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김종광 소설가

[춘추칼럼 ] 기억하는 법

기억을 스마트폰이 담아내는 세상기억하는 법을 잃어버리게 될 수도조작'삭제 바로잡는 기능 무궁무진특권층'연예인 모르쇠 전략 안 통해스무 살 때 강원도의 어느 호수 안에 있는 무슨 섬으로 엠티를 갔었다. '바퀴벌레 한 쌍'이라고 불리던 두 친구의 언약식을 치러주었다. 너무나도 생생한 추억이었다. 어이없게도 나만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동기들에 의하면, 우리는 그곳에 엠티를 간 적이 없었다. 대학 다니는 내내 '언약식' 따위를 치러준 커플이 전혀 없었단다. 순전히 나만의 기억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나는 그 기억을 믿고 있다.그런데 만약 그것이 정말 없었던 일의 기억이라면? 아마도 공상이 하나의 이야기처럼 기억으로 자리 잡은 것일 테다. 꿈이었을 수도, 상상한 스토리일 수도, 망상일 수도 있다. 엠티 가서 언약식하는 이야기, 얼마든지 공상할 수 있다. 내 바람의 변형이었을 수도 있다. 언약식 같은 특별한 체험을 해보고 싶었던 어쭙잖은 청춘의 간절한 몽상이, 시간이 지나는 동안 실제 기억처럼 대뇌피질 어딘가에 박힌 것이다.또 다른 가능성이 있다. 내가 들었던, 보았던, 읽었던 장면들이 한 줄기로 꿰어져 내가 겪은 일로 둔갑한 것. 누군가에게 '바퀴벌레 한 쌍'으로 불리는 커플 얘기를 들었고, 어느 드라마에서 대학생들이 언약식 치르는 장면을 보았는데, 그것을 조합하여 내가 두 눈으로 직접 본 일로 믿어버리게 된 것이다.나만 이렇게 이상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확신하지만, 어쩌면 실제로는 없었던 일일 수도 있는 기억. 나처럼 극단적인 기억의 모순은 드문 일일지라도, 서로 다른 기억의 충돌은 흔한 일일 테다.남자들의 군대 얘기가 그토록 길고 격렬한 것은 기억의 불일치 때문인 경우가 많다. 수십 년 만에 만난 동창들 모임이 학교 때 얘기만으로 밤을 새울 수 있는 것은 기억들의 중구난방 때문이다. 분명히 같은 사람들이 같은 일들을 겪었는데 서로 다르게 기억하고 있다.흥미로운 것은 기억을 대하는 태도다. 나처럼 내 기억이든 타인의 기억이든 모조리 의심하는 이도 있다. 대개는 내 기억도 타인의 기억도 반쯤은 맞고 반쯤은 틀리다는 식의 열린 자세를 유지한다. 그래야 그 판이 유지되니까. 물론 판이 깨지든 말든 자신의 기억을 맹신하는 이들이 있다. 내 기억은 무조건 틀림없고, 타인의 기억은 무조건 틀렸다는 거다. 이런 사람이 둘 이상이면 필시 고성이 오가게 된다.왜 기억을 나누다가 싸우지는 않더라도 마음이 상하게 되는 걸까. 나는 타인에게 잘 기억되고 싶었던 것일 테다. 이를테면 일관되게 괜찮은 언행을 한 사람으로. 내 기억으로 나는 일관되게 점잖게 말하고 행동했는데, 타인이 몹쓸 언행불일치자로 기억하고 있으니 언짢아질 수밖에 없다.어쨌든 오래도록 다채로운 기억은 사람의 것이었다. 실제기억이든, 공상기억이든, 표절기억이든 내가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기억을 스마트폰이 하는 세상이 되었다. 스마트폰에 담아버리면 끝인 거다.물론 제일 고통받게 될 사람들은 특권층이나 연예인처럼 온 국민이 다 아는 분들, 이른바 '공인'일 테다. 공인의 말과 행동은 실시간으로 국민에게 기억된다. 하기는 연예인들은 잘 모르겠지만 특권층은 별로 문제될 게 없을 수도 있겠다. 그분들의 주특기가 '모르쇠'와 '아니라고 딱 잡아떼기'와 '내로남불'이니까. 그래도 과거처럼 대놓고 적폐를 저지를 수는 없겠다. 딱 잡아떼고 말면 되는 언행도 있겠지만, 감옥에 가야 할 언행도 있으니까.법으로 처벌받아 마땅한 사람들이 왜곡하거나 조작하거나 삭제한 기억을 바로잡아주거나 복원해주는 등 스마트폰의 순기능은 상당하다. 하지만 인간적으로 보면 서글픈 일이다. 반주 없이도 외워 부르는 노래가 수두룩하던 사람이 노래방 기계 없이는 노래를 못 부르듯, 그렇게 길을 잘 찾던 사람이 내비게이션 없으면 길치가 돼버리듯, 스마트폰이 없으면, 그때 내 마음을, 내 생각을, 풍경을, 타인의 언행을 떠올리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어떤 기억일지라도, 기억 행위이야말로 사람을 사람답도록 했다. 기억하는 법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기억하는 법을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2019-11-14 11:33:56

신호종 전 대구고검 사무국장

[기고] 야구감독의 선택

창단 50년 만에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에 첫 진출한 워싱턴 내셔널스가 2019년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정규리그 승률 2위 LA 다저스(106승)와 1위 휴스턴 애스트로스(107승)를 차례로 물리친 9위(93승) 워싱턴의 우승은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이게 바로 야구다. 역전패당한 휴스턴과 다저스는 경기가 끝났음에도 '패장의 선택'에 대하여 여전히 시끌벅적하다. '잘 던지고 있는 A투수를 왜 교체했느냐? B투수를 잘못 투입한 것이 패인이다. C타자를 왜 선발에서 제외했느냐? 성적이 신통치 않은 D타자를 출전시킨 이유가 뭐냐?' 등등.힌치 감독은 2년 전 휴스턴에 창단 55년 만에 첫 월드시리즈 우승컵을 안겼던 명장이다. 로버츠 감독도 부임 후 4년 연속 다저스를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우승을 시켰다. 하지만 올해는 두 감독 모두 팬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정규시즌 승률보다 월드시리즈 우승을 더 갈망하는 게 팬들의 요구다. 워싱턴과의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 7이닝 초반까지 잘 던진 선발투수 그레인키를 교체한 힌치 감독의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팬들은 믿는다. 로버츠 감독도 디비전시리즈 5차전에서 7회까지 3대 1로 앞선 상황에서 선발투수 커쇼를 구원투수로 깜짝 등판시켜 홈런을 맞아 패하게 되었다고 굳게 믿고 있다.반면에 워싱턴의 마르티네스 감독은 전력이 열세임에도 선발투수 2명을 적시에 등판시켜 우승을 이끌었다고 칭송받는다. 야구의 묘미는 공 한 개로 승패가 갈리는 데 있다. 투수는 공 하나로 타자를 아웃시킬 수도 있지만 홈런을 얻어맞을 수도 있다. 타자는 똬리 튼 독사가 먹잇감을 노리듯 공을 때려 홈런을 쳐낸다. 감독은 매 순간 공 한 개에 대한 선택으로 피를 말리는 고민을 해야 하고, 그 결과를 책임져야 하는 혹독한 직업이다.물론 수시로 코치의 조언과 데이터를 제공받지만 선택은 오롯이 감독의 몫이다. 다저스와 휴스턴은 슈퍼컴퓨터와 분석관까지 둬 감독이 데이터를 적극 활용하는 팀으로 유명하다. 반면에 마르티네스 감독은 경험과 소통을 중시하는 다소 올드한 직감 야구를 선호한다. 부상 중이던 선발투수 슈어저의 몸 상태를 직접 점검한 후 그의 투지를 믿고 등판시켜 승리를 이끈 일화는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그는 5차전에서 심판의 볼 판정에 강하게 항의하다가 퇴장당했다. 선수 사기를 높이고 팀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그만의 선택이었다. 소통이냐, 불통이냐. 선수에 대한 믿음이냐, 데이터 중시냐. 이런 차이다.월드시리즈에서 휴스턴은 투수 34명, 워싱턴은 28명을 등판시켰다. 디비전시리즈에서도 다저스는 투수 26명, 워싱턴은 22명을 등판시켰다는 데이터는 마르티네스 감독의 투수에 대한 믿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소통과 믿음의 직감 야구가 데이터 야구를 이긴 셈이다.힌치와 로버츠 감독은 자신들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선택이었다고 정당함을 강변한다. 구단도 두 감독을 신뢰하여 내년 시즌을 보장했다. 이런 엇박자가 팬들을 더 화나게 하는 이유다. 응원 함성이 한순간에 비난의 폭풍으로 뒤바뀔 수 있고 팬들이 조용히 야구장을 떠날 것이다. 자신이 한 선택을 팬들의 입장에서 되돌아보고, 잘못된 부분은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할 줄 아는 공감, 진정성, 용기야말로 이 시대 리더가 갖추어야 할 덕목임을 곱씹어 볼 기회였다.

2019-11-14 11:10:01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매일춘추] 가을에 이별 노래가 많은 이유

가을날, 길을 걷다 들려오는 슬픈 발라드 음악이 마치 나를 위한 노래 같아 가던 길을 멈춰 선 적이 있는가? 혹은 무심코 흥얼거리거나 문득 생각나는 음악이 날씨별로, 시간대 별로 다르다는 것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우리가 봄에 듣게 되는 노래들에는 설렘, 사랑, 꽃에 관한 가사가 많다. 특히 봄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벚꽃에 관한 노래가 많은데, 한 예로 '버스커 버스커'라는 가수의 '벚꽃엔딩' 이라는 곡은 봄만 되면 음원차트의 상위권에 자리한다. 그 해의 인기곡들과 나란히 경쟁하다가 봄이 가고 여름이 와서야 차트의 상위권 자리를 내어준다. 매년 봄마다 이 노래가 차트에 오르는 일이 반복되다보니 사람들은 '벚꽃엔딩'의 음악차트 진입으로 봄이 왔음을 알게 되기도 한다.봄이 가고 여름이 되면, 설렘 등의 조심스러운 감정에서 벗어나 아주 경쾌하고 활기찬 감정을 느끼게 하는 빠른 비트의 음악이 주류를 이룬다. 노래의 내용은 그에 어울리는 여행이야기인 경우도 많다. 그리고 가을이 오면 차분하고 슬픈 이별내용의 발라드가 음원차트의 상위권을 장식한다.가을만 되면 모든 커플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이별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이별을 다룬 발라드 음악이 인기를 누리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알아보았더니 환경에 의한 호르몬의 변화가 바로 그 원인이었다.인간은 여러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환경은 바로 자연환경이다. 우리는 자연 없이는 생존이 불가하다. 자연은 우리에게 낮과 밤을 선사하고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4계절도 만들어 준다. 그러면서 따뜻하거나 추운 기온의 변화가 생기며 이 계절과 기온의 변화는 인간의 심리상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여러 가지 자연의 변화 중 햇볕의 양을 뜻하는 일조량이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드러났다.일조량이 많을수록 '세로토닌'이라는 호르몬이 증가하는데 이는 '행복 호르몬'이라고도 불린다. 뇌를 자극해 사람을 들뜨게 하며 긍정적이고 충동적으로도 만든다. 겨울이 지나 봄이 오면 일조량이 점점 늘어나 '세로토닌'이 증가한다. 그것이 극대화 된 여름은 당연히 봄 보다 더욱 더 활기찬 나날을 보낼 것이며, 다시금 해가 짧아져 일조량이 적어지는 가을에는 세로토닌 분비량이 줄어 우울감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가을이 되면 우울해지는 것은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겪게 되는 당연한 변화이다. 날씨가 바뀔 때마다 나오는 노래들이 다 비슷한 이유도 여기에 있는 듯하다. 그렇다고 가을 내내 우울한 이별 발라드 곡만 듣고 있는 것도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이번 주말엔 밖으로 나와 울긋불긋한 단풍을 보며 조금이라도 더 햇볕을 쬐는 건 어떨까?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2019-11-14 11:09:26

(재)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ICT산업진흥단/문화콘텐츠진흥단 단장

[김경덕의 스타트업 스토리] 봉주르 스타트업

최근 프랑스 출장 중에 현지 스타트업 현황이 궁금하여 대표적 생태계 랜드마크인 '스타시옹 에프'(Station-F)를 방문하였다. 파리 도심의 철도 차량기지를 개조하여 탄생시킨 '스타시옹 에프'는 3만4천㎡가 넘는 규모로 스타트업 단일 보육공간으로는 세계 최대 크기를 자랑하고 있다.프랑스 이동통신사 '프리모바일' 회장 자비에르 니엘이 사비를 털어 구축한 '스타시옹 에프'에는 3천 명이 넘는 창업자뿐 만 아니라 구글, 애플, 아마존 등 유수의 기업들이 입주하여 각종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기업과 투자사들이 창업 프로그램을 직접 운영하며 유니콘이 되기 위해 경쟁하는 창업자들을 24시간 지원하고 있다. 특히 외국인과 해외 스타트업에도 모든 것을 개방하여 프로그램에 선정만 된다면 비자 발급 등 다양한 편의를 제공해주고 있다.이렇게 '스타시옹 에프'는 유럽을 대표하는 '스타트업 캠퍼스'를 넘어 전 세계 스타트업들을 파리로 끌어들여 지속 가능한 프랑스 경제 발전을 위한 발판으로 삼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다하고 있다.지인의 소개로 '스타시옹 에프'에서 유망 스타트업들을 관리하고 있는 한국인 직원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한국인 직원은 씁쓸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창업자 중 외국인 비중이 25% 정도인데 한국인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끔 프로그램에 참여하더라도 모두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이유는 단순했다. 현지 투자를 받아 유럽 진출을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정부 지원을 손쉽게 받을 수 있는 한국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또한 길드 형태의 멘토링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 '스타시옹 에프'에 적응하지 못하고 불평이 가장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는 것이다.최고의 공간과 편의를 제공해줄 수 있지만 시장에서의 성공은 스타트업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스타시옹 에프'의 운영 철학을 대한민국 스타트업 생태계가 되새길 필요가 있을 것 같다.

