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매일춘추] 봄의 제전

[매일춘추] 봄의 제전

연주자들에게 작곡가의 탄생과 서거를 기념할 수 있는 해는 때때로 연주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데 큰 지표가 되기도 한다.대개의 경우 탄생과 서거를 기점으로 50년 주기로 크게 기념한다. 예를 들어 코로나 사태로 많은 무대가 취소되긴 했어도 2020년은 베토벤의 탄생 250주년이라 전세계적으로 그의 작품이 어느 때보다도 많이 기획되고 연주되었다. 2010년 역시 쇼팽의 탄생 200주년이었던 해라 그 해 열린 바르샤바 쇼팽 콩쿠르는 그 어느 해보다 성대하게 치러졌던 기억이 난다.그럼 올해는 어떤 작곡가를 기념할 수 있을까? 베토벤, 쇼팽만큼은 아니지만, 이제는 우리에게 제법 익숙한 러시아 태생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1882-1971)의 서거 50주년을 기념해 그의 작품 중 성큼 다가온 봄과 관련된 '봄의 제전'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신고전주의의 지평을 연 작곡가로 평가받는다. 음악가가 되길 반대하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비교적 늦은 나이에 본격적으로 작곡을 시작하였으나 초기에 작곡한 발레음악 '불새'가 큰 성공을 거둠에 따라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그는 특히 발레 음악의 작곡에서 주목을 받는다. 발레 연출가 세르게이 디아길레프와 손잡고 제작한 '불새'를 비롯해 '페트루슈카', 그리고 '봄의 제전'까지 3개의 작품이 연속으로 성공하였다.1913년에 발표한 '봄의 제전(祭典)'은 스트라빈스키가 꿈에서 본 이교도들의 종교 의식을 바탕으로 작곡되었다. 고대 러시아에서 봄에 행하는 원시적인 종교 의식은 봄의 신을 찬양하기 위해 젊은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것이었고, 제물이 된 자가 죽음에 이를 때까지 춤을 추는 장면을 지켜본다는 내용이었다.'봄의 제전'은 그 초연부터 청중들의 폭동에 가까운 반응으로 매우 큰 이슈를 몰고 왔다. 청중들은 스트라빈스키가 이전 두 발레 음악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낭만적인 색채와 새로움이 적당히 섞여 있는 면모를 기대하였지만 '봄의 제전'은 시작부터 그런 기대를 산산조각내었다.당시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원시적인 리듬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된 악기의 배치, 그리고 같이 행해진 발레조차 너무 거칠고 어지러웠기 때문이었다. 무대에서 이런 충격적인 상황이 진행되는 동안 곡을 옹호하는 소수의 청중과 야유를 퍼붓던 다른 청중 사이에서 난투극에 가까운 싸움까지 일었다고 하니 당시 상황을 지켜보던 영화감독 장 콕토가 '숲 자체가 미쳐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전달할 법도 했다.어찌되었든 이런 소동은 아이러니하게도 '봄의 제전'의 흥행에 톡톡히 도움을 주었고 스트라빈스키를 31살의 이른 나이에 현대 음악의 거장 반열에 올려준 작품이 되었다.발표 당시 충격을 몰고 온 이 전위적인 작품은 현대에 이르러선 초연에서 무용과 함께했던 것과는 달리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으로만 연주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올 한해 스트라빈스키를 기념할 수 있는 무대에서 이 작품을 만나볼 수 있길 고대한다.

2021-04-14 11:52:46

[기고]제 고향서 행복 꿈꾸는 세상 돼야

[기고]제 고향서 행복 꿈꾸는 세상 돼야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馬)은 제주도로 보내야 한다'는 말이 옛 속담만은 아니다. 아직도 성공과 새로운 기회를 좇아 너도나도 불나방처럼 지방에서 서울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국토 면적의 불과 11.8%를 차지하는 수도권에 국민의 50% 이상이 살다 보니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 인구를 추월하며 전국 223개 기초자치단체 중 절반에 가까운 도시가 소멸 위기를 맞고 있다.이처럼 지방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은 지방분권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방분권은 단순한 중앙정부의 권한 이양의 문제가 아니고 지역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다.심각해지는 지방 소멸 위기를 해결하고자 지난해 12월, 32년 만에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 법률안은 크게 두 개의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하나는 지방분권이다. 지방자치단체에 보다 많은 권한을 주기 위해 지자체의 자치입법권을 강화하고 중앙과 지방의 협력회의를 설치해 지역에 영향을 미치는 국가의 주요 정책 결정 과정에 지방의 주요 주체가 참여하도록 했다.지방의회가 사무국 직원 인사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한 것이나 정책 보좌 인력을 두도록 한 것은 지방의회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다.또 다른 하나는 주민 참여 자치권의 강화다. 지방자치법에 근거한 주민 조례 발안법을 별도로 만들어 주민이 직접 조례를 제정·개정·폐지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조례 안건을 내놓거나 감사를 청구할 때 발의 및 청구인의 상한 기준도 낮췄다. 지자체와 지방의회의 운영에 대해 주민들이 투명하게 알 수 있도록 중요한 활동 상황을 다 공개하는 조항도 만들었다.이번에 통과한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 법률안은 지방자치의 역사에서 의미 있는 진전이지만 지방분권을 위한 핵심 요소인 인력과 재정 지원 방안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흡한 것 또한 사실이다.국가와 지방 간 사무 배분의 기준을 명확히 설정해야 하지만 지난해 전부 개정된 지방자치법 제11조 제2항은 사무 배분의 기본 원칙으로 지역 주민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무는 원칙적으로 시·군 및 자치구의 사무로 우선 배분하도록 하고 있다.그러나 대부분 시·군과 자치구는 재정이 열악해 국비나 도비 지원 없이 자체 예산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이 많지 않다. 따라서 재정분권이 실행돼야만 진정한 지방분권이 완성될 수 있다.그뿐만 아니라 지방재정의 획기적 확충으로 늘어나는 복지 수요를 지방정부가 효율적으로 운용하게 해야 한다.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일자리를 만드는 것도 지역 스스로 정책을 개발하고 집행하고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지방에 더 많은 돈을 돌려줘야 한다.실질적인 지방의 재정 확충이 중요한 것이지 단순히 지방과 중앙의 비율만 높이는 재정분권은 한계가 명확하다.또 헌법과 법률의 개정을 통해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로 규정해 국가와 상호 대등한 협력적 관계를 정립, 지방자치의 권한과 책임성을 높여야 한다.결국 안정적인 지방재원 확충을 통해 지방재정의 자주권을 보장하고 각 지역의 특수성과 그에 필요한 권한을 확대한다면 지방분권이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을 것이다.이제 사람도 말도 제 고향에서 행복을 꿈꿀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더 이상 청년들에게 '인(IN) 서울'이 목표인 세상을 물려줘선 안 된다. 지방 소멸은 대한민국의 소멸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2021-04-14 11:51:30

[도태우의 새론새평] 대구·영남 비하의 본질은 대한민국 정통성 비하

[도태우의 새론새평] 대구·영남 비하의 본질은 대한민국 정통성 비하

국민의힘 초선 의원 56명이 보궐선거 직후 "청년에게 인기 없는 정당, 특정 지역 정당이라는 지적과 한계를 극복해나가겠다"고 입장문을 발표했다. '특정 지역'이란 영남을 지칭한다. 대구경북 지역 의원 9명도 이 발표에 동참했다.때를 맞춘 듯이 일부 언론은 '영남당으로 되돌아가 청년층이 혐오하는 모습으로 원점 회귀하면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몰락할 것'이라며, 이번 시장 당선자들이 영남당으로 각인된 기존 야당 이미지와 거리가 있는 사람들로 합리적인 중도 정치를 강조해 왔다고 분석했다. 이들의 논의에서 '영남당'은 비합리의 상징이고 청년층이 혐오하는 대상으로 낙인찍혀 있다.이에 더하여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은 한 인터뷰에서 "국민의힘은 거슬러 올라가면 대통령 정당이다. 이승만의 자유당, 박정희의 공화당, 전두환의 민정당…. 그래서 이 정당은 자생력이 없고 결속력도 없다. 그저 자기네끼리 우리는 산업화 세력이라는 헛소리나 한다"고 노골적으로 본심을 드러냈다.국가기관을 주축으로 나라 발전을 견인해 온 국민의힘 계열이 운동권에 바탕한 더불어민주당 계열보다 정당 차원의 결속력과 자생력이 약체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정치세력으로 어떤 가치 흐름을 대변하고 어떤 존재 의미를 지니는지는 완전히 별개 문제이다. '헛소리'란 말이 그리 쉽게 나오나.돌이켜 보면 김부겸 전 의원은 민주당 대표에 출마했던 작년 8월 언론 인터뷰에서 "영남의 정치 성향이 문제"라며, "영남은 보수당이 무슨 짓을 해도 '묻지마 지지'한다"고 했다. 하지만 대구는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인 김 전 의원을 선출했다. 그런데도 김 전 의원은 4년간 민주당의 파행에 제대로 된 견제 없이 오히려 민주당이 '안보를 지키는 정당'이라 강변했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그가 대구에서 다시 선출되지 않은 것은 민주당 후보이기에 '묻지마 낙선'된 것이 전혀 아니다.상황이 이런데도 지난달 31일 부산에서 열린 민주당 회의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강원도지사를 지낸 민주당 이광재 의원이 "41년간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이 나왔음에도 지금 대구 경제는 전국 꼴찌인데 왜 그럴까. 사람을 보고 뽑은 게 아니라 당을 보고 뽑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전 의원과 마찬가지로 이 의원 또한 대구와 영남의 '가치 지향 투표'를 '묻지마 투표'로 주저없이 왜곡했다.이들이 무시했던 대구·영남이 지향해 온 가치의 밑그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1967년 대통령 취임사에 잘 나타나 있다. "경제 건설 없이는 빈곤의 추방이란 없을 뿐 아니라, 경제 건설 없이는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는 실업과 무직을 추방할 수 없습니다. 또 그것 없이는 공산주의에 대한 승리, 즉 자유의 힘이 넘쳐흘러 북한의 동포를 해방하고 통일을 이룩할 수 없는 것입니다"라는 호소이다.이 연설은 '잘살아 보세'의 경제개발이 단지 물질적인 부를 추구한 것이 아님을 잘 드러내 준다. 경제개발은 자유를 계승하고 공화로 힘을 키워 빈곤, 부정부패, 공산주의라는 3대 공적(公敵)을 극복하고 북한 해방 자유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정통 흐름이다.대한민국 헌정은 1단계 자유민주 건국과 6·25의 호국, 2단계 낮은 단계의 법치와 민주주의 및 산업화의 동시 추진, 3단계 1987년 개헌을 통한 높은 단계의 법치와 민주주의로의 평화적 이행이라는 과정을 거쳐 발전해 왔다. 이제 대한민국은 마지막 4단계 헌법적 과제인 한반도 전역에 천부인권과 적법 절차 민주주의를 확산하는 자유통일을 실현할 수 있을지 갈림길에 서 있다.대구·영남은 역사의 각 고비마다 대한민국 정통 가치와 비전의 정수를 공유하며 그 기적의 발자취를 함께 일구어 온 불후의 원동 기관이었다. 미운 오리 새끼는 자신의 정체를 알 때까지 놀림과 고립, 핍박을 피할 수 없다. 대한민국이 세계의 선도 국가로 비상해 오를 때까지 대구·영남의 목마름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우린 아직도 배가 고프고 아직도 배울 것이 너무나 많다.' 누가 영원한 청년 정신의 영남을 노쇠하다고 손가락질하나.

2021-04-14 11:50:39

[한방칼럼] 수술 후 재활기간이 일상회복 좌우한다

[한방칼럼] 수술 후 재활기간이 일상회복 좌우한다

척추관절질환 최후의 치료 수단인 수술. 모두가 피하고 싶어하지만 큰 외상을 입었거나,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쳤을 때 혹은 비수술치료에 실패한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선택지다.수술을 시행하기까지는 환자는 물론 의료진의 고민도 크지만, 막상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그때부터는 또 다른 고민에 직면하게 된다. 어떻게 해야 수술을 잘 받을 수 있을 것인가와, 수술 이후에 재활을 어떻게 할 것인가다.수술은 일반적으로 척추관절에 구조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시행하며, 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피부를 비롯한 인체 조직을 절개하거나 제거, 또는 인공구조물을 삽입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인체는 크든 작든 상처와 손상이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수술도 중요하지만 이후 회복과정도 상당히 중요하다.일반적으로 다양한 수술을 받은 뒤 일상으로 복귀하기까지의 과정은 수술 직후에 해당하는 급성기, 급성기가 지난 이후의 회복기, 관리기 등의 3단계로 크게 나눌 수 있다.급성기 단계에서는 수술에 대한 평가, 감염 방지를 위한 소독이 필요하므로 보통 수술받은 병원에서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떄는 수술 부위의 휴식과 안정이 가장 중요시된다.회복기에는 수술 부위의 기능을 되찾기 위한 재활에 가장 포인트를 두게 된다. 보통 수수을 받은 전문병원 혹은 재활 전문 클리닉에서 시행하는 경우가 많다. 회복기까지의 과정을 잘 마무리하게 되면 가벼운 일상생활 정도는 가능하지만 예전만큼의 운동능력과 근육강도 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운동을 통해 근육과 강화하는 관리기가 한동안 필요하다.수술 이후의 회복 경과는 환자의 몸 상태나 수술 방법 등에 따라 각각 다를 수 있다. 특히 고령환자나 재수술환자의 경우 급성기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수술 부위 주변의 통증을 호소하거나 강직이 심해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호소하는 환자들도 있다.이 때문에 나이가 많은 환자일수록, 여러번 자주 부상을 입어 수술한 환자일수록 2,3단계인 회복기와 관리기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이 시기를 잘 보내야 원만하게 일상복귀가 가능해지게 된다.최근에는 한방병원에서 회복기 이후의 관리를 받을 수도 있다. 양방협진을 통해 수술 부위에 대한 의학적인 관리와 평가를 지속하는 한편, 통증을 줄이기 위한 침치료, 약침치료. 관절기능의 재활을 위한 추나치료. 수술 부위의 빠른 회복을 도와주는 한약치료 등을 함께 시행 가능하다.김은수 대구 수월한방병원 달서점 병원장

