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의 이른 아침에] 진보의 위기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왼쪽부터) 고민정, 진선미, 남인순 의원. 연합뉴스 (왼쪽부터) 고민정, 진선미, 남인순 의원. 연합뉴스
진중권 진중권

작년 2월 어느 방송에서 논객은 '잠수함의 토끼' 같은 존재라고 얘기한 바 있다. 작년 초만 해도 진보 진영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내 행동이 그들에겐 이상해 보였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은 그 신호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금 그들이 탄 잠수함은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중도층은 물론이고, 민주당을 떠받들던 20, 30대마저 등을 돌렸다. 40대를 제외한 모든 연령대에서 국민의힘 후보의 지지율이 민주당 후보를 앞선다. 심지어 '여론의 섬'이라 불리는 40대에서조차 가끔은 오세훈 후보의 지지율이 박영선 후보를 앞서는 조사 결과도 나온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성추행 때문에 벌어진 보궐선거에 '피해호소인' 3인방을 캠프의 전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이 구제 불능이라는 얘기다. 한마디로 민주당은 제 오류를 수정할 '능력', 아니 그 이전에 그 '의지'조차 없어 보인다. 일단 문제를 '문제'로 인지해야 해법이 나올 텐데, 아예 문제를 문제로 보지 못하니 문제다.

민심 이반의 기폭제는 결국 부동산 정책. 민주당은 180석의 위력으로 국회 토론 한 번 없이 부동산 3법을 통과시켜 버렸다. 그때 야당과 충분한 토론을 거쳐 합의 처리를 했다면, 정책의 부작용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었을 것이고, 설사 정책이 실패해도 그 책임을 야당과 나누어 질 수 있었을 게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큰 방향과 원칙에서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거의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정책을 세밀히 만들지 못했다."(진성준 의원) 이 모두가 야당을 대화 상대가 아니라 척결 대상으로 여긴 결과, 즉 '야당=투기 세력'이며 이들에게 발목이 잡혀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빚어진 일이다.

이 상황에서도 여전히 그 마인드를 버리지 못했다. "집값 폭등과 투기에 대한 분노 때문에 집값을 올리려는 토건 투기 세력을 부활시켜서는 안 됩니다."(김태년 대표직무대행) 대체 누가 '토건 투기 세력'일까? 이 나라에 20조 원짜리 신공항을 선거 공약으로 내건 당보다 더 거대한 '토건 투기 세력'이 있는가?

수직정원이 세빛둥둥섬과 다를 게 뭐가 있는가. 오세훈이든 박영선이든 머리를 '공구리'로 채우고 개발 공약을 남발하기는 마찬가지. 유권자들이 부동산 정책의 '큰 방향과 원칙'마저 불신하게 됐으니, 거기에 영합하려고 두 후보가 경쟁적으로 유권자들의 투기 본능과 욕망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이 깊은 불신의 바탕에는 당정청 인사들의 도덕적 실패가 깔려 있다. 투기로 물러났던 청와대 대변인이 의원직을 승계받았다. 여당의 의원 7명이 줄줄이 투기 의혹을 받고 있다. 전월세 인상을 5%로 제한하는 법을 대표 발의한 의원이 제 월세는 9% 올려 받았다. 청와대 정책실장은 전셋값을 14.5% 인상했다.

이번뿐인가? 그 전엔 청와대 인사들의 다주택 보유 사실이 줄줄이 드러난 바 있다. 그 유명한 법무부 장관 가족의 꿈도 강남의 건물 한 채. 자기들은 본능과 욕망에 충실하면서 국민에게는 그것을 자제하라고 하니 국민, 특히 젊은 세대는 그것을 '공정'의 문제로 여기게 된 것이다. 공정하게 투기할 권리?

진보가 '도덕주의의 덫'에서 벗어나야 한단다. 그래, 도덕의 덫에서 빠져나오니 어떤가? 진보적 기획 자체가 불신받는 상황이 되지 않았는가. 지금 진보가 두려워할 것은 정권을 한 번 내주는 것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 대한 시민들의 환멸과 냉소, 거기서 비롯된 진보의 가치에 대한 근본적 회의다.

민주당은 '진보'를 참칭하며 진보의 도덕적 유산을 탕진해 버렸다. 가치를 내버린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사회를 진영으로 갈라 제 편을 이념으로 무장시키는 것밖에 없다. 그럼 정책은 정략으로 전락하고, 이는 또다시 문제를 낳을 것이다.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은 지금 이 악순환에 빠져 버렸다.

중요한 것은 선거의 승리가 아니다. 그놈의 승리는 그동안 충분히 해 오지 않았던가. 필요한 것은 원칙 있는 패배, 그리고 그 패배에 당연히 따라야 할 근본적인 반성과 고통스러운 혁신이다. 하지만 민주당에 과연 그 일을 할 도덕적 역량이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그들의 위기만큼 우리의 회의도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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