로 본다. 지적인 사람은 이성적이며, 논리적이고, 미래 지향적이며, 소유한 것을 바탕으로 해서 그다음으로 넘어가려 하고, 현실에서 이념을 생산하려 하고, 세상을 보여지는 대로 보려 한다. 세상을 보고싶은 대로 보거나 봐야하는 대로 보는 사람은 보여지는 대로 볼 수 있는 사람에게 항상 진다.점검하는 습관이 길러지지 않아서 지적 수고를 하려고 하지 않으면, 점검하고 생각하는 일을 귀찮아하면서 '자기 확신'에 빠지는데, 이때는 주로 프레임 씌우기로 날을 보낸다. '종북 좌빨'이나 '토착 왜구'나 '친일파'나 '반일파'라고 하는 것들은 다 사유의 정지를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세계를 보여지는 대로 보지 못하고 봐야 하는 대로 보거나 보고 싶은 대로 보게 되는데, 그렇게 하도록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이 바로 '이념'이다.현실에서 이념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이념으로 현실을 지배하려고 한다. 여기서는 어떤 생산적인 효율도 생기지 않고 제자리에 멈춰선 채 시대를 과거에 묶어두기만 한다. 우리는 철저히 과거에 묶였다. 미래 담론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이념가'들은 지적인 진보가 멈췄거나 오히려 그것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우리나라에 진보 우파나 진보 좌파는 모두 사라지고, 그저 보수 우파와 보수 좌파만 남은 연유이다. 이념가들은 저 높은 곳에 이념을 걸어놓고 거기를 향해 과감하게 비상하려다 보니 현실을 구제하려는 사명감보다는 오히려 몽환적인 자기 확신에 빠진다. 몽환적인 감성과 확신 속에 도덕적 우월감이 깃들어 있지만, 이는 헛된 자기기만일 뿐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내로남불'이 일상화 된다. 염치와 부끄러움도 사라진다.1894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시모노세키에서 청과 강화조약을 체결하는데, 조약문의 제1조가 "조선이 완전한 독립국임을 승인한다."는 것이었다. 이 조문에 대하여 청나라 대표인 이홍장은 양국 모두 조선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추가하자고 했으나 일본이 거부하였다.1876년 일본이 운요호 사건을 빌미로 해서 강화도에서 조선과 조일수호조약을 체결하는데, 그 조약의 제1조도 "조선은 자주국으로 일본과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었다. 청나라와 일본이 자기들끼리 전쟁을 한 다음에 조약을 맺으면서 제1조를 조선의 독립으로 삼았고, 일본이 우위를 점한 채 조선과 맺은 불평등 조약의 제1조도 조선의 독립이었다.당시 조선은 무능하고 무지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1896년 독립협회를 세워 중국 사신을 맞던 영은문을 부수고 독립문을 세웠다. 그즈음 고종은 아관파천으로 1896년2월11일부터 1897년2월20일까지 세자 순종을 데리고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해 있다가 나와 1897년 10월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 즉위식을 갖는다.이때 즉위식 행렬은 일본군이 호위를 했다. 대한제국에서 '제국'은 다른 나라의 속국이 아니라 자주 독립국임을 의미하지만, 자주 독립국의 기상은 찾기 힘들다. 8년 후, 1905년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박탈당한다. 외교적 주권은 일본이 가져갔다. 그 후 다섯 해가 지나 1910년에 조선은 일본에 합병된다. 나라가 사라졌다.지금도 우리는 이런저런 '영은문'들을 부수면서 자주와 번영과 독립을 확보한 듯한 심리적이고 몽환적인 자족감에 취해 있다. 자기 확신에 갇혀 몽환의 시절을 다시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1840년 아편전쟁으로 중국이 영국 등의 서양 세력에 굴복당하고, 1853년 일본은 미국에 의해 강제 개항 당했다. 중국과 일본은 굴복당하고 나서 과감히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운 시대적 변화를 받아들이려고 전면적인 쇄신에 나섰다. 쇄신의 주요 내용은 '서양 학습'이었다.그러나 조선은 무지몽매했으며, 무지가 만든 몽환적 자기 확신으로 서양을 배우기는커녕 오히려 무시하면서 위정척사로 편을 갈라 내부적인 싸움에만 골몰하였을 뿐이다. 내부적인 작은 싸움에 갇힌 채, 그것을 세계적인 큰 싸움인냥 착각하는 몽환의 상태였다. 점검되지 않은 자기 확신 때문이다.이때도 모두 힘을 합치기만 하면 서양을 물리칠 수 있다는 결사 항전의 선동과 결기가 무성하고도 무성했다. 자기 확신에 빠져 선동과 결기만으로 버티다가 결국은 나라를 뺏겼다. 우리는 지금도 위정척사의 세월을 살고 있지 않은가.'자기 확신'은 우리 전체 모두에게 해당하지만, 지금은 주도권을 가진 통치 세력의 그것이 더 큰 문제이다. 통치 주도 세력의 주요 인물인 문정인은 한국이 처한 상황을 "북한의 '민족 이익'과 미국의 '동맹 이익' 요구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로 평하면서, 우리의 '국가 이익'을 위해 양쪽 모두에 "쓴소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시사IN 제612호)북한을 민족 이익을 수호하는 국가로 보는 것이 통치 주도 세력의 공통된 인식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핵무기도 민족 이익 수호 차원의 것이고, 미사일 발사로 하는 협박이나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악담이나 조롱들도 모두 민족 이익을 수호하려는 목적에서 나온 것이 된다. 그래서 아무 반응도 못하는지 모르겠다.이전의 글 "국가란 무엇인가"에서 밝혔듯이 국가와 민족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는, 국가로서의 대한민국에서 북한을 '민족 이익'을 수호하는 국가로 본다는 것은 민족적 정통성을 북한에 두고 있다는 것으로 읽힌다. 북한 추종의 근거이다. 사실 여기서부터 모든 몽환적인 통치 행위가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북한을 '민족 이익'을 수호하는 국가로 보는 인식을 토대로 하여 우리가 형성한 주변 국가와의 관계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종북굴중혐미반일'(從北屈中嫌美反日)이다. 북한을 추종하여 무조건 이해하고 편을 들며, 중국에 굽신거리고, 미국을 미워하며, 일본을 반대한다.문제는 추종하여 이해하고 편을 들어주지만, 북한은 계속 위협하고 조롱하며 업신여긴다는 점이다. 뒷골목도 아니고 국가 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어떤 위협과 조롱에도 말 한마디 못하고, 오히려 선의로 해석하려고 몸이 달았다. 세계 외교사 어디를 봐도 국가 사이에 이런 관계를 형성해서 자존을 지키거나 생존을 담보하거나 실익을 얻었던 예는 없을 것이다.자존과 생존과 국가적 실익을 포기하더라도 얻을 수 있는 더 중요한 어떤 몽환적 주제가 설정되어 있지 않다면 불가능할 일이다. 이런 태도가 정권에는 의미가 있는지 몰라도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인 나는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는다.중국의 철학자 노자는 통치의 핵심적인 지혜를 간결한 언어로 남겼는데, 이런 대목도 있다. "최상의 통치는 아랫사람들이 통치자가 있다는 것 정도만 의식한다. 그다음 단계에서는 백성들이 통치자에 친밀감을 느끼며 떠받든다. 그다음은 어려워하고 두려워하는 단계이다. 마지막 가장 낮은 단계에서는 통치자를 조롱한다."('도덕경'17장)국가 통치의 효율성이나 건강성의 정도를 순서대로 밝혔다. 조롱받는 단계에서 국가는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여기저기서 업신여김을 당하거나 조롱을 당하는 일이 있다면,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조롱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조롱 다음의 단계는 순서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파국적인 일일 가능성이 크다.조롱도 자기 의도에 따라 심리적이고 주관적으로 해소해버리고 나서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살피지 않으면 조롱 다음에 예견된 파국을 막지 못한다. 자기 확신에 빠지면 감각을 믿고 사실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심리적 기대를 객관적 사실로 착각하는 것이다.지금 이 나라는 자기 확신에 갇힌 몽환적 통치에 의해 '아무나 흔들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독도 주변의 카디즈나 영공에 중국과 러시아 비행기가 멋대로 들락거리고, 일본은 경제를 통해 한국 흔들기에 나섰고(미국이 뒤에서 함께 벌인 일일 수도 있다), 미국은 문재인 대통령 어투까지 흉내 내가면서 방위비 증액 등으로 압박을 하고, 한미동맹은 이혼 직전인 부부처럼 불안하다는 평가를 받는다.북한은 협박과 위협과 조롱에 거침이 없다. 대한민국은 어떤 자신감에 의한 것인지 몰라도 진정한 '우방'이 없는 나라가 되었다. 이 상황에서 '아무나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구호가 선동이나 결기에 머문 주장이 아닐 수 있을까? '종북굴중혐미반일'(從北屈中嫌美反日)의 구도를 유지하면서 '아무나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 비책은 무엇인가?일본과 실전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조건문으로 '평화 경제'만 이루어진다면 일본을 이길 수 있다고 주장할 때, 이를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망연자실할 뿐이다. 모든 경제 지표가 다 악화일로인데, 대통령은 경제의 기초체력이 튼튼하다고 한다. 몽환적 자기 확신에 빠져 세상을 보고 싶은 대로 보거나 봐야 하는 대로 보기 때문이다. 보여지는 대로 볼 수 있어야 가능한 정확한 현실 인식이 취약한 것 같다.'자기 확신'에 빠지면 점검 능력과 반성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지만, 최소한의 지적인 능력이라도 있다면, 반성하고 점검하는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면 실수를 하더라도 반복하지 않고, 되도록 빨리 교정도 한다. 반성 능력이 떨어지면, 하던 실수를 반복한다. 나라들 사이에도 침략을 하던 나라가 또 침략을 하고, 침략을 당했던 나라가 다시 침략을 당하는 것을 볼 수 있다.반성과 점검 능력이 잘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정권도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임진왜란은 뼈에 새겨야 할 치욕이다. 임진왜란과 같은 치욕을 다시 당하고 싶지 않으면 분노하고 결기만을 보일 일이 아니라 우선 서애 유성룡이 남긴 "징비록"(懲毖錄)부터 읽어야 한다. 이 책에 반드시 새겨야 할 세 가지 교훈이 들어 있다.첫째, 한 사람이 정세를 잘못 판단하면 천하의 일을 그르칠 수 있다. 둘째,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국방을 다룰 줄 모르면, 나라를 적에게 넘겨주는 것과 같다. 셋째, 전쟁 같은 큰 일이 닥쳤을 때에는 반드시 나라를 도와줄 만한 우방이 있어야 한다. 차라리 섬뜩하지 않은가.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2019-08-26 18:00:00

