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IHO결정과 동해운명

장동희(전 주핀란드대사/전 국제표기명칭대사/동해연구회 이사)

장동희(전 주핀란드대사/전 국제표기명칭대사/동해연구회 이사) 장동희(전 주핀란드대사/전 국제표기명칭대사/동해연구회 이사)

국제수로기구(IHO)가 전 세계 바다를 이름 대신 고유 식별 번호로 표기하기로 잠정 결정했다.

IHO가 16, 17일 화상으로 개최된 2차 총회에서 국제 표준 해도집인 '해양과 바다의 경계'(S-23)를 디지털 시대에 맞춘 새로운 표준(S-130)으로 개정하기로 하며 취한 조치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S-23에 단독 표기되어 왔던 '일본해'(Sea of Japan)란 이름도 고유 식별 번호로 대체되게 되었다. 그러면 IHO의 이번 결정은 그동안 '동해' 표기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한·일 간 갈등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것인가? 대답은 '아니오'이다.

동해 표기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간 갈등은 192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IHO는 1929년 S-23을 발간하며 여기에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였다. 1937년 S-23 개정판, 1953년 3판을 발간할 때까지 S-23의 '일본해' 표기는 지속되었다.

1965년 한일 어업협정 체결 시 일본에 대해 동해 표기의 당위성을 주장한 적이 있지만, 우리 정부가 국제사회에서 동해 표기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기 시작한 것은 1991년 유엔 가입 이후이다.

유엔 회람 문서에서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된 것을 발견한 우리 정부는 관계 부처 대책회의를 거쳐 1992년 동해/일본해 병기를 추진하기로 결정한다.

1992년 유엔 지명표준화 회의에서 우리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처음으로 동해 병기를 주장한 데 이어, 1997년 IHO 총회에서 이 문제를 다시 제기한다.

1970년대 이래 20년 이상 S-23 개정판 발간을 준비해 온 IHO는 동해 수역 명칭 문제라는 새로운 복병을 만난 것이다. 이후 동해 수역 명칭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간 갈등은 S-23 개정판 발간에 최대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IHO의 이번 결정은 일본이 2012년 IHO 실무작업반이 제시한 타협안(한 면은 동해로, 또 다른 한 면은 일본해로 표기)을 거부함에 따라 공전하던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IHO의 이번 결정은 국제적 항해 지침서로 사용되는 S-23 개정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간 논란을 종식시킨 것이지, 동해 표기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번 결정을 두고서도 한·일 양국은 해석을 달리한다. 일본 정부 측은 "(S-23을) 계속해서 일반적으로 이용 가능하다"는 사무총장 보고서 표현을 들어 "일본해 단독 표기의 정당성이 인정됐다"고 주장한다. 반면, 우리 외교부는 IHO의 이번 합의는 S-23이 표준이 아니라 출판물로서만 남는다는 것을 명확히 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그러나 이번 결정으로 S-23에서 사용되던 '일본해' 명칭이 가치 중립적인 식별 번호로 대체된다는 것은 명확하다. 또한 IHO 사무총장은 보고서에서 S-23은 "디지털 환경에서 사용이 적절하지 않다(not suitable)"고 함으로써 S-23의 유효성을 부인했다. 다만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역사적 변천을 보여주기 위한 기존 IHO 발간물의 일부로 이용 가능하다"고 함으로써 S-23의 사료로서의 가치를 인정하였을 따름이다.

IHO의 이번 결정으로 우리가 지난 20여 년간 추구해 온 '동해가 병기된 S-23 개정판' 발간을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S-23에 단독 표기되었던 '일본해' 명칭을 지우는 데 성공한 만큼, 이제는 눈을 돌려 종이 및 디지털 지도 생산자, 각국 지리 교사 등 민간 분야를 대상으로 한 동해 병기 노력을 가속화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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