2019-11-13 18:00:00

권미강 작가

[권미강의 생각의 숲] 말의 온도

"말과 글은 머리에만 남겨지는 게 아닙니다. 가슴에도 새겨집니다." "뜨거운 언어는 말하는 사람은 시원할지 몰라도 듣는 사람은 화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출간된 지 3년 만에 150만 부를 돌파한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에 나오는 대목이다. 한마디 말이 주는 소중함과 절실함이 담긴 이 책은 '무심결에 내뱉은 말 한마디 때문에 소중한 사람이 곁을 떠날 수 있다'고 조언한다.요즘 정치권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을 대면할 때마다 그들에게 이 작가가 펴낸 '언어의 온도'와 '말의 품격'을 필독하라고 권한다. 그들의 대상은 반대 진영이 아니라 모든 국민들이기 때문이다.이미 언론을 통해 기사화됐으니 품격 떨어지는 말들을 일일이 소개하지는 않겠다. 국민을 위한 입법기관, 그것도 국민의 투표로 뽑힌 국회의원들이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말들을 쏟아낼 때, 그 말들이 언론을 통해 여과 없이 흘러나올 때 국민들은 마음을 데인다. 그걸 막말 정치인들은 인식이나 하고 있을까? 국가의 품격을 떨어트리는 정치인들의 막말정치에 국민들은 지친 지 오래됐고 일말의 기대감마저 사라졌다.정치인이란 국민들을 대신해서 정책을 세우고 제도를 만들고 모두가 함께 잘사는 길을 모색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국민은 힘들게 번 돈으로 세금을 내고 그 돈의 일부가 정치인들의 월급이 되는 것이다. 언제까지 정치인이 권위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국민을 무시하며 정치를 권력으로 생각할까.이제 곧 선거철이다. 정치인들은 자기가 속한 선거구를 돌며 90도로 인사하고 유권자들에게 한 표를 부탁할 것이다. 올바른 정치인으로 국민을 대변하겠다고 온갖 말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려 할 것이다. 하지만 국민은 이미 그들이 한 말을 기억한다. 그들이 뱉어낸 낯 뜨거운 말들이 국민들을 얼음장처럼 차갑게 만들고 마음의 문도 닫게 했다는 걸 정치인들은 알아야 한다.

2019-11-13 18:00:00

경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같이&따로] 자율과 여유

Q. 다음에 설명하는 나라는 어디일까요? 2019년 UN 발표 행복지수 세계 1위(참고로 한국은 조사대상 156개국 중 54위). 2018년 1인당 국민소득 6만1천227달러(세계 9위), 인구 약 575만 명, 면적 약 4만3천㎢ (남한 면적의 약 40%), EU 가입 국가이지만 자국 화폐 사용. 천연자원은 부족하지만 서비스업과 제조업 발달, 2016년 국제투명성기구의 국가부패지수 1위(혹 부패지수 1위라 해서 부패한 나라가 아니라 부패 정도가 가장 낮은 국가를 의미함)인 국가는? 잘 모르시겠다면 세계적인 맥주 칼스버그의 산지라는 힌트! A. 답은 덴마크이다.한 달 전, 사회복지사들과 함께 해외출장을 다녀온 적이 있다. 출장국은 바로 덴마크였다. 학기 중이라 부담은 컸지만, 유럽 국가 중에서 관광으로 다녀오기는 쉽지 않은 나라라 많은 것을 배우고 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출장을 떠났다.사회복지를 전공하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대표적 복지국가인 덴마크는 매력적인 나라로 생각되었다. 종종 우리 사회의 복지나 의식을 보여주기 위해 방송에서도 덴마크라는 나라는 우리와 많이 비교되곤 한다. 필자도 수업시간에 사회복지와 사회 전반의 의식수준을 보여주기 위해 덴마크의 사례를 인용하곤 했다. 필자는 요즘 보건복지부에서 강조하는 '탈시설화'를 살펴보기 위해 주로 노인복지시설을 중심으로 방문하였다.10월 중순의 북유럽을 가기 때문에 가을임에도 상당히 추울 듯 생각되었지만, 생각보다는 기후도 따뜻했고 덴마크 사람들도 친절하고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필자가 받은 덴마크의 느낌을 SNS 식으로 표현하면 '#자율 #여유'였다. 복지국가라는 생각 때문에 복지현장 곳곳에 규율과 지침이 상당히 촘촘히 작동할 것이라는 필자의 생각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개인들은 최대한 자율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국가와 사회는 개인들의 자율적인 삶을 최대한 보장하도록 사회시스템을 만들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여유와 배려가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우리의 경우, 노인복지시설에 노인들의 보행을 돕기 위한 핸드레일이 복도를 비롯해 생활공간뿐만 아니라 노인과 관련된 시설의 모든 공간에 설치되어 있지 않으면 시설은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 심지어 핸드레일의 규격까지 제시되어 3년 주기로 시행되는 사회복지시설 평가에서 규격에 미달되면 평가에서 점수를 받지 못한다.그러나 필자가 방문한 덴마크의 노인시설은 아주 일부 공간을 제외하고는 핸드레일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당연히 필자를 포함해 동행한 사회복지사들은 핸드레일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핸드레일이 설치되어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덴마크 시설관계인의 대답은 이동이 불편한 노인이라면 보행보조기구를 사용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주 실용적인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가급적이면 노인들이 자기 힘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노인들에게도 좋으니까.더 흥미로운 것은 요양원의 화재사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었다. 작년에 덴마크의 요양시설에서 거주 노인이 피우던 담배로 대형화재가 발생하여 80명 넘게 사망한 사고가 발생했었다. 우리는 당연히 담배를 못 피우게 하는 지침과 규정을 만들고, 이를 행정기관이 감독하는 것을 먼저 생각하고 또 그렇게 대응해왔다. 그런데 덴마크 정부의 대응은 다시 한 번 연수팀을 당황시켰다. 담배로 인해 화재가 발생하더라도 최소한의 피해가 발생하도록 시트나 이불을 방염 소재로 바꾸고, 담배를 피울 때 재가 떨어지지 않도록 하면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기구를 개발하는 방향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우리의 사고와는 너무 다른 접근이었다. 문제가 생기면 규제를 만들고, 규제를 지키도록 하기 위한 각종 감독과 평가, 그리고 규제를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한 제재의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한국의 사회복지와는 전혀 다른 생각과 시스템이었다. 시설관계인도, 공무원도, 시설 노인들도 모두 미소가 항상 떠나질 않았다. 그들의 삶 속에는 '여유'가 있었다. 자율은 혼란이 아니라 또 다른 질서인 여유를 만들어주었다. 필요한 도움을 주되 최대한 복지서비스 대상자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그러한 시스템을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나라. 국토도 작고 자원은 많지 않지만 국민이 부유하고 행복한 나라 덴마크의 모습이었다.

2019-11-13 18:00:00

쓰기의 두려움을 당신도 갖고 계시는가요? 사진: PIXABAY 제공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글쓰기가 번지점프만큼 두려운 이에게

글쓰기 전쟁이다. 아침에 눈 떠서 저녁에 눈감을 때까지 인간은 쓰기를 반복한다. 소통을 위해 쓰고 업무 보고를 위해 쓴다. 물건을 판매하기 위해 쓰고 SNS를 하기 위해 쓴다. 이토록 글쓰기는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다. 당연히 글쓰기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하다. 글을 쓰고자 앉으면 머리가 백지장처럼 하얘진다. 이런 스트레스는 돈이 오고 가는 순간 더 심해진다. 광고에 쓰이는 카피, 홈쇼핑에서 쇼핑호스트의 한 마디, 쇼핑몰의 상품 소개 문구 같은 것이 바로 그런 일이다. 광고 카피의 차이가 상품의 매출 차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광고 카피라이터로 일을 시작한 필자 역시 거기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엄청났다. 그 시작은 카피라이팅에 천부적인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부터였다. 남들은 쉽게 척척 써내는 것 같은 카피가 필자에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과정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수학, 영어 문제처럼 정답이라도 있으면 공식을 외어서라도 풀겠는데 글쓰기에는 정답이 없다. 모래사장에서 동전을 찾는 것처럼 광활한 대지에서 보석을 찾아야 하는 느낌이었다.하지만 밥벌이를 하고 살아남아야 했다. 재능이 없다고 해서 손가락 빨고 있을 수는 없다. 그때 '재능 없음'을 이길만한 엄청난 해답을 찾았다. 그것은 바로 '조금씩 계속'이라는 법칙이었다. 천부적인 재능이 없으니 남들이 안 쓸 때 더 쓰고 남들이 쓸 때 '나는 더 쓰자'라는 생각이었다. 이 칼럼에서 몇 가지 팁을 독자와 공유하고 싶다.첫째, 하루에 카피 10개를 무조건 썼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잠들기 전에는 무조건 카피를 열 줄을 써야 잠이 들었다. 카테고리는 카페, 병원, 가구, 가전, 의류 등 다양하게 나누었다. 그렇게 매일 조금씩 써나갔다. 물론 세상에 내놓기에 부끄러운 카피도 많았다. 하지만 하루하루 쓰다 보니 카피의 질도 올라갔고 관련 브랜드에서 의뢰가 올 때 바로 꺼낼 수 있을 만큼 실력이 올라갔다.둘째, 의도적으로 글을 많이 쓰는 상황으로 자신을 밀어 넣었다. 이 칼럼 역시 그런 의도적인 환경 중 하나이다. 처음 매일신문에서 칼럼 제안이 왔을 때도 망설이지 않았다. 무조건 쓰겠다고 했다. 사실 광고인이 칼럼을 쓴다는 건 많은 리스크를 안고 있는 일이다.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는 하나의 글이 너무 빨리 그리고 멀리 퍼지기 때문이다. 무슨 광고인이 저렇게 글을 못 쓰냐는 비아냥거림도 겁났다.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려고 노력했다. 의무적으로 칼럼을 쓰면 글쓰기 공부를 게을리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그런 극한의(?) 환경으로 자신을 밀어 넣으니 서점에 갔었을 때 반드시 글쓰기 책 하나는 들고 나왔다.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팁이지만 그 힘듦 속에 분명 성장이 있다.셋째, 실패작을 많이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글에 대한 스트레스는 완벽한 글을 쓰겠다는 강박관념에서 시작된다. 반드시 좋은 글, 뛰어난 글을 쓰겠다는 생각이 글쓰기를 두렵게 만든다. 하지만 글을 못 쓴다고 해서 우리가 우려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는다. 경찰이 와서 우리를 잡아가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든지 이성 친구가 이별을 요구한다든지 하는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는다. 실패한 글을 많이 써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 마음이 너무 편했다.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봤다. 두려움 없이 여러 시도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글쓰기 실력이 올라갔다.필자가 앞에서 제시한 세 가지 법칙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사실 누구나 지금부터 시도할 수 있는 일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처음부터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니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처음부터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아니었다. 그들 역시 '조금씩, 계속'이라는 법칙으로 글을 써왔던 작가들이다. 그렇게 시작하자. 조금씩, 계속 말이다. ㈜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 광고를 보는 건 3초이지만 광고인은 3초를 위해 3개월을 준비한다. 광고판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를 연재한다.

2019-11-13 17:50:41

동진스님 망월사 백련차문화원장

[종교칼럼]삶을 가볍게 낙엽이 떨어진다

천하에 가을이 가득하다. 바람 따라 사라져 버린 황금 들녘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아쉬움이 진하게 가슴에 남는다. 본체를 떠난 낙엽이 허공을 맴돌다가 대지 위로 떨어진다. 하나둘씩 제 몸을 버리고 모든 것이 텅 비어져 간다. 날마다 힘에 겨워 떨어지는 낙엽이 쌓여만 간다. 노란 은행잎도 붉은 단풍잎도 넓은 보리수잎도 바람 따라 자리를 옮겨 가며 쌓인다. 밭에 호박은 누렇게 잘 익어 마른 풀숲에 숨어 있고 채소들은 씨앗을 땅에 떨군다.추수를 마친 들녘은 빈 공간이다. 생명을 키우고 결실을 맺고 빈자리로 돌아와 회복을 위해 휴식에 든다. 사람에게도 밤낮이 주어져서 소진한 기운을 회복하듯 계절의 순환으로 자연계는 비우고 채우며 생명력을 얻고 전한다. 낙엽 위를 산책하며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자아를 느끼며 생각에 잠긴다. 밤은 길어지고 새벽 기운은 차다. 이렇게 한 해의 시간이 낙목한천(落木寒天)의 계절로 저문다. 사람도 자연도 인연에 의해 오고 감을 바라본다. 삶과 죽음 윤회의 진리가 가을에 있다.자연과 같이 인생도 때를 알아 소유하고 떠나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삶이 가벼워진다.그렇다고 현실적인 무소유의 삶을 살란 뜻이 아니다. '무소유'(無所有)란 내가 가진 걸 모두 내려놓고 물질적으로 가난해지는 삶이 아니다. 예수님도 '무소유'를 설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마태복음 19장 24절 참조) 모두 들어본 유명한 구절이다. 종교에서 말하는 '무소유'는 이런 것이다.삶은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모두 경쟁이다. 무언가를 성취하고 달려야 하는데 소유욕이 없다면 험난한 경쟁사회를 어떻게 헤쳐갈 수 있겠나?"스포츠 감독이나 코치는 '몸에 힘을 빼라, 긴장을 풀라'고 한다. 왜 그럴까. 몸에 힘이 들어가면 어깨와 근육이 경직되고 결국 자기 실력을 다 발휘할 수 없다. 몸에 힘이 들어가는 것은 마음에 힘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승리에 집착하기 때문에 결국 내 안의 에너지를 다 뽑아 쓸 수 없다. 우리의 삶도 무언가를 '꽈∼악' 붙들고 있으면 긴장하게 된다. 힘이 들어가면 삶이 경직되고 유연해지지 않는다. 물질적 재산뿐만 아니라 과거의 상처나 현재의 욕망, 미래의 불안 등으로 마음이 뭔가를 틀어쥐고 있다면 그게 바로 '소유의 삶'이 된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소유'는 집착에 대한 무소유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부자의 기준도 '부와 소유의 총액'이 아니라 '집착의 총액'이다. 집착이 클수록 바늘구멍은 좁아지고, 집착이 작을수록 바늘구멍은 넓어진다. 집착이 많을수록 천국의 문이 좁아지고, 집착이 적을수록 천국의 문이 넓어진다"라 고 백성호의 현문우답은 말한다.무소유는 모든 걸 내려놓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집착을 좀 내려놓고 경쾌하게 삶을 스윙하는 일이다. 그러니 '무소유'는 산속에 사는 수도자에게도 필요하지만 복잡한 일상을 헤쳐 가는 우리에게 더 필요한 덕목이다.문재인 정부도 힘을 좀 빼야 한다. 재임 반환점을 돌면서 일자리 외에는 잘못한 점이 없다고 한다. 정의, 공정을 외치며 다 같이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이제껏 시행한 정책이 앞으로 꽃을 피울 것이라고 한다. 경제는 하락하고 외교, 안보도 불안하다. 불통 국정운영에 이제 힘을 좀 빼고 사회와 기업과 야당의 목소리를 들으며 소통하는 정부가 되어야 한다."오동나뭇잎 하나 떨어져 온 누리가 가을임을 안다"는 시의 한 구절처럼 망월사 누각 앞의 황갈색 단풍이 곱다. 단풍과 잔디밭에 떨어진 낙엽이 한옥과 탑과 산천의 선을 따라 가을이 환상적으로 깊어간다. 가을은 말없이 사라지기에 더욱 연민을 느끼게 한다.낙엽과 무소유를 생각하며 이미경의 '고향의 노래'와 차이콥스키의 '가을의 노래'를 듣는다. 이맘때쯤이면 '가곡의 밤'이 그리워진다.

