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언미의 찬란한 예술의 기억] 잃어버린 퍼즐 찾기

임언미 대구문화 편집장 임언미 대구문화 편집장

솔직히 지난 2월, 1980년대 발행분 '대구예술' 잡지 수집을 공개적으로 진행하고자 마음먹었을 때 큰 기대는 없었다. 잡지 공개 수집 홍보를 통해 아카이브 사업을 알리는 데에 만족하고, 실제로는 원로 예술인들을 수소문해서 찾아볼 생각이었다. '대구예술'은 발행처인 대구예총과 산하 10개 협회를 비롯해 당대 예술가들의 활동이 게재된 잡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런데 언론 기사가 나간 바로 그 주, 한 원로 수필가가 '전국체전 특집호'로 제작된 1984년 발행분을 사무실로 가져다 주셨다. 특집호답게 두툼한 그 책에 당대 시대 분위기를 비롯해 1940, 50년대 예술계를 회고한 작고 예술인들의 원고가 수록된 것을 보고 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뒤이어 전화도 걸려오기 시작했다. 대구 북구 읍내동에 산다고 자신을 소개한 한 어르신이 창간호부터 여러 권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희망이 생겼다. 마침 1990년대 발행분 잡지들은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가 제공해주셨다.

하지만 옛 잡지를 소장하고 계실 법한 원로 예술인들께 전화를 하면서 덜컥 마음을 졸이기 시작했다. 잡지를 분실했다거나 이사하면서 정리했다는 답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급해져 처음 전화를 주셨던 읍내동 어르신께 여러 차례 전화를 드렸지만 통화가 되지 않았다.

크게 실망하던 차에 두 번째 전화가 걸려왔다. 대구 출신으로 현재 서울 모 기업의 대표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창간호와 제2호를 소장하고 있으니 바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반신반의하며 사무실 주소를 알려드렸다. 택배로 실물이 도착하고 나서야 실감이 났다.

그것이 이인석 ㈜이랜드 고문과의 첫 인연이었다. 바로 감사 전화를 드렸지만 코로나19 상황으로 5월 말이 되어서야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30년 이상 수집가로 활동하며 여러 지역에 자료를 기증해왔다고 했다. 특히 한국전쟁기 문헌 자료를 많이 가지고 있으며 대구 자료들도 꽤 있다고 했다. '대구의 문화예술 자료는 대구에 보관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필자의 이야기에 공감한 그는 서울로 돌아가 자료가 정리되는 대로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남겼다.

그 뒤로 두 차례 택배가 사무실로 도착했다. 일제강점기 출판물과 1950년대 한국전쟁기 출판물, 그리고 1960~80년대 대구에서 발행된 잡지 초판본들이었다. 그는 그 뒤로도 대구에 내려올 때마다 자료들을 건넸다.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 감사장을 드렸지만 자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오랫동안 수집해온 그분이 기증까지 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언론사 기자가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고, 그는 흔쾌히 응했다. 인터뷰 당일 그는 또 깜짝 선물을 건넸다. 남성 현대무용가 고(故) 김상규 선생의 공연 팸플릿을 비롯해 사진 자료 등 여러 유품들을 가져온 것이다. 이 대표가 대구에 예술자료들을 기증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자료를 가진 골동품상이 그에게 매입을 권한 것이다. 그는 바로 그 물건들을 구입해 대구로 가져왔다.

김상규 선생이 어떤 사람인가. 한국 1세대 남성 무용가로 대구경북 현대무용의 뿌리를 닦은 인물이다. 그의 혈육 중 현대무용의 길을 잇던 딸 김소라 전 대구가톨릭대 교수와 부인 최원경 선생이 잇달아 세상을 떠나면서 그와 관련한 예술자료들도 모두 소실되었다. 김상규 선생은 지역 예술사를 정리하는 필자에게는 잃어버린 퍼즐 같은 것이었다. 이인석 대표가 그 잃어버린 퍼즐을 뜻하지 않게 선물해 주었다.

좋은 에너지가 전해졌던 것일까. 첫 기증 전화를 걸어왔던 북구 읍내동의 어르신에게도 다시 연락이 닿았고 그는 그 잡지들을 보자기에 곱게 싸서 내주셨다. 오랜 세월 간직한 자료를 전해주는 게 마치 자식을 시집보내는 것 같다고 하셨다.

오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여 역사 문화 자료를 수집하고 보존하는 일을 개인이 하는 것은 지극히 힘든 일이다. 더군다나 수집한 자료를 공적으로 기증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이인석 대표와 북구 읍내동의 노대균 선생님, 수필가 김종협 선생님, 김태곤 큐레이터, 그리고 관심을 가져주신 원로 예술인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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