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매일춘추] 1920년대 소년운동과 대구화단

[매일춘추] 1920년대 소년운동과 대구화단

지금 우리는 전환의 시점에 놓여 있다. 사회의 거대한 변화는 사람들의 사고를 전환시키고, 그러한 변화를 예술가들은 앞서서 반영해왔다. 사회를 바꾸는 것은 한 시대의 사건이지만, 이것을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들이었다. 수많은 사건과 사람들이 오늘 여기의 모습을 만들었기에 그러한 변화의 시점을 조금씩 이야기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 같다. 그래서 대구의 사회와 예술의 변화에는 어떤 계기가 있었고, 어떻게 방향을 잡아 갔는지를 중요한 역사적 배경을 기준으로 몇 회에 걸쳐 조금씩 서술해 보고자 한다.먼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20년대로 거슬러 가보자. 1927년에서 1929년 사이 대구에는 10대 청소년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과회'(영과회 또는 공과회로 불리기도 했다.)라는 예술 단체가 있었다. 1920년대에 이러한 조직이 나타난 배경에는 1919년 3·1운동으로 자극된 사회운동, 그중 전국 각지에서 불붙은 소년운동과 관계가 있다.3․1운동 이후 민족운동가들은 점진적으로 실력을 양성하고, 독립의 힘을 모으고자 문화운동을 일으켰다. 그런 가운데 1920년대 소년운동은 전국적으로 붐을 이루었는데, 1926년에는 전국에 126개의 소년단체가 존재할 정도였다 한다. 특히 이때의 소년운동은 10대 후반에서 20대의 젊은이들이 주축이 되었고, 소년을 위한 운동임과 동시에 소년들이 자발적으로 주도한 소년운동이었다.지난해 대구예술발전소에서 크게 조명했던 이상춘(1910-1937)은 영과회를 조직하고 주도한 인물로 1920년대 중반 대구노동소년회와 1927년 대구소년동맹 등에서도 활동하였다. 영과회의 조직은 소년들의 예술로 사회에 영향을 미친 문화운동이었다. 영과회에서는 소년들의 시와 동요, 그림을 공개모집하여 전시회를 열었다. 당시 10대의 소년들 가운데는 미술에서는 이인성을 비롯해, 배명학, 이갑기, 김성암 등이 있었고, 동요와 문학에서는 신고송, 윤복진 등이 다음 세대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었다.그리고 영과회가 있게 된 또 하나 중요한 배경에는 이들의 활동을 후원한 선배 성인 예술가들이 있었다. 그들은 1927년 영과회에 찬조출품 형식으로 동참하였다. 미술에는 서동진, 박명조, 최화수, 김용준, 문학에 이상화 등과 같은 쟁쟁한 인물들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1920년대 초 이미 개인전을 개최하는 등 대구의 새로운 예술의 시작을 알렸고, 이제 다음 세대를 이끌고 있었다.선배의 후원과 후진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으로 1920년대 대구의 근대 화단은 조금씩 모습을 갖추어 갔다. 제대로 된 교육기관도 없었고, 일본인들에 의해 이식된 화풍이라는 한계도 있었지만, 독립에 대한 열망처럼 예술에서도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확장하려 하였다. 거기에 당시의 신진들이 새로운 문화운동으로 호응하고 있었다.

2020-04-07 14:17:06

[유물로 읽는 동서양 생활문화]소크라테스, 플라톤과 4·15 총선

[유물로 읽는 동서양 생활문화]소크라테스, 플라톤과 4·15 총선

코로나와 중세 페스트, 피렌체대구경북을 비롯한 대한민국이 전례 없는 전염병 국면에 악전고투 중이다. 한국만이 아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세계적으로 100만 명을 훌쩍 넘었다. 미국이 25만 명을 넘어 가장 많지만, 사망자는 이탈리아가 1만4천 명을 넘어 제일 심하다. 지금부터 700여 년 전에도 그랬다. 흑사병 페스트는 칭기즈칸의 손자 바투가 흑해 연안 우크라이나에 세워 유럽인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킵차크한국을 거쳐 서방 세계로 전파됐다. 1347년 이탈리아를 초토화시킨 뒤, 유럽과 지중해 전역을 휩쓸며 유럽 인구의 5분의 1을 집어삼켰다. 코로나 국면에서 최상의 전파 방지책은 자가 격리지만, 당시는 한적한 시골로의 이주였다. 그때 나온 근대문학의 효시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이다. 지금도 피해가 큰 르네상스의 고장 피렌체 교외를 배경으로 한다.로마 카피톨리니 박물관의 소크라테스피렌체에서 고속철도로 1시간 30분여 남쪽에 로마가 나온다. 1천 년 로마제국의 심장부이자 가톨릭의 구심점 바티칸이 자리한다. 시가지 한복판에 카피톨리니 언덕이 솟았다. 로마가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전환한 B.C 509년 최고신 유피테르(주피터, 그리스의 제우스)에게 바친 신전, '카피톨리움'이 들어섰던 자리다. 공화정의 중심부 포럼이 내려다보이는 이 언덕에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카피톨리니 박물관이 탐방객을 맞는다. 교황 식스투스 4세가 1471년 그리스로마 조각을 기증한 이래 1734년 교황 클레멘트 12세가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서유럽 유수한 박물관 가운데, 그리스로마를 빛낸 인물의 두상을 가장 많이 전시한다. 역사책에서 이름으로 되뇌던 로마 공화정의 아버지 브루투스, 그리스 학문의 출발인 밀레토스 학파의 아낙시만드로스, 그리스 최초의 문학 작품 「일리아드」의 저자 호메로스, 소포클레스를 비롯한 B.C 5세기 3대 비극 작가…, 학문과 민주주의의 상징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두상도 감흥을 안긴다.아테네의 소크라테스, '지행합일'발길을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살던 아테네로 옮겨 보자. 로마 카피톨리움의 모델은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파르테논 신전이었다. '아크로'는 '높다, 크다'이고 '폴리스'는 '도시'다. 그러니, 아크로폴리스는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곳, 신의 영역으로 신전을 짓는다. 지금 보는 파르테논 신전은 B.C 480년 페르시아 전쟁 때 불탄 것을 B.C 438년 재건한 것이니, B.C 399년 사형당한 소크라테스도 매일 바라봤을 터이다. 파르테논 신전에서 서쪽 아래가 장도 서고, 정치 집회가 열리던 아고라다. 소크라테스가시민과 제자들을 만나며 무엇이 '올바르게 사는 길'인지 문답을 통해 답을 찾던 곳이기도 하다. 소크라테스가 인류의 영원한 스승으로 남은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요인이 있지만, 지행합일(知行合一)이 요즘 시국에 제일 먼저 떠오른다.플라톤 "정치인은 극도로 검소해야"소크라테스는 그럴듯한 말로 민중을 현혹하는 선동가(데마고그) 대신 능력을 보고 공직자를 뽑으라고 충고했다. 독재를 꿈꾸는 이들은 소크라테스를 미워했고, 결국 신에 대한 불경죄와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민회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도록 부추겼다. 제자들은 탈옥할 수 있도록 조치했지만, 소크라테스는 '탈옥'이라는 잘못된 일을 할 수 없다며 독배를 마셨다. 잘못된 일을 직접 하지 않는 것은 물론 간접적으로도 간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말뿐 아니라 실천에 옮겼다. 지행합일의 숭고한 표상으로 인류사에 영원히 남은 거다. 제자 플라톤은 선동 정치가들에게 속은 시민들의 그릇된 결정으로 스승이 사형당하자 큰 충격을 받았다. 어리석은 다수의 정치 '중우정치'(衆愚政治)를 경계하는 사상은 여기서 나온다. 정치란 이성을 갖추고, 극도로 검소하게 사는 철학 현인이 맡아야 한다는 '철인정치'(哲人政治)를 「국가론」에서 이상으로 내세운다. 플라톤의 국가론을 '정의에 대하여'라고도 부른다.플라톤의 '중우정치' 벗어날 총선4·15 총선이 눈앞이다. 소크라테스가 죽음으로 웅변했던 지행합일의 후보, 플라톤이 강조한 극도로 검소하며 정의를 세울 후보는 누구인가? 거꾸로 생각하면 쉽다. 스스로 말한 것과 반대로 행동하는 정당이 어디인지, 입으로만 정의와 공정을 외치며 뒤로 반칙과 돈벌이에 혈안이 된 세력이 어디인지. 지난 8월 조국 법무부장관 지명 파동 이후 다 드러났으니 말이다. 2천400년 전 플라톤이 경계했던 중우정치를 벗어날 총선 뒤의 새로운 대한민국을 그려본다.

2020-04-06 18:00:00

[박창원의 기록여행] 수돗물로 세수하게 해달라

[박창원의 기록여행] 수돗물로 세수하게 해달라

'목하 개최 중인 미소공동위원회와 정부수립 문제가 급 전개하고 있는 차제 각 지방의 실정을 조사하여 건국사업에 참고자료를 만들고자~사회실정조사단을 조직하는 동시에 단원은 각 단체의 권위자 1명씩을 선출하여 구성하였다.~본대는 호남선 경부선 방면의 2대로 하여 오는 31일 오후 출발하기로 하였다.'(매일신문 전신 남선경제신문 1946년 3월 31일 자)해방은 되었지만 사회‧경제적 상황은 좀체 나아지지 않았다. 한반도의 신탁통치와 임시민주정부 수립 논의를 시작한 미소공동위원회는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남북 분단의 고착화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러자 사회단체들은 주민들의 의견을 미군정 등에 전달할 필요성이 생겼다. 사회실정조사단을 만들어 여론 수집에 들어갔다. 이처럼 당시에는 당국이나 신문사조차 여론조사반을 결성해 일반 지방민들의 여론 동향을 알아보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졌다.지금의 여론조사와는 비교할 수 없었던 그 시절, 민심을 듣는 도구는 바로 발품이었다. 지금의 전화기를 발품이 대신했다. 그렇다고 매번 사람을 일일이 만나서 물어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인 투표함처럼 생긴 여론함으로 주민 여론을 듣는 것이었다. 해방 이태 뒤인 8월 초, 사람이 많이 오가는 도청과 역전 등 대구시내 10군데에 여론함이 설치됐다. 그 여론함에 의견을 적어 넣도록 했다.여론함에는 주로 어떤 내용들이 들어왔을까. 정치 관련 의견이 80건이 넘을 정도로 가장 많았다. 정당 관련 의견이나 정치인 체포령 철회 같은 내용이었다. 주민들은 먹고살기 힘든 상황에서도 정치의 미래에 큰 관심을 가졌다. 게다가 이념적인 대결도 정치 관심에 한몫했다. 정치 관련 의견 중에는 국호를 인민공화국으로 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이는 앞서 실시했던 조선신문기자회의 여론조사에서도 적지 않게 표출됐던 내용이었다.이와 함께 주민들의 일상과 관련된 의견도 빠지지 않았다. 쌀을 날짜에 맞춰 제때 배급해달라는 요구였다. 굶주림이 낯설지 않았던 식량난은 시간이 흘러도 쉽사리 해결되지 않았던 것이다. 또 악질 경관을 제재해달라는 내용도 있었다. 악명 높았던 일제 경찰의 습성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다. 특히 수돗물에 대한 불만이 눈에 띄었다. 수돗물로 세수를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하루에 한두 차례씩 찔끔 나오는 수돗물이 시간조차 들쭉날쭉하다 보니 세수를 못하고 출근하거나 퇴근 후에도 씻지 못하고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수돗물 혜택을 받는 사람도 적었지만 불만은 높았다.사회실정조사단의 발품 조사나 여론함의 의견은 그 시점의 민심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해방 직후 '수돗물로 세수를 하게 해달라'나 '쌀을 제때 배급해 달라'는 그때로서는 다급한 사안이었다. 그런 여론도 하루하루 지나면서 차츰 사그라졌다. 여론을 '순간의 스냅사진'으로 빗대는 이유다. 이번 4‧15 총선의 스냅사진도 그렇다. "누가 1위인가"는 눈에 띄어도 "꼭 필요한 사람은 누구냐"는 숨은그림찾기가 되었다.

2020-04-06 18:00:00

[세상속의 종소리] 세 교황이 재위했던 1978년

[세상속의 종소리] 세 교황이 재위했던 1978년

코로나19 감염자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고 이탈리아에는 이미 1만 명 이상이 사망하였다. 코로나는 망자의 손을 잡고 뺨을 만지는 전통적인 마지막 인사도 허용하지 않는다. 가족들은 슬픔을 억누르며 그냥 참는 중일 것이다, 봄비가 내리던 3월 27일 저녁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 홀로 서서 코로나로 비탄에 빠진 인류를 구원해 달라는 특별 기도를 올렸다. "짙은 어둠이 광장과 거리와 도시를 뒤덮었다. 우리 모두는 같은 배를 탄 연약하고 길을 잃은 사람이다. 모두 같이 노를 저어가며 격려가 필요한 가난한 사람들이다. 모두 하나가 되자"며 연대를 호소했다. 세상의 아픔을 위로하는 영적 리더의 권위를 보여 준 것이다.교황은 13억 신도의 가톨릭교회 수장이자 바티칸 언덕에서 순교한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이다. 초기 교황들은 로마의 주교로서 기독교의 전파와 교리의 판정 및 해결을 맡았고 중세 이후에는 유럽 역사의 중심이자 종교적 영주였다. 교황을 제외하고는 유럽 역사를 논의조차 할 수 없다. 강해진 세속 권력에 의해 흔들린 적은 있었으나 교황은 십자군 원정을 지시할 수 있을 정도로 왕과 제후를 뛰어넘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현대에도 가톨릭 신앙과 인권의 수호자로 알려져 있다,교황이 서거하면 15일 내에 콘클라베의 비밀투표로 새 교황을 선출한다. 남자 신도는 누구나 피선거권이 있다. 그러나 16세기 이후에는 오직 이탈리아인 추기경만 교황으로 선출되었고, 20세기 들어서야 변화되었다. 1978년 폴란드의 요한 바오로 2세가 선출되었고 이어 독일의 베네딕토 16세와 현재 아르헨티나의 프란치스코 교황으로 이어졌다.사람들은 교황으로 선출될 때 모두 큰 교구의 주교였을 거라 생각하나, 과거에는 권력자의 아들과 성직자의 친척도 있었다. 로마 백작의 아들 요한 12세는 18세(또는 25세)의 나이에 즉위하였고, 베네딕토 9세는 20세에 처음 선출되어 3차례나 중임하였다. 이들은 세속적인 통치자와 교회 지도자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중세 이후 교황의 재임기간은 평균 10년이었다. 32년을 재임한 19세기의 비오 9세가 최장이었고, 요한 바오로 2세가 두 번째이다. 대부분 고령이었고 격무에 시달렸던 교황이 일찍 서거한 경우도 많다. 15일을 재임한 90세의 보나파시우스 6세를 비롯하여 1개월을 넘기지 못한 분이 9명이나 된다. 선출된 새 교황이 또 서거하여 같은 해에 세 분의 교황이 있었던 해도 12번이나 된다. 1978년 8월 바오로 6세가 서거하고 10월에 65세의 요한 바오로 1세가 선출되었다. 신망이 높던 그는 선출 직후 '왜 하필이면 나란 말인가?'라고 했다. 교황직의 무거움과 부담감을 말한 것이다. 그 요한 바오로 1세는 취임 33일 만에 서거하였고 그해 말 요한 바오로 2세가 새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해는 373년 만에 세 분의 교황이 재임했던 특별한 해가 되었다.1978년 독일에서 만든 '세 교황의 해, 1978년'이란 주석종이 있다. 이 종을 제작한 장인의 속마음이 궁금해진다. 한 해에 인류의 위대한 스승을 세 명이나 모셨다는 기쁨을 남긴 것일까? 역병에 힘들어하는 국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어른조차 없는 이 봄에 세 분의 교황께 우리의 갈 길을 여쭈어본다.

