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취재현장] SRF 소각장 법정 싸움… 예단은 그만

[취재현장] SRF 소각장 법정 싸움… 예단은 그만

행정심판에 이은 행정소송, 손해배상 청구, 항소….경북 김천시 대신동에 고형폐기물(SRF) 소각장을 건립하려는 A사와 김천시, 반대 시민단체 간의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일부 지역 언론마저 혼란을 부추겨 눈총을 받고 있다.김천시는 지난해 11월 14일 개정된 도시계획 조례 규정을 적용해 같은 해 12월 31일 A사의 SRF를 사용하는 자원순환 관련 시설의 설계 변경에 따른 건축허가 신청에 대해 불허 처분을 내렸다.이에 반발한 A사는 '건축 변경허가 신청거부 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8월 19일 열린 대구지방법원 1심 판결에서 승소했다.김천시는 이달 3일 항소했다. 항소를 맡은 변호사는 서울의 대형 로펌이다. A사가 국내 굴지의 로펌에 소송을 맡겨 1심에서 유리한 판결을 끌어낸 것을 염두에 두고 상당한 예산을 들여가며 대형 로펌과 계약했다는 후문이다.행정소송에서 승소한 A사는 김천시와 반대 주민 등을 상대로 30억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제기했다. A사는 "김천시의 위법한 행정 처분에 따른 사업 지연으로 발생하는 손실이 막대해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고 주장했다.또 반대 주민 2명에 대해선 "지난해부터 지속해서 여론을 호도하고 업무방해 행위를 이어와 소송 제기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사실상 반대 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시민단체 관계자에 대한 압박에 들어간 셈이다. 더불어 시민단체 관계자들에 대한 회유 작업도 병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SRF 소각장 반대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시민단체 관계자 B씨는 SNS를 통해 "(지역 언론사 관계자가) 민사소송을 이유로 업체와 만나 협상하라고 제 주변 인물들에게 접촉하기도 한다"고 폭로했다.그는 또 "대책위의 중요한 실무자를 사업자 측 직원과 함께 방문해 민사소송을 제기하겠다는 협박으로 스스로 대책위를 그만두게 하지 않았냐?"며 "언론으로서 양심이 있다면 당장 멈추기를 바란다"고 주장했다.실제로 김천의 일부 언론은 김천시가 1심에서 패소한 뒤 "김천시가 승소할 확률이 없는 상황에서 항소하게 된다면 손해배상에 따른 재정 부담은 고스란히 시민 혈세로 감당해야 하므로 철저한 법률 검토 및 신중한 대응이 요구된다"고 보도했다. 마치 항소해도 다시 패소할 것으로 예단하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이런 지역 언론사 주장과 달리 행정소송의 항소 여부에 대해 법률 검토를 마친 검찰은 김천시에 항소할 것을 지휘했다. 지역 언론이 2심 패소를 단정하고, 손해배상을 시민 혈세로 감당해야 한다며 갈등을 부추기는 것과는 다소 다른 결정이다.더 중요한 것은 현재 A사와 김천시가 벌이는 법적 다툼은 아직 본선이 시작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지금은 건축 변경허가 신청 거부와 관련해 공방을 벌이고 있지만, 소송이 끝난다고 바로 SRF 소각장이 운영되는 것은 아니다. A사의 SRF 소각시설에 대한 김천시 자원순환과와 환경부의 사용 인허가가 남아 있다.하루 360t의 고형폐기물을 태울 예정인 소각시설 건립 예정지는 김천시청과 직선으로 2㎞ 정도 떨어져 있다. 반경 1.2㎞ 안에 초·중·고교와 아파트 단지 등이 밀집해 있어 향후 환경에 미치는 영향 분석, 환경오염 사고 예방 및 대책 등과 허가 서류의 적법성 여부 검토 등에서 최종적으로 어떤 결론이 나올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2020-09-29 15:59:30

[매일춘추] 회색예찬(II) - 이덕형 경북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매일춘추] 회색예찬(II) - 이덕형 경북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이듬해 10월 3일 동독은 서독에 흡수되었고, 독일은 통일되었다. 뒤이어 동구권과 소련까지 도미노처럼 무너지자 '역사의 종언'이 인구에 회자되었다. 자본주의의 최종 승리로 역사는 종언을 고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사회주의 국가의 종말이 좌파적 이념의 용도 폐기는 아니었다. 자본주의 체제는 부단히 진화·발전하고 있고, 좌파적 지평이 균형추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2018년 칼 마르크스의 고향 트리어에서 필자는 그 점을 느꼈다. 마침 그의 탄생 200주년이었는데, 마르크스에 의거 자본주의 보완책을 모색하는 논의가 수도 없이 열리고 있었다.독일 정치의 중도지향성은 정평이 나 있다. 이는 독일을 특징짓는 '사회국가'나 '사회적 시장경제'에 잘 나타난다. 여기서 '사회'나 '사회적'이란 사회주의와 무관하다. 좌파 사민당(SPD)은 이미 1959년 '바트 고데스베르크 강령'에서 노동계급 정당이 아닌 국민정당임을 천명했고, 우파 기민/기사련(CDU/CSU)도 '사회적 시장경제'로 중도확장을 도모한다. '사회적 시장경제'란 시장을 방임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이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국가가 제도적 장치를 마련"(김종인, '마이스터의 나라 독일')한다는 의미다. 2004년 사민당 슈뢰더 정권의 '어젠다 2010' 역시 중도지향성의 좋은 예이다. 통일 후유증으로 독일이 '유럽의 병자'로 전락하자 사민당은 지지기반인 노조의 반대에도 노동시장 유연화와 사회복지 축소 등 우파적인 '어젠다 2010'을 실행한다. 결국 국가는 살았고, 당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이보다 더 큰 정치가 있을까?대체로 보수·우파는 변화를 싫어한다. 영어 '라이트(right)'나 독일어 '레히트(recht)' 모두 '우파'와 '옳다'는 의미를 동시에 가진다. 스스로 옳으니 변할 까닭이 없다. 그러나 이제 그런 태도는 시대착오다. 지금 누가 오른손잡이는 옳고 왼손잡이는 그르다고 하겠는가. 오른쪽과 왼쪽은 서로 보완관계지 적대관계가 아니다. 우리 사회 얼치기 좌파의 창궐은 근원적으로는 일부 잘못된 우파 기득권층의 책임이 크다고 본다. '유전무죄'니 '무전유죄'니 하는 부조리의 극치를 이루는 상황에 무방비상태로 내몰린 서민들의 절망감을 그들은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깊이 헤아려본 적이 있을까. 보수우파로 자처하는 이들의 '코페르니쿠스적인' 인식의 대전환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이유다. 일부 이성을 잃은 듯한 극렬파로 인해 자칫 자유 대한민국마저 위태로울 것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회색은 검은색과 흰색 모두를 아우르는 다양성을 가진 중도색이다. 검은색 쪽이 짙을수록 진회색, 흰색 쪽이 짙을수록 연회색이다. 검은색은 흰색 쪽으로, 흰색은 검은색 쪽을 향하지만 둘이 똑같지는 않다. 바로 '화이부동'이다. 이제 우리 정치지형도도 자기 색깔을 견지하면서 중도의 회색지대로 수렴했으면 좋겠다. 물론 도깨비 같은 괴상한 이름의 집단이나 위선에 찌든 강남좌파는 빼고….

2020-09-29 14:12:54

[경제칼럼]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건설을 위한 정치적 과제

[경제칼럼]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건설을 위한 정치적 과제

국방부 군공항 이전부지 선정위원회는 지난 8월 28일 의성 비안·군위 소보 공동후보지를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이하 통합신공항) 최종 이전지로 발표했다.통합신공항은 K2(군공항 6.71㎢)와 대구국제공항을 현재 규모보다 2.2배 확장한 15.3㎢(약 463만 평) 규모다.통합신공항은 침체된 지역 경제에 새로운 산업 유치 및 지역 개발을 촉진하는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진정한 통합신공항 건설사업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2028년 공항 개항에 너무 집착할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또 다른 텅빈 지방국제공항으로 전락하지 않고 지역 발전을 선도하는 동남권 거점공항을 건설하는 것이다.통합신공항 이전지는 대구시와 약 50㎞(직선거리), 포항시와 약 80㎞, 안동시와 약 25㎞ 떨어져 있다. 경쟁 공항인 김해공항과 대구시와의 직선거리는 약 80㎞로, 통합신공항은 김해공항보다 대구시와 지리적으로 가깝다. 그러나 고속도로 및 철도망을 반영한 교통 접근성면에서, 통합신공항은 김해공항보다 입지적으로 유리하다고 평가하기 어렵다.대구시와 통합신공항 간 접근성이 크게 개선되지 않는다면, 대구시 공항 수요는 공항 접근성 및 항공 이용 편의성면에서 유리한 김해공항으로 분산될 가능성이 높다.특히 국내선 공항 접근성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국내선 이용객이 가장 많은 대구∼제주 노선의 경우, 통합신공항은 김해공항보다 운항 거리 및 요금면에서 불리한 경쟁 여건을 지니고 있다.통합신공항과 배후도시 간의 접근성 향상은 통합신공항 건설만큼이나 중요한 개발 과제이다. 대구시와 경상북도는 서대구KTX역~동구미역~통합신공항역~의성역(66.8㎞)을 30분대에 연결하는 공항철도 건설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공항철도 건설 비용은 단선 1조5천억원, 복선 2조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공항철도 건설사업의 비용편익비(B/C)는 단선 0.64, 복선 0.82로 사업 타당성이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공항철도 건설사업은 국가재정사업으로 추진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에 직면할 것으로 전망된다.2017년 호남선 고속전철(KTX) 2단계 사업(광주 송정역에서 목포)의 노선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무안국제공항을 연결하는 고속전철은 전액 국비로 건설하게 됐다.기본 계획에서는 광주∼나주∼목포를 직선으로 연결하는 노선으로 계획됐으나, 무안국제공항을 경유하도록 16.6㎞를 'ㄷ'자형으로 우회하는 노선으로 변경했다.그 결과 광주시와 목포시에서 무안국제공항을 연결하는 공항고속전철은 전액 국비(추가 건설 비용은 1조1천억원)로 건설하게 된 셈이다.호남 고속전철 노선은 경제성이 아니라 정치적 타협에 의해 변경됐다. 2018년 예산 심사 과정에서 국민의당과 더불어민주당은 '호남선 KTX 공동정책협의회'를 통해 호남 고속전철 노선을 광주 송정~무안공항~목포(77.6㎞)로 변경・합의했다. 양당 합의에 의해 국토교통부는 총 2조4천731억원의 호남선 고속전철 2단계 사업을 2025년까지 완공한다고 확정했다.대구시와 통합신공항을 연결하는 공항철도는 통합신공항의 성공과 경북의 낙후지역 개발 촉진을 위한 핵심적인 기반시설이다. 지방 인구 소멸화 현상으로 인해 비수도권 지역의 SOC(사회간접자본)사업은 사업타당성 기준(비용편익비 1.0 이상)을 충족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하다.통합신공항과 공항철도와 같은 지방 대형 SOC사업은 경제성 기준을 충족하기보다는 정치적 논리를 개발하고, 이를 지렛대로 정치적 협상과 타협을 통한 사업 추진 전략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인천국제공항을 연결하는 인천공항철도와 무안국제공항을 연결하는 공항고속전철 모두 국비로 건설되었으니, 통합신공항을 연결하는 공항철도 역시 예타 면제 국비사업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지역 정치권은 여당과 통합신공항 건설을 위한 '공동정치협의회'를 구성하고 내년도 예산 심의와 연계해 적극적인 정치적 협상과 타협을 시도해야 한다. 지역민은 지역 발전을 위한 지역 정치권의 태도와 노력에 대해 감시・감독을 강화하고 나아가 다음 선거에서 지역 정치권을 투표로서 평가해야 한다. 이제 우리 대구・경북 지역민은 지역 발전을 위해 전략적으로 투표권을 행사하는 보다 지혜로운 유권자로 변모할 필요가 있다.

2020-09-29 09:32:53

[기고] 한가위, “우리가 해냈소! 이겼소!”

[기고] 한가위, “우리가 해냈소! 이겼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 같아라."(加也勿 減也勿 但願長似嘉俳日) 한가위의 풍성함을 노래했던 김매순(金邁淳·1776~1840)의 '열양세시기'(冽陽歲時記) 기록이다. 이맘때가 되면 으레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말로 농경시대 수확의 기쁨과 넉넉함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느껴진다.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新羅本紀)에서 유리왕 9년 이래 7월 16일부터 서라벌 부녀자들이 길쌈대회를 개최해 8월 15일에 위로와 축하연을 베풀었던 것을 '가배'(嘉俳)라 했다고 한다. 신라향찰로 된 '가배'는 현대어로 '한가운데' 혹은 '가장 큰 것'을 의미하며 '가을의 한가운데' '달이 가장 큰 날'이 바로 한가위이다.'가배' 때 길쌈내기에서 진 편이 음식을 마련하여 이긴 편에 사례하고 모두 함께 노래와 춤, 온갖 놀이를 하였는데, 이때 부른 노래 가사에 "회소회소"(會蘇會蘇: 했소! 했소!)라는 후렴구가 나온다. 이와 유사한 문구는 "서라벌 명주 조하주(朝霞綢)가 로마 황제 곤룡포가 되었다네, 해냈소! 해냈소! 우리는 해냈소!"라는 다른 구전 가사에도 보인다. 유추해 보건대 우리 조상들은 '고대의 한류 열풍'의 대표 주자로 손꼽히는 최고 품질의 신라 비단(silk)을 공급하기 위해 길쌈대회를 기획하였고, 가배날(嘉俳日)이 대보름날 민족의 큰 축제가 된 것이다.신라의 유일한 한가위 풍습을 중국 수서(隋書)에서는 '풍성한 음식과 가무(歌舞)로 화목을 다졌던 명절'로 기록하고, 신라 견당선(遣唐船)을 빌려 타고 불법(佛法)을 배우러 갔던 일본 고승 엔닌(圓仁)은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서 당나라 신라방에서 신라인들만이 유일하게 한가위를 즐겼다고 했다. 그러던 한가위 풍습이 사대문화의 인습으로 중국의 중추절(仲秋節)을 따라 칠석(七夕) 혹은 월석(月夕)을 본받아 '추석'(秋夕)이라고 개칭했다.우리나라가 추석을 공휴일로 제정한 것은 1949년부터로 당일만 공휴일이었고, 1986년에 추석 다음 날까지 2일간, 1989년에 추석 전후 3일간 공휴일로, 또다시 2014년 9월 7일부터 10일까지 4일 휴일로 하는 대체휴일제도를 도입했다. 그럼에도 우리 민족이 즐겼던 한가위의 의미는 점점 사라지고 변해가는 가을 한가운데의 명절 풍경에 씁쓸한 마음이 든다. 오늘날 추석은 며느리들의 명절 스트레스, 고3 및 취업준비생들의 자물쇠학교(학원), 시골 노부모의 역귀성(逆歸省) 등 예전과는 다르게 표현되고 있어 안타깝다.또한, 최근 추석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보면 1993년 '대전엑스포93'으로 서울~대전의 귀성객 차량까지 가세해 17시간이나 정체, 1994년 추석 연휴에 속칭 막가파인 지존파(살인공장) 사건, 1996년 강릉무장공비 침투, 2003년 추석날 태풍 매미의 습격(약 5조원 피해), 2016년 추석 2일 전인 9월 12일 경주 지진 사태, 2018년 추석 직전 대형마트 의무휴일로 쇼핑 대란, 2019년 추석 6일 전 태풍 '링링'의 상륙이 먼저 떠오른다.올해는 지난 1월 20일부터 한반도에 엄습한 코로나19에서 아직도 완전히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신라에 살았던 선인들이 '세상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이겼소! 우리는 해냈소!"라고 노래했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신라인들이 서라벌에서 로마제국까지 연결되는 비단길(silk road)을 만들었듯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도 세계 속에 한민족의 새로운 제2의 비단길을 만들어 '해냈소! 해냈소!'를 다시금 노래할 수 있어야 한다.