힐링드라마아트센터 대표,심리치료사

[이은주의 잉여현실] 교실에서 도전적인 아이들.

한 초등학교 3학년 교사가 고민을 상담해왔다. 교실 책상 위에 손쓰레받기가 하나 있었는데 한 아이가 지나가고 뒤이어 다른 아이가 지나갔는데 손쓰레받기가 바닥에 떨어져 깨져 있었다. 그런데 준호가 두 번째 아이를 가리키며 "니가 그랬잖아! 내가 봤어"라고 했다. 그러자 두 번째 지나간 아이는 "난 아냐! 아무 느낌이 없었는데…. 억울해!"하며 항변했다.처음 이야기는 간단해 보였는데 문제는 갈수록 태산이었다. 지목을 당한 아이는 이전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 전학을 왔으며, 아이들 속에 끼지 못하고, 화나고 억울해 하루에도 몇 번이나 선생님에게 와서 씩씩거리고, 자기 말을 수용하지 않으면 집에 가버리기도 한다. 내가 봤다고 나선 준호는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고, 힘 있는 아이들 그룹 안에 있지만 그 그룹 안에서는 가장 무력하고 다른 아이를 공격하는 행동들을 한다. 게다가 처음 지나간 아이가 반에서 가장 힘 있는 아이라는 것.문제는 복잡해졌다. 겉으로 드러난 문제가 아니라, 도전적인 행동을 하는 두 아이의 행동수정과 반에서 따돌림 없이 아이들을 어떻게 사이좋게 함께 놀도록 만들 것인가가 화두였다. 우리는 역할극을 통해서 상황을 재연해봤다.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주고 역할 바꾸기를 통해 다른 사람의 자리에서 경험해보게 하고 서로가 원하는 행동 방식을 탐색하는 것으로 답을 찾아갔다.몸을 가만히 못 있고, 거짓말을 하고 욕하고 때리는 도전적인 행동들을 하는 아이들 뒤에는 어른들이 있다. 그런 아이들을 사이좋게 놀도록 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이런 행동들에 대해 교사가 훈계를 하고 벌을 줘서 고칠 수 있는 것은 없다. 오히려 아이의 화나고 무섭고 불안하고 외로운 심정을 공감해주고 지지해주는 것과 친구들이 좋아하고 선생님이 바라는 행동의 범위를 정해주는 것이 훨씬 이득이다. 또한 놀이를 통해 자신을 자각하고 행동 조절을 몸으로 배울 수 있도록 한다면 아이들은 빠르게 달라질 것이다. 아이들의 생명력을 믿으며.힐링드라마아트센터 대표·심리치료사

2019-08-26 18:00:00

이춘희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이춘희의 시사로 읽는 한자] 신상필벌(信賞必罰): 상과 벌은 공적 이익을 위해

한자 뜻풀이로는 상에는 믿음이 있어야 하고 반드시 벌을 내려야 한다는 의미이다. 공(功)이 있어 내리는 상에는 공적인 믿음이 있고, 죄(罪)는 반드시 벌해야 한다는 뜻이다. 전국시대의 법가 한비자(韓非子)가 제후국 왕들에게 설파한 이야기를 모은 '외저설'(外儲說)의 '우상'(右上) 편에 있는 진문공(晉文公)의 고사에서 왔다.진나라 문공이 책사 호언(狐偃)에게 "신하들에게 감미로운 음식과 술을 하사하고 백성들과 고기를 나누어 먹었으며 병사들에게 무명옷을 입혔다. 이들을 데리고 전쟁을 해도 되겠는가?"라고 물었으나, 아니라고 했다. 문공은 다시 "손해 본 백성을 보살피고 죄인을 사면하고 가난한 자에게 베풀었다. 이제는 싸울 수 있지 않겠는가?"고 했다.호언은 "말씀하신 것은 백성이 생존에 필요한 것이고, 전쟁은 그들을 사지(死地)로 모는 것입니다. 편히 살려고 따르는 데 죽음으로 내몰면 따를 이유가 없습니다"고 했다.문공이 "그럼 어떻게?"라고 했다. 호언이 "그들이 싸우지 않으면 안 되게끔 해야 합니다. 공이 있는 자에게 상을 주고 죄 지은 자를 벌하면(信賞必罰) 그들은 싸울 것입니다(其足以戰). 벌은 총신에게까지 미쳐야 합니다"고 했다.다음 날 문공은 사냥을 핑계로 신하들에게 정오까지 모이라고 하고, 늦는 자를 벌한다고 했다. 총신 전힐(顚頡)이 늦었다. 그의 죄를 물어야 한다는 소리가 많았다. 전힐을 죽이고 일벌백계(一罰百戒)했다. 드디어 문공은 군사를 이끌고 위(衛), 조(曺), 정(鄭)나라를 치고 송(宋)을 구하고 초(楚)를 이겨 중원의 패자가 되었다.그 후 신상필벌은 지도자의 중요한 자질이 되었다. 조선시대 태종은 기강을 세우기 위해 처남인 민씨 형제를 죽이고 총애하는 공주를 궁에서 내쫓았다. 최근 대통령의 측근 이야기가 화제다. 호언이 살아 있다면 뭐라 했을까?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2019-08-26 18:00:00

