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ger Script 사외컬럼

사외컬럼

 
이정웅 전 대구시 녹지과장

[기고] 물 친화 도시 대구(?)

지난해 대구시는 2020년 제17차 세계물총회를 유치해 물의 도시로 위상을 제고했고, 이와 걸맞게 얼마 전에는 '대한민국국제물주간 2018' 행사를 열기도 했다. 기간 중 또 '세계물도시포럼'을 개최했다. 이 포럼에서는 방콕 등 11개 도시의 대표들이 '지속 가능 발전을 위한 물 친화적인 도시들 간의 협력'이라는 주제에 대해 각 도시의 경험과 노하우를 발표하고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올해는 대구시가 상수도를 보급한 지 1세기 즉 100년이 되는 해라 국제물주간 행사 개최와 더불어 더 뜻깊은 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대구 인구는 4만65명에 불과했으며 신천 상류에서 취수하여 대봉배수지까지 4천350m를 끌어와서 식수로 공급했다. 급수인구는 5천876명으로 당시 인구의 15%에 불과했고 1인 1일 급수량도 100ℓ였다.' -상수도사업 90년, 대구시-2017년 현재 급수 인구는 250만 명, 급수 비율은 99.9%로 크게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시민 1인 1일 급수량도 311ℓ로 3배 이상 늘어났다. 먹는 물 걱정 없이 생활할 수 있는 도시가 되었다. 따라서 이제는 2020년 개최될 '세계물총회'를 대비하고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취수원 이전 문제를 해결하며 명실공히 '물 친화적인 도시'로 나아갈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필자는 성주댐의 물을 원수로 활용하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어떤 학자의 주장을 수용해 보자고 제안한다. 왜냐하면 구미시민의 동의를 얻어 상류로 옮긴다 하더라도 하천수는 늘 불안하다. 반면에 성주댐 물은 수질이 좋다. 대구시가 성주군민의 동의를 얻어 식수와 농업용수, 생활용수 등을 완벽하게 해결해 주고 그 외 주민의 생활 향상에 필요한 지원책을 강구해서 시도해 보자는 것이다.또한 물 친화적인 도시를 만들기 위해 금호강의 유람선 운항 등 수운(水運) 활용 방안을 모색하고, 신천의 유지수량을 더 늘리고, 대구천 등 가능한 곳은 청계천처럼 물이 흐르게 하고, 기존의 매립된 못도 가능한 곳은 복원하며, 도시철도 1, 2호선의 버리는 물을 이용하는 도로 바닥 청소(달구벌대로는 이미 시행하고 있음) 구역을 늘리고, 인공폭포, 벽천(壁泉), 분수 등 수경 시설에 활용하고 실개천도 많이 만들어 증발되는 물로 청량감이 높도록 하는 등 물을 활용하여 도시를 쾌적하고 아름답게 하려는 노력을 해 보자는 것이다.별건곤 제34호(1930, 10, 1)는 '대구 어디로 가나?'라는 글에서 "대구 일대의 결함은 지리적으로 수운이 부족한 것이다.… 신천일대는 상수도수원지와 수성수리조합 이용 등으로 거의 건천이 되었고 서북 약 10리에 회류하는 금호강은 수원이 부족하여 인근 땅의 관개에만 겨우 이용될 뿐이요, 장류(長流)의 낙동강은 남서 30리나 떨어져 이용할 길이 멀며 몇 해 전에 대구부에서 약 400만원의 예산으로 낙동강을 끌어들여 일대 운하를 만들고 거기서 수력발전을 일으켜 일거양득의 큰 계획을 세웠더니 그 후 소식이 아득할 뿐이다.…"라고 했다.1930년대 대구의 물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낙동강 물을 끌어들여 운하를 만들고 수력발전을 하려 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20년 세계물총회 때 대구를 찾는 외국인의 눈에 진정 물 친화적인 대구의 모습을 보였으면 한다.

2018-09-27 11:06:16

이지선 살롱 드 메이페어 대표

[매일춘추]적절한 나아감과 물러남의 미학

중국 남북조 시대에 '장승요'라는 인물은 안락사라는 절의 주지 스님의 부탁으로 벽화를 그렸다. 구름을 가르며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것같이 꿈틀거리는 몸통과 단단해 보이는 비늘, 날카롭게 뻗은 발톱이 그려진 그야말로 생동감 넘치는 용 그림이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용의 눈에 눈동자가 빠져 있었다. 사람들은 용의 눈동자를 그려넣으라고 요구했고, 장승요는 성화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눈동자를 그렸다. 그 순간 용은 용솟음치며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마지막 점 하나로 그림속의 용은 실물이 되어 버린 것이다. 중국 고사에 나오는 '화룡점정'에 대한 이야기다. 그냥 두어도 완벽할 것 같지만 무언가 하나만 더한다면, 더 이상 건드릴 것이 없는 최고의 걸작이 된다는 의미이다.영화든 소설이든 역시 끝(마무리)이 좋아야 기억에 오래 남는 법이다. 그래서 관객들은 어떤 작품이든 끝이 허무하면, 뭔가 허전하면서 공연히 시간만 낭비했다는 평가를 하게 된다. 삶에 있어서도 고진감래(고생 끝에 즐거움이 있다)하면서, 정상에 올라가는 것 못지 않게 명예롭게 내려올 줄 아는 것도 인생의 긴 여정에 화룡점정을 찍는 순간일 것이다.영원함이란 없는 것이 우주만물의 이치인데, 평생 지속되는 청춘이나 성공을 바라는 인간의 욕구는 어차피 불가능하다. 단지, '자신만은 영원하리라'는 착각을 하고, 욕심에 얽매여 물러남을 거부하다 결국 화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적절할 때 물러나는 것을 '호둔'(好遯)이라고 한다. 군자는 호둔하기에 명예롭고 아름답다 하였는데, 소인은 그렇치 못하고 물러나기를 거부하다 추하게 된다고 했다. 또한 물러남의 시기가 적절하지 못하면, 오히려 그동안 쌓은 공적과 명예가 빛을 발하지 못한다.세계에서 가장 검소한 지도자로 불리던 우루과이 호세무히카 대통령은 성공적인 경제성장 뿐 아니라 소통과 믿음의 리더십으로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그가 퇴임할 무렵 지지율이 무려 63%나 되었고, 국민의 간곡한 연임의 청을 뿌리치고 취임식 때 몰고 왔던 28년 된 낡은 자동차로 다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다.누군가로부터 칭송받고 인기가 높아지면, 그 자리에 오래 머물러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지나침은 모자람보다 못한 법이니, 항상 지나침을 경계해야 한다. 시작보다 어려운 것이 아름다운 마무리며, 나아감보다 더 힘든 것이 물러남이라 했다. 물러남에는 용기있는 결단이 필요하고, 시기를 놓치면 매사가 작아진다. 대나무는 마디가 있어 옹골차게 높이 자라듯, 우리의 인생도 적절한 나아감과 물러남이 있을 때 화룡점정의 기회도 누릴 수 있다.

2018-09-27 11:04:05

안현주 메시지 캠프 기획실장

[매일춘추]당신의 당신

이상적인 당신을 꿈꾸지 말라. 갖고 싶은 것과 가질 수 있는 것, 누구에게나 이 사이의 간극은 존재한다. 얼마 전 야망으로 가득한 당신을 봤다. 당신 곁에는 오롯이 사랑을 줄 수 있는 연인이 있었다. 그러나 당신은 당신보다 나은, 그럼으로 인해 신분을 상승시켜줄 수 있는 배우자를 원했다. 그런 배우자는 당신이 원하는 만큼, 당신에게 집중하지 못했다. 일, 돈, 명예 등 당신 만큼이나 중요한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연인과 같은 사람만이 당신을 감당할 수 있음을 알았다.당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우리는 이상적인 나와 실제의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는데 익숙해져 있다. 이상적인 기준을 향해 갈 때는 자존감이 생긴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기준에 미달하면 자존감이 바닥을 친다. 이상적이라는 것은 달성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계획대로 되겠지만, 이내 좌절하게 될 것이다. 가장 좋은 성과를 기준으로 매일을 산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으니까. 환상은 당신을 불행하게 만든다. 나에게 맞는 이상사회를 찾아 영원히 방황해야 할 테니까.직함은 당신이 아니다. 직장에서 존경받지만, 가정에서는 외면받는 사람들도 있다. 사회생활에서는 직위, 재산, 명예에 대한 존중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남의 시선이 곧 나인 것처럼 착각할 때가 있다.국회에서 일할 때다. 국회는 입법권과 예산심의권이 있으니, 소위 '갑중의 갑'이라고 불린다. 대기업 총수가 국정감사에 불려나오지 않게 해달라는 부탁부터, 지역구 사업예산을 달라며 읍소하는 이들을 자주 봤다. 하지만 그들의 속이 겉과 같겠는가. 이 분에 겨운 대우가 나를 향한 것이 아님을 착각하지 않도록 애써야 하는 것이다. 당신이 국회를 나오는 순간 한낱 보통사람이 될 테니까.집과 회사를 오가는데 치여서 '진짜 나'가 사라진 것 같을 때가 있다. 관계는 있지만 '함께' 하지는 않는다. 관계를 감당하는 것마저 노동일 때가 있다. 이렇게 아프고 귀찮은 감정에 시간을 낭비하면서까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받아야 하는 것일까. 당신도 나도 외롭고 나약한 존재인데, 환상적인 존재인 것처럼 보여야 할 때가 있다. 그 괴리에서 오는 공허함과 부담감은 생각보다 크다. 누군가는 '신속하게 돌아가는 채널처럼 어지럽고, 최대로 키운 볼륨처럼 시끄러운'이라고 표현한 이 세상에서 화려함 속의 고독함을 찔릴 때, 그 부끄러움을 애써 감추려 하고 있다. 그 비뚤어진 자의식이 당신에게 상처주지 않기를.

2018-09-26 15:32:19

김문환 사진작가

[기고] 한 시간을 주시면 영원을 드립니다

사진은 1839년 프랑스에서 공표된 이래 180년 정도가 지났지만 아직도 식을 줄 모르는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특히 요즘 들어서는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누구나 어디에서든지 사진 촬영이 가능하게 됐다. 이런 추세에 비추어보면 음식, 오락, 스포츠 등 어떤 분야보다도 현대사회에서의 사진은 가히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예를 들어보면 맛집 바람은 '맛집 투어'라는 사회적 현상을 일으킨 바 있고, 지금도 TV 방송에선 소위 '먹방'이 대세인 듯 보이고 있으니 이런 현상이 언제까지 지속될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이 사진이라는 괴물은 180년이 지나도 인기 상승 곡선을 계속하고 있으니 유행이라면 그 어떤 유행도 이에 필적할 수가 없다. 사진은 기록과 유희라는 두 가지 목표를 채워주는 고마운 예술이다.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특히 증거 자료와 학문 분야에서의 그 파괴력은 적절한 표현을 찾기가 어렵다."사진은 우리 마음의 발자국이고, 우리 삶의 거울이며, 우리 영혼의 반영이고, 적막한 한순간 우리 손안에 쥘 수 있는 응고된 기억이다."사진치료학의 선구자인 주디 와이저(Judy Weiser)의 말이다. 사진을 통해 얻는 기쁨이나 치료, 위로와 회복은 사진의 또 하나의 얼굴 즉 유희적인 측면이다. 이 땅의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휴대폰에 손자 손녀의 사진이 있지 않은가? 생각해보라. 독자의 휴대폰 속에도 기쁨을 주는 그 누구의 얼굴이 있지 않은가? 젊은 군인에게 예쁜 여배우의 사진은 그 무엇보다 강력한 사기 진작용 '군수품'이다.나는 사람의 얼굴을 가장 잘 찍고 싶어 하는 인물사진 작가이다. 한때 필름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린 코닥 회사에서 조사한 결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찍는 사진의 종류가 '사람'이라는 재미있는 통계가 있다. 그것도 90% 이상으로. 이번 '대구사진비엔날레'에는 작가가 지난 20여 년간 만났던 셀럽들의 얼굴과 그 과정에서 겪었던 좌충우돌 이야기를 담고 있다. 스토리가 있는 사진전을 만들고자 사진마다 '이야기'를 첨부하여 전시하고 있다. 작가가 그간 작업하여 손봐드린(?) 사람은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탤런트, 영화감독, 대법관, 검사, 비구니, 의사, 스포츠맨, 동물보호운동가, 헌혈왕, 장례지도사, 자원봉사자 등을 망라하고 있다.이번 작품전에서는 이 명사들 중 '대구사진비엔날레' 초대작가전에 인물사진 전시를 허락한 19명만 특별히 모셨다.나는 사람의 얼굴이야말로 신의 창조적 작품이라 믿는다. 그것도 현재진행형인. 70억 명이 넘는 얼굴일지라도 똑같은 얼굴이 없지 않은가? 주로 근접 디테일 촬영을 하는 나의 작품 또한 그 인물의 삶과 여정을 살펴 조명 설계, 렌즈 선택, 촬영 앵글, 촬영 기법 등을 고민하며 나만의 창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저에게 한 시간을 허락하시면 당신에게 영원을 드리겠습니다."섭외 과정에서 자주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사진 한 장 한 장에 담겨 있는 나의 철학이기도 하다. 한 컷의 사진에 그 사람의 일생을 어떻게 담아낼까? 이것은 끊임없는 작가의 화두이기도 하다.