2021-04-13 14:13:42

[의창] ‘세월호 트라우마’ 치유의 길

[의창] ‘세월호 트라우마’ 치유의 길

"집에 있으면 상담을 받아야 한다며 문을 두드려요. 문을 열면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물어봐요. 우리를 트라우마 환자로 몰아가는 상담이 도움이 되겠어요? 이렇게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게 훨씬 좋아요."세월호 참사 후 석 달이 지났을 무렵 '세월호 특별법' 서명운동을 위해 대구에 오셨던 유가족의 하소연이다. '날카로운 전문가'보다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 줄 '따뜻한 이웃'이 더 필요해 보였다.우리 동네 성당에 여장을 푼 유가족들과 허름한 식당에서 늦은 밤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황망하고 미안하고 분해서 함께 울었다."우리의 억울한 이야기를 처음 해요. 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부모님들께서 그 자리에 함께한 이들에게 노란 리본을 달아주셨고 우리는 꼭 안아드렸다. 유가족들의 티셔츠에는 채 피어보지 못한 채 스러져간 단원고 2학년 3반 학생 26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감당하기 어려운 충격과 상처가 마음에 남으면 트라우마가 된다. '위험 사회'인 한국 사회에서 트라우마는 이제 일상용어가 됐다. 트라우마로 인해 심각한 증상이 지속하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진단한다.그러나 트라우마는 의학적 치료만으로 완치되기 어렵다. 심리적 외상의 원인이 된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트라우마가 지속하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트라우마 치유의 시작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또한, 트라우마는 잠복하고 있다가 어떤 계기로 재발할 수 있고 시공간을 초월해 전이되기도 한다. 유가족을 향한 '이제 그만하라'라는 비난과 막말은 아직 아물지 않은 마음의 상처를 덧나게 한다. '슬픔이 끝이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사회적 치유가 시작될 수 있다.' 심리학자 마크 엡스타인이 저서 '트라우마 사용 설명서'에서 한 말이다. 슬픔을 충분히 슬퍼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돕는 것이 진정한 트라우마 치유의 길임을 뜻한다."2014년 여름 특별법 제정을 위해 대구에 처음 왔을 때 많은 분의 위로와 격려를 받은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 대구는 제게 친정 같은 곳입니다."지난 4월 9일, 세월호 참사 7주기 대구 시민문화제에 참석한 유가족의 말씀이다. 유가족과의 첫 만남 이후 대구에는 세월호 참사의 아픔에 함께하려는 풀뿌리 시민 모임들이 만들어졌다. 주부, 학생, 교사 등 다양한 시민들이 모여 노란 리본을 만들고, 서명을 받고, 유가족과 자주 만나며 연대해왔다. 상처받은 이들을 향한 이러한 공감과 지지 역시 트라우마 치유의 첩경이다.가끔 교복에 노란 리본을 달고 진료실로 들어오는 학생들을 본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울컥한다. 그리고 참 고맙다. 극단적인 선택까지 생각했던 유가족이 누군가의 가방에 달린 노란 리본을 보고 마음을 돌렸다는 말씀도 들었다. 이처럼 세월호 참사의 아픔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서로 확인하는 것 또한 트라우마를 함께 치유하는 좋은 방법이다.일곱 번째 4월 16일이 다가온다. 이제는 별이 된 아이들과 했던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떠올리며 진료실로 향한다.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2021-04-13 14:12:59

[경제 칼럼] 동선이 겹치면 혁신은 절로 일어난다

[경제 칼럼] 동선이 겹치면 혁신은 절로 일어난다

"동선이 겹치면 혁신은 절로 일어난다."이는 혁신적 기업 문화로 잘 알려진 온라인 쇼핑몰 자포스(Zappos)를 창업하고 얼마 전 작고한 젊은 창업가 토니 셰이가 한 말이다.창의와 혁신의 열쇠로 '우연한 만남'이라는 개념을 제기한 토니 셰이는 "사람들이 더 자주 마주치고 한마디라도 더 나누어 서로 배우고 연결된다면, 그들은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혁신이라는 기적은 저절로 일어난다"며, 혁신을 위한 다양성의 중요함을 강조했다.우연한 만남의 효과는 실제로도 입증이 됐다. 미시간주립대 연구진이 과학자 172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연구실이나 화장실, 엘리베이터 등으로 가는 동선이 겹칠 때 협업을 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선이 3m 겹칠 때마다 협업이 최대 20%까지 늘어났다. 혁신은 협업에서 나오고, 협업은 동선이 겹쳐야 나온다. 경험과 역량, 분야가 다른 사람들이 다양한 생각과 고민을 자연스레 토론하며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미국이 세계의 산업을 이끌어가는 초강대국이 된 배경에는 다양성이 그 중심에 있다. 미국 뉴욕주 5개 자치구 중 가장 변방이자 면적이 큰 동부에 위치한 퀸즈(Queens)구는 미국의 다양성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곳이다. 저렴한 물가와 낮은 진입 장벽으로 세계 전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약 160개 인종과 130여 개의 언어가 존재하는 그야말로 인종과 언어의 멜팅팟(Melting Pot)을 이루고 있다.이민자와 빈곤층이 많아 과거 저소득층 구역이라는 인식이 컸던 퀸즈구는,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바탕으로 최근 다양한 산업이 활성화되는 등 놀라운 경제 발전을 이루며 급속도로 변하는 지역 중 하나다.비즈니스와 일자리의 수가 크게 증가했고 아마존을 비롯한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본사를 이전하며, 퓨전 문화의 근원지이자 미국 산업의 새로운 중심지로 각광받고 있다.우리는 지금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있다. 바야흐로 제조업을 포함한 전통 산업들이 변화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는 다양성이 필요한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기존 산업의 개념에 인공지능, 가상현실, 사물인터넷 등의 IT 기술을 융합해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내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은 이제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단순히 패션 소품으로 사용되던 허리띠에 디지털 센서를 삽입해 허리 치수, 활동량, 과식 여부까지 체크할 수 있도록 만든 스마트 벨트 '웰트'는 패션에 IT 기술을 접목한 좋은 사례이다. 전혀 다른 분야의 아이디어가 만나 창의적인 결과를 도출한 것이다.대구는 전통 제조업을 중심으로 발전해 온 도시로, 기존 산업이 쇠퇴하고 있는 지금 혁신을 통한 새로운 도약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섬유나 안경 등 대구의 강점 산업을 중심으로 이종 업종과의 만남과 교류를 활성화하려는 노력이 한층 더 필요하다.미국이 퓨전 문화를 바탕으로 눈부신 발전의 역사를 쓴 것처럼 산업의 퓨전, 즉 이종 업종 간의 만남이 융·복합적 시너지를 창출할 때 새로운 혁신, 신산업의 탄생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우연히 동선이 겹친 상대와의 대화에서 내가 모르는 분야의 지식이나 아이디어를 접하게 될 때 혁신은 시작될 수 있다. 특히 청년들이 가진 아이디어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아이디어로 발전할 수 있다. 청년들이 경험의 기회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설 때, 우연한 만남의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은 기관들의 역할이다.필자가 몸담고 있는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도 청년들을 위한 만남의 장을 마련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클러치(Clutch)와 대시(Dash)라는 온·오프라인 모임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우리 청년들이 자연스레 만나 이야기하고, 놀며, 서로 다른 의견들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탄생하리라 기대한다.

2021-04-13 14:02:47

[기고]중대재해처벌법, 보완이 필요하다

[기고]중대재해처벌법, 보완이 필요하다

지난 1월 중대 산업재해가 발생하는 경우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및 법인 등의 처벌을 핵심으로 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됐다.산업 현장에서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목숨을 잃는 경우까지 발생하는 현실 앞에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제도의 필요성은 누구나 공감한다. 경제계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나 사업주에 대한 처벌 위주의 제도가 과연 당초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그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문이다.현행 산업안전보건법상으로도 사업주의 책임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의무 조항만 1천222개이고, 새롭게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에는 여기에 더해 중대 재해가 발생하면 단 한 번의 사고만으로도 대표에 대한 징역 또는 벌금, 법인에 대한 벌금, 기업에 대한 영업 중단 등 행정 제재 그리고 손해액 5배 이내 징벌적 손해배상 등 4중의 처벌을 명시하고 있다.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산업재해는 여러 원인이 있을 뿐 아니라, 사업주가 모든 것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중대 재해의 책임을 사업주에게만 돌리는 것은 지나치게 과한 부분이 있다.특히 우리 사회 구조적 문제인 '위험의 외주화'로 사고 발생률이 높은 일은 기업 생태계의 최말단에 있는 영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몫이 되고, 이로 인한 책임은 더욱 커지게 될 것이므로 영세한 중소기업의 입장에서는 매우 큰 경영 부담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중소기업중앙회를 비롯한 경제계에서는 법 제정 전부터 여야 대표, 대국회 건의, 지역별 기자회견 등을 통해 이러한 우려를 발표했지만 법은 통과됐다.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의 중대 재해, 특히 사망사고가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은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중소기업인의 한 사람으로서 기업인에 대한 부정적 사회 통념이 자리 잡는 것은 아닌지 아픈 마음으로 법 통과를 지켜보았다.중소기업 사장은 중세시대 소작농을 수탈하던 봉건영주도,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를 착취하던 제국주의자도 아니다. 사업주는 현장에서 함께 땀 흘리는 내 가족과 같은 근로자의 사고를 예방하려고 노력하지 조장하거나 방관하는 경우는 단연코 없다.그러나, 새로 제정된 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의무를 다하면 면책이 된다고 하지만 그 의무가 매우 포괄적이고 광범위해 사고 발생 시 사업주 처벌로만 결론지어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법률적 대응 능력이 취약한 중소기업은 '사고=사장 구속'이라는 공포에 떨고 있다.최근 중소기업중앙회의 조사에 의하면, 중소기업의 80%가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으로 경영 부담을 느끼고 있는 반면, 대응 계획은 근로자 안전교육을 강화하겠다는 것 외에는 특별한 대안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국회나 정부에는 이러한 중소기업인들의 현실적 두려움을 감안해 중대 사고 발생 시 사업주 징역 1년 이상 처벌을 산업안전보건법 수준인 7년 이하로 변경하고, 현장에서 수용 가능한 수준의 관리상 의무를 구체적으로 규정, 50인 이상 300인 미만 기업에 대한 2년간 유예기간 부여 등 입법 보완으로 사고 예방과 기업 운영이 조화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할 것이다.노동자와 사업주는 제로섬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가 안전하게 작업하면 사업주가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안전하게 작업하고 즐겁게 일해야 기업이 생존하고 성장할 수 있다. 이번을 계기로 우리 중소기업인들도 사고 없는 사업장을 만들기 위해 부족한 부분이 있는지 다시 한번 살피고 또 살펴야 할 것이다.

2021-04-13 11:51:50

[매일춘추] 돈으로 채워지지 않는 것들

[매일춘추] 돈으로 채워지지 않는 것들

최근 몇 분의 연극인이 집필하신 대구연극사와 관련된 책들을 읽고, 옛 기사들을 찾아보면서 대구 연극사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그 중 2014년에 쓰인 '대구연극사'라는 책을 펼치면 첫 구절이 「대구연극, 아니 지방연극, 누군가 말했듯이 "애써 기록할만한 '현상'이 있는 것인지조차 의문스러울 정도로 황폐하게" 보일 수도 있다」로 시작한다.많은 사람들이 대구연극의 역사가 그렇게 길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부끄럽게도 현재 대구에서 연극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나조차도 대구연극사를 공부하면서 생각보다 긴 역사에 깜짝 놀랐다.100년이 넘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대구연극은 1917년 개관한 '대구좌'를 대구 최초의 극장으로, 1918년 김도산이 창단한 극단 '신극좌'를 대구 최초의 극단으로 보고 있다. 자유를 억압당해 평범함 삶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일제강점기에도 연극에 대한 열정은 피어났던 것이다.또, 6.25 전쟁 때는 극장이 피난민 수용소가 되기도 하고, 국립극장이 대구로 내려오고, 전쟁을 피해 대구로 내려온 타 지역 연극인들이 단체를 만들어 공연을 이어가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고 1957년에 국립극장은 다시 환도되었지만, 많은 예술인들은 계속해서 대구연극의 역사를 만들어 갔다.나는 특히 1980~90년대의 기록이 흥미로웠다. 전쟁 때에 비하면 상황은 많이 나아졌겠지만, 재정난으로 인해 소극장이 생긴지 1년 만에 문을 닫는 슬픈 사건, 소방시설 미비로 극장이 폐관되는 안타까운 사건, 여러 극단이 모여 하나의 작품으로 전국연극제에 출전하는 놀라운 사건, 돈을 받지 못한 조명기사가 1부 공연이 끝나고 집에 가겠다고 해서 배우들이 말리는 당황스러운 사건 등 정말 연극에 대한 열정만으로 뭉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그 때는 돈이 중요하지 않았다.아직도 왕성히 활동하고 계신 분들이 겪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의 일들이 내겐 너무 아득하게 느껴졌다. 내가 몇 년 전 선생님들께 들은 "연극하면서 돈 벌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이냐"라는 흔히 말해 꼰대(?)스러운 말이 그 시절 연극인들이 그토록 바랐던 꿈이었을 것이다.지금은 그 시절에 비하면 상황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아직 공연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가뜩이나 요즘은 코로나19라는 악재까지 겹치며 많은 예술인들이 생계유지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 누군가는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계속 연극을 하는 것에 대해 의구심을 품기도 한다. 그럼에도 연극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돈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가슴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설렘에 대한 달콤함을 잊지 못해서가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연극전공자가 아닌 나는 종종 대학 동기들을 만나면 "너는 네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돈 벌어서 좋겠다"는 말을 듣는다. 그럴 때마다 "꿈도 직업이 되니까 일이더라"라는 말로 웃어넘기지만, 솔직히 행복하다. 아직도 나는 새로운 작품을 만날 때마다 설레고, 무대에서 바라보는 객석은 벅찬 감동을 준다. "무대에 한 번도 안 서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선 사람은 없다"라는 우스갯소리를 하는 것처럼 그 설렘을 잊지 못해 오늘도 난 대본을 편다.