신병주(건국대 사학과 교수)

[신병주교수의 역사와의 대화] 15세기 대일 외교 지침서,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

'그들의 습성은 강하고 사나우며, 무술에 정련하고 배 타기에 익숙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와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로 바라보게 되었으니, 그들을 만약 도리대로 잘 어루만져 주면 예절을 차려 조빙(朝聘)하고 그렇지 않으면 문득 함부로 노략질하였던 것입니다.'위의 글은 신숙주(申叔舟·1417~1475)가 세종 때 일본을 다녀온 후, 성종의 명으로 1471년(성종 2년)에 완성한 '해동제국기'의 내용 중 일부이다. 600년 전을 살아간 학자의 저술이지만 최근의 한일 관계에 비추어 보아도 그 맥락은 놀랍게도 닮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해동제국기'는 당시만 해도 거의 교류가 없던 일본을 직접 답사하고 그 내용을 상세히 기록하여 조선시대 대일 외교의 지침서 역할을 했다.1443년(세종 25년) 신숙주는 세종의 명을 받들어 일본으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이때 그의 나이 27세였다.직책은 서장관(書狀官)으로서 정사와 부사에 이어 서열 3위에 해당한다. 서장관은 외교는 물론, 특히 문장에 뛰어난 사람이 임명되는 직책으로 세종은 신숙주에게 큰 믿음을 보였다.'해동제국기' 서문에서 신숙주는 '대체로 이웃나라와 사귀어서 사신이 왕래하고, 풍속이 다른 사람들을 어루만져서 반드시 그들의 형편을 알아야 합니다.… 신은 명을 받들어 옛 전적을 상고하고, 보고 들은 것을 참작하여 그 지형을 그림으로 그리고 왕실의 세계(世系)와 풍토 및 숭상하는 것들을 대강 서술하고, 응접하는 세목에 이르기까지 편집하여 책으로 만들어 바칩니다'라고 하여 책을 편찬한 경위를 설명했다.'해동제국기'는 서문과 함께 7장의 지도, '일본국기'(日本國紀), '유구국기'(琉球國紀), '조빙응접기'(朝聘應接紀)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국기' 편에서는 일본의 풍속에 관한 내용들이 주목된다.'무기는 창과 칼 쓰기를 좋아한다.… 젓가락만 있고 숟가락은 없다. 남자는 머리털을 짤막하게 자르고 묶었으며, 사람마다 단검을 차고 다닌다. 부인은 눈썹을 뽑고 이마에 눈썹을 그렸으며, 등에 머리털을 드리우고 다리로써 이어 그 길이가 땅에까지 닿는다. 남녀가 얼굴을 꾸미는 자는 모두 그 치아를 검게 물들였다.… 사람마다 차 마시기를 좋아하므로 길가에 다점(茶店)을 두어 차를 팔게 한다.… 오직 승려만이 경서를 읽고 한자를 안다. 남녀의 의복은 모두 아롱진 무늬로 물들이며 푸른 바탕에 흰 무늬다. 남자의 상의는 무릎까지 내려오고 하의는 길어서 땅에 끌린다'와 같은 내용들로서 일본의 풍속을 객관적으로 서술하였다.사무라이 전통, 젓가락 문화, 차를 즐기는 풍속 등은 15세기 일본에도 유행했음이 나타난다. '해동제국기'는 편찬된 이후 외교 협상에서 자주 활용되었으며 후대의 학자들도 그 가치를 거듭 언급했다.16세기의 학자 김휴는 "우리나라의 외교 규범에 있어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하였으며 이수광이나 이익과 같은 실학자들도 그들의 저술에서 '해동제국기'의 내용을 인용한 것이 보인다.신숙주는 '해동제국기'를 통해서 일본에 대한 경계와 함께 교린 외교의 중요성을 곳곳에서 피력하였으며 미구에 발생할지 모를 전란을 막기 위해서는 조정의 기강을 바로잡는 것을 우선시해야 함을 강조하였다."이적(夷狄)을 대하는 방법은 밖으로의 정벌에 있지 않고 내치(內治)에 있으며, 변방의 방어에 있지 않고 조정에 있으며, 전쟁에 있지 않고 기강을 진작하는 데 있다"고 피력한 것에는 외환을 없애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부 안정의 필요성을 중시한 신숙주의 입장이 잘 나타나 있다.최근 한일 관계가 강성으로 치닫고 있다. 15세기에 이미 일본의 호전성을 간파하고 이에 대한 대응을 제시한 '해동제국기'의 기록이 던져 주는 의미들을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

2019-08-26 18:00:00

DGIST 에너지공학전공 교수(사)초일류달성경제연구소장

[인수일 교수의 과학산책]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같이 건너자.

R&D(연구개발)와 제품 상용화 사이에는 넘기 어려운 높은 장벽이 있다. 소위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이라고 부른다. 원천 기술을 확보하고 시제품 몇 개를 개발하는 것과 이를 시장에 선보이고 이윤을 내기까지는 큰 차이가 있다는 얘기다. 기업이 전문 인력을 고용하여 기술 개발에는 성공하지만, 자금 조달 등의 어려움으로 개발한 기술을 사업화하는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도산하는 것이다.요즘처럼 소비자의 요구가 온라인을 통해서 즉각 반영되고 작은 품질의 차이도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시대에 어설픈 기술 개발은 설자리가 없다. 특히 전자 통신 분야에서 소재와 부품은 신뢰성이 생명이기 때문에 쉽사리 거래처를 바꾸기도 어렵다. 갈수록 골이 깊어가는 한일 갈등 때문에 반도체 분야를 필두로 하여 부품과 소재를 국산화하자는 움직임이 강하다. 특히 일본에 대한 기술 의존도가 생각보다 높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불안감뿐만 아니라 실망감이 크다고 한다.다행스러운 것은 카이스트와 서울대 공대 등 주요 대학들이 기술자문단을 꾸려서 중소기업에 자문을 해주기로 한 것이다. 카이스트 기술자문단(KAMP)에는 하루에도 수십 건의 문의 전화가 쇄도한다고 한다. 대학의 우수한 연구 인력이 중소기업의 연구개발에 집중되고, 정부의 정책 자금이 제품의 시장성 확보, 해외 특허, 마케팅 쪽을 균형 있게 지원해준다면 비용 부담으로 인해 도산하는 기업은 줄어들 것이다. 또한 소재와 부품을 모두 국산화하겠다고 욕심내기보다는 다른 나라의 중소기업들과의 세계 분업화를 통해서 효율과 이윤을 극대화해야 한다. 오랜 기술의 축적과 숙련된 노동력이 필요한 문제를 단시일에 해결하도록 다그친다면 곤란하다. 현장 경험이 풍부한 원로 엔지니어나 퇴직한 경영인도 이런 어려움을 타개하는 일에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요즘 '죽음의 계곡'이라는 용어가 다시 회자되고 있다.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사장이 지난 8월 15일 일본의 한 언론사와 가진 인터뷰 내용이 주목을 끌면서부터다. 소재 국산화가 단기간에 가능할 수 있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다. 국산화는 기업이 스스로 판단해서 진행해야 한다는 것과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나설 수 있는 중장기적인 대책과 환경을 정부에서 만들어 주라는 것이다. 한일 사태를 미래 지향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에는 엔지니어 출신의 CEO가 가진 차가운 이성과 합리적인 판단이 녹아 있었다. 일본과의 갈등 문제를 외교적으로 조속히 잘 매듭짓고 국내 기업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대한민국 과학기술 유공자인 윤종용 전 부사장은 끊임없는 기술혁신으로 초일류 기술 강국을 꿈꾸며 자신이 몸담고 있던 기업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한국의 대표적인 CEO다. 그는 1995년 말 삼성 일본 본사 사장으로 밀려나면서도 오히려 일본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기회로 삼았다. IMF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을 때 삼성전자 총괄사장으로 복귀하면서 혁신을 주도하고 기업을 바꿔나갔다. 그에게는 외환위기뿐만 아니라 '죽음의 계곡'을 수차례 넘어섰던 경험이 있다. 이러한 원로 기업인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죽음의 계곡'을 함께 건널 수 있는 자신감이 될 것이다. 또한 기술을 가진 회사가 어려움에 빠지더라도 회생할 수 있는 제도적인 뒷받침과 믿고 기다릴 줄 아는 공감대가 있을 때 핵심 소재 국산화도 이루고 세계 분업화의 흐름도 주도해 갈 수 있을 것이다.DGIST 에너지공학전공 교수'(사)초일류달성경제연구소장

