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노동일 경희대 교수

[이른 아침에] 조국 법무부장관께

한가위는 잘 보내셨는지요. 상투적인 명절 인사를 건넬 수 있는 시간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짐작건대 가족들이 모두 모이지도 못했을 것 같습니다. 어쩌다 보니 가족들 거의 모두가 수사대상이 된 상황이네요. 명절 기분은커녕 황망하고 어수선하기만 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생각하면 국외자인 저도 마음이 아픕니다. 장관 자리가 뭐라고. '검찰 개혁을 위한 소명'이 뭐라고. 가족들이 그 정도 대가를 치를 가치가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가족들이 원망 대신 전폭적인 지지를 표해 주었기를 바랍니다. 어찌되었든 이제는 '대한민국 법무부장관 조국'이 되었습니다. 무려 66대 장관이더군요. 우여곡절이 너무 심했고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높지만 기왕 취임한 마당입니다. 과거 청문회 등에서 수십 번 나왔던 얘기를 다시 끄집어내지는 않으렵니다. 당부라는 말은 주제넘은 것 같고 장관으로서 기대하는 바를 적으려 합니다.저는 앞서 '대한민국 법무부장관'이라는 말을 일부러 썼습니다. 그렇습니다. 조국 장관은 더불어민주당 장관이 아닙니다. 진보진영 장관도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국무위원이 된 것입니다. 장관으로서, 특히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하는 법무부장관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사실입니다.자주 인용하시는 헌법에 공무원에 관한 규정이 있습니다.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비록 정무직 공무원이지만 장관은 특정 정당이나 정파 혹은 진영에 충성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대한민국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합니다. 특히 조 장관님에게는 이 헌법 조문이 각별한 의미를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동안 장관님의 행보에 비추어 그렇다는 말입니다.1만5천 개가 넘는 트위터 글로 '조국 어록'이 생겼다는 얘기는 아실 겁니다. 극단의 '당파성'과 '편 가르기', 그리고 '언행 불일치'가 조국 어록의 핵심 키워드입니다. 일일이 예를 들지 않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념과 지역 등으로 갈라진 대한민국입니다. 장관님의 청문회와 임명 과정을 지켜보면서 국민들의 마음은 더더욱 나누어지고 찢겨졌습니다.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이 추석 상 앞에서 '조국 장관' 문제로 다툰 가정이 많았을 겁니다. 장관님은 청문회 과정에서 '성찰'이라는 말을 수십 번은 되풀이했을 것입니다. 그 말대로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일개 정파의 전위대에서 벗어나 대한민국 법무부장관으로 말입니다.고 신영복 교수를 존경하시겠죠? 문재인 대통령이 존경한다는 인물입니다. 진보진영의 이데올로그이기도 합니다. 장관님도 신 교수의 생각을 흠모하고 따를 것으로 믿습니다. '담론'이라는 책에서 신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남철의 여윈 바늘 끝처럼 불안하게 전율하고 있어야 하는 존재가 지식인의 초상입니다. 어느 한쪽에 고정되면 이미 지남철이 아니며? 참다운 지식인이 못 됩니다." '떨리는 지남철'이라는 시를 인용하여 지식인의 역할을 말한 것이지요.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라고 할 수 없는 열린 생각을 가진 지식인의 고뇌와 방황은 지남철의 바늘 끝을 닮았습니다.지식인은 경계 지점, 회색지대에 살아갑니다. 옳고 그름은 쉽게 판단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고, 절대적으로 옳은 사상이나 논리는 없기 때문입니다. 고민하는 회색분자,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지식인의 숙명인지도 모릅니다. 저 같은 평범한 사람의 말이야 개의치 않아도 좋습니다. 신영복 교수는 무게가 다르지 않겠습니까.'앙가주망', 즉 지식인의 현실 참여는 의무라고 하셨죠. 사르트르가 그 말을 사용한 맥락은 지식인이 권력의 중심에 서라는 게 아니었습니다. 권력이 엇나가지 않도록 비판하고 견제하는 '나침반'의 역할로서 지식인의 현실 참여를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권력의 핵심에 서게 된 장관님입니다. 험난한 과정을 통한 성찰의 열매가 있기를 바랍니다. 열린 생각을 가진 지식인으로서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었기를 말입니다. 그토록 소명으로 여기던 검찰 개혁도 그래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정파의 시각이 아닌 대한민국 법무부장관의 시각에서, 독선이 아닌 열린 생각으로 추진해야만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2019-09-15 15:36:15

강보홍 제4기 대구시 주민참여예산위원회 위원장

[기고]주민참여예산, 참여를 넘어 자치로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 대구시 주민참여예산제! 그 총회가 지난 2일 주민참여예산위원, 시민, 청소년 등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구시청에서 열렸다. 주민참여예산총회는 시민들이 제안한 사업을 숙의와 심사 과정을 거쳐 2020년 예산으로 편성할 사업을 확정하고, 지난 3년간 시행한 사업과 청소년들이 제안한 사업 중 우수 사업을 선정하는 등 시민과 청소년, 주민참여예산위원들이 모여 한마당 축제를 여는 자리다.올해 총회에서 결정한 2020년 사업은 시정참여형사업(市) 90억원이며, 지역참여형사업(區·郡) 40억원과 읍면동지역회의지원사업 20억원은 구·군 참여예산총회와 읍면동지역회의 총회에서 결정해서 상정한 사업을 시 총회에서 승인함으로써 구·군의 심의권과 자율성을 보장하였다.우수사업경진대회에서는 1차 심사를 통해 선정된 16개 사업이 치열한 경쟁을 벌인 결과 공모사업 분야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한 남구의 '고산골 입구 계단환경 개선사업'을 비롯한 3개 사업이 선정되었다. 또한 지역회의사업 분야에서는 최우수상을 수상한 남구 이천동의 '보이는 소화기사업' 등 역시 3개 사업을 선발하였고, 청소년들이 그들에게 필요한 사업을 직접 발굴하고 제안하는 청소년 참여예산 제안대회도 1차 심사를 거쳐 본선에 오른 12개 동아리 중 대상을 수상한 강북고 경세제민팀을 비롯하여 5개 팀을 선정하였다.2015년 7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한 대구시 주민참여예산제는 그동안 규모가 2배 이상 증가하였고 사업 내용도 공동체 활성화나 사회적 여건을 개선하는 사업이 증가하는 등 양적 성장은 물론 질적 수준도 날로 발전하고 있다.대구시는 주민참여예산제에 대한 시민들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온·오프라인을 통한 홍보는 물론 지난 4년간의 발자취를 담은 백서와 청소년들을 위한 만화 '우리 동네 행복 프로젝트 알기 쉬운 주민참여예산제'를 발간하여 도서관, 청소년 단체, 지역아동센터 등에 배부하는 등 다양하게 홍보를 강화하고 있다고 한다.주민참여예산제는 주민의 권리와 책임감을 높이는 한층 성숙된 풀뿌리 민주주의이며 이 제도의 성패는 시민들의 참여와 역량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시민들이 내 주변과 마을에 관심을 가지고 지역공동체 발전을 위한 아이디어를 모으고 함께 고민할 때 마을과 지역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다행히 공모사업 건수가 증가하고 제안 사업의 수준이 성숙하는 것을 보면 시민들의 대구 사랑과 주민참여예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번에 주민참여예산위원으로 참여하면서 공무원에 대하여 가졌던 권위적이고 공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나의 편견과 부정적 시각이 말끔히 해소됐다. 주말인데도 메시지가 왔다. 정중한 인사로 시작된 담당 주무관의 메시지는 주민참여예산제의 업무 처리와 일정, 진행 결과 등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써서 알려주었다.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업무에 대한 자긍심과 열정으로 휴일도 잊은 듯했다. 이래서 대구시 주민참여예산제가 전국에서 우수 사업으로 선정되었나 보다.대구시 주민참여예산제는 늘 시민들의 관심과 제안을 기다리고 있다. 제5기 주민참여예산위원 공모와 내년 주민참여예산사업 공모에 시민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리며 우리 모두 대구 행복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내 주변과 이웃을 돌아보고, 대구시 주민참여예산제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함께 가길 기대해 본다.

2019-09-15 15:35:27

네이버 채널 매일신문 초기화면.

[기고] 네이버 모바일에서 '매일신문'을 구독한 후…

출근길에서, 회의실에서, 심지어 화장실에서까지 정보를 얻기 위한 모바일 검색은 일상화 되었다. 디지털과 인터넷 발달로 포털에는 뉴스가 넘쳐나 오히려 정보과잉의 역효과로 수용자의 뉴스선택 권한은 역설적으로 사라져 간다. 또, 정확한 정보 전달보다는 자극이 넘쳐나는 뉴스를 원하는 환경은 더 많은 루머, 더 많은 속보가 유통되기를 원한다.독립된 장르로서 뉴스의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많은 언론사들이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뉴스들은 연이어 복제되어 나열된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그 뉴스에 우리들 얘기가, 우리 지역의 얘기가 없다는 점이다. 즉, 깊은 이해와 공감을 가질 수 있고, 소통의 장이 될 지역뉴스 플랫폼이 없기에, 전혀 알고 싶지 않는 수도권 상가분양이나 재건축 아파트 시세는 어느새 머리속에 주입된다. 또, 강남지역 아파트 값이나 수도권의 우월한 인프라 관련 뉴스를 반복적으로 접하다 보면, 중앙과 지방이라는 위계질서적 사고가 정립될 우려가 크다.뉴스가 우리가 사는 공동체를 정의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사실에 동의한다면, 저널리즘의 목적은 그 지역민들에게 필요한 뉴스를 제공하는 게 먼저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디지털 미디어는 엄청난 권력이 되었다. 그러므로 지역뉴스의 활성화야 말로 지방분권의 출발점이다. 최근 매일신문사가 지역 일간지 최초로 네이버 모바일 뉴스채널에 공식 입점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매일신문 등 지역 언론사들이 지방분권의 한 축이라는 거대한 명분과 저널니즘 강화라는 '실리'를 얻었으면 좋겠다. 또, 뉴스의 소비자인 지역민들에게도 공유와 공감을 줄 수 있는 뉴스콘텐츠를 제공해 '소통의 장'이 될 수 있는 '플랫폼'이 되었으면 좋겠다.삼성SDS 사내밴처에서 출발한 작은 회사였던 네이버는 '플랫폼'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선점해 어느새 미디어와 콘텐츠 시장의 '최상위 포식자'가 되어 버렸다.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다. 그 거대한 포식자가 만들어온 시장에 적응해야 하고 차별화로 살아남아야 한다.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공유할 까 한다. 미국 '던'이라는 도시에 지역 신문인 '데일리 레코드'의 구독률은 무려 112%라고 한다. 어떻게 112% 구독률이 가능할까? 그 해답을 설립자 '후버 애덤스'의 말에서 찾을 수 있다."주민들은 자기가 아는 사람의 이름과 사진을 보기 위해 지역 신문을 구독합니다. 이는 우리가 누구보다 잘할 수 있는 특별한 일이지요 우리는 독자들이 다른 어디에서도 얻지 못할 정보만을 다룹니다. 만일 이웃도시에 핵폭탄이 떨어진다 해도 그 파편이 '던' 지역까지 날아오지 않는다면 우리 신문에는 실리지 않을 겁니다."그래서 이 신문사는 "던을 기억하라, 빅뉴스는 잊어라!"가 편집방침이라고 한다. 그 편집방침에 동의하며 마지막 말로 글을 마칠까 한다."대구의 맛집을 기억하라! 수도권 아파트 값은 잊어라!"