2020-04-06 18:00:00

[세계의 창] 동해안 관광명소를 개발 국제화시키자 -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세계의 창] 동해안 관광명소를 개발 국제화시키자 -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지금은 꽉 막혔지만, 다시 관광 수요가 살아날 것이다. 지금은 차분하게 준비할 때이다. 관광산업도 국내 수요만으로는 부족하다.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해야 한다. 경북 동해안은 자연경관이 무척 아름다고 먹거리도 풍부할 뿐만 아니라, 역사성에 기반한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지역이 여럿 있어 국제 관광벨트로 성장할 수 있다.예를 들면 영덕군 영해에 있는 관어대 주변도 국제적인 관광 후보지로 손색이 없다. 참 기이하게 생긴 산(180m)이다. 동해 바다로 향하던 산이 갑자기 가파르게 올라가서 동해 바다 앞에서 절정을 이룬 다음 절벽처럼 뚝 떨어지는 모습이다. 관어대에 올라서면 탁 트인 동해 바다가 보인다. 왼쪽 아래로는 송천강과 넓은 영해평야가 보인다. 외가인 괴시마을에서 자라면서 관어대에 자주 올라가서 놀았다는 목은 이색 선생은 관어대소부라는 명문장을 남겼다. 고기가 유영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하여 관어(觀魚)대라고 이름을 붙인 것도 목은 선생이다. 고려 말의 원천석 선생, 점필재 김종직 선생 등 조선의 많은 선비들이 관어대 관련 글을 남겼다. 관어대에서 바닷길을 따라 차로 10분 거리에 대게의 고장 축산항이 있다. 한때 섬이었던 죽도산이 동해 바다를 막아주면서 천혜의 미항이 만들어졌다. 고려 말인 1380년대 성을 쌓고 수군 만호를 두어 왜구의 침입을 막았다. 그 축산성터는 지금도 남아있다. 적의 침입을 알렸다는 봉화대도 있다.1830년대 축산항에 살던 선비가 이장우 영덕현감에게서 받은 편지글이 최근 번역되었다. 그 선비가 보낸 명란이 너무 맛있다는 내용이다. 김에 대한 기록도 나온다. 권근 선생의 양천록에 나오는 대게와 함께 축산항은 명란과 김의 고장임이 고증된다. 임진왜란 때 경주부윤으로 승전보를 올린 박의장의 종택이 있는 무안 박씨네 도곡도 축산항에서 차로 10분 거리이다. 관어대의 바로 이웃마을로서 양반가의 가옥이 즐비한 괴시마을도 방문할 가치가 있다. 이렇게 괴시마을-관어대-축산항-도곡을 잇는 4군데는 자연환경, 먹거리 및 역사성을 모두 갖추고 있다.국가의 안녕을 위하여 바다에 자신의 무덤을 만들어 달라고 명하여 만들어졌다는 신라시대 문무왕의 수중왕릉인 대왕암을 중심으로 한 경주의 감포 해안가도 좋은 후보지이다. 자신이 용이 되어 왜구를 물리치겠다고 했다니 이렇게 훌륭한 왕이 또 있을까? 신라는 선부(船府)를 둘 정도로 바다를 중요시했다. 현재 해양수산부의 전신인데, 이렇게 오래전인 7세기부터 선박과 바다를 위한 국가기관을 두었다니, 세계 최초가 아닌가 싶다. 얼마나 훌륭한 스토리텔링이 될 것인가? 이와 관련된 감은사지탑도 있다. 올해 개항 100주년을 맞는 인근 감포항의 신선한 수산물과 연결시키면 훌륭한 국제관광자원이 될 것이다.이렇게 동해안의 자연풍경, 먹거리 그리고 역사성이라는 삼박자를 갖춘 지역을 발굴하여 국제관광지로 개발해보자. 동해안의 관광산업도 이제는 국제화되어야 한다. 관광안내표지 등이 외국인의 방문에 적합하게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으로 된 표지, 안내서를 만드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KTX 노선이 포항이나 경주까지 이어지므로 외국인 관광객들을 편리하게 맞이할 수 있다. 역에서부터 해안의 관광지까지는 관광버스를 제공하면 좋을 것이다. 관광가이드가 버스에 승차하여 영어 등 외국어로 직접 안내를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1박 이상 관광을 하는 외국인을 위한 숙소나 편의시설도 갖추어야 한다. 민박을 원하는 외국인 관광객도 있을 것이다. 민박을 제공할 현지인들에게 간단한 대화가 가능한 외국어 교육을 시켜서 외국 관광객용 민박집을 운영하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아침에 동해안 어촌에서 잡아오는 생선과 그 출하 과정에 대하여 설명할 가이드도 필요하다. 외국인 단체관광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외국의 마을들과 자매결연을 체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동해안 자연의 아름다움과 먹거리를 역사와 더불어 외국에 체계적으로 알리는 일이 선행되어야 함은 물론이다.동해안 관광은 기존 내륙 중심의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과 차별화된 경북의 관광명소가 될 수 있다. 내륙에 위치한 이들과 달리 바다라는 자연환경과 수산물 먹거리가 추가되기 때문이다. 경상북도가 환동해의 중심지인 포항에 경북 동부청사를 두고 해양수산, 항만, 독도, 해양관광레저 등을 동해 바다 경영에 열심이다. 경상북도는 자연환경, 수산물, 역사성 등 삼박자를 갖춘 동해안 명소들을 국제적인 관광명소로 개발하는 작업에 가일층 노력해주기를 바란다.

2020-04-06 14:58:45

[기고]코로나19에서 식량안보를 본다

[기고]코로나19에서 식량안보를 본다

코로나19가 지구촌을 마비시키고 있다. 발생국이 178개 국가에 이르고, 누적 사망자 수는 6만여 명을 넘어섰고, 기세 또한 가파르다. 이로 인한 피해는 경제, 종교, 사회, 문화, 스포츠 등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먹거리 문제도 마찬가지다. 강력한 이동 제한과 봉쇄 조치에 따른 불안감으로 일부 국가에서 식료품을 위시한 생필품 사재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이에 자국 내 식량 수급 불안으로 이어질까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이미 쌀 수출 3위국인 베트남 정부는 3월 24일부터 수출 중단을 결정했고, 러시아 또한 밀, 콩을 비롯한 모든 곡물에 대해 수출을 중단하고 있는 등 여러 국가들에서 자국산 농산물에 대한 자물쇠를 준비 중이다.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유럽과 미국 등에서도 외국인 노동자 수급과 공급망의 불안정 확산으로 자국 내 식량 생산과 공급 부족 현상이 우려됨에 따라 주요 농산물에 대한 대외 유출을 검토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예상된다. 쌀, 밀을 비롯해 축산물 등 주요 생산국이자 수출국의 생산 차질과 공급 제한 조치에 따라 국제 식량 가격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코로나19 사태의 이면에는 세계적 먹거리 공급 쇼크 사태라는 강력한 폭탄이 존재하고 있다. 식량전쟁, 식량안보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님을 다시 한번 각인할 때다.코로나19 상황이 전시 상태를 방불케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가 유연하고 차분하게 대응할 수 있는 것은 농업·농촌이 국가 수호의 안전핀으로 우리의 먹거리를 굳건히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후(戰後)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며 식량 원조를 받았고, 1970, 80년대 두 차례에 걸친 석유파동과 1997년 IMF 사태 등 대내외적으로 수없는 국가 위기 상황에서 굳건한 버팀목 역할을 수행해 온 것은 오롯이 농업·농촌이다. 농도(農道) 경북이 그 중심에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코로나19 사태에서 보듯 자국민을 보호하고, 자국 이익을 위해서는 언제든지 문을 닫을 수 있는 식량전쟁이라는 냉혹한 국제 생태계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은 23% 정도에 불과하다. 사료용을 제외한 식량자급률 또한 50%에 미치지 못한다. 밀, 콩, 옥수수를 비롯해 주요 곡물의 77%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자급 가능한 쌀과 감자, 고구마 등을 제외하면 사정은 더 좋지 않다. 국가 차원의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식량자급률은 오히려 뒷걸음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 기후변화에 따른 대체작물 재배 및 품종 개발과 안정적 농업용수 공급 시스템 확충, 외적 요인에 상대적으로 강한 스마트 팜 확대, 노동력 절감을 위한 밭작물 기계화 촉진은 물론 식용 곤충산업 육성, 축산물 대체 배양육 개발 등 모든 지혜와 역량을 모아 미래 후손들에게 물려줄 먹거리 창고를 꾸준히 키워나가야 한다.아울러 이와 같은 사태가 다시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곤 누구도 장담할 수 없기에 국가 먹거리 공급망을 더욱 공고히 하고, 로컬푸드 시스템에 의한 '국내산 농산물 입맛 들이기'에도 한층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독립운동가이자, 농민운동가인 매헌(梅軒) 윤봉길 의사가 농민독본(農民讀本)에 남긴 "우리나라가 돌연히 상공업 나라로 변하여 하루아침에 농업이 그 자취를 잃어버렸다 하더라도, 이 변치 못할 생명 창고의 열쇠는 의연히 지구상 어느 나라의 농민이 잡고 있을 것입니다"라는 말씀을 빌려 먹거리를 지키는 농업인이 있기에 코로나19의 빠른 종식과 대한민국의 희망을 말하고 싶다.

2020-04-06 13:52:10

[매일춘추] 문화예술 아카이브 이야기

[매일춘추] 문화예술 아카이브 이야기

흔히 '아카이브 구축'의 의미를 기록을 축척한다로 쓰고 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의 코로나19 전세계 실시간 정보도 질병 바이러스계의 아카이브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아카이브(arcchive)란 '기록보관소'나 '기록을 보관하다'라는 사전적 의미로 쓰이며, 주로 컴퓨터 분야나 전문분야에서 사용되었다.알게 모르게 '포노 사피엔스' 시대를 맞아 스마트폰 필수 시대가 되면서 아카이브는 대중들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익숙하게 녹아든 상태이다. 자연스럽게 녹아든 아카이브 구축을 통하여 재조명하고 활용함으로써 전방위적으로 응용되고 있다. 문화예술계에서도 현재 진행형으로 적극 아카이브 구축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국가에서 뿐 아니라 지자체에서도 각 지역의 문화예술 아카이브 구축을 진행·시도하고 있다.대구는 예향, 문화예술 도시로 1910년대부터 걸출한 문화예술인들을 배출한 곳이다. 안타깝게도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빠른 산업화시대를 거치면서 문화예술의 아카이브는 체계적으로 구축되지 못하였다. 그로 인해 소실되고 사장된 문화예술의 자료들이 사라져가고 있는게 현실이다. 대구는 대한민국의 근대문화예술의 발원지라고 하여도 손색이 없는 지역으로 1900년대부터 1960년대 근대문화예술의 중심축을 이루었던 곳이다.2019년 대구시 및 '대구문화'를 중심으로 '대구문화예술 아카이브 구축'을 발표하였고, 각 기관(단체)별 산재된 문화예술의 아카이브를 통합하여 대구문화예술의 전반적인 아카이브 컨트롤 타워로서 관리시스템을 구축한다고 하였다. 8년간 아카이브 구축을 담당한 사람으로서 고무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다.며칠 전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는 '대구문화예술회관 디지털 아카이브(온라인 서재)'를 일반인에 공개하였다. 우선적으로 1964년 이후 대구문화예술회관의 공연 전시의 역사를 디지털 아카이빙화 하였다. 두 곳의 디지털 아카이브 작업은 시공간의 제약을 벗어나 지역 문화예술자료들의 소실과 훼손을 방지하고, 디지털 변환을 통해 영구적 보존의 방안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대단히 가치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대구문화의 '대구문화예술 디지털 아카이브'와 대구문화예술회관의 '온라인 서재'는 앞으로 대구 문화예술의 보존과 활용을 위한 첫 발걸음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는 한국전쟁 이후의 자료들만 있지만, 앞으로는 한국전쟁 이전, 일제강점기의 근현대 문화예술자료들을 발굴하고 수집하여 영구적인 디지털 아카이빙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또한 지역의 원로 예술인들을 찾아다니면서 근대의 문화예술 자료를 수집하고, 개인이 지닌 문화예술자료의 보존을 위해 아카이브 커리큘럼을 개설하는 방안도 있었으면 한다. 일상 속에 예술이 스며든 것처럼, 일상 속에 아카이브가 스며들어 사장 되어 있는 문화예술 자산을 발굴하고 재조명한다면 삶이 한층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2020-04-06 11:50:16