2019-11-13 13:27:52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 수필가

[매일춘추] 도박

나는 화투를 좋아하지 않는다. 고스톱을 안 한지는 아마 10년은 족히 넘었을 것이다. 이유는 칠 때마다 돈을 잃어서이고, 또 동료에게 폐를 끼치기 때문이다. 잘 치는 사람은 몇 판만 돌아가면 상대방의 패를 읽는다던데 난 늘 어리벙벙하다. 되는대로 마구 치다가 민폐를 끼친다며 욕을 먹기 일쑤다. 점수 계산도 서툴러, 떠듬떠듬 세고 있을 때면 늘 상대방이 먼저 몇 점이라며 기를 죽인다. 돈 잃고, 욕먹고, 아둔한 머리까지 들통이 나니 좋을 리가 없는 것이다."복권은 당첨될까봐 안 산다" 라는 말을 해서 친구들의 공분을 산 일이 있다. 이 말은 농담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는 진심이 포함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복권은 거의 사 본 기억이 없다. 그 아득한 확률을 생각하면 불가능에 가깝기도 하거니와 실제로 당첨이 된다고 해도 적잖이 난감해질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반칙으로 이긴 경기처럼, 컨닝을 해서 붙은 시험처럼 찜찜할 것만 같다. 사내답게 정정당당한 승부로 살아온 내게는 맞지를 않는다.남의 돈을 따겠다는 노름이나 혹시나 하는 요행을 바라는 복권은 사지 않았지만 인생 도박판은 크게 벌인 적이 있다. 운수업에 뛰어든 지 2년쯤 지났을 때였다. 당시에는 수원 영통 소재의 의약품 택배회사에서 수원~창원 간 편도 지입을 하고 있었다. 길이 멀기 때문에 하루는 상행, 하루는 하행으로 교행(交行)을 하고 있었는데, 비교적 거리가 가까운 대구 코스를 교행 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내가 그 자리에 가면 당일치기가 가능할 것 같았다. 자리 값을 주고 두 자리를 합쳐 차 한 대로 '당일바리'에 도전을 하게 된다. 두 대 분을 혼자서 하니 돈은 되었지만 문제는 잠자는 시간이 4시간 밖에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목숨을 건 도박이 시작되었다.어떤 계기를 만들지 않고서는 돌파구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아 시작은 했지만 막상 부딪혀 보니 죽을 지경이었다. 쏟아지는 잠을 깨우기 위해 벼라 별 짓을 다했다. 고행(苦行)도 그런 고행이 없었다. 살면서 그때만큼의 절체절명이 있었을까 싶었다. 정말이지 죽음의 밑바닥까지 보았다. 그러나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석 달 가까이 하니까 어느 정도 적응을 해 갔다. 토, 일요일은 무한리필로 잠과 타협하면서 보기 좋게 성공을 거둔다.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라는 명언은 그때 제대로 실감을 했다.운에 좌우되는 사업은 노름이나 복권처럼 그야말로 도박이니 신중하게 선택할 일이고, 자기 스스로의 의지로 해낼 수 있는 일이라면 다소 무리한 계획을 세우더라도 한 번은 크게 승부를 걸어볼 일이다. 그 싸움에서 이기기만 하면 많은 것을 얻을 수가 있다. 사업적 성공은 물론이고, 승리감은 자신감으로 이어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다. 무엇보다도 남자라면,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짜릿한 성취감을 한 번 정도는 맛보는 것도 괜찮지 않겠는가.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수필가

2019-11-13 11:14:57

김재수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특별기고] 개도국 특권 포기를 보며

한국 경제 위상에 어쩔 수 없다지만 농민과 소통 없이 일방적 결정 곤란침체 빠져 있는 농촌 경제에 희망을 문재인 정부 농업 정책 대전환 필요세계무역기구(WTO)에서 개발도상국 특권을 주장하지 않겠다는 정부 발표에 농촌이 들끓고 있다. 개도국 특혜의 포기는 농업 포기로 생각한다. 농민 단체의 비판 성명이 이어지고 전국적인 항의가 지속된다. 올해는 전반적으로 농산물 가격이 하락하고 아프리카 돼지열병(ASF) 등 가축질병 발생으로 농촌 경제가 매우 침체돼 있다. 개도국 지위를 주장하지 않겠다는 정부 결정 과정에 농민과 소통이나 설득 부족도 지적받는다. 개도국은 경제 규모나 사회제도, 국가 역량이 선진국에 비해 뒤떨어지기 때문에 국제협상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 특별 대우 중 중요한 것은 관세와 보조금 감축에서의 우대다. 개도국은 선진국 의무의 3분의 2만 이행하면 된다. 1995년 출범한 WTO 체제에서 선진국은 관세를 6년간 36%를 감축한다. 개도국은 10년에 걸쳐 24%를 감축한다. 국내 보조금의 경우 선진국은 6년간 20%를 감축하나 개도국은 10년간 13.3%를 감축한다. 개도국은 선진국에 비해 감축률은 적게 하고 감축 기간은 길게 잡아주는 것이다.'개도국 지위를 주장하지 않겠다'는 정부 결정도 일리가 있다. 우리 경제가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우리 경제는 GDP 규모 세계 12위, 수출 세계 6위,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은 국가로 국제 위상이 높아졌다. 우리는 OECD 가입국이고 G20 회원국이다. 세계은행이 분류한 1인당 국민 총소득이 1만2천56달러가 넘는 고소득 국가이며 지난해 우리는 3만달러를 넘었다. 무역 규모도 2018년 기준으로 수출이 3%, 수입이 2.8%로 세계 상품무역이 0.5%를 훌쩍 넘는 국가다.WTO에서 우리의 개도국 특혜에 대한 문제제기가 많고, 우리보다 못한 국가도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한다. 실질적으로 향후 WTO 협상에서 우리가 개도국 특혜를 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더라도 현재의 관세나 보조금 감축에 영향이 없다.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더라도 이는 미래의 협상부터 적용된다. 당장에는 대비할 시간이 많고 그 기간 안에 근본적인 농업경쟁력을 높여 나가겠다는 것이다언젠가는 포기해야 할 개도국 지위이다. 국제적 위상, 국내 경제 상황, 차기 협상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우리 경제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져 우리 주장을 관철하기가 어렵다.OECD 가입을 준비하기 위해 필자가 OECD에 근무할 때이다. 농업과 기후변화 분야는 우리가 개발도상국이라는 주장을 관철시키느라 애를 먹었다. OECD는 '선진국이 가입하는 클럽'인데 개도국 지위를 주장하면 되느냐? 특정 산업(농업)을 개도국으로 취급하면서 OECD에 가입하기는 어렵다는 사무국 관계자들과 많은 논쟁을 하면서 어렵게 관철시켰다. 1995년 WTO 체제가 출범한 이후 25년이 지나 우리 경제의 국내외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브라질, 싱가포르 등도 개도국 지위를 더 이상 주장하지 않겠다고 한다.다만, 개도국 특혜 주장이 당장에는 득(得)이 없고 실(失)은 클 수 있다는 판단은 위험하다. 차기 협상에 변수가 많다. 개도국과 선진국의 대결 구도로 지속될지도 의문이다. 개도국 지위 포기의 시기나 방법도 적절한지 검토해야 한다. 경쟁력 제고 대책의 실효성도 의심된다. 국회에 제출한 2020년 농업 부문 예산은 15조3천억원 수준이다. 전체 예산(513조5천억원)의 2.9% 수준으로 지난해 3.1%에 비해 줄었다. 최근 6년 내의 최저 수준이다. 농업경쟁력 제고 대책을 지속 추진하겠다는 정부 대책이 공허하게 들린다.당장 시급한 '공익형 직불제'라도 조기 시행해야 한다. 차기 협상에서 감축될 가능성이 없고 WTO가 허용하는 제도이다. 지급상한도 없고 가격에 관계없이 일정 면적을 기준으로 지급된다. 2020년 농림축산식품부 예산 중 직불금 예산도 2조2천억원 수준이다. 지난해의 1조4천억원 규모에 비하면 상당히 늘어났다. 농업 직불금의 81%가 쌀에 집중되어 쌀 공급 과잉을 야기한다. 타 작물과의 균형을 취하고 농가별 차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공익형 직불제' 시행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개도국 지위 포기와 농산물 가격 하락으로 침체에 빠져 있는 농촌 경제에 희망을 주자. 문재인 정부 농업 정책의 대전환을 촉구한다.

2019-11-13 11:05:55

김영국계명대 벤처창업학과 교수

[기고] 한일, 미중 무역 갈등의 해법

지난 7월 일본 정부는 한국을 대상으로 3대 핵심 반도체 소재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포토레지스트 및 고순도 불화수소의 수출을 제한하였다. 8월에는 한국을 전략물자 수출의 간소화 혜택을 주는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였다.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지속되고 있는 한일 갈등 고조의 결과로 글로벌 스마트폰의 가격 상승을 불러왔고, 양국의 경제적 피해는 물론, 글로벌 경제에도 빨간 신호가 켜지고 있다.한일 분쟁의 여파는 기존의 미중 무역 갈등과 더불어 글로벌 경제에 약육강식 동물의 세계처럼 큰 피해의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국과 중국, 일본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한국의 현재 무역 구조는 향후 무역 교역국의 다변화라는 시급한 과제를 안고 있다.이 시대적 과제의 해결책 중 하나가 지난 2017년 11월, '한국-인도네시아 비즈니스포럼'에서 제의된 3P를 핵심으로 하는 아세안 10개국 대상의 문재인 정부의 신(新)남방 정책이 아닐까 싶다.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가? 진행 과정이 무척 궁금하다.3P는 사람공동체와 평화공동체, 상생번영공동체를 일컫는다. 핵심은 우리 주변의 신흥 아세안 국가들과의 상생 협력 수준을 한층 더 높여 4대 강국(중국과 미국, 일본과 러시아) 수준의 글로벌 경쟁력을 올린다는 전략이다. 곧 글로벌 시장의 다변화를 통하여 기존의 상품 중심 교역뿐만 아니라, 관광과 문화예술 교류, 무역과 투자 증진을 위한 제도적 기반 확충, 신남방 지역 내 연계성 증진을 위한 인프라 개발, 중소 및 중견기업의 시장 진출과 상호 교류 활동의 지원 확대, 신산업 및 스마트 협력 등이다.또한 기술 분야를 포함하여 인적 교류, 한반도의 비핵화 및 항구적 평화 체제 구축에 이르기까지 교역의 범위도 더욱 크게 넓힘으로써 우리의 대내외 글로벌 경제 영역을 한층 더 확장해 나가자는 전략이다. 아울러 국방과 안보 차원에서 보면, 현재 북한과 외교 채널을 갖고 있는 동남아국가연합과의 북핵 대응을 위한 공동 노력과 다각적인 협력을 추진한다는 전략이다.연일 서민경제와 가계경제를 포함하여 국가경제의 빨간 신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엄청나게 크게 들린다. 미래의 먹거리를 위한 국가경제의 선택과 집중만이 지금의 살길이다. 우선순위가 무엇인가? 중요한 일과 급한 일 중에 이 시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선택과 집중을 할 것인가?4차 산업혁명과 6차 산업이 광속으로 급변하는 글로벌 무역시장의 경쟁 속에서 자국(自國)의 이익을 우선하는 통상 전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미국에 의존적인 우리의 안보와 중국에 크게 기대고 있는 경제 구조는 우리가 안고 있는 양 날개 같은 구조이기 때문이다.지금의 우리 경제는 추풍(秋風)낙엽과 다름없지 않은가? 올해는 태풍도 잦았다. 지겹고 보기 싫은 정쟁(政爭)의 언행들을 중단하라. 낙과(落果)와 쓰러진 벼를 보는 농부의 마음처럼 참으로 우울하다. 이토록 지쳐가는 민심(民心)을 달래줄 기분 좋은 신남방 정책 실현의 좋은 소식이 언제쯤 올까 한없이 기다려지는 때이다.