2019-09-13 18:00:00

이도수 경상대 명예교수

[불가사의 인도] 인도 계급제도에 일어난 천지개벽

인도 전역에 가장 많은 동상이 세워져 전 국민들의 존경 대상이 되고 있는 인물이 불가촉천민 출신인 암베드카르이다. 그는 1947년 건국한 인도 공화국 헌법 기초의 주역이었으며 초대 법무장관을 지냈다.세계에서 가장 경직된 계급제도로 악명 높은 카스트제도에서 수천 년 동안 인간 이하로 취급받아온 불가촉천민 계급 달리트에서 이런 위대한 인물이 나올 수 있었다는 사실은 실로 불가사의한 일이다.암베드카르의 할아버지는 고향을 떠나 도시로 가서 신분을 숨기고 소가죽을 가공하여 외국으로 대량 수출하는 업으로 거부가 되어 자식들을 서양 선진국으로 유학시킨 보람이 손자 대에 나타난 것이다. 평등을 근간으로 한 헌법 위에 세워진 인도 공화국에서 불가촉천민 출신 대통령이 2명이나 배출되었다. 유럽과 아시아 일대를 떠돌며 유목생활을 해오던 아리아족이 인도로 침입하여 정착 농경민족인 드라비다족을 노예로 전락시키고 약 3천500년간 인간 이하 취급을 해왔다.그 슬픈 역사를 딛고 인간 대접을 받게 된 지 불과 70여 년이 지난 현재에 법적으로는 평등이 보장되어 있지만 오래 관습화된 카스트 계급제도에 익숙해져 있는 다수 불가촉천민들은 그 신분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인도인들의 체념적 굴종이 체질화된 것은 무엇보다도 인도인 특유의 윤회사상 때문이라 할 수 있다.서양 혈통인 아리아족이 동양 농경민족인 드라비다족을 정복하여 노예로 삼고 붙인 구실은 전생에 쌓은 죄(업)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생에서 살생을 많이 한 죄업 때문에 이승에서 짐승 도살을 하면서 살도록 운명지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암베드카르가 서양 유학 후 평등사상을 도입하여 제정한 헌법으로 불평등 계급제도를 타파하려고 노력하지만 코끼리처럼 눈을 내리깔고 굴종하는 기층민이 워낙 많아 평등 실현 속도는 느리기만 하다.이도수 경상대 명예교수

2019-09-12 07:00:00

임언미 대구문화 편집장

[찬란한 예술의 기억] 상자 속 예술이야기

어릴 적 살던 한옥에는 다락이 있었다. 부엌으로 통하는 문 바로 위, 그곳에 올라가면 온갖 물건들이 가득 들어 있는 상자들이 있었다. 식구들이 모두 낮잠을 자는 휴일 한낮이면, 혼자 그곳에 올라가서 상자들을 들춰보곤 했다. 부모님의 젊은 시절 사진에서부터 삼촌들의 학창 시절 노트에 이르기까지, 가족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 그 속에 있었다. 갓 쓰고 흰 도포를 입은 할아버지의 사진을 볼 때면, 내 아버지의 아버지가 나고 자란 조선시대가 가깝게 느껴져 신기하기도 했다. 이후 세월이 흐르고 몇 차례 이사를 하는 사이, 그 상자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고, 다락에 대한 기억도 희미해졌다.〈대구문화〉 취재를 위해 원로 예술가들을 만나고 그들의 작업실이나 집을 드나들면서, 다시 그 다락에서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필자가 만난 원로 예술가들은 대부분 그들의 활동 자료들을 아주 잘 보관하고 있었다. 필자가 살아온 세월을 훨씬 넘는 시간을 견뎌온 자료들이었다.대구시립교향악단 고(故) 이기홍 초대 지휘자는 2000년 초반 필자와의 첫 만남에서 빛바랜 누런 포스터 한 장과 오래된 공연 프로그램들을 꺼내 보여줬다. 손으로 직접 쓰고 색칠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포스터는 대구시립교향악단의 전신인 대구현악회의 창립 포스터였다. 이 지휘자가 타계한 후, 그의 자택을 찾아가 보니 안타깝게도 그 포스터를 비롯해 일부 자료들이 사라지고 없었다.한국 합창계의 거목인 대구시립합창단 장영목 초대 지휘자의 자택 발코니에는 철제 캐비닛이 놓여 있다. 장 지휘자와 부인 모두가 집 안에 먼지 한 톨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깔끔한 성격이지만, 한국 합창의 역사를 증명해 줄 자료들과 악보들은 그 캐비닛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다.1960년대부터 남편 정막 선생과 함께 현대무용 활동을 펼친 대구시립무용단 김기전 초대 안무자는 자주 거처를 옮겨야 했음에도, 세간살이보다 무용 관련 자료들을 더 소중히 보관해 왔다. 1958년 창립된 경북무용협회 포스터, 1962년 경주에서 열린 신라문화제 프로그램에서부터 대구 안팎 무용가들의 모습이 담긴 많은 자료들이 그의 보물 창고 속에 가득하다.오페라 도시 대구로의 초석을 닦은 바리톤 고 이점희 선생의 아들 이재원 씨는 선친이 남긴 유품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선친처럼 음악가의 길을 걷지 않았음에도, 선친이 생전에 대구 음악을 일구기 위해, 대구에서 오페라 운동을 하기 위해 쏟은 열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낡은 포스터 한 장이라도 쉽게 버릴 수가 없었다고 했다.김금환 초대 단장의 뒤를 이어 영남오페라단을 이끌고 있는 김귀자 단장은 어떤가. 한국 초연 무대를 기록한 오페라의 의상에서부터 무대 스케치에 이르기까지, 영남오페라단의 역사 자료들을 꼼꼼하게 보관하고 있다. 현대무용가 구본숙 선생은 유년 시절 자신의 무용 사진에서부터 공연 사진, 시립무용단 공연 자료들을 한 장도 빠짐없이 모두 가지고 있어, 자료들을 들춰본 필자가 혀를 내두른 적이 있다.원로 작곡가 임우상 선생은 20여 년 전부터 일찌감치 '음악박물관' 건립의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음악 단체나 지역의 연구 기관이 자료 수집 운동을 벌일 때, 앞장서 원로 음악가들을 모으고 자료를 기증해주셨다. 자료 수집 주관 주체가 몇 차례 바뀌면서, 같은 일이 반복될 때도 선생은 언젠가는 '제대로'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후배 음악가들을 설득하고 다독이셨다.여기 예를 든 원로 예술가들은 모두 70, 80대 고령이시다. 이제는 공적 기관에 의해 이 분들의 역사가 수집되고 기록되어야 할 시기가 됐다. 이제 대구시가 직접 주관하는 아카이브 추진단이 출범했다. 더 늦기 전에 이분들의 소중한 자료들을, 찬란한 예술의 기억들을 기록하고자 한다. 기록해야 역사가 되고 보존해야 아카이브가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 지면을 통해서는 우리 지역 예술가들의 기록을 더듬고, 촘촘한 그물을 엮어 던져 건져 올린 이야기들을 풀어보고자 한다.임언미 대구문화 편집장

2019-09-12 07:00:00

오정일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새론새평]큰 정부를 우려(憂慮)한다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가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취하여 자기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다.-구약 사무엘상 8장-〈현상 1〉내년 정부 예산이 약 513조원으로 확정되었다. 2017년 400조원을, 2020년 500조원을 돌파했다.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는 금년 34조원, 내년 60조원이다. 2018년 기준 국내총생산은 1천893조원, 예산이 429조원이므로 우리 경제에서 정부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23%이다. 2%대 경제성장률, 8%대 예산증가율이 유지된다면 정부 비중은 계속 커질 것이다.〈현상 2〉금년 1월 정부는 24조원 규모의 23개 재정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면제하였다.경제성이 떨어지는 재정사업을 지방 균형발전 측면에서 시행하기 위해서이다. 국가재정법은 예타가 면제되는 경우를 규정하고 있다. 남북 교류사업이나 지역 균형발전상 필요한 사업은 예타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재정사업을 동시에 예타에서 제외시킨 것은 전례(前例)가 없다.〈현상 3〉금년 4월 정부는 1999년에 시작된 예타를 개편하였다. 비수도권 재정사업에 대한 예타에서 경제성 비중은 낮추고 지역 균형발전 비중을 높였다. 기획재정부에 설치되는 재정사업평가위원회가 정책성을 평가하고, 경제성 평가는 한국개발연구원과 조세재정연구원이 수행하게 되었다. 개편을 통해 예타에 대한 정부의 권한이 강화되었다.정부가 커진다는 것은 정부의 시장 개입이 증가함을 의미한다. 정부는 생산적인 조직이 아니므로 누군가로부터 세금을 거둬야 누군가에게 줄 수 있다. 이를 재분배라고 한다. 시장에서 분배된 것을 다시 분배하는 조직이 정부이다. 정부는 합법적인 물리력을 보유한 유일한 조직이다. 정부는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을 처벌한다. 정부의 재분배는 과세권(課稅權)과 물리력에 의해 실현된다.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면 민간 부문이 위축된다. 왜 그런가? 대체로 사람은 자신이 노력해서 얻은 소득으로 생활하기를 원한다. 자신의 계획과 노력을 바탕으로 독립적인 삶을 사는 개인, 그러한 개인들의 자발적인 거래를 통해 경제는 성장한다. 이것이 우리 헌법에 적시된 시장경제의 철학이다. 동정심이 아니라 정부에 의해 세금을 내면 열심히 일할 의욕이 줄어든다. 일하지 않아도 정부가 도와주면 열심히 일할 동기가 없다. 이렇게 되면 경제는 성장하지 않는다. 경제 성장의 주체는 정부가 아닌 개인이다.큰 정부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재분배뿐이므로 세금을 걷고 쓰는 것을 통제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통제는 헌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헌법은 정부와 개인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뷰캐넌(Buchanan)에 의하면 초기 헌법 제정자들은 조세와 정부지출이 이렇게 증가할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그들은 민주적인 정부에서 조세와 정부지출에 대한 제한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헌법적 제한이 없는 상태에서 정부의 의사결정은 단기적이 되었다. 단기적인 의사결정은 지속적인 조세 증가와 적자 예산의 일상화(日常化)를 초래하였다.국채나 돈을 찍어서 정부지출을 충당해서는 안 된다. 정부지출을 조세로 충당해서 균형 예산을 달성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납세자들이 정부지출 증가를 견제한다.정부지출이 늘면 납세자들의 부담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정부지출을 늘리는 것이 어려우므로 정부도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뷰캐넌은 아래와 같은 내용을 헌법에 명시할 것을 제안하였다. 우리 국회에서 논의될 가치가 있는 아이디어가 아닌가?정부 예산은 균형적이어야 한다. 국민이 정부지출 증가를 원한다면 조세를 더 많이 지불해야 한다.-국가란 무엇인가, 민경국 저에서 인용-

2019-09-12 01:30:00

망월사 백련차문화원장

[종교칼럼] 한가위 우물 속의 달을 건지다

맑은 햇빛으로 물들며 가을을 날으고 있는 나뭇잎을 본다.하늘 높이 솟아오르던 성장도 이제 조락의 계절을 맞이한다.지난여름 용광로같이 뜨거운 더위에 인생도 성장했으리라. 우리의 어제오늘이 기억 속에 보석처럼 묻혀야 한다. 이제 서로가 지니고 있는 미움과 갈등은 접고 다시 순수로 돌아가야 한다. 흔들리는 종소리에 무릎을 꿇고 잃어버리려고 하는 자아를 찾는다.어젯밤 달이 여섯 개 뜬다는 망월 누각에서 둥글어지는 달을 바라보며 기쁨이 묻어났다. 달의 모습이 초승에서 순환하는 것처럼 인생도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감사하고, 다시 돌아온 것이 더욱 고맙다.고려 문신 이규보는 영정중월(詠井中月)에서 외친다.산에 사는 스님이 달빛을 탐내어 山僧貪月色(산승탐월색)병 속에 물과 달을 함께 길었네 幷汲一甁中(병급일병중)절에 돌아와 비로소 깨달았으리 到寺方應覺(도사방응각)병을 기울이면 달도 따라 비게 되는 것을 甁傾月亦空(병경월역공)물을 길으러 갔다가 때마침 우물에 둥근 달이 떠 있는 것을 보고 그걸 함께 길어 담는다. 길어 온 샘물을 끓이려고 다관에 물병을 기울이니 길어 온 달은 어디로 새어 나가고 없다. 달빛이 비치지 않는 곳이니 애써 항아리에 담아 온 달이 그만 자취를 감추고 만 것이다.우물에 비친 달빛은 현상이고 하늘에 뜬 달은 진짜이다. 물에 비친 달이 탐나서 가져왔으나 물을 따르고 난 다음에 없어지는 것을 보고 비로소 자신이 보았던 현상이 인연 따라서 오가는 공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실망하지 않는다. 하늘의 달은 언제나 변함없이 떠 있다.비록 물을 붓고 나면 다 없어질 달빛이지만 모양 없는 그 달빛을 길어 삶의 항아리에 부어 보고 싶다. 손에 넣은 듯하면 빠져 달아나는 인간의 삶이 그러해서 혼자 빙긋이 웃는다. 강물이 아무리 흘러도 산그늘은 떠내려가지 않고 호수 위에 밤새 앉아 있어도 달은 물에 빠지지 않는다. 노자는 물의 덕을 찬양하며 "가장 높은 도는 물과 같다"고 했다.소동파는 적벽부에서 "천지지간(天地之間)의 모든 사물에는 주인이 있으니 진실로 나의 소유물이 아니거든 비록 터럭 하나라도 취하지 말라. 오직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 위의 밝은 달은 귀가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이 만나면 아름다운 경치가 되니 그것을 취하는 데 허물이 없다. 그것을 아무리 써도 없어지지 않는다. 이야말로 만물을 창조한 자의 다함없는 보고이며 나와 그대가 함께 즐겨도 끝이 없는 것이다"라고 했다.수유 같은 세월에 자연은 언제나 무언의 위안과 평화를 준다. 인간의 소유나 삶이 물병 속의 달과 같다 일깨우고 소동파는 자연의 무한한 은혜를 전한다. 한없는 자연에 감사하고 더 단순하고, 더 순수하고, 더 온화하고, 더 친절해지자.대낮에도 등불을 들고 다녔던 옛 그리스의 철인 디오게네스의 통에 견준다면 현재 우리의 소유와 사는 환경은 궁궐이다. 소유하는 것이 많을수록 행복한 삶이고 없는 것은 부끄러운 일일까?구름에서 벗어난 달처럼 진리를 알면 삶은 무한한 축복이 된다.하늘에 뜬 둥근 달을 바라보며 가족과 함께 축복 가득한 추석이 되기를 기도한다.망월사 백련차문화원장