2021-04-13 11:37:09

[종교칼럼] 이상적 관망자

[종교칼럼] 이상적 관망자

오래전에 철학자 한병철은 "21세기는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모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성과사회를 사는 우리는 결국 성과주체가 된다. 성과주체인 우리는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서 스스로 자기를 강제하고 착취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 성과를 내야하고, 성과를 내기 위해서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이익을 위해서 무엇이든 한다.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주군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면 자신의 인격쯤은 하찮게 여긴다. 성과를 낼 수 있고, 결과를 만들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이런 사회에 딱 어울리는 표현이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이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상관없이 중국 인민이 잘 살게 되면 되는 것인가! 과정이야 어떠하든지 결과만 만들어 내면 되는 것인가! 문제는 인간이 배부른 돼지로만 살 수 없다는데 있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묻는다. 어떤 삶을 살아야 인간답게 사는 것일까? 사람마다 추구하는 삶이 다르기 때문에 답도 다를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인간은 누구나 가치 있는 삶을 찾고, 성과보다는 의미 있는 삶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메타윤리학에서 '이상적 관망자'(ideal observer)란 용어가 있다. 헤어(R. M. Hare)는 이상적 관망자를 '가장 바람직하고 윤리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상적 관망자는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고, 미래에 대해 완벽한 전망을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일을 공정하게 조망하고, 판단하는 자를 '이상적 관망자'라 한다. 우리는 사회와 직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신문과 방송에서 소위 평론가라는 사람들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들의 소리에서 '올바른 삶의 길'도 '윤리적 사고'도 경험할 수 없는 것일까?그것은 아마도 그들이 '이상적 관망자'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이상적 관망자'는 '무사의(無私意)' 즉 마음(의지)에 사심(私心)이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논어'에 "군자는 의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고 했다. 이에, 중국 철학자 육구연(陸九淵)은 의리에 밝은 군자의 길을 변지(辨志)에서 찾았다. 변지는 옳고 그름을 분별하여 우리의 마음이 의(義)를 향하는지, 사사로운 이익을 향하는지 구분하는 능력이다. 이 변지가 바로 육구연이 일생을 두고 추구한 진리의 길이었고, 수행이었다.기독교 역시 영적인 삶의 길을 분별(discernment)에서 찾았다. 분별은 신중함과 지혜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데 있다. 이 분별의 끝은 하나님의 지혜를 관상하는데 있지 않는가.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12장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다.우리가 어떻게 해야 '이상적 관망자'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것은 우리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잘 성찰하는데 있다. 그래서 성 막시모 증거자는 "모든 감각적 능력을 온전히 하나님께 향할 수 있는 영혼은 완전한 영혼이다"고 했던 것이다.영남신학대학교 기독교 영성학 교수

2021-04-13 11:35:25

[매일춘추] 인생은 지금

[매일춘추] 인생은 지금

지난달 미술 전시를 보기 위해 서울에 두 번이나 다녀왔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로즈 와일리' 전시와 학고재 갤러리에서 열린 윤석남 작가의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역사를 뒤흔든 여성 독립운동가 14인의 초상' 전시를 보기 위해서였다. 별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두 전시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두 화가 모두 80세가 넘어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할머니' 화가들이란 점이다.로즈 와일리는 1934년 영국 출생으로 올해 87세이다. 미술을 전공했으나 평범한 주부로 살다가 45세에 영국왕립예술학교에 입학, 뒤늦게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76세에 영국 가디언지가 뽑은 '영국에서 가장 뜨거운 신예 작가' 꼽히면서 국제 미술계의 슈퍼스타 할머니가 된다.한국 여성주의 미술의 대모라고 불리는 윤석남 작가 역시 1939년 출생으로 올해 82세. 그 역시 마흔이 넘어 화가 생활을 시작했다.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뒤늦게 배운 채색화를 잘 그리고 싶어서 "오래 살고 싶다"고 했다. 두 사람 다 마흔이 넘어 작가로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마흔이 늦은 나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다음에 나올 모지스 할머니가 코웃음을 치실 듯하다.안나 모지스(1860~1961) 할머니는 농부의 아내로 살다 76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우연히 미국의 유명 미술 수집가가 시골 약국에 들렀다가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을 발견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80세에 첫 개인전시회를 가지며 명성을 얻는다.할머니의 그림이 얼마나 사랑을 받았는지 그녀의 100번째 생일은 '모지스 할머니의 날'로 정해지고, 평범했던 할머니는 미국의 '국민화가', '국민할머니'가 된다. 101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1천600점의 그림을 그렸고 그 중 100세 이후에 그린 그림이 250점이란다.루이 비뱅(1861-1936) 할아버지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61세 은퇴 전까지 47년간 파리에서 우체부로 살았고, 은퇴 후 그동안 편지를 배달하며 눈에 새겨둔 파리의 풍경을 그림으로 기록하는데 전념한다. 그 역시 우연히 근처를 방문한 유명한 화상을 통해 65세에 첫 개인전을 열게 된다. 루이 비뱅의 이야기는 최근 '루이 비뱅, 화가가 된 파리의 우체부'란 책으로도 출간되었다.비단 미술계뿐만이 아니다. 20~30대가 점령한 패션계에서 당당하게 흰머리를 휘날리며 런웨이를 누비는 김칠두(67세), 최순화(78세) 시니어 모델, 세계적 유튜브 스타가 된 박막례 할머니(75세)도 있다. 장명숙 할머니(69세) 역시 유튜브 '밀라논나'를 통해 놀라운 패션 감각으로 많은 여성들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가히 그레이네상스​(Greynaissance)다.인간에게 유한한 생이 주어졌고 그 안에 무한한 자유가 펼쳐져 있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노년이 되어서도 슈퍼스타를 꿈꾸며 성공을 위해 노력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미래에 저당 잡혀 노력하는 삶은 이미 충분했다. 모지스 할머니는 자서전에서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젊은 때이고, 시작하기에 딱 좋은 때'라고 했다. 그래, 인생은 지금이다. 문구점으로 달려가 붓이라도 사야겠다.

2021-04-12 11:25:47

[기고] 지방분권으로 희망의 30년을 연다

[기고] 지방분권으로 희망의 30년을 연다

30세를 달리 일러 이립(而立)이라 한다. 기초가 확립되었다는 뜻이다.올해, 지방자치는 이립의 나이를 맞이했다. 그간 지방자치는 그 기초를 확립했다고 할 수 있을까?우리나라는 헌법에 중앙집권적 통치 구조를 규율하면서도, 제8장에 지방자치의 시행을 정한 이원적 통치 구조를 갖고 있다. 이러한 통치 구조를 규정한 헌법의 목적은 중앙과 지방의 견제와 균형을 통한 협치의 달성이라 할 수 있다.하지만 지방자치는 홀대받아 왔다.제헌헌법에 따라 1949년 지방자치법이 제정되고, 이를 근거로 1952년 최초의 지방선거가 실시되었지만,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지방자치는 30년간 실질적으로 폐지된 채 그 명목만 유지해 왔다.그러다 1987년 헌법 9차 개정과 함께 1991년 3월 26일 기초지방자치단체 의원을 뽑는 지방선거가 시행되며, 1961년 이후 30년 만에 지방자치가 부활되었다.그리고 올해는 다시 부활한 지방자치가 30주년을 맞이한 해이다. 하지만 '이립'이란 나이가 무색하게 지방자치는 이제 갓 걸음마를 뗀 수준에 불과하다.여전히 조세편성권과 지방입법권, 조직구성권은 법률로 제한되어 있으며, 지방은 중앙정부 부처의 수권 범위 안, 즉 중앙 부처가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만 자율을 가질 수 있다. 결국, 지방은 여전히 중앙 부처의 하위 행정기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다행인 것은 지난해 12월, 지방자치법이 30년 만에 전부개정되며 주민의 자치권이 확대되고 지방의회의 운영이 독립되는 등 자방자치 발전을 위한 발판이 마련됐다.개정된 법률을 바탕으로 시민의 행복과 지역의 발전을 위해, 앞으로의 지방자치 30년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는 데 필요한 몇 가지를 제시하고자 한다.먼저 정책은 설계 시 미래 사회의 발전과 그 향방을 우선 고려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우리 사회는 다양성이 근간인 사회가 되어가고 있으며, 기술을 바탕으로 한 초연결사회로 나아가고 있다.지역 주민의 니즈도 다양해지고 있으며, 그에 따른 정책 참여 또한 활발해지고 있다. 따라서, 현재와 같이 중앙이 지역 간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하나의 정책을 구성해 전국에 동일하게 적용하는 식의 정책 설계는 미래 사회에서는 탄력성 측면에서 점차 그 한계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따라서 미래 사회에서의 정책 적응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지역의 다양성 보장과 참여를 담보하기 위한 자치단체 중심의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즉, 자치단체가 그 지역에 적합한 정책을 구성하고 집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우선은 지방이 정책을 자유롭게 구성하고 집행할 수 있도록 법적·재정적 근거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재정 및 예산 관련 법령 개정을 통한 지방의 세정 운용 능력 확대가 필요하며, 동시에 실질적인 국세 대 지방세 균형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중앙은 과거와 같이 지방을 하위 행정기구의 하나로 여겨서는 안 되며, 독립적인 정책기관으로서의 관계를 맺어가야 한다.현대 민주주의의 주권자는 국민이며, 국가는 국민의 행복을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국민의 삶이 다양해진 만큼, 지방자치의 확대를 통해, 국민의 생활과 더욱 밀접한 곳에서 정책이 구성되고 시행되도록 해야 한다.지방자치의 과거 30년은 비록 걸음마를 떼는 데 그쳤으나, 앞으로의 30년은 지방자치제가 유아기를 넘어 스스로를 결정하고 행동하는 진정한 성인의 모습을 갖추는 시기가 될 것을 기대해 본다.

2021-04-12 11:23:38

[세계의 창] 스토리가 있는 도시

[세계의 창] 스토리가 있는 도시

봄이 무르익기도 전에 꽃부터 피었다. 3월이면 벌써 협죽도꽃이 티그리스 강변에서 시위하듯이 진분홍빛을 발산했다. 강변으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살갗을 태울 듯 뜨거운 여름이 오기 전, 바그다드의 봄은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었다. 저녁 무렵 아부누아스 거리는 외식하러 나온 가족들로 붐볐다."그에 대한 사랑으로 나는 죽네, 그는 모든 면에서 완벽하지/ 내 눈은 그의 멋진 몸에 머물러 있고, 나는 그의 아름다움에 놀라지 않지…."아랍 문학 사상 가장 뛰어난 시인으로 꼽히는 아부누아스 시 속의 주인공 같은 남성들도 영화 장면처럼 지나갔다. 가족들이 아부누아스를 찾는 것은 마스구프 때문. 티그리스강에서 잡은 잉어 요리다. 테이블을 잡아 놓고 손님은 먼저 수족관 속의 잉어를 고른다. 잉어는 벌써부터 펄떡펄떡 힘 자랑을 한다. 그러면 종업원은 뜰채 속의 잉어를 기절시키고 요리 준비를 한다. 식당 한쪽에서는 끊임없이 호부즈(빵)가 구워져 나온다. 잘 반죽된 밀가루를 둥글넓적하게 빚어 화덕 속 벽에 철썩 붙이면 반죽은 떨어지지도 않고 노릇하게 구워진다. 바구니에 담은 호부즈는 식탁으로 옮겨지고 손님들은 후후 불어가며 뜨끈뜨끈한 빵을 뜯어먹는다. 그러는 동안 종업원은 모닥불처럼 세워진 장작불 가장자리에 쇠꼬챙이에 꽂은 잉어를 세운다. 옆구리를 갈라서 속이 다 보이게 손질된 잉어가 익어가는 동안 손님들은 메자라고 불리는 전채 요리를 먹으면 된다. 홈모스, 바바간누시, 팔라펠, 타불레 같은 반찬을 먹고 있으면 종업원이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마스구프를 큰 쟁반에 담아서 가져다준다. 토마토, 양파, 피망, 파슬리를 다진 데다 카레, 큐민, 고춧가루를 적당량 넣은 페이스트를 잉어에 고루 얹어 구운 마스구프, 손이 가기도 전에 군침부터 먼저 고인다. 석양 무렵 티그리스 강변 마스구프 식당에서 친구 A는 아부누아스의 시를 읊어주었다. 마스구프가 이라크의 대표 요리로 꼽히는 것은 맛도 맛이지만 티그리스강과 아부누아스가 함께 어우러지기 때문일 것이다.금요일이면 무타나비 책 시장으로 갔다. 이라크 사람들은 책 시장에 압바시드 시대의 가장 뛰어난 시인 무타나비의 이름을 붙였다. 금요일은 우리로 치면 일요일, 휴일이었다. 이날이 되면 바그다드의 지식인들이 무타나비로 몰려왔다. 걸프전으로 서방의 경제 제재를 받던 시절, 무타나비는 더욱 붐볐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새 책은 언감생심 구경도 못 하고 무타나비의 헌 책방에서 억누를 수 없는 탐구욕과 지식욕을 채웠다. 돌아다니다 지칠 때쯤이면 아부 알리의 노천 찻집으로 갔다. 커다란 장독처럼 생긴 오븐에는 숯이 벌겋게 달아올랐고 그 위에는 주전자들에서 보글보글 차가 끓고 있었다. 아부 알리는 핀잔으로 불리는 유리잔에 티스푼으로 하얀 설탕을 듬뿍 깔고는 솜씨 좋게 차를 부어주었다. 차는 은은한 숯 향이 배어나서인지 더욱 감칠맛을 냈다. 전쟁 때문에 더 늙었다며 한숨을 짓던 아부 알리는 아직 살아 있을까?아부누아스와 무타나비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거리들이다. 지금 이라크는 방문 금지 국가로 지정되어 일반인은 여행할 수 없는 곳이지만 이라크를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이 거리들은 반드시 들러야 하는 명소들이다. 시와 음식과 차, 스토리가 있어서 가보고 싶은 욕망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언제나 취해서 다녔다는 아부누아스, 아홉 살부터 시를 썼다는 지적인 시인 무타나비, 그리고 마스구프와 아부 알리의 차, 이런 것들이 거리에 환상과 상상을 덧입히기 때문이다. 대구에도 '상화로'가 있지만 그곳에는 어떤 스토리가 있을까? 입시철이면 기도를 하러 몰려드는 팔공산 갓바위,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서문시장, 최초의 백화점 미나까이가 있었다는 북성로, 비극적인 생애를 살다간 김광석의 이름을 붙인 김광석 거리…. 대구에도 스토리가 있는 장소들이 알고 보면 꽤 많다. 이야기를 발굴하고 스토리를 덧입히면 세계적인 관광 자원이 될 수 있는데도 "대구에는 갈 곳이 없어"라고 자조하는 걸 보면 안타깝다.

2021-04-12 11:23:27

[매일춘추] 식물성 인간의 글쓰기

[매일춘추] 식물성 인간의 글쓰기

아침 6시에 일어나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밖을 나간다. 아침 공기를 가르며 달리기를 하거나 산책 삼아 동네 뒷산을 오른다. 가벼워진 몸에 알맞게 생각을 비운 뇌는 글을 쓰기 딱 적당하게 유연해졌다. 집으로 돌아와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책상 앞에 앉는다. 글을 쓴다. 오전 중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5매만 쓰자, 라는 꿈을 아침마다 꾼다.으레 작가라고 하면 이 정도의 성실함과 부지런함은 기본 능력으로 장착해야 할 것만 같은데 실상 그렇지 않다는 건 스스로도 인정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타고 나길 저녁형 인간인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무언가를 한다는 일이 통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래도 최근에 유행하는 '미라클 모닝'을 따라잡기 위해 아침마다 사투를 벌인다는 건 널리 알리고 싶다.아침 기상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시간이 주는 여유 때문이다. 하루가 24시간에서 30시간쯤 되는 기분이랄까. 마치 보너스 타임을 더 받아낸 게임 캐릭터가 된 것만 같다. 그래서 타고난 저녁형 인간인 내가 아침형 인간을 따라잡으려 아침마다 싸우는 것이다. 일어나기만 하면 6시간을 보너스로 더 얻을 수 있는데. 왜 나는 아침마다 이토록 일어나지 못하나.그래도 이 싸움에 패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엔 일주일에 두어 번 쯤은 제때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렇게 아침 기상에 성공하면 그날은 글을 쓰기 좋은 출발이다. 그러나 변수는 더 남았다.나는 식물 속성을 가진 인간이다. 해가 뜨지 않으면 통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그래서 계획된 아침을 맞이해도 맑은 하늘이 아니라면 소용없다. 새파란 하늘에 빛나는 태양이 있어야지만 글을 쓸 기분이 든다. 이처럼 글을 쓰기 위해 마음 먹는 일은 글을 쓰는 일보다 더 어렵다.그래도 나는 원고 작업률이 50퍼센트는 된다고 생각했다. 맑거나, 흐리거나. 날씨는 두 종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맑은 날에만 글을 써도 50퍼센트는 이룬 것 아닌가, 하고 뼛속까지 문과는 그런 계산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건 나의 오판이었다. 날씨는 두 종류가 아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날씨는 네 종류다. 해, 구름, 비, 눈. 이런 분류 안에서 내가 글을 쓰는 때는 오직 하나, '해' 뿐인 거다.이 사실을 깨달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식물 속성이라는 변명 안에서 얼마나 안전하게 게으름을 부렸는지 자백하는 동시에 반성하고 있을 따름이다.황야의 무법자 세계관인 19세기 미국의 서부. 그곳의 바(bar)에는 "피아니스트를 쏘지 말아주세요. 그도 열심히 연주하고 있습니다. (Please don't shoot the piano player. He's doing the best that he can.)" 라는 문구를 피아노에 붙여 놓았다고 한다.문자 그대로 모골이 송연해지는 말이다. 아직은 내게 겨눈 총구를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더 열심히 써야겠다. 그래도 현실을 직시하고 게으름을 반성하는 소설가도 흔치 않으니. 해가 뜨기를 기다리기보다 해가 떴던 기억에 의지하려 한다. 좀 더 쓸 얘기가 남아 있으니, 아직은 이 소설가를 쏘지 말아 주세요.이나리 소설가

2021-04-12 06:30:00

[노동일의 이른 아침에] 문제는 태도야, 이 바보야!