2019-08-26 18:00:00

손호석 극작가, 연출가

[매일춘추] 주도권을 잃지 않는다는 것

필자는 주로 뮤지컬 작품의 대본을 쓰고 연출을 하고 있다. 뮤지컬 제작에는 상당한 자본이 투입되기 때문에 청년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필자도 딤프 창작지원작 선정, 봉산문화회관 상주단체 선정 등의 기회를 얻었기에 작품을 제작할 수 있었다. 그런 기회들이 없었다면 아마 단 한 편의 작품도 선보이지 못했을 것이다. 필자는 운이 좋은 편이고 본인의 작품을 관객에게 선보일 기회를 얻지 못하는 젊은 예술가들도 상당히 많다. 공연을 만들 기회를 얻지 못했을 때는 참으로 답답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 보여 주고 싶은 작품이 있는데 제작비를 구할 방법은 없고 마냥 기다리자니 꿈이 꺾여 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선택한 방식이 낭독 공연이었다. 세트를 만들고, 의상도 제작하고, 조명 작업도 하면서 제대로 된 공연을 만들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자본을 구할 수는 없기에 대본과 음악만이라도 관객에게 선보이는 형식의 공연을 제작했었다. 비록 의자에 앉아서 대본과 악보를 보면서 하는 쇼케이스 같은 형식의 공연이었지만 나의 이야기를, 우리의 음악과 작품을 관객들에게 선보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기쁘고 감격적인 시간들이었다. 물론 이런 형식의 공연을 만드는 것도 상당한 제작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청년 예술가가 누군가의 선택을 받지 않아도 스스로 주도권을 가지고 도전해 볼 수 있는 정도의 금액이었다.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불러주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힘으로, 주도권을 가지고 뭐라도 해 보는 것. 뜻 있는 분들의 노력과 같은 마음을 가진 젊은 팀들의 의지가 모여 몇 년 동안 작은 축제를 이어오고 있다. 대구 영 뮤지컬 아티스트 페스티발, DYMAF 라는 축제이다. 지금은 그저 본 공연에 앞선 쇼케이스 느낌의 공연이라는 개념을 넘어, 낭독이기에 가능한 규모의 이야기를 시도해 본다거나 국악,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와의 협업을 통한 실험적인 음악극을 선보이는 자리로도 방향성을 고민하고 있다. 기회는 한정되어 있고 모든 이가 선택을 받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리기만 하면 지치고 포기하게 된다. 반대로, 너무 무리를 해도 쓰러지기 쉽다. 감당할 수 있는 수준 내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고 계속 시도해 나가는 것. 뻔한 소리지만 그 방법 밖에는 없는 것 같다. 손호석 극작가·연출가

2019-08-26 11:21:38

이성환 계명대 교수 (일본학전공·국경연구소 소장)

[세계의 창] 아베는 헌법 개정을 할 수 있을까

올해는 메이지유신 151주년이다. 1945년까지의 77년간은 침략전쟁으로 일관했고, 그 후 현재까지 74년간은 평화로웠다. 근대 일본은 전쟁과 평화의 시대가 반반이다. 군대 보유와 교전권을 금지하는 현행 헌법 9조는 일본을 평화 국가로 만들었다. 그런데 다시 전쟁 국가로 되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있다. 헌법 9조를 개정해 군대를 보유하여 일본을 전쟁 가능 국가로 만들려는 아베 총리의 헌법 개정론이 그것이다.아베가 이끄는 자민당과 공명당의 연립정권은 2014년과 2017년 중의원 선거에서 개헌선인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확보했다. 연립정권은 2016년의 참의원 선거에서도 3분의 2를 넘겼다. 참의원 선거 직후 아베는 "중의원도, 참의원도 3분의 2를 넘겼다. 이제 헌법 개정이다"고 외쳤다. 그럼에도 아베는 왜 헌법 개정을 못 했을까. 일본의 헌법 개정 절차 때문이다. 국회 발의 후 국민투표를 거치는 것은 한국과 같으나, 국민투표 방식이 다르다. 한국은 개정 조항을 일괄하여 한 번 투표한다. 반대 조항이 있어도 찬성표를 던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일본은 개정 조항별로 찬반을 표한다. 개정 조항이 10개이면 투표용지도 10장이다. 번거로움을 약간 줄이는 방법으로 국회에서 합의하여 관련 조항들을 묶어 항목별로 투표할 수 있다. 자민당은 9조의 자위대 명기, 긴급사태 관련, 교육 무상화 관련, 참의원 선거구 조정 등 4개 항목을 예상하고 있다.문제는 여론조사를 보면 3개 항목에 대해서는 찬성률이 높으나 9조 개정에는 찬반이 팽팽하다. 국민투표에서 헌법 개정의 핵심인 9조 개정은 통과 가능성이 낮다. 아베가 밀어붙이지 못한 이유이다. 9조 개정에 실패하면 다시 헌법 개정을 시도하기까지는 요원한 세월이 필요하다. 수출규제 조치가 취해진 지난 7월의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8석이 줄었다. 개헌에 찬성하는 무소속 의원을 합쳐도 참의원에서 개헌 세력은 3분의 2에 못 미친다.(최근 일부 야당의 동조 움직임이 있다). 수출규제로 한국 때리기를 하면서까지 심혈을 기울였던 아베에게 지난 7월의 참의원 선거는 실패였다.아베는 왜 헌법 개정에 집착할까. 그는 2006년 '아름다운 일본'을 슬로건으로 52세의 최연소 총리가 되었으나, 석연찮은 이유로 1년 만에 사임했다. 2012년에는 '강한 일본'을 내걸고 두 번째 총리에 취임했다. 둘을 합치면 '아름다운 강한 일본'이 그의 정치적 목표이다. 지향점은 2차세계대전 이전의 대일본제국이다. 침략전쟁으로 국가 '위신'을 높여가던 강한 일본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던 것이다.이런 그의 정치적 지향을 뒷받침하는 것이 '일본회의'다. 일본회의는 1960년대 반미와 천황제 폐지를 주창하는 좌익 학생운동에 대항하기 위해 대일본제국헌법 체제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신도(神道) 계열의 우익 학생운동의 연합체가 그 모태다. 그때의 우익 학생 지도자들이 지금의 일본회의를 지도하고 있다. 그들은 태평양전쟁 시기 대동아공영권을 기치로 아시아를 침략하던 그때를 일본 최고의 순간이라 한다.그 기저에는 경기침체, 노령화, 동일본 대지진 등으로 사회적 활력이 없어지고, 한국과 중국의 추격으로 존재감이 저하하는 데 대한 불안이 있다.이러한 불안이 침략전쟁 시대의 개인의 궁핍은 망각하고 펄럭이던 일장기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이탈리아와 독일은 2차대전 이전의 국가 상징을 모두 폐기했다. 일본은 천황제, 일장기, 욱일기를 여전히 국가 상징으로 사용한다. 일본이 과거 군국주의의 포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배경이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이 종료됐다. 한일 간의 군사협력의 상징이 사라졌다. 이를 핑계로 아베는 안보 위기론을 부추기며 헌법 개정에 박차를 가할 것이나, 쉽지 않다. 일본에게도 좋다.