2019-11-13 11:04:07

정우창 대가대 교수

[경제 칼럼] 일본의 샐러리맨 노벨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실패 거듭해도 연구 매진 환경 조성한국도 그런 기업 있는지 돌아볼 때1973년 설립 KAIST 올해로 46살우리에게도 노벨상 소식 머잖은 듯리튬이온 배터리는 휴대전화, 노트북, 전기차의 필수 부품이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1970년대 석유위기 때 화석연료 없이 에너지 생산 방법을 연구하던 스탠리 휘팅엄(77) 뉴욕주립대 교수가 처음으로 제안했다. 휘팅엄 교수가 개발한 배터리 용량은 2볼트에 불과했다.그러나 1980년 존 구디너프(97) 텍사스대 교수에 의해 2배로 증가했다. 1985년 아사히카세이(旭化成) 연구원이던 아키라 요시노(71)는 폭발 위험을 줄이고 안전성을 높인 리튬이온 배터리를 개발했다. 소니(Sony)는 요시노의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1991년 상용 리튬이온 배터리를 세계 최초로 출시했다.배터리는 제2의 반도체로 불린다. 노무라증권에 따르면 2018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수요는 93GWh였으나 매년 35%씩 크게 성장해 2025년에는 941GWh에 이를 전망이다. 지난 10월 9일 발표된 노벨 화학상의 영예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한 휘팅엄 교수, 배터리 용량을 폭발적으로 늘린 구디너프 교수, 리튬이온 배터리의 안전성을 높여 상용화에 기여한 요시노 박사 등 3명에게 돌아갔다.노벨 과학상 수상자는 대학교수라는 공식을 종종 깨트리는 나라가 일본이다. 반세기 전인 1973년 소니 연구원이던 에사키 레오나는 반도체 연구로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2002년에는 정밀기계업체 시마즈제작소의 주임연구원인 학사 출신 다나카 고이치가 고분자 재료의 질량측정법 개발로 화학상을, 2014년에는 니치아화학공업의 나카무라 슈지가가 청색 LED 개발로 물리학상을 받았다.올해 노벨 화학상 공동 수상자인 아키라 요시노 역시 기업 연구원 출신이다. 그는 교토대학에서 학사·석사를 마치고 1972년 아사히카세이에 입사했으며, 처음 10년 동안 수행한 연구는 모두 실패했다.34세가 되던 1982년 구디너프 교수의 논문을 읽고 리튬이온 배터리 개발을 시작했으며, 2015년 고문으로 물러나기까지 34년간 리튬이온 배터리 연구에 매진했다. 아사히카세이 재직 기간도 43년이나 됐다.샐러리맨으로서 석사학위 소지자인 아키라 요시노의 노벨상 수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나라는 기업 연구소나 국책연구기관 모두 박사학위자 중심이다. 박사에 대한 인식은 우리와 일본이 많이 다르다. 우리에게는 박사의 의미가 과하게 포장되어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 기업의 연구원도 노벨상을 탈 수 있는 연구 환경이 구축되어 있는지, 실패를 거듭하면서 43년간 연구에만 매진할 수 있게 배려하는 기업이 우리에게도 있는지 돌아볼 때다.일본에는 논문박사라는 독특한 제도가 있다. 석사 과정을 마친 뒤 기업에 근무하면서 한 분야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한 후 그 분야 연구 결과로 박사학위를 받는 제도이다. 논문박사는 실무 경험과 이론이 겸비된 진짜 전문가에게 주어진다.아키라 요시노도 입사 33년 차인 2005년 57세의 나이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요시노 박사는 2017년부터 메이조(Meijo)대학 교수 겸 아사히카세이의 명예 펠로우로 재직 중이며 70세가 넘은 나이에도 후학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제조업 강국 일본에는 진짜 전문가인 수많은 '요시노'가 있다. 기업은 50세, 국책연구기관은 60세, 대학은 65세를 갓 넘긴 나이에 퇴직해서 전문성을 포맷(format)한 뒤 비전문가로 살고 있는 우리의 과학기술자 활용을 위한 대책 마련도 절실해 보인다.2019년 노벨 화학상은 1975~85년에 수행된 연구의 결과물이다. 1975년, 1980년, 1985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각각 608달러, 1천711달러, 2천458달러에 불과하였다. 노벨상의 씨앗이 뿌려질 토양은 존재하지도 않았다.우리나라 이공계 대학원 발전에 큰 기여를 한 KAIST가 1973년에 설립되었으니 올해로 46세 중년이 되었다. 톰슨로이터가 논문의 피인용 횟수를 조사해서 매년 선정하는 세계 상위 1% 연구자에 선정되는 국내 연구자의 숫자도 해마다 늘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도 노벨상 소식이 머지않았다.

2019-11-12 16:53:52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매일춘추] 멍때리기 대회

'왜 영혼 없는 말을 하느냐'는 말을 듣고 졸지에 영혼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영혼 없는 눈으로 영혼 없는 밥을 먹고, 영혼 없는 커피를 마시고, 영혼 없는 책을 덮을 때까지도 집 나간 영혼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영혼이라고 집 나가고 싶은 적 없었을까요? 영혼이라고 꼬박꼬박 약을 챙겨 먹고 싶었을까요? 영혼도 누군가의 관심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겠지요. 붉은 가을의 스위치를 끄고 골방에 처박히고 싶은 날도 있었겠지요. 부끄러움에, 안타까움에 말 보다 먼저 눈물 보일 때도 있었겠지요. 얼마 전, 영혼도 없이 영혼을 위한 제사를 지냈습니다. 영혼 없는 절을 하고, 영혼 없는 제삿밥을 먹었습니다.우리는 '아주 가끔씩만' 영혼을 소유한다고 쉼보르스카는 말합니다. 끊임없이, 영원히 그것을 가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이따금씩 '공포나 환희의 순간'에 영혼은 우리 몸속에 둥지를 틀고 오랫동안 깃든다고 합니다. 청소기를 돌리거나 가구 배치를 다시 할 때, 운동화 끈을 조이고 둘레길을 걸을 때도 영혼은 우리에게 손 내밀지 않습니다. 늦은 밤까지 숙제를 하거나 김치를 담을 때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대화에 겨우 '한 번쯤 참견할까 말까' 그나마 그것도 자주 있는 일은 아니라고 합니다. 워낙 과묵하고 점잖으니까요. 그러나 삭신이 쑤시고 아프기 시작하면 슬그머니 교대 근무를 자청하기도 한답니다.'기쁨과 슬픔'이 온전히 하나가 될 때, 말없이 우리 곁에 머무는 영혼, 아무도 쳐다보지 않아도 묵묵히 제 임무를 수행하는, 영혼이 우리에게 하는 것처럼 우리 또한 영혼에게 꼭 필요한 소중한 존재임이 틀림없습니다.영혼은 어린이와 노인에게 가장 오래 깃든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사이 청춘을 바쳐야 하는 시기에는 영혼을 반쯤 빼놓고 사는 게 정상일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영혼을 챙기는 것이 영혼을 귀찮게 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아니, 어쩌면 영혼의 특성을 제대로 살리기 위함일지도 모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체와 영혼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니, 삶은 얼마나 고달파야 하는지요. 영혼 없이 사는 것이 어쩌면 더 행복한지도 모르겠습니다.서울시 한강사업본부에서는 '멍때리기 대회'를 올해로 4회째 개최했다고 합니다. 대회의 목적은 새로운 경험과 더불어, 지친 현대인들이 잠시나마 모든 것을 잊고 아무것도 하지말자는 취지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뒤처지거나 무가치하다는 생각을 하는데, 멍때리기 대회는 이러한 통념을 꼬집고자하는 데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또한 가치 있는 행위라는 것이지요.그렇다고 영혼이 자발적으로 육체에서 나갈리 있겠습니까마는 잠시나마 쉬는 시간을 주자는 의도겠지요. 하여 '영혼'이라는 말이 발화되기 전, 우리도 가끔씩 영혼의 외출을 적극적으로 도우는 건 어떨까요?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2019-11-12 11:10:39

소망이 복강 CT상에 맹장부의 부종과 주변 장기의 복막염 소견이 관찰된다. (사진출처: 탑스동물메디컬센터)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개는 맹장이 없다? 맹장염 걸린 소망이

소망이(6·몰티즈)가 배가 아파 병원을 찾았다. 소망이는 평소에 매우 활발하고 식탐이 왕성한 반려견이었다. 2개월 전부터 설사와 식욕부진이 반복되며 복통까지 앓았다. 소망이는 이미 여러 동물병원을 다니며 췌장염과 장염 진단을 받고 입원치료도 받았으며 당시에도 약을 복용하고 있었다.그러나 치료를 받으면 며칠 동안 증상이 호전되었다가도 복통이 재발한다고 보호자는 하소연했다. 혈액검사에서는 별다른 이상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초음파 소견과 실험실 검사에서 IGF-I(Insunlin-like Growth Factor-1) 수치가 매우 높게 나타난 것으로 보아 복강 종양 또는 복막염이 의심되었다.복강 CT 검사 결과 맹장을 중심으로 소장과 장간막의 광범위한 부종과 복막염 소견이 발견되었으며 서둘러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복강을 절개하자 맹장은 염증으로 인해 단단하게 뭉쳐 있었고, 맹장에는 3mm정도의 천공 흔적이 발견됐다. 장이 천공되면서 장내 오물이 복강으로 누출되어 복막염이 반복되고 있었던 것이다. 소망이는 맹장을 적출하는 수술을 받았으며 입원기간 동안 복막염에 대한 집중적인 약물 치료가 이루어졌다. 퇴원 후에도 2주간 식이 처방이 이루어졌으며 이제는 원래의 활달한 모습으로 회복하였다. 소망이의 맹장염과 맹장이 적출되어야 하는 상황을 보호자에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사람과 개의 맹장의 해부학적인 차이점을 설명해야 했다. 구글 등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개는 맹장염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소개되어 있기 때문이다.사람에게 발생하는 맹장염은 맹장 끝에 달려있는 충수돌기(appendix)에 발생하는 염증을 의미하며 정확하게는 충수염(appendicitis)이라 부른다. 우측 아랫배가 찌르듯이 아프면 충수염을 의심하고 병원을 찾는다. 병원에서는 초음파 진단으로 충수돌기가 8mm 이상 부어 있는지, 통증과 염증이 있는지를 확인하여 수술 여부를 결정한다.사람의 충수돌기는 장 미생물의 저장고 역할을 하며 굳은 변, 기생충, 이물질 등에 의하여 충수염이 발생하면 극심한 통증이 유발된다.반면 개와 고양이는 소장과 대장이 연결되는 결합부에 맹장이 돌출되어 존재하며 충수돌기가 없다. 이렇듯 각 동물의 해부학적인 구조는 오랜 기간 각 동물이 살아왔던 생활 섭식 형태에 따라 다르다. 의학과 수의학이 유사하면서도 분야가 나뉘어지는 이유이다.사람에게 맹장염은 일생에 누구나 경험할 수있는 다발하는 질병인 반면 개와 고양이에게는 매우 드물게 나타난다. 사람의 경우 충수염을 통상적으로 맹장염이라 부르지만 개는 맹장에 염증이 직접적으로 발생한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사람에게 이루어지는 맹장수술은 맹장말단부에 달려있는 충수돌기는 제거하는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지만, 소망이에게 시술된 맹장 적출 수술은 맹장 자체를 적출하는 매우 큰 수술이다.매우 드문 개의 맹장염을 경험한 수의사가 "개의 질병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라고 하소연한 적이 있다. 이렇듯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수술과 치료법이 매년 소개되고 있으며 더 정밀한 검사들이 활용되고 있다.반려인의 동물에 대한 애정이 깊어질 수록 수의학은 점점 더 깊어지고 정밀해지고 있다. 생명을 책임지는 수의사가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SBS TV동물농장 수의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 원장은 개와 고양이,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한 30년간의 임상 경험을 토대로 올바른 동물 의학 정보를 제공하고 바람직한 반려동물 문화를 제시하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2019-11-12 11:04:09