[노동일의 이른 아침에] 문제는 태도야, 이 바보야!

"무능·위선·내로남불은 특정 정당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사용하지 못한다. 특정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 맞다." 개인적으로 이번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의 최대 희극적 장면은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선관위가 집권 여당을 도와주기 위해 그런 단어들을 금지한 건 아닐 것이다.결과적으로는 선관위의 뜻과 달리(?) '무능·위선·내로남불'은 민주당을 연상시키는 말로 국가기관의 인증을 받게 되었다. 김태년 전 민주당 원내대표가 선거 직전 다급하게 "내로남불 자세도 혁파하겠다"고 자인한 걸 보면 선관위가 없는 말을 한 건 아닌 듯하다.하지만 현 정권이 모든 일에서 무능하거나 항상 위선과 내로남불로 일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역대 정권 치고 유능하고 정직하고 상대보다 자신에게 더 엄격했다는 평가를 받은 경우가 한 번이라도 있었는가. 지난해 4월 총선에서 범여권에 180여 석을 몰아준 국민이 겨우 1년 만에 회초리를 든 반전에는 더 본질적인 이유가 있다. 현 집권 세력의 '태도'가 바로 그것이다. 위선보다 오만이, 무능보다 무례가, 내로남불보다 뻔뻔한 태도가 국민의 분노를 자초했다는 말이다.4·7 재보궐선거에서 가장 관심이 쏠린 서울과 부산 모두 전임자들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한 선거였다. 1, 2위 도시의 시장들이 동시에 성 추문 의혹으로 사퇴하거나 사망한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우연이라고 하기엔 석연치 않다. 대한민국의 권력을 모두 차지한 집권 세력의 오만함이 근본 원인이라고 보는 게 온당하다. 견제가 사라지면서 해이해진 권력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사건의 뒤처리 역시 집권층의 오만함을 보여준 과정이었다. 애초부터 '무공천'을 명시한 민주당 당헌대로 후보 추천을 포기하고 국민 앞에 사죄하는 게 정도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당 혁신 차원에서 국민과 약속한 규정이다. 당헌을 바꾸면서 이낙연 전 대표는 "공천을 통해 시민의 심판을 받는 것이 책임 있는 공당의 도리"라고 했다. 문 대통령도 "당헌은 고정불변이 아니다"며 뭐가 문제냐는 반응이었다. 국민 앞에 죄송하다거나 송구하다는 입에 발린 소리조차 없었다. 국민의 시선은 안중에도 없는 안하무인의 태도가 아니고 무엇인가. 승부는 거기서부터 갈렸다고 봐야 한다. 스스로 말한 대로 국민의 심판을 받은 것이다.국민의 분노를 부른 부동산을 보자. 규제 일변도 정책이 부동산 폭등을 부른다는 비판에도 마지막 순간까지 김현미 국토부 장관을 고집했다. 더 큰 문제는 과도한 세금이다. 걱정하고 분노하는 국민에게 여권의 질타가 이어졌다. "특수 사례를 과도하게 부풀려서 일반화한 것" "세금 폭탄이 아닌 공정성 강화" "제발 호들갑 떨지 말고, 국민들을 불안 속으로 끌고 가려는 짓 그만 멈추라"는 발언들이다. "세금 부담이 어려운 사람은 (그 집에서) 나가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집 한 채 가진 보통 사람들의 불안한 마음을 조롱하거나 국민을 훈계하는 말들이다. 맡겨진 일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머슴들이 나무라는 주인에게 눈을 부릅뜨고 호통치는 형국이다. 이러고도 주권자인 국민의 지지를 호소하고 다녔으니 그거야말로 오만하고 무례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선거 후 청와대와 여당은 더욱 낮은 자세로 혁신하겠다는 다짐을 내놓고 있지만 미덥지 않다. 사람을 바꾸고 제도를 손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오만하고 무례한 태도의 문제는 차원이 다르다. '정의 대 불의'라는 집권 세력의 터무니없는 인식을 바꾸지 않은 한 고치기 쉽지 않다. 여전히 국회 180석을 보유한 상황에서 어깨에 힘을 빼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반성한다고 말하면서 '언론 탓'을 하거나, 검찰 개혁을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는 게 그렇다.그래도 태도를 전환해야 하는 게 맞다. 집권 세력을 위해서도, 정치에 의해 편이 갈리고, 여러모로 고통받는 국민을 위해서도 그렇다.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다. 국민은 권력을 가진 자들이 깨우칠 때까지 가르칠 것이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구호를 패러디하자면 이런 가르침 말이다. "문제는 태도야, 이 바보야!"(It's the attitude, stupid!)

2021-04-11 14:22:30

[기고]이젠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이 지역 자산

[기고]이젠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이 지역 자산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고위험군과 의료진이 우선 접종을 하고 있다. 1년여 동안 코로나19에 의한 팬데믹의 전세를 바꿀 우리의 응전이 시작됐다.K-방역의 원형인 대구 D-방역수칙 중에서 증상 있을 때 검사하자는 2차 예방수칙을 제외하고는 모든 수칙이 1차 예방대책이다. 마스크 착용은 개인 수준의 1차 예방대책이고, 사회적 거리두기나 모임 자제 등은 전 시민에 대한 사회적 1차 예방 방역대책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방역대책이 장기적으로 시행되면 경제에는 막심한 타격을 주게 된다.콘택트 어게인. 일부 언택트가 필요한 분야를 제외하고 우리는 다시 광장에 모이고 함께하는 노멀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우리들의 건강 보호와 정상적인 사회경제 활동을 위해서 백신 접종을 통한 집단면역 형성 이외에는 우리에게 별 다른 옵션이 없다.뉴노멀이 아닌 지난날의 노멀로 다시 돌아가려면 백신 접종률이 높아야 한다. 개인 접종의 참여에 따라 지역사회 접종률이 된다. 지역사회 접종률을 높여야 경제를 회복시킬 수 있고, 접종률은 시민건강 보호의 지표이자 우리 지역의 자산이 된다.코로나19의 증상과 예후를 작년 이맘때만 해도 잘 몰라 우왕좌왕했었다. 지금도 백신 종류에 따른 부작용에 대해서도 왈가왈부가 많다. 백신의 종류에 따른 단기적인 일부 부작용에 대한 염려는 있지만. 지역사회 전체로 볼 때 백신의 부작용이 그 효과를 초과하는 수준이라고 볼 근거는 없다.드물게 생기는 이상 반응은 대부분 감내할 수 있는 위험이라 할 수 있다. 개인에게 이상 반응은 다소의 불편함과 고통이 따르지만, 지역사회 전체 측면에서는 편익이 훨씬 크다. 그렇지 않고는 지역사회나 국가로 볼 때 더 큰 건강과 경제적 희생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지금도 우리는 접종 후에 생긴 항체가 얼마나 지속되는지, 얼마간의 주기로 접종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축적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감수해야 하는 극히 드문 치명적 부작용과 경증의 부작용을 감수하지 않고는 일상생활과 경제를 회복시키기 어렵다는 것이다.국민들이 백신 접종을 충분히 해 항체보유율을 70% 이상 높여야 집단면역의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래서 백신 접종률이 매우 중요하다. 높은 예방접종률을 지역사회나 국가의 자산으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백신 우선 접종 대상인 큰 병원 소속 의료인들의 백신 접종 동의율이 매우 높지만 일부 의료기관 의료인들의 접종 동의율은 크게 높지 않다는 후문도 들린다. 감염병에 대항하기 위한 접종 동참에 대한 의료인들의 태도와 행동이 지역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사뭇 크다. 접종 후 발열과 몸살 증상으로 인해 의료인들이 백신 접종을 주저하는 모습은 시민들의 접종률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대구경북 시도민들은 작년 초부터 보이지 않는 코로나19의 폭발적인 유행에서도 이웃과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인 시민성과 공동체 의식을 발휘하면서 눈 덮인 산 속의 크레바스를 넘어오듯이 앞장서서 헤쳐왔다.이제 다시 지역사회의 접종률을 높여 지역민의 건강과 지역사회의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한 마지막 크레바스를 넘어야 할 것이다. 다시 한번 대구에서 시민 참여형 D-방역의 성공을 백신을 통해 이뤄내야 하는 시점이 도래했다.

2021-04-11 14:17:19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천경자(1924-2015),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천경자(1924-2015),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다른 나라를 여행하며 그린 기행 회화는 천경자의 작품 세계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해외로 나가는 일이 흔치 않았고, 출장이 아니라 여행 자체가 목적인 관광이 익숙하지 않던 1969년부터 그녀의 스케치와 기행문이 종합일간지에 실리며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는 아프리카 여행과 자전적 이미지를 결합한 기행화이자 풍경화이자 자화상인 다층적 멀티장르 회화이다. 눈으로 덮인 희고 평평한 꼭대기가 인상적인 킬리만자로산이 붉은 하늘을 배경으로 멀리 보이고, 사슴, 얼룩말, 멧돼지, 사자, 영양, 기린, 코끼리 등 낯선 동물들이 드넓은 노란 들판의 드문드문한 나무 사이에 있다. 한껏 매혹적인 색채의 이국적 풍경이지만 동물의 표정과 동작은 침울하다.코끼리 등 위에 머리를 무릎에 파묻고 쪼그리고 앉아 있는 한 여성이 있다. 쏟아져 내린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렸다. 천경자는 "고독과 상념에 잠긴 채 코끼리 등에 엎드려 있는 나체 여인은 바로 나 자신이다"고 했다.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는 그녀가 자신의 오십 평생을 회상하는 자서전을 쓸 때 그렸던 그림이다. 이 그림의 화려한 풍물, 당당했던 그녀의 겉모습과 달리 지난 삶을 되돌아보는 속마음은 회한이었던 것 같다.그림재주뿐 아니라 글재주도 뛰어났던 천경자의 개인사는 그녀 자신의 명민하고 솔직한 수필로 그 편린이 알려지며 대중의 공감을 얻었다. 천경자는 철없이 한 결혼과 스스로 강행한 이혼, 기혼 남성과의 연애, 혼외자녀 출산과 양육, 자녀들에 대한 죄책감과 호적 문제, 임신 중절 수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의 역할 등을 감당한 여성으로서, 창작자의 짐을 진 예술가로서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고통을 스스로 밝혔다. 생의 역경은 천경자 회화의 동력이 되었고, "자신의 비애와 분노를 즐기며 예술을 구가하고 싶은" 승화된 자학이 되었다.천경자는 20세기 한국화 화단에서 많지 않은 채색화가이다. 일 년 동안이나 손을 대고서야 완성한 이 대작도 그렇지만 천경자는 긴 시간을 두고 붓질을 중첩하며 자신의 상념을 화면에 축적시켰다. 돌가루인 석채(石彩) 안료에 호분과 아교를 사용해 덧칠을 거듭하는 그녀만의 독특한 채색법이 부피감과 질감, 색감을 쌓아올려 밀도 높은 화면을 이루었다. 수묵화는 먹이 한 번 종이에 정착된 후 덧칠하면 제대로 스미거나 번지지 않아 오히려 처음의 붓질을 훼손하지만 채색화는 채색을 두텁게 할수록 그 안료 고유의 색조를 충분히 나타낼 수 있어 여러 번 나누어 칠할수록 깊이 있는 색이 된다. 천경자는 수묵화가 주류이던 당시 한국화 화단에서 꿋꿋하게 채색화를 고수하며 자신의 화풍을 이루었다.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서.미술사 연구자

2021-04-11 06:30:00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고양이 목덜미 잡으면 학대?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고양이 목덜미 잡으면 학대?

네로(코숏·3y)의 엄마와 아빠가 가벼운 논쟁을 벌이셨다.네로는 만성 잇몸병 때문에 재발할 때마다 약을 먹여야 하는 처지인데, 두 집사분은 네로에게 약 먹이는 과정을 곤혹스러워하셨다.그러다 남편분이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클립노시스'(clipnosis)에 대해 알게 되었고, 약을 먹일 때 그 방법을 사용하니 한결 수월하다고 주장하셨다.반면에 아내분은 고양이의 목덜미를 잡는 것은 고양이 학대라고 주장하셨다. 남편분은 약 먹일 때마다 네로를 타월로 둘둘 말아 보정하고 약 먹이는 것보다는 네로에게도 덜 스트레스받는 방법이라며 재차 주장하셨다.고양이 클립노시스는 목 뒷덜미에 클립을 집어두면 고양이가 일시 정지된 듯 동작을 멈추는 독특한 습성을 일컫는다.엄마 고양이가 새끼의 목덜미를 물고 다니는 모습을 관찰해보면 새끼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은 채 축 늘어져 있다. 어미가 새끼의 목덜미를 물면 새끼는 자연스레 어미에게 몸을 의지하며 반항하지 않는 본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고양이뿐 아니라 강아지와 설치류 등 대부분의 포유동물은 어미가 새끼를 옮기는 유일한 방법이며 그래서인지 목덜미 피부는 유난히 잘 늘어나면서도 통증을 덜 느끼는 부위이기도 하다.어미가 새끼를 이동시키는 상황은 주변의 포식자로부터 새끼를 보호해야 하는 긴박한 상황일 텐데, 목덜미를 물린 새끼는 어미에게 반항하거나 울지도 않기 때문에 포식자로부터 안전하게 새끼를 이동시킬 수 있다. 오랜 기간 반복적으로 습득된 생존 전략이 유전자 속에 각인된 셈이다.고양이는 성장 후에도 이러한 본능이 좀 더 강하게 남아 있으며 다 자란 고양이 중에 상당수 개체가 목덜미를 부드럽게 잡으면 반항을 하지 않고 일시 정지된 듯 멈춤 상태를 유지한다.반면에 목덜미를 무는 행동은 번식과 다툼 과정에서는 좀 더 다른 의미를 내포하기도 한다. 발정기 수컷이 교미 과정에서 암컷의 목덜미를 무는 행동은 암컷의 허락을 확인하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새롭게 합사하려던 고양이들 간의 다툼 과정에서 상대의 목덜미를 물려는 행동은 서열상 우위를 보이려는 행동으로 상대의 목덜미를 물면 상대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본능에서 비롯된다.어느 경우든 목덜미를 물리거나 잡히는 고양이의 입장은 행복하지 않다. 불편하며 제압된 상황으로 인식하며 빨리 해소되기를 기대한다. 이 때문에 고양이 클립노시스는 고양이를 학대하는 행위라고 주장하기도 한다.나 역시 보호자들에게 고양이의 목덜미를 잡는 행동은 자제해주실 것을 당부드린다. 특히 목덜미를 잡은 채 체중이 나가는 다 자란 고양이를 들어 올리는 행동은 통증이 유발되고 피하출혈이 발생할 수도 있음을 경고한다. 목덜미를 잡힌 고양이가 가만히 있는 것은 편해서가 아니라 심리적으로 긴장하고 있음을 분명히 이해하여야 한다.고양이 클립노시스가 활용되는 경우도 있다. 공격성이 강한 길고양이를 컨트롤하거나, 검진과 채혈 과정을 심하게 거부하는 고양이를 대해야 할 때 도움되기도 한다. 과민하고 공격적인 고양이를 강압적으로 보정하는 과정에서 고양이가 다치거나, 구조자 또는 간호사가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강압적인 보정 또는 진정 주사 마취를 결정하기 전 한 번쯤 클립노시스를 시도하는 편이다. 반응을 관찰하고 다행히 클립노시스 효과가 두드러진다면 처치를 최대한 신속하게 마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네로 보호자분에게도 이러한 경험을 얘기드리며 고양이의 입장도 대변해드렸다. 클립노시스는 가족과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반려 고양이에게 적용하기에는 부적절하며, 이러한 시도가 반복되거나 지속하면 고양이는 위축되고 가족들을 두려워할 수도 있음을 설명해 드렸다.가정에서 약을 먹여야 하거나, 안약을 넣거나, 발톱을 깎거나, 상처 소독을 해줘야 하는 긴박하고 부득이한 상황이라면 클립노시스를 시도할 수는 있지만, 고양이가 불편해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시고 최소화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당연히 처치 전후에는 고양이를 충분히 위로해 주어야 한다. 수의학박사 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 SBS TV 동물농장 동물수호천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 원장은 개와 고양이,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치료한 30여년간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올바른 동물의학정보와 반려동물문화를 알리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동물명은 가명을 사용한다.)