2019-09-11 12:50:09

황무일

[기고]세계의 변화, 일본의 변화

미국 중심 자유민주주의와 소련 중심 공산주의가 펼친 70여 년 동안의 전쟁과 반목은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로 끝났다. 한 시대는 종언되었다.반면 미국과 치열하게 패권 경쟁을 하고 있는 중국(Rise China)은 세계인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중국은 14억 인구를 바탕으로 20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주년이 되는 해에는 정치 군사대국이 되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독재, 전체주의가 미국을 제치고 세계 패권을 차지하겠다는 것이다.중국의 주요 전략은 베이징에서 중앙아시아 대륙을 관통하여 유럽까지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상하이로부터 남지나해를 거쳐 인도양으로 관통, 아프리카까지 해로를 장악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남지나해 공해상 암석에 시멘트와 자갈을 깔고 쇠말뚝을 박아 인공섬 7개를 만들어 군을 요새화했다. 인공섬에 영해를 선포한 후 이 영해를 통과하는 모든 선박은 허락을 받으라는 것이다.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인근 나라는 물론 한국 일본 미국까지 중동에서 수입하는 원유 등 무역 항로가 중국에 의해 큰 장애를 받게 되었다.미국의 대응은 중국 주변 14개국과 동맹을 맺어 중국을 봉쇄하는 것이다. 가장 큰 전략으로 북한을 미국 편으로 만드는 전략이다. 지금 트럼프와 김정은의 밀월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것도 그 전략이다. 또한 태평양 방어 전력을 강화하기 위해 미 태평양방위사령부에 인도를 포함시켜 '인도 태평양방위사령부'로 확대했다.그러는 한편 5G시대 IT기술, 무역, 환율 등으로 중국을 제재 내지 봉쇄하면서 일본을 키우고 있다. 미국은 일본 자위대를 정규군으로 만들어 중국을 봉쇄하는 전략이다. 미국 조야에서 '한국은 아니다 일본을 키워야 한다, 일본이 약하면 미국이 위험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왜 한국은 아닌가? 한국과 미국은 동맹국인데 깊이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일본의 경제력은 세계 3위인 데다 해군력은 미국 다음으로 강한 나라다. 일본은 2차 대전 중 1941년 11월 하와이 진주만을 공격하기 위해 일본 전투기를 싣고 간 항공모함은 물론 전투기도 당시 미국의 전투기보다 성능이 우수했다는 평이다.일본은 물리, 화학, 생명공학 등 2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일본은 강대국 반열에 올라 있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념전쟁 때는 공산군과 대치하고 있어 미국의 도움도 받았지만 대변혁기인 지금은 한국이 약자이니 봐주자라는 온정은 없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한국이 잘살고 못사는 것이 문제 아니다. 걸림돌이 되면 외면해 버릴 것이다. 북한이 미국 편이 되어 중국을 봉쇄하는 데 유리하면 그 방법을 심각하게 고려할 상황이다.국제정치는 정글이라고 했다. 약육강식 시대에 약하면 잡아먹힌다. '강한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산다. '강한 대한민국'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니다. 강한 의지와 피나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지도자의 그럴듯한 선언과 선동으로 강해질 수 있다면 세상에 강하지 않을 나라가 없을 것이다.지금 북한과의 민족 경제는 기대할 수 없다. 세계는 대변혁기이다. 우리는 한미일 등 우방과 협력하고 대변혁기의 물결을 함께 타야 한다. 변화하는 국제 정세를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아야 하며, 적절하게 동참해야 우리가 생존할 수 있다.

2019-09-11 11:11:26

김정하 대구가톨릭대 무용학과 외래교수

[매일춘추] 대구 춤의 창조적 정신

대구는 현대무용의 표상이라 할 만큼 전국유일의 국공립단체인 현대무용 시립무용단이 창단되었는가 하면 정연한 무용철학 및 미학적 관점에서 현대무용이 창작되었고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체계화시키고 과학적으로 재정립한 많은 무용인들의 창조적 정신에 의해 발전되어 왔다.대구에서 현대무용이 시작된 시기는 1930년대로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지금의 대구 현대무용을 존속케 하는 역사적 효시에는 김상규(金湘圭,1922~1989)가 있었다. 김상규는 첫 발표회 때부터 '현대무용'이란 표현을 프로그램 속에 사용하여 대구경북지역에서는 처음으로 현대무용을 전파시켰으며 모더니즘 현대무용의 도입과 더불어 김상규는 안무가의 자각으로 새로운 공연어법을 모색하고 전통적인 것과 시대적인 것을 접목시켜 봄으로써 새로운 형식을 창조해 나가려는 시도를 통해 대구의 춤을 발전시켜 왔다.김상규의 정신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제자 및 대구 출신 무용가들은 현재 대구를 중심으로 서울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많다. 초창기 김상규의 춤파트너에서 아내가 된 고(故) 최원경은 김기전(대구시립무용단 초대안무자)이 운영했던 대구바레아카데미학원을 넘겨받아 무용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제자를 양성하였으며 딸 김소라가 어머니곁인 대구에 머물게 되었기도 하다. 김상규의 혈육 중 유일하게 춤을 물려받은 딸이자 제자인 고(故) 김소라는 대구가톨릭대학 무용과 교수로 재직중에 소라댄스앙상블무용단을 결성, 많은 제자들을 양성해 작품활동을 하였으며 아버지의 철학과 사상을 이어왔었다. 역시 제자에서 반려자로 인연 맺은 주연희는 김상규의 철학과 사상을 고스란히 이어받아 제자를 양성하며 작품활동에 힘썼다. 김기전은 국내 최초로 설립된 대구시립무용단의 초대(1981~1988년) 안무자로 대구시립무용단을 직업무용단으로 이끌어오며 대구 현대무용 발전에 힘써온 인물이다.대구 출신 재경 무용가로 김복희, 이숙재, 박인숙 등이 있다. 김복희(한양대 명예교수, 전 한국무용협회 이사장)는 한국적 현대무용을 정착시키려는 노력을 근간으로 윤회와 참선 같은 동양적인 관념, 한국의 관습, 전통문화,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공존 등의 주체를 추구하며 많은 작품으로 세계무대에 진출시켜 한국의 특색을 강조한 무용가이다. 이숙재(전 한양대 교수, 밀물예술진흥원 이사장)는 1984년 밀물현대무용단을 창단하여 많은 작품활동을 하였고, 한국 1세대 현대무용가로 김상규에게 사사받은 제자이며 한글춤을 개발해 한글을 우리나라 대표 문화브랜드로 키워낸 공로로 '2018 무용 분야 예술대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박인숙(전 한성대 교수)은 지구댄스시어터 예술감독으로 1975년에 설립된 한국컨템포러리무용단 창단 단원이기도 하다.이처럼 대구시립무용단의 창단과 대구 출신 현대무용가들의 창조적인 작품 활동은 오랜 대구 현대무용의 역사와 오늘날 지역 춤의 부단한 상호 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소통의 연결로 이어질 수 있는 지역 춤 발전의 밑거름이다. 김정하 대구가톨릭대 무용학과 외래교수

2019-09-11 11:11:02

1768년(영조 44년), 비단에 담채, 40.5×51㎝,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인숙 옛그림 예찬]심사정 그림, 강세황 글 '산수'

조선 후기에는 그림을 애호하고 모으는 사회적 분위기가 생겨 좋은 그림을 얻으면 안목 있는 구안자(具眼者)의 평문을 받아 함께 표구하기도 하고, 화가와 문인이 시정화의(詩情畵意)의 이상을 공유하며 합작하기도 했다. 이렇게 짝 짓는 것을 그림과 글씨가 세트를 이루어 더욱 보배롭다고 해서 '서화합벽'(書畵合璧)이라고 했는데, 여러 점을 모아 스케치북처럼 첩(帖)으로 만들기도 했다. 이 작품도 원래는 서울 근교의 명승지 8곳을 그리고 각각 화평을 붙인 '경구팔경첩'(京口八景帖)의 시리즈 그림이었는데 지금은 4세트만 전하고 흩어져 액자로 꾸며져 있다.크기는 작지만 화가와 구안자 모두 당대 최고이다. 화가는 현재(玄齋) 심사정(1707~1769)으로 겸재(謙齋) 정선(1676∼1759)에게 그림을 배웠는데 스승보다 30여년이나 아래 임에도 나란히 겸현양재(謙玄兩齋)로 불린 용생용(龍生龍) 봉생봉(鳳生鳳)의 대가였고, 그림 평을 쓴 강세황(1713~1791)은 시서화 삼절로 '예원(藝苑)의 총수'로 불린 당대의 안목으로 이 두 분은 자주 어울리던 사이였다.가을에 그린 인 이 그림에서 지붕 높이의 두 배나 되게 그려놓은 노적가리가 눈에 띈다. 추수한 나락이 집집마다 이렇게 쌓여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심사정의 희망이 반영된 높이일까? 산 아래 아늑하게 자리 잡은 이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오른쪽 아래 모서리에 나 있고 소를 앞세운 목동이 조그맣게 보인다. 쓱쓱 물감을 풀어 바림을 하고, 툭툭 점을 찍어 산세를 나타내고, 스스럼없는 선으로 나무와 집 등을 붓이 가는 데로 그려 그림이 저절로 드러난 것 같은 만년의 노숙함을 보여준다.조선 후기에 서울 근교의 8경은 인왕산, 삼각산, 백악산, 도봉산, 용산, 노량진, 남산, 밤섬 등이 꼽혔다. 강세황은 이 그림이 '경구팔경' 중 대체 어디를 그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비슷한가 안 비슷한가 하는 사여불사(似與不似)가 아니라 안개와 구름, 아지랑이 속에 그윽하고 차분한 유심정적(幽深靜寂)의 맛이 있어 현재의 득의필(得意筆)이라고 했다. '득의'한 그림이라고 한 것은 최상의 칭찬이다. 아무리 대가라도 결과물이 뜻한 바와 흔연히 일치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농가와 목동이 있는 실제 경치인 진경(眞景)도 심사정답게 우아하고 고요한 맛으로 그렸다. 강세황은 대안목답게 심사정의 장점으로 심사정을 평했다. 미술사 연구자

2019-09-11 10:20:33

대구 시민들의 이목이 방향에만 집중된 것 같은 요즘이다. 사진: ㈜빅아이디어연구소 제공

[김종섭의 광고이야기] 대구시 신청사는 방향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큰 부담이었다. 대구시 신청사 광고를 맡은 순간부터 신경써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요즘 대구 곳곳에는 신청사 유치를 기원하는 현수막으로 포화상태다. 어느 구·군을 가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의 지역으로 신청사를 유치하겠다는 광고로 가득 차 있다.보는 눈이 너무 많았기에 부담스러웠다. 자칫 어설픈 광고를 만들었다가 시민들에게 뭇매를 맞는 것이 아닌지 걱정되기도 했다.하지만 광고의 매력이 무엇인가? 언제든지 역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부정적인 상황을 역전해 긍정적으로 만드는 것이 광고의 매력이다. 광고 속에서 생각(아이디어)은 자유롭기 때문이다. 생각을 자유롭게 하는 것만으로 누가 와서 잡아가지 않는다. 그것이 광고의 매력이다.대구시 신청사 유치에 관한 가장 큰 문제는 '흐려진 본질'이라고 판단했다. 자신들의 구·군에 유치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즉, 위치의 문제가 아니라고 봤다. 본질은 시민들이 가장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란 것이다. 바로 시민의 마음이 신청사 유치의 본질인 것이다.광고에서 그 점을 끄집어내고 싶었다. 필자가 선택한 방법은 '은유'였다. '내 마음은 호수요'라는 문장과 같이 대상을 암시적으로 간접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그래서 가지고 온 것이 '나침반'이었다. 나침반은 사람을 보지 않는다. 온전히 방향만 본다. 방향을 가르쳐주는 일 외에는 어떠한 역할도 하지 않는다. 나침반의 모습이 마치 대구시 신청사 유치에 혈안이 되어 있는 우리의 모습 같았다.필자는 신청사 광고에 나침반을 적극적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세차게 돌렸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나침반은 절정에 다다랐을 때 깨지고 만다. 마치 신청사 유치의 과열이 부작용을 가지고 올 수도 있다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런 카피를 노출 시켰다. '대구시 신청사는 방향을 따라가지 않습니다''시민의 뜻을 따라갑니다'깨져버린 나침반은 과열 유치 경쟁의 부작용을 의미한다. 그리고 진짜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뜻이라는 카피를 던졌다. 사실 이 장면에는 한 가지 메시지를 숨겨두었다. 영상 초반부에 오직 나침반만이 색채가 들어가 있다. 그리고 나침반이 터져버리면서 비로소 시민들이 모습을 채색하였다. 신청사의 본질이 나침반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시민이라고 말하고 싶었다.물론 이렇게 숨겨둔 의도를 시민들이 파악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카피를 최대한 쉬운 말로 썼다. '악마는 디테일에 산다'라는 말이 있다. 광고 속에 숨겨진 디테일을 찾는 것도 광고를 보는 쏠쏠한 재미다.㈜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 광고를 보는 건 3초이지만 광고인은 3초를 위해 3개월을 준비한다. 광고판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김종섭의 광고이야기'를 연재한다.