함무라비 법전. 1조 무고, 5조 공정한 판결 조항이다. B.C18세기. 루브르 박물관

[유물로 읽는 동서양 생활문화] 조국 파동과 함무라비 법전

"만약 누군가 다른 사람의 눈을 해치면 그의 눈도 해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문구다. 함무라비 법전. 복수법(復讐法)의 동해보복형(同害報復刑·탈리오 법칙)을 보여준다. 남에게 피해를 입히면 그대로 갚아준다는 의미다. 함무라비 법전에 실제 이런 조항이 있었을까?함무라비 법전 282개 조항 4천 년 전 법전이란의 역사 고대도시인 수사에서 1901년 12월~1902년 1월 프랑스 고고학 발굴팀이 길이 225㎝짜리 검은색 섬록암 비석을 땅에서 파냈다. 함무라비 법전(Code of Hammurabi)이다. 발굴팀은 무려 38만 점의 유물을 소장한 파리 루브르박물관으로 법전을 가져갔다. 루브르에 전시 중인 함무라비 법전은 언제 만들어졌을까? 바빌로니아 함무라비(재위 BC 1790~1750년) 치세 때다. 서문과 282개 법조항을 수메르 쐐기문자로 적었다. 언어는 셈족 아카드인의 말이다. 함무라비 법전은 일부 마모된 부분을 빼고 246개 조항이 완벽하게 판독됐다.'눈에는 눈'의 복수법? 현대 자본주의 법전과 닮아시카고 대학 하퍼(R. F. HARPER) 박사가 1904년 펴낸 '바빌론왕 함무라비 법전'(1904년)을 펼치자. 앞서 소개한 '눈에는 눈' 조항은 이 책의 73쪽에 나오는 196조다. 197조 내용도 비슷하다. '남의 뼈를 부러트리면 그 사람의 뼈를 부러트린다.' 함무라비 법전은 이렇게 흉측한 보복, 복수법인가? 법전의 13%가 사형 조항이다. 잔인한 법으로 비칠 만하다. 하지만, 법전 조항의 50%가 계약 문제를 다룬다. 예를 들면 황소 한 마리 끄는 일꾼의 임금이나 집 지을 때 계약조건 등을 소상히 담는다. 법전의 3분의 1은 상속과 이혼, 친권의 가사 문제다. 현대 자본주의 법전과 다르지 않다.함무라비 법전 1조, 무고죄 엄중 처벌한국 사회 최대 이슈로 떠오른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에 함무라비 법전을 비춰본다. 하퍼 박사의 책 11쪽 함무라비 법전 1조는 "만약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범죄를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고발했는데, 그 혐의를 입증하지 못하면 고발한 사람을 사형에 처한다." 즉 무고죄를 사형으로 다룬다. 모든 법의 1조는 그 법의 가장 핵심적인 사상을 반영한다. 4천 년 전 함무라비 법전은 죄 없는 사람을 고발하는 무고 방지였다.함무라비 법전 5조, 판결 실수 판사 영구 추방또 하나의 조항을 보자. 역시 하퍼 박사의 책 11쪽을 펼쳐 5조를 읽는다. "만약 판사가 판단해서 결정을 내리고, 이를 서명해 판결했는데 나중에 그 판결을 바꾸는 경우에는 판사가 자신이 내렸던 판결을 책임진다. 판결했던 벌금보다 12배로 물어낸다. 그리고 그 판사를 판사석에서 내쫓고, 다시는 판사석에 앉히지 않는다." 판검사가 정의나 원칙, 사실에 입각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수사하거나 판결하는 악행을 막는 조항이다.국민 분열 부추기는 여야의 고발 경쟁2018년 12월 20일 자유한국당은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 등을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그로부터 10개월이 흘러 2019년 10월 2일 이번에는 더불어민주당이 조국 법무부 장관 관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사와 검찰 관계자를 '피의사실 공표 및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로 고발했다. 한국 사회를 집권 통치하는 여당과 국정 운영 동반자인 제1야당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고발에 나서는 모습은 단순한 사건에 그치지 않는다. 양당을 지지하는 세력 간 진영 다툼으로 번진다.함무라비 법전 교훈, 엄정한 사법 판결시민단체나 국민이 내 편 네 편 나눠 고발이나 비난 대열에 합류한다. 증거나 합리적 추론조차 없다. 공지영 작가, 유시민 작가, 광화문 조국 구속 촉구 집회, 서초동 조국 수호 집회, 조국 전 장관 동생 영장 기각 판사와 발부 판사. 우리 사회 원칙과 이성이 작동하는지 묻는다.그리스 최고의 극작가 소포클레스의 2천500년 전 말이 새삼스럽다. "이성은 신이 준 최고의 선물. 하지만, 증오나 좋아하는 마음을 가질 때 이성은 어이없이 무너진다." 진영에 갇혀 혼란스러운 현실에도 합리적인 국민은 바란다. 분열보다 통합에 우선 가치를 두는 정치를. 진영을 떠나 특권, 기득권, 반칙 없는 공정한 사회를. 무고, 자의적 수사나 판결이 없는 원칙과 정의의 사법부를…. 4천 년 전 함무라비 법전이 주는 교훈과도 일치한다.

2019-11-11 18:00:00

박창원(톡톡지역문화연구소장‧언론학 박사)

[박창원의 기록여행] 입시 지옥

'그동안 개교 준비를 하여오던 대구야간대학은 지난 28일 오후 2시 그 학교의 임시교사인 대구농과대학에서 개교식과 겸하여 제2회 신입학생 입학식을 거행하였는데 식은 장인환 씨의 개식사와 학장 대리 최해청 씨의 인사말씀이 있은 뒤 성황리에 폐식하였다 한다.'(매일신문 전신 남선경제신문 1948년 11월 30일 자)해방이 되자 교육 균등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너나 구분 없이 누구나 공부할 수 있는 교육 기회의 균등을 의미했다. 일부 특권계층의 자녀들만이 누리는 교육 불평등을 타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학교의 문턱을 낮추는 일이 시급했다. 1948년의 경우 지금의 초등학교인 국민학교 졸업자는 19만 명이 넘었다. 하지만 중학교 수용 인원은 고작 7만 명에 불과했다. 진학 희망자를 60%로 잡아도 4만여 명은 학교 문턱을 넘을 수 없었다.학교 진학의 좁은 문은 대학이라고 다를 바 없었다. 그렇다고 당장 학교의 수용 인원을 늘릴 수 없었다. 교육 당국은 고육지책으로 야간학교 설치를 추진했다. 수만 명의 학생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었다. 대구야간대학이 문을 열었다. 비록 야간이었지만 학교 수용 인원의 확대는 교육 기회의 균등과 맞아떨어졌다. 주경야독하는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컸다. 첫머리에 인용한 기사 속의 대구야간대학은 훗날 대구대와 합쳐 영남대가 된 청구대의 전신이다.상급학교 진학의 좁은 문은 입시 지옥과 맞닿아 있었다. 말하자면 수요와 공급의 격차였다. 해방 직후에는 지금과 달리 가을학기였다. 그러다 보니 7, 8월에 입학시험이 집중되었다. 중등학교 시험을 치르고 나면 대학시험이 이어졌다. 전문학교들은 대부분 대학으로 승격되었다.대구에서는 대구농대와 대구의대, 대구사대 등이 해당되었다. 대학에서는 국어와 수학, 외국어에다 상식시험을 치렀다. 신체검사 또한 빠지지 않았다.우리 손으로 치르는 입학시험은 일제강점기 때와는 크게 달랐다. '태극기를 그려 보라'거나 '훈민정음은 누가 언제 만들었느냐'는 중등학교의 문제는 이를 말해준다. 또 대학 입학시험에는 우리말 테스트와 고전문학, 시조와 속담 등이 출제되었다. 학생부 종합의 시초라고 할까. 대학에서는 학업성적이 적힌 출신교장의 내신서를 요구하기도 했다.그 시절 최고의 인기학과는 법 관련 전공이었다. 의학계통이 뒤를 따랐다.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일부 학부모의 입시 과열은 이미 중학교 시험부터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킬 정도였다. 1950년에 대구에서는 입학시험지를 돈으로 사고파는 사건이 일어났다. 입학시험지 인쇄를 위탁받은 기관의 직원이 문제를 훔쳐 초등학교 교원에게 수십만원을 받고 팔았다. 또 그 교원은 2만원씩을 받고 학부모들에게 되팔았던 것이다.입시 거래는 아이가 아니라 어른들의 눈높이에서 드러난 입시 지옥의 민낯이었다. 국가적 행사로 자리 잡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 14일로 코앞에 다가왔다. 속은 그대로인데 포장을 달리한 입시를 해마다 치르고 있다. 올해도 다들 고생하셨다.

2019-11-11 18:00:00

경기대 미디어학부 특임교수

[김구철의 富의 비밀 수학] 기초의학에 지름길은 없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2%대 아래로 떨어질 위기에 처했다. 2%가 무너지면 실업률은 치솟고, 세수도 감소해 내년은 어마어마한 재정 적자가 불가피할 것이다. 지금도 사상 최저인 금리를 더 낮춰본들 투자는 제자리에, 부동산만 폭등할 것이다. 22년 전 IMF 외환위기의 악몽이 다시 도래할 수 있다. 그때가 외부요인에 의한 아시아, 동구권의 위기였다면, 이번에는 내부 요인에 의해 발생한, 한국만의 위기라는 차이가 있다.올해 노벨의학상 공동수상자인 윌리엄 케일린 하버드대 교수가 방한해 기자들과 나눈 대화를 보며, "아 이거다!"라고 생각했다. 평범하지만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위대한 지혜를 담고 있었고, 기초과학·응용과학이 주제였지만 한국 경제에 바로 적용될 수 있는 금과옥조였다.'인류 전체에게 도움을 주려고 고민했다.''처음부터 만루홈런을 기대하지 마라.''지식이 충분히 축적되고 다져진 뒤에야 응용이 가능하다.''자영업자' '노조' 식으로 특정 집단을 위한 정책은 위험하다. 공동체 전체를 크게 보는 경제 정책이 필요하다. '일거에' '단숨에' 격차를 해소하고 공정 경제를 구현하려는 정책은 과욕이다. 단계적 접근으로 역풍을 피해야 한다. 범죄단체의 수괴로 인식된 자가 장관이라면 개혁이 불가능하다. 개혁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케일린의 마지막 말. '기초과학에 지름길은 절대 없다.' 고대 그리스의 기하학자 에우클레이데스(유클리드)의 '기하학에 왕도(王道)는 없다'를 연상시킨다. 경제가 어려운데 해법은 있느냐는 질문에, 대통령은 비무장지대에 평화 경제구역을 만들고 남북 협력체제를 구축하면 일본도 추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 방으로' 해결하려는 '평화 경제론'은 박근혜의 '통일 대박론'과 무슨 차이인가? 한 방으로 해결되면 애초에 위기가 아니다. '경제에 왕도는 없다.'

2019-11-11 17:38:56

김준 고려대 사학과 초빙교수

[김준의 시사로 읽는 한자] 南郭先生(남곽 선생) 실력 없이도 한자리하는 사람

중국 전국시대 제(齊)나라의 선왕(宣王)은 우(竽·관악기의 일종) 연주를 즐겨 들었다. 합주를 좋아한 그는 늘 300명의 악사들에게 동시에 연주하게 했다. 어느 날 남곽(南郭)이라는 성을 가진 자가 찾아왔다. 자기도 우를 잘 부니 왕을 위해 연주할 기회를 달라고 했다. 선왕은 크게 기뻐하며 그를 악단에 합류시키고 다른 악사들과 같이 대우했다. 세월이 흘러 선왕이 죽고 아들 민왕(湣王)이 등극했다. 그는 아비와 달리 독주를 좋아했다. 그러자 남곽은 소리 없이 사라졌다.남곽이라는 자는 원래 처사(處士·할 일 없는 지식인)로서 우를 연주할 줄 몰랐다. 합주 때 연주하는 시늉만 하고 악사로서의 그럴싸한 대우를 누리며 살았던 것이다. 300명이 함께 연주하는 데 남곽이 꼽사리 낀다고 무슨 문제가 있었겠는가. 그는 독주가 아닌 합주라는 허점을 이용했고 왕에게 아부할 줄도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은 그를 남곽 선생(南郭先生)이라 불렀다. 지금은 실력이 없으면서도 한자리하는 사람을 남곽 선생이라고 비꼬아 말한다. 우를 불 줄도 모르면서 숫자를 채운다는 남우충수(濫竽充數)란 말도 같은 뜻이다.이 이야기는 신하를 통솔하는 방법을 모은 '한비자'(韓非子) 내저설(內儲說) 상편(上篇)에 나온다. 관리를 임명할 때는 남의 말을 듣지 말고 꼭 한 사람씩 직접 점검할 것을 권하는 이야기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에는 남곽 선생이 많다. 사람들은 자주 남곽 선생의 허풍에 현혹되기도 한다. 교수라고 다 실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종교인이라고 다 신앙에 충실한 것도 아니다. 정치인이라고 다 신념과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또 내 자식 하나 끼워 넣은들 무슨 문제가 될까라고 생각하는 권력도 많다. 남곽 선생들은 아부와 뇌물, 뻔뻔함과 허풍으로 세상을 탁하게 만든다. 어울리지 않는 남곽 선생들을 걸러내고 적임자를 찾는 공정성을 말하고 싶다.

2019-11-11 17:38:12

김기수 영남대 경영학과 교수

[세계의 창] 미국의 총기폭력과 규제

미국 시민 1인당 총기 1.2정 보유한 셈매년 거의 300건 집단 총격 사건 발생수정헌법 2조'NRA 격렬 반대 넘어서엄격한 규제 법안 제정 목소리 쏟아져미국에서는 매년 총기 폭력(gun violence)으로 수만 명씩 죽거나 다치고 있다. 최근에는 학교, 극장, 나이트클럽, 교회, 야외공연장, 슈퍼마켓 등 공공장소에서의 불특정 다수에 대한 집단 총격 사건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총기 폭력을 관찰하는 한 사이트에 의하면 미국에서는 매년 거의 300건의 집단 총격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이보다 대중의 관심을 덜 받는 총기에 의한 자살, 우발적인 사고, 개인적인 살인 등도 끊이지 않고 있다.미국 질병통제예방본부에서 나오는 사망률을 자료를 기초로 만들어진 통계에 의하면 매년 11만3천108명이 총기 관련 사고를 당하고, 3만6천383명이 사망한다고 한다.이와 같이 미국에서 총기 관련 사고가 일상화된 이유는 일차적으로 총기 보유율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데서 찾을 수 있다.미국 인구는 약 3억 명이고 이들이 보유한 민간 총기는 총 3억9천300만 정으로, 1인당 1.2정을 보유한 셈이다. 세계 인구의 4%인 미국인이 세계 민간 총기의 42%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지속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경찰관의 비무장 흑인들에 대한 총격 사고도 흑인에 대한 경찰의 편향된 조직문화에 크게 기인하지만, 결국은 누구나 총기를 소지하고 있을 가능성으로 인한 경찰의 과잉 대응이 빚어낸 결과일 것이다.미국의 높은 총기 보유율 배경에는 수정헌법 2조와 NRA(National Rifle Association'전미총기협회)가 있다.시민이 총기를 보유하고 소지할 권리를 명시한 200년 이상 유지된 수정헌법 2조는 연방정부의 권한을 제한하는 목적으로 탄생했지만, 그 당시 국가가 개인을 온전히 보호해 줄 수 없는 상황에서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광활한 땅을 개척해야 했던 미국에서는 총기 보유는 자신은 물론 가족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권리로 간주됐고, 수정헌법 2조가 이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으로 인식되었다.NRA는 1871년에 설립해 현재 500만 회원을 보유하고 엄청난 예산을 활용해 정치인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며 총기규제 법안 반대를 위한 로비에 집중하고 있다. 정치인과 NRA 사이의 이해 사슬은 총기로 인한 사망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음에도 보다 엄격한 총기 규제를 위한 노력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이뿐만 아니라 NRA는 '총기 보유'를 마치 자신의 가족과 재산을 지키고, 불의에 항거하는 책임감 있는 시민 등 긍정적 이미지로 전환해 미국의 풀뿌리 총기문화를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이 문화는 특히 보수 성향을 가진 유권자 집단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게 했다. 따라서 정치인들도 이들의 표를 의식하여 총기 규제에 쉽게 동의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이런 이유로 미국에서는 총기의 구입, 판매 및 보유에 대해 매우 관대한 법규를 가지고 있으며, 이마저도 많은 허점을 지니고 있다. 그 결과 집단 총격 사건에 사용된 대용량 탄창과 이를 장착할 수 있는 군사용 자동 및 반자동 살상무기도 쉽게 구입할 수 있다.뉴질랜드는 지난 3월 이슬람교 사원에서 백인 우월주의자에 의해 반자동 소총으로 51명이 사살된 후 총리 주도로 신속하게 엄격한 총기 규제 법안을 제정하였다. 그녀는 총기 규제와 관련해 솔직히 미국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그러나 총기 보유가 뉴질랜드에서는 특권이지만 미국에서는 권리라는 차이가 있다. 권리는 특권보다 제한하기 훨씬 어렵다.지난 8월 연이어 발생한 텍사스주 엘파소와 오하이오주 데이튼에서의 집단 총격 사건이 발생한 뒤 75% 이상의 미국인이 총기 구매자의 신원조회 확대 등 보다 엄격한 총기 규제 법안의 제정에 찬성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이번에도 과거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 될지, 아니면 미국의 수정헌법 2조, NRA의 규제 반대 노력 및 뿌리 깊은 총기 문화의 한계를 극복하고 최소한의 의미 있는 총기 규제 법안이라도 제정될 수 있을지 지켜볼 뿐이다.