2019-08-26 11:17:24

박형룡 더불어민주당 달성군 지역 위원장

[기고]대구의 균형 발전과 신청사

균형의 중요성은 달리 말할 필요가 없다. 균형이 깨질 경우 건강은 물론 사회도 자연도 모두 탈이 나기 때문이다. 균형이 깨지면 발전은 더디고 도약은 꿈꾸기도 어렵다. 2004년 참여정부 당시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을 제정하고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한 것도 결국은 균형을 위함이었다. 삼권분립도 결국은 균형이다. 2016년 겨울, 우리 국민은 권력 균형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수도권 중심의 일극화, 대중소기업의 양극화, 빈익빈 부익부, 지역 간 불균등 발전 등 여전히 많은 불균형이 존재하기에 균형의 가치는 현재진행형이다. 대구의 내실 있는 발전, 균형이라는 가치를 중심에 둘 때 가능하다. 대구시 신청사 위치 역시 철저히 균형이라는 가치를 중심에 두고 판단해야 한다.균형은 단순한 공간적, 산술적 균형을 의미하지 않는다. 질적 균형, 역사적 균형, 산업 경제적 균형, 사회·심리적 균형 등 다양한 측면을 포함한다. 올바른 균형점을 찾기 위해서는 과거와 현재를 통시적으로 살펴봐야 하고, 다양한 측면을 종합해서 봐야 하고, 융합적으로 깊이 있게 들여다봐야 한다.지금 대구의 거의 모든 지역은 1910년대 달성군에 포함되어 있었다. 현재도 달성군은 대구 면적의 48%를 차지한다. 달성군은 대구산업경제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달성군이 대구를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변방 달성군은 옛날이야기다. 과거와 현재를 통시적으로 보았을 때 달성군은 꿈틀대며 균형점에 자리매김하고 있다.평균연령 39.5세로 대구에서 가장 젊은 곳이 달성군이다. 달성군이 비록 지리적으로 대구의 한 둘레를 차지하고 있지만 연령적으로는 가장 젊고 역동적이다. 외곽으로 치부할 곳이 아니다. 지리적, 생물학적 특성을 종합해서 바라볼 때 동적 균형점에 위치한다 하지 않을 수 없다.달성군에는 국가산단을 포함해 8개의 산업단지가 있다. 2017년 말 기준 4천여 개의 제조 업체가 있고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첨단 물산업 클러스터가 있다. 또한 신물질과학, 정보통신융합, 로봇공학 등 융복합을 연구하는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이 있다. 달성군은 전통 산업과 4차 산업이 공존하며 산업 균형점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이런 곳이 어디 있는가?이 뿐만 아니다. 달성군 신청사 부지 비용 중 대구시가 부담할 비용은 0원이다. 다른 지역에 위치할 경우 소요되는 2천억~3천억원의 토지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달성군은 토지 비용 0원이라는 균형점에 딱 서 있다.마지막으로 심리적 균형이다. 대구의 다른 어느 지역보다 달성군민은 강한 열망으로 신청사 유치를 위해 애쓰고 있다. 이것을 단순 지역이기주의로 본다면 그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옛날과 달리 날로 성장하고 있는 달성군에 대한 자부심의 표현이다. 편견을 버리면 화원이 다시 보일 것이라는 강한 확신의 발로이다. 이러한 강한 자부심과 확신이 그 균형점을 달성군으로 강력하게 견인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과거와 달리 높아진 달성군의 위상에 걸맞은 합당한 대우 또한 필요하다. 그게 공정이다. 신천과 금호강을 중심으로 발달되어 온 대구, 이제 낙동강을 중심으로 새롭게 뻗어가야 한다. 균형 발전, 대구 백년대계의 중심 가치여야 한다. 균형점인 달성, 화원에서 새롭게 시작하자.

2019-08-26 11:15:18

전충진 경북도 독도홍보사무관

[기고] 그러면 독도는 없는가?

2019년 8월 15일. 밖에 내건 태극기가 태풍의 영향으로 비에 젖어 후줄근했다. 최근 논란의 중심인 '반일 종족주의' 책 띠지를 뗐다. 대표저자 이영훈 교수의 책머리 글도 읽지 않고 목차를 보고 곧바로 151쪽 '13. 독도, 반일 민족주의의 최고 상징'을 펼쳤다.집필자 이 교수는 독도 주장을 부정하는 것에 대해 '참된 지식인으로서,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학문의 자유를 믿고 소신 발언'을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이 교수는 첫 주제에서 '삼국사기'의 우산국과 울릉도를 거론하면서, 사기의 '우산'은 나라 이름일 뿐 그 안에 독도가 포함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맞는 말이다. 다만 지금 학계에서는 이것이 우리의 독도에 대한 첫 인식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다음으로 '세종실록지리지' 우산과 무릉을 거론하고 있다. '15세기까지 한 개의 섬'이라는 주제까지 이어지는 글에서, 조선은 줄곧 울릉도와 독도를 한 개의 섬으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이 교수는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산과 무릉 두 섬은 서로 멀지 않아 날씨가 좋으면 바라볼 수 있다"는 기록은 그의 주장대로 '상상의 산물'이란 말인가. 이후 사료에는 '더러는 두 섬은 하나의 섬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는 기술도 있다. 일본인들 주장대로 우리 조선실록은 소설이고, 그 사관(史官)들은 소설가인가.이후 이 교수의 계속되는 주제들은 '독도'는 모두 환상일 뿐이라며, 울릉도와 독도가 뒤바뀌거나, 독도가 없는 고지도를 제시하고 있다. 우리 학계에서도 조선 중기 독도에 대한 인식에 혼란이 있었음을 인정한다. 당시 일본은 울릉도를 '다케시마'(竹島)로 불렀다. 한국과 일본 다수의 학자들은 당시 지리적 인식이 오늘날과 다름을 인정한다. 고지도가 국경의 결정적 증거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이 교수는 1900년 대한제국 칙령41호의 '석도'를 독도라고 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라고 주장한다. 당시 독도는 돌섬이 아닌 바위섬이라고 하면서 칙령의 석도는 관음도라고 못 박고 있다. 돌섬의 전라도 사람들 사투리 '독섬'을 한자식으로 표기한 독도는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관음도를 '깎새섬'으로 불렀다. 백번 양보하더라도, 수목이 우거진 관음도를 왜 굳이 석도라고 불러야 했을까. 또 1800년대 거문도 등 전라도 사람들이 독도에 가서 강치를 잡아 부산의 일본 상인한테 팔았던 것은 어떻게 말할 것인가.우선 급한 대로 몇 가지를 일별해 봤다. 이 교수는 이케우치 사토시(池內敏)를 비롯한 독도를 부정하는 일본인들의 주장을 많은 부분 옮기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일본은 1877년 태정관지령에서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과 관계없다'고 했을까? 일본은 메이지유신 후 전국에 대한 지적조사를 했다. 이때 시마네현이 울릉도와 독도에 대해 지적조사 여부를 문의하자 당시 최고 권력기관이었던 태정관은 일본 땅이 아니라면서 지적조사를 못 하도록 했다. 도대체 이건 어찌 된 것인가?나는 학자가 아니다. 앞으로 독도학자들이 이 교수가 능히 수긍할 만한 답변을 내놓을 필요가 있겠다.'반일 종족주의' 책장을 덮은 나는 후줄근하다 못해 참담했다. 책의 다른 내용은 상당 부분 공감이 가지만, 독도는 책의 주제에 함몰되어 억지가 되어 버렸다. 이영훈 교수의 표현대로라면, 우리 국민은 독도를 '가장 신성한 토템'으로 숭배하는 박수무당 패거리에 불과한가.