2019-09-11 09:45:28

김태훈 대구 영남중 교사

[김태훈의 대구 옛 이야기] 옛 대구형무소

1908년 대구부에 대구감옥이 설치된 이후에 일제는 1910년 대구감옥을 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경북대학교 치과병원~일신학원)으로 이전하였고, 1923년에 대구감옥을 대구형무소로 변경하였다.대구형무소에도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되어 고초를 겪으며 불굴의 항일정신을 지켜나갔다. 그중 의열단원 박재혁은 부산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여 하시모토 슈헤이 서장을 처단하고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어 단식 순국하였다. 의열단원 최수봉은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였으나 큰 타격을 주지 못한 채 달아나서 자결을 시도하다가 일본 순사에 의해 포박당해 사형을 언도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숭고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대한광복회 총사령관 박상진은 장승원·박용하 처단 사건으로 인해 대한광복회가 발각되자, 안동의 이동흠(향산 이만도 손자)의 집에 은신하며 국외 탈출을 도모하다가 결국 체포되어 대구형무소 사형장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그 외에도 일제가 남한폭도대토벌작전을 전개한 결과, 호남의병장들을 대거 체포해서 대구형무소로 압송하여 사형을 집행하였다. 일제가 눈엣가시로 여겼던 강무경, 심남일, 안규홍, 양진여-양상기 부자, 오성술, 전해산 등이 대구형무소 사형장에서 고귀한 삶을 조국에 바쳤다.대구형무소 사형장 터는 현재 삼덕교회 60주년 기념관이 건립된 장소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일제가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던 이육사를 체포하여 대구형무소에 구금했던 사실을 근거로, 1층 내부 벽면에는 이육사의 부조와 그의 시 '황혼'(黃昏)이 새겨져 있다.서대문형무소가 항일정신을 일깨우는 교육 장소로 활용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여, 대구형무소를 복원할 수는 없어도, 대구형무소 사형장 터 주변에 대구형무소의 옛 사진과 투옥된 독립운동가들의 사진 및 활동을 나무판에 새기거나 그들의 흉상을 청동으로 제작하여 전시함으로써 후손들에게 독립 의지를 북돋게 할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대구 영남중 교사

2019-09-11 07:00:00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

[경제 칼럼] 동시다발 쓰나미로 몰려오는 대외 경제 파고

대외 경제 파고가 쓰나미처럼 동시다발로 몰려오고 있다. 대내적으로 친노조 반기업, 재정만능 소득주도성장 정책 등 잘못된 경제정책으로 수출·투자·성장·고용 등 전방위적으로 추락하고 있는 한국 경제가 과연 견뎌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세계 경제는 호황기가 끝나고 하강기에 접어들고 있는데 미중 통상전쟁은 기술전쟁, 환율전쟁, 자원전쟁으로 확전을 거듭하고 있고 설상가상 한일 갈등마저 덮치고 있다.지난 7월 국제통화기금(IMF)은 금년 세계 경제성장률을 지난해의 3.6%에 비해 0.4%포인트(p) 낮은 3.2%로 전망했다. 4월 전망치에 비해서도 0.1%p 낮췄다. 특히 세계 교역액 증가율이 지난해 3.7%에서 2.5%로 크게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미 지난해 12월부터 9개월 연속 마이너스 증가율 행진을 지속하고 있는 한국 수출이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미중 관세전쟁은 점입가경이다. 미국은 이미 중국산 수입 2천500억달러어치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 데다 9월 1일부터 추가로 1천120억달러어치에 대해 15%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애초 계획했던 3천억달러 중 나머지는 12월 중순부터 부과할 계획이었다.중국도 미국산 수입품 600억달러어치에 대해 6월부터 25%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데 9월부터 750억달러어치에 대해 5~10%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한국은 중국에 1천282억달러를 수출했는데 그중 79%가 중간재다. 따라서 미국의 대(對)중국 관세 인상으로 중국 수출이 둔화되면 한국의 중국 중간재 수출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 IMF는 글로벌 관세율이 1% 오를 때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이 0.65% 하락, 세계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지난 8월 5일 미국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미국은 중국이 G20 회의에서 채택한 '자국 통화의 경쟁적 평가절하 자제 합의'를 위반했다고 지정 사유를 밝혔다. 향후 '통화보조금'에 대한 상계관세 형식으로 미국의 대중 관세가 추가 인상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특히 이번 미국의 중국 환율조작국 지정은 ① 대미 무역흑자 200억달러 이상 ② 경상수지 흑자 GDP 대비 2% 이상 ③ 외환시장 달러 순매수 개입 GDP 대비 2% 이상 6개월 이상 지속 시 지정하는 '2015년 교역촉진법'이 아니라 ①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국이나 ② 유의미한 대미 무역수지 흑자국에 대해 지정하는 '1988년 종합무역법'에 의해 지정했다. 이에 따라 중국은 교역촉진법에서 지정하고 있는 세 가지 요건 중 대미 무역흑자 하나만 해당되었는데도 지정됐다.위안·달러 환율은 환율조작국 지정 다음 날인 8월 6일부터 7위안을 넘는 포치(破七)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금년 중 미중 통상전쟁 등으로 중국 경제가 더욱 어려워지면서 위안화의 추가 약세가 전망된다.한국에 미치는 파장이 만만치 않다. 위안·달러 환율이 7위안을 넘어서기 시작한 8월 6일 이후 원·달러 환율도 1천210원대로 올라섰다. 환차손을 우려한 외국인 투자자들이 연속 주식시장에서 2조원 이상을 순매도해 코스피는 1,920대까지 하락하기도 했다. 위안·달러 환율 7위안, 원·달러 환율 1천200원, 코스피 2,000선이 모두 무너진 것이다. 연기금 매수로 버티고 있다.미중 통상전쟁이 지속돼 중국 경제성장률이 더욱 하락할 경우 위안·달러 환율은 더욱 상승하게 되고 이는 원·달러 환율 상승을 초래하면서 한국 자본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금 이탈을 가속화시킬 전망이다.이미 문재인 정부의 친노조 반기업 정책으로 기업의 해외 탈출 러시와 어닝 쇼크 수준의 수익 급락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설상가상 한일 갈등과 위안화 약세로 외국인 투자자금의 이탈이 예상을 넘어 외화 유동성 위기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달러 기준 통화스와프인 한미·한일 통화스와프도 체결되어 있지 않다.위기는 쓰나미처럼 오는 법이다. 철저한 대비가 절실하다.

2019-09-10 18:38:04

전재경 대구 동구청 부구청장

[기고] 휘청거리는 지방재정과 자치단체의 고뇌

모기 입도 비뚤어진다는 처서(處暑)를 지나 무더운 열기로 타오르던 대지도 흐르는 시간에 밀려나고 구름 사이로 내비치는 청명한 가을 하늘은 마음을 설레게 하며, 결실을 위한 농부의 손길이 바쁜 올가을은 어느 해보다 풍성했으면 좋겠다.8월을 시작으로 전국 243개 지방자치단체들은 내년도 살림살이를 위한 예산 편성 시즌에 본격적으로 접어들었다.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세입 재원은 한정적이나 주민 숙원 사업은 산적해 고민이 깊다. 특히 2020년은 보다 강화되는 일자리 정책과 기초연금 지원 대상 확대로 이에 따른 지자체의 재정적 부담은 피할 수 없는 멍에로, 그 무거움을 극복해 나가려는 지자체들의 힘겨움이 벌써 느껴지는 듯하다.일반적으로 지자체의 재정 역량은 재정적 체력 척도라 할 수 있는 재정자립도와 재정자주도 지표를 통해 가늠하고 있다.금년도 대구 동구의 재정자립도, 즉 예산 총액에서 스스로 벌어들일 수 있는 자체 수입 비율은 16.9%로 전체 예산 5천870억원 중 지방세와 세외수입은 불과 991억원에 불과해 69개 자치구의 평균인 23.8%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에 있다.아울러 세입 재원의 사용 측면에서 자주권과 자율권 정도를 보여주는 지표인 재정자주도는 29.8%로 자치구 평균 40.0%를 밑도는 실정이다.이는 사용 목적이 지정된 국·시비 보조금이 전체 예산의 70% 정도를 차지하는 반면, 재원의 실질적 예산 편성 운용 권한은 30% 이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특히 기초생활보장, 보육 및 여성, 청소년 건전 육성 등 사회복지 분야는 전체 예산의 67%로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고 있고 전국 자치구 평균이 57%, 광역시 평균도 38% 정도로 가파른 증가 추이와 그에 따른 지방비 부담 가중은 지방재정을 더욱 휘청거리게 하며 힘들게 하고 있다. 많은 지자체는 자체 재원에 의한 신규 사업 추진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러한 지방정부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중앙정부는 '지방재정 자립을 위한 강력한 재정분권'을 국정과제로 설정하고, 지방재정 확충 및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먼저 1단계로 2020년까지 지방소비세율(부가가치세수의 11→21%)을 확대하고 균특회계 포괄보조사업의 3조5천억원 내외를 지방사업으로 기능을 이양해 자치권을 강화했다.또한 2단계로 2022년까지는 국세와 지방세의 비중을 70대 30으로 개선해 나간다고 밝혔으나, 지난 7월 24일 부산에서 열린 전국시도지사협의회 총회에서는 정부의 2단계 재정분권 방안에 지방소득세율 2배 인상(10→20%), 지방교부세율 2%포인트 인상(19.24→21.24%), 무상보육·기초연금·무상급식·누리과정 전액 국비 부담 등 추가 반영의 건을 정부에 강력히 요청하기도 하였다.각 지자체들도 2020년도 예산 편성을 준비하는 이 시점, 은닉 세원 발굴과 강력한 체납세 징수 활동을 통해 세입 확충과 예산 낭비 방지 및 효율적 재정 운용으로 한정된 재원 범위 내에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나,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중앙정부가 지방재정분권을 통한 진정한 지방자치 시대를 열어나가기 위한 골든타임의 시점에 와 있음을 인식하고 신속한 국정과제 이행은 물론 지자체의 간곡한 목소리를 과감히 수용할 때가 왔다는 것이다. 2020년도 예산 편성을 맞아 자치단체들의 깊은 고뇌와 그 소임을 다해 나가고자 하는 대구시 공직자들의 헌신과 열정이 뜨겁다.

2019-09-10 11:15:23

과일은 건강한 자연식이다. 하지만 당함량이 높은 음식은 개와 고양이에게 적합하지 않다. (사진출처: shutterstock)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자연식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건강을 위협한다

토리(12)가 저녁부터 낑낑거리며 잠들지 못하는 증상으로 내원했다. 내원 당시 토리는 입을 벌리고 가슴을 크게 확장하며 호흡을 하는 등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검사 결과 토리는 폐부종으로 인해 호흡 곤란이 왔고 근본적인 원인은 심장질환으로 진단됐다.토리는 체형에 비해 비만하고 평상시 산책을 싫어하며 더위를 견디기 어려워했다. 가족들은 토리를 위해 인터넷 정보를 검색해 건강에 도움된다는 고구마와 과일, 다양한 영양제들을 챙겨줬다.가족들은 일상적인 사료 급여에 고탄수화물 음식인 고구마와 당도가 높은 과일이 더해지면 비만을 촉진할 수 있고 고혈당·고지혈증으로 인해 끈적해진 혈액이 심혈관순환 장애를 유발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토리의 심장질환을 모른 채 가족들은 토리에게 건강한 자연식과 영양제를 챙겨줬지만 이런 식습관이 오히려 토리의 건강을 악화시키는 결과가 된 셈이다. 토리는 4일간 중환자실에서 집중산소치료를 받고 퇴원하였다.앞으로 토리는 심장약을 복용해야 하며 체중 감량과 고지혈증 예방을 위해 철저한 식이관리를 해야만 한다.이처럼 자연식과 관련된 인터넷 건강 정보에는 많은 오류가 있다. 영양학적인 관점에서 좋은 성분을 위주로 평가하다보니 체형과 체질에 따라 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고려되지 않고 있다. 특히 동의보감 등을 인용하여 특정 성분의 효능을 의료 정보처럼 표현하는 정보들은 매우 위험하다.자연식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려동물의 체형과 습관을 관찰하여야 한다. 비만체질에 운동량이 부족하다면 수분 함량이 높은 야채를 제공하고 사료와 간식을 덜 먹도록 유도하는 것이 좋다.과체중, 비만, 방광결석, 만성피부병, 심장병, 신장병이 염려되거나 변이 단단하고 소변이 탁한 동물에게는 브로컬리, 양배추, 파프리카, 당근, 양배추, 오이 등을 익히거나 날 것으로 먹이면 공복감을 줄여주고 수분섭취를 늘리는 효과를 가져온다.단, 소화기능이 약해 야채를 먹고 구토나 설사증상이 나타난다면 야채 급여는 피해야 한다.동물의 체형이 날씬하고 활동량이 많은 경우라면 고구마, 단호박, 과일이 자연식 간식으로 적합할수도 있다. 하지만 급여량은 일상적으로 먹는 사료량에 영향을 주지 않는 정도로 제한해주시기 바란다.고구마, 감자, 과일, 곡물가루를 이용하여 만든 쿠키와 간식은 과체중, 과영양대사환자, 심장 및 순환기질환환자, 비뇨기질환자, 당뇨환자에게는 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신선육이 개와 고양이 소화 생리에 이로운 점은 많다. 하지만 고기의 신선도를 잘 유지하면서 영양적인 밸런스를 맞추기란 쉽지 않다.사람들이 고기를 익혀먹는 이유는 기호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위생적인 먹거리인지를 염려하기 때문이다. 매우 적은 량의 세균에 오염되었더라도 식중독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의사들은 고기를 익혀 먹기를 권한다.동물의 입장에서도 식중독은 매우 위험한 질병이다. 위생적인 신석육이라 하더라도 수일간 냉동하였다가 해동 후 익히지 않고 급여하는 고기는 세균 오염 가능성이 있음므로 주의하여야 한다.반려인이라면 누구나 반려동물에게 신선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챙겨주고 싶어한다. 다만 반려동물의 건강상태와 습관에 따라 적합하지 않은 먹거리들이 있을 수 있으므로 반드시 수의사에게 상담받기를 권한다. 인터넷의 다양한 정보가 반려동물의 건강에는 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SBS TV동물농장 수의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 원장은 개와 고양이,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한 30년간의 임상 경험을 토대로 올바른 동물 의학 정보를 제공하고 바람직한 반려동물 문화를 제시하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2019-09-10 11:14:55