2021-04-10 06:30:00

[광장] 서오릉에서 지는 꽃을 보다

[광장] 서오릉에서 지는 꽃을 보다

봄이 성큼 다가왔다. 봄바람에 거리마다 피어 있던 꽃잎들이 난분분 휘날리고 지난겨울 검은색으로 딱딱하던 길가 느티나무 가로수의 연초록 빛깔이 혼돈스러운 인간 세상에 회자정리(會者定離)요 거자필반(去者必返)과 같은 우주 만물의 철리를 새삼 알려주려는 듯이 환한 등을 켜며 공기를 싱싱한 초록으로 물들이고 있다.봄빛도 완만하고 서울 생활도 거지반 끝나가기도 하는 어제는 운 좋게 점심시간을 이용해 사무실에서 가까운 서오릉을 다녀왔다. 서울의 서쪽과 경계를 이루는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해 있는 '서쪽에 있는 다섯 기의 능'이라는 의미의 서오릉에는 숙종과 인현왕후의 능과 숙종의 후궁이었던 장희빈의 묘를 비롯해 왕릉 5기, 2기의 원과 1기의 묘가 조성돼 있는 사적 제198호이다. 200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서울의 북쪽인 이곳은 아직 벚꽃이 만발해 있고 목련이 막 지려 하고 있다.서오릉에 오니 신영복(1941~2016) 선생의 '청구회의 추억'이라는 글이 떠올랐다. 1966년 봄 당시 대학 강사이던 신영복 선생이 후배인 서울대 문학회 회원들과 서오릉에 소풍을 가는 도중에 우연히 만난 허술한 옷차림의 국민학생 꼬마 여섯 명(나중에 알고 보니 이들은 산동네 판자촌에 사는 극도로 가난한 아이들로 중학교 진학을 못해 검정고시를 준비하기도 하고 곧바로 공장에 취직하기도 한다)과 만남을 이어가다가 청구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우정을 나누게 된다. 그러던 중 신영복 선생이 1968년 7월 소위 통혁당 사건에 연루돼 구속되면서 이 아이들과 만남이 끊어지게 되는데, 그 만남과 헤어지는 과정을 담담히 기술한 내용이 청구회의 추억이다.서오릉 경내를 걸으면서 나는 숙종이나 인현왕후, 장희빈 같은 인물들 대신에 신영복과 또 한 사람을 떠올리게 됐는데 그분은 경북 봉화 출신의 재야 문필가 전우익(1925~2004) 선생이다. 한때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라는 책으로 낙양의 지가를 올린 분인데 젊어서 시국 사건에 연루돼 수형 생활을 한 후 봉화 시골에서 농사와 나무 키우기로 평생을 보냈다. 신영복 선생과 전우익 선생은 생전 두터운 교분을 나누었는데, 전우익 선생이 작고하시자 신영복 선생께서 우리나라 지도에서 봉화라는 지명을 없애야겠다 하시면서 슬픔을 드러내기도 했다.나는 전우익 선생을 통해 중국의 사상가이자 문학자인 루쉰(魯迅·1881~1936)을 더 깊이 알게 되었다. 그의 잡감인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朝花夕拾·조화석습)라는 책을 특히 좋아했다. '아침 꽃을 저녁에 줍는다'는 이 구절은 어떤 상황에 즉각즉각 대응하지 않고 저녁까지 기다린 다음 매듭을 짓는 게 현명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늘 다른 은유로 읽어 왔다.꽃은 줄기나 가지에 매달려 있을 때가 절정이다. 그 화사한 빛깔도 그렇고 싱싱한 향기도 그렇다. 그래서 비바람이 불거나 수명이 다해 꽃이 땅바닥에 떨어지면 즉시 쓰레기 취급하는 게 세상 인심이다. 그러나 루쉰은 떨어진 꽃도 꽃이라 귀하게 여기고 오랫동안 두고 본 후 저녁에 줍자고 한다. 사람도 꽃처럼 피어 영화를 누리며 잘나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평생을 제대로 한 번 꽃 피지도 못하고 시들거나 떨어진 사람도 있다.그 보잘것없는 민초들에 대한 비유가 '조화석습'이다. 신영복도 전우익도 루쉰도 다 낙화(落花)를 사랑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서오릉에서 힘없고 가난한 그 판잣집 아이들과 우정을 텄다. 그게 진정한 인간의 도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바람에 날리는 꽃잎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2021-04-10 06:30:00

[임종대의 우리나라 고사성어] 양고살재(楊古殺岾)

[임종대의 우리나라 고사성어] 양고살재(楊古殺岾)

'양고(楊古)'는 청나라 태종의 사위 양고리(楊古利)이고, '살재(殺岾)'는 양고리를 사살하고 피해 올라온 고개를 말한다. 청 태종이 병자년에 난(丙子胡亂)을 일으켜, 1636년 12월 8일 압록강을 건너, 영변 철옹성에 도착한 날이 12월 14일이다. 이날 인조(仁祖)는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숭례문을 통하여 강화도로 향하였다. 최명길이 청 장군 마푸다(馬夫大)와 회담하는 동안 인조는 살곶이를 지나 송파루를 건너 남한산성에 입성했다. 인조의 입성 후 15일부터 1637년 1월 30일까지 45일간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씻을 수 없는 수난사였다.청의 침략으로 서울이 함락되자 임금이 남한산성으로 파천했다. 고창의 박의(朴義 1599~1653)는 1624년 무과에 급제, 말 잘 타고 활과 총과 포를 잘 쏘아 박 포사라 했다. 지방지원군으로 박의 부장은 병마절도사 김준룡(金俊龍)을 따라 수원 광교산(光敎山)에서 청군을 맞아 싸웠다. 산악을 이용, 거듭 승리를 거두었지만 전황이 불리해지자 후퇴하게 되었다. 혹한에 눈이 휘몰아치자 사방이 밤같이 어두워졌다. 박의 부장은 어둠을 틈타 산 중턱에 몸을 숨기고 적의 동태를 살폈다. 적장이 선봉에서 아군의 후미를 파고드는 것을 보고 총을 겨누어 쓰러뜨렸다.그가 누루하치의 사위 양고리로 만주 정황기(正黃旗)의 장수였다. 양고리는 창평(昌平)에서 명나라 군사와 쉰여덟(58)번 싸워 이겨 태종이 칭찬하고 딸을 주어 사위로 삼았다. 그런 그가 예친왕과 더불어 조선에 왔다가 박 포사의 총에 맞아 목숨을 잃은 것이다. 청 태종은 사위를 잃고 매우 애석하게 여겨 무훈왕(武勳王)으로 봉해 태묘에 앉혀 기렸다.조정에서는 후에 어둠 속의 샛별 같은 박의에게 평안도 국방의 수장(守將)인 권관(權管)을 맡겼다. 나라가 위급함에 처했을 때 적의 요인인 청 태종의 사위를 쓰러뜨린 공을 세워 백성들에게 커다란 위안과 희망의 등불이 되었다.박의 장군이 나서 자란 곳은 전북 고창 예지리 양정으로, 하늘을 우러르며 조상에게 제사를 모시는 고인돌이 있는 곳이다. 유서 깊은 이곳은 선운사를 창건한 검단선사에 의해 닥나무 껍질로 한지를 떴던 아산 구암리, 천일염을 생산한 해리와 심원면과 가깝다.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소금장사 이야기도, 중국 사신단의 주 품목인 한지(창호지)도 구전에 의하면 고창에서 최초로 만들어졌으며, 전주는 그 집산지일 뿐이다.박의 장군은 양고리를 살상하고 당시 산맥을 따라 '양고살재'를 넘어 고향을 찾았다. 말년에는 권관의 직에서 물러나 예지리 양정에서 여생을 마쳤다. '양고살재'는 전라남도 장성과 전라북도 고창 사이의 영산기맥의 통로로 오늘도 많은 사람이 사연을 안고 넘나든다.1637년 1월 30일 인조는 청 태종에게 무릎을 꿇고 항복했으며, 인조 17년 삼전도에 태종의 송덕비(頌德碑)를 세우는 수모를 겪었다. 박 장군의 이야기는 중국 기록이지만, 배연(裵然)의 '포사전(砲士傳)'은 '적의 장군을 죽이고 그 부하를 무찔렀던 박 포사의 공은 병자호란에서 으뜸이다'고 적고 있다.(사)효창원7위선열기념사업회 이사

2021-04-10 06:30:00

[안동을 걷다, 먹다] 28. 퇴계를 키운 춘천 박씨(朴氏)

[안동을 걷다, 먹다] 28. 퇴계를 키운 춘천 박씨(朴氏)