2019-11-11 11:26:14

이상길 대구시 행정부시장

[기고] 스토리가 있는 문화도시, 대구  

오늘날 세계의 주요 도시는 도시 이미지 자체를 하나의 브랜드로 활용하고 있다. 도시만의 고유하고도 특별한 이야기를 활용해서 문화상품을 만들고 도시의 이미지와 브랜드를 창조한다. 스토리는 무형의 창조적 콘텐츠로서 보다 활발하고 매력적인 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우리 대구에서는 민족시인 이상화를 비롯해 한국 근대 문화예술사에 큰 업적을 남긴 인물들의 이야기가 근대골목이라는 관광 콘텐츠, 그리고 스토리를 입은 공연 콘텐츠로 재탄생해 수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여기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시인 이상화와 이장희가 문학을 이야기하고, 작곡가 박태준·박태원 형제가 음악 이야기로 꽃을 피우던 근대골목, 그 길을 뒤이어 걸어간 음악가들이 있었다. 그들은 6·25 피란 시절을 전후로 전국에서 모인 예술인들과 함께 교류하며, 예술로 지역사회를 치유하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남산동에서 향촌동에 이르기까지, 예술계 선배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 걸으며 공연 포스터를 붙이고, 후원금을 모아 음악회를 열었다. 매일 저녁 음악감상실 '녹향'에 모여 예술과 사회에 대해 이야기했다.이들은 음악가를 길러낼 교육기관을 만들었고 교향악 운동과 오페라 운동에 힘썼다. 예술만이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지역사회에 힘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런 예술가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우리 대구에서는 창단 55주년을 맞은 시립교향악단이 활약하고 있고, 매년 가을 국제오페라축제와 월드오케스트라시리즈가 펼쳐지고 있다. 대구시는 이런 저력을 바탕으로 2017년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에 음악 분야로 당당히 가입했다.이에 대구시는 더 늦기 전에 근현대 대구문화예술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수집하기로 했다. 올해 초 문화예술 기관·단체장 및 실무진이 참여하는 '아카이빙 위원회'를 구성했고, 지난 8월에는 문화예술 진흥 조례 개정을 통해 문화예술 자료 보관을 의무화했다. 올해는 유네스코 음악 창의도시 가입 2주년을 기념해 클래식 운동에 힘쓴 음악가들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다. 음악 이론가들의 자료와 생존 원로 음악가들의 증언을 수집해, 지역 방송사와 함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다.내년부터는 순차적으로 문학, 무용, 연극 등 예술 각 분야의 원로 예술가들의 증언과 자료 수집을 통해 새로운 스토리를 발굴할 계획이다. 그들이 남긴 하나하나의 점들을 이어 근대골목 코스의 뒤를 잇는 '문화지도'를 개척할 것이다. 향촌동·북성로 등 구(舊)도심을 중심으로 일제강점기부터 6·25 피란기, 현대에 이르기까지 문화예술의 흔적과 스토리들을 발굴·재조명하여 문화관광·교육 콘텐츠로 활용할 계획이다.이 밖에도 대구시 산하 문화예술 기관·단체들도 꼼꼼히 기록을 점검하고 있다. 대구문화재단이 10년사를 준비하고 있고 대구문화예술회관도 대구시립예술단과 함께한 30년의 흔적을 정리하고 있다.미래 문화도시는 더 이상 특정 건물 혹은 기반시설 건립을 통해 도시의 랜드마크를 만들지 않는다. 도시 고유의 스토리를 간직하고 그것을 랜드마크로 삼아 문화산업으로 발전시킨, 지속가능한 문화도시가 바로 우리 대구시가 지향하는 미래가 될 것이다.

2019-11-11 11:11:05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매일춘추] 현장리서치-창극 패왕별희

'덜컹' 손잡이에 문제가 있었던지 카페에 들어오는 손님마다 철문이 문틀에 부딪히는 소리에 깜짝 놀란다. 주목된 시선이 무안했던지 괜히 문에다가 한마디씩 하며 시선을 회피한다. '패왕별희' 공연을 보기 위해 오랜만에 국립극장을 찾았다. 여유 있게 움직인다는 것이 너무 과해서 2시간이나 일찍 도착해버렸다. 근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낼 셈으로 주변을 꽤 돌아다녔는데 카페 찾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안내소에 물어 찾아간 곳은 들어오는 손님마다 문소리 때문에 주목을 할 수 있는 연극적인 카페였다. '국립극장 근처 카페는 역시 다르구나' 하고 혼자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국립극장은 지하철을 타고 동대입구역에서 내려 오르막을 한참 올라야하는 산중턱에 위치해있다. 그 길은 계절을 잘 맞춰서 가면 꽤 멋진 전경을 누릴 수 있어 참 좋아하는 길이다. 긴 오르막에도 힘들지 않고 콧노래가 나왔던 것은 아마 창극 '패왕별희'에 기대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패왕별희' 라고 하면 장국영이 주연한 영화를 먼저 떠올릴 텐데, 이 영화 제목은 초나라 항우와 한나라 유방의 전쟁이야기인 중국 경극에서 따온 것이다. 이 경극을 한국의 창극으로 만들었다고 하니 어떤 협업에 의한 시너지 냈을지 궁금했다. 대만 배우출신 우싱궈가 연출을 맡았고 작창 및 음악감독은 이자람이 맡았으니 기대는 한층 더 올라갔다.객석은 거의 만석이었고 인터미션 포함, 세 시간이 넘는 공연시간동안 관객들은 꽤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기대를 너무 한 탓인지 나는 꽤 실망스러웠다. 창극과 경극의 장점이 부각되기보다 적당히 서로 양보한 느낌이었다. 경극의 고난의도 동작들은 국립창극단원들의 단기간 연습으로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닐뿐더러 그것을 기대하고 간 것이 아닌데 따라하려고만 노력한 것 같았다. 또 창의 매력적인 가락은 익숙하지 않은 중국의 대서사에 갇혀 헤매고 있었다. 왜 국립창극단이 딱딱한 경극을 창으로 엮을 생각을 했을지 의문이다. 그래도 나를 제외한 관객들의 표정은 밝았던 것 같다. 어떤 장면에는 배우가 창을 끝낼 때마다 박수와 환호가 나와서 관객수준이 확실히 지방에 비해 높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서 수준은 공연을 즐기는 주체의 적극성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최소 수억 원대의 제작비를 써가며 유명 연출가와 유명안무가를 데리고 왔어야했을까? 난 초나라 한나라 이야기보다 차라리 해님 달님 이야기가 더 좋고 요란한 의상과 분장, 동작의 경극보다 차라리 단백한 판소리가 좋다.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2019-11-11 11:10:05

노동일 경희대 교수

[이른 아침에] 오징어잡이 배 선원 추방, 뭔가 이상하다

왜 그렇게 서둘러야 했을까. 좀 더 시간을 갖고 그들의 범죄 혐의와 귀순의사 등을 철저히 확인하는 게 어려운 일이었을까. 지난 2일 해군이 나포한 북한 선원들을 7일 돌려보낸 우리 정부의 처사에 대한 이야기다. 사후에도 여러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정부의 대응이 상식적이지 않기 때문이다.3명의 선원이 16명을 선상에서 살해한 게 사실일까. 공개된 사진의 낡고 좁은 오징어잡이 배 위에서 한 사람씩 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사실이라 해도 범죄 정보는 어떤 경로로 얻은 것인가. 선원들이 자발적으로 범죄행위를 진술했을까. 북한 측이 먼저 정보를 제공하고 송환을 요구한 것인가. 배는 또 왜 그토록 신속히 반환했나. 청와대 관계자의 휴대전화 문자가 카메라에 잡히지 않았다면 공개하지 않으려 했던 건가. 의문점은 많지만 일단 정부의 발표를 믿기로 하자.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이번 사안을 다루는 정부의 태도에는 의구심에 앞선 본질적 문제점들이 허다하다."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헌법 제3조의 이른바 '영토조항'이다. "북한 지역은 우리 대한민국의 영토에 속하므로 북한 국적의 주민은 대한민국의 국적을 취득·유지함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대법원 판례는 따라서 자연스러운 결론이다. 한마디로 북한 주민도 헌법상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지금까지 모든 판례와 정부 정책이 북한 주민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간주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통일부 대변인은 "이들이 살인 등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로 보호 대상이 아니며, 우리 사회 편입 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위협이 되고 흉악 범죄자로서 국제법상 난민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해 정부 부처 협의 결과에 따라 추방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마치 중국 정부가 탈북민 추방을 결정할 때의 발표문을 보는 듯하다. 특히 헌법상 우리 국민으로 간주해야 하는 북한 주민을 '국제법상 난민' 운운하는 부분이 그렇다.'살인 등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로 보호 대상이 아니다'라는 해석 또한 동의하기 어렵다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살인 등 범죄자의 경우 보호 대상자로 결정하지 않을 수 있다. 동 법은 대한민국의 보호를 받으려는 북한 주민이 "신속히 적응·정착하는 데 필요한 보호 및 지원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한다." 흉악범의 경우 우리 정부가 필요한 보호조치를 하지 않을 수 있는 규정일 뿐이다.일단 우리 관할구역에 들어 온 북한 주민을 추방(혹은 송환)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아니다. '추방' 역시 사용해서는 안 되는 용어이다. 북한 주민을 그의 의사에 반해 북한으로 강제 추방할 수는 없다. 추방이 아닌 송환이라 표현해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하지만 헌법상 우리 국민이기 때문이다. 통일부 장관은 국회에서 선원들의 "귀순 의사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선원들이 귀순 의사를 명백히 밝혔다는 말이다. 공개된 문자에 따르면 선원 송환 시 '자해 우려' 때문에 적십자사 요원이 아닌 경찰관이 동행했다고 한다. 그들이 북송에 극렬히 저항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범죄자, 더구나 귀순 시도자에 대한 북한의 처우가 어떤지는 다 아는 바이다. 우리 정부가 '고문당할 위험이 있는 나라로 개인을 추방, 송환, 인도해서는 안 된다'는 유엔 고문방지협약을 위반했다는 국제적 비판이 일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이번 사안은 귀순의사를 밝힌 북한 주민을 강제 송환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중대한 문제이다. 기밀 운운하며 유야무야 넘길 사안이 아니다. 북한 주장에 따라 살인자라는 선입견에서 출발해서는 안 된다. 북한은 중요 탈북자들에 대해 항상 '범죄자'로 규정하곤 한다. 북한 측이 중대 범죄자로 지목하면 송환하는 선례가 될 위험도 있다. 우리의 주권과 법치주의에 입각하여 국민적 동의를 얻어 처리해야 할 사안이다.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통일, 민족 등도 예외가 아니다. 자유와 인권의 보장, 법치주의라는 대한민국의 가치를 버리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2019-11-10 17:34:01

정상환 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기고]올바른 검찰개혁의 방향

최근 야당에서 벌거숭이 임금님을 패러디한 애니메이션을 만들자 여당은 대통령의 품위를 격하시켰다는 이유로 크게 반발하였다. 사실 많은 국민들이 조국 전 법무장관 사태를 지켜보면서 '벌거숭이 임금님' 우화를 떠올렸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벌거숭이 임금과 다른 점은 자신이 앞장서서 조 전 장관이 도덕적으로 아무 문제도 없고 능력 있는 적임자라고 강변했다는 것이다. 어이없게도 그동안 양심적 지식인임을 자처했던 많은 이들이 문 대통령의 주장에 아무런 비판 없이 동조하였다. 국론 분열이라는 치명적 결과만 아니었다면 한 편의 소극을 보는 기분이었다.검사 생활을 오래 했던 필자 역시 검찰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한다. 1999년 심재륜 고검장의 항명 파동 때 서울중앙지검에서 평검사들의 총장 반대 서명운동을 주도한 적이 있고, 모 월간지에 "탈피하지 않는 뱀은 죽는다"는 제목으로 검찰의 인사 관행과 수사 시스템을 비판하는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으로서 수사기관의 인권침해적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많이 노력하였다.그러나 지금 정부의 검찰 개혁은 여러 가지 면에서 부적절하다. 검찰 개혁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 조 전 장관을 검찰 개혁의 상징 내지는 순교자로 만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안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소위 '공수처' 법안은 입법 체계상의 문제뿐만 아니라 그 내용 면에서도 문제가 많다. 수사 대상은 고위 공직자들을 광범위하게 포함하는 반면에 기소 대상은 판사, 검사, 경무관급 이상 경찰관으로 제한하는 기형적 법안인데, 검사를 표적으로 한 입법이라는 것이 명백하다.여권 인사를 수사하는 검사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비근한 예로 '피의사실공표'의 경우 수사 정보가 수사기관에 의해 유출되기보다는 사건 관련자에 의해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이 훨씬 높음에도 불구하고, 공수처는 여권 인사를 한창 수사하고 있는 검사에 대해서 '피의사실공표' 등을 이유로 소환 조사할 가능성이 있다. 여당은 공수처장 임명 절차가 중립적이라고 강변하지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후보추천위원회의 구성원 면면을 보면 결국 대통령이 선호하는 친여 성향의 인사가 지명될 것이 분명하다.필자는 제대로 된 검찰 개혁 방안이라면 적어도 다음 세 가지를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검사 인사권을 대통령으로부터 분리시킴으로써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여야 한다. 인사권의 독립 없이는 정치적 중립은 요원하다.둘째, 검찰권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가령 사회의 주목을 받는 주요 사건이나 당사자의 신청이 있는 경우 피의자, 피해자, 관계인, 변호인 등을 상대로 그 검사가 합법적이고 인권친화적인 수사를 진행하였는지 사후에 평가하는 제도를 도입하여 인사에 반영하여야 한다.셋째, 수사만능주의를 극복하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 정치적으로 민감하거나 정치적 고려에 의해서 발단된 사건에 대해서는 검사가 수사 착수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검찰권을 이용한 국정운영은 이제 종식되어야 한다. 다만, 이를 검사에게만 맡길 경우 자의적 판단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사들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에서 검사의 요청 또는 직권으로 수사 회피 내지는 유보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2019-11-10 15:41:05