2019-08-25 14:54:34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이른 아침에] 순종어가길, 결단이 필요하다

달성공원 정문 '순종 황제 동상'이토에 끌려다닌 굴종의 상징철거 요구에 중구청 반대하지만'다크투어리즘' 아닌 '다크'할 뿐 달성공원 하면 '달성공원 앞 풍경'이 먼저 떠오른다. 세상 느긋한 표정으로 쪼그려 앉은 어르신들, 담벼락 따라 길게 늘어선 노점들, 찻길을 꺾어 들면 금세 색다른 공간을 만나게 된다. 어떤 이에겐 키다리 아저씨의 추억으로, 또 어떤 이에겐 여름날 사 먹던 냉차로 기억되는 그곳, 그 안에 서면 시간이 살짝 느리게 흐른다. 코끝에 잦아들던 공기도 슬며시 나른하고 잔잔해진다. 알고 보면 일제의 신사가 들어섰다 쫓겨난 곳, 돌문도 세워졌다 무너진 곳, 달성공원은 지난 시대의 요동과 아픔을 고스란히 겪어낸 곳이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공원 밖 담장 아래가 더 평화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느긋하게 펼쳐진 진입로가 오히려 더 공원처럼 보이기도 한다.그런데 이 모든 게 한꺼번에 옛일이 되었다. 중구청의 각별한 노력으로 '달성공원 앞'의 고유했던 장소성이 그예 사라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게 2017년 5월, 순종 황제의 동상이 들어서고 나서였다. 예의 '달성공원 앞길'이 더는 느긋하지도 잔잔하지도 않게 된 것이다. 오랫동안 이 구역의 주인공이었던 달성공원 정문도 저 멀리 동상의 배경처럼 보이게 되었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이제 '달성공원 앞'은 커다란 금빛 동상이 홀로 위용을 뽐내고 바닥엔 담배꽁초와 쓰레기가 널브러진, 희한한 방식으로 버려진 길이 되었다.사람과 자동차 모두가 외면하는 좁고 불편한 길, 중구청이 70여억원의 돈과 4년여의 시간을 투자해 추진한 '순종황제어가길 조성 사업'의 성과가 이렇게 마무리된 셈이다. 사실, 아무도 예상 못한 일은 아니었다. 이 사업엔 의구심을 품거나 반대한 사람이 시작 전부터 많았다. '어가길'이라기보단 순종이 이토 히로부미에게 끌려다닌 '굴종의 길'일진대 굳이 복원할 필요가 있느냐는 물음이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의 일장 연설과 그에 대한 만세 삼창으로 채워진 황제의 순행(巡幸)인 터라 자칫 '이토 히로부미의 길'이 될지 모른다는 지적도 있었다. 여기에 대한 중구청의 답은 간단했다. 이른바 '다크투어리즘'이라는 거였다. 순종황제어가길에 숨겨진 구국 정신을 다크투어리즘으로 승화(?)시켜 역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동시에 주변 상권도 활성화시킬 것이라 했다.하지만 5.5미터 높이의 동상이 모습을 드러내고 거기에 '먼 곳을 응시하는 순종이 백성들에게 희망의 다리가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을 표현했다'는 설명이 더해지자 여기저기서 역사 왜곡이라는 항의가 잇달았다. 당장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도 거세게 일었다. 이에 대한 중구청의 답은 전과 같았다. '다크투어리즘'이라는 거였다. 순간, "서양의 것이라면 양잿물도 마시려 들겠다"며 혀를 끌끌 차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무려 '구국 정신'이 승화되어 '다크투어리즘'이 된다니?'다크투어리즘'은 그처럼 숭고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무슨 신기술도 아니며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기에도 부족한 그저 하나의 현상일 뿐이다. 다시 말해 기를 쓰고 조성하거나 육성해야 할 만큼 엄청나게 좋은 그 '무엇'이 아니란 이야기다. 그래서 난 이런 건 '다크투어리즘'이 아니라고 지면에 썼다. 하늘을 난다고 다 비행기가 아니듯 말이다. 약간의 역사성에 교훈을 쥐어짠다고, 거기에 적당량의 슬픔과 우울을 버무린다고 다크투어리즘이 될 것 같으면 월요일 출근길도 '다크투어리즘'이 될 판이기 때문이었다. 중구청은 역시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난달부턴 순종황제어가길 동상이 전국 뉴스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최근 한일 관계의 이상 기류를 타고 친일 역사 왜곡의 사례로 언론이 집중 조명한 까닭이다. 대구 달성공원이 엉뚱한 이유로 유명세를 타게 된 셈이다.화가 난 시민들이 '국채보상운동의 도시 대구'에 있어서는 안 될 조형물이라며 다시 한 번 철거를 요구했다. 이번에도 중구청은 '다크투어리즘'이라는 취지를 봐 달라고 했다. 뉘앙스도 같았다. 어디까지나 '다크투어리즘'이라는 수준 높은 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도가 낮아서 발생한 소동이었다. 답답해진 시민들이 정 그렇다면 달성공원 안이나 다른 곳으로 옮겨 달라고 했다. 중구청의 답은 같았다. '그래도 다크투어리즘'이었다.시민을 우롱하는 것도 아니고 이쯤 되면 차라리 고백을 하는 게 맞다. 국비와 시비를 받아 쓴 탓에 입장이 난처하다고. 하지만 방법을 찾겠다고 말하는 게 맞다. 동상 하나가 시민의 마음을 어둡게 하고 있다. 이제 그만 좀 하자. '순종황제어가길'은 '다크투어리즘'이 아니라 그냥 '다크'할 뿐이다. 중구청의 결단이 필요한 때다.

2019-08-25 14:53:12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광장] '사랑하다'의 참뜻

"철수가 영희를 사랑하다"에서 '사랑하다'는 철수와 영희라는 두 사람의 '관계의 이름'이다. 말의 참뜻을 설명할 때 그 말을 다른 말로 풀이하는 것을 기대할 것이다. 학교에서 말의 뜻을 편의상 그렇게 풀이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로써 말을 완전하게 풀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신에 우리가 '사랑하다'라는 말을 알고 있다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는 설명할 수 있다. 그래서 우회적으로 보일지라도 이 방법을 쓴다.'사랑하다'를 안다면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다. 우선 삼라만상의 모든 것들 중에서 사랑하는 관계에 있는 것들을 {(철수愛영희), (영희愛철수), (영철愛순자), (영수愛앞산)}처럼 쌍으로 묶은 리스트를 만들 수 있다. 물론 (철수愛영희)는 "철수가 영희를 사랑하다"를 나타낸다. 네 쌍만 열거했지만 현실에선 훨씬 더 많은 쌍이 있다.둘째, 리스트에 있는 모든 쌍들의 관계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찾아진 관계의 공통점, 그것이 '사랑하다'의 참뜻이다. 이 두 가지 일을 할 수 있다면 그 말의 참뜻을 알고 있는 것으로 언어학에선 인정한다.'사랑하다'의 참뜻이 이러하다면 결국 사람마다 다소 다른 정의를 갖게 된다. 각자가 열거하는 쌍의 리스트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의사소통이 될까? 그것은 열거된 쌍의 리스트 자체보다 열거된 쌍들이 갖는 관계의 공통점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리스트엔 차이가 있을지라도 찾아낸 관계의 공통점엔 큰 영향이 없다. 비유하자면 풍기산 인삼이든, 금산산 인삼이든 같은 사포닌이 추출되는 원리이다. 그래서 의사소통엔 지장이 없다.위에서 (철수愛영희), (영희愛철수)를 동시에 열거했다. 서로 사랑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영철愛순자)에선 그 반대 쌍이 없다. 영철이 짝사랑하고 있다. 그리고 (영수愛앞산)처럼 의식이 없는 어떤 것을 사랑한다면 그 역은 성립될 수 없다. 평생 짝사랑인 것이다.만일 두 사람이 각자가 사랑하는 쌍의 리스트를 만든다면 거기엔 두 사람의 인생관‧세계관이 드러난다. (철수愛산)이지만 (영희愛바다), (철수愛돈)이지만 (영희愛명예)일 수가 있다.벗이 "사랑도, 우정도 변하는 것 같다"고 했다. 사랑이 변한다는 것은 '사랑하다'를 나타내는 쌍의 리스트에 변화가 생겼다는 뜻이다. 주목할 점은 변화가 생겨도 우리가 지닌 사랑의 개념은 거의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리스트엔 수많은 쌍이 있고 그중에 한두 쌍이 사라지거나 더해져도 추출되는 공통 속성엔 큰 영향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지닌 사랑의 리스트는 때때로 변할지라도 평생 지속되는 쌍들도 있다. 변화무상한 세상에서 어떤 대상들과 평생 사랑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그래서 그런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국가 간에도 애증 관계가 있다. (한국愛북한)인가? 여기서 국가는 국민 전부가 아니라 정부를 이끄는 지도자들을 지칭한다. 그러하다. 그러나 역이 성립되지 않은 짝사랑이다. 짝사랑의 위험을 경고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한 번 빠진 사랑에서 헤어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결국 (북한愛한국)으로 만드는 데는 애원(哀願) 대신 실력이 필요하다.(한국愛일본)인가? 아니다. 한일 관계에 대해서 책임 있는 분들이 허(虛)하거나 죽창(竹槍) 같은 격한 말을 한다. 이 염려의 바다를 넘어 극일(克日)하자면 엄포 대신 또 실력이 필요하다. 실력을 기르자면 정치가 경제와 교육을 놓아주어야 한다. 정치로부터 주눅 들어 움츠린 시녀들은 갈팡질팡할 뿐 앞선 나라들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