이정호 국악작곡가

[매일춘추] 샛별

하루의 해가 뜨고 가장 밝은 빛을 내었다가 지상 저편으로 점점 넘어간다. 그리고는 황혼의 붉은 빛이 온 하늘을 물들였다가 이윽고 완전히 넘어가면 어둠이 찾아온다. 어둠이 오고 나서야 비로소 달과 별이 영롱한 그 모습을 드러내고, 그때는 어둠 속의 길잡이가 되어 우리에게 길을 인도한다. 그 빛은 새벽녘 동이 틀 때까지 어둠 속에서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요즘엔 도시에서 밤하늘을 보면 별들을 찾기가 힘들다. 공기 좋은 시골에 가면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이 나에게 떨어지듯 아름답게 수를 놓아 그 빛을 뽐내고 있어서 정말 아름다운데,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는 북두칠성만이 그 자리를 지키며 나의 시선 속으로 들어온다. 계절에 따라 별자리를 찾는 재미도 있을 텐데…. 나중에 나이가 더 들어서 삶의 여유를 찾을 시기가 온다면 나는 별이 많이 보이는 곳에서 살고 싶다. 하늘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선 당연한 선택일지 모른다.우리 전통 여창가곡 중에 '계면 평롱 북두칠성' 이라는 곡이 있다. 작자 미상의 아름다운 시조에 음률을 붙여 노래하는데, 여창 특유의 부드러움과 격렬함이 내포되어 있는 긴 호흡의 정가곡이다. 간절히 그리워하였던 임을 만났지만 날이 밝아 오면 다시 이별해야 하니 안타까운 마음에 북두칠성 별님에게 아침이 오지 않게 해달라는 내용이다.'북두칠성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별님에게/ 안타까운 마음에 소원 하나 아뢰나이다/ 그리던 님을 만났지만/ 정다운 말을 채 나누기도 전에/ 날이 새려 하니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오늘밤만 삼태성에 명을 내려/ 샛별을 거두어 주소서'여기서 삼태성은 북두칠성 아래에 있는 세 개의 별을 가리키는데, 북두칠성과 삼태성 모두가 오늘날에는 큰곰자리에 해당한다고 한다. 우리의 옛 선조들은 북두칠성이 임금님과 왕후로 보고, 삼태성이 임금 바로 아래의 신하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북두칠성에 소원을 빌며 삼태성에게 명을 내려 달라고 부탁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리고 시조 마지막 부분에 샛별(사잇별)을 거두어 달라고 하였는데, 이는 금성(金星)을 말하는 것이다. 금성은 태양계의 두 번째 행성으로 지구에서 볼 때 태양, 달, 다음으로 밝게 빛나는 천체이다. 그래서 가장 밝은 곳에 있을 때는 대낮에도 육안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금성이 지구 궤도보다 태양에 더 가까이 있어서 언제나 태양 주변에 보이는데, 초저녁 무렵 서쪽하늘에 보이는 금성을 '저녁별', '태백성'이라 하고 새벽에 동쪽하늘에서 보이는 금성을 '샛별', 또는 '계명성'이라 부른다고 한다. 그래서 동쪽하늘에 샛별이 뜨면 곧 아침이 되어 사랑하는 임과 다시 헤어져야 하니 여명이 밝아오지 못하게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풍성한 한가위를 맞아 우리도 각자가 바라는 소망을 저 북두칠성 일곱 별님께 간절히 전하여 보면 좋을 듯하다. 이정호 국악작곡가

2019-09-10 11:12:15

이춘희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이춘희의 시사로 읽는 한자] 黨同伐異(당동벌이): 진영싸움은 그만하자

옳고 그름은 따지지 않고 같은 당끼리는 뭉치고(黨同) 다른 당은 배척하는 것(伐異)을 일컫는 말이다. 원래 이 말은 학문적 파벌 논쟁을 가리켰는데, 후에 와서 정치, 사회적 집단 간의 싸움에 많이 쓰이게 되었다.한나라를 중흥시킨 무제(武帝)는 동중서(董仲舒)의 건의를 받아들여 '백가를 배척하고 유학만을 받들었다'(罷黜百家 獨尊儒術). 즉 제자백가(諸子百家)의 다양한 의견을 없애고 유가학설에 능통한 인재만을 관리로 삼아 사상을 통일하고 전제적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한 것이다. 태학(太學)에 오경박사(五經博士)를 설치해서 유가 경전으로 귀족 자제를 교육한 것이 대표적이다.그리고 한 선제(宣帝) 때 이르러 유가는 유일한 통치 사상이 되었다. 선제는 유학자 숙망지(肅望之)에게 태자들을 가르치게 했다. 그런데 당시 유생들은 경전에 대한 이해가 서로 달라 자주 논란을 일으켰다. 선제는 학자들을 황궁의 석거각(石渠閣)에 모이게 하여 토론회를 열었다. 동중서를 대표로 하는 유가학파와 황생(黃生)을 대표로 하는 도가학파 간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탕무수명(湯武受命·탕무가 하나라를 멸한 것은 하늘의 뜻)을 두고 '하늘의 뜻이다'와 '반역이다'로 해석이 갈렸다. 유생들은 같은 편끼리 무리를 지어 상대를 공격하는 데 몰두했고, 결론은 없었다. 남북조시대 송나라의 범엽(范曄)은 '후한서'(後漢書)의 당고전서(黨錮傳序)에서 이를 '석거분쟁'이라 하고, 당동벌이(黨同伐異)라는 말로 설명했다.후한(後漢) 시기에 들어 외척, 환관, 선비가 각각 세력을 만들어 시비곡직(是非曲直)을 떠나 무조건 다른 집단을 배척하는 당동벌이로 인해 결국 나라가 망했다.어제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조국 법무부 장관을 두고 당동벌이가 심한 것 같다. 대의(大義)를 원칙으로 냉철한 사리 분별이 필요하지 않을까.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2019-09-09 18:00:00

힐링드라마아트센터 대표·심리치료사

[이은주의 잉여현실] 과일샐러드 - 즐거움 속에서 익히기

초등 5학년과 6학년의 인문학 동아리 수업에서 자리바꾸기 놀이를 했다. 유치원 아이들부터 노인까지 모두 좋아하는 일명 과일 샐러드! 과일 이름을 하나씩 정하고 술래가 부르는 과일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자리를 바꾸는 놀이다. 이 놀이가 주는 이득은 어마어마하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경청과 공감하기, 평등한 관계 맺기, 리더가 되기, 상호 작용하기를 즐거움 속에서 몸으로 익힌다. 또 공동체의 가치를 경험하게 한다.이 놀이의 변형으로, 과일 이름 대신 구체적 특징으로 질문을 바꿀 수 있다. "안경 쓴 사람", "지난 일주일 동안 울어본 적 있는 사람"처럼. 그러면 거기에 해당되는 사람은 자리를 바꾸는 것이다. 필요하면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를 나눈다. 최근 한 교사 그룹에서는 이 놀이가 2시간 동안이나 이루어졌다. 서로 신뢰가 높을수록 깊고 길게 나눔을 하게 된다.한 시간 놀이를 끝내고 소감 나누기를 하는데 5학년 아이가 별로였다고 한다. 이유를 물었더니 덩치가 큰 아이와 부딪혀 의자에 넘어졌다고 했다. 갈등이 일어났을 때 교사는 무언가를 가르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큰 아이는 그 순간을 기억했고 자기는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상황을 재연하고, 역할 바꾸기를 통해 큰 아이가 넘어지는 역할을 해보도록 했더니 자기도 기분이 나쁘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넘어진 친구가 기분이 나아질 수 있을지 모든 아이들에게 물었고 한 여학생이 사과하면 좋겠다고 했다. 큰 아이는 선뜻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부딪혀서 넘어지게 된 건 미안하다. 괜찮냐?"고 했다. 그리고 넘어진 아이는 "괜찮아" 하고 말했고 기분이 좋아졌다고 했다. 나머지 시간은 원으로 서서 음악과 함께 움직임을 했다. 2교시 겨우 90분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이 가져가고 싶은 한 단어는 '행복, 함께, 우리, 기쁨, 즐거움, 우정, 연결, 친해진, 공감, 용서, 마음, 친구들, 신나는, 재미'였다. 아이들은 이 말을 어떻게 다 알았을까!힐링드라마아트센터 대표·심리치료사

2019-09-09 18:00:00

강판권 계명대학교 사학과 교수

[나무와 창의성] 10월의 나무: 박달나무

나무 이름은 한글의 발달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우리나라 나무 이름 중에는 한글 이름이 적지 않다. 그러나 나무 이름의 한글화는 최근의 일이다. 예컨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구 동대구로의 상징 나무인 소나뭇과의 늘푸른큰키나무인 개잎갈나무는 히말라야시더, 동구 지묘동의 표충단 주변에 살고 있는 부처꽃과의 갈잎떨기나무인 배롱나무는 목백일홍이라 불렀다. 그간 우리나라의 나무 이름은 대부분 한자였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 나무 중에서 중국에서 수입한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우리나라 나무의 학명을 가장 많이 붙인 사람은 일본의 식물학자였다. 식물의 학명은 나무의 한글 이름과 더불어 식물의 자주화에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자작나뭇과의 갈잎큰키나무 박달나무는 한자 '단'(檀)의 한글 이름이다. 그러나 박달나무의 '박달'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해석이 다르다. 아울러 중국의 경우 "시경"에 등장하는 '단'은 자작나뭇과의 박달나무가 아니라 느릅나뭇과의 청단(靑檀)을 의미한다. 그래서 "회남자" '시칙' 10월에 등장하는 박달나무도 자작나뭇과의 박달나무인지 모호하다. 다만 여기서는 단을 자작나뭇과의 박달나무로 이해하고자 한다. "회남자" '시칙' 10월에 박달나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이달에는 크게 술을 마시면서 겨울 제사를 지내고, 천자는 하늘의 신들에게 내년의 복을 빌고 토지신에게도 대대적으로 빌고 제사 지낸다. 이 일들이 끝나면 조상신들에게도 제사 지내고, 농부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휴식하게 한다. 장수에게 명하여 무술을 강론하게 하고, 활쏘기 말몰이 법을 익히게 하며, 서로 힘을 겨루게 한다. 어업을 관장하는 관리에게 명하여 하천세와 어업세 등을 거둬들이게 하되 너무 무겁지 않게 한다."회남자"에는 박달나무를 10월의 나무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지만 내용상으로 보면 계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박달나무는 줄기가 회화나무처럼 검다. 그래서 "주례"에서는 겨울의 나무로 삼았다. "회남자"에서 10월의 나무로 삼은 것도 줄기가 검은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검은색은 음양 사상에서 겨울에 해당한다.박달나무는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살 수 있는 나무지만 일상에서 흔히 만날 수 없는 나무다. 박달나무를 만나기 위해서는 깊은 산속으로 가야만 한다. 박달나무는 "조선왕조실록·세종실록지리지·평안부"의 기록에서 보듯이 단군신화와 관련 있는 나무라서 신성한 존재였다. 물론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단'이 박달나무인가의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지만 단군과 박달나무를 연결시키는 사례는 적지 않다.주변에서 박달나무를 만날 수 없는 것은 그동안 이 나무를 많이 사용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박달나무는 물에 가라앉을 만큼 무겁고 단단해서 홍두깨나 방망이 재료로 많이 활용했을 뿐 아니라 가구재·조각재·곤봉·수레바퀴 등으로 사용했다. 박달나무로 배와 다리를 만드는 데 사용한 사례는 "일성록" 정조 17년(1793) 12월 11일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내가 처음 박달나무를 만난 곳은 문경새재였다. 박달나무의 줄기는 어릴 때와 나이 들었을 때 다르다. 어린 박달나무는 줄기가 매끈하지만 나이 든 박달나무의 줄기는 불규칙하게 갈라진다. 문경새재 박달나무가 살고 있는 곳에는 물박달나무도 함께 살고 있다. 물박달나무는 박달나무와 형제지만 줄기가 여러 겹으로 얇게 벗겨진다. 아울러 박달나무의 열매는 하늘을 향하지만 물박달나무의 열매는 땅으로 향한다. 경남 합천 해인사 가는 길에는 박달나무, 물박달나무와 열매 모양이 다른 까치박달을 만날 수 있다.박달나무는 단군과 단기를 비롯해서 박달나무고개 등 인명과 연호 및 지명에 적잖은 영향을 주었다. 이는 그만큼 박달나무가 우리 민족의 삶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박달나무에 대한 관심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자존에 무척 중요하다. 대구시내 가로수나 공원에서 박달나무를 만날 수 있다면, 박달나무를 통해 단군신화를 인문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대구의 문화행사는 한층 뜻깊고 풍성할 것이다.

2019-09-09 18:00:00

배상식 대구교육대학교 교수

[배상식의 여럿이 하나] '민족'이 뭔가요?