[최진석의 새 말, 새 몸짓] 문제는 매력이다

[최진석의 새 말, 새 몸짓] 문제는 매력이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이런 말 저런 말을 하며 산다. 책을 써도 그것이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글을 발표해도 그것이 실린 매체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니 결국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삶이다. 목적은 단 하나다. 나의 완성과 더불어 내가 살고 있는 공동체(나라)의 독립과 자존도 이뤄야 하기 때문이다. '완성'이라고 해 놓으면 그 단계가 있기는 한지, 완성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느니, 꿈도 야무지다느니, 완성을 꿈꾸지 않아야 완성된다느니, 잘난 체 한다느니 하고 말도 많을 것이다.그냥 죽기 전에, 산다는 것이 나에게는 무엇이었는지 정도의 자각만 할 수 있어도 그것을 나는 완성이라고 해버릴 터이니,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내 깜냥에 열반이니 초월이니 하는 정도의 단어가 어찌 가당치나 하겠는가. 하지만 보살행이니 지적인 삶이니 실천가적 삶이니 깨달음이니 하는 단어들을 남몰래 말해보기는 한다. 가끔은 미학적 삶, 대장부의 삶을 떠올려보기도 하다가, 허파에 바람이 단단히 들고,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이 떠올라 바로 머리를 흔들어 털어버린다.그 정도의 허풍과 이 정도의 소심함 사이에서 이리저리 방황한다. 방황하는 나를 보며 또 방황한다. "지식인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이 아파하는 병을 함께 아파하는 사람이다"는 정도의 말을 짓고 그대로 한 번 해 보려도 하고, "지식인은 정답을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가 있는 곳에 처하는 사람이다"는 말도 지어서 그대로 한 번 해보려고도 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말을 한다.말하는 자가 감당해야 할 가장 근본적인 짐은 뭐니 뭐니 해도 그 말이 옳은지의 여부다. 누구든지 자신의 말을 옳은 말로 확신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말을 하겠는가. 전문 사기꾼이라도 스스로 옳은 말을 하는 자로 확신하지 않으면 사기 행각은 성공하기 힘들다. 세상의 모든 말들은 각자에게 다 옳은 말이다. 틀린 말과 옳은 말 사이의 다툼은 간단하다. 틀린 말은 지고, 옳은 말은 이겨야 한다는 당위를 동반하기 때문에 옳은 말에게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그렇지만 세상의 거의 모든 다툼은 옳은 말들끼리 벌이는 것이 거의 다다. 심지어 예수님과 율법주의자들의 다툼도 이치는 같다. 예수님은 자신이 옳다 하고, 율법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옳다 했다. 우파는 자신이 옳다 하고, 좌파는 또 자신이 옳다 한다. 사회주의자는 끝까지 자신이 옳다 하고, 자본주의자는 끝까지 자신이 옳다 한다. 이러하다면, 세상의 거의 모든 다툼은 옳은 말과 옳은 말 사이의 다툼이다.그래서 세상은 해결되는 일이 없이 언제나 혼란스럽다. 옳은 말과 그른 말 사이의 다툼은 간단한 일이지만, 옳은 말과 옳은 말 사이의 다툼은 해결난망일 수밖에. 옳은 말과 옳은 말 사이에서 벌어지는 다툼은 논쟁과 토론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우리는 대화로 서로를 설득하여 양쪽이 조금씩 양보하면 된다고 말하지만, 이는 관념에서나 가능하지 실제 세계에서는 없을 일이다. 양보하는 일이 실지로 일어났다면, 이는 필시 말로 한 대화의 힘이 아니라 말을 넘어선 어떤 것의 압력에 의한 것이다.우파나 좌파도 국익만을 생각하고 국민만을 보고 가면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서 포용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지만, 그런 일이 정치 현실에는 없다. 나는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본 적이 없다. 그런 아름다운 현상을 목격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 주도권은 누구에게로 가는가? 그것은 옳고 그름 너머의 다른 어떤 힘을 가진 자에게로 간다. 그래서 주먹이 있고, 정치가 있고, 전쟁이 있다. 주먹도 정치도 전쟁도 옳은 말과 옳은 말 사이의 다툼을 넘어가는 특별한 방식이다. 말만으로는 안 되기 때문이다.예수의 말이 논리와 정당성으로 힘을 얻었을까? 논리라는 것은 대부분 힘을 얻은 후에 그 힘을 정당화시켜주는 역할을 하곤 한다. 예수는 무엇으로 힘을 얻었을까? 말과 전혀 다른 어떤 것인데, 그것은 십자가에 못 박힌 사건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사건을 당하지 않았다면 그의 말은 설득력을 얻기 어려웠을 것이며,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은 자들이 가진 정당성을 자신에게로 옮겨놓지 못했을 것이다.일본에는 요시다 쇼인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막부는 낡았고, 미국을 필두로 한 외세의 침략은 거칠었다. 막부를 타도하고 왕을 모시는 새로운 체제라야 일본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체제개혁을 시도한다. 쇼카손주쿠라는 조그만 학교에서 90여명의 인재를 배양하여 메이지 유신의 실행자들로 키워냈다. 새로운 독립국가로서의 일본을 완성하는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런데 반 막부 운동을 하다가 막부 세력에 의해 처형이 되지 않았다면, 요시다 쇼인의 말이 제자들에게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 요시다 쇼인의 말은 말 이상의 어떤 것을 얻어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요시다 쇼인에게서는 말 이상의 어떤 것이 바로 처형당한 사건이다. 요시다 쇼인은 스스로 처형당함으로서 처형한 자들이 가지고 있던 정당성을 자신에게로 뺏어올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지금 좌파가 주도권을 가졌다. 해방 후부터 권력을 잡으려는 집요한 노력이 완성되었다. 좌파가 반공 이데올로기로 가해졌던 극심한 탄압을 겪으면서도 결국 권력을 잡을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좌파의 말은 옳고 우파의 말은 틀렸기 때문일까? 그건 아니다. 좌파는 좌파대로 옳고, 우파는 우파대로 옳다. 나는 좌파가 말 이상의 어떤 것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옳다고 하면서 버티는 쓰잘데기 없는 긴장을 돌파했다고 본다.말 이상의 어떤 것이 예수에게서는 십자가에 못 박힌 일이고, 요시다 쇼인에게서는 막부로부터 당한 처형이다. 좌파가 가진 말 이상의 어떤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일이나 요시다 쇼인이 처형당한 일에서 조직되는 것과 비슷한 어떤 흡인력인데, 그것을 매력이라 하자. 우파에게는 매력이 없다. 좌파는 이런 매력을 가졌기 때문에 힘의 중심축이 좌파 쪽으로 이동하였다.삶은 정치 영역에서 종합적으로 노출된다. 정치는 말이다. 그런데 말이란 것이 말을 넘어서는 어떤 것에 의하지 않으면 설득력이 없다. 말은 말 아닌 것을 영양제로 해서 산다. 말을 넘어서는 어떤 것으로 말을 압도해야만 매력이 만들어진다. 일찍이 그리스 사람들은 그것을 티메(TIME)라고 했다. 어떤 한 사람이 스스로 자신에게 부여한 소명을 장기간 수행하여 탁월함에 이르면 공동체는 그에게 존경이라는 선물을 준다. 지도자가 발휘하는 힘은 공동체가 주는 이 존경에 의지한다. 말이 아니다. 존경을 받는 사람이 발휘하는 흡인력을 매력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지도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이 티메에 관심을 가지면 이로울 것이다. 지도자는 말 이상의 어떤 것을 가져야 한다.좌파들은 자신들에게 스스로 부여한 소명을 장기간 수행했다. 반독재 투쟁을 오래 했으며, 통일 운동을 오래 했으며, 노동운동을 오래 했으며, 환경운동을 오래 했으며, 인권운동을 오래 했으며, 빈민운동을 오래 했으며, 참교육 운동을 오래 했으며, 민주화 투쟁을 오래 했다. 그들이 오래 붙들고 늘어졌던 '반독재', '통일', '노동', '환경', '인권', '빈민', '참교육', '민주화' 등등의 주제가 말은 좋지만 실재로는 엉터리라느니, 결국은 반정부하다가 반국가로 빠져버렸다느니, 이제는 완장으로 전락했다느니, '내로남불'의 전형이라느니 하는 비판들은 정치 영역에서 설득력의 확보라는 면에서 말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그들은 어쨌든 그 주제를 가지고 청춘부터 말년까지 불사른 투신의 역사를 가졌다. 어떤 문제를 붙잡고 그것을 해결하는 일을 자신의 과업으로 삼고, 그 과업을 위해서 목숨을 걸어보았다. 예수의 십자가나 요시다쇼인의 처형과 유사한 것을 자기 자신의 운명으로 삼아본 경험이 있다. 게다가 없는 돈에서라도 이런 과업을 위해 스스로 호주머니를 턴 사람들이다. 후속 세대를 기르기 위해 야학을 했으며, 야학을 위해 자신의 부귀와 출세를 포기해봤다. 자신이 스스로 정한 소명에 자신을 전부 바치고 게다가 목숨까지 걸어본 인간에게 어찌 매력이 없을 수 있겠는가. 이 과정에서 발각된 인격적 결함들이 가끔 폭로되기도 하지만, 그들이 세운 매력을 뿌리부터 흔들 정도까지는 아니다. 좌파는 말 이상의 어떤 것을 가졌다.우파는 이런 매력을 건축하는 데에 실패했다. 건국(새정부수립)과 산업화 과정에서 건축했던 매력은 이미 약발이 다했다. 우파가 권력을 뺏긴 것도 한마디로 말하면 산업화 이후까지 지속될 매력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매력을 가지려면 우선 자신이 해야 할 일부터 해야 한다. 우파는 보편적인 이념보다는 국가의 이익을 앞세운다. 그래서 우파에게는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필수다. 국가에 대한 충성심은 국방과 조세로 실현된다.우파는 반드시 군대를 가야하고, 세금을 잘 내야 한다. 국방과 조세가 어찌 우파만이 해야 할 일이겠는가. 좌파에게도 당연한 일인 것은 맞다. 우파에게는 이 두 가지를 당연하게 여기는 정서적이고 심리적인 감수능력이 좌파보다는 훨씬 더 강해야 한다. 이 두 가지를 자신의 정치적 근거로 삼아야 한다. 군대를 기피하고, 세금을 회피한 적이 있는 사람들이 우파에 많이 있다면 이는 '입우파'일 뿐이다. 군대를 기피하고, 세금을 회피한 사람들이 좌파에도 많다고 항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항변으로 자신들을 정당화 하려 한다는 것 자체가 더 문제일 뿐이다.국방과 조세 방면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우파 진영에 있다면, 이는 이런 사람들이 좌파 진영에 있는 것보다 훨씬 큰 문제다. 좌파에 비해서 우파는 돈이 많다. 좌파들은 좌파 이념의 확장을 위해서 없는 돈에서라도 조금이나마 헐어 바치지만, 우파는 자신의 이념 확장을 위해 지갑을 열지 않는다. 계급의식 자체가 매우 약하기 때문에 정치의식 또한 약하다. 당연히 우파 이념을 확장해야 한다는 의식 자체가 없다. 후속 인재 양성을 위하여 야학이라도 하는 좌파에 비해 우파는 어떤 일도 하지 않는다.공적 헌신보다는 이기심과 탐욕으로 더 뭉쳐있다. 게다가 좌파가 옳지 않다는 것만을 계속 지적할 뿐이다. 좌파가 얼마나 나쁜지, 얼마나 국력을 약화시키는지에 대하여 말 만 하고, 말 이상의 어떤 것을 시도하지 않는 한 좌파를 이길 수 없다. 전체적으로 보면, 우파는 매력을 갖기 어려운 태도를 가지고 있다. 지금 우파 진영에서 벌이고 있는 공천 파동이나 선거 전략이나 인재 등용을 보면 권력을 뺏기고 와신상담을 한 집단이라는 것을 전혀 느낄 수 없다.참 한가하다. 매력을 건축하려는 파괴적 혁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좌파를 비판하는 것 말고 자신에게만 있는 적극적인 무엇을 가졌는지를 알기 어려운 곳에는 사람의 시선은 고사하고 파리조차 모이지 않을 것이다. 사실 좌파의 매력도 약발은 이미 다했다. 약발이 다한 매력을 살리려고 하니 억지스럽고 염치없는 행동이 난무하고 있다. 이제는 염치고 뭐고 없다. 거짓말도 대놓고 하고, 억지스럽고 앞뒤가 뒤집힌 논리를 구사하면서 부끄러움도 없다. 우리의 비극은 매력을 상실한 두 세력의 매력 없는 충돌에 하릴없이 운명을 맡겨둘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많은 강의와 교육 일선에서의 경험을 통해 볼 때 말만으로 교육 효과를 얻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다. 말 이상의 것이 요청된다. 그것은 인격적 감화력이나 정서적 친밀감으로도 나타난다. 사명감을 공유하는 연대의식도 좋은 장치다. 어떤 것도 고정된 마음이나 정해진 마음을 흔들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말을 넘어선 말 아닌 어떤 것으로만 가능하다. 우파 좌파 걱정할 여유가 없다. 우선 당장 내가 급하다. 나의 십자가는 무엇일까? 나의 처형장은 어디일까?최진석(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건명원 초대원장) ifston@daum.net

2020-04-06 11:49:57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이유신(18세기 후반 활동), ‘가헌관매’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이유신(18세기 후반 활동), ‘가헌관매’

석당(石塘) 이유신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에 걸쳐 활동한 화가이다. 생애는 잘 알 수 없지만 돌을 사랑하는 벽이 있었다고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에 나온다. 어느 해 정초 자하(紫霞) 신위의 집에 세배 갔다가 책상 위의 괴석을 보자 이를 어루만지며 손에서 놓지 못했다. 어찌나 좋아하는지 그 모습을 본 신위가 하인을 시켜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 이유신은 거듭거듭 감사하며 직접 돌을 받쳐 들고 의기양양하게 돌아갔다고 한다. 그가 백수(白首) 노인이었을 때의 일이라고 하니 호의 돌 석(石)자 대로 장수한 듯하다.제일 앞에 큰 나무 한 그루가 있어 화면이 양분되는 구도가 되었는데 그 뒤로 규모 있게 쌓은 축대 위에 난간을 두른 초가지붕 사랑채와 여러 칸의 주택이 있고 서쪽으로 정원이 있다. 눈 쌓인 대숲과 커다란 괴석이 담 안으로 보이고, 사랑채 처마 아래에도 좌대에 올려 진 괴석 두 점이 보인다. 이유신은 '가헌관매(可軒觀梅)'로 제목을 써 넣었는데, 가헌이라는 이 집 모습을 비슷하게 그린 것 같다.등장인물은 모두 6명이다. 괴석과 함께 분재한 매화나무에 꽃이 피자 집 주인 가헌(可軒)이 함께 관매(觀梅) 하자고 친구들을 불렀다. 그런데 이들의 모습은 중국 옛 그림에 나오는 도인(道人)이나 고사(高士)의 차림새다. 매화가 피었다고 한겨울에 친구들을 부른 사람이나 그 꽃을 보겠다고 오밤중에 추위를 무릅쓰고 달려온 이들의 정서적 시공이 꼭 그랬을 것 같다. 이 6명 중 한 분이 썼을 화제는 이렇다. 회좌고등하(會坐孤燈下) 매화설리진(梅花雪裡眞)오제청시성(吾儕淸是性) 수죽여비린(瘦竹與比隣) 천원(泉源)외로운 등불아래 함께 모여 앉았는데 매화가 눈 속에 정말 피었네우리들은 맑음이 본래 성품이니 수척한 대나무와 이웃할 만하지 물기를 머금은 부드러운 윤필(潤筆)로 형상을 함축적으로 표현해 수수한 멋이 있고 청색, 황색, 갈색 등을 연하게 사용해 밝고 투명한 색채감각이 신선하다. 간단하고 느슨한 붓질 임에도 인물 묘사가 자연스러운데다 방안의 책상과 술병, 쌓아 놓은 책 등 세부도 빠트리지 않아 보통 실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촛대 위에는 촛불이 켜져 있다. 지금으로 치면 동호회 모임 날 인증 샷이라고 할 이런 그림을 아회도(雅會圖), 아집도(雅集圖)라고 했다. 이유신은 이 모임의 춘하추동 사계절 아회도를 다 그렸는데 '가헌관매'는 겨울 치 그림이다.화제와 제목에 머리도장으로 찍은 한장(閑章)은 '추수일방(秋水一方)'과 '이청(怡淸)'이다. 이 그림의 주제이자, 주인공들이 이런 행위를 통해 주장하려는 삶의 지향은 인장의 뜻 그대로 '청(淸)', 곧 '맑음'이다. (* 인장 해석에 도움 주신 대구서학회 회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미술사 연구자

2020-04-06 06:30:00

[이른 아침에] 선거는 중간고사 시간이다

[이른 아침에] 선거는 중간고사 시간이다

국민이 주권자임을 실감할 기회사실상 선거로 평가 외에는 없어정책 기조 원하면 집권 세력 선택바꾸기를 바라면 야당 세력 선택시험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배우는 사람이나 가르치는 사람이나 매한가지다. 학생이 시험을 싫어하는 것은 성적에 대한 두려움이 큰 이유일 것이다. 시험을 열심히 준비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선생 된 입장에서도 시험이 썩 달가운 건 아니다. 학생들의 답안을 보면서 열심히 가르친 결과가 이런 정도인지 나의 능력을 반성하게 된다. 보다 직접적 이유는 시험 문제에 있다. 객관식 문제는 출제가 번거롭지만 주관식 문제는 채점이 힘들다.모두가 반기지 않는 시험이어도 교육과정에서 시험을 통한 평가는 필수적이다. 교육학에서 평가는 그만큼 중요한 개념이다. 교육과정과 평가의 관계에 관하여 랠프 타일러(Ralph W. Tyler)는 "의도한 목표와 실제 얻어진 산출 간의 비교"라고 정의한다. 처음 설정한 목표와 실제 얻어진 결과를 비교하여 교육의 성취도를 측정하는 것이 평가이다. 최우수(A)부터 낙제(F)까지 과거의 성취를 평가하여 미래의 질적 향상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시험을 중간과 기말로 나누는 것도 그런 관점에서 의미가 있다.선거 역시 시험과 유사하다. 선거의 기능 중 하나가 바로 평가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는 대표성의 부여, 평가와 선택, 정책 결정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고 한다. 평가와 선택은 특히 중요하다. 정당이나 후보자들은 선거에서 국민에게 다양한 목표를 제시함으로써 선택받는다. 다음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그들이 제시한 목표와 성취 결과를 비교 평가하여야 한다. 평가를 통해 같은 선택을 할지 다른 선택을 할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국정을 위임받은 정권 담당자들이 흡족할 만한 성과를 올렸는지 검증하고 평가해야 한다. 잘했다면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상을, 잘못했다면 기회를 박탈하는 벌을 과해야 한다.미국은 선거의 평가 기능이 비교적 확실하게 작동한다. 4년의 대통령 임기 2년 차에 하원의원과 상원의원 일부에 대한 중간 선거가 치러진다. 자연스레 대통령과 집권당에 대한 중간 평가가 이루어진다. 중간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국정 운영의 기조를 유지하지만, 패배 시 국정 운영의 기조 변화가 뒤따른다. 우리는 총선의 중간 평가적 성격이 명확하지 않을 때가 많다. 4년 임기의 국회의원 선거가 대통령 임기 중간에 치러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집권당이 총선을 통해 국정 운영 방향을 새롭게 점검할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다. 이번 21대 총선은 중간 평가라는 총선의 성격에 적합한 선거이다. 2017년 5월 출범한 현 정부 임기 3년 차를 지난 마당이다. 지난 3년의 국정 운영 성과를 검증하고 평가함으로써 유권자들이 미래의 국정 방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집권 세력이 향후 2년 동안 국정 운영 기조를 유지할지 변경할지 국민의 뜻을 확인하는 유일한 통로이기도 하다.선거의 형식은 객관식이지만 내용은 주관식이다. 채점자 나름대로 정치, 경제, 외교, 사회 등 각 분야에서 꼼꼼하고 세밀한 채점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집권당이 내민 답안지를 예리한 눈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권력에서 소외된 야당보다 국민의 위임에 의해 권력을 장악한 집권 세력이 주된 평가 대상이 되어야 한다. 단순한 정파적 시각이 아니라 대의 민주주의의 당연한 요청이다. 선거법 개정 등 집권 세력이 야당과 국민을 상대로 권력을 운용해 온 정치 기조, 이른바 소득주도성장·주 52시간제·탈원전 등 경제 정책 기조, 한미·한중·한일 관계 등에서 드러난 외교 정책 기조, 공수처 설치와 검찰 개혁 등을 내세운 사회 정책 기조 등을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코로나 사태로 가려진 선거의 평가적 기능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그간의 정책 기조를 유지하기 원하면 집권 세력을, 바꾸기를 바라면 야당 세력을 선택하면 된다. 진영 논리에 치우쳐 허술한 답안지에 합격점을 매기면 안 된다. 그 반대 역시 곤란하긴 마찬가지다. 채점자가 중간고사에서 까다롭게 점수를 매겨야 학생이 기말고사를 열심히 준비하게 된다. 집권 세력이 성적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해야 한다. 국민이 주권자임을 실감할 수 있는 기회는 사실상 선거 외에는 없음을 알아야 한다.