2018-09-26 14:08:26

[권영재의 음악유사]양양한 앞길

나라는 북한에 밀려 곧 망하게 생겼는데도 철없는 도시의 아이들은 마냥 즐겁기만 했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절 전쟁이 나니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외국 물자들을 구경하게 되고 먹을 것도 생기니 신이 났다. 길은 온통 사람으로 북적거렸다. 팔도 조선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말을 쓰며 다니는 것도 신기하고 더구나 서로 다른 복장에다 얼굴이 흰 군인, 검은 군인들이 길거리를 누비고 다니는 것도 큰 구경거리였다. 이들은 길 걷다 크레커, 초콜릿, 바둑 검 등을 던져 주는데 동네 아이들은 모이 본 닭처럼 땅에 머리박고 주워 먹기에 정신이 없었다. 계집애들이 고무줄 할 때는 우리 말 동요를 부르는 게 자연스러운 데 일본노래, 동요, 군가들을 짬뽕해서 불렀다. "무찌르자 오랑캐 몇 천만이냐?"서 부터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도 자주 불렀다.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동물에게는 '명기(銘記)'라는 게 있다. 어릴 때 보고 들은 모양이나 소리는 각인(刻印)되어 평생 간다는 말이다. 지방 말을 배운 뒤는 서울 가도 서울말을 못한다. 일부러 외국 말처럼 배워야 서울말이 된다. 때를 놓친 수신(修身)도 그냥은 회복이 안 된다.대봉동에 있던 대구보충대(일제시대 '가다쿠라' 제사공장 자리)에서 훈련을 마친 신병들은 도지사 관사 앞을 통과하여 16헌병대를 경과하여 국립극장(한일극장)을 지나 우회전하여 중앙통으로 간다. 대구역에서 기차를 타고 전선의 부대로 가기 위해서다."양양한 앞길을 바라볼 때에, 혈관에 파동 치는 애국의 깃발, 넓고 넓은 사나이 마음, 생사고 다 버리고 공명도 없다, 보아라 우리들의 힘찬 맥박을, 가슴에 울리는 독립의 소리."(용진가)가 자주 부르는 군가였다. 아무 표정도 없고 감정도 없이 부르던 그 행렬이 아직 기억이 난다.그 때의 많은 광경들이 나의 머리속에 명기가 되어 있다. 군인들이 총을 어깨에 메고 군가를 부르며 행군을 하면 보기만 해도 신이 나고 멋있게 보인다. 그러나 그 때는 이런 행군이 거의 매일 진행이 되다보니 군악대도 없고 맥 빠진 군가만 들으니 패잔병 보는 기분이었다. 그 때 군인들을 싸우러 가는 사람들이라기보다 일하러 가는 인부들 모습이었다.철없는 나는 삼촌들이 어디 엔가에 가서 죽는가 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도 높고 물도 맑은 곳에 태어나 이런 비극적이고 메마른 광경을 보지 않고 자랐으면 나도 남을 미워할 줄도 모르고 살아 있는 것을 모두 사랑할 수 있는 순진무구한 인간이 되었을 것이다. 앙팡 테리블로 태어난 탓에 평생 이 나이까지도 남을 용서할 줄도 모르고 내가 누군인지도 모르며 살고 있나 보다.용진가는 가사는 한국군 말고도 가사는 달라도 같은 음조로 독립군도 불렀고 북한에서도 불렀으며(유격대 행진곡)-현재도 행사 때 연주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북한 갔을 때 순안 비행장행사에도 이 노래가 연주되었다. 그들의 가사는 이렇다."동무들아 준비하자 손에다 든 무장, 제국주의 침략자를 때려부시고, 용진 용진 나아가자 용감스럽게, 억 천만 번 죽더라고 원쑤를 치자."아이러니한 일은 이 노래는 1908년 일본의 가미나가 료케츠(神長瞭月)가 작곡한 유행가 '하이카라부시'라는 것이다. 전주에 있는 신흥고등의 교가도 바로 이 노래의 곡조를 쓰고 있다고 한다. 독립군가 가사는 다음과 같다. "요동만주 넓은 뜰을 쳐서 파하고, 여진국을 토멸하고 개국 하옵신, 동명왕과 이지란의 용진법대로, 우리들도 그와 같이 원수 쳐보세."전 대구적십자병원 원장

2018-09-26 13:56:36

우남희 작 '러시아 아무르강'

[내가 읽은 책]아포리즘의 시원을 찾아/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고미숙, 2003, 그린비

피서 철이 아니어도 해외로 여행 가려는 이들로 공항은 북적인다. 비단 오늘날만이 아니라 조선시대에도 해외로 가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다만 오늘날과 다르다면 그 당시에는 대부분 사절단으로 중국 연경을 다녀왔다는 것이다.연암은 연행을 먼저 체험한 벗들로부터 청문명의 번화함을 듣고 중원을 동경해 오던 터에 삼종형 박명원이 중국황제의 만수절 축하사절단으로 간다기에 비공식수행원으로 따라간다. 이들은 기존의 사절단과 달리 연경을 거쳐 조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열하까지 가는데 이는 연경에 있어야 할 황제가 하계별궁이 있는 열하에 가 있었기 때문이다. 연암은 만수절 행사에 모여든 이민족들의 기이한 행렬을 목격하고 돌아와 열하일기를 쓴다.독문학을 전공한 저자는 대학 4학년 때 우연히 참가한 고전문학 강의에 매료되어 대학원에서 고전문학을 전공, 국문학 박사학위를 받는다. 연구공동체인 '수유+너머'를 결성하여 강연 및 집필을 하면서 고전문학을 새로운 시각으로 집필하는데 그 중 하나가 이 책이다.열하일기의 저자 박지원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실학자이자 소설가다. 벼슬아치에 대한 염증, 정치에 대한 환멸, 과거장의 타락을 목격하고는 과거에 고의적으로 낙방하고 학문과 저술에 전념했다. 청나라의 신문물에 관심이 많고 북학파의 영수이자 중상주의를 주장하였다.열하일기는 "형식상으로는 압록강을 건너는 지점에서 시작하여 마테오리치의 무덤에서 끝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그것은 시작도 끝도 아니다. 언제나 중도에 있으며 어디서 읽어도 무관하게 서로 독립된 텍스트"(p132)로, "뿌리라는 중심이 없고 목적, 방향도 없이 접속하는 대상에 따라 자유롭게 변하는 덩이줄기라는 뜻의 리좀과 같은 특성을 지니는데"(p125) 이것이 연암체의 특징이라고 한다.이는 조선시대의 앎은 고전으로 표현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리좀과 같은 소품체의 글은 경박하다고, 소설은 허구성 때문에, 고증학은 쪼잔한 시야로 인해 기존의 주류적 언어를 균열시키고 문장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고 해서 정조의 주도하에 문체반정이 일어나는 계기가 된다.연암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주류에서 벗어난 마이너들이고 저잣거리 이야기, 이국 장사치들의 이야기 등이 스스럼없이 펼쳐진다. 처음 본 코끼리의 움직임을 풍우가 움직이는 것 같다고 하는가 하면, 청명한 하늘에 천둥번개가 휘몰아치는 과정을 바둑돌, 맷돌 가는 소리로, 글쓰기를 전쟁의 수사학에 비유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필자의 마음을 후려잡는 명쾌한 문장은 단연 "하늘은 새파랗지만 하늘天 자는 전혀 푸르지 않다."(p376)이다. 그 누구도 이 말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지 않을까 싶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는 연암의 언어에 대한 촌철살인의 아포리즘에 혀를 차지 않을 수 없다.저자는 유머의 천재를 알고 싶어서, 열하일기의 웃음을 사방에 전염시키고 싶어서, 그 웃음의 물결이 삶과 사유에 무르녹아 열정적인 무늬를 만들어 내는지 보여주려고 이 글을 썼다고 한다.필자는 웃음으로 힐링하고 싶다면,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싶다면, 아포리즘 같은 글들을 만나고 싶다면, 글을 쓰는데 멋진 수사학이 필요하다면 이 책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열하일기를 읽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우남희 학이사 독서아카데미 회원

2018-09-26 13:47:48

장하빈 시인· 문학의 집 '다락헌' 상주작가

[장하빈의 시와 함께] 나비/ 윤일현(1956~ )  

나비의 삶은 곡선이다장독대 옆에 앉아 있던 참새가길 건너 전깃줄까지직선으로 몇 번 왕복할 동안나비는 갈지자 날갯짓으로샐비어와 분꽃 사이를 맴돈다아버지는 바람같이 대처를 돌아다녔고엄마는 뒷산 손바닥만 한 콩밭과앞들 한 마지기 논 사이를나비처럼 오가며 살았다나비의 궤적을 곧게 펴새가 오간 길 위에 펼쳐본다놀라워라 그 여린 날개로새보다 더 먼 거리를 날았구나엄마가 오갔던 그 길굴곡의 멀고 긴 아픔이었구나―계간 『발견』(2018년 가을호)* * ** * ** * * 직선과 곡선의 삶의 대비가 선연하다. 직선은 날카롭고 엄숙하고 장엄하고 차갑고 빠른 느낌을 주는 데 반하여, 곡선은 부드럽고 온화하고 평화롭고 따뜻하고 느린 느낌을 준다. 장독대에서 전깃줄까지 오르내리는 참새의 날갯짓이 직선이라면, 샐비어와 분꽃 사이를 맴도는 나비의 날갯짓은 곡선이다. 대처로 나도는 아버지가 참새의 직선적 삶이라면, 뒷산 콩밭과 앞들 논 사이를 오가는 어머니는 나비의 곡선적 삶이다.나비와 새의 궤적을 한데 겹쳐 보는 순간, "놀라워라 그 여린 날개로/ 새보다 더 먼 거리를 날았구나" 하는 나비의 고단한 여정에 대한 탄성이 흘러나온다. 나비는 온전히 펼쳤다가 접는 데 한 생애가 다 걸린다는 책이라고 어느 시인은 노래했다. 그 한 페이지는 하늘의 넓이와 같고 그 내용은 신이 태초에 써 놓은 말씀이라고 한다. 따라서, 쪼들린 가계를 혼자서 꾸려온 어머니의 굴곡진 생애를 '나비'로 은유한 것은 어머니께 바치는 가장 위대한 헌사다.시인 · 문학의 집 '다락헌' 상주작가

2018-09-26 13:41:25

김대영 (사)대한민국지식중심 이사장

[새론새평] 핵 협상을 가로막는 원숭이 항아리

한반도 평화 경제협력 기대한다면비핵화 위해 내놓을 것들 성찰해야북한 설득하려면 평화협정 공론화주변국과 더불어 진지하게 고민을지난주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과 이번 주 뉴욕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 핵의 폐기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또 하나의 이정표가 만들어졌다. '평양공동선언'과 북미 협상 재개라는 큰 성과를 낸 것이다. 그렇지만 못내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는 이유는 제 것은 내놓지 않고 남보고만 내놓으라는 속된 욕심이 더 큰 결실을 방해하기 때문이다.아프리카에서는 원숭이를 잡기 위해 주둥이가 좁은 항아리 안에 야자 열매를 넣어둔다고 한다. 야자 열매를 손에 쥔 원숭이는 항아리에서 손을 빼지 못한 채 발버둥 치다가 사람들에게 잡히고 만다. 일단 한번 먹이를 쥔 이후에는 절대 내놓지 않는 원숭이의 생리를 이용한 사냥법인데, 원숭이뿐만 아니라 인간도 종종 양손에 떡을 쥐고서 다른 떡을 탐낸다.평양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라는 대한민국의 대의는 국내외적으로 인정받았고 이에 15만 평양 시민들이 박수갈채로 화답했다. 1년 전의 상황과 비교했을 때 놀라운 진전이다. 1년 전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 총회 연설을 통해 33번이나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강조했지만, 당시 북한은 '서울 불바다'와 '미국의 늙다리 미치광이에 대한 보복'으로 대응했었다.그런데 이번 평양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비핵화 의지를 명시적으로 표명함으로써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북미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상태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협상의 실마리를 풀어낸 것은 실로 큰 성과다. 군사적 긴장 완화와 남북 간의 경제 및 문화협력에서도 합의가 있었지만 이는 북미 협상의 진전과 맞물려 있다.정작 심각한 문제는 미국의 미온적인 대응에 있다. 북한이 내놓은 떡을 받아 쥔 채 아무것도 내놓지 않는 미국은 원숭이의 항아리에 묶여 있는 형국이다. 이 상황을 타개하려고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애써 설득도 해 보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구체적인 대답 없이 계속 딴청만 부렸다. 이미 미군 유해를 송환받았고 이번에 동창리 미사일 실험장 폐쇄라는 큰 떡을 받고도 또 다른 떡을 찾는 꼴이다. 1994년의 북미 제네바합의에서 미국은 경수로 건설과 평화협정으로 북한의 핵 포기를 종용했는데, 지금 미국은 뚜렷한 제안 없이 핵 사찰을 요구한다.면밀히 살펴보면 우리에게도 문제가 있다. 한반도 평화를 추구한다지만 그 대가로 무엇을 내놓을지 생각하지 않는다. 서독은 통일을 위해 막대한 통일 비용을 지불했는데, 우리는 남북 관계의 개선이 초래할 이익만을 생각한다. 내 것을 내놓지 않으면서 평화도 유지하고 경제협력도 기대한다면 원숭이와 다를 바 없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우리가 내놓을 것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먼저 우리가 주장하는 종전선언만으로는 북한을 설득할 수 없기 때문에 평화협정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어렵고 불편하다고 해서 주변국들과 더불어 상호 구속력이 있는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문제를 얼버무리고 넘어간다면 핵 협상을 진전시킬 수 없다. 나아가 대북 제재를 풀기 위해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대가에 대해서도 정밀하게 파악해야겠다.초당적, 범국민적 협력의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겠다. 이번 평양 정상회담에 국회 동행을 요청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방식으로는 안 된다. 일방적으로 통보한 후에 거절당하면 당리당략으로 매도하면 판이 깨질 뿐이다. 내줄 것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할 때 비로소 협상이 성사된다. 공자도 강조했듯이 결과에 들뜨지 말고 먼저 어려운 일을 하나씩 실천해나가는 '선난후획'(先難後獲)의 자세가 절실한 시점이다.