2020-09-28 15:00:42

[세계의 창] “‘적’은 더 가까이에”

[세계의 창] “‘적’은 더 가까이에”

일제 식민지와 6·25전쟁 중 어느 쪽의 상처와 피해가 더 크고 깊을까. 양이나 질로 가늠하기 어렵다.전쟁 중이라도 일본이 개입하면 총구를 그들에게로 돌리겠다고 한 이승만 대통령의 일화가 있고, 북한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는 일본과의 협력이 불가피하다는 설득력 있는 주장도 있다.일본과 북한, 어느 쪽이 진정한 '적'일까. 이념 지향, 시대 상황, 정파 등에 따라 답이 갈린다. 우문(愚問)이라 할지 모른다.북한 같은 공산 치하가 좋은가, 일제 식민지 지배가 좋은가라는 유아적 문답으로 치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는 이념이나 현실에서 이 두 사건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친일 청산은 시대의 과제이며, 북한은 안보의 '주적'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친일과 용공(친북)이 우리의 사고와 심리를 옥죄고 있는 것이다.친일과 용공이 반드시 한국에 굴레와 손실로만 작동했을까.식민지 지배가 없었다면 한국은 자생적 근대화를 했을 것이고, 6·25로 나라가 초토화되지 않았으면 더 순조롭게 발전했을 것이라는 가정은 성립한다.반면에 일본과 북한의 존재가 발전의 동력이 되었다는 학설도 있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에 관한 이야기이다. 중국에 포위된 홍콩, 말레이시아로부터 분리된 도시국가 싱가포르, 중국 공산주의와 대치하는 타이완, 북한의 위협과 일본의 신식민주의를 마주한 한국은 정치 사회적으로 위기의식이 가장 높은 국가들이다.이들 국가는 위기의 일상 속에서 생존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고, 그 결과 용들이 되었다는 주장이다.그런데 한국이 일본과 북한을 대하는 데에는 차이가 있다. 곡절은 많으나 일본과는 수교를 해 가까이 지내왔으나, 북한과는 아직 전쟁 상태를 끝내지 못했다.일본은 심리적인 '적'으로 남고, 북한은 현실적 '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일본을 가까이하지 않았으면 한국은 어땠을까. 경제발전은 더디고, 그 때문에 민주주의도 늦어졌을지 모른다.일본의 도움이 아니라 그들을 가까이 두고 활용한 한국의 지혜가 일본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하게 만든 것이다. 북한과의 관계는 어떠해야 할까. 북한이 가상의 '적'이든 동족이든 멀리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가까이하지 않으면 원수를 갚지도 못한다.외나무다리에서라도 만나야 원수를 갚을 기회가 생긴다. 같은 민족이면 더더욱 가까이해야 하지 않을까. 1961년 8월 동독은 예고 없이 베를린시를 동서로 가르는 철조망을 치기 시작했다. 약 7만 명의 시민들이 동서 베를린을 왕래하며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후에 동방정책으로 독일 통일의 초석을 깔았다고 평가받는 빌리 브란트 당시 서베를린 시장은 야간 열차 침대에서 잠결에 보고를 받고 경악했으나, 동독의 조처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케네디 미국 대통령에게 호소했다."그걸 바꾸는 방법은 전쟁밖에 없으나 그걸 위해 아무도 전쟁을 하려 하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브란트는 참모들에게 "전부 아니면 전무를 버리고, 접촉을 통한 변화를 찾자"(Wandel durch Annäherung)고 했다. 2년간의 지난한 저자세의 협상 끝에 통행증 협정으로 베를린의 숨통을 뚫었다.지난주 북한과 관련하여 상반된 흐름의 두 사건이 발생했다. 어업지도선 공무원이 실종된 후 북한 수역에서 피살되었다.23일 오전 1시부터 청와대에서는 관계장관회의가 열렸고, 같은 시간대에 15일 녹화된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 연설이 공개되었다. 국제사회에 남북한의 종전선언을 호소한 것이다.피살 사건은 지난 6월의 개성공단 연락사무소 폭파의 재연이다. 종전선언 제안은 지난 8일과 11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주고받은 친서의 연장이다.종전선언 제안과 피살 사건의 연관성에 대한 해석과 대처가 혼돈스러운 와중에 피살 사건 공개 하루 만에 김정은 위원장이 사과를 표명했다. 매우 이례적 조치이다.영화 대부에서는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에'를 가족(family)의 영속적 생존 원리로 하고 있다. 북한을 우리 손이 닿는 곳에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김정은의 진정성을 따지고, 재발 방지, 책임 추궁 등도 할 수 있다. 대화로 이어가면 더 좋다.

2020-09-28 14:51:07

[서명수의 일상중국] 국경절 연휴 불안한 중국

[서명수의 일상중국] 국경절 연휴 불안한 중국

30일부터 닷새간의 추석 연휴가 시작되지만 올 추석 고향을 찾는 귀성객은 예년에 비해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정부의 추석 귀성 자제 요청에 국민들이 적극 호응함에 따라 고향 분위기는 상대적으로 썰렁해지고 있다.10월 1일부터 중국에서도 '국경절 연휴'가 시작된다. 올 국경절 연휴는 추석 연휴와 겹치면서 지난해 7일보다 하루 더 늘어난 8일짜리 '황금연휴'다. 14억 중국 인구 중 6억여 명이 여행을 떠날 것으로 예상된다.국경절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을 선포한 날로 올해로 71주년을 맞이한 이날 톈안먼 광장에서는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가 펼쳐지면서 연휴의 시작을 알린다. 70주년인 지난해 국경절 행사에는 톈안먼 성루에 시진핑 주석 좌우에 장쩌민, 후진타오 전 주석이 나란히 서서 열병식을 지켜보면서 '중국 굴기'를 자랑했지만 코로나19는 중국의 위상에 큰 상처를 입혔다.'코로나 사태'가 없었다면 해외로 떠나는 중국인이 최소 2천여만 명에 이르고 그중 100만 명은 한국으로 왔을 것이다. 중국 정부는 이번 연휴 기간 국내 여행에 나설 것을 적극 권장하면서 방역 지침을 제시했다. 추석 귀성을 자제하라는 한국과 국내 여행을 적극 장려하는 중국. 코로나 방역에 상대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두 나라가 '황금연휴'를 맞이하는 입장이 엇갈리는 게 왠지 불편하다.전 세계가 우한(武漢)에서 발원한 코로나19로 인해 매일 수만 명이 목숨을 잃고 고통받고 '겨울 재유행'에 대비하느라 노심초사하고 있는 와중에 드러난 중국의 '코로나태평'은 작위적인 느낌마저 든다.중국 질병예방통제센터는 지난 24일 '2020년 추석 국경절 휴가여행 위생안내'라는 지침을 발표했다. 한마디로 국내 여행을 권장하되 해외 여행은 자제할 것을 촉구하고 여행지에서 소독제와 마스크를 지참하는 등 개인 위생을 지키라는 것이 골자다. 당국의 이 같은 방침은 내수 경제 활성화를 위해 국내 여행을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가급 관광구 500곳 이상, 1천500곳의 입장료를 면제하거나 할인하고 각종 쿠폰을 발행하는 등의 여행 장려 정책을 다양하게 내놓았다.해외로 나가고 싶더라도 2주간 격리해야 하고 귀국해서 다시 2주간 격리되기 때문에 연휴를 이용해서 해외 여행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난 1월 우한발 코로나 감염이 확산되면서 우한봉쇄령이 전격 발동되기 전, 우한을 탈출한 우한 시민은 500만 명에 이르렀다. 이들 중 상당수가 해외로 탈출, '코로나 팬데믹'의 단초가 된 바 있다.사실 중국 통계로는 지난 7월 말 베이징 '신파디 시장발' 감염 사태 이후 매일 10여 명 안팎의 확진자만 산발적으로 나오고 있다. 그래서 중국은 해외 입국자에 대해서는 2주간의 격리를 의무화하고 있으면서도 중국 전역을 코로나19 저위험 지역으로 간주해서 이동과 여행을 제한하지 않고 있다.그러나 무증상 감염자가 매일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맹점은 '무증상 감염자'를 중국 당국이 '확진자'로 분류하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27일 현재 중국 내 무증상 감염자는 391명에 달한다.잘 관리되고 있는 듯한 중국의 코로나 방역이 국경절 연휴기간 무증상 감염자들을 통해 '조용하게' 전파될 가능성이 높다는 경고가 나오는 배경이다. 코로나19는 증상이 발현되기 직전에 가장 많은 바이러스를 배출, 전파한다는 것이 세계보건기구(WHO)의 경고다.너나없이 고향에 가는 춘절 때와 달리 국경절 연휴에는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가족 단위로 여행을 가는 것이 2000년대 이후 형성된 중국만의 독특한 문화다. 지난해 국경절 때 국내 여행객은 7억8천여만 명. 유명 관광지마다 입장객을 통제할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바가지 상혼이 판을 쳐도 난리법석인 것이 중국의 국경절 풍경이다.8일이나 되는 기나긴 연휴기간 동안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경제대국 G2가 된 중국인지라 웬만한 가정에서는 자동차를 타고 가족 여행을 할 정도로 여유를 가지게 됐다. 코로나 방역으로 위축돼 있던 중국인들이 너나할 것 없이 여행에 나서고 있다.국경절 연휴는 주춤했던 바이러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다. 바이러스의 전파는 사람의 매개 없이 불가능하다.세계적 대유행이 재개되는 마당에 맞이하게 된 중국의 국경절 연휴는 코로나19 재확산의 도화선이 될 것인가, 코로나19 발원지 중국의 방역 성공을 확인시켜줄 것인가가 주목되는 시간이다.

2020-09-28 14:17:13

[김태선의 디자인,가치를 말하다] 다시 할 수 있게 되면

[김태선의 디자인,가치를 말하다] 다시 할 수 있게 되면

"누나 잘 지내? 난 밖에 나갈 수가 없어서 답답해 죽겠어." 며칠 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살고 있는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코로나19 때문에 재택근무 중인 데다 한 달째 계속되는 산불로, 까만 재까지 날아다녀서 아이들과 밖에 나갈 수가 없다고, 그래서 더 힘들다고 했다. "대낮에도 어둑어둑하고, 종말을 보는 것 같아…. 나는 우리 애들 세대가 문제지, 내가 사는 동안은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웃음)…어떡하지?" 걱정을 담은 너스레를 들으며 통화를 마쳤다.걱정스러운 마음에 인터넷을 찾아봤다. 대낮에도 온통 붉은빛으로 뒤덮인 샌프란시스코의 사진이 올라왔다. 현실 같지 않은 이 사진이 낯설지 않다. 작년 9월 시작되어 올해 2월에야 진화되었던 호주의 대형 산불 때에도 호주의 하늘은 붉었다. 하늘이 붉은 주황빛을 띠는 것은 극도로 높은 밀도의 연기 입자 때문으로 연기가 많이 나는 화재에서 매우 구체적인 조건이 충족되어야 발생하는 한 세대에 한번 올까 말까 한 사건이라고 한다. 그런데 한 해에 벌써 두 번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할까, 그리고 얼마나 광활한 산림이 불탔고, 또 얼마나 많은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었을까.이산화탄소는 현재까지 밝혀진 가장 유력한 지구온난화의 원인이다. 궁극적으로는 탈탄소 사회로 전환되어야겠지만, 최근엔 기후 위기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감축의 대안으로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포집·저장·활용(CCUS)하는 자원화 기술에 주목하고 있다. 탄소의 포집, '공기 중에 미세먼지만 콕콕 집어서 통에 가둬버릴 수 없을까?' 그런 상상을 하긴 했었다. 그런데 정말 그런 상품이 있었다.디자이너와 엔지니어로 구성된 '스튜디오 로세하르데'(Studio Roosegaarde)가 디자인한 '스모그 프리 반지'(Smog free ring)로 반지의 원료는 이 스튜디오가 중국 베이징 등에 설치한 높이 7m의 거대한 공기청정기인 '스모그 프리 타워'(Smog Free Tower)에서 포집한 스모그이다.스모그 프리 타워에서 얻은 미세먼지를 여과해 얻은 탄소 성분에 높은 압력을 가하는 다이아몬드 생성 기술로 압축하여 투명한 육면체 안에 가두어 반지를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스모그 프리 반지'는 일종의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271달러(약 30만원)에 판매되었지만 지금은 스위스의 한 박물관에 영구소장품이 되었고 아쉽지만 더 이상 구입할 수는 없다고 한다.탄소 포집을 못해서 영원히 그 빛나는 탄소 반지를 살 수 있는 기회가 없을지라도, 요사이 눈부시게 푸른 하늘을 다시 잃고 싶지는 않다. 우리의 푸른 하늘은 코로나19로 인한 전 세계적 봉쇄 조치에 따른 중국의 월경성 오염물질과 국내 오염 발생의 감소 덕분이라고 한다. 결국 많은 것을 스스로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시 무언가 할 수 있게 되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우리 모두 이 푸른 하늘을 누릴 권리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다. 2019년 기준 한국은 이산화탄소 배출량 7위, 배출 증가량은 OECD 국가 중 1위를 기록했다.