2019-08-24 01:30:00

송민헌 대구지방경찰청장

[기고]제복 입은 시민, 경찰

2009년부터 2년 반 동안 미국 시카고시 한국총영사관 경찰주재관으로 근무하면서 미국 사회 저변에 흐르는 진면목을 직접 접할 기회가 있었다. 그중 '제복'에 대해 미국인이 가지는 인식은 남달랐다.제복 자체가 갖는 권위는 물론, 제복을 입은 사람(이하 제복인)에 대한 시민의 존중과 감사가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제복인은 각종 위기 발생 시 언제든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공동체를 위해서 희생을 각오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9·11 테러 발생 시 경찰관과 소방관의 순직이 가장 많았던 것처럼 말이다.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다르다. 제복이 권위를 가지기는커녕 경찰관을 폭행하는 사례가 빈번하고, 심지어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일부의 일탈로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지만, 제복인이 겪는 작금의 현실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심각한 사회문제다. 경찰관이 권위를 잃고 무력해질 때 가장 피해를 보는 계층이 스스로를 보호할 힘이 부족한 어린이·청소년·장애인·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기 때문이다.최근 5년간 대구에서 공무 중 다친 경찰관만 489명이다. 연 100명가량의 공상자가 발생하고 있다. 10년간 순직 경찰도 8명에 이른다. 이렇듯 범죄 현장은 예측하지 못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언제 어디서든 경찰관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경찰은 시민들로부터 공동체 질서유지와 안전을 책임지는 숭고한 임무를 부여받고 있다. 범죄와 사고로부터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경찰의 책무는 어떤 이유든 평가절하될 수 없다. 실추된 제복 경찰의 정당한 권위와 신뢰 회복에 이제는 우리 사회가 고민하고 개선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해외여행이 보편화되면서 많은 이들이 외국을 방문하게 되면서 제복 입은 그 나라 경찰을 만나게 된다. 우리나라와 다른 제복 디자인에도 호기심이 생기지만 경찰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그 나라 전체를 인식하게 되는 측면도 있다.한 나라의 경찰이 당당하고 친절하다고 생각되었을 때 그 인상은 그 나라 국민과 국가 전체 이미지로 남게 된다. '보비'(bobby)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영국 경찰을 보면서 영국의 민주주의 역사와 전통, 위풍당당한 영국이라는 국가를 보게 되는 것이다.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희생을 국민들이 인정해 준 덕분이다.앞으로 검경 수사권이 조정되면 경찰의 권한에 비례해 책임이 더욱 커지게 된다. 시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은 오로지 시민 안전과 인권 보호를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따라서, 적법 절차를 철저히 준수하고 인권을 보장하는 등 제복인으로서 책임과 공복 의식을 확고히 갖추어야 한다. 아동 대상 성범죄 등 엄벌해야 할 범죄와 생계형 소액 절도 등 관용과 공동체 복귀가 가능한 사안을 구분하고 구체적 타당성을 잘 살펴 일반 시민의 정의 관념에 맞도록 세심하게 대처해야 한다.이번 대구경찰청 신임 순경 공채 시험 경쟁률이 132대 1을 기록했다. 직업 경찰관이 되고자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우수 인재들이 경찰직에 많이 들어오게 되면 시민에게도 보다 질 높은 치안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경찰에 대한 신뢰 수준은 아직 낮고, 거리감을 가진 시민들도 많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경찰이 먼저 친근하게 다가가서 시민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섬기는 마음으로 지속 노력한다면 시민으로부터 사랑받고 존중받는 그날이 반드시 올 것으로 믿는다. 경찰은 시민과 유리되어서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 경찰이 곧 시민이고 시민이 곧 경찰인 것이다.

2019-08-23 02:30:00

조광사에서 출판된 파리의 괴도(1941)

[정혜영의 근대문학을 읽다] 명랑한 탐정소설

197, 80년대 '명랑'이라는 잡지가 있었다. 서점보다는 역 구내, 혹은 시외버스 터미널 매점 가판대에서 주로 모습을 보이던 통속오락잡지였다. 터미널 가판대용답게 내용은 시간 때우기 좋도록 가벼운 읽을거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렇고 그런 내용으로 가득 찬 통속오락잡지의 이름을 왜 '명랑'이라고 한 것일까. 그 이유를 일제강점기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우리 사회에서 단어 '명랑'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대략 1930년대 후반부터였다. 이 시기 조선에서는 여기에서도 '명랑', 저기에서도 '명랑', 명랑이 과하게 요청되고 있었다.1941년 출판된 박태원 번역소설 '파리의 괴도' 서문에도 '명랑'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있다. '파리의 괴도'(1941)는 미국탐정소설 '백만 프랑(One million francs)'을 번역한 것이다. 저명한 범죄학자 듀발이 악당에 맞서 범죄사건을 해결하고 위기에 처한 여주인공을 구해내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원래 출판사 측에서 제안한 것은 반 다인의 정통탐정소설 '그린살인사건'이었다. 박태원은 이 제안을 거절하고 '파리의 괴도'를 번역작으로 선택한 것이었다.그 선택 이유가 재밌다. 음산하고 잔혹한 반 다인의 탐정소설과 달리 이 소설은 독자들에게 '건전하고 명랑한 오락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코미디냐 하면 그 것도 아니다.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악당도 등장한다. 단지 그 내용이 허리우드식 모험활극에 가까워서 독자들이 쉽고 가볍게 읽을 수 있을 뿐이었다.이처럼 일제말기 동안, 가벼운 읽을거리가 건전하고 명랑한 오락으로서 칭송받고 있었다. 당연히, 생각을 깊게 하게 만드는 것은 불건전한 것이 되어버렸다. 대중문화와 관련한 이 기묘한 이분법은 태평양 전쟁으로 향하고 있던 일제말기의 정치적 상황과 깊게 연결되어 있었다. 중일전쟁에 이어서 서양세계와의 거대한 싸움을 준비하고 있던 일제로서는 내부의 모든 정치적 불만을 잠재우고 단속하여 일사불란한 상황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개인의 비판적 사고력을 마비시키는 데에 명랑한 오락은 더할 나위 없는 방안이었던 것이다.여기에 더하여 1940년의 조선 사회는 백백교 사건으로 무겁고도 음산한 기운에 휩싸여있었다. 백백교 사건이란 사이비종교 백백교 교주 전용해가 400명에 달하는 신도를 살해한 사건이다. 국운을 건 전쟁을 앞두고 있던 일제로서는 이 미개하고도 음울한 분위기를 정비해서 조선인의 에너지를 전쟁에 퍼붓도록 해야만 했다. 여기에도 역시 '명랑한 오락'의 전파가 필수적으로 요청되었다.우리는 불행과 슬픔을 경험하면서 기쁨과 행복의 가치를 더욱 강렬하게 느낀다. 명랑함만으로 이루어진 사회. 이런 사회에서 누가 과연 행복과 기쁨을 온전하게 느낄 수 있을까. 그래서 일제강점기 '명랑'이데올로기를 보고 있으면 이 그로테스크한 발상을 고안해낸 시대의 어둠과 불건전함, 비정상성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빛과 어둠, 슬픔과 기쁨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자명한 진리에서 이 시대는 고개를 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대구대학교 인문교양대학 초빙교수

