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의사가 되고 싶었던 소년

김용락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 원장·시인

김용락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 원장·시인 김용락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 원장·시인

지금부터 45년 전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2학년 진급을 앞두고 문과·이과를 나눌 때 나는 이과를 선택했다. 그 이유는 의과대학에 진학해 의사가 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당시 학제로 이과를 선택해서 '수학2'라는 과목을 배워야 했다. 병원도 없는 산골 깡촌 무의촌에서 태어나 자란 내가 의사에 대해 무얼 알고 의대를 염두에 뒀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본 영화 한 편 때문이었다. 제목이 '청녀'(靑女, 1974년)인데 아마 영화에 대해 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분들도 이 영화는 처음 들어볼 정도로 영화사는 물론이고 일반 팬들에게도 잊힌 영화이다.

나는 당시 이 영화를 지금은 없어진 대구 비산동 오스카극장에서 봤다. 내용은 의사가 낙도에 의료봉사를 하러 가서 시각장애(장님)에다가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어린 소녀를 구해서 치료하고 돌봐준다는 휴머니즘이 바탕에 깔린 그런 영화였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큰 감동을 받았고, 주인공 남자 의사에 대해 너무나 강렬한 매력과 선망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 나도 의사가 되어 낙도와 같은 무의촌에 가서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고쳐주는 휴머니즘 의사가 되자!' 하고 15세 소년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사실 이 영화는 1947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프랑스의 A. 지이드라는 작가의 '전원교향악'이라는 소설을 번안한 것이었다.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의사가 아니라 목사인데 주인공 목사 역시 매우 훌륭한 선행을 베풀고 헌신하는 사람으로 나온다.

나중에 알게 된 터이지만 이 영화는 '만추'로 유명한 이만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당시 민청학련이라는 시국 사건에 연루돼 수배 중이던 김지하 시인이 조감독이라는 직책으로 당국의 눈을 피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지하 시인은 영화 촬영 현장이던 서해 대흑산도에서 잡혀 서울로 압송돼 10년 가까이 징역을 살았다는 후일담도 있다.

중국 근대 사상가이자 작가인 루쉰(魯迅)은 '아큐정전' '광인일기' 같은 문학작품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특히 1980, 90년대에는 경북 봉화 출신의 걸출한 산문가인 전우익 선생이나 신영복 같은 사상가들에 의해 우리나라에서 널리 소개되고 많이 읽혔다. 루쉰은 몰락한 지주의 아들인데 의사가 되기 위해 일본 센다이 의과대학에 유학을 갔다. 당시는 중일전쟁이 한창이었는데 의과대학 실습시간에 환등기로 생체해부학을 공부하다가 잠시 쉬는 시간에 일본 군인들이 중국 민중들을 짓밟는 영화를 보고 사람의 육체를 고치는 의사가 아니라 정신을 고치는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고 의과대학을 자퇴하고 소설가가 되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실제로 루쉰은 20세기 신문명 초기 중국 민중들뿐만 아니라 세계 지식인들에게 정신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끼친 좋은 글을 많이 썼다.

아마 근래 우리 사회의 빅 데이터를 돌려본다면 아마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목사' '의사'가 아닐까 싶다. 종교 유무를 떠나 보통의 장삼이사들이 생각하기로 목사는 마음이 가난한 이들의 영성을 높이고 사랑과 평화를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의사는 몸이 아픈 이들을 치료하고 그들에게 평안과 안식을 주는 사람이라고 믿고 있다. 내 영혼이 힘들 때 누군가가 곁에서 해주는 진실한 기도는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던가. 몸과 마음이 고단하고 아플 때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은 얼마나 큰 위안과 치유가 되었던가?

오늘은 문득 중학생 때 읽었던 A. 지이드의 소설 '전원교향악'과 이만희 감독의 영화 '청녀'가 생각나면서 45년 전 잠시 의사가 되고자 했던, 분별없으나 아름다웠던 청춘의 내 모습을 회상해본다.

김용락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 원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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