2020-04-05 16:06:44

[기고] 자세히 보아야 예쁜 민주주의의 꽃

[기고] 자세히 보아야 예쁜 민주주의의 꽃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나태주 시인의 '풀꽃'은 단 세 줄로 많은 사람들을 위로한 시다. 학교 수업시간에 열심히 배웠던 수미상관도 없고, 직유법도, 의인법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시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세 문장으로 이뤄진 짧은 시지만, 그 세 문장이 나오기 위한 시인의 고민을 알기 때문이다.최근 한 신문에서 나태주 시인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여러 문장 중 한 문장이 눈에 띄었다. 그에겐 '일상이 시'라는 문장이었다. 우리는 어쩌면 바쁘다는 이유로 대충 넘어갔던 일상의 사소한 것들을 그는 그의 시처럼 일상을 '자세히' 그리고 '오래' 보면서, 짧지만 긴 세 문장을 진득하게 뽑아낸 것은 아닐까?우리들의 대표를 뽑는 제21대 국회의원선거가 다가온다. 눈썰미가 좋은 유권자라면 발견했을 수도 있겠지만, 투표함에는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입니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사실 선거도 풀꽃과 비슷하다. 그저 기표하는 데 3초에 불과한 행위 역시 자세히, 그리고 오래 본다면 예쁘고 사랑스러운 민주주의의 꽃을 발견할 수 있다.'꽃길만 걷자'는 격려가 유행이다. 그런데 꽃길이 건강하고 오래 유지되려면 좋은 토양은 필수적이다. 민주주의의 좋은 토양은 유권자의 '적극적인 참여'다. 꽃이 없는 흙길은 걸을 때 먼지만 날릴 것이고, 좋은 흙 없이 꽃만 있는 길의 꽃은 금세 시들어 버릴 것이다. 꽃과 흙이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민주주의에서의 꽃인 '선거'와 흙인 '정치에 대한 참여'는 분리될 수 없다.하지만 많은 유권자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바쁜 탓에 직접 정치인을 만나 그들에게 정책을 제안하는 것은커녕 자기 지역의 현재 이슈만을 따라가는 것도 벅찬 경우가 많다. 결국 선거일이 임박해서야 묵혀 둔 선거공보를 펼쳐, 우리가 평소 풀꽃을 훑어보듯 대강 보기 바쁘다. 이해한다. 정책을 꼼꼼히 확인하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바쁘게 사는 우리 사회에서 그렇게 정책을 일일이 분석하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다. 그러니 공약을 통한 선택보다는 정당이나 학연·지연·혈연과 같이 표면적인 정보만을 보고 후보자를 선택하기 쉽다.최근 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홈페이지를 통해 지역 각종 이슈를 지도로 정리한 '대한민국 공약이슈지도'와 유권자가 직접 공약을 제안하는 '유권자 희망공약' 제도로 유권자의 참여를 돕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 공약이슈지도'는 국민신문고의 민원 약 1천400만 건과 언론 기사 약 130만 건의 빅데이터를 종합 분석하여 키워드화하고, 이를 시각화된 자료로 나타내 지역 이슈를 쉽게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봄에 꽃을 활짝 피우기 위해서는 흙을 미리 일궈야 하듯이, 시민들의 정치 참여는 민주주의를 일구는 좋은 흙이 된다."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보이는 만큼 참여도 할 수 있는 법이다. 후보자들이 제시하는 공약을 꼼꼼히 살피고, 그중 지역에 진짜 필요한 공약들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기표에 걸리는 시간 3초, 그 짧은 시간을 위해 지금부터 부지런히 쟁기를 손질해야 한다. 그렇게 숙고의 시간을 보낸 3초가 풀꽃의 세 문장처럼 우리 사회를 조금씩 바꿀 것이다. 그리고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루어진 선거라는 꽃은 아름다움을 넘어 '성숙한 민주주의'라는 값진 열매로 다가올 것이다.

2020-04-05 15:15:04

[매일춘추] 하모니

[매일춘추] 하모니

자정을 넘긴 시각, 방호복을 껴입은 소방대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구급차에 올라탔다. 들것에 실려 누워있는 가족의 안위를 염려하는 것도 잠시, 이 시국에 이 정도의 문제로 도움을 받아도 되나하는 미안함이 스친다. 구급차에서의 응급처치와 상태체크는 계속된다. 하지만 우리가 갈 병원은 쉬이 결정 나지 않는다.매뉴얼에 따라 몇 군데의 병원과 통화가 있고서야 겨우 한 병원에 도착한다. 구급차는 병원 내 지정된 주차구역에 멈춰섰다. 문진과 함께 환자와 보호자의 체온 검사부터 시작된다. 구급차 내에서 4차에 걸친 의료진의 문진과 상태체크가 있은 후 들것은 겨우 응급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모든 것은 매뉴얼대로, 약속한대로 움직이고 있었다.한 편의 뮤지컬이 무대에 올려지기 위해서는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규모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에 이른다. 무대 위의 배우에서부터 관객들의 입장을 돕는 하우스 어셔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성공적인 공연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대와 객석을 담당하는 무대감독과 하우스매니저의 지시가 필요하다. 이것을 소위 'Que(큐)'라고 하는데 한 작품에는 음향, 무대, 조명, 음악 등 파트별로 나눠진 수백 개의 큐가 존재한다.무대감독이 완벽한 타이밍에 맞춰 큐 사인을 보내고 그때마다 파트별 담당자들은 조명을 바꾸고, 무대를 전환하고, 효과음을 낸다. 하지만 자그마한 실수라도 있으면 관객들은 극이 아닌 현실을 자각하게 된다. 모든 것이 약속과 매뉴얼 속에서 완벽한 하모니를 내며 움직였을 때 관객들은 집중하며 작품에 빠져들 수 있게 되고 그것이 바로 성공적인 공연의 완벽한 마무리라 할 수 있다.코로나19 사태로 일상이 무너졌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코로나19가 미국을 넘어 유럽까지 집어 삼키면서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의 극장들은 문을 닫았고, 재개관은 기약이 없다. 한해를 들여 준비한 DIMF도 기약 없는 블랙홀 속에 빠진 기분이다. 고르고 골라 가장 좋은 작품들로 준비하려고 했던 우리의 노력과 우리의 시간들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국내에서도 공연하려던 작품들이 줄줄이 취소되고, 심지어 배우가 코로나19에 감염돼 돌연 중단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전무후무한 역사 한 가운데 서 있는 기분이 신선하지만 조금은 불편하다. 나의 작은 일상뿐만 아니라 마치 전 세계가 멈춘 것 같은 날들이다. 대체 이 상황은 언제쯤 회복될까?하지만 한 편의 뮤지컬이 성공적인 엔딩을 맞이하는 것처럼, 119에 전화를 걸던 순간부터 응급실을 나오던 모든 순간이 그랬던 것처럼, 서로를 향한 신뢰와 약속들이 모이고 모이면 소중한 일상도 곧 제자리를 찾아오리라.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환호, 한여름 두류공원 야외음악당을 넘치게 달궜던 뜨거운 박수소리가, 마스크 없이도 맘 편히 객석으로 들어가 작품에 빠져들던 시간들이 그립다.

2020-04-05 14:30:00

[2020 세상 읽기] 발로 하는 투표

[2020 세상 읽기] 발로 하는 투표

인류의 대부분의 삶은 살기 위해 먹을 것을 찾아 돌아다닌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하루하루 먹거리를 확보하지 못하면 굶어야 했으며 기후변화나 재난이 닥쳐 먹거리를 구할 수 없으면 꼼짝 없이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인간에게 먹거리는 늘 중요했다.인류의 생존방식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눠졌다. 한 갈래는 초원으로 가 유목민이 되는 것이었고 다른 한 갈래는 강 하류 퇴적지에 정착해 농사짓는 정주민이 되는 것이었다.늘 그렇듯 불균형은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 척박한 지역에서 생존을 위해 거칠게 살았던 자들은 생산력이 풍부한 지역을 약탈하였고 심지어 정복자가 되기도 했다. 이렇듯 인류는 끊임없는 이동과 전쟁, 그리고 지배계층의 교체를 통해 살아남은 자들의 역사가 되었다.민족의 생존을 위한 대이동은 문명과 세계사를 바꾸기도 했다.목초지를 마르게 한 기후변화는 중앙아시아의 훈족을 유럽으로 이동하게 만들었고 훈족의 압박에 밀린 게르만족은 서로마제국을 멸망시킨 후 중세 유럽시대를 열었다. 또,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시작된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diaspora), 아메리카로 이동한 청교도인들, 세계 각국으로 이주한 화교들의 역사는 생존을 위한 인류의 본능을 느끼게 만든다.먹고 살기 위해 이동하는 인류의 모습은 지금의 우리나라도 달라진 건 없는 듯하다.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끊임없이 지역을 이동한다. 그러나 문제는 인구의 절반이 사는 수도권은 더욱 더 집중되고, 그 외의 많은 지역들은 지방소멸을 걱정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지자체들은 인구 유입을 위해 정책을 발굴하고 인센티브를 지원한다. 전남 해남군은 파격적인 인센티브로 전국 최초로 7년 연속 합계출산율이 1위인 도시가 되었으나 인구는 매년 계속 줄고 있다. 이에 반해 경기도는 합계출산율이 전국 평균 수준이지만 인구는 매년 계속 늘어 1천3백만 명이 훌쩍 넘었다. 국민 4명 중 1명은 경기도민인 셈인데 인구유입을 위한 재정 인센티브의 한계가 느껴지는 대목이다.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많은 정치인들은 예산 확보를 공언하고 자기 지역의 발전을 위해 수많은 공약을 내건다. 주민들도 지역 출신이 장·차관이 되면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고위직 승진 누락 시에는 이를 지역차별로 보고 분노를 보일 때가 있다. 아마도 이런 현상은 자기 지역 출신이 출세해야 예산도 많이 가져오고 지역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믿음 아닌 믿음이 기저에 깔려서 생긴 듯하다.과거 고도의 압축 성장 속에서 지역 소외는 못 가진 서러움보다 더 큰 상처를 남겼기 때문이었을까? 한 때 자기 고향에 4년제 대학교를 유치하고 공설운동장을 건립하는 것은 지역 유력 정치인들의 숙명이었다. 뿐만 아니다. 인프라만이 지역발전을 이끌 수 있다는 신념은 고추 말리는 공항, 철로 녹슨 경전철, 텅빈 국가산단 등으로 대표되는 표(票)퓰리즘을 낳았다.마강래 교수가 지적했듯이 많은 도시들은 장밋빛 인구 증가를 전망하고 이에 근거해 도시계획을 수립하였다. 하지만 인구는 줄고 도시의 고령화는 심화되고 있으며 빈집은 늘고 있다. 과거 일본처럼 대도시 인근 신도시 아파트가 텅텅 빌 수 있다는 두려움은 도시의 집중과 압축을 주장하는 근거가 되었고 이러한 논리는 확실한 곳만 투자한다는 신념을 낳아 부촌의 부동산 가격을 부채질했다.일자리와 계층상승의 기회를 얻기 위한 이동은 인구와 산업의 수도권 쏠림현상을 가속화시켰으며 좋은 교육환경, 안정된 치안, 쾌적한 거주환경을 위해, 발로 이동한 결과물들은 마태효과처럼 국토의 균형개발을 저해하고 도시 내 부촌과 빈촌의 그 격차를 더 커지게 만들었다.이런 의미에서 다산 정약용이 서울을 떠나지 말라고 자식에게 남긴 유언은 지금도 유효할지도 모르겠다.얼마 후면 국회의원 선거가 열린다. 모든 후보의 공약을 다 보지 못했지만 인프라 확충, 기업유치, 교육환경 개선 등의 내용이 그 주를 이루는 듯하다. 그리고 지방정부들은 양질의 공공재를 공급하기 위한 노력을 경쟁적으로 하고 있지만 유권자의 최우선 선호인 양질의 일자리, 명문 학군, 그리고 우수한 문화인프라를 다 갖춘 지방도시는 손꼽을 정도에 불과하다.어쩔 수 없이 유권자는 자기 거주지를 이사로서 선택하는 '발로 하는 투표'로 그들의 선호를 나타낸다. 국회의원이나 지방선거는 4년마다 열리지만 유권자의 발로 하는 투표는 이론상 실시간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인구와 기업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각종 재정지원금과 보조금 관련 먹튀 문제는 언제나 논란거리다. 또, 현재 진행 중인 코로나 관련 각종 지원금도 그 기준이나 혜택 범위가 지역이나 업종별로 다를 경우 '발로 하는 투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진정한 지방분권은 공정하게 나누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철저한 국토균형개발에 입각하여 차별화된 각 지방들의 성장만이 분권과 균형이라는 헌법정신에 부합할 수 있다고 본다.자신에게 유리하고 좋은 환경에서 살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에 충실한 '발로 하는 투표'를 이길 수 있는 좋은 정책은 만들어 질까?이번 4월 15일, 20대 총선에서 뽑힐 300명의 국회의원들에게 기대해 본다.이상철 자유기고가

2020-04-05 08:00:00

[2020 세상 읽기] 늙은 쥐의 時事유감(4) 코로나 사태와 4.15 총선

[2020 세상 읽기] 늙은 쥐의 時事유감(4) 코로나 사태와 4.15 총선

이번 4.15 총선은 2018년 지방선거에 이어 현 정권에 대한 두 번째 중간평가의 기회다. 2018년 지방선거는 소위 적폐청산으로 경황없이 넘어가더니 이번 총선은 코로나 블랙홀이 선거의 쟁점을 삼켜버리는 형국이다. 그러나 아무리 격한 홍수가 밀려닥쳐도 지난 3년간 정권의 행적을 제대로 심판하지 않으면 더 큰 고난을 부를 수 있다. 그 3년 동안 대한민국은 광정, 폭정, 난정으로 나라의 정신과 육체가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이번 선거에 실패하면 세계 현대사의 기적인 대한민국이 지옥으로 끌려들어갈 것 같은 공포감을 준다. 우리 역사에 두 번 다시 이런 정권, 이런 정당이 태어나서는 안 되겠다는 우려와 걱정이 앞선다.현 정권의 국정운영은 1980년대 중반 폭력과 선동으로 대학가를 질식시켰던 386 종북 주사파 운동권의 행태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 당시 주사파 운동권은 북한의 절대독재를 찬양하는 주체사상을 훈장인양 가슴에 달고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친지김동(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을 주문처럼 외우고 다녔다. 이들 386이 현 좌파 정권의 586주체가 되면서 나라 전체가 폭력과 위선, 패륜, 탐욕으로 넘쳐나고 있다. 대한민국의 국체인 자유민주주의 이념은 주체사상 곧 사회주의로 덧칠되고 말았다. 나라 망쳐야 성공하는 좌파 정권현 정권의 정체성을 이렇게 정리하면 나머지 행적에 대한 의문들은 실타래처럼 풀려나간다. 국가의 외교안보는 친중, 종북으로 치달아 전통의 맹방인 미일로부터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일본을 동맹에서 내치기 위해 고릿적 친일 인민재판을 동원하는 작태까지 벌였다. 공산 중국과 북한에 대한 목불인견의 굴종은 더 이상의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주사파 외교안보는 그야말로 자살골과 자책골의 연속이었다.그렇다면 내치에는 성과가 있었을까. 어떤 의미로는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정권의 국정목표는 나라를 망쳐 북한과 비슷한 체제를 만드는데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 체제 변동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자유민주사회의 기둥인 기업을 죽이고, 부자와 중산층을 없애야 한다. 소득주도성장, 주52시간 근무, 탈 원전 등으로 그 목표는 상당 부분 실현된 것으로 보인다. 국가재정법이 규정한 GDP 대비 국가채무 40% 초과금지를 어기며 512조원의 슈퍼예산을 편성하고, 현금복지를 대폭 늘린 것도 같은 궤도의 정책이다. 국민들을 현금복지 중독자로 만들어 체제 구축을 쉽게 하자는 발상일 것이다. 3년 동안 늘어난 국가채무는 이미 100조 원에 달하니 이는 손자, 증손자들의 주머니를 터는 파렴치가 아닐 수 없다. 세계적 코로나 경제위기에서 2년 더 같은 일이 계속되면 대한민국은 그리스, 스페인, 베네수엘라 같은 꼴을 당할 지도 모른다.이 정권으로서는 경제를 망치면서 동시에 국민을 정권의 노예로 만들어야 유사 사회주의 체제를 굳힐 수 있다. 그래서 적폐청산이라는 폭력으로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고, 관제언론, 가짜언론을 앞세워 정권에 대한 비판을 차단했다. 역사 교과서의 자유민주주의를 인민민주주의로 뜯어 고친 것은 사상개조 작업의 일환이었다. 공수처법은 헌법과 삼권분립을 무력화시켜 독재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저의를 드러낸 것이다.장기집권 위해 절차적 민주주의 파괴이번 4.15 총선은 이처럼 경각에 달린 나라의 운명을 구해내느냐 못 하느냐의 선거다. 여기서 실패하면 현 정권이 저지른 그동안의 수많은 부정, 비리, 파렴치가 면죄부를 받게 되는 것은 물론 유사 사회주의를 고착시키는 길을 열게 된다. 현 정권은 그런 정황을 잘 알고 있기에 총선을 이기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사람들은 어떤 인물의 과거 행적을 보고 현재를 판단한다. 현 대통령은 2016년 야당 대표 시절 호남에서 총선을 승리하지 못하면(23대3으로 패배)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말했다. 지키지도 않을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런 사람이라면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광범한 댓글 여론 조작을 벌였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청와대와 정부 조직을 동원해 울산시장 부정선거를 획책했어도 예측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4.15 총선이라고 달라질 것이 있겠는가.현 정권은 선거 전에 심판들을 모두 자유민주주의 불신자들로 채워 넣었다. 행정부의 선거관련 장관들은 물론 선관위, 방통위, 공영언론, 경찰까지 장악을 마쳤다. 지난 연말에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선거법을 여당 단독으로 처리해 사회주의 일당국가 같은 모습을 연출했다. 개정된 준 연동형 비례대표 선거를 둘러싼 여당의 해괴한 행동은 선거 승리를 위해 인성파탄의 비난도 불사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선거를 앞두고 정부여당이 제대로 익지도 않은 긴급재난지원금 9조 원을 1400만 가구에 뿌리기로 발표한 것은 백주의 매표행위로 기록될 일이다. 보수 야당의 실패와 국민들의 준엄한 심판현 정권의 광정, 폭정, 난정에는 보수 야당의 협조 내지 방관이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대략 3할 정도의 책임은 야당에게 돌아가야 한다. 보수 야당은 주사파 정부의 실체를 보고도 자신이 누구이며 누구를 상대로 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몰랐다. 자유민주 체제를 뒤엎으려는 사악한 기도를 바로잡기는커녕 반쯤은 그에 부화뇌동해 보수의 지리멸렬을 가져오게 했다. 배부른 베짱이와 썩은 새끼줄로 동여맨 야당 조직의 한계를 그대로 노출시킨 것이다.정치는 절차 이상으로 결과가 중요하다. 성실함이 때로 악덕이 될 수 있다. 야당 대표의 모범생 리더십, 착한 리더십은 국가 파탄의 변명이 될 수 없다. 이렇듯 야당이 제 역할을 못하니 이제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 정권을 심판해야 할 처지다. 다행히 대한민국은 현대사의 고비마다 국민을 억압하고 배신하는 정치세력에 대해 준엄한 심판을 내렸다. 그 70년의 잠재력이 코로나 블랙홀을 뛰어넘어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해낼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싶다. 온 국민이 눈을 부릅떠야 할 잔인한 4월이다.박진용 언론인/역사저술가

2020-04-04 08:00:00

[광장] 달구벌국(達句伐國)은 존재했을까?