2018-09-26 13:38:10

삽화 권수정

[이주향의 이야기와 치유의 철학]다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고전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봤습니다. 어머, 저게 저런 영화였어! 마치 새로운 영화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영화가 달라진 것이 아니라 내가 달라진 거지요? 청춘이 지나간 겁니다. 열정을 사랑했지만 열정에 시달리기도 했던 청춘이. 오랫동안 젊었던 우리는 종종 청춘이 지나갔음을 잊습니다. 지나간 청춘이 허무할 때도 있고, 그리울 때도 있고, 다행일 때도 있습니다. 청춘을 지나오면서 잃어버린 것도 많지만 잃어버렸다고 생각되는 그것이 영원히 쥘 수 있는 것이 없음을 알려주는 스승 같기도 합니다.나이 들어 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는 젊은 날 홀린 듯 몰입했던 스카렛 오하라가 그리 끌리지 않네요. 물론 그녀는 분명히 매력적입니다. 아버지가 사랑했던 아버지의 딸로서, 아버지의 후계자로서 목숨 걸고 타라를 지켜가는 그녀에게는 생존이 법입니다. 그 아버지는 전쟁 중에 미쳤고, 세금 낼 돈은 없고, 그들의 삶의 터전인 붉은 땅 타라는 끈덕지게 넘보는 이들의 손에 넘어갈지도 모릅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의 생존력은 타라를 지킨 독보적인 힘입니다. 오히려 여신급인 그녀의 미모가 그녀 인생을 평가 절하하는 걸림돌이었겠다 싶기도 합니다.그런데 생존이 법인 사람들은 극성맞지요? 언제 어디서나 극성맞게 존재증명을 하고 있는 그녀의 강한 성격이 이제는 부담스럽습니다. 그리고 나니 여신급 미녀 비비안 리가 분했던 스카렛 오하라보다 덕스럽게 생긴 멜라니가 훨씬 아름답게 느껴지네요.궁금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왜 모든 남자가 빠지는 스카렛이 자기 좋다는 사람들은 거들떠보지 않고 그녀가 아니라 멜라니와 결혼을 하겠다는, 언뜻 평범해 보이는 남자, 에슐리만 좋다고 하는 걸까, 하는 것어었습니다. 누구보다도 딸을 잘 아는 아버지가 에슐리의 결혼을 방해하려는 스카렛에게, 심술부리지 말라고, 너는 그와 행복할 수 없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잘 봤습니다. 도덕과 관습의 경계를 넘어설 수 없는 모범생인 에슐리는 절대로 자기중심적인 스칼렛을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요.그런데 왜 스카렛은 모난 곳 없는 멜라니를 선택해서 잘 살고 남부 신사 에슐리에게 그리도 집착하는 걸까요? 왜 에슐리 주변에서 얼쩡대다가 진정 사랑해야 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채 감정을 낭비하며, 삶을 낭비하며 살아가고 있는 거지요? 젊은 날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이었는데, 이제는 이해가 되네요.그런 유형이 있습니다. 누구든 자기만을 좋아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믿는 나르시스트! 자기 아닌 누군가에서 눈을 주고 마음을 주는 꼴을 보지 못하는! 바로 아프로디테 원형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입니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늘 거울을 가지고 다닙니다. 혹 벨라스케스가 그린 '거울을 보는 아프로디테'라는 그림을 아십니까? 그림 속 아프로디테는 에로스가 들고 있는 거울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거울은 자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보는 사람을 보고 있습니다. 원초적 욕망을 상징하는 아프로디테를 잘 표현하고 있는 그림입니다.아프로디테의 원형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자기를 보고 감탄하고 사랑에 빠져 허우적대는 이성에 익숙하고 또 그런 상황을 즐깁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그런 사람일수록 쉽게 자기에게 넘어오는 이성에겐 흥미가 없으니. 그들의 흥미는 자기에게 넘어오지 않는 사람입니다. 단지 그 이유로 그 사람에게 묶여있는 그들은 그래서 진정 사랑하고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해 생이 꼬이기 쉽습니다. 자기를 바라보고 이해하고 감싸 안으려는 버트를 사랑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의 삶을 꾸리고 있는 에슐리에 집착하는 스카렛처럼!멜라니가 죽자 멜라니 없이 어떻게 살지 모르겠다고 눈물 흘리는 에슐리를 보고 각성하며 스카렛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멜라니가 죽고 나서야 (에술리에게) 내가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다니, 나는 존재하지도 않은 것을 사랑했구나."미국의 남북 전쟁이 배경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카렛 오하라만큼이나 비중 있는 인물이 바로 그 멜라니입니다. 젊은 날 쟤는 왜 저리 착해빠졌나, 했던 멜라니가 눈이 가고 마음이 갑니다. 멜라니의 발견에 나도 놀랐습니다.전장으로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그녀의 공간은 늘 상처 입은 자들로 가득합니다. 전장에서 다친 사람은 싸매주고, 배고픈 사람에게는 먹을 것을 주고, 길을 잃은 사람에게는 쉼터가 되어주는 그녀를 보고 스카렛이 쏘아붙입니다. 자기는 먹고살기 위해 노예처럼 일하는데, 그렇게 굶주린 허수아비들에게 동냥이나 하니 그들이 메뚜기처럼 모여 들잖냐고. 멜라니는 싫은 내색 없이 온화하게 이렇게 이야기하며 스카렛의 이해를 구합니다. 어느 북부 여인이 포로가 된 에슐리를 대접할 수 있고, 그 힘으로 그가 돌아올 수도 있는 거 아니겠냐고. 그녀의 눈에는 어쩔 수 없이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에슐리 보였던 거지요? 사랑은 그렇게 행위입니다.멜라니에게는 사랑이 모든 고정관념을, 편견을 녹이고 있습니다. 에슐리가 모든 이들이 손가락질하는 유곽 여인의 도움을 받아 체포되지 않을 수 있게 되자 그녀는 진심으로 그 여인에게 감사의 표현을 합니다. 여인들의 왕따와 경계에 익숙해있는 여인이 멜라니를 위해 "길거리에서 마주쳐도 아는 척 하지 마세요, 이해할 테니."라고 말하자 멜라니는 여인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합니다. "남편을 구해준 분에게 감사의 표현도 못하나요? 당신에게 신세진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또 만나요."그녀가 있는 곳엔 늘 평화가 있습니다. 그녀가 있는 곳이 천국인 거지요? 그런데 그 천국은? 파울로 코엘료가 말했습니다. "나는 신께서는 그의 지혜로움으로 천국의 한 가운데에 지옥을 숨겨두셨음을 믿어, 우리가 언제나 깨어있도록 하기 위해서야, 우리가 자비의 기쁨 속에 사는 동안에도 혹독함을 잊지 않도록 하시려고."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에서남편은 전장에 나가 있고, 그녀의 곁에는 그녀를 무시하고 싫어하고 질투하면서도 그녀를 떠나지 않는 스카렛 오하라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몸이 약해 늘 아픕니다. 그녀를 보면 그녀의 천국이 그녀의 지옥에서 꽃이 피고 있음을 느낍니다. 마침내 죽어가는 그녀가 스카렛 오하라에게 했던 유언은 그녀 천국에 절정입니다. "그(에슐리)를 위해 나를 돌봐주었듯이 나를 위해 그를 돌봐줘요. 그가 눈치 채지 못하게."그녀를 보면 '신심명'의 그 유명한 명제가 떠오릅니다. 일즉일체(一卽一切) 일체즉일(一切一卽) 단능여시(但能如是) 하려불필 (何廬不畢) 하나가 곧 전체요, 전체가 곧 하나이니 다만 이와 같다면 어찌 미치지 않을 수 있을까.하나를 보면 전체가 보이지요? 하나 속에는 전체가 있습니다. 언제나 그녀가 사랑으로 내미는 작은 손길은 전체를 소통하는 힘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기적인 스카렛을 경계하지만 그녀가 편견을 넘어서 스카렛을 감싸는 것은 그것이야말로 큰 사랑입니다. 집착이 아닌 사랑만이, 사랑이 있는 영혼만이 편견과 질책과 판단을 넘어서 일즉일체라는 세상의 비밀에 다가서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수원대 교수

2018-09-26 13:33:20

[종교칼럼] 나는 토끼인가? 라이카인가?

나는 토끼인가? 라이카인가?동창 한 명은 부부 금실이 좋다. 나이가 들어서도 부부간에 스킨십이 너무 많으니까 불륜관계로 여긴 한 파파라치가 사진을 찍어서 협박하는 일까지 있었단다. 아내를 향해 늘 '산소 같은 여자'라고 칭찬한다. 다른 동창 부인들로부터 "그럼 우린 이산화탄소 같은 여자냐"라고 항의받기도 했다. 아내만 곁에 있으면 생동감이 넘친다. 그런데 나는 '산소 같은 아내'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 오직 '산소'에 관심이 있을 따름이다.영화의 추억이다. 어릴 때 학교에서 단체 영화를 관람하면 나는 으레 졸기 바빴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면 두통약을 먹어야 했다.기독교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상영할 때였다. 이 영화는 기독교인으로서는 꼭 봐야 하는 영화였다.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반은 졸고 반은 영화를 보았다. 얼마 후 다시 그 영화 관람에 도전했다. '졸지 말고 명화를 감상해야지!' 이번에는 신경 써서 준비했다. 전날 잠도 충분히 자고 점심 먹고 식곤증도 사라진 시간에 '비장한 마음으로' 영화관에 들어갔다. 그런데 웬걸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또다시 졸음 귀신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기차의 공기가 너무 답답하여 승무원에게 공기 순환 장치를 어떻게 운용하느냐고 물었다. 질문을 받은 승무원은 눈만 껌벅거릴 뿐 대답을 못 한다. 머뭇거리다가 하는 말이 '자동으로 조절되어 자신은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따뜻한 공기나 시원한 공기가 아니라, 신선한 공기다.독일에서 ICE 고속열차를 타면 공기의 신선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에서 뮌헨까지 가면서 책을 한 권 독파할 수 있다. 우리나라 기차는 어떤가? 승차 후 책장이 두세 번 넘어가면 벌써 무릉도원에 간 듯 정신이 몽롱해진다.우리 주택의 베란다 창호도 밀폐와 열 차단에만 신경을 썼지, 공기 유입은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 간단하게 공기 유입을 할 수 있는 작은 환기 구멍들을 설계해야 할 것이다.이제 추석 명절을 앞두고 민족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자동차 실내도 알고 보면 큰 통이다. 운전하는 것이 큰 상자 속에 앉아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오랫동안 운전하면서 산소 공급에 신경을 쓰기 바란다.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 이웃이요 국민이기에 이렇게 부탁을 드린다.오늘 박 목사의 칼럼은 온통 하소연이다. 요즘 정부는 소수의 인권을 보호하겠다고 발 벗고 나섰다. 나같이 산소에 민감한 소수의 인권을 보호해주면 더없이 고맙겠다.최초로 우주여행을 경험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동물이었다. 미국은 1948년 V2 로켓에 원숭이 '알버트'를 실어 보냈으나 질식사했다. 1957년 11월 3일 카자흐스탄의 우주기지에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2호가 발사되었다. 무게 508㎏의 작은 캡슐에는 '라이카'라는 개 한 마리가 앉아있었다. 소련 정부는 태양광선과 온도와 압력 등을 점검하는 간단한 기기들과 라이카에게 산소를 공급하고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생명유지장치와 먹이 공급장치를 인공위성에 장착했다고 밝혔다. 발사 엿새째 라이카는 산소가 바닥나 숨졌다. 동물의 우주 생존 실험에서도 고온 고압을 견디는 일보다 산소공급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 드러났다.잠수함의 초기에는 토끼를 태우고 관찰했다. 공기의 변화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토끼에게 먼저 이상 징후가 생기면 곧이어 잠수함을 부상하여 공기를 교체했다. 소설 '25시'의 저자 게오르규는 지성인의 역할이 잠수함의 토끼와 같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선구자의 역할을 잘 감당하라는 주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고상한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대중교통이나 공공장소, 집회 장소에서 내게 산소를 달라는 것이다. 나야말로 영락없는 잠수함의 토끼다.대구중앙교회 대표목사

2018-09-21 11:33:21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춘추칼럼] 평양정상회담 이후가 중요하다