안동에 살기 시작했다. 서울이나 대구 등 대도시에 비해 안동에 사니 편안하다. 안동은 좋다. 날마다 안동을 걷고 안동 음식을 먹는다.익숙한 그것들이 어느 날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동의 주름살이 보이기 시작했고 안동이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안동국시와 안동찜닭, 안동간고등어 혹은 헛제사밥의 심심한 내력도 내 귀에 속삭거리기 시작했다.무심했던 안동에 대한 내 시선이 한결 부드러워졌고 투박한 내 입맛도 호사스럽게 안동을먹게 됐다. 안동에 대한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그냥 안동이야기다28번째 이야기. 퇴계 어머니 춘천 박씨(朴氏)꼭 한번은 그곳에 가보고 싶었다. 그곳에 가지 않고서는 퇴계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도 느낄 수도 없을 것 같았다.그를 알게 되자 오히려 더 안개 속으로 빠져드는 것처럼 퇴계의 향기가 아득하게 멀어졌다. 퇴계 이황(退溪 李滉·1501~1570). 그의 시대는 연산군에서 선조까지 격동의 조선 중기로 접어드는 시기였다.안동을 추로지향(鄒魯之鄕)이라고 부르는 것은 맹자의 고향인 추(鄒)나라와 공자의 고향, 노(魯)나라를 합쳐 놓은 곳과 같다는 의미다. 공자의 77세 종손 공덕성(孔德成)선생이 도산서원을 방문했을 때 '추로지향'이라고 쓴 글을 도산서원 입구에 비석으로 세웠다. 퇴계 태실이 있는 도산의 노송정(老松亭) 종택에는 '해동추로'(海東鄒魯)라는 현판이 걸려있다.해동은 우리나라를 가리키므로 우리나라의 공맹이라는 뜻이다. '도산서원'에 가지 않더라도 안동 어디를 가나 퇴계의 향기는 난다. 안동이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는 자부심을 갖게 된 것은 퇴계가 학문과 삶을 분리하지 않고 실천하는 '선비'의 삶으로 일관했기 때문 아니었을까?그런데 공맹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당대 대학자에게 사사 받지도 않고, 기껏해야 천자문을 가르친 서당 훈장과 숙부 송재공이 있었을 뿐, 성리학의 본향 중국에 유학을 가지도 않은 퇴계는 어떻게 공자와 맹자를 합쳐 놓은 듯한 조선 최고의 대학자로 성장할 수 있게 된 것일까.따지고 보면 퇴계는 남들보다 오히려 불우(?)하다고 할 수 있는 환경에서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6남1녀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태어난 지 7개월여 만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홀어머니 아래서 자라야 했다. 할아버지는 태어나기도 전에 별세하셨기 때문에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받아야 할 '사랑방 교육'은 아예 구경조차 못했다.퇴계의 어머니 춘천 박 씨는 홀로 어린 퇴계를 비롯한 7남매를 건사하면서 시어머니를 봉양하고 양잠과 농사로 온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고생스러운 삶을 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환경에서도 춘천 박씨는 퇴계를 비롯한 두 형제를 학문의 길로 인도해서 높은 벼슬에 오른 대학자로 길렀고 구순의 시어머니도 성심성의껏 모셨다.'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말이 있다. 맹자(孟子)를 대학자로 키운 것은 맹자의 어머니였다. 맹자의 어머니가 묘지 근처로 이사를 갔는데 어린 맹자는 늘 보고 듣는 것이 상여(喪輿)와 곡성(哭聲)뿐이었다. 맹자가 늘 그 흉내만 내자 맹자 어머니는 이곳은 자식 기를 곳이 못 된다 하고 곧 저잣거리로 집을 옮겼다. 맹자는 이번에는 장돌뱅이 흉내를 내곤 했다. 맹자 어머니는 이번에는 서당 옆으로 이사를 갔더니 맹자가 글을 따라 읽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자식교육의 대부분을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어머니가 맡는 세태는 전혀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맹자의 어머니는 묘지에서 저잣거리로 그리고 서당으로 세 번이나 이사한 끝에 맹자에게 공부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을 제공해줬지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교육은 어머니의 인성 교육이다. 훌륭한 어머니 아래 불효자는 없다.따라서 맹자처럼, 대학자 퇴계를 만든 것은 7할이 어머니 춘천 박씨다. 나머지 3할은 할머니의 무릎 교육이었다. 어머니와 할머니가 퇴계를 조선 성리학의 대가이자 대학자로 성장시킨 기반이자 선생이었다.오늘 퇴계가 태어난 '노송정 종택'과 퇴계 어머니 춘천 박씨 묘소를 찾아 나선 것은 그 때문이었다. 퇴계가 태어난 곳이 바로 할아버지 이계양(1424~1488)이 건립한 '노송정 종택'이다. 퇴계는 이 노송정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어려서부터 글을 좋아해서 6살에 이웃 노인에게 천자문을 배우기 시작했고, 12살에는 숙부로부터 틈틈이 '논어'를 배웠다고 한다.공자가 노송정 종택 대문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나서 퇴계를 잉태했다는 전해질 정도로 퇴계 태몽은 대단하다. 노송정 종택 대문에 '성림문(聖臨門)'이라는 현판이 들어선 것으 퇴계의 제자 학봉 김성일이 태몽을 해석해서 붙인 이름이다.성림문을 들어서서 왼쪽으로 돌아가면 퇴계 태실이 있는 노송정 본채다. 태실은 본채 중에서 퇴계가 살던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돼있다. 'ㅁ'자형 구조로 지어진 본채 안으로 돌출돼있는 태실에는 '퇴계선생태실'이라는 현판이 높게 붙어있다.잘 정돈된 태실 안으로 들어서자 단아한 조선 선비의 모습이 그대로 떠올랐다. 눈을 지긋이 감고서 오백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 여행을 청하자 퇴계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 했다.그와 함께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홀어머니 춘천 박씨의 단호한 표정과 막내 손자를 맡아서 키웠을 할머니의 모습도 떠올랐다.춘천 박씨의 생전 풍모는 퇴계가 직접 쓴 묘갈(墓碣·돌비석)에 잘 드러나 있다. 퇴계는 아버지의 묘갈은 당대 대학자 기대승에게 청하여 받았으나 어머니와 할머니의 묘갈은 자신이 직접 쓸 정도로 애정을 듬뿍 담았다."(어머니 춘천 박씨는) 서기 1470년 3월 8일에 태어났다. 타고난 자질이 아리따웠으며 자라서 우리 아버지의 계실(繼室·후실)로 들어왔다. 어머니는 시어머니를 성심껏 섬기면서 조상을 받들었고 안 살림은 근검으로 다스렸다.아랫사람을 대하기는 엄하면서 자혜로웠고 노비들을 거느리는 데는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의뢰하고자 하였다. 길쌈을 하여 생활을 하였으나 밤새도록 하여도 게을리 한 적이 없었다."퇴계는 어린 시절 늘 자식들을 위해 일해 온 어머니가 고생하는 것을 훤히 알고 있었다. 정경부인(貞敬夫人)으로 추존된 어머니의 묘갈에는 절절한 사모곡처럼 어머니 춘천 박씨에 대한 그리움이 듬뿍 배어있었다."신유년(1501년)에 아버지께서 진사에 급제하시고 다음 해 6월에 병으로 돌아가시니, 그때 맏형님이 겨우 장가를 들었을 뿐 그 나머지는 모두 어렸다. 어머니께서 깊이 생각하시기를 많은 아들을 두고 초년에 과부가 되어 가문을 잇지 못하고 마침내 시집 장가를 떳떳이 보내지 못하게 된다면 이는 크게 근심스럽고 두려운 일이라고 하였다. 삼년상을 마치자 제사는 맏이에게 맡기고, 그 옆에 방을 지어 거처하면서 더욱 열심히 농사를 짓고 누에를 쳤다.부역과 세금이 혹심하여 많은 사람의 살림이 결단났는 데도 어머니께서는 능히 먼 앞날을 내다보면서 환란을 도모할 수 있었으며 가업을 잃지 않고 지킬 수 있었다.어린 아이들이 점점 자라면서 가난을 벗어날 수 있었으며, 멀고 가까운 스승을 쫓아 공부하도록 학자금을 마련하였다.언제나 훈계하시기를 다만 문예만 할 것이 아니라 몸가짐을 삼가는 것이 귀하다 하였고 사물에 알맞은 비유로써 가르침을 하였다.언제나 간절히 경계하시기를 세상에서 과부의 아들은 배움이 없다고 말하니 너희들이 백배의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비웃음을 어찌 면할 수 있겠느냐 라고 말했다. 뒤에 두 아들이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길에 오르니 어머니께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늘 세상의 환란을 근심하였다..."어머니는 퇴계에게 높은 관직을 마다하고 작은 벼슬(고을 원)에 그칠 것을 소원하셨다. 놀라운 것은 퇴계를 비롯한 7남매를 꿋꿋하게 길러낸 춘천 박씨가 문자를 배운 적이 없어 글을 모른다는 점이다.이와 관련, 퇴계는 "문자를 배운 적은 없으나 평소에 늘 들은 아버님의 정훈(庭訓 가정의 가르침)과 여러 아들이 서로 공부하는 것을 들어서 이해하는 바가 있었으며 의리로 비유하여 사정을 밝게 하는 지식과 생각은 마치 사군자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속으로만 지니고 있을 뿐 겉으로는 항상 조용하고 조심할 뿐이었다"라고 표현했다.글을 모르는 어머니 아래에서 조선 최고의 대학자가 탄생한 것은 모순이나 아이러니가 아니다. 퇴계는 어머니에게 글로 배운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삶에서 성리학을 배웠다. 가사를 지성으로 돌보고 아이들에게 행동으로 가르치고 시어머니를 잘 봉양하고 아랫사람들을 잘 대하는 것보다 더 나은 교육이 어디 있겠는가. 퇴계가 직접 쓴 묘갈이 있는 어머니 춘천 박씨의 묘소를 찾아 나섰다. '수곡 묘소'라 불리는 퇴계 부모와 조부모 묘소는 노송정 종택 바로 뒷산에 있었다.묘소는 맨 위에 '조모'로부터 그 아래로 '조부', 그리고 '어머니 춘천 박씨', 그 아래쪽에는 '부친' 순서로 자리하고 있었다. 순서를 가늠할 수 없는 '역장'(逆葬)으로 볼 수 있었다. 조선 중기 이전에는 역장에 개의치 않고 묘역을 조성하기도 했다고 한다. 가장 늦게 세상을 떠난 된 퇴계 어머니와 할머니가 할아버지와 아버지 묘소 사이에 뒤늦게 비집고 자리 잡은 듯한 형국이다.묘소는 풍수지리에 문외한인 필자가 보더라도 '길지'(吉地)였다. 눈앞에 개천이 흐르고 좌우로는 야트막한 산이 바람을 막아주면서 시야가 트인 아늑한 전망이 두드러져 보였다.네 기의 묘소는 소박했다. 퇴계 스스로는 죽으면 비석도 세우지 말라고 유언할 정도로 소박했지만 효심이 지극한 퇴계는 어머니와 할머니의 묘갈은 자신이 직접 쓸 정도로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특히 자신과 대척점에 서기도 한 고봉 기대승(奇大升)에게 아버지의 묘갈을 써줄 것을 직접 요청해서 바꾸기도 했다.이 '수곡 묘소'에서 진하게 묻어나는 퇴계의 향기와 기대승이라는 이름 석 자를 발견하는 것도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퇴계의 시대나 지금이나 세상은 늘 혼탁하고 혼란스럽다. 그의 시대가 혼란했던 만큼 퇴계라는 대학자가 나올 수 있었고, 지금의 세상 역시 천하대란을 통해 천하대치의 새 영웅이 탄생할 지도 모른다.그러나 그런 영웅을 기르는 것은 그 시대가 아니라 자식을 올바르게 이끄는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과 헌신일 것이다.오늘 우리는 퇴계의 향기를 통해, 혼란한 시대를 변화시키는 것은 한 사람의 영웅이 아니라 춘천 박씨 같은 어머니의 존재라는 평범한 사실을 깨달았으면 좋겠다.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2021-04-10 06:00:00

[이희수의 술과 인문학] 열정과 집념으로 만든 명주(fine wine),로마네 콩티

[이희수의 술과 인문학] 열정과 집념으로 만든 명주(fine wine),로마네 콩티

와인은 역사적 문화적 산물이며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오늘날 와인을 매개로 한 프랑스 문화는 음식문화가 중요하며, 미식가들도 많고 즐겁게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프랑스인들의 모임과 음식이 있는 곳에서는 항상 와인이 빠지지 않는다. 와인은 프랑스인들의 일상생활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마치 공기처럼 인간과 같이 호흡하는 문화적 존재며, 프랑스인들은 대체로 낙천적이고 친절하며 와인이 가진 매력만큼이나 느긋하고 밝고 즐겁다.그들은 자신들의 와인을 아끼고 애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생산 유통 소비의 단계를 체계화함은 물론 시대를 이어가는 전통적 문화사업으로 삼아왔다. 와인과 예술을 결합시킴으로써 와인의 위상을 격상시키고 해외로의 수출을 지속적으로 늘리면서 프랑스 문화를 전파하여 왔다. 프랑스의 명품을 일구어내는 지방에는 알자스, 루아르, 론, 샹파뉴, 랑그독 루시옹 등이 있지만, 프랑스 와인 하면 사람들은 으레 보르도와 함께 프랑스 와인 시장의 양대 산맥으로 우뚝 선 부르고뉴. 이 두 지방을 먼저 떠올린다.자본과 기술이 집약된 샤또(chateau)에서 화려하고 진한 향의 와인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보르도 와인은 한때 역사적으로 영국이 지배하면서 영국 왕실 덕분에 다른 지역의 와인과는 다르게 와인 수출에 있어서도 특권을 누리며 와인 산업이 크게 발전되었다.그런데 가족 중심의 소규모 와이너리에서 자신들의 가문에서 전해오는 전통기술로 소량의 와인을 생산하며, 각기 와이너리마다 다양한 색깔의 와인을 빚어 내지만 한결같이 아주 맑고 섬세한 와인이라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는 부르고뉴 와인은 보르도 와인과는 다르게 교회(수도원과 사원)에 의해 유지되고 발전하게 되었다는 점이 부각 된다.부르고뉴는 보르도에 비해 포도밭의 규모도 아주 영세하며 날씨도 포도의 재배에 썩 좋은 편이 아닌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이 지방 포도밭의 토양과 지세가 빼어나고 엄격한 포도 수확량의 제한, 그리고 8~9월 포도 수확기에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풍부한 일조량, 나아가서 이 지방에 내려오는 탁월한 양조기법이 보르도에 버금가는 세계적 명주를 낳고 있다.보르도 와인은 블렌딩 와인이며, 부르고뉴 와인은 단일품종(Monocépage:모노세파쥬)으로 양조 되며 레드와인은 삐노 누아, 화이트는 샤르도네, 보졸레 와인은 가메를 사용한다. 영어로 버건디(Burgundy), 독일어로는 부르군트(Burgund)라고 부르는 부르고뉴 지역에는 2,0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포도원들이 있으며, 지형과 토양이 다양해 생산되는 와인 또한 다양하다.특히 그 이름만으로도 와인 애호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로마네 콩티(Romanée-Conti)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와인 중 하나이자 가장 완벽하고 가장 비싼 부르고뉴 와인 중 하나이다. 체리 향과 함께 생동감 있고 정교하며, 강렬한 바이올렛 부케로 뛰어난 기교의 감미로움을 보이며 수 세기 동안 높이 평가되어 왔다.신이 내린 기적의 술로 불리며 750ml 한 병에 수 백에서 수 천만원을 호가하는 로마네 콩티는 최고의 입지 조건을 가진 포도원에서, 생산자들이 최고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 포도의 재배부터 양조까지 최고의 노력을 투입해서 만든 와인이다. 가장 순수하며 가장 귀족적인 훌륭한 명주(fine wine)는 열정과 집념에서 얻을 수 있다.화려하고 경쾌한 색채, 열정, 그리고 향기는 모든 감각의 매력을 지니며, 입과 코에서 오르가즘을 한 번에 경험한다. 우리는 매일 매일 즐겁고 행복한 삶을 꿈꾼다. 와인처럼 시간이 가면서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가치 있는 인생의 동반자가 되기 위해선 삶의 열정과 집념이 필요하다. 성공의 크기는 열망의 깊이에 좌우된다. 명예는 정직한 노력에 있고, 목표를 끝까지 관철하고 말겠다는 집념과 열정 그것이 우리를 성장시킬 원동력이 된다. 글 : 이희수 대한칵테일조주협회 회장(대구한의대 글로벌관광학부 교수)

2021-04-09 14:30:00

[이진숙의 영국이야기] 불평을 세지 말고, 축복을 세어라

[이진숙의 영국이야기] 불평을 세지 말고, 축복을 세어라

영국에서는 내가 궁금한 세상을 만날 수 있다. 내가 미처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볼 수도 있다. 나이는 말할 필요가 없다는 노인과의 대화는 지루하지 않고, 열정이 있고 용감한 노인의 모습은 감탄스럽다. 노인의 평범한 일상이 내 상상을 뛰어넘어 눈이 번쩍 뜨인다. 나이가 들어서도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과 주름이 있어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믿음까지 생길 정도다.78세 할머니가 아직도 민박집을 운영한다. 덕분에 전 세계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오고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앉아서 듣는다.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갔는데, 접시에 비스켓을 담아놓고 티팟에 차를 우려 놓고 나를 기다린다. 나를 위한 준비가 간단해서 부담이 없다. 어른 앞이라고 어려워하지 않아도 되고, 어른 말씀이라고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서 좋았다. 어른을 만나서 제일 좋은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연륜과 지혜가 묻어난 깨달음을 얻어오는 게 아닌가.할아버지가 옥스퍼드대학의 캠퍼스를 안내한다. 은퇴 후 새로 이사 온 도시에서 역사를 공부해 가이드시험까지 봤는데, 시험발표 전에 공부한 것을 지인들에게 나눠준다는 거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그렇게 '친구'를 만들고 그렇게 '할 일'을 만든다. 좁은 골목골목을 따라다니면서 건물마다 얽힌 유구한 스토리를 들었다. "가까이 살면서도 처음 알았다."는 이에게 "나도 두 달 전엔 몰랐다."는 그의 대답이 귀에 남는다. '이제라도 알고 산다는 것'을 생각하며 놓칠세라 맨 앞에서 귀를 쫑긋했다.영국친구가 최근 집을 새로 수리했다. 부엌은 더 밝고 편리해졌고, 다이닝 룸은 더 아늑해졌고, 늘어난 화분들로 정원은 더 아름다워졌다. 칠십이 넘은 부부가 집을 이렇게 예쁘게 해놓고 산다. 날씨가 좋으니 바비큐를 하자고 친구들을 부르고, 차 한 잔을 마시자고 부르고, 함께 악기연습을 하자고도 부른다. 자주 모이고 자주 이야기하고 많이 웃는다.영국에 가면 나는 노인들도 지켜본다. 노부부가 손을 잡고 공원을 산책하고, 할아버지가 장바구니를 들고 장을 보러 간다. 아들과 함께 왔는데도 할아버지가 펍(pub)의 카운터에 서서 직접 주문하고 손수 음료수를 나른다. 미술관에 노인들이 가득해서 놀란다. 작품의 사진을 찍고 메모를 하고, 이젤을 펴놓고 그림을 그리고, 휠체어를 타고 작품을 감상한다. 채리티 샵(기부를 위해 자선단체들이 운영하는 가게)의 자원봉사자는 전부 노인들이다.그들은 '늙음을 탄식하고 우울해봤자 좋아지는 건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 90세 노인이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정말로 못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수영을 다니고, 103세 노인이 수퍼 가는 길에 옆집에 들러 "뭐 사다줄 거 없느냐?"고 묻는다.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아프다."는 노인에게 의사는 "불평을 세지 말고 축복을 세라."고 처방한다.영국인은 자조정신이 강하므로, 노인이 되어도 절대 자식과 함께 살지 않는다. 양로원은 부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지 않으므로, 은퇴하면 정부연금으로 살다가 거동이 힘들어지면 양로원으로 가기를 원한다. "bravo! You're still alive! happy birthday(브라보! 아직 살아있네요! 생일 축하)"라며 삶을 축하하고, "the good thing about getting older is your secrets are safe with your friends... as they can't remember them either!(늙어서 좋은 건 친구들끼리 비밀을 털어놔도 안전하다는 거다. 기억을 못하니까.)"라며 늙음을 웃어넘긴다.내 앞의 삶이 막막한 것은 멋진 노인들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웃지도 않으면서 인상 좋은 노인이 되기를 원하고, 나누지도 않으면서 넉넉한 노인이 되기를 원하고, 우아하게 살지도 않으면서 우아하게 나이 들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 인생은 사는 대로 되는 거다. 원하는 삶을 살아야 원하는 삶을 얻을 수 있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면서 매일매일 조금씩 그렇게 사는 거다.