[광장] 달구벌국(達句伐國)은 존재했을까?

대구의 옛 지명 중 하나인 달구벌은 과거 삼한시대 당시 '달구벌국'으로 불렸다고 아는 사람이 많다. 과연 그럴까?원삼국시대 즉, 삼한(三韓)시대에 해당하는 시기인 기원 전·후∼3세기 간에는 영남 일대의 진한(辰韓) 영역에 12개의 소국이 있었다는 내용이 '삼국지'와 '위서 동이전'(魏書 東夷傳)의 '한조'(韓條)에 기록돼 있다. '삼국지'는 3세기 후반 중국 진나라의 진수가 편찬한 역사서다. '위서 동이전'에 실려 있는 삼한과 관련한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韓)은 대방(帶方)의 남쪽에 위치한다. 동쪽과 서쪽은 바다와 경계를 이루고, 남쪽은 왜(倭)와 접한다. 사방 4천 리에 달한다. 한에는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 등 세 종족이 있고, 진한은 옛날 진국(辰國)이다. 마한은 54개의 소국으로 이루어진 반면, 진한과 변한은 24개의 소국으로 이루어져 있다."김부식이 저술한 '삼국사기'에 나오는 삼한시대 진한(변한 일부 포함) 영토의 소국들은 감문(甘文)국, 거칠산(居漆山)국, 골벌(骨伐)국, 다벌(多伐)국, 비지(比只)국, 사벌(沙伐)국, 실직(悉直)국, 압독(押督)국, 우시산(于尸山)국, 음즙벌(音汁伐)국, 이서(伊西)국, 조문(召文)국, 초팔(草八)국 등으로 신라의 모체인 사로(斯盧)국과 동시대에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본 소국들의 이름은 '삼국지'에 기록된 진한의 소국들과는 이름이 달라 비교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삼국지'와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진한 소국 명칭들이 왜 서로 다른지도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삼국지'에는 진한과 변한의 소국 규모에 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진한과 변한의 소국 규모는 작은 경우가 600~700호이며, 규모가 큰 경우는 4천~5천 호에 달해 총가구수는 4만∼5만 호로 추정하고 있다.이제 대구의 모체인 달구벌에 대해 알아보자. '삼국지'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기록을 두루 살펴봐도 달구벌국에 대한 국명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원로 사학자 한 분이 '삼국사기'에서 "신라 파사 이사금 29년(108년)에 비지국, 다벌국, 초팔국이 신라에 복속되었다"는 기록을 참고하여 이름이 유사한 다벌(多伐)국을 달구벌(達句伐)국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정에서 달구벌국의 유래를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 과연 다벌국과 달구벌국을 동일 국가로 볼 수 있느냐이다. 필자 생각에는 그럴 가능성이 적다고 본다. 신라시대에는 지금의 두산동, 파동, 대명동, 가창면 일대에 해당하는 위화군(喟火郡, 수창군) 아래 4개의 영현을 두고 있었다. 4개의 영현은 달성을 중심으로 하는 달구화현(達句火縣, 대구현), 팔달동과 칠곡 일대의 팔리현(八里縣), 다사읍·하빈면 일대의 다사지현(多斯只縣, 하빈현), 화원읍 설화동·명곡동 일대의 설화현(舌火縣, 화원현) 등이다. 즉, 위화군보다 규모가 작았던 달구화현이 국가로서의 위상을 가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만약 우리 지역에 소국이 있었다면 위화군과의 관련성에서 찾아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사로국이 진한 12소국을 차례로 병합하여 하나의 통일된 국가로 발전해 나가는 과정을 볼 때 이러한 추정은 훨씬 설득력이 있다. 신라가 병합한 소국을 행정조직에 편입시키는 경우, 군(郡) 이상의 행정 규모로 편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사벌국이 사벌주, 압독국이 압독주, 조문국이 문소군, 감문국이 청주(나중에 감문군), 실질국이 실직주, 거칠산국이 거칠산군(나중에 동래군)으로 편제된 사례가 그렇다. 아무튼 삼한시대 진한의 12소국 중 하나가 우리 지역에 존재했다면, 그 명칭이 달구벌국이라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달구벌국 명칭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2020-04-03 14:30:00

[매일춘추] 겨울에 가려진 봄, 그래도 봄!

[매일춘추] 겨울에 가려진 봄, 그래도 봄!

2020년 2월, 코로나19가 우리가 사는 일상을 덮쳤고, 모든 것이 멈춰버린 세상에서 우리는 갈 길을 잃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서로에게 더한 경계심을 갖고 시간을 보낸지 벌써 두 달이 되었다. 차가운 기간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은 가고 봄이 성큼 다가왔다. 공연들이 줄을 이어 취소되고 상반기의 모든 계획들이 물거품으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지만 각 공공기관에서는 라이브 중계를 통한 음악회를 선사하고, 책을 읽어주는 사이버 도서관 등 또 다른 해결책들이 속속들이 나오고 있다.우리는 지금 전쟁과도 같은 재난을 겪고 있다. 전쟁은 겪는 사람들의 영혼과 정서에 크나큰 흉터를 남기고, 음악가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한 예로 1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에서 활동하던 작곡가들은 각각의 이유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프랑스의 인상주의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1862~1918)는 독일 군이 파리를 향해 포격을 시작한 직후인 1918년 세상을 떠나게 된다. 드뷔시는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독자적인 아이디어와 참신한 멜로디, 기발한 화성으로 시대를 앞서가는 작품을 남겼다. 전쟁당시 몸이 좋지 않아 직접 참전하지 못하는 마음을 바이올린 소나타, 첼로 소나타 등 주옥같은 작품으로 애국심을 표현하기도 하였다.또 같은 시기 라벨은 전쟁에서 부상당한 연주자를 위해 음악을 만들기도 했는데, 폴란드에서 벌어진 전투에 나갔다가 오른팔을 잃은 피아니스트 파울 비트겐슈타일을 위해 '왼손을 위한 협주곡'(1930)을 작곡하였다. 왼팔뿐인 피아니스트를 위해 한 손으로 칠 수 있는 곡이었고, 왼손만으로 연주하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화려하고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변화무쌍하여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전쟁이 아니었다면, 오른팔을 잃은 연주자를 위함이 아니었다면, 우린 이 작품을 여전히 듣지 못했을 것이다.절박한 환경 속에서도 예술을 지켜냈던 음악가들의 노력은 시련을 뚫고 피어난 작품이기에 우리에게 다가오는 감동은 더욱 벅찰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 음악가들이 그 노력을 해야 할 것이고, 하고 있을 것이다.우리에게 닥친 코로나의 위기가 아무렇지 않게 당연시 여겨왔던 관중들과의 만남을 회상케 하고, 학생들과의 소통을 그리워지게 하며, 일상의 소중함을 새삼스레 느끼게 됨은 위기가 그저 위기만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하다.닿을 듯 닿지 못하는 우리의 봄을 하루라도 빨리 만끽하기 위하여 잠시 거리를 두는 미덕을 우리 모두가 보여줘야 할 때이다. 모든 예술인들의 따뜻한 음악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그날이 하루빨리 다가와 우리의 봄을 만끽할 수 있길 기대한다.

2020-04-02 13:42:43

[기고] 코로나19 대응과 지원책의 우선순위

[기고] 코로나19 대응과 지원책의 우선순위

산불도, 응급환자도, 감염병도 대응 조치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하지만 모든 위기상황에서 우선 빠른 초동 대응은 시작이고 과정과 끝맺음, 사후 조치까지 모든 과정과 단계마다 적절하고 충분한 조치가 중요하다.재난관리는 재난의 예방·대비·대응 및 복구를 위하여 단계별로 이루어진다. 특히 감염병 재난은 다른 종류의 재난과 달리 사회관계망을 타고 상당한 기간 지속되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피해가 증폭되는 경향이 있어 단계별로 차별화된 대응과 지원정책이 필요하다.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 위기 대응도 발병·확산·회복 3단계로 구분하여 대응해야 한다. 현재 코로나19는 미국과 대부분 유럽 국가가 한가운데 속해 있는 확산단계에 있다. 지금 한국도 확산단계를 벗어났다고 볼 수 없으며, 안정화된 회복단계의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일상)은 아직 멀리 있다.우선 확산단계에서는 중증환자에 대한 응급의료지원으로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경증환자의 격리·돌봄을 위한 생활치료센터 운영,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확산단계를 진정 국면으로 전환시켜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또한 돌봄 사각지대에 놓여 있고, 재난에 취약한 홀몸노인, 장애인에 대한 긴급복지가 병행되어야 한다. 대구사회서비스원의 '코로나19 긴급돌봄서비스'와 민간의 자율적인 봉사활동 등이 그 예다.둘째, 일상적인 생활과 방역을 함께 할 수 있는 진정 국면으로 전환되면, 민생경제 회복을 위한 지원정책을 본격 시행해야 한다. '위험사회'(1986)의 저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다"라고 표현하면서 재난은 근본적으로 사회 구성원 누구에게나 공유되는 평등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각종 재난의 피해 규모는 지역, 계층, 소득 등에 따라 불평등하다. 따라서 코로나19의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는 지역, 계층, 소득, 업종에 대한 선별적, 지속적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피해가 연쇄적으로 증폭되지 않도록 고용 기반과 생산 기반의 붕괴를 막는 데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셋째, 회복단계에서는 개인의 삶과 지역사회, 지역경제를 재건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지역사회가 재난에 대응하고 재난 이후 회복하는 과정에서 경제적 자원, 사회자본, 정보와 소통, 지역 역량을 동원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이 중요하고, 이의 강화를 위한 프로젝트가 요구된다. 특히 회복단계에서는 재난불평등과 재난갈등을 해소하고, 사회통합을 위한 시민들의 참여와 협력이 필요하며, 재난 이후의 새로운 다음 사회로 이행하기 위한 공동 의사결정을 위한 사회적 네트워크와 역량이 더욱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감염병 재난상황에서는 섣부른 '낙관주의자'가 아니라 때론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장기전도 대비하는 '건강한 비관주의자'가 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 의료진과 자원봉사자, 공무원 등 방역당국은 과부하 상태에 있고, 시민들도 힘겹게 견디고 있다. 이제 우리는 코로나19의 확산 정도와 피해 확산 경로를 예의 주시하면서 감염병의 진행단계에 따라 적절하고 충분한 재난관리를 할 수 있도록 마라톤 선수의 심정으로 안정적으로 대응 속도를 조절하고 유지해야 한다.

2020-04-02 13:39:55

[새론새평] 엉터리 비례대표 후보 있는 당은 찍지 마라

[새론새평] 엉터리 비례대표 후보 있는 당은 찍지 마라

준(準)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제1야당의 동의 없이 집권 여당이 정의당 등 군소 정당 4개와 추악한 야합을 통해 만든 복잡한 제도이다. 그러나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이 이에 맞서 비례용 정당인 '미래한국당'을 만들고, 위기를 느낀 더불어민주당이 약속을 깨고 그토록 자신들이 비난하던 비례용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을 만들었다. 거기에 집권세력 3중대 격인 '열린민주당'까지 생기면서, 정의당은 이제 설 자리가 거의 없다. 정의당은 지금 와서야 조국 전 장관의 옹호에 나선 것 등에 대해 반성을 표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그런데 기괴한 새 제도에서 치러질 비례 선거에서 각 당이 내세운 많은 후보들이 결격이다. 민주당 공식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의 후보들은 몇 사람 지적하기에도 숨 가쁘다. 공영방송인 KBS 부사장으로 방송 장악에 앞장섰던 정필모는 선거 직전 사표를 내고 안정권인 8번을 받았다. 부사장 임명 때에도 불법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부사장 취임 후 숙청위원회인 '진실과미래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했다. 이 위원회는 현재 법원에 의해 사실상 불법 판정을 받았다. 또한 KBS 노조와 KBS 공영노조는 정 씨가 '공직자 행동강령, KBS 윤리강령, KBS 취업규칙, KBS 편성규약을 전부 다 어겼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그의 출마가 "정당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게다가 중립적이고 공정해야 할 언론단체인 한국기자협회장과 한국PD연합회장이 정 씨를 특정 정당에 추천했다는 경악스러운 사실도 밝혀졌다. 아예 KBS와 이 단체들이 권력의 홍위병임을 대놓고 선전한 셈이다. 정 씨는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사퇴해야 한다.마찬가지로 3번 순위인 권인숙 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은 공직선거법상 공직자 사퇴 시한(선거 전 30일)을 어겼음이 지적되고 있는데도 그냥 어물쩍 넘어가려 한다. 민주당의 공식 '파견 순번'인 11번 최혜영 후보는 약 4억여원의 기초생활비 부정 수급이 드러났고, 무면허 운전 전과까지 있다. 14번 김홍걸 후보는 고 김대중 대통령의 막내로 김 정권 시절에 36억7천여만원의 금품을 받은 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조국 무죄 프로젝트당'이라고 자기들의 진영에서조차 조소의 대상인 열린민주당은 그야말로 역대급 악성 타순을 선보였다. 2번 최강욱은 공직기강비서관 재직 시에 조국 전 장관 아들의 인턴 활동 확인서를 허위로 발급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고, '일본 척결'을 외치면서 정작 본인은 1억원이 넘는 일본 렉서스 차를 타고 다녔다. 친북반미주의자인 더불어시민당 7번 윤미향 후보가 딸을 미국 음대에 유학 보낸 것과 같은 셈이다. 전형적인 한국 좌파의 이중성이다. 4번 김의겸은 그 유명한 흑석동 상가 부동산 투기 논란 때문에 청와대 대변인직에서 사임했고, 8번인 황희석은 자타가 공인하는 조국의 사람이다.비례제도 파동의 주역인 정의당은 1번 류호정 후보부터 문제다. 그는 대리 게임을 시인했는데, 이것은 프로게이머 세계에선 대리 시험과 마찬가지의 부정이다. 온갖 비판이 있음에도 사퇴를 거부하는데, 이것이 정의당이 주장하던 공정인가. 범여권의 민생당은 손학규 전 지사를 2번으로 올렸다 비판을 받고 14번으로 내렸다. 우리공화당이 2번에 서청원 전 의원을 배치한 것과 더불어 '노욕'이라는 질책을 같이 받았다. 안철수의 '국민의당'은 자기 사람들을 당선 가능성이 높은 미래통합당에 파견해 지역구에 출마하게 하고, 자기 당은 비례대표만 내는 '실속형' 혹은 '얌체형' 전술을 폈다. 과연 간철수라는 별명에 어울리는 선택이다. 그러나 비례 2, 3번이 모두 안 씨의 최측근인 이태규·권은희로, 지역구 의원 출신을 비례에 배치하는 한심한 구태를 보였다. 미래한국당 역시 공천 갈등을 겪었으나 분란을 수습해서 그저 무난한 공천을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이익단체장과 직능단체장이 대거 순위권에 들어가는 문제가 생겼다.비례대표는 지역구 선거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제도이다. 그러나 그 취지와는 어긋난 경우가 요번 선거에서도 있다. 300개 국회 의석에서 비례대표가 47석을 차지한다. 적지 않은 숫자이다. 유권자들은 지역구만큼이나 비례대표 선거에도 주의를 기울여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 투표 시에 부적격자가 넘치는 정당부터 제외할 일이다.