지난주, 한 학생이 찾아와서 문득 이렇게 묻는다. "민족이 뭔가요? 이 개념은 쉬우면서도 너무 혼란스러워요.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좋을까요?" 학생의 개념적 혼돈이 충분히 이해되어 되받아 물었다. "민족, 종족, 인종 등 개념을 명확하게 구분하기가 쉽지 않죠. 혹시 다문화 관련 강의를 들으면서 이러한 의문이 생겼나요?" 학생이 고개를 끄떡였다.이 학생의 물음처럼 우리의 교육에서 '민족'이라는 개념은 다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민족'이란 개념은, 그 본래적인 의미를 차치하더라도 용어가 사용되는 분야에 따라서 긍정적인 의미를 갖기도 하고 부정적인 의미를 갖기도 한다. 이를테면 해외 동포 문제나 한반도 통일 문제를 다룰 때는 어김없이 '민족'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는데, 여기서는 '민족'의 의미와 중요성을 긍정적으로 강조하는 경우이다. 하지만 다문화사회와 관련된 문제를 다룰 때는 우리나라 성씨의 절반가량이 외부에서 유입된 성(姓)이며, 역사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결코 단일민족이 아니라고 하면서 가능하면 민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도록 가르친다.사실 세계사에서 민족이란 개념이 생긴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근대 이후의 일이며,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 때 나라가 없어지면서부터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말하자면 나라가 없어졌으니 그 대신에 민족이라는 용어로 대체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의 생활 속에서는 '민족'이라는 용어는 너무나 친숙하다. 예컨대 '추석, 민족 대이동'이라든가, 혹은 '한민족인 해외 동포'라는 표현을 어색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엄밀히 구분해서 종족이나 인종, 그리고 민족은 다른 개념이다. 먼저 종족은 부족이나 씨족처럼 혈연집단을 의미하며, 인종은 인간을 신체적 특징으로 분류할 때 사용되는 범주이다. 그리고 민족은 문화적 공통 특징, 즉 언어'종교'사회 조직'생활 양식 등을 바탕으로 설정한 범주이다. 여기에는 문화적 공통점이라는 특성이 내재해 있다. 이런 이유로 전통문화를 소개할 때 '우리 민족'이라는 용어가 많이 등장한다. 물론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과거 우리의 전통문화에 대해 배우고 그것을 알아야 함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과거의 사고에 머물러 있어서는 곤란할 것이다.'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을 생각해 보라. 아마도 1970년대에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은 대부분 기억할 것이다. 이 헌장을 외우지 못한 학생들은 교실에 남아야만 했기 때문에 모두가 그토록 열심히 외웠던 추억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이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미래지향적인 사고이다. 현재 대부분의 선진 국가들은 '민족' 대신 '국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또한 국가 간 왕래가 많은 글로벌 시대에서는 이러한 민족 개념이 점점 더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제 중요한 것은 혈통 중심의 '민족 공동체'보다는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문화 공동체' 혹은 '공동 운명체'이다. 2007년 개정 교과서에서부터 '단일민족'이라는 용어가 완전히 사라졌다. 이처럼 다문화공동체를 지향하는 우리 사회 속에서 낡은 '민족' 개념보다는 '국민'이 더 소중하게 인식되기를 기대해 본다.대구교육대학교 교수

2019-09-09 18:00:00

손호석 극작가, 연출가

[매일춘추] 과정도 중요하다

예술가는 결과물을 대중에서 선보이기 위해서 아주 오랜 기간을 투자한다. 공연을 예로 들자면 어떤 공연을 할지 구상하고, 작품을 쓰고, 사람들을 모으고, 연습하는 시간을 보낸 후에야 공연장에서 관객들을 만나게 된다. 대부분 몇 달 동안 준비해서 며칠간 관객들을 만나게 된다. 공연을 하는 시간보다 그 공연을 준비하는 기간이 훨씬 더 긴 것이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작품과 연관되지 않은 일상생활이라고 부를만한 시간들도 보내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예술가의 삶이 얼마나 안정되고 행복한가에 따라 예술가가 선보이는 작품의 내용이나 질도 달라질 것이다. 그러니, 지역이 좋은 예술을 창조해내려면 예술가의 일상생활과 작품을 준비하는 시간에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예술정책의 대부분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영역에 집중되어 있다.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결과물을 만들어내야만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예술가로 분류된다. 상당한 금액이 투자되는 예술 관련 건축물만 봐도 이러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우리 지역은 좋은 예술회관이 많은 도시라는 자부심이 있다. 시에서 운영하는 공연장, 미술관과 구청에서 운영하는 문화예술회관만 해도 예술의 결과물들을 보여줄 충분한 장이 마련된다. 그에 반해 예술을 준비하는 공공건물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미술 작가를 위한 창작 스튜디오 몇 군데와 대명동의 연습공간 정도만 떠오른다. 결과물을 보여주는 건물에 비해 그 결과물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건물은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일상생활의 영역으로 가면 더 심각하다. 예술가도 먹고, 자고, 아이를 낳고, 휴식을 하고, 공부도 해야 한다. 이것은 예술 활동과 전혀 상관이 없고 그저 개인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라고 믿는다면 예술가들은 균형 잡힌 일상은 포기하고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결과물 만들기에 몰두하거나 예술을 포기하게 될 것이다. 예술가를 위한 식당, 예술가를 위한 보육시설, 예술가를 위한 임대 주택, 예술가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 등 당장의 결과물을 위한 지원이 아니라 예술가가 행복한 삶을 누리도록 돕는 인프라 구축과 프로그램 개발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술인 복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더 나은 예술을 창조하는 도시로 성장하기 위해서 말이다. 손호석 극작가·연출가

2019-09-09 11:10:01

김태원 대구시의원

[기고] 어린이 교통안전 지키는 옐로카펫

'옐로카펫'은 보행자, 특히 어린이들의 안전한 보행을 돕기 위해 주민참여를 통해 국제아동인권센터가 개발한 어린이 안전보호구역을 말한다.옐로카펫은 2015년 국제아동인권센터가 지역주민, 전문가들과 함께한 '아동이 안전한 마을 만들기' 사업에서 어린이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로 횡단보도가 지목되면서 탄생했다.옐로카펫 사업은 노란색 시설물과 표지판을 만들어 부드럽게 개입해 선택을 유도한다는 뜻을 지닌 '넛지 효과'를 활용해 횡단보도 보행자의 안전한 대기공간을 조성한다. 또한 색 대비 효과를 활용해 운전자에게 아이들이 잘 보이게 함으로써 교통사고를 예방한다.2015년 어린이 안전을 위한 최초의 옐로카펫이 서울시 성북구 길원초등학교 앞에 설치된 이래로 현재까지 전국 900여 장소에 옐로카펫이 설치돼 어린이의 횡단 중 교통사고 예방에 도움을 주고 있다.서울시의 경우 2015년 처음으로 18개소를 설치해 사고 감소의 정량적인 효과에 대한 명확한 검증과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옐로카펫의 설치 효과를 검증한 바 있으며 올해 현재 370여 곳을 운영하고 있다.세계 최초의 어린이 안전보장 시도가 한국에서 처음 도입됐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2017년 국립재난안전연구원과 도로교통공단이 발표한 옐로카펫 설치 효과에 따르면 91%의 운전자가 운전 중 옐로카펫이 설치된 구간을 지날 때 감속 및 일시정지 후 주행한다고 대답했다.또, 운전자와 보행자의 시선집중도가 20~40%에서 60~90%로 증가해 시인성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실제로 2016년 20개 서울시 초등학교 앞에 옐로카펫 사업을 실시한 자치구를 중심으로 횡단 중 교통사고 발생률을 보면 최대 40%의 교통사고가 감소했다.옐로카펫의 효과를 입증하는 연구결과들이 공개되면서 행정안전부 산하 재난연구원은 2018년 6월 '옐로카펫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배포했다.국토교통부도 올해 2월 도시지역 설계 가이드라인에 차량방호 안전시설 중 하나로 옐로카펫, 어린이 횡단보도 대기소를 올렸다. 필자는 어릴 때부터 "차 조심하라"는 부모님 말씀을 들으면서 자랐고 부모가 돼서는 어린 자녀에게 똑같은 말을 하곤 했다.요즘 스마트폰을 보면서 걷는 사람들이 늘면서 전방 주시 부주의로 인한 사고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2015년 이후로 어린이의 횡단보도 내 사고가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대구시의 경우 2014~2018년 발생한 횡단 중 교통사고 발생건수를 보면 전체 비율이 10%인 데 반해 어린이 횡단 중 교통사고의 비율은 22%로 2배가 넘는다.대구시의 슬로건인 '행복한 시민' 속에는 어린이도 포함된다. 안전한 스쿨존, 통학로 조성은 대구시장의 공약사항이다.대구시는 아직 한 곳에 불과한 옐로카펫 사업을 과감하게 확대 실시하기를 바란다. 옐로카펫은 아동의 교통안전을 위한 작은 축제이기도 하다.어린이 교통사고가 가장 많은 5월 5일을 '옐로카펫 데이'로 정해 옐로카펫의 필요성을 널리 알리고 소중한 아이들의 안전도 지킬 수 있으면 좋겠다.

2019-09-09 10:28:31

김기수 영남대 경영학과 교수

[세계의 창] '새마을운동'을 대한민국의 브랜드로

지난달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은 50명의 석사 졸업생을 배출했다. 영남대는 대한민국의 국제개발협력 실천에 동참하고 나아가 국격 향상 및 인류 공영에 기여하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대학으로 발전하기 위해 2011년 개발도상국의 지속 가능한 경제 및 사회 발전을 주도할 인재 양성 전문 교육기관으로 박정희새마을대학원을 설립했다.박정희새마을대학원은 개원 이래 아프리카, 동남아, 중남미 등의 67개국에서 온 667명의 학생들을 교육해오고 있다. 이들 학생들은 대부분 개도국의 공무원 또는 이들 국가들의 개발을 지원하는 비정부기구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이다. 박정희새마을대학원에서는 새마을운동을 포함한 한국의 개발 경험을 공유하고, 이를 기반으로 개도국에 자조 역량 개발을 촉진할 자기개발 원조 모델을 확산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이론과 실무 교육 및 정신(태도) 변화를 통한 지도자로서의 실천적 역량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대부분의 졸업생들은 본국으로 돌아가서 정부 및 비정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마을운동을 소개하고 또한 실천하고 있다. 필리핀과 파푸아뉴기니에서는 졸업생들이 직접 새마을운동을 현지 마을에 적용하여 환경 개선과 소득 증대 등에서 큰 성과를 내고 있다. 탄자니아에서는 졸업생이 시장이 되어 본인의 시뿐만 아니라 빅토리아호수 연안에 있는 탄자니아, 우간다, 케냐 등 3개국 113개 지방정부 및 자치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빅토리아호수지역 지자체연합(LVRLAC)과 함께 새마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미얀마에서는 전국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새마을운동 방식의 농촌 개발에 농업관개축산부에 근무하는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졸업생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새마을운동의 효과성에 대한 확신과 전문 지식으로 무장된 두 졸업생의 노력으로 암하라주와 SNNPR주에서 새마을운동을 농촌 개발 모델로 채택해 시행하고 있다.한편 지금까지 선진국을 중심으로 많은 예산이 개도국의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에 투입됐지만 수혜국 주민들의 주인 의식 부족과 역량 부족 등으로 인해 대부분 지속 가능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주민 참여 유도, 자조와 자립 정신 배양, 교육과 역량 강화, 공정한 평가와 성과에 따른 차등 지원 등 새마을운동의 시행 원리와 전략을 적용하면 보다 효과적이고 지속 가능한 ODA 사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미국, 유럽, 일본 및 중국의 개도국에 대한 유무상의 원조액에 비해 한국의 원조액은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국제사회에서 ODA는 단순히 개도국을 경제적으로 지원해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미래 개도국과의 외교 및 경제적 협력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따라서 효과적인 개도국에 대한 지원은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경제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한국은 개도국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한국의 발전 경험을 '새마을운동'으로 브랜드화하여 앞으로 개도국에 대한 모든 ODA와 경제 지원을 일관성 있게 이 브랜드로 시행하면 적은 예산으로 보다 효과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이를 위해서는 현재 새마을운동중앙회와 경상북도 새마을세계화재단 등에서 시행하고 있는 개도국 지도자와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단기 연수,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에서 하고 있는 개도국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새마을운동 기반의 지역사회 개발에 대한 체계적이고 심화된 이론 및 실무 교육, 그리고 모든 ODA 사업에 새마을운동의 시행 원리와 전략을 적용하는 정책이 함께 시행될 필요가 있다. 단기 연수를 통해서 개도국에 새마을운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개발 동기를 부여하고, 정규 학위 과정에서 체계적이고 심화된 새마을운동과 개발 정책에 대한 교육으로 개발을 주도할 개도국 공무원과 지도자들의 실행 역량을 강화하고, 이들이 주인 의식을 가지고 스스로 새마을운동의 시행 원리와 전략을 적용하여 ODA 사업을 수행하도록 일관성 있게 지원 및 관리하면 한국의 ODA 사업은 보다 지속 가능하고 효과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2019-09-09 10:28:05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이른 아침에]같은 땅, 다른 세상

