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의 이른 아침에] 프레임으로서 검찰개혁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2020년 1월 10일 한동훈 당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게 보직 변경 관련 신고를 하기 위해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청사로 들어가는 모습. 연합뉴스 2020년 1월 10일 한동훈 당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게 보직 변경 관련 신고를 하기 위해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청사로 들어가는 모습. 연합뉴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이른바 '검언 유착' 사건은 권력의 공작 정치로 드러났다. 수감 중인 이철 씨는 지난 3월 25일 한동훈 검사장의 이름을 처음 듣고 위협을 느꼈다고 했다. 하지만 채널A 기자는 이미 그 3일 전에 취재를 포기하고 그쪽과 접촉을 끊은 바 있다. 그러니 '강요 미수'가 성립하려면 타임머신이 있어야 할 게다.

이른바 '검언 유착' 의혹의 핵심은 검찰총장의 최측근인 한 검사장이 감옥의 이철 씨를 협박하여 유시민 이사장의 비리를 캐려고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철 씨는 법정에서 (다른 사건으로) 검찰에 불려갔을 당시 유 이사장에 관한 질문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사건의 실체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제보자 X는 기자에게 이철 씨가 정치인 로비 리스트를 쥐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철 씨가 그에게 그런 리스트는 없다고 확인해 줬다니, 고의로 거짓말을 한 것이다. 최강욱 의원은 기자가 이철 측에 "거짓이라도 좋으니 유 이사장에게 돈을 줬다고 해 달라"고 말했다고 썼다. 하지만 녹취록에 그런 발언은 없었다.

이 공작에 공중파인 MBC와 KBS까지 동원됐다. 그 덕에 거짓이 졸지에 사실로 둔갑했다. 이 대안적 사실을 근거로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이 발동되고, 부장검사가 상관을 폭행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수사심의위원회에서는 한 검사장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중단하라고 권했다. 사건의 실체가 없다는 얘기다.

결국 한 검사장은 조작된 음모의 희생양으로 드러났다. 무고함이 밝혀졌으면 이제라도 좌천됐던 그를 원대 복귀시키는 것이 옳다. 하지만 추미애 장관의 법무부는 좌천됐던 그를 외려 더 먼 곳으로 보냈다.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그를 서울에서 부산으로, 부산에서 용인으로, 용인에서 진천으로 쫓아낸 것이다.

법무부 감찰관실이 한 검사장에 대한 감찰에 나섰다고 한다. 그의 주변 사람들에게 법무연수원 용인분원에서 그의 출퇴근 시간과 근무 태도를 캐묻고 다닌단다. 심지어 코로나 방역 권고에 따라 상부의 결재를 받고 재택근무를 한 것까지 캐물었다고 한다. 일국의 법무부가 악덕 기업주나 하는 너절한 짓을 한다.

문제의 녹취록에서 한 검사장은 이렇게 말한다. "사회가 다 완벽하고 공정할 순 없어. 그런 사회는 없다고. 중요한 건 뭐냐면 국민들이 볼 때 공정한 척이라도 하고 공정해 보이게라도 해야 돼. 그 뜻이 뭐냐? 일단 걸리면 가야 된다는 말이야. 적어도 걸렸을 때, '아니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성내면 안 되거든."

중요한 지적이다. 최소한 공정한 척이라도 하고 공정해 보이게라도 해야 된다. 이것이 불완전하나마 우리 사회를 사회로서 유지시켜 주던 최소한의 규율이었다. 그런데 이 정권에 들어와서 이 한 줌의 도덕마저 무너져 버렸다. 지금은 공정한 '척'하는 문화마저도, 공정의 '외관'조차도 사라져 버렸다.

수십 만이 서초동에 모여 '내가 조국'이라 외쳤을 때, 그로써 그들은 윤리를 새로 제정한 것이다. 그 도덕은 벌써 통용되고 있다. "언론의 묻지마식, '카더라'식 토끼몰이 당사자가 되어 검찰의 짜맞추기 수사를 직접 경험해 보면서 대한민국 검찰 개혁은 분명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라임펀드 김봉현 회장의 말이다.

자기도 조국이라는 얘기다. 권력을 향해 자기도 조국처럼 대해 달라고 요구하기 위해 조국 사태와 검언 유착 사건의 프레임을 슬쩍 자기에게로 옮겨 놓은 것이다. 검찰의 힘을 빼놓는 데는 그와 권력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그러니 권력으로서도 이를 사건의 본질을 호도하는 데 최대한 이용하려 할 것이다.

여기서 그동안 정권이 활용해 온 '검찰 개혁' 프레임에 내재된 문제가 분명히 드러난다. "대한민국 검찰 개혁은 분명히 이루어져야 한다." 사기 사건의 피의자가 '개혁'을 얘기한다. 그동안 권력에서 그 프레임으로 자신들의 비리를 덮어왔으니, 범죄 사건의 피의자마저 그 노하우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범죄자에게도 인권이 있고, 그의 말이라고 무조건 무시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발언이 적어도 공익을 위한 게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검찰 개혁'의 명분만 내세우면 모든 게 용서되는 세상. 그러니 엉뚱한 사람이 검찰 개혁의 기수를 자처하는 해괴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뉴노멀이다.

관련기사

AD

오피니언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