종이에 담채, 27.3×40㎝,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심사정(1707~1769) '선유도'

선유(船遊), 곧 뱃놀이는 상당히 고급한 유흥이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 뱃놀이의 흥겨움, 유쾌함의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주인공은 뱃전에 의지해 만경창파를 무심히 응시하고, 마주 앉은 주인공의 친구 역시 먼 물결을 망연히 바라 볼 뿐이다. 배는 소용돌이치는 물결 한 가운데 있어 금방이라도 뒤집힐 것 같이 위태로워 보이는데 사공만 온 몸을 기울여 삿대질 하며 풍랑을 헤쳐가고 있다.이 배는 유람용이 아니라 침실과 서재가 있는 주거용을 그린 것 같다. 당나라 때 범택(泛宅), 부가(浮家)라는 말이 있었다. 물에 띄운 집, 물에 떠 있는 집은 곧 배이다. 영어로는 '하우스보트', 순 우리말로는 '집배'가 된다. 배를 집으로 삼는 주거(舟居)는 한편으로는 자유를 누리는 생활이다. 중국은 북마남선(北馬南船)이라고 하듯 강남은 운하와 수로가 길처럼 연결되어 배로 어디든 갈 수 있다. 일엽편주를 나의 집으로 삼아 떠다니며 인간 세상에서 벗어난 삶을 살고 싶다는 선망이 범택부가라는 말에 담겨있다. '선유도'의 배는 세상에서 자유롭고 싶은 심사정의 심정을, 배를 둘러싼 파도는 세상살이의 세파(世波)를 의미하는 듯하다.주거(舟居)가 주는 자유와 함께 꼭 필요한 것이 가끔 마주할 친구와 다소의 물건이다. 책상이 있고, 책상 위에는 청색 책갑에 든 책과 꽃이 꽂혀 있는 꽃병, 벼루로 보이는 물건이 있다. 그 옆의 고목 분재(매화가 아닐까)에는 반려 학(鶴)이 한 마리 앉아 있다. 정수리가 붉은 단정학(丹頂鶴)이다. 이 정도면 만족스러운 주거(舟居) 일 것 같다.심사정은 증조부 심지원이 효종시대에 영의정을 지냈고, 조부의 형 심익현이 효종의 부마로 왕실 외척이었던 명문대가였으나 조부가 역모사건에 가담해 극형에 처해져 집안이 완전히 몰락했다. 평생 동안 그림에만 전념할 수밖에 없었고 생계를 위해서도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50여 년간 우환이 있거나 즐겁거나 하루도 붓을 쥐지 않은 날이 없었다. 몸이 불편해 보기가 딱할 때도 물감을 다루며 궁핍하고 천대받는 쓰라림이나 모욕을 받는 부끄러움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현재거사묘지명」)고 할 정도로 화가의 일생을 살았다.'선유도'는 심사정이 평생의 화업(畵業) 속에서 이룬 부드러운 먹선의 격조 있는 묘사와 은은한 담채의 무르익은 솜씨를 잘 보여주는 아름답고도 쓸쓸한 그림이다. "갑신신추 사(甲申新秋寫) 현재(玄齋)"로 날짜와 호를 쓰고 앞쪽에는 연주인(聯珠印) '현재'를 찍었고, 말미에는 '심씨(沈氏)', '이숙(頤叔)'으로 성씨와 자를 새긴 인장을 찍었다. 부친 손세기(1903-1983) 선생을 이어 이 그림을 소장했던 손창근(1929년 생) 선생이 2018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명품들 중 한 점이다. 미술사 연구자

2019-11-10 06:30:00

채명 무용평론가

[매일춘추] 청년예술가에게 배우자!

몇 주 전 대구의 한 거리에서 열린 '거리춤 페스타'에서 젊은 친구들의 춤 경연 방식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청년들이 이미 예전부터 해오던 거리춤 축전이 어른들에게는 관심 밖의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축제 주최 단체에 인사차 들른 중장년들이 젊은이들의 춤 경연방식에 감동 받아, 다른 일정을 취소하고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즉석 찬조를 하기도 했다.무엇이 이들의 발목을 잡고, 앉는 자리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불편한 춤판을 지키게 했을까? 대부분 관객들의 공통된 감정이 공유되었다. 첫째, 청년 심사원들은 공정했다. 예선전에선 빠른 진행을 위해 오픈되지 않았지만, 참가자 중 반을 뽑은 후, 본선 16강 선출부터는 모든 심사결과가 관객 앞에서 바로 3초 만에 결론이 났다. 관객의 반응도 심사에 고려되는 듯이 보였다. 스트릿 댄서들이 뛰어난 즉흥적 춤 솜씨를 보일 때, 관객들은 함께 흥분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기본 방식은 1대 1 배틀이었다. 모든 순서와 대결자 선택은 그 자리서 추첨으로 이루어졌고, 1분간씩 자신의 춤 기술을 즉석에서 주어진 음악에 맞춰 선보였다. 어떤 음악에 어떤 대결자들이 붙는가도 관심거리였다. 그리고 의상을 유난하게 갖춰 입은 춤꾼들, 추리닝 입은 이들, 뚱뚱한 친구, 몸매가 좋은 친구 등 그러한 부대적인 조건이 심사에 상관이 없는 듯 보였다. 오로지 춤 실력이었다.둘째, 춤꾼들은 자유로움 속에 최선을 다한 후 결과에 승복했다. 그들은 춤추는 동안 자신의 기량을 뽐내며 서로 약간의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세 명 심사원들이 손을 들어 위너를 가려내면, 춤꾼들은 쿨하게 예의를 다해 서로 격려한 뒤 물러났다. 그 모습도 감동적이었다. 심사원들은 경연이 끝난 후 초청공연자로서 바로 무대에 올라, 신화적 존재감으로 참가자와 관객들에게 감동의 피날레를 선사했다.현실 사회도 이리 공정할 수는 없는 걸까? 뒤에서 어른들이 경연을 좌지우지 하여 젊은 예술가들이 얼마나 많이 상처를 입었던가? 아직도 예술경연장에서 어른들의 입김이 완전히 배제되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공정한 심사는 경연이 끝난 후 그 자리서 오픈되는 방식이 되어야함을 청년예술가들로부터 배운다.행사 후 감동의 흥분에서 벗어나지 못한 어른들이 자신의 노하우로 더 좋은 방안을 가르쳐 보겠다고 젊은 친구들을 붙잡고 열심히 얘기하는 분들이 있었다. 뒤에서 또 다른 어른이 낮은 목소리로 얘기한다. "저러면 안 되지, 젊은 세대들에게 배울 생각을 해야지, 저러니 구리다는 소릴 듣지." 기성세대는 아직도 젊은이들을 염려한다. 자, 이제 꼰대들은 입을 닫고 청년 세대를 위하여 주머니를 풀 때다. 채명 무용평론가

2019-11-10 06:30:00

이종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이종문의 한시산책] 심부름꾼에게 묻다(문래사, 問來使) - 도연명

그대 산속에서 여기 왔으니 / 爾從山中來(이종산중래)얼마 전 천목산을 출발했겠군 / 早晩發天目(조만발천목)우리 집은 남쪽 산 아래 있는데 / 我屋南山下(아옥남산하) 지금쯤 몇 떨기의 국화가 폈나 / 今生幾叢菊(금생기총국) 이미 장미 잎은 떨어졌겠고 / 薔薇葉已抽(장미엽이추) 틀림없이 가을 난초 향기롭겠군 / 秋蘭氣當馥(추란기당복) 돌아가 산속으로 찾아가 보면 / 歸去來山中(귀거래산중) 산속에는 술이 응당 익고 있겠지 / 山中酒應熟(산중주응숙)이 시의 작자가 도연명(陶淵明, 365-427?)이 아니라는 설도 있다. 하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술술 넘어가는 시풍을 보면, 아닌 게 아니지 싶기도 하다.먹고 살기 위해 잠시 체질에도 맞지 않은 벼슬살이를 하기도 했지만, 도연명은 체질적으로 전원에 맞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벼슬에 몸이 꽁꽁 묶여 있어도, 마음은 언제나 고향의 전원으로 달려가고 있었다.위의 작품은 고향에서 온 심부름꾼에게 고향 소식을 묻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실은 고향에 대한 아름다운 상상으로 가득 차 있다.'남산 아래 있는 우리 집에는 지금쯤 국화가 옹기종기 피어 있을 게다. 게다가 가을 난초가 제철을 만나, 향기를 내뿜고 있을 터다. 어디 그 뿐인가. 좋은 술이 한창 익어가고 있을 테니, 가을난초 향기를 맡으면서 막걸리에 국화꽃을 띄워 마시면, 커- 취한다, 이렇게 좋을 수가. 하지만 착각하지 마라. 나는 지금 먹고 살기 위해 벼슬에 꽁꽁 묶여 있다, 흑흑!'"신매동 살고 있는 참 어여쁜 시인님이 / 지하철 2호선을 스무 정거장 타고 와서 / 칼국수 먹고 가라네, 아 그것도 손칼국수! // 야호! 하고 외치며 뜀박질을 했다마는 /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근무이탈 할 수가 없어 / 배달 좀 해 달라 했네, 스무 고개 넘어 와서 // 아 글쎄, 그랬더니, 아 그렇겐 못한다며, / 정말로 먹고 싶으면 사표 쓰고 오라고 하네 / 에라이 사표를 쓰자, 작심했다.... 참는, 봄날!"변변찮은 나의 시 '봄날'이다. 봄이 오면 나도 퇴직을 하게 되니, 마음 탁 놓고 칼국수를 먹으러 달려가도 될 게다, 야호, 야호!

2019-11-09 06:30:00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광장]대구 인류의 원류를 찾아

2006년 달서구 월성동 777-2번지 아파트 부지 일대에서 1만3천 184점에 이르는 다량의 후기 구석기시대 유물의 발굴은 대구지역 인류 역사를 신석기시대에서 구석기시대로 앞당겨주었다.월성동 구석기 유물 발굴 중 특이한 점은 구석기 제작지의 존재였다. 이곳에서는 석기 제작의 원석인 몸돌, 몸돌을 가공하는 데 사용했던 망치돌, 몸돌로부터 떼어 낸 격지(몸돌에서 산출된 가공 돌), 긁개, 새기개, 찌르개, 흑요석 등 다양하고도 많은 석기들이 발굴됐다. 그리고 받침돌(臺石)을 비롯해 모룻돌도 함께 출토되었다. 특히 화산분출 때 형성되는 유리질 화산암인 흑요석은 최근 구성광물 분석결과 백두산 기원으로 밝혀져 대구 최초 인류 기원지를 추정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동 중에 다른 지역 구석기 인류와의 물물교환으로 흑요석을 구할 수도 있었겠지만, 장소 관련성을 입증하는 데 있어 흑요석은 가장 중요한 과학적 수단이다.후기 구석기시대로 입증된 달서구 월성동 유적과 유물은 약 2만여 년 전의 것으로, 2만 년 전 보다 훨씬 이전에 백두산 일대를 출발하여 대구로 구석기인류가 이주해왔다고 볼 수 있다.그런데 백두산 일대에서 살다가 이동해 온 대구 최초 인류는 또 다른 외부 이주 세력과의 혼혈로 인해 현재의 우리가 존재하는 것으로 판단된다.2017년 언론에 공개된 신석기시대 인류의 유전체(게놈) 비교분석 관련 연구에 의하면 한민족의 기원이 알타이산맥에서 몽골, 중국 대륙을 거쳐 한반도로 이동했다는 기존의 북방계설(언어, 외모 등 유사성) 보다 오히려 동남아시아에서 올라 온 남방계설에 무게가 더 실리는 과학적 증거가 드러났다. 즉, 우리 민족의 유전체는 고립된 현대 베트남, 타이완 원주민 유전체를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북동쪽 프리모레 지방에서 발굴된 신석기시대 인류 두개골 유전체에 결합시켰을 때 가장 유사한 것으로 밝혀졌다.특히 고구려, 동부여, 옥저 영토였던 프리모레 지방의 동굴(악마의 문 동굴, Devil's Gate Cave)에서 발굴된 약 7천 700년 전 신석기시대의 40대 여성, 20대 여성 유골에서 채취한 유전체 분석에서 드러난 연구결과는 매우 흥미롭다. 현재의 한국인과 같은 갈색의 눈, 앞니가 삽처럼 생긴 수렵채취인으로 밝혀졌다. 또한 우유를 소화하지 못하는 유전변이, 고혈압에 약한 유전자, 몸 냄새가 적게 나는 유전자, 마른 귓밥 등의 유전자 특성이 현대 동아시아 유전체 특성과 유사하다고 한다.'악마의 문 동굴'에서 발굴된 유전체는 주변에 거주하는 울치족을 제외하면 한국인과 가장 비슷하다. 모계로만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 유전체도 한국인의 특성과 일치해 모계가 동일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리하면, 한민족은 남방계와 북방계의 혼혈이며, 유전체 특성에서 볼 때 남방계 농경민의 특성이 강하게 나타난다.한민족 기원과 관련한 지금까지의 연구결과와 월성동에서 발굴된 구석기시대 유물과 유적을 고려해 볼 때, 대구 최초의 인류는 빙하기의 추운 날씨를 피해 백두산 일대로부터 이주해온 구석기 인류가 대구 최초의 토착민이었다. 한편 고조선 원조 인류는 3〜4만 년 전과 약 1만 년 전 동남아시아에서 극동으로 각각 이주해간 수렵채취인들과 농경인들 간 혼혈로 등장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고조선의 멸망으로 남하하던 유민들이 대구 최초 토착민과 혼혈로 현재의 우리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면 될 거 같다. 현재 달서구 진천동 상화로 변에 설치되어 있는 '대구 2만년 역사가 잠든 곳' 조형물(길이 20m, 높이 6m)은 이곳이 대구 최초의 인류 거주지였음을 알게 해준다.