2020-09-28 14:16:53

[신병주교수의 역사와의 대화] 피난 생활 중의 추석 이야기

[신병주교수의 역사와의 대화] 피난 생활 중의 추석 이야기

민족의 명절 추석을 맞이하는 마음은 예전과 같지 않다. 추석과 함께 시작되는 민족대이동으로 코로나19 확산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는 이번 추석만큼은 고향을 찾는 이동을 자제하고, 추석에 가족이 모여도 최소한의 인원으로 간편하게 차례를 치를 것을 거듭 당부하고 있다.전통 시대에 전염병이 유행하면 추석 제사를 지내지 않고 조용하게 보냈다. 최근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조사한 일기 자료인 안동 하회마을 류의목의 '하와일록' 1798년 8월 14일의 기록을 보면 '마마(천연두)가 극성을 부려 마을에서 의논해 추석에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기록이 보인다.조선 중기의 학자 오희문이 쓴 일기인 '쇄미록'에는 임진왜란 중에 추석을 보낸 모습들이 기록으로 나타난다. '쇄미록'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인 1591년 11월 27일부터 시작하여 1601년 2월까지 9년 3개월간의 내용을 담고 있다. 제목을 '쇄미록'이라 한 것은 시경의 '쇄혜미혜(瑣兮尾兮: 누구보다 초라함이여) 유리지자(遊離之子: 여기저기 떠도는 사람들)'에서 인용한 것으로, 유리기(遊離記) 또는 피난의 기록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1592년 8월 15일의 기록을 보면 '산속에 머물며 바위 아래에서 잤다. 한밤에 큰비가 오기 시작해 밤새 그치지 않았다. 임시로 거처하는 장막에 비가 새어 쪼그려 앉은 채 아침을 맞았으니, 그 고생을 알 만하겠는가. 오늘은 추석인데 성 남쪽 산소에 차례 지내는 사람이 없으니, 상로(霜露)의 감회에 깊이 잠겨 애통함이 끝이 없다. 더구나 노모와 처자식은 지금 어디에서 목숨을 보전하고 있을까? 오늘을 생각하니 더욱 애통하구나' 하여 피난 생활로 추석 제사를 지내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다.또한 '현의 사람이 오늘이 명절이라며 이곳 사람들이 먹을 떡과 술, 고기, 과일 등을 많이 가져왔다'는 기록에서는 간단히 음식을 맛보며 추석을 보낸 모습이 나타나 있다. 1593년 추석의 기록에는 '누이가 아버지의 신위 앞에 술, 과일, 떡과 구이, 탕을 갖추어 차례를 지냈다. 오늘은 바로 추석이다. 일찍이 생원(오윤해)으로 하여금 상경해서 광주 선산에 제사를 지내게 했는데, 지냈는지 모르겠다'고 하여, 선산을 찾지 못하고 피난지에서 누이와 함께 차례를 지낸 모습을 볼 수가 있다.1594년 8월 15일의 '오늘은 추석이다. 술과 밥을 준비하여 조부모와 죽전 숙부의 제사를 지냈다. 나머지 먼 조상님들까지는 제사를 지내지 못하는 형편이니, 추모하여 슬퍼하는 마음은 있지만 어찌하겠는가'라는 일기에서도 피난지에서 추석 제사를 챙긴 모습을 확인할 수가 있다. 1595년 추석에는 '닭 2마리를 잡고 탕과 구이 및 술과 과일, 떡, 안주 등의 물품을 차려 신위에 제사를 지냈다. 이웃 마을 사람들이 술과 안주와 과일, 밥과 탕 등을 준비해 왔다'고 하여 이웃과 함께 추석 음식을 주고받은 모습이 나타난다.1596년의 추석에는 비가 오는 중에도 추석 제사를 지내는 모습이 보인다.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날이 개기를 기다려 묘사를 지내려고 했으나, 늦도록 비가 그치지 않는다. 또 날이 갤 조짐이 없어 부득이 산에 올라가서 돗자리로 상석을 덮고 제수를 차렸다. 먼저 조부모에게 올리고 그다음은 아버지께 올린 뒤 죽전 숙부에게 올리는 순서로 상하 3위의 진설을 끝내고 절을 올렸다. 삿갓을 쓰고 제례 행사를 혼자서 맡았는데, 옷이 모두 젖었다. 또한 기력이 다해 고달프다'고 하여, 빗속에서도 조상 제사를 챙기고 있다.이어서 '물린 제수로 계집종 마금과 덕노의 아비 덕수의 묘에 망제를 지내게 했다'고 하여 집안 노비에 대한 제사도 챙겨주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597년 추석의 기록에서도 '아침 식사 전에 인아(윤겸)와 함께 제사를 지낸 뒤 남은 음식으로 살아있을 때 공이 있었던 노비 중에서 자손이 없어 제사를 받지 못하는 자들의 제사를 지내 주었다'고 하여 노비에 대해 배려를 한 모습을 볼 수 있다.1598년의 추석에는 '술, 떡, 과일, 포, 구이로 차례를 지낸 뒤에 온 집안 식구들이 함께 먹었다. 속절(추석)이기 때문이다. 가까운 이웃 사람들이 모두 차례를 지내고 남은 좁쌀떡을 가져왔다'는 기록이 보인다. 전체적으로 '쇄미록'의 기록에서는 추석 제사를 챙기면서도 피난이라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최대한 간소하게 치르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조선의 대표적인 청백리 정승 이원익은 장례의 편의를 위해 가족묘를 조성하게 하고 제사의 간소화를 유언으로 남겼다. 한말의 독립운동가 석주 이상룡은 나라가 독립을 할 때까지 소박한 제사를 지낼 것을 강조했다고 한다. 코로나로 모두가 어려운 시기인 만큼 추석에 담긴 의미는 이어받으면서도 그 절차들은 간소하게 하는 것이 어쩌면 합리적이고 융통성 있는 대안을 제시했던 선조들의 정신을 이어가는 길일 것이다.

2020-09-28 14:16:26

[매일춘추] 가슴의 사랑은 세월 따라 더 아파진다

[매일춘추] 가슴의 사랑은 세월 따라 더 아파진다

어릴 때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 비가 오면 나의 정서는 차분하고 쾌활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어머니다. 비가 오면 어머니는 시장 장사를 일찍 마치고, 집으로 빨리 오시기 때문이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 어머니가 반갑게 맞아주는 날이기도 했다. 맨날 비가 오기를 항상 기도했다.비가 오는 어느 날. 초등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 왔을 때, 어머니는 동네 아줌마와 함께 대청마루에서 화투를 치고 계셨다. 장사 때문에 그동안 하지 못한 동네 친교생활을 보충하고 계셨다. 동네 아줌마 '전투 고도리'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을 때, 어머니는 나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막둥아! 동네 가게에 가서 잔돈 좀 바꾸어 오나. 잔돈이 부족해서 현금 박치기가 안 된다. 그 참에 과자도 하나 사먹고…." 거금의 지폐를 들고 동네 가게로 들어섰다. 그 순간부터 나의 생각은 달라졌다. 과자 욕심이 발동되었다. 평소에 먹고 싶었던 과자를 모두 사서 어머니가 준 돈으로 모두 결제했다. 그리고 친구들을 불러 모아서 신나게 먹었다. 본분을 망각한 사회적 일탈행위였다. 어머니의 심부름을 기망한 사기행위였다. 과자 파티가 끝날 때, '먹튀' 범죄행위의 심각성이 공포감으로 다가왔다. 어머니의 분노상황이 무서웠다. 그래도 열심히 생존해야 한다는 '자아존중감의 잔머리'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일시적 가출을 도모하자. 어머니가 나를 찾을 때까지 동네 근처를 방황하자. 그런데 방황을 계속해도 어머니가 나를 찾지 않았다. 마지막 해결책을 시도하였다. 옆 동네 파출소에 찾아가서 길을 잃어버렸다고 거짓 신고를 했다. 그 후 어머니와 어색한 해후를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침묵을 깨면서 한 말씀 하셨다. "과자 너무 많이 먹지마라!" 그 후로부터 어머니는 잔돈 교환 심부름을 절대 시키지 않았다. 교육적 차원에서 두 번 다시 먹튀를 허용하지 않았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더욱 보고 싶은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어쩌면 우리 모두는 예정된 이별의 시간을 가지고 산다. 그 시간 속에서 서로 결핍의 아픔을 가지고 있다. 결핍의 반대는 충족이 아니고, 자유다. 시기와 질투로 우리의 인생을 서로 낭비하지 말자. 탐욕적 자본의 광풍 속에서 상처를 받더라도, 조금만 당당하게 자기 자신에게 배려해보자. 세상 풍파 속에서 떼인 희망의 가치를 찾아야 한다. 삶이 당신을 속이면, 먼저 분노하고 천천히 저항하자. 바보처럼, 무식하게 참지 말자. 머리의 사랑은 세월 따라 잊어지지만, 가슴의 사랑은 세월 따라 더 아파진다. 완벽한 사랑보다는 부족한 사랑이 우리에게 더 소중하다. 비대면의 '코로나 추석'이라도, 서로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전하자. 사랑한다고 독백만 하지말자. 독백은 마음속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2020-09-28 14:12:48

[기고]우리 모두 노인이거나 곧 노인이 된다

[기고]우리 모두 노인이거나 곧 노인이 된다

우리나라는 2000년 고령화사회로 진입한 후 18년 만에 고령사회로 진입했다. 2025년 초고령사회로의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어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를 보이고 있다.저출산, 의료기술의 발달과 생활수준의 향상 등으로 평균수명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장수(長壽)는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큰 축복이지만 한편으로는 건강·빈곤·세대 간 갈등 문제 등을 수반한다.첫째, 건강 문제이다. 나이가 들수록 면역 기능이 떨어져 잦은 질병에 노출되기 쉽고, 상실감·소외감·고독감 등 정신적으로 황폐화되기 쉽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2000년 339만 명에서 2019년 768만 명으로 2.2배(429만 명) 늘어났다. 같은 기간 전체 인구가 8.6%(411만 명)밖에 늘지 않은 것과 크게 대비된다. 특히 홀몸 어르신은 54만 명에서 150만 명으로 3배나 늘어 심각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속담에서 보듯 건강을 잃어버리면 당사자는 물론 가족에게도 부담이 되고, 의료나 복지 서비스 등 노인복지비와 재정 지출 확대로 정부 재정을 악화시킬 수 있다.둘째, 빈곤 문제이다. 2002년의 마드리드 고령화 국제행동계획(MIPAA)도 노인 빈곤 문제를 주요 의제로 채택했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OECD 회원국 내 1위다. 2017년 기준 노인 빈곤율은 43.8%로 일본의 19.6%보다 2.2배나 높다. 빈곤은 고용 시장과 범죄 발생에도 영향을 미친다. 2013년 기준으로 우리 국민이 노동시장에서 완전히 은퇴하는 연령은 71.6세인 데 반해 미국 67.9세, 영국 64.7세, 프랑스 60.8세이다. 우리는 생애 가장 늦은 주기까지 일하고 있다. 경제적 이유 때문일 것이다.또한 노인 빈곤은 범죄 증가로도 이어진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노인 범죄는 2014년 9만5천371명에서 2019년 14만4천735명으로 51.8%(4만9천364명) 늘어났다. 반면, 전체 범죄는 오히려 9.1%(193만 명 → 176만 명) 감소했다.필자가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재직 때 교도소를 방문했는데 고령의 수감자가 너무 많아 깜짝 놀랐다. 교도관은 "요새는 70대, 80대 수용자가 수두룩하고 어디든지 나이든 사람이 많이 들어온다"고 대답했다. 고령 수용자의 증가는 노인 빈곤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셋째, 세대 간 갈등 문제이다. 필자는 몇 해 전 ASEM의 노인 인권 콘퍼런스에 참석, 노인문제 전문가들과 현안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다. 다양한 이슈들이 논의됐지만, '세대 간 갈등'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제기하는 나라는 별로 없었다. 반면 우리는 좁은 국토에 비해 과밀한 인구 탓인지 세대 간 갈등 문제가 심각한 사회 현안이 되고 있다. 세대 간에 서로를 내 몫을 빼앗아갈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그 회의에서 "우리는 모두 현재 노인이거나 곧 노인이 될 사람들이다"고 말해 큰 호응을 얻었다. 10월 2일 '노인의 날'을 맞아 사회 구성원들이 모두 한 배를 탄 공동체의 일원임을 인정하며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리고 국가와 기업 모두 경제적 파이(π)를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2020-09-27 16:49:42

[이른 아침에] 우리 국민 사살이 ‘불미스런’ 일인가?

[이른 아침에] 우리 국민 사살이 ‘불미스런’ 일인가?

변호사인 한 지인이 자신의 배석 판사 시절 경험담을 SNS에 올렸다. 형사 재판 피고인이 "불미스러운 일로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라고 연신 고개를 조아리자 재판장이 호통을 쳤다. "피고인, 아직도 잘못을 진정으로 뉘우치지 않는군요. 불미스러운 일로 물의를 일으켰다고요? 피고인은 중범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아름답지 못한 일로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는 말이 언제부터 사과의 의미로 쓰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정치인들이 수시로 입에 올리다 보니 오염(?)되었을 뿐 사과와는 거리가 멀다. 잘못에 대한 반성과 재발 방지 각오가 없는 사과는 공허한 말잔치에 불과하다.북한군이 우리 국민을 사살하고 시신을 불태운 일에 대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사과했다고 감읍하는 사람들이 있다. 북한의 야만적 행태를 접한 대다수 국민은 분노와 격앙 속에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북한의 만행도 문제지만 우리 정부와 문재인 대통령의 대응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통일전선부가 '보냈다는' 통지문에서 김 위원장이 두 번이나 사과의 뜻을 표한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해석해 준다'. "우리 측 수역에서 뜻밖의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 이게 진정한 사과라 생각한다면 국민적 호통의 대상이 되어 마땅하다.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다고요? 당신들은 인륜에 반하는 중범죄를 저지른 것입니다."김 위원장 명의도 아닌 통전부 통지문을 김 위원장의 뜻이라 반색하는 처지도 애처롭지만 그 내용은 적반하장에 가깝다. 우리 국방부가 애써 월북자로 단정한 피살자를 북한은 '불법 침입한 자'로 규정하고 있다. 해상에서 발견한 우리 공무원에게 공포탄을 쏘고 '도주할 듯한 자세를 취해' '10여 발의 총탄으로' 사살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일방적 억측으로 만행, 응분의 대가 같은 불경스럽고 대결적 색채가 강한 어휘를 골라 쓰는지" 유감이라는 게 저들의 주장이다. 도리어 우리를 야단치는 통지문에 '미안'하다는 말이 들어간 게 무에 그리 대단하다는 말인가. 김정은을 '계몽군주'라고 칭송한 듯한 말은 기실 북한이 김씨 왕조 군주국이라는 사실을 폭로(?)한 것에 다름 아니다.전시에도 비무장 민간인 사살은 '전쟁 범죄'로 처벌한다. 전쟁 중이 아닌 상황에서 무장도 하지 않은 민간인을 조준 사격한 것은 시효가 없는 중범죄이다. 범죄 운운도 실은 민망하다. 물에 빠진 사람은 일단 구하고 보는 게 동서고금의 사람 된 도리이다. 더구나 북한과 우리나라의 일부 인사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우리 민족끼리' 아닌가. 북측 통지문에서도 "대한민국 아무개라고" 하는 표현이 나온다. 대한민국 국민임을 알고도 사살했다는 자백이다. 책임자 처벌과 진상 규명을 위한 남북 공동조사를 우리가 강력하게 요구해야 하는 근거가 아닐 수 없다.북한이야 그렇다 치자. 분노는 치솟지만 인간의 존엄성 대신 지도자를 '최고 존엄'이라 칭하는 북한의 만행이 사실 놀랍지는 않다. 참으로 놀랍고 억장이 무너지는 것은 우리 정부와 문 대통령의 태도이다. 북한 앞에만 서면 '사람이 먼저'라는 구호조차 작아지는 것인가. 영흥도 낚싯배 침몰 사고에 대해 문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국가의 책임은 무한책임"이라고 말했다. 헝가리 유람선 침몰 때에도 문 대통령은 민방위복을 입고 총력 대응을 지시한 바 있다. 이번 사건은 당시 사고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국가의 실패다. 과실로 인한 사고와 달리 충분한 시간이 있는데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은 이번 사건은 고의적 부작위에 가깝다. 최초 보고 때부터 문 대통령이 "국가의 역량을 총동원하라"는 지시를 했다면 국방부, 통일부, 국정원 등이 넋 놓고 지켜보기만 했겠는가. 우리 국민의 생명이 희생당했다는 결과도 중대하지만 그 과정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우리 정부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더 엄중하다. 북한에 대한 추궁 못지않게 우리 정부의 책임에 대한 진상 규명 역시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진영의 문제가 아닌 주권자인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2020-09-27 15:11:54