2021-04-09 14:30:00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브랜드는 그 이름처럼 살아간다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브랜드는 그 이름처럼 살아간다

샤넬이 스넬이었다면, 구찌가 구쯔였다면, 로렉스가 릴렉스였다면 지금처럼 명품 브랜드가 될 수 있었을까? 그렇다. 우리는 샤넬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사랑에 빠진다. 구찌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가지고 싶어진다. 로렉스라는 단어를 들을수록 내 손목의 허전함을 느낀다. '사람은 이름대로 살아간다'는 말이 있듯 브랜드 역시 마찬가지다. 브랜드는 브랜드 네임처럼 살아간다.작년, 대구시 명품빵 브랜딩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대구의 빵은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며 그걸 부각시키고 싶어 하셨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대구만큼 빵집이 많은 도시는 전국 어디에도 없다. 미국에 가면 프렌차이즈 햄버거의 뺨을 치는 지역 햄버거 가게들이 즐비한데 대구도 그러하다. 파리에서 온 바게트 가게에서 맛 볼 수 없는 지역 빵집이 많다. 그래서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브랜드 네이밍이 문제였다. 누가 들어도 대구를 상징하는 빵이라는 느낌이 들어야했다. 그래서 샤넬, 구찌, 로렉스를 흉내내보았다. 위의 브랜드와는 다르게 빵은 고급스러운 네이밍이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빵은 대중적인 음식이기 때문이다. 발음 역시 재미있다. 한 음절로 이루어져 있고 된발음으로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빵꾸, 빵점, 빵빵 등 빵이 들어가는 단어는 다 재미있었다. 네이밍 작업의 종착지는 바로 '대빵'이었다. 대구에서 만든 빵이니 '대빵'이라고 짓는 건 너무 당연해 보였다.하지만 늘 그렇듯 이런 아이디어를 설득시켜가는 과정이 문제였다. 발표 전부터 우리 팀에게 닥칠 난항이 뻔히 보였다. '품위 없게 대빵이 뭐냐'라는 교수님의 표정, '지금 이름가지고 장난치는 거냐'며 화내는 사람들의 모습, '또 예산 낭비하고 있다'라는 악플 등이 예상되었다.우리는 낯선 브랜드를 최대한 익숙하게 표현 해내야하는 사람들이다. 어렵고 낯선 이름을 일부러 공부하며 암기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브랜드 네임에는 이미 광고적인 요소를 담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 광고비로 엄청난 예산을 들여 광고를 해야 한다.대구 빵을 '대빵'이라 표현하면 누구나 쉽게 인지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분야에서 최고를 나타내는 느낌도 들었다. 말 그대로 '대빵'이니까. 전문가 평가 위원회에서 나는 그들을 이렇게 설득했다. 브랜드 네이밍의 중심이 우리에게 있어서는 안 된다고. 이 브랜드에 맞는 이름을 짓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리고 그것을 접하게 될 사람들에게 그 무게 중심이 있어야한다고 끈질기게 설득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비로소 '대빵'이라는 브랜드 네임이 통과되었고 BI(BRAND IDENTITY) 작업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브랜드 네임을 짓는다는 것은 그 브랜드의 정체성을 짓는 일이다. 이제 정체성이 확립되었으니 대나무 줄기 올라가듯 '대빵'은 대빵다워야 한다. 나는 감히 브랜드 네임을 씨앗에 비유하고 싶다. 사람들의 가슴 속에 씨앗을 뿌리는 일이라고 말이다. 지금 당장에는 그 씨앗이 보이지 않는다. 흙속에 감춰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씨앗은 사람들의 발에 밟히기도 하고 비가 오면 영양분을 먹고 자라기도 한다. 어느 날 시간이 지나보면 멋지게 자라있는 줄기와 열매를 발견하기도 한다.대빵이 그랬으면 좋겠다. 대구에 가면 대빵을 꼭 먹고 가야한다는 인식이 생겼으면 좋겠다. 이름처럼 살아가는 대구의 빵이 되길 바래본다.

2021-04-09 12:32:12

[기고]프란치스코식 차선 입법으로 국민 통합해야

[기고]프란치스코식 차선 입법으로 국민 통합해야

독일 헌법의 철학적 대부로 '통합이란 무엇인가'라는 저서를 남긴 R. 스멘트에 의하면 '통합'(統合·Integration)은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공존을 지향하는 가치'이나 국민이 공감하는 정의, 곧 헌법적합성(적헌성)을 선행 요건으로 한다.현재 국회에 제출돼 있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지배적 다수 국민은 물론 성소수자들의 천부적 인권마저 후퇴시킬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 기획자들은 성소수자들에게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라는 완장을 채워 성소수자들을 국민 위에 군림하는 '특권 계급'으로 만들어 활용하고자 '국민 기만'과 '입법 사기'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국민 기만'이라 함은 '포괄적 차별금지법' 찬성론자들이 미국 연방대법원 판례와 OECD 주요 국가 입법례를 들어 '차별금지법' 제정이 세계적 대세인 것처럼 선전하고 있으나, 실체적 진실은 미국 판례 동향과 국제적 입법 상황이 그들의 주장과 반대에 가깝기 때문이다. 또 '성소수자 특권층화 조항'을 끼워 넣기 위해 여성·장애·고용 등 160여 개에 이르는 개별적 차별금지 법령들을 사실상 폐기 처분하게 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은 절대적 헌법 가치인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까지 침해할 정도로 심각한 위헌성을 내포하고 있다."특권 계급을 용인하면 결국 국민적 대재앙을 부른다." 이는 부주교 신분으로 프랑스혁명(1789)에 도화선을 제공한 바 있는 E. J. 시에예스 신부가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라는 저서에서 남긴 말이다. 이 명언에 의할 때 '차별금지법' 제정 시도는 위험천만한 상황임에도 정작 대다수 국민들은 물론 종교계도 이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현 시점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으로 인한 국민 분열을 막는 가장 빠른 비책은 대통령이 '국민 통합' 차원에서 헌법정신에 입각한 '차선 입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창해 온 '시민으로서의 권리'에 준하는 법적 지위를 성소수자들에게 부여하는 '차선 입법'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교황안'은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듯 '동성애 합법화'를 '부인'하면서도 의료·금융·가사 등의 영역에서의 법적 지위 부여가 골자다.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통일 추진 의무'(66조 3항)는 그 선행 조건인 '국민 통합 추구' 의무를 내포하고 있다.문재인 대통령이 올 초 신년사에서 키워드로 선택한 '용인'(容認·toleratet)은 남을 너그럽게 감싸 주거나 받아들인다는 의미여서, 상대방의 준법성이나 정의가 선행 요건이 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통합은 포용을 포함하기도 하나, 모든 포용이 통합에 속할 수는 없다. 그 결과 '통합'은 '성소수자들에 대한 특권적 지위 부여'와 양립할 수 없으나 '포용'은 이를 용인하는 논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대통령 신년사의 배경을 주목한다.대통령은 헌법상 '헌법 수호 의무'(66조 2항)가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통합 없이는 어떠한 평화도 없다"고 선포한 뒤 대통령으로서 직무를 시작한 것은 근대 헌법 종주국의 국가원수다운 행보였다.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 분열을 조장하고 있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대신 '프란치스코식 차선 입법'을 제시해 '국민 통합'을 선도해 줬으면 하는 바람 실로 간절하다.

2021-04-08 11:34:58

[춘추칼럼] 세대를 뛰어넘는 공감

[춘추칼럼] 세대를 뛰어넘는 공감

요리를 만들고 함께 나누어 먹는 일이 직업이다 보니 다양한 연령대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내가 요리를 직업으로 택한 이후 가장 재미있는 주제의 제안이 들어왔다. 그중 한 방송국에서 어린이와 미식회를 진행해 동영상 채널에 올리고 싶다는 것이다. 어린이와의 미식회도 매우 흥미로웠지만 어린이들의 연령이 궁금했다.어린이들은 24개월, 6세, 7세, 9세의 남, 여아라고 한다. 어린이를 가까이서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다.그동안 우리는 세대에 대한 많은 담론이 있어 왔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신세대 구세대로 양분하는 것이 전부이던 것이 요즘은 나보다 연배가 높은 선배들은 베이비붐시대로, 나는 586시대, 아래 후배들은 X세대, IMF와 월드컵을 겪어낸 시대는 Y세대 Z세대 즉 밀레니얼세대라고 부른다. Z세대까지 다 써 먹었으니 더 이상 세대를 구분할 글자도 없다. 그런데 음식을 나눌 대상이 채 열 살이 안 된 어린이라고 하니 일을 하겠다고 결정하는 순간부터 고심이 깊어졌다.메뉴를 준비하는 내내 24개월 어린이가 먹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고, 내가 하는 음식은 중국 음식이라서 이 어린이들이 나를 통해서 처음으로 중국 음식을 접할 수도 있다는 책임감이 느껴지기도 했다.요리의 가짓수는 열 가지로 하고 육지에서 구할 것과 바다 재료 등 골고루 선택하고 각각의 재료에 사용할 양념은 어린이들이 먹을 수 있을까 고심하면서 메뉴를 선택하고 수정해 나갔다. 매일 하는 요리지만 그래도 어린이들이 잘 먹게 하려면 신경을 쓰고 또 써야 했다.진짜 걱정은 그다음이었다. 어린이들과 나의 나이가 50살이 넘게 차이가 난다. 이 나이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까 고심하다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미식회 당일 어린이들은 힘찬 소리와 함께 계단을 올라왔다. 막상 만난 어린이들은 의젓했고 밝았다. 24개월 된 어린이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여기저기 두리번거리기에 바빴다.새우를 튀겨서 케첩에 조리는 요리를 하면서 풍미를 증진하기 위해서 조금 넣은 중국의 두반장에는 "좀 매운데요?"라면서 넣은 양념을 바로 읽어 냈고, 매울까 봐 케첩만 넣었더니 "단순한 케첩 맛이 나는데요?"라면서 꼭 집어냈다. 어린이들은 절대 미각을 갖고 태어난 듯 보였다.짜장면을 먹을 때는 오늘 짜장면 먹었다고 광고를 하는 것처럼 온 얼굴이 모두 짜장면으로 물들었다. 볶음밥은 한 그릇 더 달라고 곱빼기 주문이 들어왔다. 45㎝ 잉어로 만든 탕수생선 앞에서는 환호성을 질렀다.그중 아홉 살짜리 한 어린이는 꿈이 래퍼였다. "함께 노래할까? 무슨 노래를 하고 싶어?" 했더니 영국 그룹 퀸의 노래를 불렀다. 아홉 살짜리 어린이가 퀸의 노래를 하다니. 나는 서랍에서 잠자고 있던 미니 마이크도 꺼내고 컴퓨터에 꽂아서 쓰는 노래방 등도 켰다. 미식회로 시작해서 음악회가 되어 간다. 이게 웬일인가? 우리는 노래 하나로 50년이라는 나이 차이를 뛰어넘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을 나이도 잊은 채 함께 즐거워했다.식사하면서 노랫가락 한 소절이라도 부르면 더 행복해지는 흥 많은 한국인의 유전자를 어린이들도 공유하고 있었다. 미식회로 시작한 우리들의 시간은 그렇게 아름다운 노랫소리와 함께 막을 내렸다.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옛날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나도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옛날이야기를 즐겨한다. 그런데 내가 이야기할 때 나는 즐겁지만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살짝 지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세대마다 사용하는 어휘도 달라 간혹 세대 간 대화가 막히기도 하고, 과도하게 줄인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이해하는 척하기도 하고. 무슨 뜻이냐고 물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신세대인 밀레니얼과 일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도 나와 있다. 진정한 소통은 무엇일까? 상대방의 눈높이를 맞추려고 노력하는 일일 것이다. 오늘 하루 그렇게 보내보면 어떨까.

2021-04-08 11:34:18

[매일춘추] “마에스트로!”

[매일춘추] “마에스트로!”

2016년 11월에 쇼스타코비치 재단으로부터 필자의 두 번째 오페라인 '춘향'을 파리에서 공연하자는 제안을 받고 파리의 공화국 수비대 오케스트라(Garde républicaine Orchestra)를 방문한 적이 있다. 이 방문은 러시아의 대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미망인인 이리나 쇼스타코비치 여사의 추천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특히 이 일정은 세계적인 드라마틱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엘레나 바실리에바와 바리톤 김보람 선생과 함께한 방문이었다. 지금은 친구이지만 그 당시만 해도 엘레나와 필자는 독일어로 서로 존칭을 쓰면서 대화하던 사이였다. 그녀와 오케스트라 관계자는 항상 필자를 "마에스트로"라 부르며 깍듯한 예의를 갖추었다. 그러나 필자로서는 그 호칭이 한국적 정서상 그리 편하지 않았다.공화국 수비대 오케스트라와 업무를 마친 후 점심식사 자리에서 필자는 엘레나에게 "서로 이름(First Name)을 부르는 친구가 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이에 그녀는 필자가 당황할 정도로 정색을 하며 "마에스트로, 나는 한 사람의 성악가일 뿐인데 어떻게 오페라를 작곡한 마에스트로에게 존칭을 쓰지 않을 수 있느냐"며 거절하였다.'마에스트로'라는 호칭은 서구 사회에서 최고의 존칭이며, '예술가는 만인의 지도자'라는 인식을 포함하고 있는 호칭으로 통한다. 그만큼 예술가의 전문성을 인정하는 문화 선진국의 단면을 볼 수 있는 사례였다.결국 필자가 "내가 불편하고, 진심으로 당신과 친구가 되기를 원한다"고 허심탄회하게 권하고서야, 하루가 지난 뒤 서로의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 이후 쇼스타코비치의 제자이며, 현재 프랑스를 중심으로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작곡가인 그녀의 남편 알렉산더 라스카토프(현재 파리의 쇼스타코비치 재단 대표이며, 개인적으로 '사샤'라고 부른다)와도 친한 친구가 되었으며, 지난 2019년 11월에는 그 내외와 서울에서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을 포함한 3인 작품발표회를 가졌고, 현재는 사샤와 공동작품을 진행하고 있다.그 당시 공화국 수비대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은 오페라 '춘향'을 우리말 원전대로 파리와 마시(Massy) 국립극장에서 공연하도록 계약을 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탄핵정국과 정권교체, 지난해 터진 코로나 사태 등으로 미뤄진 채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그리고 아직도 이 프로젝트는 유효하며 성공적 개최를 서로 기다리고 있다."마에스트로!"라는 존칭의 힘은 참으로 대단했다. 그 후에도 작품으로 서로를 인정한 관계로 친구로서 서로를 믿고 같이 일구어가는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코로나가 끝이 나면 쇼스타코비치 재단과의 합작 행사가 대구에서 이루어질 것이 이미 약속되어 있고, 건강이 허락한다면 이리나 여사도 대구를 방문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이철우 대구콘서트하우스 관장