2019-08-22 13:33:29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춘추칼럼]북한의 통미봉남은 구시대 발상이다

지금 남북관계는 참여의 기대를 높였던 작년과는 달리 경직된 상황이다. 북미대화는 물론이고 남북대화의 중단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엊그제 방한한 비건 미국 협상대표도 북한이 협상장에 나오지 않고 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지만 현재 협상을 앞둔 북미 간 샅바싸움은 지속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친서는 오고 가고 과거와 같은 위기상황은 없지만 하노이 회담 이후 반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볼 때 실질적인 측면에서 커다란 진전은 없는 상황이다.우리 정부는 북미협상과 남북대화가 선순환되어야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남북미 판문점 3자 회동의 성사와 조속한 북미 실무협상의 재개를 위해 노력해왔다. 3자 정상회동은 형식적으로는 미국의 손짓에 북한이 호응해서 개최된 것이지만 우리 정부는 이러한 회동이 성사될 수 있도록 뒷받침했다. 남북 간에, 한미 간에 신뢰관계가 없었다면 이러한 회동이 성사되지 못했을 것임은 분명하다. 트럼프 대통령도 한국을 떠나기 전 우리 정부의 노력에 감사를 표했다.이러한 노력을 통해 재개키로 한 북미협상에 거는 기대는 실로 크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통령이 직접 북미 실무협상의 고비를 잘 넘어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광복절 경축사의 내용대로 한반도가 북핵문제나 분단 구조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한반도의 평화와 공동 번영을 이루기 위해서는 북미관계의 개선이 동반되어야 한다. 한반도의 정전 체제는 남북이 당사자가 되어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주변국들의 중첩적 이해관계가 해소되어야 한다. 특히 현 시점에서 북미관계가 개선되지 않고서는 남북관계에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현재 북한은 과거보다 한미 연합훈련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북미 실무협상이 재개되면 한미 합동군사훈련의 폐지를 강하게 주장할 것이다. 한미 연합훈련은 연례적, 방어적 훈련이고 이번에는 전작권 전환에 대비한 필요 최소한으로 운영했다. 북한은 우리의 군사훈련에 대응하는 차원이라는 명분하에 수차례에 걸쳐 단거리 미사일과 방사포 등을 시험 발사하고 있고 우리와 미국을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내부를 결속하고 대미 협상력을 강화하기 위해 북한이 이러한 언행을 하고 있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럴수록 궁극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시간만 가고 있으니 답답하다. 특히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의 책임을 우리 측에 전가하면서 남북관계의 문을 닫아 놓아서는 안 된다.현재 북한은 "남조선 당국자들과 더 이상 할 말도 없고 마주 앉을 생각도 없다"고 하면서 대화 자체를 거부하고 있으며 북미관계에서 빠지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 남북 당국 간 대화는 그렇다 하더라도 민간 교류와 협력까지 막지 말아야 한다. 우리 당국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민간단체들이 순수하게 전개하려는 교류까지 정치적 이유로 차단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협의를 위해 만들어 놓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도 실질적인 소장회의가 열리지 못하고 있다. 불만이나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이 또한 대화를 통해 해결하려는 자세를 견지하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남북 간 다양한 교류와 협력을 통한 동질성 회복만이 공동 번영과 통일의 밑거름을 만들어나갈 수 있음을 상기한다.비핵화 협상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나아가 한반도 통일에 대한 주변국들의 이해관계는 갈수록 복잡해질 것이다. 이러한 주변국들의 이해관계를 잘 조정하고 우리가 원하는 한반도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한미동맹과 함께 남북관계의 발전이 중요하다. 북한의 통미봉남은 구시대적 발상이다. 경제발전이라는 새로운 노선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북한은 더 이상 실기하지 말고 남북관계를 통해 북미관계를 착실히 개선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 지방자치단체는 북한과의 협력에 대한 준비를 차분히 해 나가고 있다. 이후 남북 지방자치단체 간 자매결연과 교류가 이뤄진다면 공동 번영의 토대를 함께 구축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2019-08-22 13:11:59

장정옥 소설가

[매일춘추] 영원회귀의 오솔길

더위를 밀치고 9월이 온다. 내 가을은 귀뚜라미 울음소리와 함께 시작되곤 했다. 주택에서 아파트로 옮긴 후 귀뚜라미 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했다. 가을보다 먼저 다가와, 문풍지를 흔들듯 삶의 틈새를 비집고 들던 그 소리가 몹시 그립다. 귀뚜라미 소리는 여리면서도 강하다. 기분 좋은 음악처럼 끼륵대던 그 소리는 창을 닫아도 용케 잠결을 비집고 들어 가을이 끝나도록 내 삶의 언저리를 지켰다. 젖먹이들이 성인으로 자라도록 주택에서 살았다. 온 세상이 재개발로 뒤집어지지 않았으면 아름드리 라일락나무가 있던 그 집에서 아직 살고 있을 것이다. 주택의 소멸과 함께 4월마다 골목어귀까지 향기를 날리던 보라색 라일락꽃을 잃었고, 가을 벌레소리를 잃었고, 마당에서 탁구를 치던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를 잃었다. 주택에서만 들을 수 있는 가을 전령사들의 우짖음과 함께 디테일한 아름다움이 사라지고 삶은 급격히 단순화되었다. 가을이 오는데, 벌레울음소리 대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다. 음악을 크게 틀어놓았더니 옆집에서 벽을 쿵쿵 두드렸다. 음악이 들릴 정도로 벽이 얇은가?32세의 슈트라우스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연주 시간 33분의 교향시를 지었다. 뮌헨대학교에서 철학 강의를 들을 때였다. 그는 니체의 원작 서문을 교향시 서두의 표제로 사용했고, 에피소드를 가져와 제목도 붙이고 설명을 곁들여 아홉 개의 곡으로 나누었다. 슈트라우스는 인간의 기원이 담긴 니체의 사상을 극적으로 구성해내고, 1896년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에서 직접 초연을 했다.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완성한 것이 1884년이고, 12년 후 곡이 발표되었다. 니체가 살아 있을 때였다. 당시 생존했던 두 사람이 직접 만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영혼이 교감을 이루었으리란 연상은 충분하다. 시공간을 초월한 만남. 생각해보니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유의 전부일 것 같기도 하다.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완성하고 출판사를 찾았지만 책을 내주겠다는 곳이 없어서 자비로 출판했다. 그는 친구가 많지 않아서 고작 일곱 명에게 책을 나누어주었을 뿐이다. 책의 맨 앞장에 씌어 있는 글귀가 책의 내용만큼이나 심오하다. '모든 사람을 위한, 그러면서도 그 어느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 아마도 니체는 이 책이 쉽게 사람들의 이해를 받지 못하리란 사실을 알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니체는 살아서 그 책을 위한 교향시를 받았다. 작가에게 이보다 큰 선물이 또 있을까. 장정옥 소설가

2019-08-22 11: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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