[매일춘추] 동무생각 - 허행일 시인·낙동강문학 발행인

[매일춘추] 동무생각 - 허행일 시인·낙동강문학 발행인

국민의 사랑을 받은 대표적인 가곡 중에 '동무생각'이 있다. 원 제목은 '사우'이다. 벗을 생각한다는 뜻이다. 이 노래는 일제강점기 시절, 타향에서 짝사랑을 그리는 대구 출신 작곡가 박태준 선생의 애틋한 사연이 담겨 있다. 마산에서 창신학교 교사로 재임 중에 탄생한 곡이며 이은상 시인이 가사를 붙였다. 곡이 세상 밖으로 나오자마자 청소년들의 애창곡으로 전국적인 호응을 얻었다. 마땅히 유행가 외에는 부를 것도 없는 시절이니 청소년들에게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국민가곡으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당시 같은 학교에 근무하고 있던 노산 이은상 시인과 음악과 예술, 인생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며 두터운 교분을 쌓고 막역한 사이로 발전하였다. 박태준 선생이 계성중학교에 다닐 때 자신의 집(현 섬유회관 인근) 앞을 항상 지나던 백옥 같은 한 여고생을 잊지 못했던 짝사랑이 작곡을 하게 된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동산은 그가 현재의 중구근대골목 제일교회 옆 3·1운동 계단을 지나 등교하던 길이었다. 그 여학생은 한 송이 흰 백합 같은 맑고 고운 소녀였다. 그 나이 때에 모든 남학생들이 그랬다고는 하지만 박태준 선생은 더욱이 내성적인 성격 탓에 밤잠까지 설치고 행여 길거리에서 마주쳐도 말 한마디 붙여보질 못했었다. 이은상 시인이 이 사연을 듣고 "작곡한 곡에다가 노랫말을 써 줄 테니 붙여보라"고 박태준 선생에게 권유함으로 탄생한 것이 '동무생각'이다. 보통 가사에다가 곡을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동무생각'은 가사보다도 곡이 먼저 탄생한 노래다. '동무생각'에 등장하는 '청라'를 두고도 여러 가지 견해가 있지만 푸를 청(靑), 담쟁이 라(蘿)를 쓰고 있으니 푸른 담쟁이로 보는 것이 옳다고 하겠다. 이 '청라언덕'은 지금도 푸른 담쟁이로 뒤덮은 동산병원 내 선교사 사택 일대의 언덕을 말한다. 또 공교롭게도 경북여고 교화가 백합이어서 짝사랑하던 그 여고생이 당시의 신명여자학교(현 신명고) 학생이냐, 대구공립여자보통학교(현 경북여고) 학생이냐 하는 논란도 한동안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동무생각'의 작곡 시기가 1922년인데 비하여 경북여고 개교는 1926년, 신명여고 개교가 1907년이니 신명여자학교가 맞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박태준 선생의 집과 신명여자학교 학생들의 등교 하는 길이 일치한다는 점도 이런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또 '동무생각' 3절에 나오는 가사 '서리바람 부는 낙엽동산 속 꽃 진 연당에서…'의 연못은 동산에 물을 대주던 '천왕당못'이었다. 이 연못은 1923년 서문시장 확장과 함께 메워졌다.이런 스토리텔링이 담긴 '동무생각'이 2009년에 중구근대골목 선교사 주택 앞에 노래비가 세워졌다. 그 후 많은 연인들이 데이터 코스로 활용하고 있으며 첫사랑이 그리운 중년의 남성들에게도 큰 인기를 차지하고 있다. 근처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고색창연한 계산성당과 제일교회,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이상화 시인의 고택과 '국채보상운동'의 선구자 서상돈 선생의 고택 등과 대구의 역사 '약령시장'까지 겸비하고 있으니 전국적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대구 관광 코스다.어디선가 동무생각이 흘러나올 것 같은 맑고 고운 하늘이다.

2020-09-27 14:30:00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사장님, 한 사람부터 만족시키세요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사장님, 한 사람부터 만족시키세요

'고객들'이 아니고 '고객'이다. 복수가 아니라 단수다. 우선, 한 사람부터 만족시켜라. 당신의 승부수는 고객들이 아니고 고객이다.여전히 많은 소상공인 사장님들이 모두를 만족시키려 한다. 그 순간 그 브랜드의 매력은 잃게 된다. 모두에게 사랑받으려는 순간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브랜드가 된다. 자, 그럼 이런 의문점이 생긴다. 그 단 한명의 고객이 도대체 누구냐고. 우리 가게에 오신 첫 손님인지, 돈이 많아 보이는 고객인지 궁금할 것이다.당신 브랜드의 첫 고객은 당신이 되어야 한다. 오늘도 수많은 스타트업이 망하는 이유는 사업주의 관점에서 서비스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획하고 이렇게 서비스하면 돈을 벌 수 있겠지?' 라는 생각을 가진다. 지극히 사업주의 관점에서 고객을 본다. 고객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당신이 먼저 고객이 되어 그 사업을 바라봐야 한다. '나 같으면 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을까? 내가 고객이라면 이 비용이 아깝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집요하게 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눈이 생긴다. 바로 사업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눈 말이다.당신이 당신 브랜드의 첫 번째 고객이 되어보라. 그때 허점이 보이고 불만이 보이고 보완해야할 것이 보일 것이다. 먼저 자기 마음 안에서 합격점을 받아라. 자신의 브랜드를 비판도 해봐야한다. 그럼 이제 진짜 고객을 맞이할 차례가 온다. 거기서 통과되면 이제 진짜 한 사람에게 집중할 때가 온 것이다. 소상공인 사장님은 이런 생각이 든다.'아니, 많은 사람을 만족시켜서 최대한 지갑을 열어야지. 한 사람만 만족시켜서 어떻게 사업을 유지해?'맞는 말이다. 하지만 작은 사업을 시작하는 소상공인에게 위와 같은 자세는 위험하다. 삼성 스마트 폰을 쓰는 고객과 당신이 개발한 어플을 쓰는 고객의 태도는 다르다. 그 태도는 삼성과 당신 브랜드에 고객이 지불한 가격 이상으로 차이가 난다.그렇다면 만족시켜야 할 그 단 한명의 고객이 누구일까? 바로 당신 브랜드에 가장 악평을 하는 사람이다. 가장 까다롭고, 가장 보기 싫고, 가장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고객이다. 그 고객이 바로 당신 브랜드를 성장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예를 들어 당신이 오늘 닭갈비집을 오픈했다고 가정해보자. 친척을 비롯하여 지인들이 방문해서 음식을 팔아준다. 그리고 칭찬 일색을 늘어놓고 간다. '음식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느니 '양념이 끝내준다'라는 호평을 늘어놓는다. 여기에 우쭐해서 사장님은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이미 자신이 백종원이 된 듯하다. 하지만 진짜 실력은 진짜 고객이 왔을 때 나타난다. 고객은 냉정하다. 조금만 불만족스러워도 블로그에 불평이 올라온다. 맛있다고 감탄했던 지인의 얼굴이 떠오르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까다로운 고객은 당신에게 디테일을 선물한다. 스타트업의 가장 큰 문제가 바로 디테일이 없다는 점이다. 패기는 넘치지만 아무래도 비즈니스의 디테일은 부족하다. 그래서 그때 까다로운 고객을 만난 것에 감사해야한다. '고객 입장에서는 이것이 불편할 수 있겠구나'를 비로소 알게 되니까. 그렇다면 그때부터 그 고객을 해부해가야 한다.그 고객의 행동 패턴, 뇌구조, 기분, 습관, 돈쓰는 방법, 돈을 대하는 태도를 연구해야한다. 알파고와 대결한 이세돌 9단이 그렇다. 한 수를 두기 위해 상대방의 30수 앞을 고민한다. 그러다보면 디테일이 생길 수밖에 없게 된다. 상대의 성향에 집착하다보면 저절로 생기는 디테일이다. 이것이 소상공인이 한 명의 고객에게 집중해야 되는 이유이다. 까다로운 고객 한 명도 만족시키지 못하면서 대중을 만족시키려 들지 마라. 구구단도 모르는 학생이 미적분을 풀려고 덤비는 꼴이다.가장 보기 싫은 고객을 바라보라. 시선을 피하지 말고 마주하라. 그 고객이 당신 비즈니스의 제일 좋은 교과서이다. 당신 사업의 거울이다. 그와 함께 사는 것처럼 사업을 하라. 그럼 어느 순간 당신 가게에 손님이 북적이고 있을 것이다. 어느 순간 당신의 제품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 있을 것이다. 페이스북에 그 브랜드 참 좋더라는 얘기가 바이럴 될 것이다. 그런 얘기는 광고판이 감히 담을 수 없는 것들이다. ㈜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광고를 보는 건 3초이지만 광고인은 3초를 위해 3개월을 준비한다. 광고판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를 연재한다

2020-09-27 12:14:12

[2020 세상 읽기] 대구, ‘TK’를 넘어 더 넓은 세계로

[2020 세상 읽기] 대구, ‘TK’를 넘어 더 넓은 세계로

북쪽의 팔공산과 남쪽의 비슬산이 우뚝 서 있는 곳, 낙동강과 금호강이 굽이굽이 흘러 만나는 곳, 그것들이 만들어 낸 넓고 평탄한 분지엔 아주 오래 전부터 인류가 살았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그 곳을 '대구'라 부른다.처음에는 부족국가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 초기 문신인 김요가 말한 것처럼 사방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오늘날 대도시로 불릴 정도로 성장하였다. 대구의 역사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은 대구는 늘 위기와 그것을 극복과정에서 성장했다는 점이다.먼저, 경상감영의 설치를 들 수 있다.조선은 건국 후 4군 6진의 개척 등 정치적 시선을 북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왜군의 전라도 진격을 막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대구를 주목한 결과, 이곳저곳을 떠돌던 경상감영은 경상좌도와 경상우도가 합쳐지며 대구에 설치되었다. 그 뒤로 대구는 3백여 년간 영남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두 번째로, 6.25전쟁 때 대구는 임시수도였다.6.25전쟁 때, 국군의 최후 방어선이었던 대구가 점령당할 경우, 수십만 명의 피란민들 목숨은 물론, 국토의 공산화는 자명했다. 다부동 전투에서 버텨냈고, 그 후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 대구는 인민군에게 점령당하지 않았다. 이때 피란 온 외지인들과 다양한 물자 등은 대구가 대도시로서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마지막으로, 격동의 역사를 가졌다는 점이다.대구 인근 낙동강 유역에서 발견된 다양한 신라와 가야의 문화유적들은 대구지역이 신라와 가야가 첨예하게 대립한 현장으로 추정케 하며, 후삼국 시대 때 공산전투 등지에서 보듯 대구는 왕건과 견훤이 천하의 패권을 놓고 진검승부를 벌인 장소였다. 또한, 구한말 때는 국채보상운동을 벌여 주권수호운동을 전개하였고, 대한민국 수립 후에는 독재정권에 맞서 2.28 항거로 4.19혁명을 촉발시킨 진원지였다.조선후기 실학자 이중환은 에서 대구를 '경상도의 한복판에 위치하여 남북으로 거리가 매우 고르니 또한 땅의 형세가 훌륭한 도회지'라고 저술한 바 있다.그래서 일까? 대구는 늘 내륙의 중심지였다. 낙동강 수계와 그 지류를 끼고 있는 수륙교통의 요충지여서 조운(漕運)을 통한 물자 수송이 편리했고, 영남대로의 거점이 되어 늘 사람들로 붐비고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였다.이런 점에서 본다면, 조선 후기 대구 약령시와 서문시장의 성장은 당연했다. 또한 사통팔달의 DNA를 가진 대구에 삼성 등 많은 기업들이 창업한 것도 필연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과거 미인, 사과, 섬유로 유명했던 대구를 바라보는 외부인들의 시선은 근래에 많이 바뀐 듯하다.특히 대구를 가부장제와 집단주의에 순응하는 도시민들의 성향과 외부인들에 대한 텃세가 심한 보수적인 도시로 보는 시각이 많다. 얼마 전, 신문기사("대구사람, 권력자에 절대 항변 안해"…누리꾼 갑론을박. 매일신문 2020.04.10.)에 나온 대구사람들의 기질에 대해 말한 기사 일부를 소개할까 한다."대구 사람들은 좋게 말해 예의바르고 안 좋은 일이 있어도 당사자 앞에서는 상당수가 절대 나쁜 말을 않는다.(중략) 나쁘게 말하면 권력자 내지 힘 있는 주체나 세력에게 굉장히 순응하는, 절대 튀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 (중략) 대구 사람들이 겸손한 것 같으면서도 어디서 왔는지 모를 이상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중략) 한국전쟁 피해를 그다지 입지 않고 서원 같은 정통이 계속 이어지며 사고방식이 과거와 단절되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박정희 전 대통령 이후 오랜 기간 가만있어도 혜택을 받고 살아 권력자에게 더 순응하며 자부심으로 변형된, 대구만의 폐쇄적이고 답답한 정서가 정착되지 않았을까"물론 대구사람들은 이렇게 평가받는 것에 대해 억울해 하는 면도 있다. 보수정권에게는 이용당하고 진보정권에게는 홀대당하는 '호구'도시가 되었다며 울분을 토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또한 이러한 지역정서를 교묘히 이용하여 출세의 지렛대로 이용하려는 일부 여야정치인들의 모습도 보기 좋지만은 않다.그러나 대구의 특산품은 '대통령'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구는 현대 정치사의 중심이었다. 늘 그렇듯 빛과 그림자는 공존하기 마련이다. '대구·경북' 지역을 지칭하는 'TK'는 경제 개발시대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빛'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호남차별'과 '독재'라는 그림자를 만들었다.대구는 이제 'TK'를 넘어서야 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TK'라는 말은 '우리가 남이가'라는 노골적인 지역주의 선동에 속은 'TK'유권자들의 배신감과 상실감을 이용해 만든 용어이기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특히 대구와 경북의 협력은 좋지만 너무 'TK'브랜드에만 집착할 경우, 과거 영남 전체를 아우르고 호남, 충청 등 삼남의 유통·물류의 중심지였던 대구의 역사적 위상을 약화시킬 수 있으며 글로벌 도시로의 성장을 꿈꾸는 대구의 도시 브랜드를 희석시킬 우려도 있다.대구는 늘 그랬든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해 왔다. 특히 최근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대구시민들이 외롭고 힘든 싸움을 하며 버텼기에, 수도권을 비롯한 타 지역들이 코로나19에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고 본다.한반도의 지도를 보면, 남으로는 창원에서 시작하는 구마고속도로가, 북으로는 춘천에서 시작하는 중앙고속도로가, 동해와 서해를 잇는 새만금포항고속도로가 절묘하게 대구를 지나간다. 사통팔달 교통의 요지인 대구라는 도시는 폐쇄적인 보수도시의 이미지보다는 개방적인 사고, 다원적인 가치관, 텃새 없이 모두에게 기회가 열려있는 도시의 이미지를 가져야만 된다고 생각한다.이제 'TK'라는 울타리를 버리자. 'TK'의 '대구'가 아닌 세계 속에 'DAEGU'가 되어보자.이상철 칼럼니스트

2020-09-27 06:30:00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윤덕희(1685-1766), ‘독서하는 여인’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윤덕희(1685-1766), ‘독서하는 여인’