북미 간 협의로 공 넘어간 평양회담文대통령·트럼프 정상회담 열릴 때美, 北이 보인 조치들을 신뢰한다면지연된 비핵화 협상 다시 탄력받아2박 3일간 숨 가쁘게 전개된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첫째,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된 사항이다. 북한은 그동안 핵 문제는 미국과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입장에 따라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우리와 합의문에 담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비핵화 문제를 남북 간 핵심적 협의 의제로 삼았다.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핵무기 없는 한반도, 핵 위협 없는 한반도를 직접 언급했다. 또한 북한의 비핵화 조치로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 영구 폐기, 나아가 영변 핵시설 폐기 용의를 표명한 것은 그간 남북 간 합의 수준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구체적인 합의라 할 것이다. 그리고 양 정상은 향후 비핵화 로드맵에 대해서도 충분한 의견 교환을 한 것으로 보인다.둘째, 군사적 적대 관계 종식을 위한 합의이다. 남북은 육상과 해상, 공중을 포함한 모든 공간에서 일체의 상호 적대 행위를 종식하는 내용의 군사 분야 합의서를 채택하였다. 그간 남북 간 우발적인 무력충돌 등 전쟁 위험과 긴장 상황이 조성되어 왔다는 점을 상기하면 매우 구체성을 띤 이번 부속합의들은 남북 간 사실상 종전선언을 한 셈이 된다. 앞으로 이 같은 합의가 잘 지켜지면 군비 통제와 군비 축소 등 한반도 평화체제로의 이행이 더욱 용이해지게 될 것이다.셋째, 비핵화와 군사적 긴장 완화 등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남북 관계를 확대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구상을 구체화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연내 동·서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 착공식 개최,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정상화, 서해 경제 및 동해 관광 특구 조성 등은 지난 10·4 선언 이후의 상황으로 남북 관계를 되돌리려는 시도로 해석된다.이산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문제, 이산가족 상설 면회소 개소, 문화·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교류를 합의한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이러한 한반도의 변화와 남북 정상의 노력은 마땅히 평가받아야 할 것으로 본다.이제 공은 북미 간 협의로 넘어갔다. 북한이 검증의 논란이 있었던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의 폐기를 관련국 전문가들이 참관하는 가운데 진행하겠다고 밝힌 바 국제사회로 하여금 자신들의 비핵화 의지를 보다 명확히 하였다. 그리고 미국의 상응 조치를 전제하기는 하였지만 영변 핵시설을 영구 폐기하겠다는 의사도 분명히 함으로써 보다 진전된 입장을 제시한 것이다. 그리고 25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둔 문재인 대통령으로 하여금 보다 구체적인 메시지를 전달해 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이제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와 북한이 공표한 조치를 토대로 미국이 어떠한 조치를 취할지 트럼프 대통령과 긴밀히 협의하게 될 것이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으로 보이며,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리용호 외무상과의 만남, 오스트리아 빈에서 북미 간 실무대화를 지속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은 향후 전망을 매우 밝게 하고 있다.미국이 북한이 보인 조치를 신뢰하고 종전선언을 위해 한 발짝 다가간다면 비핵화 협상은 다시 탄력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뉴욕 한미 정상회담은 향후 북미 정상회담을 추동하는 매우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북미 정상회담의 성사가 문 대통령 덕분이라고 하였고 트럼프 대통령 또한 문 대통령을 수석 협상가로 명명하였다.우리의 중재 노력이 빛을 발하여 지연되었던 북미 간 협상이 재개되고 제2차 북미 정상회담까지 연결된다면 올해 더욱더 성과 있는 이벤트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가까운 시일 내에 서울을 방문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북미 간 협의가 잘 진행되어 남·북·미·중 정상이 서울 혹은 워싱턴에서 종전선언을 추진하게 된다면 평화를 위한 우리의 노력이 보다 큰 결실을 맺게 될 것이다. 물론 최종 비핵화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 남북 정상회담 합의와 앞으로의 종전선언 등을 통한 신뢰 구축 노력이 더해진다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번영의 시대는 보다 빠르게 우리 곁으로 다가올 것이다.

2018-09-20 14:50:23

이지선 살롱 드 메이페어 대표

[매일춘추]하루 12번 포옹 어때요?

처음부터 끝까지, 가장 아래에서 정상까지 사랑을 빼고 인생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거창하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우리는 매일 아침에 눈을 뜨고 저녁에 잠들 때까지 크고 작은 사랑 속에서 살아간다.사랑은 큰 바다와 같으면서도, 누구에게나 가슴 떨리는 늦었지만 도전할 만한 가치가 살아있는 진정한 자기계발의 일면도 담고 있다. 때론 애정과 집착의 경계가 모호하여 질투와 배신의 양면성이 있긴 하지만,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근본적으로 그것을 품고 있다.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하루에 4번의 포(Four?)옹이 필요하고, 그럭저럭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해서는 하루에 8번의 포옹이 필요하며, 풍요로운 삶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하루에 12번의 포옹이 필요하다는 버지니아 사티어의 말이 의미심장하고 흥미롭다.'안아주다'라는 말은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끌어안다'라는 뜻으로 우리말에 '얼싸안기'라는 말과 비슷하다. '얼싸안는다'는 말은 '몸을 끌어 안는 것이 아니라 얼 즉 정신을 감싸 안는다'는 뜻이다.진실로 사랑하는 남녀는 어떠한 변화를 겪게 된다.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은 효과로 서로를 닮아가는 것이다. 자주 밥만 같이 먹어도 입맛이 닮아가고, 자신의 감정을 허물고 대화하다 보면 생각도 닮는다. 함께 웃고 울다보면, 두 사람의 얼굴 주름까지 비슷해진다고 한다.아버지가 어린 아이를 하늘로 높이 던지고 받기를 반복할 때, 아이는 무서워하기는커녕 재밌어 깔깔 소리를 지르며 즐거워한다. 아버지가 받아줄 것을 확실히 믿고 있고, 이러한 신뢰와 믿음의 관계는 서로를 강하게 엮어 준다.사랑에는 대상에 따라 수없이 다양한 양상이 존재한다. 이기적이거나 이타적인 사랑과 같은 추상적인 형태 외에도 남녀의 뜨거운 사랑,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스승과 제자 또는 형제간의 사랑, 동료 간의 사랑도 있다.사랑이 이토록 많은 것은 사랑이야말로 서로 다른 감정들을 하나로 모으는 총체적인 감각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보편적이고 영원하다고 말하는 이유와 문학에서 가장 일반적인 주제로 치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인간의 감정에서 사랑만큼 마음을 설레게 하는 단어도 없을 것이다. 아담과 이브의 관계에서도 보듯 인류 최초의 사건도 사랑이었다. 성경에 보면 야곱이 라헬을 사랑했을 때, 쳐다만 봐도 마음이 뜨거워지고 견딜 수가 없어서 그녀를 위해 7년 동안 종살이도 감수했다. 이처럼 사랑은 눈을 멀게 하고, 상상할 수 없는 일도 가능하게 만든다. 사랑에 그 어떤 미사어구를 가져다 붙인들 틀린 말이 될 수 있을까.

2018-09-20 11:35:21

박홍희 경북 잡아위원회공동위원장

[기고] 새바람 행복경북

'새바람 행복경북!' 민선 7기 경상북도의 슬로건이다. 향후 4년간 경상북도 모든 공공기관의 가장 중심에 걸려 알려질 것이다. 아울러 도정 운영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지침과 방향을 드러내는 말이기도 하다. 이철우 민선 7기 도지사가 취임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일반 도민들과 전체 공무원 등으로부터 제안을 받아 슬로건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리고 슬로건을 확정 짓는 일을 민간 부문의 도민들로 구성된 '잡아위원회'에 일임했다. 도정의 비전과 기본 방향을 그저 선출직 공무원과 그 측근들로 구성된 '인수위'에서 뚝딱 만들어내서 발표하고 마는, 그런 구태를 답습하지 않았다. 그 현실 인식과 열정이 좋은 출발을 만들어 냈다.우리 경북은 호국정신, 인정, 의리, 강인함 등 좋은 이미지도 많이 가지고 있지만 최근에는 노쇠, 폐쇄, 정체, 과거 지향, 보수, 체면 중시, 배타성, 권위주의 등 부정적 이미지가 더 크게 확산되고 있다. 이런 이미지를 극복하고 위기에 빠진 경북 지역을 젊고, 개방적이고, 변화와 도전에 적극 나서고, 소통하고 포용하는 지역으로 탈바꿈하는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것이 신임 도지사는 물론, 110명의 잡아위원회 위원들의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그런 민간 위원들 모두가 지난 두 달간 치열한 토론과 도민들의 의견 수렴을 거쳐 도지사에게 제안한 것이 바로 이 도정 슬로건과 도정 4대 목표, 10대 분야 100개의 핵심 과제다.우리 도민들이 100여 개의 세부 업무 과제를 다 알 필요는 없지만, 도정 슬로건과 구체적 목표는 한 번쯤 살펴볼 만하다. '새바람 행복경북!'이라는 슬로건은 침체된 우리 경북 지역에 새바람을 불러일으켜, 가정과 사회가 진정으로 행복한 경북 지역으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담았다.그 비전을 구체화하기 위한 네 가지의 구체적 목표는 이렇다.'일터 넘치는 부자경북' '아이 행복한 젊은경북' '세계로 열린 관광경북' '이웃과 함께 복지경북'. 이렇듯 '일자리'와 '저출생' 문제를 경북이 갖고 있는 풍부한 역사 문화, 자연 생태 자원을 관광자원화해서 극복하고, 궁극적으로는 모든 도민들의 삶이 실질적으로 나아지는 복지정책으로까지 연결해 나가겠다는 구체적인 실천 의지를 담았다.농촌 지역이 대부분인 경북은 소멸 위기에 빠져 있는 시·군의 숫자가 전국에서 가장 많다. 핵심 산업인 전자·제철 관련 기업들은 하나둘씩 경북 지역을 빠져나가고 있다. 정부 정책의 변화로 인해 원자력 에너지 관련 기업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국제 정세의 변화와 국정 기조 변화의 영향도 있었지만, 그동안 경북이 과거의 영광에 머물러 안주하고 있던 탓도 크다.위기의 이면에는 기회가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 사회가 선진화되고, '몰인간화'되고, 기술 중심의 사회로 변해갈수록, 역설적이게도 '자연' '환경' '생태' '농촌' '농업' '공동체' 등의 1차적 가치는 올라간다. 우리 경북 지역이 가진 강점이자 자산이 바로 이런 것들이다. 내가 있는 농촌에서부터 새로운 바람이 불도록, 구호가 아니라 정말로 도민들의 삶이 행복하도록, 끊임없이 제안하고, 감시하고, 비판하고 도울 것이다.

2018-09-20 10:12:49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광장] 택민(澤民)선생 옛이야기

택민은 김광순 경북대 명예교수의 아호이다. 한문학의 거두였던 고 연민(淵民) 이가원 연세대 교수가 선사했다. 택민(澤民)은 '사람들에게 베풀다'라는 뜻이다. 그는 평생 모은 자료로 이 분야를 전공하는 후학들에게, 나아가서 우리 모두에게 혜택을 베풀고 있다.그는 반세기 동안 우리 옛이야기들을 수집·정리·분석해 왔다. 여든이 넘은 지금도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한지(韓紙)에 붓으로 쓴 옛이야기 500편을 모아 84권의 고소설전집으로 출판했고 정리가 덜 된 것도 300여 편이나 있다. 출판된 것 중에는 오일론심기, 승호상송기와 같은 10여 종의 국내 유일본과 남계연담, 미인도와 같은 20여 종의 희귀본도 포함되어 있다. 정리가 덜 된 자료를 놓고는 아직도 그는 씨름하고 있다. 한마디로 택민의 문헌은 고전문학의 보고(寶庫)이다.그는 필사본 고소설의 중요성을 일찍 깨달았다. 고소설이 발견되면 값에 상관 않고 수집했다. 소장자가 기증해 줄 때도 있었다. 그런 경우엔 작품 해제 속에 내력을 세밀하게 밝혔다. 기증을 받을 수 없을 때는 월급 전액을 들여 구입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구매도 불가한 경우에는 복사본을 만들어 보관해 왔다. 이렇듯 긴 세월 동안 자료 수집에 혼신의 노력을 다해왔다.택민이 수집한 자료는 전달 매체의 특성에 따라 오페라, 연극, 영화, 만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실현될 수 있다. 따라서 자료의 문학, 교육 및 경제적 가치는 지대하다. 고유한 문화유산이고, 국어국문학 연구에 새 지평을 열 수 있는 초석이며, 문화 콘텐츠 산업 육성의 기반이 될 수 있다. 고소설을 현대국어와 외국어로 옮기는 작업과 자료의 보존 및 연구를 위한 공간과 인력을 확보하는 숙제는 남아 있다. 정부가 자료의 가치를 인정하고 과제를 해결하는데 발 벗고 나서길 바란다.그가 설립한 택민국학연구원의 학술지 「국학연구론총」은 지난 11년간 21집까지 발행됐다. 600여 명의 학자들이 참여하는 학회가 되었고 여기서 간행되는 학술지는 한국연구재단이 공인한 등재지가 되었다. 한국은 물론 미국'중국'일본을 비롯한 세계 70여 개국의 한국학 연구기관들이 구독하고 있다. 이처럼 교육부가 공인한 등재지가 되어 외국의 연구기관들까지 독자로 두게 된 연구원(院)의 성취에 박수를 보낸다.필자는 40년 전에 택민 선생의 강좌를 수강한 적이 있다. 하루는 조식의 '칠보시'(七步詩)를 일필휘지한 후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했다. "콩깍지를 태워 콩을 삶으니/ 콩이 솥 안에서 우는구나/ 본디 한 뿌리에서 태어났거늘/ 어찌 이다지 급히 삶아대는가/" 조조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조비는 동생 조식을 불러 "네가 시를 잘 짓는다고 하니, 내가 '일곱 걸음'(七步)을 걷는 동안 시를 짓지 못하면 중벌을 내리겠다"고 했다. 이때 조식이 지은 시이다. 원문에 나오는 '동근생'(同根生)은 '한 뿌리에서 나온 형제자매'를 뜻한다. 형제간의 골육상쟁을, 동근생인 '콩'과 '콩깍지' 간의 달라진 운명에 비유한 시이다. 이렇듯 택민 선생은 제자들의 인성교육에도 열정을 보였다.추석이다. 뿌리(根)인 부모와 조상께 감사하고, 동근생(同根生)끼리 정을 나눌 때이다. 더불어 우리 것, 그중에서도 옛이야기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2018-09-19 15:50:24