'매장별 재고 및 위치'란 게 있다. 국내 대형 인터넷서점에서 책을 고를 때 가끔 클릭하는 항목이다. 그런데 이게 창이 열릴 때마다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한다. 책이 있는 위치를 알려주는데 전국을 세 영역으로 나눠 놓았다. 하나는 서울, 또 하나는 수도권,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지방이다. 세상에 무슨 이따위 분류가 있나 싶다. 게다가 '지역'도 아닌 '지방'이란다. 북부권, 중부권, 남부권이라 해도 되고 그게 싫으면 수도권, 비수도권으로 구분해도 될 텐데 말이다. 서울 중심 사고의 전형이다. 일제강점기, 일제가 자기네들 중심으로 서울발 부산행 열차를 상행이라 하고 그 반대를 하행선이라 표시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그런데 이런 건 흔하다. 뉴스에서 "국민 여러분 종일 내린 비로 불편하셨죠?"라고 아나운서가 인사를 하면 속으로 '아니거든, 서울 말고 전국이 쨍쨍했거든' 하다가도 이젠 그러려니 한다. 또, 대구 청년이 입사지원서에 어떻게든 서울 친척집 주소라도 적어놓은 걸 보면 참 씁쓸하지만 이 또한 잦다 보니 그러려니 한다. 심지어 이젠 시위조차 광화문에서 해야 뭔가 하는 것 같다고 보지만 이마저 익숙해졌다. 같은 크기, 같은 무게라도 장소에 따라 값이 달라지는 격이다. 이렇듯 서울과 서울 아닌 지역은 같은 땅 다른 세상을 산다. 그리고 그 사이로 넘지 못할 벽을 계속 쌓아 올린다. 주로 서울 사람들이 그런다.요금제를 바꿔볼까? 휴대폰 요금내역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 매번 데이터는 모자라고 통화량은 남아서다. 그러다 우연히 꽤 괜찮은 요금제를 발견했다. 가격은 싼데 제공되는 데이터 용량은 오히려 더 크다. 더구나 하루 중 2시간은 데이터가 무제한이다. 곧장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 로그인을 했다. 상품을 선택하고 '데이터 프리' 시간대는 하루 중 언제로 할지 심사숙고해 정했다. 그런 다음 여러 차례 '동의'에 체크를 하고 마지막으로 확인 버튼까지 눌렀다. 그런데 웬걸? 가입이 안 된단다. 해당 요금제는 25세 이하까지만 사용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뜬다. 괜히 시간만 버렸다.그런데 가만 보니 다른 요금제도 별반 다르지 않다. 기본적으로 사용자의 연령대에 맞춰 상품이 구성되어 있다. 내가 노렸던 요금제는 야외 활동이 비교적 잦은 20대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춘 상품이었다. 한마디로 난 자격 미달이었다. 예외는 없었다. 적어도 휴대폰요금제만 놓고 보면 누구든 나이 따라 정해 놓은 표준에 맞춰 살아야 한다. 만약 그렇게 살지 않을 거면 손해가 나도 참아야 한다. 모바일 뉴스도 나이에 맞춰 제공된다. 사용자 중심 인터페이스라지만 나이 고정 인터페이스에 가깝다. 다른 연령대의 사람들이 주로 어떤 뉴스를 보는지 알고 싶다면 일일이 찾아 눌러야 한다. 화면을 쓱 미는 정도로는 안 된다. 이래저래 모바일 세계에선 나이가 영역을 가른다. 그리고 벽을 쌓고선 각기 따로 산다.여론조사기관들은 놀랍다. 매번 국민을 보수와 진보로 딱딱 나눠서 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이게 가능할까? 보수라서, 진보라서 견해가 다르다는 데 정말 그럴까? 우리에겐 그런 정치적 내력도 없고 그런 걸 배운 적도 없는데 말이다. 그런데도 자꾸 그러다 보니 어느새 모든 국민의 정치적 정체성이 칼같이 정돈되어 버렸다. 혹시라도 이게 틀렸다면? 진보와 보수로 국민을 가르는 게 엉터리라면? 하지만 그런 건 생각할 겨를이 없다. 보수와 진보의 가치를 말하는 사람도 어차피 잘 없다. 그저 두 개의 진영이 주어져 있을 뿐이다.'훅, 스트레이트, 잔 펀치, 큰 거 한방' 등의 단어가 하루 종일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권투 중계가 아니라 법무장관 후보의 인사청문회 중계다. 양 진영은 조국을 지키느냐, 조국을 쫓아내느냐에 나라의 명운이 걸린 것처럼 싸운다. 조국은 조국(祖國)이 아님에도 말이다. 지난 한 달 내내 그랬다. 하나의 건으로 이렇게 많은 뉴스와 논평이 쏟아지는 걸 본 적이 없다. 머릿속이 더부룩할 지경이다.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며 죽기 살기로 싸우는 이들은 같은 땅 다른 나라를 산다.정말이지 나라가 온통 이러면, 사는 곳 따라, 나이 따라, 진영 따라 모두가 같은 땅 다른 세상을 산다면 우리에게 주어질 미래는 없다. 상대를 인정하고 공존의 길을 찾아야 한다. 더 늦기 전에 그래야 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2019-09-08 14:52:38

엄석화 한국가스안전공사 대구경북지역본부장

[기고]추석 연휴, 가스안전과 함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핵가족화의 진전으로 가족 친지가 한데 모이는 자리가 드물어 가는 상황에서, 오랜만에 가족 친지가 한자리에 모여 따뜻한 정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조금이나마 삶의 위안과 기대를 안겨준다.이처럼 좋은 명절, 그 행복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기억하고 실천해야 할 게 있다. 바로 나와 가족의 행복을 위한 가스 안전 실천이다.최근 5년간 추석 연휴와 앞뒤 각 3일을 포함한 기간에 발생한 가스 사고는 모두 11건으로 13명이 부상을 당했다. 사용자가 직접 LPG 용기를 교체하거나 과대 불판을 사용하는 등 사용자 취급 부주의로 인한 사고가 45.4%(5건)로 가장 많았고, 시설 미비가 27.3%(3건)로 뒤를 이었다.사고는 설마 하는 방심 속에 발생한다. 가스 안전은 바로 나와 우리 가족, 이웃을 위해 실천해야 하는 사회규범이다. 추석 연휴 꼭 지켜야 할 가스 안전 수칙은 어떤 것이 있을까?먼저, 귀향길에 오르기 전에는 가정 내 가스레인지 콕과 중간 밸브, 메인 밸브(LP가스는 용기 밸브)가 잠겨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또한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만큼 연휴기간 중에는 음식 준비 등으로 평소보다 가스 기기 사용이 늘어나므로 미리 가스 시설을 점검하고 사용하는 것이 필수다.연로하신 부모님의 안전을 위해 고향집에 가스안전장치를 설치하고, 낡은 가스용품은 교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가스 타이머콕은 사용자가 임의로 시간을 설정하면 그 시간에 맞춰 가스를 자동으로 차단해 주는 안전장치다.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놓고 외출하거나 잠들어도 과열로 인한 화재 사고를 예방할 수 있어 부모님의 안전을 지키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특히 추석에는 많은 음식 장만을 위해 각 가정마다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어느 때보다 많이 써, 안전사용에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작년 휴대용 가스레인지로 인한 사고는 총 24건으로 전체 사고의 16.7%를 차지한다. 우선 휴대용 가스레인지의 불판보다 더 큰 조리기구를 사용하는 것은 금물이다. 지나치게 큰 조리기구(냄비, 불판)를 사용하면 휴대용 가스 용기에 복사열이 전달되어 내부 압력 상승으로 폭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석쇠에 쿠킹포일을 감아 사용하면 포일이 더 많은 양의 복사열을 휴대용 용기에 전달하기 때문에 위험하다.사용 후 남은 휴대용 용기는 휴대용 가스레인지에서 분리해 화기가 없는 곳에 보관하고, 다 쓴 휴대용 용기는 환기가 잘 되는 곳에서 바람을 등지고 용기를 뒤집어 노즐이 바닥에 닿은 상태로 세워 눌러 잔류 가스를 방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용기에 구멍을 뚫어 분리 배출하면 된다. 잔류 가스를 빼지 않은 상태에서 용기에 구멍을 뚫으면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어 반드시 지켜야 할 안전수칙이다.연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창문을 열어 환기시키고, 혹시 가스 누출이 의심되면 관할 도시가스사나 LPG 판매점 등에 연락해 안전점검을 받은 뒤 사용해야 한다.흔히 우리 주변에서 '이 정도면 되겠지?' '대충대충, 빨리빨리' 등의 말에서도 잘 나타나듯이 철저하지 못한 면과 조급성은 안전관리 관점에서 볼 때 가장 큰 문제다. 이런 습관들은 안전관리의 최대 적으로 볼 수 있다.안전에는 왕도가 없다. 생활 속 작은 실천이 큰 재난을 막는 가장 쉽고도 확실한 방법이다. 가스 안전 실천과 함께 가스 사고 없는 즐겁고 풍요로운 추석 명절을 보내시길 기대한다.

2019-09-08 14:45:43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광장] 연귀산(連龜山) 거북바위를 보며

1530년에 발간된 '신증동국여지승람' 대구도호부 '산천'(山川)조(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연귀산은 부의 남쪽 3리에 있는데, 대구의 진산(鎭山)이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마을을 형성할 때 돌 거북을 만들어 산정부에 머리는 남쪽으로, 꼬리는 북쪽으로 향하도록 묻어 지맥을 통하게 한 까닭에 연귀라 부른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연귀산과 거북바위에서 대구의 진산이 연귀산임을 알 수 있다. 진산은 풍수적 용어다. 즉, 마을이나 도읍지 뒤편에서 진호(鎭護)하는 산으로 주산(主山)이라고도 부른다. 연귀산은 현재 제일중학교가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조선조 순조 때는 연귀산에서 오시(午時, 오전 11시?오후 1시)를 알리는 포를 쏘았다고 해서 '오포산'으로 불리기도 했다.제일중학교를 방문하게 되면 학교 건물 앞쪽에 머리를 앞산 쪽(남쪽 방향)으로 꼬리는 팔공산 쪽(북쪽 방향)으로 향해 있는 돌로 만든 거북이를 실제 볼 수 있다. 연한 자줏빛을 보이는 모래 질 암석인 자색(紫色) 사암에 거북 형상을 새겨 놓았다. 거북바위는 타원형을 보이며 여러 곳에 성혈(性穴, cup-mark)도 보인다. 과거 대구지역 선사인들의 무덤인 고인돌의 덮개석이라 전해 온다.연귀산 거북바위는 고문헌에 기록된 대구 최초의 유물로 대구를 상징하는 보물이다. 팔공산과 비슬산(앞산) 사이에 위치해 있는 대구분지는 풍수적인 관점에서 보면 지맥이 단절된 모습이다. 그래서 단절된 지맥을 잇기 위해 작은 언덕에 불과한 연귀산에 거북바위를 묻어 지맥을 연결한 것이다. 더욱 신통한 일은 앞산이 약 7천만 년 전 화산 폭발로 형성된 화산임을 어떻게 알았는지 불기운이 강한 앞산의 화기(火氣)를 다스리기 위해 물의 신에 해당하는 거북이를 만들어 비보(裨補)한 것이다.유럽 여행 중 프랑스를 들를 때면 대부분의 한국인은 평평한 도시 파리에 있는 해발고도 129m 높이의 '몽마르뜨 언덕'을 어김없이 찾는다. 몽마르뜨 언덕은 군신의 언덕 또는 순교자의 언덕이라 불리는 명소로, 인근에는 유명한 예술인들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지역에는 몽마르뜨 언덕보다 더 가치 있고 대구의 정체성과도 같은 연귀산이 있지만 지역민들은 별 관심이 없다. 그래서 필자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대구를 상징하는 동물을 거북이로 하고 거북바위가 있는 연귀산에 대구의 대표 광장을 만들어보면 어떨까?달구벌 최초의 성인 달성(達城)보다 시대가 앞서는 연귀산을 중심으로 선사시대의 이야기, 역사시대의 이야기, 근대화 골목의 이야기 등을 풀어나간다면 대구가 보다 매력 넘치는 도시가 될 것이다. 대구를 대표하는 역사 관광지로 근대화골목이 지나치게 부각된 것은 또 다른 역사 왜곡이다. 일제강점기의 암울했던 이야기를 간직한 근대화골목이 대구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관광산업 역시 올바른 역사적 토대에서 성장해나갈 때, 우리의 자긍심과 자존감 또한 고취되리라 믿는다.대구 출신 대문장가인 사가 서거정 선생은 그의 한시 대구십영(大丘十詠)에서 연귀산과 거북바위를 읊고 있다. 여기에 서거정 선생의 '귀수춘운'을 소개한다.귀수춘운(龜岫春雲): 연귀산의 봄구름귀잠은은사오잠(龜岑隱隱似鼇岑): 거북 뫼 은은하여 자라 뫼 닮았네.운출무심역유심(雲出無心亦有心): 무심히 피어난 구름 또한 의미가 있네.대지생령방유망(大地生靈方有望): 바야흐로 대지의 생명과 영혼들이 바라듯,가능무의작감림(可能無意作甘霖): 아무 뜻 없이 단비를 내리겠는가?