고개를 약간 수그려 내려 깐 눈이 책을 향하고 손가락으로 글줄을 짚어가며 책을 읽는 젊은 여성을 그렸다. 독서하는 여성을 그린 유일한 조선시대 그림이 아닌가 한다. 배경에 화조화가 그려진 삽병(揷屛)이 있고 그 뒤로 무성한 파초, 난간이 있는 것은 중국 화보(畵譜) 풍이지만, 사각의자에 앉은 주인공은 이마 위쪽으로 둥글게 돌린 얹은머리와 치마저고리를 입은 조선 여성이다. 남색 삼회장의 푸른 저고리와 옅은 색 치마를 입은 수수한 차림새는 미인도의 일종인 중국의 독서미인도류와 크게 다르다. 여성 인물이 온전한 주체로서 기품 있게 그려진 예외적이고 귀한 그림이다.조선은 초상화 왕국이라 할 정도로 수많은 명품이 남아 있지만 여성상은 극히 드물다. 고려의 유풍이 있던 초기와 채용신이 활약하는 말기에 부부초상화가 한 벌로 그려지면서 부인초상이 극소수 남아 있는 정도이다. 그런 중에 계월향, 최연홍의 인물상이 전하는 것 또한 조선의 문화 환경을 반영한다. 기생을 그린 이 2점은 특수한 직역에 종사하는 이상적 여성상이어서 그림으로 남게 되었는데 핍진한 초상화라기보다 미인도 범주에 속한다. 계월향은 평양 기생이고 최연홍은 평안도 가산의 청기(廳妓)이다. 이들은 각각 임진왜란과 홍경래 난이 일어났을 때 의열(義烈)을 실천한 의기(義妓)였다. 정절이 남다르거나 특출한 재능을 지닌 기생을 절기(節妓), 시기(詩妓), 가기(歌妓), 성기(聲妓), 무기(舞妓), 현기(弦妓), 금기(琴妓) 등으로 불렀다.'독서하는 여인'은 윤두서의 아들 윤덕희의 풍속화이다. 윤덕희는 아버지 윤두서가 개척한 조선후기 회화의 신세계인 풍속화를 계승했고, 윤덕희의 아들 윤용도 이 가풍을 이었다. 풍속화는 해남 윤씨 집안에서 삼대로 이어지며 한 때의 시도나 실험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조영석이 나타나 뿌리를 내리게 되고 김홍도가 크게 발전시켜 새로운 장르로 만개하게 되었다.윤두서는 어떻게 선구자가 될 수 있었을까. 책을 통해서였다. 밖으로부터의 소식을 책을 통해 섭취한 것이 윤두서 일가 삼대가 선구적 인식을 공유한 중요한 동력이었다. 녹우당(綠雨堂)으로 불리는 해남 윤씨 종가는 책이 많기로 유명해 '해남윤씨군서목록'으로 1927년경 정리되었는데 그 중 중국에서 간행된 출판물이 2천600여종이나 된다. 그림과 관련되는 역대 문인화가들의 문집, 화론서를 비롯해 화보류도 많았다. 해남윤씨 일가는 책을 통해 조선 바깥을 공부했고 거기에서 얻은 통찰을 자신과 일상의 주변에 대한 깊은 성찰로서 실천했다. 그 중 하나가 삼대로 이어진 풍속화이다. 녹우당은 윤두서의 외증손자인 정약용이 강진에 유배되어 있을 때 드나들던 도서관이었고, 대흥사에 머물며 초의선사의 가르침을 받던 허련이 화첩과 화보를 빌려보며 화가의 꿈을 키운 미술관이었다. 이 '독서하는 여인'도 녹우당의 책들이 있었기 때문에 나왔을 것 같다.

2020-09-27 06:30:00

[광장] 공존의 정원 랑데부 정원

[광장] 공존의 정원 랑데부 정원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인지, 최근 인간과 자연의 공존에 대한 관심이 강해지고 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란 인간도 자연계의 일원으로, 다른 생물들과 균형을 유지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겸손함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런데 의외로 일반 정원은 물론 생태정원을 돌아봐도 이와 같은 공존의 개념이 제대로 구현되고 있는 곳이 그리 흔하지 않다. 우리 대다수는 정원을 생물이 살아가는 장소로서보다는 인간이 최대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자연의 공간을 순수히 생물에게 내어준 사례도 있다.파리시 센 강변에 미테랑도서관이 있다. 책을 세워둔 듯한 도서관 건물 외형도 독특하지만, 도서관 건물 내부로 산소를 불어넣을 수 있도록 조성된 정원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이 정원은 석회암 땅을 약 3m 정도 파서 식물이 잘 살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1만㎡에 달하는 정원의 전체 면적 중 4분의 3 이상이 숲이며 나머지는 초지이다. 침엽수 위주의 큰 나무가 숲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으며 그중 100여 그루의 구주소나무는 노르망디 지역 숲에서 옮겨온 것이다.미테랑도서관의 정원 조성에서 가장 특별한 점은 조성 후 13년 동안 정원사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정원에 들어갈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곳은 요즘도 사람들에게 쉽게 개방되지 않고 있다. 매년 6월 랑데부의 날 3일간만 예약 없이 방문할 수 있고, 방문 예약의 경우도 월 2~4회 정도로 제한하고 있다. 정원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45분 이내이며 가이드가 동반된다. 이런 노력 덕분에 수많은 동식물과 곤충이 이 정원에 터전을 잡고 안전하게 살고 있다. 말 그대로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정원 조성을 놓고 본다면 우리 사회는 여전히 공존의 참의미에 닿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연못 정원을 조성할 때 물 안과 물 밖을 경계 지어 안은 생물의 공간, 밖은 사람의 공간으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그런데 세밀하게 둘러보면 작은 동물이나 곤충은 한곳에서만 붙박은 듯 살지 않는다.그들은 물가에서 알의 형태로 있다가 어느 정도 자라면 풀숲에서 생활하는데 풀숲은 이미 사람의 공간으로 정해져 있어 그들을 위한 공간이 없다. 사람들이 자신의 공간을 다른 생물들에게 양보해 주지 않는다면, 인간만 존재하는 기묘한 세상이 눈앞에 펼쳐질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사람과 식물만으로 자연이 지속될 수는 없다. 그곳에는 작은 동물과 곤충도 있어야 한다. 생물다양성이 존재해야 인간의 삶도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오래전 가족과 미국 캘리포니아주를 여행하다가 철나비가 서식하는 여관에서 묵은 적이 있다. 마침 나비가 부화하는 시기로 여관 한쪽에는 집 뒷마당 출입을 통제한다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나비에 대한 주인의 세심한 배려 때문에 조용한 여행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참으로 감동적인 경험이었다.21세기, 인간의 최대 화두가 기후변화 대응과 생물다양성의 증진이다. 구호에 그치지 말고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다양하게 세심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도시 정원 어딘가에 작은 생물들의 서식 공간을 조성하여 작은 동물이나 곤충이 살 수 있도록 하는 데서 그 첫걸음을 시작해보자. 아침이 되면 사람은 활동이 시작되지만 자연 속의 생물은 대개가 야행성이므로 수면을 해야 한다는 것도 기억해두자. 사람과 생물의 공존은 이처럼 사람이 자연 세계를 이해할 때 가능해질 수 있을 것이다.

2020-09-25 15:22:35

[시대산책] 월북자 총살

[시대산책] 월북자 총살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 공무원인 이모 씨가 9월 21일 오전 1시 30분경 실종되어 북한 황해남도 강령반도 등산곶 부근 바다에서 북한 해상경비병의 총격에 의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실족, 자살 기도, 월북 등 3가지 가능성이 있는데 신발을 벗어놓고 간 것, 구명조끼와 부유물을 갖고 간 것을 놓고 볼 때 실족이나 자살 기도의 가능성은 거의 없다.어업지도원이었기 때문에 그 시간 조류의 방향을 정확히 알고 조류를 이용해서 북한에 가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때문에 중국을 통해서 월북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워졌고 더 추워지면 바다를 통해 월북하는 것도 어려워지기 때문에 이 시기에 실행한 것으로 보인다.직업이 안정적인 공무원에다가 처자식이 있는 40대 가장이 월북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탈북자나 월북자에는 온갖 다양한 사람들이 다 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그것이 말이 안 되는 이야기는 아니다.이 씨가 오전 1시 30분쯤 실종되어 북한 당국에 발견된 것이 오후 3시 30분쯤이었으며 시신이 불타는 것이 목격된 것은 오후 9시 11분이었다.시신을 태우기 직전 총격을 가한 것으로 본다면 발견해서 총을 쏘기까지 대략 5시간 30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물속에서 기진맥진해 있는 사람을 상대로 장시간 신문을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고 아마 위에 보고해서 지시를 받기까지 시간이 걸린 것으로 보인다.장시간이 소요된 것을 보면 여러 단계를 거쳐서 최고위층까지 보고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상대가 월북자이고 특히 신분이 공무원이라고 하니 최고위층의 재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민간인을 상대로, 그것도 북한을 동경해서 북한을 찾아온 월북자를 상대로, 비무장 상태로 물속에서 기진맥진해 있는 사람을 상대로, 일시적인 착오나 흥분 상태에서 총격한 것도 아니고 지휘 계통을 정상적으로 밟아서 총격하고 불태웠다는 것은 정말 충격적인 일이다. 일부 언론에 '화장'이라는 표현도 나오던데 화장이라는 것은 장례 절차를 말하는 것이고 이건 장례와는 상관없이 방역을 위해 동물을 태우듯이 그냥 태워버린 것일 뿐 '화장'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북한이 월북자들을 좋아할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북한은 월북자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중요한 정보를 가져오거나 이용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 오면 받아주지만 그런 사람은 100명 중에 1명꼴도 되지 않고 나머지 월북 기도자들은 거의 돌려보낸다.1990년대까지는 월북자들을 받는 경우가 많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아주 특별한 경우 외에는 거의 돌려보낸다. 월북자들이 북한의 경제 상황이나 인권 상황에 대해 불만을 토로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다 보니 월북자들을 관리하기도 어렵고 득보다 실이 훨씬 많다고 생각해서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월북자들을 받지 않고 돌려보낸다.이번 이 씨의 경우 공무원이기 때문에 북한에서 흥미를 가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요즘은 웬만한 정보는 인터넷으로 수집이 가능하기 때문에 정보기관 소속이거나 군의 특수 부서 장교가 아니라면 북한에서 흥미를 가지기 어렵다.북한이 이런 극단적인 짓까지 하는 것은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체제에 대한 자신감도 없고 방역에 대한 자신감도 없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의 경우에도 사육 돼지 마릿수에 비례해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이 북한이다.돼지의 3분의 2가 죽었느니 절반이 죽었느니 다양한 이야기가 많은데 확인은 되지 않지만 어쨌든 세계에서 피해 1위라는 것은 확실하다. 북한 전역이 초토화되었고 북한이 효율적인 방역 조치를 했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코로나19의 경우에도 방역에 자신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건 국경을 넘지 못 하게 하려고 극단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는 것이다.북한은 생명이나 인권에 대한 인식이나 태도가 우리와 다르다. 그냥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 상상의 범위를 넘어설 정도로 다르다. 우리가 북한과 상호 적대를 하든, 화해 협력을 하든, 통일을 하든 그런 인식의 기반 위에서 해야 할 것이다.

2020-09-24 15:54:25

[기고] 추석에도 우리 집 안전은 화재경보기 설치부터

[기고] 추석에도 우리 집 안전은 화재경보기 설치부터

어느덧 풍요로운 가을과 함께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이 성큼 다가왔다.추석은 가족 친지들이 모여 한 해에 있었던 크고 작은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고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을 먹으며 웃음꽃과 덕담을 나누는 날이지만, 올해는 코로나19라는 지금껏 겪어보지 못했던 감염병으로 인해 명절 분위기가 예년 같지 않다.하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은 화재는 항상 우리 주변을 위협하고 있으며, 부주의라는 불청객과 함께 찾아온다는 것이다. 즐거움만 가득해야 할 명절이 사소한 부주의로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 될 수도 있다.소방청의 최근 8년간 화재 발생 현황 통계자료에 의하면 34만 건의 화재 중 주택 화재는 6만2천 건 정도로 전체 화재의 18.3%인 반면, 주택 화재 사망자 비율은 전체의 47%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 인명 피해에 매우 취약한 것을 알 수 있다.그렇다면 주택 화재가 인명 피해에 취약한 이유는 무엇일까? 주택 화재 사망자는 70세 이상이 전체의 34.3%를 차지하고 있으며, 자정부터 오전 6시에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대부분 심야 취약시간대에 발생한 화재를 빨리 인지하지 못해 사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실내가 연기로 가득 차기 전에 화재가 발생한 것을 알 수만 있다면, 익숙한 공간인 집에서 밖으로 대피하지 못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잠도 자지 않고 24시간 감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자는 동안에 화재가 발생한다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해답은 집에 주택용 소방시설을 설치하는 것이다. 주택용 소방시설은 인근의 대형마트 또는 인터넷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고, 소방서에 문의하면 집에서 가장 가까운 구입처를 안내해준다. 가격도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능력에 비하면 엄청나게 저렴한 셈이다.그러나 모든 주택에 주택용 소방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한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일로부터 3년 7개월이 지난 지금도 전국의 설치율은 56%에 불과하다. 법적 의무 사항이지만 위반에 대한 벌칙이나 처벌 조항이 없고, 개인 사유지라 설치 여부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대구 수성소방서에서는 주택용 소방시설 설치율을 향상시키기 위한 팝업지원센터와 원스톱지원센터 등을 운영하여 최근 5년간 약 1만여 가구에 무상 보급과 설치 지원 사업을 실시했다. 또한 '119 시민안전 서포터즈' 프로그램을 통해 소방시설 설치와 주택의 화재안전컨설팅을 병행하는 등 안전한 주거 환경을 만들고자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주택용 소방시설은 우리 가족을 지키는 안전 지킴이로,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의무다. 미뤄왔던 주택용 소방시설 설치에 어떤 계기가 필요하다면, 코로나19 확산세로 '언택트(Untact) 추석'이 되어버린 지금이 바로 적기라고 생각한다.언택트 추석으로 본인과 가족의 건강을 생각해 고향을 방문하기보다는 선물로 마음을 전하고자 한다면, 주택용 소방시설로 안전을 선물해 보는 것은 어떨까?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안심'을 나누는 뜻깊은 명절이 되기를 바라본다.

2020-09-24 15:49:06

[매일춘추] '조큐'의 오래달리기 - 조수현 현대백화점 대구점 갤러리 H 큐레이터

[매일춘추] '조큐'의 오래달리기 - 조수현 현대백화점 대구점 갤러리 H 큐레이터

큐레이터는 긴 레이스를 오래달리기해야 하는 직업이다. 이 생각은 얼마 전 한 관람객으로부터 받은 감동의 선물로 인해 더욱 짙어졌다. 그 선물은 바로 전시 방명록에 남긴 메시지였다. 잠깐 들른 전시회인데 감동을 받았고, 인상적인 작품을 전시해 주어서 고맙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이 공감의 한마디는 앞으로 관람객과 다양한 소통을 할 수 있는 기획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예술 무대에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세계적인 큐레이터들처럼 '조큐'(조수현 큐레이터의 줄임말)는 오래달리기의 완주를 꿈꾼다. 그 레이스는 신진 작가 기획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 , 등 관람객의 참여가 꽤 활발하게 이루어진 전시들이었다.일반적으로 큐레이터는 관람객을 위한 전시 기획,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연구, 작품 수집 및 보존 관리, 소장품의 학술적 연구 등 전시에 대한 전반적인 관리를 맡고 있다. 전시장에 걸린 작품의 높낮이가 불과 몇 센티미터의 차이에도 전시장의 분위기가 크게 차이 난다는 것으로 볼 때, 큐레이팅을 누가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전시의 결과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이번 달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설립 150년 만에 미 원주민 출신의 큐레이터를 고용하였다. 원주민 예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비판을 받은 적 있는 미술관 측은 원주민 출신 큐레이터의 전시 기획으로 새로운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또 광주비엔날레를 기획한 한 큐레이터는 전시 관람에 있어 무엇보다도 '즐김'을 권했다. 예술은 그저 나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여유 있게 감상해보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다. 큐레이터의 의도가 관람객에게도 전해졌던 것일까? 그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 1천15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관람 만족도가 무려 70.4%였다고 전한다.그리고 세계적인 큐레이터로 불리는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는 무엇보다도 작가들이 가진 아이디어가 최대한 실현되도록 노력을 기울였고, 예술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일어난다고 말했다. 필자는 그들의 의도와 의견에 공감한다. 무엇보다도 관람객의 참여가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전시는 그 가치가 더욱 빛나기 때문이다. 이처럼 세계무대에서 영향력을 펼치고 있는 큐레이터들은 끊임없는 학문적 연구와 전시 기획의 실무 경험을 쌓은 것은 물론 예술에 대한 열정이 뒷받침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오래달리기의 결과일 것이다.필자는 관람객들의 예술에 대한 관심과 전시 관람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길 소망한다. 공감이 이루어진 관람객의 피드백은 큐레이터들에게 새로운 용기를 준다. 필자는 작가와의 공감, 작품과의 공감, 관람객들과의 공감에 더 많은 비중을 둔 전시를 기획하고 싶다. 예술을 접할 기회가 부족했던 사람들에게 예술을 쉽게 즐기며 감상할 수 있도록 말이다. 한국의 예술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큐레이터들처럼 조큐의 오래달리기는 완주를 향해 달리는 중이다.