조정웅 극단 마인 대표

[매일춘추]버려진 시장통 무대를 살려보자

얼마 전, 한 시장의 무대에서 공연을 한 적 있다. 아, 물론 이것이 처음은 아니다. 여러 군데의 시장에서 공연을 해 왔었다. 나도 거리에서 경력을 쌓은 것이 많기 때문에, 시장이라는 공간을 좋아하는 편이다. 또한 우리네 연극은 시장통에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장이 열리면 광대들이 찾아가 엽전 몇푼 그리고 밥과 찬을 얻기 위하여 광대들은 움직여 왔다.대한민국 뿐만이 아니다. '버스킹'이라는 개념이 왜 생겨났을까. 대구에서 큰 축제인 컬러풀대구페스티벌은 서양에서 많이 했던 거리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대구의 중심인 동성로 자체가 무대가 되는 것이다. 엄청난 장비와 인력이 동원이 되며 전문가들이 동원된다.분명 시장통에서의 공연이었다. 험난함은 준비되어 있었으며, 돌발적인 상황 또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지 못한 곳에서 고난은 다가왔다. 바로 버려진 듯한 무대에서의 고난이었다. 시장이라는 곳은 분명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다. 대기업이 만들어낸 대규모 마트에게 밀려나기는 하였지만, 향수에 떠밀려 그리고 아날로그적 감성에 이끌려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다. 연극쟁이의 시선으로 보자면 관객천지의 공간이다. 그런데 그곳의 무대들은 버려져 있었다. 관리의 소홀과 전문가들의 부재 때문이었다. 시장 공연장 담당자들의 대부분은 전문가가 아니라 첫 공연기획자가 손을 대놓은 상태 그대로 똑같은 패턴의 공연들만 반복하는 공무원 혹은 비전문가들이었다.시장통 무대의 담당자들에게 "여기 전기는 몇 킬로와트까지 끌어 쓸 수 있나요", "이곳의 사운드는 어떤 시스템으로 운영이 되나요" 등 공연상황에 대해 물으면 당황한다. 더불어 어떠한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책을 물어보면 "제가 전문가가 아니라서 모르겠습니다" 혹은 "제가 그쪽 담당은 아니어서 모르겠습니다"라는 말이 돌아오기 일쑤다. 시장의 무대만이 아니다. 야외무대의 담당자는 보통 그런 식이다. 그러면 그 때부터는 버려진 무대가 시작된다. 조명과 음향에 대한 시스템을 모르니 공연을 실행하는 이들에게 끌려간다. 하지만 배우나 스태프는 관객이 아니다.시장통 관객들은 자신의 의지대로 왔으나 끌려가니 속이 상할 수도 있다. 만약 전문가가 한명이라도 있다면, 책임을 지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버려진 무대들이 나타났을까? 가끔 시장 혹은 관광지에 가서 무대를 보면 가슴이 아프다. 왜 이런 공간들을 버려두고 있을까. 이 버려진 무대들은 자신의 역할을 하려고 세워졌는데 왜 버려져야만 할까. 이 버려진 무대들을 십분 활용한다면, 대구가 말했던 공연예술의 도시로 한발 도약하지 않을까라는 생각한다.

2018-09-19 12:19:17

김주수 의성군수

[기고] 사라지는 농촌에서, 살아나는 농촌으로

'청년 유출, 고령화, 인구 감소, 지방 소멸….'농촌이라면 어느 지역 할 것 없이 모두 겪고 있는 공통된 이슈들이다.30년 내 소멸 위기에 놓인 전국 상위 10개 지방자치단체 중 의성군은 소멸 우려 지역 1위를 기록하고 있다.하지만 의성군은 위기가 올 때마다 당당히 맞섰다. 2014년 7월 민선 6기가 시작될 당시, 의성군은 지금보다 더 암담한 현실이었지만, 의성군은 위기 앞에 더욱 강한 저력을 발휘했다.지난 4년간 의성 군정 사상 최대 규모인 6천억원의 예산 확보를 통해 빚 없는 살림살이를 가능하게 했고, 4천억원 규모 신재생 에너지 산업을 유치했다. 농산물 공동 브랜드 '의성 진(眞)'을 개발해 농산물 통합 유통 마케팅을 실현했다.이 외에도 귀농·귀촌 대통령상 수상, 경상북도 수출정책평가 최우수 기관 선정, 경북도 시·군 평가 7년 연속 최우수 기관 수상 등 '지방 소멸 1위'라는 타이틀이 무색하리만큼 의성군은 활기를 되찾았다.민선 6기 4년은 침체한 지역경제를 일으키는 것에 집중했다면, 민선 7기는 지방 소멸 문제에 정면으로 대결할 '이웃사촌 시범 마을' 사업을 조성한다. 이 사업은 내년부터 4년간 경상북도와 공동으로 추진한다.의성군 안계면 일대에 일자리와 주거, 복지 체계를 집적시킨 시범 마을을 마련해 청년을 유입시키고,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해결해 지방 소멸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방침이다.먼저 '이웃사촌 시범 마을'을 형성하기 위해 청년 주거 단지 200~300가구를 조성한다. 기존 마을을 연계하는 농촌 재생형 시범 마을로, 30가구→100가구→150가구 등 단계별로 추진할 계획이다.또 마을 주민의 의료→출산→보육→교육→소통의 생애주기 맞춤 이웃사촌 복지 체계도 마련하고, 청년과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의성정책단'도 발족할 계획이다. '이웃사촌 시범 마을'의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청년 일자리 창출은 3대 미래 특화산업 육성을 통해 추진할 계획이다. 스마트 농업 분야는 체류형 스마트 농촌 창업 학교를 운영하고 농업인 월급제, 청년 커플 창업, 청년 마을기업 지원 등으로 청년 농부를 육성한다.식품 분야는 특화 농공단지와 연계한 식품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해 친환경 농산물 생산·판매·전시장과 쿠킹 스튜디오, 카페 등 친환경 식생활 체험장도 마련할 계획이다.이처럼 청년 일자리 창, 주거 단지 조성, 복지 체계 구축까지 다각적인 목표를 실현하는 '이웃사촌 시범 마을'은 의성군을 '사라지는 농촌'에서 '살아나는 농촌'으로 탈바꿈시킬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의성군이 '반려동물 산업의 메카'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반려동물 휴양·분양·치료·장례, 반려동물 훈련, 반려동물 주거타운을 조성한다.의성군은 지역 자산과 관광 자원을 활용한 경제 활성화를 위해 체험형 프로그램과 볼거리·먹을거리·놀거리를 갖춘 농촌 융복합 6차 산업 강화에 주력할 계획이다.의성군은 10월 5일부터 7일까지 ▷의성 마늘 투어 ▷의성 마늘 요리대회 ▷의성 마늘 직거래 장터 등 보고, 먹고, 체험할 수 있는 '의성 슈퍼푸드 마늘 축제'를 연다. 많은 성원을 부탁드린다.

2018-09-19 11:40:21

[권영재의 음악유사]달도 하나 해도 하나

한 때 ‘골로 간다’는 말이 유행했다. 서울의 화장터가 홍재동에 있을 때 응암동 고태골에 공동묘지가 있었다. 서울서 골로 간다는 말은 고태골 간다는 말이었고 대구서 골로 간다는 말은 가창골 간다는 말이었다. 골로 간다는 말은 죽으러 간다는 뜻이었다. 싸울 때는 ‘골로 보낸다’고 으름장을 놓았다.6.25전쟁이 일어나자 50년 6월에서 10월 사이 대구형무소에 수감된 재소자 2천~3천명과 각지에서 예비 검속된 보도연맹 관련자 5천 명 등이 가창골, 경산 코발트광산, 앞산 빨래터, 학산공원, 신동재, 파군재 등에서 집단 사살되었다.보도연맹이란 48년 12월 시행된 국가보안법에 따라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이나 좌익운동한 사람들을 사상 전향시켜 보호하겠다고 만든 단체였다. 그러나 북한이 침략해오자 다급해진 정부는 이들이 적이 될까 두려워 국군특무대, 헌병대, 반공단체 등을 개입시켜 정식재판도 없이 보도연맹 가입자들을 즉결처분한다. 정부의 공식발표에는 4천 934명이 죽었다고 한다. 전쟁 뒤 정부는 당시 무질서 했던 상황을 설명하고 학살 장소와 인원을 밝히고 억울한 사람들에게 보상도 해주었다.정부의 이런 태도를 보자 종북 좌파들은 신이 났다. "북한은 전혀 이런 야만스런 짓을 하지도 않았고 인민을 보호했는데 정말 남한 정부 나쁜 놈들"이라고 입에 거품을 품었다. 정부가 잘못을 시인했다고 신이 났다. '게르니카' 그림으로 재미 본 피카소가 '한국에서의 학살'이라는 재목으로 한국전쟁의 참상을 그림으로 만들었다. 피카소야 누구를 편들기 보다 전쟁의 잔혹함을 말하고자 했을 것인데 종북 좌파들은 "미군이 황해도 신천에서 민간인 학살하는 장면"이라며 선전에 열을 올렸다. 북한은 우리 정부가 저지른 행위와는 비교도 하지 못할 엄청난 짓을 저질렀다. 그러나 티끌만치도 과오가 없는 사람들처럼 행세를 한다.가창 댐 입구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왼편 산비탈에 암자가 하나 있고 그 부근에 비목(碑木)이 하나 있었다. 가창 댐이 만들어질 때 바닥에 있던 백골들의 옮겨 묻은 뒤 세운 집단 무덤의 표지였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 나무 표지판도 없어지고 집들이 들어서자 지금은 그 장소도 찾기 어렵게 되었다.당시 총살 현장에 있었던 관계자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사격 직전 누군가가 선창하자 일제히 같은 노래 소리가 울려 퍼졌다고 한다. "달도 하나 해도 하나 사랑도 하나 이 나라에 바친 마음 그도 하나 이련만 하물며 조국이야 둘이 있을까 보냐 모두야 우리는 단군의 자손. / 물도 하나 배도 하나 산천도 하나 삼천리에 뻗힌 산맥 그도 하나 이련만 하물며 민족이야 둘이 있을까 보냐. 모두야 이 겨레의 젊은 사나이.(김건 작사, 이봉룡 작곡, 남인수 노래)"서로 죽이기 위해 총을 쏘다 죽으면 덜 억울하다. 하지만 총도 없는 민간인들 특히 아녀자들이 죽는 건 비극이다. 왜 죽어야 되는지도 모르고 죽으며, 실체도 없고 진리도 아닌 사상의 노예가 되어 인간을 짐승처럼 죽이는 것이 전쟁의 비극이다.지금은 전쟁이 끝났는데도 적패라고 죽이고, 밉다고 죽이고, 내편이 아니라고 죽이고 전쟁적 비극은 오늘도 한국에서 계속되고 있다. '달도 하나 해도 하나'의 노래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요란한 총소리가 가창골짜기를 울려 퍼졌다. 그 이후 한 동안 대구시람 들은 어원도 잘 모르면서 골로 간다는 말을 쉽게 했었다.전 대구적십자병원 원장

2018-09-19 11:39:24

장하빈 시인·문학의 집 '다락헌' 상주작가

[장하빈의 시와 함께] 달의 집 박정남(1951~ )

보름달을 잘 들여다보면어머니의 거친 자갈돌 같은 질이 느껴진다겨울 찬바람 소리도 들려온다푸른 달빛 밤새 흘러나오는다 닳아서 깊은그곳은흥건히 고여 있다세찬 폭포수 쏟아지듯어머니의 터진 양수를 따라피 묻은 달 하나가풀어헤친 검은머리를 빠져나오던 날나는 태어나자마자어머니의 손을 놓고 말았다―시집 『꽃을 물었다』 (시인동네, 2014)* * * * * * * * * * * * * * * * * *그 옛날 토끼가 떡방아 찧던 보름달 속엔 누가누가 사나? 어머니의 질, 찬바람 소리, 푸른 달빛, 물웅덩이가 '달의 집'에 모여 살고 있구나! 이처럼 모성, 생명력, 신성, 풍요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는 보름달은 생명 에너지가 충만한 우주의 자궁이자 모태이다. 따라서, 보름달은 만물을 낳는 어머니와 풍요로운 대지가 결합된 지모신(地母神)이다. 이는 땅을 곧 어머니처럼 성스럽게 여기듯 보름달을 신성시하거나 신격화함을 의미한다."나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의 손을 놓고 말았다." 여기서 '손을 놓다'의 의미는 무엇일까? 어머니께서 나를 낳으시고 곧바로 세상을 뜨셨다는 말인가? 그래서 내가 천애고아(天涯孤兒)로 남겨졌다는 말인가? '달'이 우주의 궤도 안에서 공전과 자전을 하듯, '나' 또한 인생의 궤도 따라 공전과 자전을 하며 홀로 살아가야 한다는 운명일까? 아니면, 우주적 고아가 된 '내'가 모태 신앙에서 벗어나 자유의지대로 살아가라는 천명일까? 모름지기 그것은 저 둥근 보름달만이 환히 꿰뚫어 아는 비밀이리라.