2020-04-02 13:36:44

[신창환의 같이&따로] 코로나 이후, 새로운 시작

[신창환의 같이&따로] 코로나 이후, 새로운 시작

신천 산책로에도, 팔공산에도, 학교 교정에도 벚꽃이 피었다. 두 달 전부터 시작된 대구 지역의 고통과 어려움을 난 모르겠다는 듯, 벚나무들은 흐드러지게 꽃을 피웠다. 따뜻한 봄날의 햇살을 받아 자태를 뽐내는 벚꽃들은 봄바람에 살랑살랑 몸을 흔들며 우리를 유혹한다. 답답한 현실 때문인지 유달리 올해의 벚꽃은 더 유혹적인 듯하다.두 달 동안 힘들게 버티고 있는 우리의 사투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유혹의 눈길을 보내는 벚꽃의 흔들림이 오히려 야속하게만 느껴진다. 여느 때처럼 겨우내 움츠리고 굳어졌던 우리의 마음을 달래줄 꽃은 피지 않고, 무심한 벚꽃이 피었다.꽃피는 계절이 오고 자연의 변화는 여지없이 다가왔다. 몇 주 지나지 않아 곧 더위가 올 것이다. 무심한 자연 같으니…. 이제 더위가 오면 이 지긋지긋한 바이러스와의 전쟁도 끝이 날지…. 그러나 야속하게도 기온이 올라도 이 바이러스는 사라질 가능성이 낮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고 코로나바이러스도 자연의 일부. 자연 속의 서로 다른 생명체 간의 전쟁이다. 두 개체 간의 전쟁에 자신은 관심 없는 듯 벚꽃이 피었다.일상이라는 것이 깨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힘겨워하고 있다. 초·중등학교 개학은 한 달 넘게 연기되고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온라인 개학을 준비하고 있으나 이마저도 쉽지 않다. 대학의 온라인 수업도 교수와 학생 모두 처음 겪는 사태에 여의치 않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이용하는 시설들은 폐쇄되고 우리가 편리하게 이용하는 많은 것들이 중단되었다. 우리에게 편리함을 제공하고 삶의 유지에 필요했던 것들이 멈춰버리면서 고통을 받고 있다.그래도 지금껏 우리는 잘 버텨왔다. 그리고 언젠가는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불확실성이다. 언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지 불확실하다는 것이 문제이다. 우리에게 인내의 시간도 점점 고갈되어 가는 것은 아닐까?이제 건강만의 문제를 넘어섰다. 자영업자들부터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모두 힘든 상황이다. 사람들의 활동이 줄어들면서 동네의 영세 자영업자들이 타격을 받고, 서비스업·제조업·항공업 등 모든 산업이 연쇄적으로 충격을 받았다. 소비의 위축은 생산의 감소를, 생산의 감소는 기업의 고용 축소로 이어지는 경제 불황기의 고리가 발견되고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마이너스 성장률 및 심각한 경제위기를 예측하고 있다.수년 전부터 시작된 저성장 기조는 코로나로 인해 당분간 회복하기 어려운 경제위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고, 또 현실화되고 있다.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고 전 세계가 처한 문제라는 점에서 탈출구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1998년 외환위기는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위기였고, 2008년 금융위기는 미국의 위기라는 점에서 지역적인 문제였다. 하지만 지금의 경제위기는 전 세계적인 위기라는 점에서 어려운 상황이다.20여 년 전 외환위기에서 우리는 경험했다. 실업자의 증가는 가족의 파괴와 빈곤의 대물림, 사회문제를 가져온다는 것을. 실업급여 신청자가 전년 대비 34% 늘었다. 그만큼 일자리가 줄었다는 신호이다. 한계 상황에 몰린 개인과 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는 100조원의 돈을 풀고,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 대책을 마련하고, 소득 하위 70%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이 와중에 재정이 어디 있어서 그런 돈을 푸느냐는 목소리도, 긴급재난지원금이 현금이 아니라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그럼에도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상황은 매우 절박하다.바이러스 감염은 종식될 것이다. 이제는 경제와 사회의 건강함에 대해 걱정해야 할 때이다. 경제에서 가장 큰 문제는 불확실성이다. 불확실성은 불안을 낳고, 불안은 공포와 혐오를 만들어간다. 어쩌면 이제부터가 코로나와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어두운 묵시록 같은 생각이지만 이미 다가온 현실이다. 마음을 다잡고 고통이라는 강을 건너야 할 때이다. 연대와 협력을 통해서 위기를 견디고 버텨야 할 시간이다.벌써 벚꽃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내 파란 잎들이 녹음을 자랑하고, 또 낙엽이 떨어질 것이다. 내년 봄에는 신천의 벚꽃을 조금이라도 희망의 눈길로 바라볼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2020-04-01 18:00:00

[불가사의 인도] 인도 하층민 생계형 거짓말은 무죄

[불가사의 인도] 인도 하층민 생계형 거짓말은 무죄

필자와 흉금을 트고 대화를 나누며 백년지기처럼 친숙해진 인도 출신 동갑내기 친구 토마스 싱(Thomas Singe)에게 어느 날 심한 배신감을 느끼며 절교할 뻔한 적이 있었다. 하와이대학 동서문화센터 도서관에서 우연히 인도의 가문에 대한 참고 자료가 눈에 띄어 살펴보던 중 '싱'(Singe)이라는 말은 '사자'라는 뜻이며 Singe을 성씨로 쓰는 사람은 인도에서 최고 명문 혈통 집안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동갑내기 인도 친구인 토마스 싱이 이전에 자기는 인도에서 최하층 신분 출신이라고 고백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토마스 싱이 나에게 신분을 속인 셈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를 만나자마자 "친구의 성이 Singe이 진짜 맞냐?"고 되물었다. 그런데 그의 반응이 나에게 더욱 배신감이 들게 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없이 "실은 Singe은 내가 외국에서만 쓰는 성씨야"라며 대수롭지 않게 답했기 때문이다.그는 내가 귀담아듣건 말건 상관 않고 다음과 같은 독백을 늘어놓았다."한국 친구, 내 말 좀 들어보게. 내가 친구에게 내 출신 성을 속인 것은 맞아. 그러나 그게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고 절반은 사실이다"며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자 이에 내가 더 이상 듣기 싫다는 듯 돌아앉아 버렸다. 그래도 그는 같은 말로 끈질기게 나를 설득하려 했다. "실은 나는 나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다만 나의 어머니로부터 '너의 아버지는 Singe이라는 성을 가진 지체 높은 신분의 사람이다'라는 말을 들었을 뿐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은 하얗게 변했다.조선시대 허균이 쓴 「홍길동전」이 문득 필자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이 생각났다. 바로 돌아앉아 그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동정의 눈길을 보냈다. 그래서 필자가 한국의 고전소설인 홍길동전에 나오는 홍길동도 서자라서 적자와 차별 대우를 받았다는 소설의 줄거리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 얘기를 듣고 있던 토마스 싱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서는 그래도 아버지의 성을 그대로 따르지만, 인도에서는 최상 계급 아버지의 성뿐만 아니라 얼굴도 영영 모르고 살아야 한다. 만약 자기 어머니의 입을 통해 아버지의 성을 들어 바깥에 나가 들먹이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질 수 있어. 그러니 그런 사생아가 외국으로 나갈 길만 생기면 외국으로 가서 지체 높은 부계 성씨를 마음 놓고 쓰지."그리고 인도인 친구는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한국 친구는 내가 거짓말한 것에 대해 대단히 불쾌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인도에서는 하층민들의 생계형 거짓말은 무죄라는 인식이 의식의 바탕에 깔려 있어"라고 말했다.인도인들이 말하는 생계형 거짓말이란 "인도의 유명 관광지에서의 잡상인, 접객업소 안내원, 질병치료사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손님을 끌기 위해 하는 거짓말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인도인들은 누구에게나 말을 잘 걸고 쉽게 친해지게 되며 친밀감을 느껴 무슨 약속을 하면 백발백중 그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만나 전에 약속한 일을 왜 지키지 않았는지 물으면 '약속할 때는 기분이 좋아서 했는데 그 기분이 사라지니 약속 지킬 마음이 안 나더라'고 말하면 끝이다"고 말했다.대영제국 식민지 시절, 인도 주재 영국총독부에 근무한 적이 있는 Dr. Leaper가 인도의 자연부락에 인구조사를 가면 주민들이 거짓말을 얼마나 잘 하는지 혀가 내둘린다고 했다. 보통 30~40명 단위의 대가족이 함께 사는데 무슨 혜택을 주기 위해 인구조사를 할 때는 38명이었는데, 바로 다음 날 무슨 의무를 지우기 위한 인구조사를 하면 3분의 2로 줄어든다. 그 이유에 대해 물으면 누구누구는 군에 갔으며, 누구는 병들어 죽었고, 누구는 가출하여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식의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예사로 한다는 것이었다. 그걸 두고 그는 식민지 근성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21세기를 지나며 인도의 생계형 거짓말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2020-04-01 18:00:00

[춘추칼럼] 사랑의 거리

[춘추칼럼] 사랑의 거리

예전, 젊어서 고향에 살 때의 기억이다. 금강 하구 철새도래지로 가끔 청둥오리 사냥을 가는 젊은 축들이 있었다. 그들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백조에 대한 것이다. 백조는 우리 말로 고니라고 불리는 몸집이 크고 털 빛깔이 새하얀 새이다.녀석들은 갈대숲이나 습지에 무리 지어 앉아 있다가 사람이 다가가면 어김없이 사람이 다가간 거리만큼 뒤로 물러난다고 한다. 살아남기 위한 방책이다. 말하자면 생명의 거리인 셈이다. 동물 치고는 참 영리하고 똑똑한 녀석들이라 하겠다. 인간 세상도 그렇다. 아무리 좋은 사이라 해도 너무 거리가 가까우면 진력이 나고 싫증이 나게 되어 있다. 좋은 사이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려면 일정한 거리가 필요하다. 친구나 이웃이나 직장 동료 사이도 그렇고 심지어 애인 사이도 그렇다.가까운 사이 좋은 사이일수록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세심한 조심이 필요하다. 그것은 한집에 사는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다. 상호 존중할 것은 존중하고 삼갈 것은 삼가고 눈감거나 비켜 갈 것은 또 그래야 한다. 그러기에 옛날 어른들도 부부유별이라 했다.부부 사이는 구별이 안 되는 밀접한 인간관계다. 그래도 그래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이것은 매우 평범하고 당연한 것 같지만 그렇기에 더욱 귀중한 교훈이라 하겠다. 오랫동안 사람들과 사귀면서 내가 지키고 있는 원칙 같은 것이 있다.누구하고든 거리를 지킨다는 것이다. 특히 좋은 사람, 내가 마음속으로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일수록 더욱 그런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지만 지나칠 정도로는 가까이 가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도 모조리 하지는 않고 조금은 아껴 둔다.그러다 보니 인간관계가 미온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연유로 해서 어떠한 경우에도 나빠지지는 않는다. 심지어 오래 만나지 못하고 헤어져 있는 동안에도 좋은 느낌으로 그 자리에 그냥 멈추어 설 수 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좋은 관계로의 새로운 복원이 가능하다. 이것을 나는 사랑의 거리라고 말하고 싶다. 이 대목에서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말은 생텍쥐페리의 말이다. '사랑은 둘이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나란히 앉아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은 좋은 관계로 오래 함께 살아온 부부 사이를 말해주는 것도 같다.미투 운동이 일어난 이후로 사람들 관계가 많이 소원해진 경향이다. 언어폭력이든지 성추행이란 말까지 나돌아 특히 남녀 사이가 많이 경직되어 있다. 사랑한다는 말, 좋아한다는 말이 얼마나 따스한 말이고 좋은 말인가. 그러나 그런 말조차도 조심스러운 세상이다.그야말로 이것은 마음의 거리다.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사랑의 거리가 아니고 강제로 만들어진 마음의 거리다. 왜 우리가 이 좋은 세상을 살면서 서로 사랑한다는 말, 좋아한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고 살게 되었는가. 많이 서글픈 마음이다.최근엔 코로나19 전염병 때문에 사회적 거리란 것이 다시 생겨났다. 일상의 평범한 삶은 멈추고 갑자기 이상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야말로 우리가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삶과 살아보지 않은 세상에 살게 된 것이다.신종 전염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얼마만큼 거리를 두어야 하고 신체적 접촉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 주된 방책이다. 우리 풀꽃문학관만 해도 계속 휴관 중이다. 뜨문뜨문 관광객들이 오고 아는 사람들이 찾아오지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반갑지가 않다.멀리서 바라보며 인사하고 좋은 시절이 오면 다시 오시라 인사를 보낸다. 물론 악수도 하지 않고 사진도 같이 찍지 않고 책을 들고 와 사인을 해달라고 해도 다음에 하자고 미룬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참 많이 소원해진 느낌이다.어쨌든 다 좋다. 고니들에게는 생명의 거리. 나에게는 사랑의 거리. 미투 사태에는 마음의 거리. 코로나19에는 사회적 거리. 모든 거리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마음의 단절이 있을 수 있고 소통의 부재가 있을 수 있겠다.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그 모든 '거리'들이 사람을 살리는 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조금 섭섭함과 공허함과 불편함이 있겠지만 그것들을 넘어서 생명의 거리, 소생의 거리, 끝내는 사랑의 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2020-04-01 14:46:40

[기고] 생애 첫 선거 앞둔 새내기 유권자 마음

[기고] 생애 첫 선거 앞둔 새내기 유권자 마음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개학이 연기된 상황에서 우리 고등학교 3학년에게 유감인 소식이 하나 더 있다.이번 4월 치러지는 21대 총선부터 만 18세도 투표권을 가지게 되어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주체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의 뿌듯함을 느끼게 되었는데, 개학 연기로 인해 막상 이것이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는 사실이다.사실 매번 선거철마다 집으로 오는 선거공보를 보시던 부모님의 모습에 내심 나도 가서 구경해 보고 싶었지만, 정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학기에 실시 예정이었던 새내기 유권자 교육을 꽤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사실상 취소되었다는 소식에 매우 아쉬웠다.그러던 차에 담임 선생님께서 학급 단톡방을 통해 보내주신 유튜브 영상을 접하게 되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유튜브를 통해 새내기 유권자에게 필수적인 정보와 활용 가능한 다양한 사이트를 알려주고 있었다.실질적인 투표권은 만 18세에 가진다 하더라도 더 어린 청소년들도 정치에 대한 관심을 충분히 가질 수 있다. 청소년들이 자주 접하는 플랫폼을 활용한 눈높이에 맞는 자료가 더욱 많아진다면 청소년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실제 투표 전에 더 깊이 고민하고 선택하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 생각한다.그런데 해당 영상을 시청하는 것을 숙제로 낸 것인지 입시에 치여 사는 와중에 1시간 남짓의 영상을 보라고 한다며 불평하는 댓글을 볼 수 있었다.어깨에 입시의 부담을 지고 학교생활을 하는 같은 고3의 입장에서 하루의 몇 시간을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낭비한다고 느껴진다면 그런 숙제에 대해 불평과 불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입시가 중요하다 해도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을 놓쳐서는 안 되고, 학생들이 이러한 생각을 가지지 않도록 가르쳐 주고 이끌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내가 가진 한 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고, 이에 따라 나는 내가 어떤 정치를 바라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역시 아직 학생이기도 하고 교사를 꿈꾸고 있어서 그런지 학생과 학교, 진학과 관련된 공약들에 눈이 갔다. 나는 졸업을 앞두고 있지만 내가 행사한 한 표가 후배 학생들의 학교생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였고, 이에 대해 두려움도 느꼈다.이번 선거를 앞두고 나 나름대로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들이 여러 가지가 있다.그중 하나를 말하자면, 학생들의 책임감 있는 정치 참여를 말하고 싶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 정치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나이와 무관하고 모두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깊이 느꼈다. 앞서 말한 댓글에서의 경우처럼 입시가 더 중요한 것을 압도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나타나지 않고, 정당한 우리의 권리를 올바르게 행사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 수 있게 하는 교육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이번 선거법 개정으로 만 18세가 선거권을 얻으며 추가된 유권자의 수는 약 50만 명으로 총 10대 유권자 수가 100만 명을 넘는다고 한다. 10대의 목소리가 커진 만큼 더욱더 책임감을 가지고 투표에 임했으면 좋겠다. 학생들에게 선거권이 주어지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말해 온 사람들도 인정할 수 있는 올바른 투표 문화와 정치가 되었으면 좋겠고 또 함께 만들어 가고 싶다.다가오는 총선일이 단순히 하루 쉬는 날이 아니라 다음 4년을 바라보고 투표하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특히 이번 선거를 앞두고 있는 고등학교 3학년 친구들이 자신이 바라는 사회에 대해 한 번 더 고민해 보고 선거에 임하였으면 좋겠다.

2020-04-01 14:46:23

[매일춘추] 모순(矛盾)의 묘(妙)

[매일춘추] 모순(矛盾)의 묘(妙)

모순(矛盾)은 전국시대 초나라에서 창과 방패를 파는 한 상인이 호객행위를 하다가 한 구경꾼에게 여지없이 무너져 버린 이야기다. 상인이 창의 예리함과 방패의 견고함을 자랑하던 중에, 한 구경꾼이 "그럼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면 어찌 되는 거요?"라고 묻자 달아나버렸다고 한다.모순은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에 흔히 쓰인다. 모(矛)는 창의 뜻을 가졌고, 금문(金文)에는 전차에 끼우기 위한 고리가 그려져 있다. 사람이 들고 다니는 용도가 아니라 전차에 끼워서 적을 위협하던 용도로 쓰였다고 한다.순(盾)은 투구에 차양을 내린 형태로 원래 눈을 보호하기 위한 뜻이었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눈'이다. 앞이 보이지 않으면 적을 공격하거나 막는 것이 곤란할 수밖에 없다. 몸의 눈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마음의 눈이다. 몸을 다치면 불편해질 뿐이지만, 마음을 다치면 생을 버릴 수도 있다. 적어도 '먹고 사는 것'에 고민이 없을 법한 이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도 모두 이 '마음'을 다쳤기 때문이다.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타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으면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상인이 팔던 창과 방패는 과연 어떤 제품이었을까? 당대 최고의 무기였을지도 모른다. 다만 과장된 표현이 그를 일순간 바보로 만들어버렸을 수도 있다. 말도 되지 않는 말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사람을 가끔 만난다. 반면 진솔한 사람이 제대로 표현을 못해서 전전긍긍하는 사람도 있다. 흔히 사회적 성공의 척도라고 여기는 돈과 명예를 가지는 이들은 모순되게도 전자인 경우가 많다. 상대가 얼마나 능숙하게 어휘를 구사하느냐에 따라서, 가끔 선(善)보다 악(惡)을 선택하는 우(愚)를 범하기도 한다. 이는 건전하고 밝은 사회의 슬로건에는 뭔가 걸맞은 조건은 아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바로잡는 것이 옳다. 과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과장된 불안은 현실보다 더 큰 위기를 조장할 수 있다. 코로나19의 불안이 극에 달했을 때 마스크가 부족하다는 보도가 연일 터져 나왔다. 싸구려 마스크가 말도 안 되는 고가에 팔리기도 했다. 얼마나 많은 말들이 우리를 불안하게 하였던가. 폭리를 취하기 위한 중개인이 등장하는가 하면, 방호효과가 전혀 없는 제품을 '신제품'으로 둔갑시켜 판매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당시에는 옆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그 후 정부가 공급대책을 발표하고 마스크를 기부하겠다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직접 마스크를 제작하여 소외된 이웃에 공급하는 단체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중국으로부터 불어온 역병(疫病)에 한 종교단체의 집단감염으로 인해 공포가 극에 달하자, 이들을 향한 저주와 분노가 쏟아졌다. 그 후 용서와 화해, 희망의 불씨를 지켜내기 위한 노력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창과 방패는 공격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를 지켜내기 위한 그 무엇이어야 한다.