2020-09-24 14:21:17

[기고] 문을 열면 대구가 바뀐다

[기고] 문을 열면 대구가 바뀐다

'닫힌 문안에서는 부정의 씨앗이 싹트고 부패할 수 있어'지난 7월 대한민국 전역에 박원순 서울시장의 사망이라는 충격적인 뉴스가 전해졌다. 성추행 의혹으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또한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제명 처분을 받고 현재 수사 중에 있다. 기대주였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영어의 몸이다.자치단체장의 사무실은 집무실과 비서실 등으로 구분되는데 위 사건들의 공통점은 모두 폐쇄적인 공간인 집무실에서 사건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문을 닫아놓으면 외부인의 눈을 피할 수 있는 밀실이 되는 것이다. 비단 성범죄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수많은 부정행위들은 다른 사람의 눈을 벗어났을 때,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일어난다. 햇볕이 들지 않는 음지는 곰팡이가 피듯이 닫힌 문 안에서는 부정의 씨앗이 싹트고 부패할 수 있다.'떳떳하고 자신감 있는 기관 단체가 자신감 있게 일에 몰두 할 수 있어'이같은 사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필자는 '문열기' 운동을 제안한다. 몇 해 전 필자는 운영하는 회사의 집무실을 전면 리모델링하였다. 내부가 보이지 않는 벽을 완전히 허물고 밖에서도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로 교체했다. 동시에 회사 모든 자료를 한 눈에 보일 수 있도록 정리하도록 했다. 서랍, 수납장 등 보이지 않는 곳에 들어 있는 자료 또한 모두 꺼내도록 하였다. 이것이 바로 필자가 주창하는 '문열기' 운동의 핵심이다.다른 사람이 언제든 나의 행동을 확인 할 수 있는 환경이 될 때 부정한 행위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다. 부정행위가 없는 떳떳한 리더는 내부고발자 등으로부터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고 자신감이 생기게 된다. 집단은 더 강해지고 쉽게 위험에 빠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필자는 십여 년 전 세무 관계의 업무 처리 미숙으로 회사를 크게 위험에 빠뜨리게 한 적이 있었다. 그날 이후 필자는 비록 작은 회사지만 세금을 내지 않는 돈은 단돈 1원도 용납될 수 없다는 원칙을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다. 이 원칙은 전 직원 모두 어길 수 없도록 공표했다. 또한 대표와 간부실은 물론 경리 서류 보관 상자와 문서창고 등에 보이지 않는 곳이 없게 만들었다. 그 결과 크기는 작지만 자신감이 있고 빠르진 않지만 건강한 회사가 되었다. 공직사회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문을 열고 음지나 그늘 아니면 사각지대가 없는 열린 사무실을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모든 공공건물의 문을 열고 투명해져야 유혹에서 벗어나 미래로 나아갈 수 있어'많은 사람들이 대구경북을 보수적인 지역이라고 한다. 보수의 의미는 따뜻하고 관대함도 있지만 낡고 새롭지 않다는 의미 또한 공존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지역의 모든 관공서, 관변단체와 모든 사업장과 회사가 문을 활짝 열어 햇볕이 들게 하면 대구가 달라지고 경북이 달라지고 대구경북을 보는 눈도 달라질 것이다. 낡은 보수의 이미지에서 밝고 열린, 힘 있고 미래로 가는 지역 이미지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마침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의 헌신으로 통합신공항 사업이 궤도에 올랐고, 대구시 신청사 이전도 확정돼 대구와 경북에 서광이 비치고 있지 않는가. 이 때 위대한 시민 정신으로 우리 모두 문을 열고 개방된 곳으로 나서면 어떨까. 대구경북이 함께 상생의 정신으로 문을 활짝 열고 희망차게 미래로 나아갈 것을 제안한다.

2020-09-23 15:37:00

[도태우의 새론새평] 민주라는 이름의 독재

[도태우의 새론새평] 민주라는 이름의 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국민, 정권을 비판하는 언론, 정권을 수사하는 검찰, 정권을 단죄하는 법원, 이 모두를 개혁 대상이라 칭하며, 아무의 말도 듣지 않고 '정권보위부'로 의심되는 공수처를 밀어붙이는 정당의 이름은, 놀랍게도 민주(民主)당이다.민주와 독재가 동의어라는 듯한 현 정권의 오만무도함 앞에서 민주정(democracy)의 뜻을 헤아려 본다. 민주정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성기의 아테네는 군주정과 같은 1인 지배체제, 귀족정과 같은 소수 지배체제와 대비되는 다수(demos)의 지배체제(cracy), 즉 민주적 시민정치체제로 운영되었다.민주정이 잘 운영될 때 아테네는 빈자의 자유와 귀족들의 부가 연결되고 임시방편의 포고령이 아니라 오랜 역사 속에서 다듬어진 법률이 모든 것 위에 군림하여 눈부신 번영을 이룩했다.하지만, 민주정은 선동에 취약한 약점이 있다. 선동가가 민중을 격동시키고, 선동에 휘둘린 광장의 분노가 법치를 집어삼킬 때, 군중의 뜻으로 행해지는 즉결처분은 폭군의 독재와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끝은 더 심한 독재자의 출현이었다.그로부터 2천 년이 지난 19세기 유럽에서 공산주의 이론가들은 역사에서 얻어진 민중독재의 경험을 합리화하여 '독재가 곧 민주'라는 충격적인 교의를 수립했다.이들의 주장은 이러하다. 모든 것은 계급적이며 19세기 영국의 자유민주주의는 부르주아(자본가, 유산자) 계급이 프롤레타리아(노동자, 무산자) 계급을 억압하는 독재기구일 뿐이다. 사회주의 혁명 후 자본가 계급에 대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독재'는 무산자 계급 자신에게는 '민주주의'를 행하는 것이다. 적대 계급에 대해서는 독재, 자기 계급에 대해서는 민주주의를 행하는 것이 필연적인 역사적 현실이다. 그리하여 '독재는 곧 민주'인 것이다.이런 사상에 물든 사람들에게, 조국, 황운하, 추미애, 윤미향의 지지자들에 대한 민주는 최재형, 박근혜, 이명박, 민경욱의 지지자들에 대한 독재와 모순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당연하고 필요하기까지 하다.이들은 심지어 4·15 총선이 부정선거였다 하더라도 무엇이 대수냐고 반문한다. "북풍 공작, 안보 이벤트를 이용한 저들의 선거는 수십 년간 언제나 부정선거였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하지만, '민주는 독재와 같다'라는 생각의 위험성은 2천만 명을 죽인 스탈린의 강제수용소, 중국의 끔찍한 문화대혁명, 캄보디아의 킬링 필드,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라는 현실로 나타났다. 그 와중에도 그들은 자신을 진보적 민주주의자, 인민민주주의자,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자라고 불렀다.이러한 현대적 야만의 대척점에 이승만 대통령이 있다. 그는 1948년 8월 15일 건국 기념사에서 "민주정체에 요소는 개인의 근본적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다.이승만은 참된 민주가 자유민주뿐임을 알고 있었다. 그 자유민주 정치체제의 핵심은 개개 인간의 천부인권적인 근본적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었다.이승만이 말한 개인에는 예외가 없다. 적폐 세력이기 때문에, 여론의 지탄을 받기 때문에 근본적 자유가 박탈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피와 살을 가진 한 사람 한 사람의 근본적 자유를 법의 지배로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 자유민주 정치체제의 핵심 요소라는 것이다.최근 4년간 우리 사회는 방향성의 혼란 속에 큰 진통을 겪고 있다. 그 이유는 건국 이념과 다른 방향을 추구하는 정치 세력이 자신의 반헌법적 본질을 숨긴 채 국가 상층부를 장악한 데 있다고 본다.자유를 얻는 것만큼이나 자유를 지키는 것이 어렵다고 한다. 이제라도 우린 자유와 법치가 없는 거짓 민주의 위험성을 깨닫고, 자유와 법치의 성장이란 관점에서 한국 현대사의 기억을 새롭게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2020-09-23 14:37:41

[매일춘추] 대구는 꿈이 있는 도시다 - 서성희 대구영상미디어센터장

[매일춘추] 대구는 꿈이 있는 도시다 - 서성희 대구영상미디어센터장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이후 특정 집단을 비하하고 공격하는 양상을 보였다. 코로나19 집단감염의 양상에 따라 중국인, 신천지, 대구, 성소수자 등 특정 집단을 원인 제공자로 낙인찍고 혐오 표현을 쏟아냈다. 한 유명 인사는 "코로나 사태는 대구 사태"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익명에 기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대구 혐오와 비하, 멸시 발언의 수위가 더욱 노골적이었다. 올해 1월에서 5월 사이 온라인 커뮤니티의 글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대구 지역 혐오 발언은 5만 9천108건으로 확인된다.세계적인 감염이라는 재난 상황을 특정 집단에 책임을 떠넘기고 비난의 대상으로 삼는 건 옳지 않은 행동이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부모라도 다른 사람이 욕하면 싫은 법이다. 듣는 자식에게 엄청난 상처가 된다. 상식 이하의 발언을 한 사람들을 탓할 생각은 없다. 그러기엔 대구 시민은 당시 의연하게 잘 대처했고, 스스로도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두 가지 측면에서 태도를 정리할 필요는 있다.먼저 혐오 발언을 한 타인에게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인가. 온라인 혐오 표현은 옳지 않은 행동이라는 사회적 인식을 확산하고 혐오 표현을 근절하기 위한 법적 규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단순히 혐오 표현이 옳지 않다는 지적이나 처벌을 강화하는 것보다 새로운 프레임으로 인식을 전환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대구를 향한 혐오 표현을 '힘내라 대구·경북 캠페인'이나 '덕분에 캠페인'으로 전환해서 혐오의 흐름이 많이 약화되었다.다른 하나는 타인보다 자기를 점검하는 시기로 삼는 태도이다. 위기가 왔을 때 잘 극복하는 비결은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비난한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문제에 집중할 때 해결 가능하다. 자신을 비난할 필요도 자책할 필요도 없다. 문제는 어떠한 경우에도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중요하다. 그 시점부터 나는 대구가 어떤 도시이고 어떤 도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적기 시작했다. 12주를 연속해서 적다 보니 내가 바라는 대구가 보였다.'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다. 생각은 물리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지속적으로 생각하다 보면 생각은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자라게 한다. 주위를 둘러보자.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이미 누군가의 생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대구 시민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어떤 도시가 좋은 도시인지 어떤 도시가 되면 건강한 도시가 될지 깊이 생각해보자.'꿈은 이루어진다.' 도시에 대한 내 꿈을 글로 적으니 목표가 되었다. 작은 목표 중 한두 개는 이미 이루어지기도 했다. 더 큰 목표라면 잘게 나누어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하나씩 실행해 나간다면 대구라는 건강하고 멋진 도시에서 행복하게 사는 우리의 꿈이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2020-09-23 14:15:59

[최재목의 아침놀] 철면피(鐵面皮)에서 법면피(法面皮)로

[최재목의 아침놀] 철면피(鐵面皮)에서 법면피(法面皮)로

정치는 게임이다. 어쨌든 이겨야 한다. 지고나면, 뭣도 아니다. 과거에 '수신(修身) 다음 평천하(平天下)'라는 말을, '평천하하면 수신 된다'고 바꿔 말한 사람이 있었다. 생각해 보니, 정치판엔 딱 맞는 말 같다. 천하를 얻으면 게임은 끝이다. 정치판에 자비란 없고, 힘의 게임만 있다. 여기엔 온갖 기법이 동원되나 '법'을 활용하는 것보다 합리적인 명분은 없다.그러니 '법 앞에 평등하다'는 말은 거짓이거나 약자들의 순진한 호소이다. 법은 양날의 칼이라 같은 사안이라도 죽이거나 살릴 수 있다. 마치 '권'(權)이란 것이 권모술수의 '권력, 패권'으로도, 인간을 지키는 '권리, 권익, 권한'으로도 되듯이 말이다.지금은 법의 시대이다. 법 없이 사는 것이 아니라 법대로 살아가야 한다. 사회적 에토스, 내면의 덕성에 기초한 윤리・도덕보다도 국민적 합의로 만든 법이 근간이다. 법의 테두리 내에서 권리와 자유를 누리며, 의무와 책임을 다하면 된다. 민주 시민이란 그런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 무슨 짓을 해도 된다!'는 말도 된다.윤리・도덕적으로 비난 받을 짓을 해도 법에 위반되지 않으면 그만이다. 전통사회에서는 '수치・치욕스럽다', '얼굴에 먹칠을 했다, 체면이 말이 아니다, 볼 낯이 없다'는 등의 말을 하곤 했다. 윤리・도덕이 지배하던 '얼굴'의 사회에서 '부끄러움'이란 삶의 바닥에 닿는 일이다. 외부의 시선이나 내면적 양심에서, 얼굴과 귀까지 벌겋게 달아오른다는 뜻의 '부끄러울 치(恥)' 자는 '수치, 치욕, 염치'의 에토스를 형성했다.조선시대의 민화 "문자도"(文字圖)는 '효제충신(孝悌忠信), 예의염치(禮義廉恥)'라는 딱 여덟 글자로만 되어 있다. 당시 사람들의 윤리・도덕을 압축한 것인데, 여기서 '염치'란 실존의 번민을 껴안은 지침이다. '몰염치・파렴치'는 그야말로 갈 데까지 간 인간을 지칭한다. '청렴할 렴' 자는 '맑을 청(淸), 깨끗할 결・백(潔・白)' 자와, '부끄러울 치' 자는 '욕될 욕(辱), 부끄러울 수(羞)' 자와 잘 어울린다. 모두 양심을 깨워서 나온 글자들이다.지금은 어떤가. 과거의 '달아오를 얼굴'은 뒤로 숨었다. 대신에 '법'이라는 냉정한 사회적 장치가 얼굴을 대신한다. 따라서 윤리・도덕과 양심을 드러내는 '얼굴・낯부끄러움'은 저절로 면피(免避)되었다. 돈만 지불하면 잘난 소피스트들 즉 변호사가 깔끔하게 자신을 변호해준다. 이처럼 법이 최선이 되자 양심엔 털이 나고, 얼굴엔 철판 대신 '법판'(法板)이 깔리기 시작했다.과거의 철(鐵)면피가 이제 법(法)면피로 진화한 것이다. 간편해졌다. 마치 독도 문제가 불거지면 일본 측에서 "서로 시끄럽게 싸우지 말고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자! 평화적으로, 조용히 법적으로 해결하자!"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법정에 섰을 때, 법은 누구의 편일까. 과연 돈・힘・백(배경)을 버리고 정의의 편에 서기나 할까.염치가 죽은 지 오래다. 뻔뻔한 것이 차라리 멋져 보인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는 양심어린 고뇌와 등져 살아도 태연하다. 아니 세상은 대놓고 "뻔뻔하게 살아라!"고 한다. 잘못을 해도 부디 안색을 바꾸지 말고, 또박또박 말을 둘러대어야 한다고. 감정의 기복을 드러내는 것이 얼굴이니, 고개를 딱 쳐들고, 불안히 눈알을 굴리지 말라고 한다. 안색의 동요는 어딘지 찔리는 구석이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기에, 그 풍경을 조용히 해야 함을 강조한다.법을 어겼더라도 태연히 절대 안 했다고 우선 딱 잡아떼라! 만일 증거가 나오면 별것 아니라고 말하라! 차츰 사실이 밝혀지면, '검찰에 가서 소상히 밝히겠다, 검찰 조사에 성실하게 임하겠다'고 하여, 사안 자체를 개인적 차원에서 '법적' 문제로 시선을 돌려라! 사건이 더 밝혀지면, 당당하게 '당신들은 안 그랬냐?'는 식으로 대들어라! 하다하다 안 되면, 고개를 '조금' 숙이고, 죄송하다는 '척' 말하면 된다. 법면피란 이런 것이다. 자, 이래도 좋은가? 그럼 계속 이대로 살아보자.