2018-09-18 16:58:39

이정호 변호사

[경제칼럼] 부동산 대책에 대한 단상

수도권 그린벨트 해제·택지 조성 집값 광풍과 무관하고 지방 소외 보유세 더 강화하고 양도세 낮춰 다주택자가 매물 내놓도록 해야 최근 정부가 종합부동산세 인상, 대출 규제 등을 구체적인 골자로 한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였다. 부동산 공급 대책도 곧 뒤따른다고 한다. 제법 강경한 세제 대응이나 정책이 담겨 있다 보니 학계나 전문가의 반론도 크고 시장에 미칠 파장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부동산 가격 상승은 시장 내 유휴 자금의 축적, 낮은 금리, 부동산 공급의 저조, 기업의 투자 심리나 창업 투자 위축 등으로 어떻게 보면 예견된 현상이다. 마찬가지로 부동산 가격을 억제하기 위한 정부의 대책들, 특히 세제 보완이나 개편 등도 함께 예상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부동산 가격이나 거래에 대한 정부의 관여는 대부분 시장 흐름에 역행하고 단편적 해법에 그쳐 충분한 효과를 얻기가 어렵다고 한다. 더구나 강한 규제의 대상이 되는 고가 또는 다수 주택 소유자나 투기적 수요가 몰리는 곳은 대체로 특정 지역에 밀집되어 있다는 문제 자체의 한계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금번 정부의 정책은 대다수 서민이나 소외된 지방의 관점에서는 공허한 외침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동산이라는 재화의 특성상 정부의 시장 개입이나 부동산 정책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금융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자산 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투기는 정보를 독과점하는 자들이나 시장을 지배하려는 이른바 큰손이 주도하고, 투자의 기회비용이 큰 후발 주자들의 추격 매수나 충동구매가 뒤따르며 확산된다. 이 점에서 투기는 투자자들의 심리적 측면에 의하여 다분히 좌우된다. 따라서 정부의 대책은 경제 원리에 토대를 두고 시장을 안정된 궤도로 잡아주는 자연스러운 추동력이 되어야 하겠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부동산 거래 관여자의 투기 심리를 억제하고 서민 필수재로서 부동산의 공공성에 대한 경제관념을 뿌리내리게 할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이 점에서 금번 정부 발표 시책이 필요악으로 판정 나지 말고 적어도 차선 이상의 성적을 내어주길 기대한다. 다만, 주택 공급을 늘리는 것은 시장 원리상 당연히 주택 가격 억제를 위한 유효한 방편이 되고 주택 실수요자를 배려하는 정책이 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를 위하여 수도권 위주로 택지를 추가 조성하거나 공공택지 명목이나 공익적 목적으로 설정한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조치들은 다소 우려스럽다. 가뜩이나 집값 인상의 광풍과 무관하고 줄어드는 인구를 염려해야 할 지방 가구의 수도권 유입을 초래하고, 결과적으로 지방을 더 소외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보유세를 더 강화하고 그와 대체 관계에 있는 양도세를 낮춰 다주택 소유자들이 가진 주택들이 자연스럽게 시장에 흘러나오도록 하는 정책이 장기적으로는 더 실효적이지 않을까 한다. 마지막으로 금번 부동산 대책에서는 벗어나 있지만 전세 가격 인상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주택 가격이 높게 형성될 때 상대적으로 전세 가격이나 비율이 낮아 전세는 주택 실수요자를 위한 좋은 주거 수단이 되어 왔다. 그러나 그동안 전세 가격이 주택 가격에 가까워지면서 고가의 전세는 주택을 어렵게 구입하여 소유하는 것처럼 힘든 바람이나 숙제가 되었다. 주택 가격이 정부의 대책으로 점차 안정화되길 바라지만, 그와 함께 집 없는 서민을 위한 대안으로서의 전세나 임대 문제 역시 서민의 몫으로만 남지 않길 희망한다. (법무법인 천우 이정호 변호사)

2018-09-18 14:56:49

18홀 필드골프를 칠 때는 문명의 이기 스마트폰은 잠시 꺼두면, 주변 사람들에게 좋을 뿐 아니라 본인 역시 온전한 골프의 묘미를 즐길 수 있다.

[황환수의 골프인문학]<12>디지털 원주민들의 어설픈 골프매너

디지털 원주민들이 골프를 즐기고 있다. 스마트폰이 드디어 골프 경기장까지 깊숙이 침투한지 이미 오래전 일이다. 현대인들이 필수불가결하게 여기는 휴대폰을 끼고 골프경기를 즐기는 모습에서 빗대어 한 표현이다. 접속 강박증은 아나로그 몸 움직임을 우선하는 골퍼에게도 예외없이 바이러스처럼 번져, 이젠 너무나 당연한 문명의 이기처럼 적응을 강요하고 있다. 모처럼 우정과 친교를 위해 그리고 볼과 잔디, 오롯이 나를 위한 고독시간은 접속 강박증에 감염된 골퍼 때문에 산산이 무너져 내리기 일쑤다. 여기에서 고독이란 고립과 차원을 달리하는 언어선택이다. 고독은 상상력과 창의력의 원천이라고 언급한 미국 MIT 셰리 터클 교수의 저작을 굳이 차용하지 않더라도 골프연습이나 경기는 반드시 이 고독의 과정을 거쳐야만 성숙한 단계에 진입이 가능하다. 예를 들면, 자신이 쏘아올린 볼이 어정쩡한 라이 상태에 놓여 있다고 가정할 때, 이미 고독한 정신세계로 향해를 시작하게 된다. 물론 티박스에 선 순간부터 자신과의 고독은 시작된 것이기도 하다. 어찌됐든, 불량한 라이 상태의 볼을 향해 자신의 스윙을 휘둘렀지만, 십중팔구 전혀 엉뚱한 사태의 상황전개가 이뤄지기 십상이다. 게다가 동반자로서 스마트폰을 열어 놓은 원주민이라도 곁에서 도시 내부의 또 다른 원주민과 통화 시도의 장면을 목격하게 되면 고독한 상상력과 창의성은 물론 샷에 대한 집중력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만다. 홀 아웃을 하고 다음 홀을 향하는 카트에서 신종 전염병인 접속 강박증세의 환자가 동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우정과 친교를 위한 언어 대화가 이어지면서 면대면 관계가 잠시나마 복원되는 계기를 마련한다. 비로소 스마트폰 기기와의 대화가 아닌 사람과 사람의 향기를 느끼는 눈웃음을 마주하고 골프의 진가를 확인하게 된다. 최근 들어 골프장에서 휴대폰의 악질적인 방해공작이 서슴없이 자행되고 있는데도 곧바로 나서 이를 지적하거나 개탄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유인즉 '분위기를 망칠까봐'라는 단군 자손의 자비로움인지 우유부단함인지 분간할 수 없는 답변을 전해 듣는다. 현대 신인류가 스마트폰의 개발로 우정과 친교, 그리고 고독을 헌신짝처럼 내 팽개치고 말았다. 그러나 이런 사조에 가뭄의 단비처럼 이를 복원하고 재생한 것이 동반자와 반드시 함께 해야 하는 골프가 일정부분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필자는 강조하고 싶다. 신인류의 가족은 한지붕 아래에서 함께 머무는 동안 각자 손에 쥔 스마트폰 기기 안 익명성의 사람들과 대화만을 나눈다. 그리고 가족 중 누군가가 집을 멀리 떠나면서 비로소 대화의 창에 가족의 일원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는 이상한 관계가 이뤄진다. 골프는 이같은 단절과 소외의 관계망을 복원시키는 장치이고 치료병동이다. 탈의실에 도착하는 순간, 6분30초(대한민국 국민 평균)마다 확인하던 스마트폰을 얌전하게 내려놓자. 그리고 자신이 비로소 오롯이 내 시간의 주인이 되는 느낌을 가져보는 기회를 만끽하자.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고 볼과 잔디를 밟으며 고독을 즐기는 사색의 시간으로 회귀하자.

2018-09-18 14:37:21

김지혜 영남대 성악과 외래교수

[매일춘추]초상화와 프로필 사진의 이면

아직 사진이 없던 옛날, 사람들은 초상화를 그려 자신의 얼굴을 남겼다. 우리가 익히 아는 대부분의 클래식 음악가의 얼굴은 거의 초상화의 이미지일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식탁 위에 놓인 과일 등 유화를 생각해보면, 원근감과 원래의 질감까지 생생하게 느껴지며 당대 실물 묘사의 수준이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음악가들의 초상화 중에서 베토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지저분하게 흐트러진 머리를 하고 입을 꾹 다문 채 한쪽을 노려보고 있다. 그의 제자가 남긴 기록에는 초상화 당일에 아침식사에 대한 불만으로 화가 난 듯한 표정이었다고 남겨져 있다. 그의 작품 또한 얼굴처럼 강한 인상을 풍기기는 것이 많기에, 왠지 악보도 불같이 써 내려갔을 것만 같은 생각도 든다. 다른 한편으로는 베토벤만의 카리스마로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는 옷도 너무 허름하게 입고다녀, 길을 걷다 부랑자으로 오인받아 체포된 적도 있다. 이 일로 나중에 오스트리아 비엔나 시장의 사과를 받았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이탈리아 오페라를 대표하는 작곡가 로시니의 초상화는, 넓고 퉁퉁한 얼굴에 우람한 몸집으로 보이는 모습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미식가로 먹는 것을 엄청 좋아했다. 37세에 완성한 오페라 '윌리엄 텔'을 뒤로는 오페라 작곡도 그만두고, 요리의 창작이나 고급 레스토랑의 경영에 힘을 쏟으며 남은 생을 보냈다고 한다. 이처럼 초상화는 당대 인물들의 특징을 잘 파악해, 후세의 우리들에게 그 모습을 정확하게 전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바야흐로 시대는 발전하였고, 화가의 초상화는 이제 사진으로서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됐다. 어쩌면 실연보다 오래 남겨지는 것이 공연 팜플렛이기에, 연주 만큼이나 신경써써 준비하는 것이 프로필 사진이 아닐까. 프로필 사진을 찍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전문가의 손길을 거친 헤어 및 메이크업은 필수사항이다. 오늘 멋진 사진을 남겨보리라며 굳은 각오로 스튜디오에 들어서지만, 조명과 반사판이 들어선 낯선 환경과 바로 코앞에서 이뤄지는 근접 촬영에 어색한 미소만 반복된다. 카메라맨의 직업 칭찬에 긴장도 조금씩 풀려가고, 연예인이 된 듯 카메라맨의 세세한 지시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수고하셨습니다'란 인사를 끝으로 촬영이 끝난다. 하지만 진짜 중요작업은 어쩌면 여기서부터다. 100여 장에 달하는 사진 속에서 매의 눈으로 최고의 사진을 선정하고, 최종 완성본 사진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본다. 몸무게 -5kg, 실제 나이보다 -5세 정도는 기본이다. 만족스런 나의 프로필 사진 완성. 사진이란 본래 초상화보다 정확하게 피사체를 비춰내는 것이지만, 최근의 사정은 조금 다르다. 기술의 진보와 함께 도리어 실물 묘사의 정확성은 떨어졌다는 게 조금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초상화이든 사진이든 공통점은 그 한 장을 위한 남다른 수고가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2018-09-18 11:55:29

고석봉 대구가톨릭병원 산부인과 교수

[의창(醫窓)] 여성의 자기 결정권

산부인과 의사의 가장 중요한 책무 중 하나는 임신과 출산 과정에 의학적 전문지식을 활용하여 여성들이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자녀를 임신하여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고, 산모도 건강한 모습으로 가정과 사회에 복귀하는 것을 도우는 역할이다. 특히 고위험 산모의 임신과 출산 과정은 산모 본인뿐만 아니라 의료인도 굉장한 수고가 필요하다. 하지만 산부인과 의사는 이런 과정을 통해 많은 보람과 직업적 자부심을 느끼며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산부인과 의사가 평생을 두고 고민하는 문제 중 하나는 합법적이든 비합법적이든 임신중절(낙태) 수술과 관련된 문제다. 임신중절 수술은 태아 상태나 산모의 건강 등 여러 가지 원인과 이유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의료 행위이나 의사의 부담은 항상 존재한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낙태 수술을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하고, 낙태 수술한 의사의 자격을 1개월 정지하는 행정규칙 시행을 공포하자 산부인과 의사들이 "낙태수술을 거부할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이런 조치로 한동안 잠잠하던 낙태 허용과 금지에 관한 우리사회의 오래된 찬반논쟁이 다시 재현되고 있다. 종교계를 중심으로 낙태 반대 단체는 '태아에게도 생명권이 인정된다'며 낙태 증가를 막기 위해 형사처벌이 불가피하는 입장이다. 반면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낙태를 찬성하는 쪽은 '임신 중단 전면 합법화 촉구 집회'를 열고 의료 관련 행정처분 개정안 철회를 요구한다. 특히 낙태의 주체는 여성이어야 하고 여성만 처벌하고 상대 남성은 처벌하지 않는 것은 횡포라고 주장한다. 우리 형법은 낙태 행위를 전면·일률적으로 금지·처벌하고 있다. 다만, '모자보건법'은 본인 및 배우자가 일정한 우생학적·유전학적 정신장애·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본인·배우자가 일정한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준강간으로 임신된 경우,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인척 간 임신된 경우, 임신의 지속이 보건 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즉 현실적으로 낙태 사유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사회 경제적 사유'나 '임신부가 원하는 경우'는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낙태와 관련된 우리나라의 법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매우 엄격하다. 37개국 OECD 회원국 중 '사회 경제적 사유'로 낙태를 인정하는 국가는 미국, 영국, 일본 등을 포함하여 30개국이며 불법으로 금지하는 국가는 대한민국, 아일랜드, 폴란드 등 7개국이다. '임산부의 요청'에 따라 낙태를 인정하는 국가는 독일, 프랑스, 호주 등 27개국이며 불법으로 금지하는 국가는 대한민국, 영국, 일본 등 10개국이다. 조만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위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사문화된 낙태죄의 폐지를 요구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조적으로 태아 생명 보호를 위해 현행법은 유지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들끓는다.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인 만큼, 차후 헌재의 결정에 국민들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고석봉 대구가톨릭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2018-09-18 07:29:47