2021-04-08 11:27:48

[최재목의 새론새평] 까불다간 한 방에 훅 간다

[최재목의 새론새평] 까불다간 한 방에 훅 간다

4월 첫머리에 섰다. '4'라는 글자를 생각할 때 누구는 '네잎클로버'(행운)의 4를, 누구는 '죽을 사'(死)의 4를 떠올릴 수도 있으리라. 이처럼 4월의 사(四) 자에는 별의 기쁨도 사멸의 슬픔도 동거한다. 4월쯤이면 벚꽃이 지고 이팝・조팝나무 꽃이 환히 피니 1년 중 볼 것은 다 봤다는 느낌마저 든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피었다 곧 지고 마는 꽃처럼, 권력의 무상감도 목도하고 말았다.3·15 부정선거로 일어난 4·19혁명을 생각하면 4월엔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는 저항과 심판의 기운도 살아 있다. '개벽, 다시 개벽'으로 나아가며, 한판 뒤집어엎는 민초들의 무서운 저력 말이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에서 보듯, 원이 하늘의 형식이자 언어라면, 사각은 대지가 기억하는 가장 안정된 형식이자 언어이다. 바둑・장기・체스판, 축구・권투경기장 등 우리가 선호하는 게임장은 대개 사각을 기본 틀로 한다. 이 사각 속에서 우리는 전쟁하고 격투하며 살아왔다.그동안 서울・부산의 시장 보궐선거로 전국이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상대방을 향해 온갖 네거티브를 쏟아내던 선거판 분위기는 아마 이번 보궐선거로 끝나지 않으리라. 내년의 대선을 향해 가며 더 치열하게 엎치락뒤치락 지속될 것이다.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열 십자 복판에 내가 섰소// 갈래갈래 갈린 길/ 길이라도/ 내게 바이(=전혀) 갈 길은 하나 없소"라는 시처럼, 패 가르기, 갈라치기로 나라는 갈래갈래 갈 길을 더 헤맬 수 있다. 네 갈래 길 한복판에 서서 사분오열 서로 마이크를 쥐고 이리 갈까 저리 갈까 갈피 잡기 어렵다고 호소할 것이다. 모두 "일자리, 삶의 자리를 달라!"는 것이리라.그래도 선거가 있어서 좋다. 위선・내로남불・후안무치이던 잘난 권력도 투표라는 심판 앞에서는 반성과 사죄의 읍소를 내비치니 말이다. 물론 속임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건방졌다간 한 방에 훅 가고 만다는 것쯤은 직감하고 있을 터다. 그러나 낙관과 방심은 금물이다. "파리가 싹싹 빌 때 사과한다 착각 말라!"는 말을 꼭 기억해야 한다. 아무리 눈물지어도 악어는 악어의 성질을, 전갈은 전갈의 본성을 버리지 않는다. 도둑은 도둑의 길을 걷다가, 권력자는 권력자의 길을 걷다가 죽는다. 모두 제 무덤을 스스로 파고 제 발로 걸어 들어간다. 그 원동력은 맹목적 탐욕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불유구'(不踰矩·법도를 넘지 않는다)라는 암묵지로서의 공정성과 상식을 뭉개버린 듯하다. 국가가 지탱되는 임계점의 기준은 신뢰다. 신뢰를 상실하고 나면 정치는 끝이다. 협박도 읍소도 안 통한다.권력을 잡은 자들은 케이크를 자르는 칼을 들고 있다. 이 칼은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방법으로 사용되어야 할 물건이다. 기본적으로 케이크를 자르는 사람은 케이크를 취해서는 안 된다. 이 원칙을 어기면 LH 사태에서 보듯이 '묘서동처'(猫鼠同處) 즉 '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는' 격이 된다. 쥐를 잡아야 할 고양이가 쥐와 한패가 되어 있으니 나라 꼴이 뭐가 되겠나. 법과 윤리의 선이 사라지면 국정은 파탄 난다. 민심 이반이 가속화되고, 어떤 사죄도 변명도 먹히지 않는다. 청와대의 보좌진이 가끔 "대통령께서 화가 많이 나셨다"느니 "불같이 화를 내셨다"느니 하는 식의 감성적 겁박을 토로하나 우이독경이다. 정작 화가 치미는 쪽은 국민이고, 불타는 것은 민심 아닌가. 돈을 마구 풀어 대는 것 대신 제대로 된 일자리의 비전으로 삶의 자리를 확보해 주는 것이 우선이다. 정부・여당은 남은 임기 동안 민생 안정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더욱 겸손・솔직하게 소통하며, 상식과 공정이라는 기본을 지켜 가야 한다.영원한 것은 없다. 선거에 이겼다고 우쭐대서도 안 되고, 졌다고 침울해할 것도 아니다. 국민들은 바닷물과 같아서 참다 참다 안 되면 항상 성난 파도로 배를 뒤집어엎어 왔다. '자, 봐라. 까불다간 한 방에 훅 간다'는 사실을, 앞으로도 선거는 계속 가르칠 것이다. 꼼수 부릴 시간 있으면 사즉생의 자세로 민심이나 잘 챙기자.

2021-04-07 14:17:49

[기고]부동산청 신설이 답이다

[기고]부동산청 신설이 답이다

LH 직원 부동산 투기, 부동산 공시가격 급등, 부동산 거래 감독 기구 설치 등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다. 이는 문재인 정부에서 26차례의 부동산 정책을 발표하고 시행했음에도 여전히 부동산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기회에 정확한 현황 분석을 통해 부동산 정책 기구를 혁신할 필요가 있다.우리나라는 그동안 개발 가능한 토지가 부족한 상태에서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치면서 특정 부동산의 가격이 급등한 경험이 있다. 문제는 부동산 가격의 급등과 같은 불로소득이 제대로 환수되지 못해 국민의 투기 의식이 만연한 것에 있다. 한편, 부동산 문제의 특징으로 복합성과 지속성을 들 수 있다. 즉, 부동산 문제에는 제도적·경제적·기술적 측면 등이 동시에 포함돼 있고, 시간의 경과와 함께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부동산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다양한 수단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며, 지속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정부조직법'상 부동산 정책의 주무 부처는 국토도시실, 주택토지실 등이 있는 국토교통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대부분 부동산 정책은 '관계 기관 합동'이란 이름으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발표하고 있다. 이는 부동산 정책의 컨트롤 타워(control tower)가 미비함을 뜻한다. 부동산 정책은 거래규제·이용규제·정보관리·금융규제·조세제도 등 다양한 수단이 동시에 고려돼야 하므로 어느 한 장관이 아닌 대통령 또는 국무총리가 직접 총괄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헌법상 대통령은 행정권의 수반이며, 국무총리는 행정에 관해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지휘·조정하므로 다양한 수단이 동시에 고려되어야 하는 부동산 정책의 특성상 컨트롤 타워로 대통령 또는 국무총리가 가장 적합하다. 따라서 대통령 또는 국무총리 소속으로 부동산청을 신설해 부동산 정책을 총괄하는 것이 필요하다.현재처럼 부동산 정책과 부동산 관리를 다양한 부처에서 관장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부동산 문제에 대한 효율적이고 신속한 대응이 불가능하다. 특히 한시적인 TF 조직이나 일부 분야만 관장하는 기구로는 복합성과 지속성이 특징인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부동산 거래 감독 기구 역시 부동산 문제의 특성상 부적합하며, 행정의 비효율성만 키울 가능성이 높다.우리나라에서 부동산 정책은 이제 전 국민이 관심을 가지는 핵심 정책이 됐으며, 부동산 문제의 해결 없이는 정상적인 국정 운영이 어렵게 됐다. 지금이야말로 부동산 정책을 혁신할 수 있는 적기라 할 수 있으며, 최근의 문제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할 때다. 대통령 또는 국무총리 소속으로 부동산청을 신설해 부동산 정책을 총괄하게 되면 부동산 문제의 특징인 복합성과 지속성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효율적인 업무 수행을 위해 부동산청에 특별사법경찰권을 부여하는 것이 합리적이다.부동산은 국민 삶의 바탕이자 토대이면서 동시에 대표적인 투자재이다. 따라서 강한 공공성을 기반으로 효율적 이용, 투기 차단 및 소유의 형평성 확보를 기함은 물론 건전한 거래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이번 기회에 부동산 정책 기구를 근본적으로 혁신해 부동산청을 신설하고 합리적인 부동산 정책을 지속적으로 시행한다면 부동산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나아가 다양한 부동산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해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것이다.

2021-04-07 14:17:34

[매일춘추] 일등만 기억되는 세상

[매일춘추] 일등만 기억되는 세상

요즘 TV를 틀어보면 각종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난무한다. 트롯, 뮤지컬, 밴드, 힙합 등 너 나 할 것 없이 장르를 불문하고 유행처럼 번져나가기 시작한 것이 시즌을 거듭해가며 몇 년째 그 열풍이 이어지고 있다.이런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들을 보다 보면 '어떤 음악을 들려줄까' 또는 '어떤 참가자가 있나'로 시작하지만 끝은 항상 '누가 우승을 할까'로 귀결된다. 그리고 자연스레 일등을 제외한 참가자들은 서서히 잊혀져 간다.사람들은 왜 줄을 세우고 승자와 패자가 반드시 갈리는 상황에 이토록 열광하는걸까. 그것도 그저 잠깐 머리를 식히려 보는 TV프로그램에서조차 이런 긴장감을 안고 봐야할까.이미 프로보다 더 프로다운 참가자들의 실력을 보고 있노라면 우승이 누구인게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음악의 특성상 판단 기준이 스포츠처럼 시간 기록이나 눈에 보이는 것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그 찰나를 귀로 판단하고 개개인의 주관적인 감정이 크게 개입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과정과 결과가 꽤나 불합리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되었든 결과를 오롯이 받아들이는 참가자들의 모습을 보면 괜스레 마음이 짠해지기도 한다.'과연 음악이 점수화되는 것이 옳은 일일까'하는 질문을 끊임없이 되뇌어본다. 이렇게 사회 모든 구조에서 경쟁과 "이겨라"만 외치는데 마음에 위안을 주는 역할을 하는 음악에서조차 그래야만 하는걸까?꽤 오래 전, 한 개그맨이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조금 과격하게 들리는 말을 유행시킨 적이 있다. 그 당시엔 그저 그 개그맨이 나온 프로그램을 보며 우스꽝스러운 상황에 재치있게 말하는 모습을 웃어 넘겼지만, 사실 과열된 경쟁에 지치고 상처받은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한마디로 신랄하게 꼬집었던 유행어가 아니었나 싶다.그 후로 십여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사회는 일등에 열광하고 일등만 기억하는 세상인 것엔 큰 변함이 없다. 심지어 이젠 TV의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에서조차 피말리는 경쟁구도와 함께 일등을 외치고 있으니 '일등만 기억하는' 승자독식의 구조는 더욱 심화되고 가속화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경쟁이 사회와 구조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다만 모두가 일등이 될 수 없는 것이 현실인 구조에서 뒤따라오는 사람들도 패자나 실패자가 아닌, 노력하는 자로서 그들의 수고와 성과도 기억하고 박수를 보낼 수 있는 성숙한 사회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바라건대 음악에서만큼은 일등만 기억하는 세상이 아닌, 모두가 함께 즐기고 향유할 수 있는 소통과 위안의 장이 만들어지면 좋겠다.박소현 피아니스트

2021-04-07 14:14:00

[종교칼럼]코로나를 이길 수 있는 마음가짐

[종교칼럼]코로나를 이길 수 있는 마음가짐

2020년 2월 초 먼 나라에서 우리에게는 생각지 못한 전염병이 돈다는 뉴스가 날로 새롭게 나오고 있었다. 매번 그러했던 것처럼 그러다가 끝나겠지 하며 기대를 했는데 우리나라, 나아가서 세계를 강타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번져가는 전염병을 뉴스로 접했을 때 실감이 나지 않았다.그러나 점점 우리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은 대단히 빨랐다. 문을 닫는 주변 자영업자가 속출하고 여행업자들은 때만을 기다리며 애절하게 바라만 보고 있는 시간들이 길어졌다. 방역수칙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5인 이상 만나지 말기 등을 하면서 가족 간의 명절도 격리시키기까지 하는 시간들을 지내면서 답답한 겨울을 지냈었다. 계절이 바뀌고 꽃피고 새 우는 봄이 와도 별다를 것이 없다. 그 고통은 생각보다 몇 배 이상으로, 우울 증세를 호소하는 사람,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 괴로운 날은 날로 더해 가고 있다.지금은 백신까지 들어와서 일부 투여하기 시작했지만 확진자는 줄어드는 낌새가 보이질 않는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어려운 여건 속에 함께 마음을 모아 극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면 이겨낼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겨우 참고 견디며 방역 수칙을 잘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그러나 일부 이기적인 사람들은 본인들은 손해를 봐서는 안 되고 나만 살고보자는 식의 사고방식 때문에 숨어서 모임을 가지면서 더 많은 확진자들을 일으키고 다닌다. 일부는 사회에 앞장서서 도덕적인 질서를 인도해야 할 단체에서도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 단체만을 생각하는 처신에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처음부터 일심단결하여 수칙을 잘 지키고 한 마음으로 동참했다면 어떤 나라보다도 빨리 종결시키고 지금쯤은 불안에서 벗어날 수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앞선다. '나만'이라는 이기주의가 낳은 결과는 자신도 죽고 남도 죽이게 하는 일이다.불교에서는 '항상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는'(自利利他 自覺覺他) 보살사상을 강조하고 있다. 진정한 보살이 되기 위해서는 중생을 구원하고자 하는 광대한 서원을 세워야 한다. 보살이 깨달음을 얻은 후에도 모든 중생들을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고자 하는 대원력을 발하여 생사의 세계에 머무는 것이다. 자기를 이롭게 하는 것과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둘이 아니다. 나의 깨달음과 내 이웃의 깨달음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 대승 보살의 정신이다. 대보살은 자신의 성불을 뒤로 미룬 채 중생교화의 서원을 세우고 헌신하는 보살을 법신보살이라고 한다. 항상 나의 수행 속에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남의 고통이 나의 고통임을 직시하여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한다.경전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극락과 지옥을 가보았다. 지옥을 갔는데 모두들 굶어서 허덕이고 있었는데 큰 그릇에 밥이 놓여 있었다. 먹는 도구로는 흙을 파는 삽 같은 큰 수저인데 먹으려고 하면 서로 빼앗아서 입에도 들어가기 전에 다 빼앗겨 너도 나도 다 못 먹고 아귀처럼 소란만 피우고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러나 극락을 갔더니 상황은 똑같은 구조로 되어 있는데 이쪽사람이 저쪽사람을 먹여주고 저쪽사람이 이쪽사람을 먹여주니 굶주림도 해소하고 서로가 시끄럽지 않고 행복하게 웃음꽃이 피더라"는 이야기다.행복은 남을 배려할 때 자기에게도 기쁨이 온다. 자기만을 이롭게 하는 것은 결국에는 모두 멸망으로 가는 길을 만든다. 코로나로 인해서 대다수의 국민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 자기만의 이익보다는 함께 잘 살 수 있는 날이 돌아오기를 모두 힘을 합치는 것이 빠른 퇴치의 길이 되며 평화로운 날이 될 것이다.대현스님 칠곡 동명 정암사 주지

2021-04-07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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