2019-11-09 06:30:00

장창수 작 '위로'

[내가 읽은 책]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김혜남‧박종석, 포르체, 2019

'안녕, 나의 우울아.'저자는 이 책의 프롤로그를 이렇게 열었다. 서문의 제목이 이렇게 해맑을 수가. 세계보건기구는 인류를 괴롭히는 무서운 질병 중 네 번째가 우울증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안부를 묻듯 가볍게 툭 던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음의 독감이라는 우울증. 그것은 동굴이 아니라 터널이라고 조언한다(9쪽). 그 끝에는 밝은 빛이 기다리고 있다고. 그렇다. 그게 뭐든 동굴이 아니고 터널이라면 끝내는 지나갈 수 있는 거니까.근래에는 심리상담과 심리치료의 경계가 모호해졌다(권석만, '이상심리학총론', 2016). 이럴 때 전문가가 주는 깊이 있는 통찰은 마치 공부를 하기 전 책상 정리를 하는 듯한 개운함을 준다. 저자 김혜남은 국립정신병원에서 12년 동안 정신분석 전문의로 일했고, 베스트셀러인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를 쓰기도 했다. 공저자인 박종석은 서울대학교 정신건강센터 전문의를 거쳐 현재 연세봄건강의학과 원장으로 있다.이 책은 올해 9월에 나왔고, 10월에는 태풍 '미탁'이 우리나라를 지나갔다. 그때 서평의 필자는 안동의 숙소에서 쓸쓸히 이 책을 읽었는데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던 인간의 내면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당시 안동은 국제탈춤페스티벌 중이었다. 나는 '수고했어 오늘도'라는 문구가 쓰인 종이컵에 축제의 흥겨움과 요란함을 부어 마시고는 개인의 불안감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던 것이다.우울증, 조울증, 공황장애, 번아웃증후군, 만성피로증후군, 허언증, 강박증, 불안장애 등 거의 대부분의 증상들이 소개된다. 각 증세들마다 '입사 5년 차 직장인 진영 씨' 등의 구체적인 캐릭터를 내세우고 그들이 겪는 에피소드를 들어 설명한다.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도록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조증, 우울증의 자기 진단을 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체크리스트도 제시해 놓았다. 자기를 점검하는 데 요긴하다.파트가 끝날 때마다 '일요일 오후 1시'라는 대화 코너를 선보인다. 질문과 답변을 통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저자가 겪었던 마음의 상처 이야기를 이토록 진솔하게 털어놓는 심리학 서적은 본 적이 없다. 저자 박종석은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20년 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중학교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대구에 사는 친구의 도움으로 함께 기거하며 삶의 의욕을 회복했다고 털어놓는다."친구의 가벼운 위로, 지나가는 사람의 작은 친절도 삶의 숨구멍을 틔워주는 소중한 물꼬가 될 수 있고, 그것이 희망이 되어 바닥에서 다시 올라올 수 있구나(47쪽)."누군가의 작은 관심이 큰 희망이 된다는 것이다. 시나브로 터널의 한가운데로 들어와 버렸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내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용기를 내 반대쪽 출구로 걸어가 보자. 필경 거기에 빛이 있을 것이고 누군가가 맞아 줄 테니까. 이 글을 쓰고 있을 때 옆방에서 근무하던 K 선생님이 벌컥 방문을 열었다. 우리는 웃으며 인사했고 차 한 잔을 나누었다. 그러고는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타인의 작은 배려가 큰 힘이 되었다면 가끔은 다른 이에게 돌려주는 것도 좋으리라. 이타심은 남을 돕기도 하지만 그 전에 자신을 돕는다. 이 가을, 모두들 괜찮은지 물어보는 책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를 읽어 보자. 덧붙여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도 좋겠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의 '파인딩 포레스터'(2000)다.장창수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2019-11-09 03:30:00

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춘추칼럼] 언어의 힘

인터넷 헐뜯고 비방하는 언어 난무서로 칭찬'격려는 찾아보기 힘들어지구 지키는 생태운동가 마음으로나의 언어와 우리의 언어를 바꾸자주문한 시집이 도착했다. 시인을 알지만, 잘 모른다. 그와 알고 지낸 시간이나 함께 나눈 대화는 내 삶의 다른 시간에 비하면 턱없이 짧다. 하지만 이제 함께 보낸 시간의 길이가 앎의 정도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정도는 알게 되었다. 내가 아는 시인은 퉁명스럽지만 따뜻하고, 거칠지만 정교하다. 그는 막연한 낙관이나 섣부른 희망을 노래하지 않는다. 그래서 현실과 타협하지 않으며, 현실을 외면하지도 않는다. 그의 힘은 현실을 직시하는 데서 온다. 그것은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보는 관조와는 다르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의 흐름에 자신의 몸을 담그는 방식이다.시인은, 당연하게도,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자신의 몸으로 그 고통과 절망의 시간을 견디는 데서 시를 쓴다. 그의 시는 현실을 이야기하지만 단순한 묘사나 고발에 그치지 않는다. 정확한 현실 인식 너머를 생각한다. 개인과 사회, 개인과 공동체, 개인과 구조 등의 관계에서 중심을 잃지 않는 비결을 제공한다. 그것은 어쩌면 어릴 적 고향의 강가에서 하염없이 바라보던 강물에서 시작되었고 완성되었다. "어린 내가 서러우면 강둑에 앉아 흐르는 물을 넋 놓고 바라보곤 했다."(황규관, '강물' 중)흘러가는 강물은 시작과 끝에 주목하지 않는다. 지금 현재를 충실하게 주목하고, 반응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조바심이 아니라 기다림을 배우는 일이다. 멀리서 정류장으로 차가 들어오면 먼저 타려고 뛰어간다. 차를 놓치면 안 된다는 아우성이 넘치는 시대에 이번 차를, 다음 차를, 다음다음 차를 그냥 보낼 수 있는 힘을 키우는 일이다. 그것을 배우는 것도, 가르치는 것도 사라지고 말았다."…이번 차는 모른 척 보내고/ 우두커니 혼자가 되자/ 혼자가 되어/ 멀리서 내리는 빗소리를 듣자// 다음 차도 보내고/ 다음다음 차도 보내고/ 저물녘에 우는 늙은 새울음도 보내고/ 슬픔에 사로잡힌 영혼도 보내고…."('이번 차는 그냥 보내자' 중)시인의 힘은 그의 언어에서 나온다. 그는 부드럽고 유려한 문체가 아니라 적확하고 명료한 언어의 힘을 지향한다. 그의 언어는 어떤 사상이나 개념이나 집단에 정박하지 않고 흘러갈 따름이다. 언어가 힘을 잃어버린 시대에 그의 언어에서 그 힘을 발견한다. 균형을 잡고 판단을 가늠하는 기준을 세워주었던 '법의 언어'가 사라졌고, 현실과 사실을 가장 정확하고 날카롭게 전달했던 언론의 언어가 실종되었다. 아이들의 언어는 가장 빠르게 오염되고 있으며, 어른들은 더 이상 자신의 언어를 갖지 못하고 있다. 광화문 광장에서, 카톡 단톡방에서 서로 헐뜯고 비방하고 죽이는 언어들이 난무한다. 서로 칭찬하고 격려하고 살리는 언어는 찾아보기 힘들다. 언어가 사라지고 죽어가는 시대에 우리의 언어는 어떠해야 하고 어떤 언어를 지향해야 하는 걸까."가장 큰 언어는 들을 수 없는 언어다./ …가장 깊은 언어는 그 기원을/ 모른다…/ 가장 오래된 언어는 그 최종 지점도/ 없다…// 오늘의 언어가/ 과거의 언어가 아니듯/ 우리의 언어가 어제의 비명이었고/ 싸움이었고 사랑이었듯/ 반달을 바라보는 골목길이었듯/ …/ 국가의 언어 말고/ 탐욕의 언어 말고/ 나의 언어를 나의 너/ 의 언어를// 원통하게 죽어간 이의 언어를/ 언제나 버려졌던 어머니의 언어를/ 어깨가 떨리는 언어를/ 바람결에 반짝이는 언어를…"('가장 큰 언어' 중)이 시대에 여전히 '언어'를 붙들고 있는 이들을 주목하자. 시인, 소설가, 비평가, 에세이스트 등 다양한 형태의 작가들은 어쩌면 지구를 지키는 생태운동가들과 다르지 않다. 그들이 살아남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이라도 언어를 붙들고 씨름하자. 그것은 나의 언어를 바꾸는 일이고, 우리의 언어를 바꾸는 일이고, 직장의 언어를 바꾸는 일이고, 공공의 언어를 바꾸는 일이다.  가을이 깊어간다. 겨울의 문턱이다. 시집 한 권 읽자, 시집 한 권 사자. 나의 언어, 우리의 언어를 위해.

2019-11-07 12:03:03

김용하 한국수목원관리원이사장

[기고] 갑질 식물 칡넝쿨에서 답을 찾다.

올해도 더위에 지쳐가던 7월 말 즈음 아내가 내민 얼음 몇 알 띄운 칡즙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더위와 갈증을 한 번에 삭여준 고마운 칡즙을 다 마셔갈 때쯤 문득 칡에 대한 일반적인 우리의 인식은 어떨지 생각해 봤다.칡은 조선 중기부터 뿌리의 녹말인 갈분을 이용해 구황작물로 이용됐고, 줄기의 껍질은 견, 면 등 이전의 직물인 갈포의 원료로 사용했다. 이젠 농업생산성 향상으로 구황작물에서 벗어나 건강식품으로 애용된다. 간에 좋으며 피로를 푸는데 효율적이고 갱년기 증상을 개선하는 에스트로겐 성분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안정시키는 이소플라본 성분이 포함되어 있으니 최고의 건강식품이다.그런데 갑질 식물이라니? 구황작물로 허기를 달래고, 옷의 재료가 되는 천을 만들어줬던, 우리 몸을 지켜주고 병을 치유해 주던 고마운 칡은 생각보다 다른 식물에 대한 횡포가 심한 식물이다.칡이라는 놈은 덩굴성 목본식물로 추위에도 강하고 염분이 많은 바닷가에서도 잘 자라는 기초 체력을 바탕으로 줄기를 20m까지 길게 뻗어가면서 주위의 다른 나무나 물체를 감아 올라간다. 생명력이 워낙 강해 주변의 다른 식물들을 덮어서 햇빛을 가리는 탓에 칡넝쿨이 우거진 곳은 금방 황폐화되기 십상이다.쓰임새가 많은 식물임에도 토지 장악력이 어마어마해서 제때 손쓰지 않으면 땅 자체를 포기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억센 녀석이다. 환경부에서 생태계교란종으로 지정·고시 중인 가시박이나 환삼덩굴 같은 식물에 비하면 우리에게 고마운 식물이긴 하지만, 자생식물 중에서도 이런 갑질 식물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갑질 횡포가 심한 것이 칡이다.무분별한 칡 확산 우려는 국내뿐만 아니다. 미국도 산의 사면 안정을 위해 칡을 도입했으나 초기에만 그 효과를 미미하게 보았고, 칡의 무궁한 생명력에 참패해 사람과 돈을 써가면서 전문적으로 제거작업을 하고 있다. 이쯤되면 칡은 '글로벌 갑질 식물'로 분류해도 무방하겠다.현 정부는 갑질을 '사회·경제적 관계에서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 권한을 남용하거나, 우월적 지위에서 비롯된 사실상의 영향력을 행사해 상대방에게 행하는 부당한 요구나 처우를 의미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쉽게 말해서 내 이익과 편의를 위해 다른 사람, 특히 약자라고 판단되는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언행 모두 갑질로 볼 수 있다.칡과 갑질을 연관시켜보면 갑질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정부 주도로 갑질에 대한 종합대책이 수립되고 공공분야로부터 시작한 갑질 근절 의지가 점차 민간으로 확산 중인 이 시점은 곧 일부 지자체에서 시행하고 있는 '칡넝쿨 제거 5개년 계획'과 같이 무지막지한 칡넝쿨 확산에 대한 종합계획을 수립해 실시하는 좋은 예라 할 것이고, 또 다른 지자체에서 매년 실시하고 있는 칡 수매를 통한 '칡넝쿨 비료화 사업'은 갑질 예방과 사후대책을 통한 올바른 조직문화 정착과 그 맥을 같이 하는 좋은 예라고 할 것이다.계획을 수립하고 환류체계를 구축하는 제도적 장치는 마련이 된 셈이니 이제 남은 것은 칡을 뿌리째 거두어 매각할 일과 비료로 만드는 수고만 남았다. 이런 수고에는 우리 사회의 모든 조직과 그 구성원들의 바른 인식과 노력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나 자신부터 '나'와 '너'의 다름을 인정하고 '우리'라는 문화를 '함께' 만들어 갈 때 우리 사회는 더 이상 갑질이라는 말을 쓰지 않아도 되는 아름다운 사회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뿌리와 줄기를 퍼트려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고 이기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는 갑질, 이제는 과감하게 뿌리 뽑아야 할 것이다.김용하 한국수목원관리원장

2019-11-07 11:4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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