김충일 대구 동부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장

[기고] 보이스피싱,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 9월 한 40대 여성은 검찰청 수사관을 사칭하는 전화를 받았다. "당신 명의 통장이 범죄에 연루돼 고소당했으니 조사를 받아야 한다. 알려주는 앱을 설치하면 사건 내용이 검색된다. 통장에 든 돈은 금감원에서 보호해야 하니 전부 찾아서 보내는 직원에게 맡겨라"는 말을 믿고 4천500만원을 찾아 전달했다. # 지난 7월 한 40대 남성은 서민금융지원센터를 사칭하는 자의 전화를 받았다. "저금리 금융 나들목 대출이 있다. 신용도를 조회해 보니 2등급인데, 1등급으로 올려야 된다. 그러자면 일단 캐피탈에서 2천100만원을 대출받아 자산관리공사를 통해 상환을 하면 최대 8천900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알려주는 앱을 설치하고 자산관리공사에 연락하라"는 말을 믿고 대출을 받은 후, 자산관리공사의 '박경주 과장'을 사칭하는 자에게 2천100만원을 이체했다. 아직도 이런 피해를 당하는 사람이 있는가 생각될 정도로 황당한 것 같지만, 실제로 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에 한 주마다 3.4건 이상 발생하는 보이스피싱 범죄의 일부이다. 특히 대출 빙자 보이스피싱은 기존의 대출금을 상환 명목으로 개인 명의 계좌로 이체하라고 하거나 인터넷사이트 주소를 알려주며 앱 설치를 유도하면 100% 사기 전화임을 유념해야 한다. 우리는 보이스피싱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2017년 통계를 보면 전국적으로 2만4천259건에 2천470억원의 피해를 당했고 올해도 계속 증가하는 상황이다. 금융기관과 정부기관 등에서 아무리 예방 홍보를 하여도 근절되지 않는 주요 원인은 지역, 연령, 직업,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정부나 기관 사칭 전화를 너무 쉽게 믿기 때문이다. '나는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만은 절대 금물이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면 일단 보이스피싱임을 의심하고 항상 경계심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범인은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 동포가 어설픈 우리말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우리말을 유창하게 구사하며 실제 수사 절차와 금융과 관련된 전문 용어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사전 준비된 시나리오대로 피해자의 반응에 따라 멘트를 적절히 사용하여 매우 사실적으로 이야기한다. 실제로 최근에는 20, 30대 젊은 층과 교사, 간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도 피해를 입어 신고를 하러 오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보이스피싱에 대해 이미 알고 있거나, 들어 본 적은 있었으나 자신은 당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가 상대방에게 속아 소중한 재산을 한순간에 날려 버렸다고 자책한다. 가장 간단한 근절 방법은 모르는 전화는 일절 받지 않는 게 상책이나 그렇지 않으면 전화번호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이 좋다. 상대가 누구인지 부서명, 직위, 이름, 전화번호에 대해 메모한 다음, 전화한 용건을 간단히 물어본 뒤 전화를 끊고, 114를 통해 조회하거나, 기관 홈페이지에 공개된 전화번호로 전화하여 직접 확인해 보아야 한다. 이마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112에 전화해 물어보면 빠른 안내를 받을 수 있다. 특히, 범인은 전화를 받은 피해자를 철저히 고립시키려 장시간 통화를 유도하니 의심스러운 전화는 그 즉시 끊고, 주변 사람과 상의해 보면 보이스피싱임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2018-09-17 11:39:49

장동희 경북대 초빙교수, 전 주핀란드 대사

[세계의 창] 판문점선언 영문본 파문과 비준 문제

남북 공동으로 UN에 제출한 문서 '양측이 금년 중 종전선언 합의' 명시 문대통령 '금년 내 목표' 발언과 딴판 불분명한 문서로 비준 요구는 억지 우리 정부와 북한이 지난 6일 유엔에 공동 제출한 판문점선언 영문본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문제가 되는 조항은 '남과 북은 정전협정 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 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되어 있는 선언문 3조 3항이다. 종전선언과 관련, 우리 정부는 '남북한은 금년 내에 종전선언을 하기 위하여 (with a view to declaring an end to the War) 3자 혹은 4자 회담을 적극 추진키로 합의하였다(South and North Korea agreed to actively pursue…)'로 번역하였다. 즉, 종전선언을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 및 평화체제 구축과 함께 3자 회담 혹은 4자 회담 개최를 통하여 적극 추진할 대상으로 보았다. 그러나 남북이 공동으로 유엔에 제출한 문서에는 '양측이 금년 중 종전선언에 합의하였다'(The two sides agreed to declare the end of war this year)고 하여, 금년 중 종전선언을 기정사실화한 것으로 번역되어 있다. 이는 지난 4월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북측 영문본과 정확히 일치한다. 통상 우리나라가 조약을 체결할 경우, 상대국이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할 때는 한국어본과 영어본 두 언어본을 준비하고, 영어 이외 언어를 사용할 경우에는 상대국 언어본과 한국어본, 그리고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국제 공용어인 영어본, 이렇게 3개 언어본을 보통 작성한다. 그리고 해석에 차이가 있을 경우, 어떤 언어본이 우선한다는 언어조항을 반드시 넣는다. 영어 이외 언어를 사용하는 국가와 조약을 체결할 경우, 영어로 협상을 진행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에, 조약문은 영어로 먼저 작성한 후, 각각 자국어로 번역을 한다. 따라서 '해석에 차이가 있을 경우 영어본을 따른다'고 규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판문점선언의 경우, 협상도 우리말로 하였고, 선언문도 한글로 작성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 간에 해석에 이견이 생겼으며, 이 해석상 이견에 대하여 유엔에 제출한 영어 번역문이 유권해석을 해주는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그것도 북한의 해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식으로 말이다. 정부 측은 유엔에 제출한 문서는 단순 번역본에 불과하다고 한다. 하지만 전 세계인이 보는 것은 한글본이 아닌 영어본이며, 그것도 유엔 문서로 회람되었을 때 그 문서가 갖는 공신력은 더욱 커진다. 따라서 동 선언문을 유엔 문서로 회람하고자 했다면 영문본에 대한 협상이나 공표도 선언문과 함께 이루어졌어야 마땅하다. 또한 정부가 의도하는 바가 '금년 내에 종전선언을 하기로 합의했다'는 유엔 제출 영어본 표현대로라면, '종전선언 등은 남북만이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어서 3자 또는 4자 회담을 추진해 나가기로 한 것'이라 했던 통일부 대변인의 말이나 '금년 내 종전선언을 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던 문재인 대통령 발언의 진의는 무엇인지도 밝혀야 할 것이다. 정부는 지난 11일 판문점선언에 대한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조속한 동의를 주장하며 야당을 압박 중이다. 그러나 종전선언과 같은 핵심적 사항에 대하여 합의사항이 무엇인지도 불분명한 문서를 내밀며, 동의를 하라는 것도 억지 춘향이다. 나아가 판문점 선언은 북한이 국가인지 여부를 따지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체결 절차, 형식, 내용 등 모든 면에서 조약으로서 필요한 요건을 구비하지 못하고 있다. '서명과 동시에 발효한다'든지, 혹은 '상호 간 비준서를 교환할 때 발효한다'든지 하는 조약에는 필수적인 발효 조항도 없으니, 비준 근거는 더더욱 없다.

2018-09-17 11:36:46

안현주 메시지 캠프 기획실장

[매일춘추]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자

회사는 학교가 아니다.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잘해야 한다.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하다는 뜻일까. 남의 돈벌기란 쉽지 않다. 사람은 저마다 재능이 다르다. 모든 분야에서 잘하는 것은 힘들다. 하지만 우리는 평균을 바란다. 잘하려고 노력한 적이 있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좋지는 않았다.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우리는 부족함을 채우는 '열심히'의 방식에 너무도 익숙하다. 잘할 수 없는 것을 꼭 해야 할까. 어떤 일을 좋아하면 잘할 가능성이 높고, 잘하면 만족하게 된다. 하지만 이 둘이 일치하지 않을 때가 있다. 좋아하는 일이지만 원하는 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해서 힘들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특별히 못하는 일은 아니지만 해야만 해서 하는 사람이라면 이 갈등어린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가장 부러워하는 것은 이 둘이 일치하는 사람일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 자기계발서라면 한번쯤은 나오는 이야기다. 이 책임질 수 없는 희망을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 그리고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도 말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인생에서 단 하루도 일을 안하는 셈이란다. 말은 쉽다. 가슴이 뛰는 일을 찾은 이가 몇이나 될까. 평생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 있을까. 좋아하는 일을 찾으라는 메세지가 중요하긴 해도 현명하지는 않은 것 같은 세상이다. 좋아하는 일이 업(業)이 되었을 때, 더 이상 그 일을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 성과가 주는 스트레스는 같을 테니까.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 이 어른스러운 조언은 성취를 중시해 온 우리 사회의 면면을 보여준다.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는 사람을 이기적이거나 먹고살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고 치부한 면이 없지 않다. '행복의 비밀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다'는 동기부여 전문가 앤드류 매튜스의 쪽이 맞을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일을 찾는 대신 목적을 갖고 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좋아하지도 그렇다고 잘하지도 않더라도, 어떤 일이든 있기만 하면 좋겠다는 청년들에게는 사치스러운 고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단순히 돈을 버는 일을 하다보면, 금세 이 둘 사이의 줄다리기를 겪게 될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을 하는 사람보다 우월하거나 고귀한 것은 아니다. 혹자는 잘하는 것만 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란다.잘하는 일을 하면 아등바등 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잘할 수 있다. 그런데 늘 못하는 일을 잘하려고 하니 열심히 할 수밖에.

2018-09-17 11:32:13

김일광 동화작가

[에세이 산책] 그립다

문화원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하였다. 그런데 어쩌다가 회의가 주제와는 달리 구도심 재생 문제로 흘러갔다. 누군가가 옛 지도를 만들어서 이를 오늘날 도시 위에 얹어 보는 작업에서 도심 재생을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도심 재생에는 옛 모습과 이야기를 찾아가는 노력이 꼭 필요하다는 말이었다.포항의 옛 모습은 어땠을까. 불과 몇 년 전 모습조차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변해 버렸다. 발전이라는 명분 앞에 모든 게 다 사라진 꼴이었다. 씁쓸함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오랜만에 형산강 둑길을 걸으며 옛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친구들과 내달리던 들과 강의 모습이 어제 일처럼 선명했다.형산강은 양산목을 지나 영일만과 만나면서 넓고 기름진 삼각주를 만들었다. 상도, 하도, 분도, 죽도, 해도 다섯 마을이 생겨났다. 어릴 때 기억으로는 중섬과 안터라는 마을이 더 있었다. 그러고 보면 일곱 개 마을인 셈이다. 마을 어른들은 칠성강 이름이 달리 만들어진 게 아니라 하늘의 별처럼 곱고 아름다운 섬 일곱을 품고 흐른다고 칠성강이라고 했단다. 섬안들을 흐르던 모든 물줄기가 칠성강이었던 셈이다.하늘의 별 같았던 섬안 마을. 곳곳이 둠벙이었으며, 샛강이었다. 샛강과 둠벙에는 물풀 사이에 알을 붙이는 가물치, 메기가 넘쳐 났다. 뜸닭이라고 불렀던 뜸부기가 알 품는 모습을 훔쳐보는 일은 일상이었다. 오리정에서 섬안들을 가로지르는 신작로를 걷다 보면 해도 쪽은 온통 푸른 갈대밭이었다. 갈대밭에 집을 짓고 살던 개개비와 도요새는 그야말로 지천이었다. 갈대 홰기가 올라오면 이를 지키려고 원두막이 곳곳에 설치되었다. 홰기는 빗자루로 만들어 팔았기 때문에 귀한 취급을 받았다.이렇듯 형제산을 지나온 물줄기가 영일만에서 만나 포항이라는 터전을 만들었다. 섬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옹기종기 만든 마을이 섬안이었으며, 들은 섬안들이었다. 봄이면 물안개 피어나던 형산강, 칠성강, 샛강과 수많은 둠벙, 여름이면 서걱대던 갈대숲과 물새들, 가을이면 오곡 넘실대던 들녘. 벼 익는 색깔만큼이나 평화롭고 풍요롭기만 했던 시간이고 공간이었다.포항 근대교육도 섬안에서 비롯되었다. 호상학교, 민족교육을 지향했던 이 학교는 1909년 일제에 의해 강제 폐교되었으나 그 건물은 1970년대까지도 남아 있었다. 우리들은 그 집을 '꽃밭집'이라고 부르며 개구멍을 뚫고 드나들었다. 여름 한철을 환하게 밝혀주던 배롱나무 꽃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이제는 그 모든 게 사라져 버렸다. 눈 깜박할 사이에. 아, 그립고, 그립다.