2020-04-01 14:09:22

[종교칼럼]내가 사는 곳

[종교칼럼]내가 사는 곳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책상과 컴퓨터 그리고 방이 나의 오감을 통해 나의 인식 세계 안에 들어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하는 평범한 크기의 공간이고 이 정도로 편안하고 충분하다. 그러기에 내가 있는 공간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이 글을 써나가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그런데 남쪽으로 난 큰 창밖에서 햇빛이 들어오고 있고 바깥 풍경이 쉽게 눈에 들어온다. 하늘에는 구름이 있고 여느 때와 비슷하지만 같지는 않다. 가까이에 단독주택들이 이리저리 놓여 있고 높이가 상당한 아파트들이 보인다. 저 멀리 산들이 줄지어 이어지고 그 뒤에도 첩첩이 포개진 모습까지 보이기도 한다.내가 책상 앞 의자에 앉아 손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고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감각하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다. 아직까지 미각과 후각이 동원될 일은 발생하지 않고 있어서 여기까지가 내 오감의 세계가 감지하는 외부 세계다. 나는 이들 한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이 정도의 인식만으로도 내가 살아가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 같다.그런데 그동안 살아온 삶과 학교 교육을 통해 배운 것이 있어서 오감의 세계를 넘어서 내가 살고 있는 주변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우리나라의 여러 모습들을 떠올릴 수 있고 여행을 통해 본 지구촌의 여러 모습들도 떠올릴 수 있다. 오랜 기간 살았던 오스트리아와 수도 빈을 떠올리면 그곳이 그리워지기까지 한다.여기서 나아가 지구 자체를 떠올릴 수도 있다. 내 책상 위에 지구본이 있어서 쉽게 떠올릴 수 있기도 하고, 그동안 본 많은 자료들을 통해 기억하고 있는 지구의 모습을 떠올릴 수도 있다. 지구를 공전하는 달을 생각할 수 있고 밤하늘에서 본 다섯 행성들과 별들을 떠올릴 수 있다.상상의 나래를 더 넓혀 자료들을 통해서 본 태양계 자체를 떠올릴 수 있고, 우리 은하 전체도 떠올릴 수 있다. 나아가 우리 은하와 같이 1천억 개가 넘는 항성들로 구성된 은하를 약 4천억 개까지 망원경으로 확인하고 있다는 인류의 공간적 인식의 범위 전체를 생각해볼 수도 있다. 인류가 앞으로 더 나은 망원경으로 더 넓은 공간을 인식해 낼 가능성을 생각하면 우주는 참으로 넓고 크다고 할 수 있겠다.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공간의 크기는 공간에 대한 나의 생각 범위에 따라 실로 다양할 수 있고, 그 한가운데 내가 있다. 이렇게 큰 우주의 중심은 지구의 중심이거나 태양의 중심 또는 우리 은하의 중심이 아니라 그것을 인식하고 있는 바로 나일 것이다. 우주의 실제적 공간은 나를 중심으로 앞뒤 좌우 아래위로 펼쳐져 나가 앞에서 언급한 만큼 클 것이다.하지만 내가 사는 곳은 바로 나의 방과 이 주변이고, 살 수 있는 곳의 최대 크기는 지구 표면이다. 최근에 읽은 자료에 의하면 인류가 지금까지 발견한 외계 행성은 약 4천 개인데 지구와 가장 닮은 케플러-186f로 명명된 행성은 490광년 떨어져 있다. 빛의 속도로 달리면 490년 만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항성 알파 켄타우루스 별의 4.3광년 거리를 지금 우주선으로 가는 데 약 8만 년이 걸린다. 게다가 지구촌의 모든 에너지를 동원해도 이 우주선이 그곳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연료에는 턱없이 모자란다.상상하고 시를 쓰는 데는 자유가 있지만 생명을 유지하는 데는 과학적 사실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지금 내가 살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갈 공간은 이렇게 큰 우주에서 지구 표면이 유일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지구에서 어떻게 살아야 지속가능한 삶이 될 것인지를 절박하게 생각하게 한다.

2020-04-01 09:51:30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성장기 강아지의 갑작스런 통증과 마비(AAI)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성장기 강아지의 갑작스런 통증과 마비(AAI)

아름이(그레이하운드·5개월)가 갑작스럽게 통증을 느끼고 걷지를 못하여 내원했다. 보호자는 3일 전 어미견과 함께 산책하다가 갑자기 깨깽거리며 몸이 불편한 기색을 보이더니 서서히 보행이 불가능해지고 네 다리를 뻗는 마비증상이 나타났다고 했다.아름이에 대한 신경계 검사(neurological examination)를 우선 실시했다. 신경계 검사란 동물의 행동을 관찰하고 신체 각 부위를 촉진하며 감각의 인지 정도와 운동반응 정도를 평가해 신경의 이상 부위와 정도를 예측하는 검사 과정이다. 이러한 검사 과정을 통해 신경계와 관련된 증상인지를 감별하여 추가적으로 필요한 진단 검사를 선택하게 된다.아름이는 네 다리의 발목이 꺾여 발등으로 디디는 너클링(Knuckling)소견이 확연하였다. 이 증상은 가장 확인하기 쉬운 반응 검사로 자신의 몸의 감각을 느끼는 고유수용감각(Proprioception)이 약화되었기 때문에 발등이 바닥에 끌려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한다.네 다리의 보행 자세와 힘을 디디는 정도, 대칭성에 대한 평가를 위해 앞발로만 걷는 휠 배로잉(Wheel barrowing)검사와 뒷다리를 평가하는 익스텐셜 포스쳐 스러스트(Extential posture Thrust) 검사를 실시했다. 그 외 50여 항목의 신경계 평가 검사를 종합하여 아름이는 경추 디스크질환을 의심할 수 있었다.신경계 질병을 확진하기 위해서는 MRI검사가 가장 정확하다. 하지만 동물을 위한 MRI검사는 마취가 이루어져야 하며 높은 검사 비용이 부담되므로 보호자의 선택이 있어야 한다.아름이는 경추에 대한 엑스레이 검사를 통해 첫 번째 경추(Atlas)와의 연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두 번째 경추(Axis)의 전방으로 길게 돌출된 뼈(Dens)가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하여 발생한 성장기 경추디스크(AAI, Atalo-Axis Intaybility, 환축추아탈구)로 진단됐다.아름이는 2번 경추의 형성장애로 인해 디스크 소인이 잠재되어 있던 상황에서 충격이 가해져 척수신경의 압박이 현저해진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제서야 보호자분들도 아름이가 간헐적으로 깨갱거리며 소릴내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으셨다.아름이 보호자에게는 몇가지 주의를 드렸다. 과체중, 무리한 운동은 당분간 피하고, 함께 지내는 개들로인한 갑작스러운 충격을 겪지 않도록 당부드렸다. 아름이가 통증이 줄어들고 보행이 가능해지면 서서히 가벼운 산책부터 가볍게 달리는 운동은 허용해 주실 것을 당부드렸다. 성장기 강아지는 걷고 달리는 과정이 뼈의 성장을 촉진시키기 때문이다.아름이는 약물 복용과 목 보호를 위한 가벼운 목부목을 착용하였으며 나날이 호전되어 한달 뒤 예방접종을 하러 온 아름이는 늠름한 그레이하운드로 변해있었다.성장기 강아지가 뼈의 형성 장애로 유발되는 질병이 많다. 슬개골탈구, 경추 디스크, 관절 이형성증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렇듯 다양한 선천성 골관절 질환들은 걸음걸이의 이상이나 통증을 유발시킨다. 성장기 강아지가 통증이나 보행이상을 호소한다면 신경계검사를 우선 받으실 것을 권장드리는 이유이다. 수의학박사 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 SBS TV 동물농장 동물수호천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원장은 개와 고양이,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치료한 30여년 간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올바른 동물의학정보와 반려동물문화를 알리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동물명은 가명을 사용하고 있음을 양지부탁드립니다)

2020-03-31 18:00:00

[매일춘추] 위기에 발견하는 것들

[매일춘추] 위기에 발견하는 것들

2020년 2월 19일, 코로나19가 급작스럽게 확산된 대구에서는 모든 것들이 이 날을 기점으로 셧다운 되었다. 그러기를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나 4월의 시작에 도달하였다. 언제 끝날지 모를 재난에 우리는 시간이 멈춘 듯이 숨죽이고, 이 모든 것이 어서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바람뿐이다. 하지만 이 고통스런 시간들을 보내면서도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있다. 우리는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새삼 알게 되었고, 고난에 대처하는 우리 이웃들의 질서 있는 자세와 성숙한 면모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위기가 닥칠 때 우리는 일상에서는 보지 못했던 전투태세와 잠재력을 발휘하게 마련이다. 아름다운 세계를 추구하는 예술가의 경우에도 그러하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과 같은 굴곡 많은 우리나라의 격동기에 예술가들 역시 사회를 걱정하고, 도움을 주기 위해 적극 노력하였다. 지역 화단에 그러한 전형의 표본으로 삼고 존경할 만한 어른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대구에서는 석재 서병오가 그러하고, 광주에서는 의재 허백련이 그러하다.석재는 일제강점기인 1921년 교남시서화연구회를 조직하여 대구 근대미술의 전통과 변화를 이끈 예술가이지만 국채보상운동이나 독립운동에도 관여했었다. 의재는 남도 화단의 남종화풍을 정립한 대표 작가이면서도 농촌 근대화를 위해 1947년 청소년을 위한 농업기술학교를 설립하는 등 사회사업에도 열심이었다. 이외에도 서양화가 광주의 오지호의 경우에는 1969년 한국어문교육연구회에서 교육과 민족문화 운동을 하였고, 서동진의 경우에는 한국전쟁 중 쏟아진 고아와 거리의 청소년들을 위한 사회사업에 적극 참여하기도 했다. 어지러운 역사의 현장에서 대구와 광주의 예술가들은 지역사회 리더로서 결코 사회와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대구와 광주의 선구자적인 예술가들의 자세처럼 지금의 위기에 발견한 또 하나의 사실이 있다. 대구와 광주의 우정이 그것이다.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는 선입견에 서로 대척된다고 여겨졌던 대구와 광주의 우정은 이번 위기에 더욱 빛을 발하였다. 대구미술관에서는 코로나19로 장기 휴관에 들어간 대구 광주 달빛동맹전인 '달이 떴다고' 전이 재개관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2월 중단되어 언제 재개될지 모르는 교류 전시와는 달리 지금 대구와 광주의 교류는 어느 때보다 강하게 이어지고 있다. 위기를 견디고 이기는 DNA가 유달리 강한 지역이어서일까. 지금 대구와 광주는 어느 때보다 위기를 공감하고, 연대하였고, 굳건한 우정을 지켜나가고 있다.많은 사람들은 이 미증유의 재난이 우리 사회에 대단히 많은 문화와 사고의 전환을 가져올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 많은 변화를 예단할 수는 없지만, 위기의 시간에 서로를 배려하고, 고통을 나누고, 함께 연대하는 자세만큼은 바이러스에 이기는 면역만큼 성장할 것이다.

2020-03-31 13:51:30

[권미강의 생각의 숲] 국민이 부여한 권력 사용법

[권미강의 생각의 숲] 국민이 부여한 권력 사용법

국가로부터 폭력을 당한 사람들은 안다. 그 폭력은 국가가 아니라 국가의 권력을 손에 쥔 위정자들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폭력에 노출됐던 사람들은 두려움에 숨죽여 살거나 스스로 권력에 맞서 투사가 되기도 한다. 역사는 권력을 휘두르는 위정자들과 권력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반복되는 전쟁 같다. 끊임없이 반복되고 반복되면서 세월은 우리에게 권력과 폭력의 경험치를 전수한다.누군가 그랬다. 위정자(爲政者)는 나쁜 권력자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인을 일컫는 단어라고. 누가 모르는가. 하지만 우리 머릿속에서 위정자는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국민을 향해 휘두르는 후안무치한 인간들로 저장돼 있다. 그것은 바로 역사가 보여주고 알려준 경험의 산물이다.간첩 사건이나 국가보안법 같은 굵직한 사건에 연루되지는 않았지만 필자도 국가 폭력의 작은 희생양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지역 문화재단의 문학관 운영팀장이었던 필자는 문학관 공원에 노란 추모 리본과 추모 시화를 설치했다. 어느 날 문화체육관광부 직원 3명이 갑작스레 문학관을 방문했다. 그 후 필자는 갑작스레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났고 3개월 뒤에 정리해고됐다. 문학관 경영평가에서 우수한 성과를 냈지만 정규직 전환 대신 해고 통지서를 받은 것이다. 소명 절차도 그저 형식에 그칠 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필자가 겪은 정신적, 경제적 고통은 상당했다.이후 진실을 알게 됐다. 박근혜 정권이 예술인들에게 씌웠던 블랙리스트라는 올가미에 걸렸다는 것을.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었다. 블랙리스트에는 전국의 다섯 개 문학관 이름만 명기돼 있을 뿐 개인의 이름은 없었다. 문학관을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정권이라니. 기막혔다. 다만 진상 조사 과정에서 당시 필자를 정리해고한 과정이 낱낱이 드러났다. 보수 성향의 관장과 원로 문인들, 문체부의 지시가 한데 모여 재단이사장 동의 아래 해고됐던 것이다. 억울하지만 필자는 블랙리스트 안에도 들지 못하는 블랙리스트가 됐다.'국가의 권력은 국민에서 나온다'는 문구가 제값을 하는 선거가 곧 다가온다. '국민이 직접 선출한 사람들로 구성된 국민의 대표 기관'이라고 백과사전에 나와 있는 '국회'에서 일할 사람을 뽑는 선거다. 막걸리 선거니 고무신 선거니 하며 낯 뜨거운 금품선거도 있었고 투표용지 자체를 바꿔치기하는 부정선거와 깡패를 동원한 폭력선거 등 오점으로 기록된 선거들이 있어 왔다. 그 오점 선상에 있었던 사람들이 여전히 민의를 대변한다며 후보로 나오고 반성은커녕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시대착오적 발언을 해가며 국민들의 갈등을 부추긴다. 비례정당제 덕인지 폭행치사에 청소년 강간까지 했던 범죄자들이 후보로 나서는 추악한 꼴을 보이고 있다. '저리 인물이 없을까' 싶다가도 진짜 저런 사람들이 다시 국회에 진출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암울하다는 생각에 몸이 떨린다. 그런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된다면 이 나라에는 다시 국가 폭력이 난무하고 필자 같은 희생양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다시 말하지만 선거는 상식적이고 민주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국민의 대표를 뽑는 행위이며 국회의원의 권한은 국민이 주는 것이다. 그 권한을 권력으로 착각하고 국민 위에 군림하려 한다면, 그런 음흉한 욕심을 숨기고 선거에 임한다면 언젠가는 그 민낯이 드러나 스스로가 역사의 오점이 될 것이다. 국민이 부여한 권력 사용법을 제대로 익히고 선거에 임해야 할 것이다.