2020-09-23 13:00:00

[종교칼럼] 베풀 수 있는 마음

[종교칼럼] 베풀 수 있는 마음

예부터 우리 민족은 베풀고 나누어 주는데 익숙해 있다. 음식을 장만해도 이웃을 생각해 양을 많이 하여 함께 나누는 정이 있고, 가을이 되어서 감나무에 감을 따더라도 매정하게 모두 따는 것이 아니라 한두 개는 까치밥으로 두어서 겨울에 굶어 죽지 않게 하는 자비심이 있다. 논두렁에 콩을 심을 때도 "콩을 하나만 심어도 되는데 왜 세 알씩 넣습니까?" 하고 여쭈어 보면 할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하신다. "날아 다니는 새도 한 알 먹어야 되고 기어 다니는 벌레도 한 알 먹어야 하고 나머지 남는 것은 싹을 틔운다"라고 말씀하신다.그리고 차와 술을 드릴 때도 잔을 넘치도록 드리는 것은 그릇보다 곱으로 줘야 되겠다는 넉넉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재물이 넘쳐서 그런 마음을 내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쓰는 것을 조금 아껴서 나누고 함께했던 것이다.이렇듯 많지는 않지만 베푸는 것을 좋아하는 민족임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요즘 근래에 와서는 우리 사회가 많이 변해가고 있다. 베풀기보다는 남의 재물을 탐하려 들고 옆집이 굶어 죽어도 모르고 어려움에 처해 있어도 알지 못하며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나에게 피해가 올까 봐 그리고 두려움 때문에 먼저 벽을 쌓는다. 아니 이기적인 생각에 익숙해져 버렸다. 그러다 보니 가까운 부모 친지들에게까지도 너무 멀어져만 간다. 혼자 외로움에 지쳐서 죽어가는 사람도 볼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점점 삭막해져가는 인심을 보면서 부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탐내고 인색하며 가난을 벗어나지 못함은 전에 은혜로 베풀지 않았던 것이며 은덕을 누리고자 한다면 마땅히 널리 베풀어야 하리라"라고.(잡아함경) 베푼다는 뜻은 보시한다는 뜻과 같다. 자비의 마음으로 다른 이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베풀어 주는 것을 뜻한다. 남에게 보시하려는 자는 내 것은 없으면서 남에게 주는 습관이 들어 있고 남에게 보시하기를 싫어하는 자는 항상 내 것은 있고 남에게 줄 것은 없다. 재산이 모이면 그때 해야지 하고 미루기가 일쑤다. 백유경에 보면 "잔칫날을 앞두고 손님들에게 대접할 우유를 짜 모으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날마다 우유를 짜 모으면 저장할 곳도 맛도 덜하니 아예 배 속에다 고이도록 놓아두었다가 한꺼번에 짜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잔칫날이 되어 소에게 가서 젖을 짜려 했으나 젖은 매일 짜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리 짜도 나오지 않았다."어리석은 사람도 이와 같은 것이다. 재산이 모이면 그때 한꺼번에 보시하면 되지! 하고 다음으로 미루지만 재산이 모이기도 전에 쓸 일이 더 많이 생겨 복도 짓지 못하고 인연만 놓치고 마는 것이다. 자비로써 베푸는 것은 반드시 악한 길을 막고 아무리 원결이 있다 하여도 베푸는 것에는 이기지 못하며 삿된 것이 무너지고 죽음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도리이다. 있을 때 베풀지 않으면 자신이 궁핍할 때 도와주는 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방등경에는 "음식을 보시하면 큰 힘을 얻고, 의복을 보시하면 좋은 얼굴을 얻고, 수레를 보시하면 안락을 얻고, 등불을 보시하면 밝은 눈을 얻고, 집에서 손님을 기다리면 그것을 일체 보시라 하고 법으로써 중생을 가르쳐 주면 그것을 곧 단 이슬 보시라 한다"라고 되어 있다.그러나 보시를 하는 데는 세 가지가 청정(삼륜청정)해야 한다. 첫째, 보시자가 베푼다는 상에 집착하여 내가 하니까 받아야 된다는 보상 심리가 있어서는 안 되며 바람이 없는 무주상 보시를 해야 한다. 둘째, 받는 사람이다. 받는 사람도 받았다는 생각도 없어야 하며 부담스럽다든가 따진다든가 하는 헤아림이 없어야 한다. 셋째, 보시하는 물건이 뇌물이 되어서도 안 되고 무엇을 바라고 하는 물건도 안 된다. 이 세 가지가 청정해야 진정한 보시라고 할 수 있다. 얼마 남지 않아 추석이 다가오니 나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여 찾아보지 않았던 인근 친척, 이웃 등 모든 분들을 생각할 때인 것 같다.(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전화라도 한 통하는 자비스러움이 깃들여진다면….)

2020-09-23 09:56:39

[매일춘추] 릴케 '가을날' 단상 - 이덕형 경북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매일춘추] 릴케 '가을날' 단상 - 이덕형 경북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조석으로 소슬바람 불어오니 가을이 오기는 온 모양이다. '시절이 하수상하여' 자연의 섭리마저 어찌되나 싶었는데, 다행이다. 곧 추석,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큰 명절도 올해는 예년 같지 않다. 사색의 계절에 새삼 행복이 무엇인지, 우리는 진정 행복한지를 자문해 본다. 학창시절 누구나 한번쯤 심취해 봤음직한 릴케의 시 '가을날'을 통해서다. "주여, 시간이 되었습니다. 여름은 정말 위대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올려놓으시고,/ 들판에는 바람을 풀어 주소서." 대자연의 위대함에 대한 찬사는 제2연으로 이어진다. "마지막 결실이 꽉 차도록 명해 주시고,/ 그 결실에 이틀만 더 남쪽의 따스한 낮을 주시어/ 무르익도록 재촉하시고,/ 무거워져가는 포도에 마지막 달콤함을 넣어 주소서." 1902년 27세의 청년시인 릴케는 생애 처음 방문한 월드시티 파리에서 심적·물적 어려움을 크게 겪고 있었다. 현대사회의 각종 병리현상을 목도하면서 시인은 무신론자임에도 '주님'에게 위대한 여름과 풍요로운 결실을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틀간의 따스한 낮'을 기원하는 대목에서는 '포도의 마지막 달콤함'으로 표상된 최고의 예술작품에 대한 시인의 간원이 느껴진다. 그러나 뒤이은 제3연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인간의 질서가 자연의 질서에 극명하게 대비된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더는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홀로/ 깨어 앉아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쓰며,/ 낙엽 날리는 가로수 거리를/ 이리저리 불안하게 방황할 것입니다." 문제는 '집'이다. 여기서 시인은 '집'을 구체명사가 아닌 추상명사, 곧 '고향', 그것도 '마음의 고향'으로 썼음이 분명하다. 고독과 소외와 상실의 20세기를 미리 넘겨본 것일까 시인은 현대인의 고향상실을 예감한다. 고향을 잃어버린 현대인은 한밤중에 잠깨어 낙엽 흩날리는 길거리를 서성이며 고독을 되씹을 수밖에 없다. 고도로 추상화시켜서 말한다면, 행복과 자연은 비례한다. 삶이 자연의 일부였던 지난 시대의 삶이 불편했을지언정 반드시 불행했다고만 할 수 없는 이유다. 옛사람들은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고 읊조렸지만, 지금은 산천도 인걸도 간 데 없다. 바야흐로 총체적인 고향상실, 인간상실의 시대다. 어젯밤 아파트 숲 불빛에 별빛이 사라진 신천변을 한참 지나 가창댐 산책로를 아내와 함께 걸었다. 저 멀리 북극성이 아스라이 빛을 발하는 아름다운 밤이었다. 문득 필자가 각별히 좋아하는 루카치 '소설의 이론' 첫 구절이 떠올랐다. "별이 빛나는 밤하늘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의 지도였던 시대, 별빛이 훤하게 길을 비추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세계는 넓었고 집처럼 아늑했다. 자아와 세계, 내면의 불꽃은 천공의 별빛이었고, 별빛 속에 내면의 불꽃이 감싸여 있었다." 옛날 누군가 '낙엽을 태우며' "이야기 속의 소년같이 용감해져야"겠다고 다짐했던 것처럼, 우리도 이제 잃어버린 고향을 찾는 대장정에 용감하게 나서야 하지 않을까.

2020-09-22 14:18:16

[경제칼럼] 비대면 추석과 보이스 피싱

[경제칼럼] 비대면 추석과 보이스 피싱

아침저녁으로 마주치는 선선한 날씨에 가을의 한가운데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벌써 다음 주면 추석이다. 하지만 코로나19를 겪으며 시작된 2020년 추석은 여느 명절과는 다르다. 고향과 부모님 방문 자제를 권고하는 방송과 홍보물을 보며 씁쓸함이 몰려든다.코로나19는 우리에게 비대면 사회를 강요하고 있다. 업무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가족, 친구, 동기간에도 비대면 만남을 요구하고 있다. 기존에 경험할 수 없었던 관계와 기준을 우리에게 요청하고 있다. 더욱이 해외에 다녀오면 2주간 격리돼야 한다. 해외에서 1주일 정도 일하기 위해 출국, 입국 시 2주간 총 4주간 격리됐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들었다.최근 비대면(언택트·Untact) 기술이 아니면 우리는 경제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다. 수요자와 공급자가 접촉하지 않고도 재화 또는 용역을 제공받을 수 있는 비대면이 아니면 영업이나 생존에 어려움까지 발생한다. 언택트 기술은 코로나 문제뿐만 아니라 사람 간 감정 대립이나 폭행 등의 사회 문제를 방지하고, 관련 비용도 줄일 수 있다.하지만 비대면 사회의 부작용 중 하나가 '보이스 피싱'이다. '피싱(phishing) 사기'의 일종으로 전화를 통해 신용카드 번호 등 금융 관련 정보를 알아낸 뒤 이를 범죄에 이용하는 금융사기 수법을 말한다.지난 한 해 피해액이 총 5천억~6천억원이고, 일일 평균 100여 명이 사기 피해를 입고 있으며, 단 한 사람이 20억원 넘는 피해를 입은 사례도 최근 있었다고 하니 나는 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코로나 재난지원금을 빙자하거나 생계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한 대출 빙자 사기까지 다양하다고 한다. 명절에는 그 빈도가 더욱 심하여진다고 하니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최근 보이스 피싱 피해자분들을 상담하며 왜 속게 되었는지 질문을 하니, 대출 문제로 누구를 만나서 상담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전화 통화 후 직접 만나 친절하게 상담해 주니 신뢰하고 믿었다는 것이다.심지어 수사 중인 경찰이 보이스 피싱 피해를 입었다고 전화로 연락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그 경찰을 보이스 피싱 직원이라 생각하고 바로 항의하며 그렇게 살지 말라고 타일렀다고 한다. 절박한 상황을 고려하면 그 심정이 이해가 됐다.대면형 보이스 피싱이 비대면 사회에서 활약하고 있는 것이다. 비대면형 보이스 피싱보다 대면형은 일반적으로 평균 피해액이 크다.코로나바이러스 장기화로 비대면 거래가 늘어나고 있지만 대면형 보이스 피싱은 그 외로운 틈을 파고든다. 일반적으로 일반적인 채권추심회사로 위장하고 대출이나 취업이 어려운 사람들을 노린다.또한 아들 딸 등 가족을 사칭하며 신분증을 사진 찍어 보내 달라는 유형도 있다. 신분증이 확보되면 휴대전화를 개통한 뒤 금융회사에 비대면 방식으로 계좌를 개설해 대출을 받아 가로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금융기관에 대출이 발생하는 것이다.코로나19의 유행으로 인해 비대면 거래가 일반화되면서 대면 방식의 영업을 하다 수익이 줄어든 자영업자는 '코로나 긴급재난대출' 문자가 와서 반가운 마음에 링크를 눌러 확인하다 피해를 당했다고도 한다. 명절에 자식들, 친구들 연락과 문자는 또 얼마나 반갑겠는가?위 보이스 피싱의 여러 유형들은 피해 회복이 매우 어렵다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보이스 피싱은 사후 대책보다 사전 예방이 무엇보다 필요한 이유이다. 만약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금을 계좌로 보냈다면 은행과 금융감독원, 경찰에 바로 신고하고 계좌 지급 정지를 요청해야 한다.비대면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중에 발생한 코로나바이러스는 언택트 사회로의 시기와 강도를 더욱 가속화하고 가중시키고 있다.지인들 간의 만남도 줄어들었고, 명절에 부모님께 찾아가지 않는 것이 오히려 효도인 시절이다. 추석이라는 명절을 앞두고 친척들과 부모님을 찾아가지 못하는 그 틈을 다른 것들이 차지하지 않도록 우리의 사랑과 관심으로 채워야 한다.출필고반필면(出必告反必面), 밖에 나갈 때는 반드시 부모님을 뵙고 알려 허락을 청하고, 돌아와서도 반드시 부모님을 뵙고 인사 드리라고 배웠지만 지금은 대면이 예절이 아니고 비매너라고 하니 추석이라는 대명절을 앞두고 안타까울 뿐이다.장현우(법무법인 두우 변호사)

2020-09-22 13:23:39

[박창원의 기록여행] 백성의 명절 추석

[박창원의 기록여행] 백성의 명절 추석

'조선에는 3대 명절이라는 것이 있어 하나는 정월원단 둘은 오월단오 셋은 추석이 그것이다. ~원단은 모든 사람들의 명절인 것 같이 되어 있으되 그는 주로 권문세가들의 것이며 단오는 백성의 것인 것 같으되 주로 중산 이상의 부녀자 및 기타 유한 한객들의 것이다. 이 중에 가장 백성의 것이며 동시에 조선적 정취의 것은 추석이다.'(매일신문 전신 남선경제신문 1948년 9월 17일자)1948년의 추석은 9월 17일이었다. 그 시절 한식을 제외하면 설과 오월단오, 추석을 3대 명절로 쳤다. 그런데 그 명절의 색깔이 달랐다. 설날은 권문세가들의 명절로 통했다. 사흘 밤낮으로 정월 초하루의 설 차림을 준비할 수 있는 집은 권문세가나 만석꾼뿐이었다. 게다가 창포에 머리를 감거나 활쏘기를 즐기는 단오는 여유로운 부녀자나 풍류객의 몫이었다. 이에 비해 추석은 백성의 명절이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햇곡식을 수확하고 풍년을 기원하며 가을밤을 수놓았으니 말이다.추석은 나라를 빼앗겼던 일제강점기에도 멈추지 않았다. 천도교에서는 추석날에 어린이들을 모아 노래하고 춤추며 송편을 나눠 먹었다. 추석놀이를 열어 어린이들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주려는 의도도 있었다. 대구의 화원유원지 같은 곳에서는 투우대회나 궁술대회, 씨름대회 등을 열어 추석 분위기를 자아냈다. 추석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이뿐이 아니었다. 도둑이 들끓었다. 도둑들은 명절 장사로 현금이 많은 잡화점이나 포목점을 호시탐탐 노렸다.해방 후 한 달 만에 맞은 첫 번째 추석은 후딱 지났다. 이듬해인 1946년 추석은 그야말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었다. 그해 5월부터 발병한 콜레라로 경북에서만 4천여 명이 목숨을 잃은 탓이었다. 그러다 보니 추석을 공휴일로 정하고 콩쿠르 대회 같은 주민 위안잔치를 열어 명절 분위기를 띄우려 했다. 하지만 현실은 고달프기 그지없었다. 갈수록 식량난이 심한 데다 명절 수요로 쌀값이 더 올랐다. 소두 1말에 500원 남짓 하던 쌀값은 단번에 200원이 오른 700원에 거래될 정도였다.살림살이와 상관없이 추석은 아이들 추석빔을 장만하는 일을 빠뜨릴 수 없었다. 최고의 선물은 고무신이 차지했다. 사탕(캔디)과 설탕도 빠지지 않았다. 당시 미국에서 들어온 달달한 사탕은 배급품이기도 했다. 사탕을 빼돌리고 되팔아 폭리를 취한 업자가 적발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설탕은 한참 동안이나 추석 선물의 단골 메뉴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선물을 둘러싼 부작용도 나타났다. 학부형들로부터 돈을 거둬 교사에게 선물하려다 말썽을 빚기도 했다. 추석을 쇠려고 사람들이 피를 뽑기 위해 병원에 몰려드는 일도 있었다. 다 대구에서 일어난 일이었다.고향을 찾는 귀성 발걸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다. 대구역에서는 발 디딜 틈 없이 꽉 찬 승객 때문에 열차 운행이 정지된 적도 있었다. 열차표 없이 무작정 열차에 오른 승객들 때문이었다. 정원 80여 명의 객차 안에 200여 명이 빽빽이 들어찬 경우를 상상해 보라. 힘겹게 고향을 찾는 귀성 모습을 보노라면 추석은 영락없이 백성의 명절이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귀성을 말리는 추석이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울고 싶은데 뺨 때린 격이라고 해야 하나.