2018-09-17 10:17:48

허태조 사)한국산림보호협회 중앙회장

[기고] 팔공산 국립공원 승격 꼭 해야

오랜만에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얼마 전 팔공산 국립공원 승격을 위해 대구시와 경북도가 힘을 모으기로 했다는 언론보도였다. 팔공산 국립공원 승격은 2013년 '팔공산 국립공원추진위원회'가 구성되면서 한때 열기가 뜨거웠다. 당시 대구경북의 60여 개 시민단체가 모여 팔공산 국립공원 승격을 위한 추진위가 결성되면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또한 대구시의회와 경북도의회, 시민사회단체, 학계 등을 중심으로 팔공산의 체계적인 보존 관리를 위해 국립공원 승격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실무협의체를 만들었다. 하지만 해당 지역 주민들의 이해 부족과 인근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실무협의회의 활동이 흐지부지되면서 팔공산 국립공원 승격 운동은 물 건너간 일이 되어 버렸다. 연간 2천여만 명이 찾고 있는 팔공산(1,192m)은 영남 지역의 명산(名山)으로 1980년 5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현재 대구시 동구, 군위군 부계·산성·효령면 일부와 영천시, 칠곡군, 경산시, 구미시 등에 걸쳐 있는 광대한 산이다. 팔공산 도립공원의 총면적은 125.7㎢(대구 35.4㎢, 칠곡군 29.7㎢, 군위군 21.9㎢, 경산시 9.5㎢, 영천시 29.2㎢)이다. 최고봉인 비로봉을 중심으로 동봉(1,155m)과 서봉(1,041m)이 양 날개를 펴고 있다. 남동쪽으로는 염불봉·수봉·인봉·노적봉·관봉 등이 이어져 있고, 서쪽으로는 파계봉을 넘어 가산(架山)에 이른다. 팔공산에는 대한불교조계종의 제9교구 본산인 동화사를 비롯하여 은해사 파계사 부인사 송림사 관암사 등이 있고, 보물 9점, 가산산성 등 사적 2점, 그 밖에 30개소의 명소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일명 '갓바위'(보물 제431호)라 불리는 '관봉석조여래좌상'은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속설에 따라 해마다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이 찾아와 기도를 드리며, 특히 입시철에는 학부모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다.이외에도 매년 다양한 축제들로 볼거리, 먹거리가 풍성하게 펼쳐지고 있다. 또 동식물 자원과 문화유적지 및 스토리텔링이 무궁무진한 곳이며, 국립공원으로 승격된다면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를 잇는 광범위한 관광벨트가 형성될 것으로 보여 지역경제에 많은 이익을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된다. 팔공산이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지 36년째다. 이제는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어야 할 때이다. 팔공산의 국립공원 승격은 당연함을 넘어 많이 늦은 감이 있다. 지금이라도 이해관계에 있는 주민들과 지자체가 대승적 차원에서 팔공산의 국립공원 승격을 위해 양보하고, 추진위를 중심으로 민관이 합심해서 팔공산 국립공원 승격을 위해 시도민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이끌어내는 운동을 펼쳐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관련 공무원들은 2012년 광주 무등산국립공원 지정을 반면교사로 삼아 말만 앞세우는 행정을 펼치는 시행착오는 없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최근 열린 대구경북한뿌리상생위원회 총회에서 "팔공산은 대구경북을 아우르는 산이다. 이 자연환경을 국립공원으로 하는 문제에도 상생협력을 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어 행정당국의 팔공산 국립공원 승격 추진에 관한 관심과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2018-09-16 15:51:16

노동일 경희대 교수

[이른 아침에] 사법부는 신뢰회복을 포기했는가

압수수색 영장 신청 90% 이상 기각'재판거래 의혹' 수사 과정 국민 불신법원 행태는 진정성·논리·공감 없어외부 힘 부르는 자충수 되지 않아야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프랜시스 프레이 교수는 신뢰의 구성 요소로 세 가지를 든다. 진정성(authenticity), 논리(logic), 공감(empathy)이 그것이다. 처음 신뢰 구축을 위해서나 무너진 신뢰를 재구축하기 위해서도 세 가지 요소는 필수적이다.누구든 상대가 진정성이 있다고 느낀다면 그를 신뢰할 가능성이 크다. 상대의 언행이 엄격한 논리에 따른 것이면 역시 신뢰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상대가 나와 공감대를 형성한다고 느끼면 쉽게 신뢰할 수 있다. 세 가지 요소가 갖추어질 때 완전한 신뢰가 형성될 수 있고, 어느 하나라도 흔들리면 신뢰는 위협을 받게 된다."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인 알렉산더 해밀턴은 의회는 돈지갑이 있고, 정부는 칼이 있는데, 사법부는 3권분립의 한 부분이라 해도 의회나 정부에 견줄 만한 권력이 없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법부가 국가의 한 축을 맡고 역할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사법부의 판단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존중이 있기 때문입니다."2016년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미디어가이드북'에 실린 당시 고영한 법원행정처장의 발언이다. 한마디로 국민의 신뢰와 존중을 잃은 사법부는 존재할 토대가 없다는 말이다.우리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이미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재판거래 의혹' 등 드러난 사실만 보아도 어이가 없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검찰 수사를 자청한 것도 신뢰 회복을 위한 고육지책이었을 것이다. 법원 안팎의 반대를 무릅쓴 결정이었다. 이후 진행된 수사 경과는 다 아는 대로다.검찰이 전·현직 법관 등을 상대로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은 90% 이상이 기각되었다. 통상적으로 압수수색 영장 발부율이 90%대인 것과 대조적이다. 수사에 전폭적으로 협조하겠다는 대법원장의 공언은 허언이 되었다. 무너진 신뢰나마 회복하려는 진정성부터 보이지 않는다. 법관들이 아무리 강변해도 국민은 알고 있다. 조직보호 이기주의의 논리가 앞서고 있음을. "우리 인간은 본능적으로 말 그대로 순식간에 상대가 진정성을 가지고 진실된 모습을 보여주는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프레이 교수의 말이다.단순한 조직보호라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국민이 사법부에 바라는 게 무엇인지 공감은커녕 완전히 무시하는 태도는 분노마저 자아낸다. 국민을 의식한다면 어떻게 퇴직한 법관이 무단반출한 수만 건의 재판 관련 문건을 파기하고 컴퓨터를 분해해 버렸다는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가. 담당 판사는 영장을 나흘씩이나 방치함으로써 증거인멸을 방조하는 동료애를 발휘할 수 있는가. 빗나간 엘리트 의식과 오만함이 하늘을 찌른다.국민은 그래도 법원에 한 가닥 기대를 걸고 있었다. 혹시 잘못이 있다면 법원이 스스로 문제를 반성하고 신뢰를 재구축할 수 있게 되기를 말이다. 최고의 엘리트라고 자부하는 사법부가 그 정도 역량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법원 스스로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원칙을 밝힌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 역시 같은 맥락일 것이다.지금까지 법원의 행태는 기대를 완전히 배반하고 있다. 진정성도 논리도 공감도 없는 사법부가 스스로 신뢰를 회복하는 건 불가능하지 않는가 싶다. 스스로 할 수 없다면 더 강력한 외부의 힘을 부르는 자충수가 될 뿐이다. 내키지 않지만 국회가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는 이미 나오고 있다. 법관 탄핵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 사법부 70주년 행사에서 김 대법원장과 문 대통령의 강도 높은 발언이 나온 후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되었다. 문제는 이후부터다. 법원 스스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임을 알아야 한다. 사법부가 신뢰 회복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법관들부터 신뢰의 세 가지 요소를 곰곰이 반추하길 바란다.

2018-09-16 15:50:18

민송기 대구 능인고 교사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수능으로 보는 한국 대표 소설가

작년 수능 때 수능으로 본 한국 대표 시인들을 살펴본 적이 있었다. 그러면 같은 방법으로 본 한국의 대표 소설가는 누구일까? 수능만 보면 가장 많이 출제된 작가는 이문구로 '관촌수필'이 3회 출제되었고, 김유정, 박경리, 염상섭, 윤흥길, 채만식, 최인훈이 각 2회 출제가 되었다. 범위를 평가원 모의고사까지 넓혀 보면 염상섭은 '삼대'가 3회, '만세전'이 2회 총 5회 출제가 되었다. 그리고 김유정, 이문구, 이청준, 채만식, 최인훈이 3회로 그 뒤를 잇는다. 염상섭, 이청준, 최인훈이 많이 출제된 이유는 여러 번 출제가 되었어도 꼼꼼히 읽어 보면 새로운 부분이 보일 만큼 상징성이 강한 소재들을 사용하고, 이야기 자체도 인간의 본성이나 사회의 문제를 깊이 파고들고 있으며, 무겁고 약간은 난해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난도 조절뿐만 아니라 작가 개인의 문제로 인한 논란이 없는 점도 출제의 상황에서는 매우 중요한 고려 사항이 된다. 이문구, 김유정, 채만식의 작품은 내용이 가볍고 유쾌하다. 그래서 시험지가 전체적으로 무겁고 우울한 내용이 많이 있을 때 분위기 전환용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물론 문제를 푸는 학생은 그 가볍고 유쾌함을 즐기지 못할 수도 있지만. 2011년 수능부터는 EBS 연계를 하면서 주로 14종 문학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을 위주로 출제되고 있다. 교과서에 가장 많은 수의 작품이 실린 작가는 이청준으로 '서편제', '당신들의 천국' 등 10개의 작품이 12번 나온다. 채만식은 6개 작품이 16번 나오는데, 실린 횟수로는 가장 많다. 작품 수로는 박완서가 8개로 두 번째로 많다. 수능에는 많이 나오지 않았지만 신경숙, 오정희, 양귀자와 같은 여성 작가들과 김소진, 김학철, 이태준, 조세희도 각각 4개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교과서에 가장 많이 실린 작품은 박경리 '토지'와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상 8번)이고, 그다음으로 이광수 '무정', 염상섭 '만세전', 채만식 '태평천하', 현진건 '고향'(이상 7번)이 많이 실려 있다. 교과서에는 문학사적 가치가 있는 작품들 중에서 교육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 적합한 작품들이 우선적으로 고려된다. 그런데 비평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작품 중에 교육용으로 부적합한, 비윤리적 내용들이 담긴 작품들은 걸러지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작품 목록은 일반인들의 상식과 조금 더 부합하는 모습을 보인다. 학력고사 세대들에게는 필독 작가였던 김동인이나 나도향의 작품이 의외로 교과서에 많이 보이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2018-09-16 15:50:03

[종교칼럼] 가을– 시간의 숨결

가을 장마가 길었다. 오랜만에 키 큰 나무들 아래 길을 쓸었다. 산중의 시간은 해와 달, 자연의 시간이다. 계곡 물소리와 나무들, 숲에서 새들이 먼저 새벽을 알린다. 도시에서는 빌딩과 자동차 그리고 속도의 시간이다. 여기서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고 거기서는 빠르고 숨 가쁘게 진행되어진다. 괴테가 가을 숲을 걷다가 '보아라, 이 지상의 것이 아닌 위대함이 저기 있지 않느냐?'가 떠오른다. 우리가 외우는 '주여, 때가 왔습니다'로 시작하는 릴케의 가을은 시간의 그림자가 들판의 열매들을 살찌게 하며 포도송이에 단맛이 들게 한다고 기도한다. 자연의 신호와 소리들은 어떤 경전과도 비교 되지 않는다. 금년 여름 초유의 혹서와 가뭄은 아마도 벌레들도 발버둥 쳤을 것이다. 가을비가 흡족하게 내리고 공기까지 맑으니 이 무슨 청복이요 선물인가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은 듯 손상 된 삶에 불이 켜지며 점화 된 기분이다. 자연의 신호와 소리는 사람의 생각과 언어를 압도하는 질서가 있다. 지구의 여러 곳에서 일어나는 자연재난은 앞으로 일어날 더 큰 지구의 운명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힌두교 경전인 '우파니샤드'에 옛날 구루(Guru)가 제자에게 법을 전할 때 그 제자의 귀에 대고 마치 숨을 불어 넣듯이 속삭였다. 아마도 그 스승은 제자의 귀에 속삭였다고 하지만, 무슨 말을 속삭인게 아니라 그냥 숨을 불어 넣었을 뿐이었다. 진리란 아마 큰소리로 말하면 사라지거나 깨졌을 것이다. 이미 말씀이란 그 이전에 그 참됨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시간의 숨결이 없는 말은 공허하고 쓸쓸하다. 자연의 소리와 신호는 언제나 둥근 소리이다. 누구나 알아듣고 접속 할 수 있어야 한다. 화엄경에서 '해인삼매'를 말 할 때, 물결이 잔잔해진 바다에 삼라만상이 비추듯 너와 나도 비추면 서로가 비추게 된다. 서로가 서로 속에 감싸고, 세계가 세계 속에 포함된다. 누구나 똑같이 꾀꼬리 소리가 얼마나 반가운지 소리나는 쪽을 쳐다보고, 너와 내가 또 쳐다보며, 눈을 마주치면 미소 짓는 것이다. 물체의 속도가 빛의 속도에 근접 할수록 시간은 느려진다. 물체의 속도가 빛의 속도와 같아지면 시간은 정지한다. 시간의 흐름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 있을 때 마음의 '무시간성'(akalika)이라고 한다. 그럴 때 몸은 빛 속으로 해체되어서 스스로 빛나게 되며 참다운 빛이 되는 것이다. 모든 외로움은 시간 속에서 일어나고 한때라도 시간에서 벗어나려면 스스로 빛이 되어야 한다. 아니면 별 수 없이 시간을 끌어안고 고민 속에서 뒹굴며 '무시간성'은 수행자들의 몫이라고 핑계 삼는 것이다. 시간은 느낀대로 존재하고 생각한대로 정해진다. 각자의 목숨도 그렇게 인과가 만들어진다. 이미 빛이 된 많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시간의 '무시간성'을 이루고 별이 되었다. 20세기 시인 중 라이너마리아 릴케도 우리에게 많은 행운과 영감을 주었다. 그중에 붓다를 기리는 세편의 시를 남겼다. '빛 속의 붓다'를 읊어본다. 모든 중심들의 중심, 속 중의 속, 알몬드, 스스로에 둘러싸여 향미(香味) 깊어지는― 이 만물, 더 먼 별들 그리고 그 너머까지 모두가 당신의 살, 당신의 과일입니다. 이제 당신은 느끼십니다. 그 어떤 것도 당신한테 매여 있지 않음을 당신의 광활한 외피(外皮)는 끝없는 공간에 닿아 있고 거기 진한 즙이 솟아나와 흐릅니다. 당신의 무한 평화로 빛을 얻어, 수없는 별들 밤새 회전하며 당신 머리 위 높이 타는 듯 빛납니다. 그러나 당신 속에 앞으로 있을 것이 이미 있습니다, 모든 별들이 죽을 때에도. 각정 스님(청련암 암주)

2018-09-14 11:5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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