2019-09-07 01:30:00

1918년 발행된 무정 초판본(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

[정혜영의 근대문학을 읽다] '무정'이 최초의 근대소설인 이유

"이광수 '무정'은 한국최초의 근대소설이다."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항상 나오는 내용이다. 그러나 막상 '무정'(1917)이 왜 최초의 근대소설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대다수는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 그나마 답을 한다고 해도 근대적 자아라거나, 근대적 문체 등 어려운 말을 주절주절 내뱉을 뿐 명료하게 의미를 설명해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무정'은 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소설일까? 단순하게 답하자면 '나'나 '당신'같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인물이 등장하는 최초의 소설이기 때문이다.'무정'의 주인공 이형식은 고전소설에 등장하는 영웅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우리가 즐겨 시청하는 TV드라마의 주인공과 비슷한 것도 아니다. TV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은 대부분 멋진 외모, 화려한 출신배경, 뛰어난 능력, 고결한 품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고전소설의 영웅에 가깝다. 이 점에서 본다면 고아출신에 역삼각형 얼굴, 영양결핍으로 비쩍 마른 이형식은 모든 면에서 주인공이 되기에는 함량미달이다. 여기에 더하여 성격은 결단력 없이 우유부단하다.그는 사회에 대해서 높은 이상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적당한 수준의 세속적 욕망, 적당한 수준의 비겁함, 적당한 수준의 교활함, 적당한 수준의 용기 그리고 적당한 수준의 정의감 역시 함께 가지고 있다. 부잣집 데릴사위 자리를 별 고민 없이 감사하게 받아들이는가 하면,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그 행운을 손에 쥐기 위해서 은인에 대한 은혜 갚음에는 되도록 눈을 감으려고 한다. 그렇다고 인간적 도리라든가, 의리에 완전히 눈을 감은 채 오로지 성공을 향해 돌진할 용기도 없다. 언제나 정당함과 부당함 사이에서 멈칫멈칫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멈칫멈칫하면서도 공공의 선(善)을 향한 자신의 이상을 이루기 위해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무정'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다. 완전무결한 영웅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에 인간을 앉힌 것이다. 유약한 인간이 주인공으로 들어앉았으니 지리멸렬하고, 구질구질한 삶의 이야기가 소설 내용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 삶이 아닌가. 정의와 불의 사이에서, 용기와 비겁함 사이에서 주저주저하면서도 힘을 내어 한 발 씩 앞으로 내딛는 그 힘을 통해서 인간은 진정한 영웅이 되어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무정'은 인간적 영웅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무정'은 인간을 인간으로서 그려낸 소설이었다. 거기에는 인간에 대한 어떤 환상도, 환상을 포장하는 이데올로기도 들어있지 않았다. 최초의 근대소설이라는 '무정'의 혁명적 위업은 이처럼 인간과 인간이 살아가는 현실을 바라보는 이십대 이광수의 순수하고도 정직한 시선으로부터 비롯되고 있었다. 우리들은 자신이 선함과 악함, 약함과 강함의 그 아슬아슬한 경계를 오가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잊을 때가 많다. 그 경계를 기억하는 한 우리는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대구대학교 인문교양대학 초빙교수

2019-09-05 15:43:03

장정옥 소설가

[매일춘추] 자신에게 어떤 선물을 주고 있는가?

책을 한 권씩 낼 때마다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다. 그것은 글을 쓰는 동안 작업에 얼마나 즐겁게 몰두했나 하는 물음이다. 새로운 글을 생각하며 쫓기듯 살아가는 일상이 즐겁기만 할까. 그렇다 해도 소설을 쓰는 순간만은 작가가 행복하고 글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읽는 사람에게 그 느낌을 충분히 전할 수 있다, 글을 쓰는 순간이 작가에게 비타민의 시간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마침표를 찍고도 마음이 찜찜하면 그 작품은 아직 세상에 나갈 준비가 되지 않았다. 책도 마찬가지다. 출간을 앞두고 뭔가 미진하고 불안하면, 그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건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글을 잠시 밀쳐두었다 다시 읽으면 앞서 찾아내지 못한 부분이 보인다.소설을 끌고 가는 것이 괴롭고 고통스러우면 작업에서 손을 떼고 밖으로 나간다. 인고의 고통은 육체보다 정신이 괴로울 때 증상이 더 심하게 나타나는 터여서. 그럴 때는 밖으로 나가거나, 다른 일을 하거나, 몸을 움직이며 정신이 쉴 틈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한층 효과적임을 여러 번 경험했다. 긴 글이든 짧은 글이든 소설 한 편 완성하자면 몸과 영혼이 그 작업을 함께 수긍하며 '됐어, 잘했어!' 하고 말할 수 있어야 비로소 끝난다.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다. 그 괴로운 순간마저 견뎌내는 것이 작가라고 스스로 다독이며 책을 읽고, 여행을 하고, 말이 통하는 사람과 환담을 나누다 보면 자신의 고민이 의식의 부동에서 오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언제 어떤 계기로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소설이 다가왔고, 책 비슷한 글을 쓰는 것이 좋았다. 문화의 시작은 이렇듯 자아의 표출에서 출발한다. 농부가 땅을 갈고 씨를 뿌리며 열매를 기다리는 것처럼 작가는 늘 기다리고 캐낸다. 새로운 발상과 적확하고 매력적인 문장을 갈고 닦으며. 문화의 어원을 살펴보면 경작 또는 재배를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는 기록이 있다. 배가 고플 때 음식을 먹듯이 문화는 영혼의 채움을 대신한다. 낯선 여행지에서 그곳의 문화를 만나고, 활자를 통해 세계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 책 속에 자아를 내려놓을 시간을 가지는 것도 채움에 대한 헛헛한 갈망 때문이 아닐지.가끔 자신에게 물어본다. '너는 자신에게 어떤 선물을 주고 있는가?'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온갖 책임과 의무를 지고 살아가지만, 책임과 의무만으로 살아가기에 인간의 심성은 너무 감성적이고 미묘하다. 이제 풀잎에 흰 이슬이 맺히고 가을 안개가 자욱할 시즌이니 영혼의 충전을 위하여, 천천히 활자를 음미하는 기쁨을 맛보면 어떨지. 장정옥 소설가

2019-09-05 11:21:57

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춘추칼럼]공공의 존재 이유

최근 다양한 영역에서 공공과 민간이 만나서 협력하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특히 정부 차원에서 '지방분권'이 강조되면서 협치 혹은 거버넌스라는 형태의 구조는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실제로 '혁신'을 가능하게 하려면 민간의 역량을 공공 영역으로 어떻게 끌어들일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이다. 그럼에도 공공과 민간이 만나게 되면 항상 불협화음이 생기게 된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발생하는 일은 별도로 하더라도 지방자치단체만 놓고 본다면 힘의 불균형과 속도의 차이가 가장 두드러진다.공공이 갖는 가장 큰 힘은 역시 '예산'이다. 지금처럼 불안한 사회에서는 그나마 공적 자금만큼 안정적으로 기댈 수 있는 곳이 없다. 많은 예술가들이 불합리한 지원 제도에도 불구하고 공모사업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에 이런 부분도 포함될 것이다. 공공의 모든 사업은 예산을 기초로 한다. 차기 연도 예산을 수립하는 시기가 되면 정부나 지자체 모든 부서는 예산 확보를 위해 '전쟁'을 치른다. 정해진 예산에서 자기가 속한 부서나 사업에 조금이라도 더 예산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때론 눈물겹다. 최근에는 추가경정예산도 치열해져서 사실상 '예산 전쟁'은 1년 내내 전개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동네 곳곳에 '예산 확보'라는 플래카드를 열심히 내거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실제로 예산이 없으면 사업을 진행할 수 없으며 사업을 진행할 이유도 없다. 특히 공공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공공 조직에서는 매년 정해진 사업과 예산에 의해서만 움직인다. 실무자 정체성이 강할수록 이러한 원칙을 더 강조한다. 그렇다 보니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 매년 하던 사업들을 없애는 일이 쉽지 않고, 새로운 사업을 하기 위한 예산을 책정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다. 매년 반복되는 보도블록 교체도 비슷한 이유이고, 공공 혁신이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이것은 시민들이 공공 영역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시민과 가장 밀접해야 할 공공이 시민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으로 남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공공 혹은 행정의 존재 이유라는 물음에 가 닿는다. 행정은 시민들이 모여서 살아가는 국가와 사회가 잘 유지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게 기본적인 책무일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작동할 때가 많다.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출발해서 사고하거나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이라는 틀에 나와 있는 법과 규정을 적용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아래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위의 규칙을 만들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 전도되어 위의 규칙으로 아래를 통제만 하는 것이다. 사회 변화에 따른 새로운 현상이나 여러 가지 문제가 얽혀 있는 복잡한 사례에 대해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최근 정부가 도시재생과 생활SOC 사업에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조만간 가장 먼저 두드러지는 결과는 새로운 시설이나 공간 등 하드웨어의 변화일 것이다. 문제는 하드웨어의 변화까지는 공공이 책임을 지지만 대부분 그 후에는 제대로 안 된다는 점이다. 공간 운영의 방향과 주체마저도 공간이 완성된 이후에 고민하는 일이 많다. 순서가 바뀌어야 한다. 처음 예산과 사업 계획이 정해지면 바로 운영 기획과 방향, 주체 등을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 226개의 전국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공공시설 중에 현재 제대로 활용되지 않거나 방치되어 있는 시설과 공간은 수없이 많이 있다. 그런데도 지역 예술가들이나 활동가들은 공간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이 불균형과 불일치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앞으로 민관 거버넌스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언젠가 공공은 시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말 것이다.공공 영역의 가장 큰 위험성은 자신의 존재, 즉 정체성을 스스로 완성하려고 할 때이다. 자기 스스로 완결 구조를 갖추려고 하는 순간, 더 이상 공공성이 설 자리는 없게 된다. 공공성은 철저하게 시민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만약 정부나 지자체가 자기 완결성을 갖는 조직이 된다면 대기업과 다를 바 없다. 기업은 이윤을 내기 위해 혁신을 하고 잘못하면 망하기라도 하지만, 공공은 잘 망하지도 않는다. 지금처럼 불확실하고 불안한 시대에 공공의 존재 이유는 더욱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2019-09-05 11:21:18

김석 대한전문건설협회 대구시회 회장

[기고]추락재해, 이제는 마침표를!

5G 시대를 사는 21세기 대한민국에 참 믿기지 않는 실상이 하나 있다.지난해 산업재해 사망자 971명 가운데 절반인 485명이 건설현장에서 발생하였으며, 이 가운데 추락사고 사망자가 60%인 290명을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부끄러운 민낯이 아닐 수 없다.문제는 추락재해가 작업환경에 대한 관심과 주의, 그리고 작은 노력만으로도 예방이 가능한 매우 원시적 인재(人災)라는 점이다. 추락재해 발생위험 상황은 누구나 쉽게 발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현장에 만연한 안전불감증과 설마 괜찮겠지 하는 안이한 태도가 죽음을 부르는 화근이 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실상이 아닐 수 없다.작업현장의 추락재해 예방방법은 상식적일 만큼 아주 단순하다. 특수한 기술이나 장비가 필요한 일이 아니다. 작업자는 안전모, 안전대를 반드시 착용하고 현장에는 작업발판, 안전난간, 안전망, 개구부 덮개를 철저히 설치하면 추락사고는 발생하지 않는다.추락 위험이 있는 장소에 작업발판이 설치되어 있는지, 작업발판이나 개구부 덮개를 설치한 경우 충분한 강도를 가진 재료로 튼튼하게 설치되어 있는지, 작업발판과 통로의 끝 그리고 개구부의 추락 위험이 있는 장소에 안전난간이 설치되어 있는지를 살펴보고, 만일 미흡하다면 필요한 발판과 난간을 설치하면 된다.철골 등 고소작업을 하는 경우에는 작업자의 주요 이동통로에 안전대 부착 설비를 설치하고 혹시 모를 추락 방지를 위해 안전망을 설치하면 된다. 안전대 부착 설비를 설치한 경우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안전대와 부착 설비가 처지거나 풀림 없이 제대로 고정되어 있는지 점검해야 하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안전난간 설치와 안전대 사용이 곤란한 추락 위험 장소에는 안전망이 설치되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이 밖에 선라이트 등 강도가 약한 지붕 위의 작업자가 추락할 위험이 있을 경우 발판 혹은 안전망을 설치하고, 작업자는 안전모와 안전대 등 개인보호구를 올바르게 착용했는지 스스로 체크하면 된다.정부는 추락사고를 줄이기 위해 지난 4월 '추락사고 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공공공사는 안전성이 검증된 일체형 작업발판(시스템비계) 사용을 의무화하고, 민간공사는 일체형 작업발판 사용을 확대하기 위해 설치비 등 금융지원사업(국토교통부)과 국고지원사업(고용노동부)을 5월부터 시작했다. 사망사고가 발생한 건설현장의 시공사, 감리사, 발주청 등 사망사고 다발 건설주체 명단을 정기적으로 공개하고, 지난해 22개 현장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불시점검을 올해는 200개 이상 현장으로 확대하기도 했다.특히 7월부터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고는 국토부로 반드시 신고하고 공공공사 발주청은 공사 착공 전에 감리 배치계획 등을 포함한 건설사업관리계획을 수립하도록 의무화하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는 건설기술진흥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7월 1일 시행에 들어갔다. 우리 협회도 정부 추락사고 방지대책의 효율적 수행을 위해 '추락사고 예방대책 TF'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협회는 '소규모 건설공사 안전관리 가이드 라인' 리플릿을 제작해 전문건설 회원사와 현장에 배포하는 한편 현장방문 홍보를 펼치고 회원사와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폭넓은 교육활동을 전개하는 등 추락재해 예방을 위해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제는 추락재해라는 원시적 인재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건설업체와 근로자, 그리고 발주기관 등 건설주체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2019-09-05 11: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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