2020-03-30 18:00:00

[삶 갈피] 역병 이후

[삶 갈피] 역병 이후

얼마 전, 여러 일간지 북 섹션에 책이 한 권 소개되었다.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Cosmos: Possible World)이라는 제목의 책이다. 감이 빠른 분은 이미 알아챘겠지만 1996년에 작고한 유명한 천체물리학자 칼 세이건의 베스트셀러 '코스모스'의 후속작이다. 저자는 칼 세이건의 후반부 인생을 함께했던 세 번째 부인 앤 드루얀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1980년 TV 다큐멘터리와 책으로 선을 보이면서 전 세계적으로 우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폭발적으로 이끌어냈다. 앤 드루얀은 이때부터 칼 세이건과 작업을 함께한 동료라고 한다.개인적으로 아직 읽어보지 못한 터라 내용을 코멘트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여러 매체의 신간 소개란에 실린 내용에 따르면 앤 드루얀의 책은 '코스모스'에 담긴 메시지를 그대로 계승하면서 그 후에 새롭게 알려진 과학적 사실들을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본 저자의 한국어판 서문에서는 과학에 대한 신뢰를 강조하면서, 이를 통해 우리가 직면하고 있거나 또 직면하게 될 위기들을 극복하고 인류를 지속 가능한 미래로 이끌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칼 세이건과 관련해서는 널리 알려진 일화가 하나 더 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90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쏘아 올린 우주탐사선 보이저1호는 태양계에 대한 탐사를 마치고 성간우주로 들어가기 위해 태양계의 끝자리 명왕성 부근을 지나고 있었다. 이때 칼 세이건은 나사에 보이저1호의 카메라 방향을 180도로 돌려 지구를 찍자고 제안했다. 혹독한 환경에서 비행하는 우주선에 예정에 없던 과업을 부과하는 것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들도 있었지만 칼 세이건은 이를 관철시켜 마침내 지구를 찍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하여 찍힌 지구의 모습은 광활한 우주 공간에 가늘게 이어진 긴 띠 속에 찍힌 아주 작은 한 개의 푸르스름한 점이었다. 그렇게 하여 지구에 붙여진 또 하나의 이름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 사진을 찍자고 고집한 의도에 대해 뒷날 세이건은 우리가 삶을 기탁하고 있는 지구의 소중함을 일깨워 하나뿐인 이 행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마침 나사에서도 지난달 이 유명한 사진을 새롭게 보정하여 해상도를 높인 버전을 일반에 공개하여 다시 한번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보정의 결과로 좀 더 선명해진 것은 붉은 기운에서 옅은 푸른 계열로 바뀐 배경의 색감일 뿐, 지구는 여전이 창백한 푸른 점 그대로였다.역시 칼 세이건의 참신한 상상력으로 유명해진 우주력에 의거하면, 이 창백한 푸른 점은 우주가 가을로 접어드는 9월 1일경에 태어났다. 우주의 나이가 138억 년으로 추산되고, 지구의 나이가 그 3분의 1에 해당하는 46억 년쯤 된다니 말이다. 이 상상을 계속 이어가 보면 이렇다. 우주의 나이 138억 년을 1년으로 환산하면 한 달은 11억 년 남짓이고, 하루는 3천800만 년 어림이 된다. 이럴 경우, 포유류가 지구상에 등장한 것은 크리스마스 다음 날인 12월 26일이고, 아기 공룡 둘리의 조상이 영문도 모른 채 멸종당한 것은 12월 30일 아침 녘이다. 현생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태어난 것 또한 아무리 길게 잡아도 12월 31일 밤 11시 45분을 앞서지 않는다. 그리고 인류의 4대 문명이 시작된 것은 대략 밤 11시 59분 50초,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0초쯤 전이다. 우리가 사는 창백한 푸른 점이 걸어온 시간의 궤적이다.무생물이든 바이러스든 고등생명체든, 지구상의 모든 존재의 나이테 속에는 그렇게 얽히며 흘러온 자연사(自然史)의 흔적들이 퇴적되어 있다. 우리의 몸은 지구의 나이만큼 오래되었고, 우주의 나이만큼 늙은 것이다. 그것은 문명의 산물이기 이전에 자연사의 일부이다.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역병은 지나갈 것이다. 하지만 역병 이전과 이후, 삶과 문명을 바라보는 태도에 아무런 변화의 단초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몸을 배우는 수업료는 더 비싸질 것이다.

2020-03-30 18:00:00

[기고] 경북대병원장 정호영 선배님께

[기고] 경북대병원장 정호영 선배님께

저는 85년부터 92년까지 경북의대를 다닌 김흥규입니다. 교정이나 병원에서 우연히 스쳤거나 5월의 축제를 함께 즐겼을 거라는 생각에, 직접 인사드리지 못하였으나, 동문의 인연으로 선배님께 짧은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2020년 1, 2, 3월은 날짜를 세는 것이 아니라 COVID19 확진자를 세며 지내는 중이고, 대구에서 확진자가 집중되어 시민들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헤매는 스트레스를 견디는 중입니다.저는 대구에서 모 종교의 신자들로부터 수천명의 COVID19 확진자가 발견되었을 때, 고향에서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 것이 안타까웠지만, 다행히 대구는 현대의학의 역사가 100년이 넘었고 최상급의 의학교육과 진료능력을 갖춘 4개 의과대학이 있고 1980년대부터 많은 수로 배출된 의학자들이 수만명이며 대구에 6000명 가까운 의사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확진자가 급격히 늘어나며 모 종교와 연관되어 대구에 대한 지역혐오가 조장되었으나 중앙정부가 이에 대처하지 못하는 등, 지원과 감독을 하지 못하는 와중에도 대구시의사회, 예방의학회, 지자체(대구의료원)와 5개 상급종합병원(경북대병원, 영남대의료원, 계명대 동산의료원, 대구가톨릭의료원, 파티마의료원)은 경북의 환자까지 수용하며 7000명 이상의 환자를 치료하고 있습니다. 대구시의사회가 중앙정부나 지자체보다 먼저 지역의 의사들에게 호소하며 자원봉사를 조직하고 이에 고향을 떠났던 의사들과 다른 지역 출신의 의사들이 대구로 찾아와 자원봉사가 COVID19 방역의 중심으로 나타났습니다.대구에서 COVID19가 폭발적으로 나타났을 때, 전 세계에서는 한국을 'COVID19를 겪는 최악의 국가'로 말했으나 대구에서 확진자가 폭발한 것이 수습의 실패로 되지 않았고 COVID19의 확진자가 감소하고 대구 주변으로 확대되는 것이 지체된 후에는, 한국이 'COVID19방역의 최고 모범국가'라고 평가하는 빅 뉴스가 있었습니다.그런데 중앙정부와 정치인들은 대구에서 이루어 낸 성과가 마치 그들의 역량으로 한 것처럼 사방으로 선전하였고 대구에 대한 지역혐오가 만연한 것은 여전하였고 '대구'라는 단어를 말하는 게 부끄럽도록 여론을 조장하거나 방치하였습니다.한국에서 검사가 많았던 것이 세계적인 뉴스가 되었고 외국 COVID19 대응의료팀이 한국의 사례를 분석하였으며, 대구에서 매일 수천건의 검사가 확진자로 진단될 때, 5개 상급종합병원에서 450명의 자원봉사한 은퇴의사들이 검진하고 임상병리사들이 24시간 검사했다는 것을 전세계에서 알게 되었습니다.전문가의 희생과 전문가들이 내놓은 '2주간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캠페인을 시민들이 일상활동을 포기하며 지킴으로써, COVID19 폭발이 수습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마치 '낙동강전선'을 대구에서 버텨낸 것 같은 상황입니다. 1950년에는 목숨을 던져 낙동강전선을 지켰으나 2020년에는 시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전문가들이 희생하고 가용할 자원들을 효율적으로 운용하였고 시민들은 불안하지만 동요하지 않음으로써 사태를 수습했습니다.현재 계명대 대구동산병원(동산동)에 COVID19 중환자실을 운영하는 '중환자의학회'의 자원봉사 의사와 간호사들이 곧 본래 근무하던 직장으로 복귀할 시점이 다가왔고 대구 전지역 70여명의 중환자들이 매우 위중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고 염려한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그리고 한 전국 일간지의 'TK 코로나 중환자 치료 사실상 마비'라는 기사에 대해 대구의 각 대학병원에서 의견을 내셨고 매일신문을 통해 선배님(경북대병원 정호영 병원장)께서 "대구 전체 음압병상 108개 중 여유 병상이 다수 있고, 병원마다 에크모 및 인공호흡기도 여분이 있다"며 "대구지역 상급종합병원 중환자실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것을 읽었습니다.제가 그동안의 상황을 직접 겪은 바가 없으나 정확한 소식을 알아내려고 애쓰고 살펴본 바가 있어서, "대구지역 상급종합병원 중환자실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선배님의 말씀은 맞는 점과 틀린 점도 있다고 감히 말씀드리려고 합니다.대구에서 COVID19확진자가 폭발하기 전에 한국의 치사율은 2.6%였는데, 1.4%로 낮아진 것은, 대부분의 중환자가 대구에서 치료 중인 상황을 감안하면, 5개 상급종합병원의 중환자실과 동산병원의 중환자실이 매우 성공적으로 치료하고 있음을 증명합니다. COVID19의 치료제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치사율을 1.4%로 유지하기는 쉽지 않을 듯 싶습니다.동산병원에 중환자의학회 소속 전문의 6명과 간호사 11명이 20병상 규모 중환자실에서 환자를 돌보고 있다 하는데, 현재 COVID19의 한국의 치사율이 1.4%인 점을 감안하면 20병상은 거의 2000명 이상의 확진자로부터 발생하는 중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규모입니다. 만약 20병상이 없어진다면 치사율은 얼마간 올라갈 것이고 2000명 이상의 확진자 중에서 일부의 중환자가 발생하면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사태가 됩니다.더구나 중환자는 신규확진자의 숫자보다는 나이와 기저질환의 유무에 따라 발생하므로 요양시설 또는 최악의 경우에 학교에서 집단감염이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이 계속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중환자병상은 더 확보되어야 합니다.그러나 정부와 대구시가 대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으므로 중환자의학회의 일부에서 '대구동산병원이 무너진다'는 표현으로 다급함을 말하며 그 여파가 5개 상급종합병원으로 확대되는 것을 예상하여 "대구의 COVID19 중환자 진료체계가 위태롭게 된다"고 말한 듯 싶습니다.그들이 우려한 것은 동산병원의 20병상이 없어지는 것이 단순한 숫자놀음이 아니고 치사율이 높아지고 5개 상급종합병원의 중환자실이 한계에 부딪히고, 그 상황에서 의사가 중환자에게 집중되면 다른 질환의 환자가 악화됨을 경고하여 정부와 대구시를 일깨워주려고 했을 것입니다. 서로의 노력을 폄하하거나 능력을 과소평가한 것이 아닙니다.그리고 더 나쁜 것은, 지금 국민들이 일상생활을 포기했기 때문에 COVID19가 주춤한 것일 뿐, '전문의료인의 자원봉사, 임상병리사의 24시간 검사, 국민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피로현상이 발생하면 다시 COVID19 확진자가 증가하고 한국의 의료시스템의 대응능력의 실상이 드러납니다.선배님께서도 아시다시피 대구를 제외한 한국의 전 지역은 대구 만큼의 의료인프라가 없습니다. 서울의 의과대학, 상급종합병원이 대구보다 3~4곳이 많은데 인구는 5배입니다. 치사율이 낮아진 것에 대구의 중환자실이 기여한 바가 크다면, 다수의 중환자들을 대구에서 수용해야 합니다. 그것이 '의료인격자'가 따라야 할 진정한 '의학의 道'가 아니겠습니까?이 COVID19의 시련이 얼마나 더 악화될 지 가늠하기 어려운 데, 한국에서 믿을 것은 정부와 정치인이 아니라 시민과 의료전문가라는 것은 이제 분명해졌습니다.공손하지 않은 글을 지면으로 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아무쪼록 동문을 위시한 의사와 간호사 등의 연대와 결의를 잘 유지하여 이 상황을 극복하는 중심체로서 대구의 능력을 잘 이끌어주십시오. 건강히 훌륭한 역할을 유지해주실 것을 온 국민과 함께 믿겠습니다.김흥규 씨앤앰 바이오(C&M Bio) 이사 겸 의학자문

2020-03-30 17:20:18

[일상중국] 중국, 봉쇄의 정치학

[일상중국] 중국, 봉쇄의 정치학

트럼프의 '뉴욕 봉쇄'는 실행되지 않았다. '자본주의의 심장'과도 같은 뉴욕은 중국 우한처럼 봉쇄하겠다고 나서도 봉쇄되는 곳이 아닐 뿐 아니라, 봉쇄할 수도 없는 미국의 상징이다. 무엇보다 트럼프는 시진핑이 아니며, 뉴욕은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다.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뉴욕 봉쇄 명령을 "지리적으로 주민을 가두는 것은 격리(quarantine)가 아니라 중국이 우한 시민에 한 것 같은 봉쇄(lock down)"라며 "우리는 중국이나 우한에 사는 게 아니며, 나는 이것이 불법이라 믿는다"고 거부했다.트럼프는 '봉쇄'가 중국의 오래된 전통이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중국에선 통하는 봉쇄가 미국에서는 통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몰랐다.중국은 코로나19의 발생지인 우한(武漢)에 대한 봉쇄 조치를 오는 4월 8일부터 전면 해제하겠다고 발표했다. 후베이(湖北)성에 대한 봉쇄는 이미 풀었다. 대신 중국은 28일부터 모든 외국인에 대한 중국 입국 금지 조치를 전격 시행하고 있다. 국내 봉쇄를 풀고, 해외에서 입국하는 외국인에 의한 바이러스 유입을 전면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적반하장도 이 정도면 기네스북감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해서 중국 전역이 아수라장이 된 상황에서도 상당수 국가들은 중국인에 대한 전면 입국 금지 등 봉쇄를 택하지 않았다.'봉쇄'에 대한 우리와 중국의 인식은 천양지차이다. 자고 나면 봉쇄령이 내려지는 일은 중국에서는 늘 일어나는 '일상'(日常)이었다.겨울철에 폭설이 내리면 우리는 제설 작업을 서두른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고속도로에 대한 제설 작업에 앞서 도로를 전면 차단하는 봉쇄 조치를 먼저 발동한다. 베이징 올림픽이 열린 2008년 미세먼지 수치가 높아지자, 베이징과 인근 허베이성(河北)의 모든 공장에 대해 가동중단 명령을 내리는 봉쇄 조치를 취한 것이 중국 정부다. 베이징시내의 모든 차량에 대해서는 강제 '홀짝제'를 올림픽이 열리는 한 달여 동안 시행했고, 전인대와 정협 등의 양회(兩會)가 열리는 베이징의 대기오염이 심각해지자, 자율 차량 홀짝제를 시행하는 것도 모자라, 아파트 등 집단거주 지역에서 퇴역 공산당원들이 각 가구를 방문, 자동차 키를 회수하는 등의 강력한 조치를 통해 홀짝제를 강제 시행한 곳도 중국이었다.인터넷과 SNS 역시 당국의 통제와 우회로를 찾아나서는 창과 방패의 공수(攻守)가 교차하는 전쟁터였다. '만리방화' 시스템을 통해 인터넷 접속을 차단하고, '진싼팡'(金三胖)과 '곰돌이 푸우' 같은 단어를 차단하면서 최고 지도자와 이웃 국가원수에 대한 조롱을 통제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그러니 전격적인 봉쇄 조치와 차단에 대해 중국인들은 놀라거나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늘 일어나는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우한 봉쇄령'이 전격 시행되기 직전, 500여만 명의 우한 시민들이 서둘러 우한을 탈출하다시피 한 것은 일상적인 봉쇄 조치에 대처하는 중국인의 일상적인 생활 방식이었던 셈이다.무엇보다 봉쇄와 차단과 탈출은 '마오쩌둥'(毛澤東)의 생존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국 혁명'의 위대한 승리라는 '대장정'도 따지고 보면, 장제스(蔣介石)의 제5차 '초공전'(剿共戰·공산당 토벌작전)에 맞서지 못하고 도망쳐야 했던 중국 공산당 홍군의 필사적인 탈출 작전이었을 뿐이다. 사실 초공전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당시 홍군 근거지인 루이진(瑞金)을 탈출한 홍군 10만여 명 중에서 '옌안'(延安)에 도착한 잔존 병력은 4천여 명에 불과했다.마오(毛)로서는 대장정을 통해 살아남은 중국 공산당과 홍군의 최고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확보하고, 새로운 근거지를 확보하는 성과를 얻었지만 중국 공산당으로서는 엄청난 타격을 입어 항일전쟁에 나서지도 못한 채 숨어 지낼 수밖에 없었다.그때부터 중국 공산당은 봉쇄와 차단을 주요 전략으로 삼았다. 중국 내전의 마지막 승부처였던 창춘(長春) 공략에 나선 홍군은 직접 맞서 싸우는 대신 봉쇄 전략을 구사했다. 6개월간의 창춘 봉쇄로 16만여 명에 이르는 무고한 시민들이 굶어죽었다. 봉쇄의 학습효과는 이처럼 끔찍했다.바이러스는 봉쇄 전략으로는 완벽히 차단할 수 없다. 우한 봉쇄로 중국은 바이러스의 전파를 차단한 것이 아니라 감염 정보를 차단하고 무고한 우한 시민들을 창궐하는 바이러스의 지옥에 고립시킨 것일 뿐이었다.우리는 여전히 중국이 우한발 '코로나19' 사태를 성공적으로 벗어났다고 여기지 않는다. 후베이성과 맞닿아 있는 장시성에서 후베이 사람들의 통행을 가로막고 나선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봉쇄와 차단은 이제 통제 사회에서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바이러스 대처법으로 판명되었다. 봉쇄는 열린 공간에서는 생존력을 잃어버리는 닫힌 체제의 정치적 수사학(修辭學)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바이러스는 절대로 봉쇄되지 않는다.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2020-03-30 16: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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