2020-09-21 16:30:00

[이재태의 세상속의 종소리]  '오늘도 무사히’

[이재태의 세상속의 종소리] '오늘도 무사히’

1970, 80년대 버스와 택시에는 '오늘도 무사히'를 기도하는 소녀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 시절 이발소 그림으로 유명했던 프랑스의 국민화가 밀레의 '만종'이 하루를 마무리한 농부 부부가 해 지는 들판에서 감사의 기도를 드린 것이었다면, 이 그림은 출근길 승객들이 평화로운 하루를 기원하는 상징이었다.가족들은 이 그림으로 아빠의 안전을 빌었고, 기사분도 가족들의 사랑을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운전대를 잡았다. 어린 소녀가 기도하는 이 그림의 원본은 영국 화가 조슈아 레이놀즈의 종교화인 '어린 사무엘'(1776년 작)이다. 그림의 주인공은 소녀가 아닌 사무엘이란 남아인 것이다. 그림은 제사장에게 맡겨진 어린 그가 혼자 자다가 하느님의 음성을 들은 후에 경황 없이 기도하는 모습이다.구약 성서 '사무엘서'로 유명한 사무엘은 이스라엘 왕국의 지도자이자 선지자로서 널리 존경받는 인물이다. 그는 사울을 이스라엘 민족 최초의 왕으로 옹립하였고, 후일 양치기 소년 다윗을 왕위에 올림으로써 이스라엘 왕권을 확립시킨 사람이기도 하다. 산악 지대에 살던 그의 어머니 한나는 아기를 낳지 못하자, 잉태하게 해 주신다면 그를 주님께 바치겠다고 서원 기도를 드렸다.애절한 기도의 결과로 주어진 아들이 사무엘이다. 한나는 어린 아들을 성전에 바쳤고, 제사장 엘리가 사무엘을 양육하였다. 사무엘은 제사장을 도우며 성장하였고, 장성한 후에는 정치 종교적 지도자가 되어 이웃 강대국인 블레셋 사람들의 압박으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을 구했다.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사무엘은 신실하게 기다리며 기도한 결과로 얻은 귀한 아들이어서 인기 있는 남아의 이름이고, 우리나라에도 '삼열'(三悅)이란 기독교식 이름이 많다.우리의 생활이 윤택해지고 자가용 이용이 증가하자 '오늘도 무사히'를 기도하는 소녀는 점차 우리 시야에서 사라져 갔다. 그러나 국민들의 기억에서 잊힌 것은 아니었다.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모 언론사가가 기획 보도한 '국민들이 기억하는 우리나라의 추억의 물품'에 선정되었다. 해방 후의 혼란과 이어진 전쟁으로 일상이 불안하던 그 시절, 안전보다는 생계가 우선이었던 급속 성장의 시대를 살던 우리 국민들의 심정을 잘 반영하는 그림이 아니었을까? 간절하게 기도하는 세 어린이는 1950년대 일본에서 만들어 수출했던 '오늘도 무사히' 도자기 종이다. 다양한 인종의 용광로인 미국의 상황을 고려하여 기도하는 백인 소년 소녀에 아프리카계 소녀도 동참시켰다. 아마도 '어린 사무엘'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미국판 '기도하는 어린이' 종이었을 것이다. 이 도자기보다 10여 년이 지나 유행했던 우리의 기도하는 소녀 그림도 여기에서 유래한 것인지도 모르겠다.코로나19, 물난리, 태풍으로 힘들고 지루한 시간이 계속되고 있다. 조상들은 역병과 재해가 반복되면 하늘이 노했다며 근신하며 용서를 빌었다. 평범한 가정의 식탁 위에 놓였을 아기 인형들이 올리는 기도의 종소리를 통해 모두에게 평화로운 일상이 올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2020-09-21 16:30:00

[김문환의 유물로 읽는 동서양 생활문화] 미네르바와 민주당 부엉이…반지성주의

[김문환의 유물로 읽는 동서양 생활문화] 미네르바와 민주당 부엉이…반지성주의

◆대영박물관 엘긴 마블스런던 대영박물관은 언제 가도 푸근하다. 세계사를 들여다보는 즐거움도 크지만, 입장료가 없다는 점도 한몫 거든다. 1층 왼쪽 그리스 유물 전시관에는 B.C. 5세기 그리스 조각들이 유혹의 눈인사를 건넨다. 세잔이 밑돌을 깔고 피카소가 몸돌을 올린 입체파 추상미술이 나오기 전 인류사 구상미술의 결정판으로 칭송되는 유물들이다.사물의 모사를 넘어 기호학적 관점에서 이상적 아름다움의 재현(Representation)이 압도적인 몰입감을 주는 조각은 엘긴 마블스(Elgin Marbles). '엘긴의 대리석들'이라는 이 작품을 이해하는 실마리는 그리스 아테네에서 풀린다.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숫처녀의 집아테네 아크로폴리스 파르테논 신전. 2천500여 성상(星霜)을 버틴 역사의 무게에서 숙연함이 배어난다. 파르테논의 역사는 B.C. 490년 마라톤 전투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라톤의 기원이 된 전투다. 당대 최대 제국 페르시아를 물리친 아테네는 감사기념 신전 공사에 들어간다. 하지만, B.C. 480년 재침한 페르시아가 아직 상량식도 치르지 못한 신전을 파괴해 버린다.B.C. 448년 페르시아와 칼리아스 화약으로 평화를 되찾은 아테네는 이듬해 재건에 나서 B.C. 432년 완공시킨다. 이 파르테논 신전의 페디먼트(Pediment·박공)와 그 아래 프리즈(Friez)를 수놓던 조각이 엘긴 마블스다. 그리스 최고 조각가 페이디아스가 신의 솜씨로 빚은 대작, 마그눔 오푸스다. 이것이 왜 대영박물관에? 1801년 35세의 영국 외교관이자 문화재 약탈꾼인 엘긴 백작이 당시 그리스를 지배하던 오스만 터키 정부를 구워삶아 마구잡이로 뜯어갔다.오죽하면 같은 나라 낭만파 시인이자 1824년 그리스의 대터키 독립전쟁에 뛰어들어 죽은 바이런이 야만적 반달리즘으로 비난했을까. 파르테논의 뜻이 의외다. 파르테노스(숫처녀)+온(장소), '동정녀의 집'이니 말이다. 아테나는 '아테나 파르테노스'(숫처녀 아테나)로 불린다. 순결파 아테나를 기린 거다.◆아테나의 로마 버전 미네르바와 부엉이아테나는 서양의 학문과 종교 용어, 라틴어로 미네르바다. 미네르바의 은유(metaphor)는 3가지다. 먼저 전쟁. 서양 박물관에 남은 미네르바 조각은 투구를 쓰고 방패와 창을 든 모습이다. 둘째 민주주의. 트로이 전쟁 아카이아(그리스) 연합군 측 장수인 오디세우스와 아이아스가 최고의 용장 아킬레스의 창과 방패를 놓고 다투는 장면을 B.C. 6~B.C. 5세기 그리스 도자기에서 종종 마주한다.아킬레스가 트로이 성벽을 기어오르다가 파리스의 화살에 맞아 죽은 뒤, 아킬레스 시신을 수습해 온 두 사람이 서로 갖겠다고 싸우는 에피소드다. 이때 그리스 측 수호신 아테나(미네르바)가 병사들 투표로 결정하라고 지시한다. 동서고금 가장 완벽한 형태의 아테네 직접 민주주의에서 민주적 의사 결정 방식의 효시로 꼽힌다. 미네르바의 3번째 은유는 지혜. 고대 이탈리아어에서 '메네소'는 '지혜로운'이다. 미네르바와 '지혜'의 관계가 분명해진다. 미네르바의 해 질 녘 산책길 동반자가 부엉이다. 서구문화에서 부엉이가 지혜를 상징하는 이유다.◆헤겔 '미네르바의 부엉이'…지혜파르테논 신전에서 뜯어간 엘긴마블이 대영박물관에서 인기를 모으던 1820년 독일 철학자 헤겔은 '법철학' 서문에 이렇게 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드는 해 질 녘에야 날갯짓한다." 철학 즉 학문, 역사란 예측이 아니라 다양한 조건 속에 일이 전개된 뒤에야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시행착오의 경험과 인과관계를 따진 뒤에 나오는 지혜를 하루가 지나고 날이 저물어 나는 야행성 미네르바의 부엉이에 빗댄 학문적 유추(類推·Analogy)다. 지혜의 상징,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한국에서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민주당 부엉이들…반지성주의황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지난 12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황제 탈영 의혹' 제보 대학원생 실명을 대며 '단독범'이라는 주홍글씨를 달았다. 국회의원이 국민을 범죄자로 모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다. 김종민 민주당 최고위원은 14일 대정부 질문 제한시간 13분을 질문 없이 추 장관 입장만 대변하다 내려와 국회의장의 충고를 들었다.김종민, 황희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을 지키다 해체했다는 '부엉이 모임' 멤버 즉 부엉이다. 진중권은 13일 '부엉이 모임'을 '친문 하나회'로 전두환 패거리에 빗대며 "이분들 방자함이 하늘을 찌르더니, 그걸로 국민을 찔러댄다"고 날카롭게 비판했다. 세종 때 황희 정승과 황희 의원, 미네르바의 부엉이와 민주당 부엉이는 이름만 같은 상사(相似)일 뿐 긍정적 의미의 유추(類推) 관계를 낳지 못한다.이성과 지혜는 간곳없고, 내 편 지키기의 감성만 이글거린다. 미국 호프스태터의 1963년 작 '미국의 반지성주의'가 떠오른다. 지지자들을 기반으로 여론을 왜곡해 국민을 우민화하고, 반대파를 억압하며 전체주의를 자행하는 반지성주의(反知性主義)의 검은 그림자가 촛불을 덮으며 금수강산에 짙게 드리운다.

2020-09-21 16:30:00

[기고] 동해 표기에 관한 국제 세미나를 다녀와서

[기고] 동해 표기에 관한 국제 세미나를 다녀와서

지난 17일부터 19일까지 강릉 씨마크호텔에서 개최된 제26회 '동해 지명과 바다 이름에 관한 국제 세미나'에 다녀왔다. '동해' 지명을 다루는 회의인 만큼, 푸른 동해 바다를 내려다보며 회의를 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해'가 아닌 '동해' 이름을 되찾기 위한 학술적 근거를 모색하기 위해 '동해 연구회'를 설립한 지 스무 여섯 해가 지났다. 연구회는 창립 이듬해인 1995년 제1회 국제세미나를 개최한 이후 26회에 이르기까지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이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높이 평가할 일이다.금번 26차 세미나는 여러모로 어려운 여건하에서 개최되었으나 나름의 성과를 거둔 회의였다. 우선 코로나19로 해외 인사의 참석이 어려운 관계로 온·오프라인을 병행하는 새로운 형식이 시도되었다. 과연 잘 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없지 않았지만, 해외에서의 접속도 무난하게 이루어졌다. 현장에서는 온종일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하는 불편도 있었지만, 이 또한 뉴노멀로 수용하는 분위기였다.금번 세미나는 급격히 디지털화 되어가는 시대 상황에 맞추어 '디지털시대의 지명 표기'를 주제로 다루었다. 정부가 1992년 동해(East Sea)와 일본해(Sea of Japan) 병기를 추진하기로 결정한 이후 각계각층이 노력한 결과, 2000년 2.8%에 불과하였던 동해 병기 비율이 지금은 40%를 상회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디지털 시대에 누가 종이 지도를 보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종이 지도는 제작자와 이를 이용하는 소비자가 별도로 존재하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위키피디아에서 보는 것처럼 지도 이용자가 동시에 지도 제작에 참여할 수도 있다. 즉, 디지털 시대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없어지는 프로슈머(prosumer·producer와 consumer의 합성어)를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대중을 대상으로 한 홍보가 중요하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또한, 모바일 지도상 줌인 단계별 표기 방법 등 특화된 접근법 모색 필요성도 강조되었다.필자는 또한 동해 병기를 위한 대일 접근법에서 희망과 절망을 다 보았다. 희망이라면 한·일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일본 대학생들이 동해 병기에 대한 거부감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서원대학교 심정보 교수에 의하면 일본 대학생들이 표준 지명으로 31.8%가 일본해를 생각한 반면, 50%의 학생이 동해/일본해 내지 한국해/일본해 병기를 수용하였다 한다. 이 젊은이들이 국수주의 세력에 흔들리지 않고 성장해 나간다면 동해 병기뿐 아니라 한·일 양국 간 갈등 해소에 청신호로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다음으로, 필자는 요미우리신문 서울 지국장의 발언을 듣고서 한·일 간 불신의 벽이 정말 높구나 하는 것을 절감하였다. 일본은 한국이 지금은 동해 병기를 주장하지만, 병기를 달성하면 틀림없이 동해 단독 표기를 주장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한다. 한국은 그간 위안부 합의, 1965년 한·일협정을 비롯한 수많은 합의를 수시로 뒤집었다는 것이다. 일부는 일본의 오해에서 비롯된 면도 있겠지만, 그간 양국 정부가 현안을 다루며 얼마나 많은 불신을 잉태했는지를 극명히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세미나를 마치면서 동해 병기 달성은 결국, 디지털 시대에 맞춘 병기 노력과 함께 한·일 양국 간 신뢰 회복이 관건임을 재확인하였다.

2020-09-21 15:4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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