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태의 세상속의 종소리] 마추픽추의 “굿바이 보이‘

이재태 경북대 의대교수 이재태 경북대 의대교수

코르테스가 소총 50정을 지닌 500명의 스페인 병사와 16마리의 말로 아즈텍 제국을 정복하자, 돼지를 치던 그의 친척 피사로도 180명의 병사와 27마리의 말을 이끌고 남미의 잉카로 향했다. 잉카는 안데스 산맥 4천㎞ 길이에 1천200만 명 인구인 큰 제국이었다. 피사로가 1531년 수도 쿠스코 북부에서 평화 회담을 요청하자, 잉카의 젊은 황제 아타우알파는 무장해제한 군대 8만 명을 이끌고 나갔다. 피사로는 협소한 지역에 화승총으로 무장한 보병과 대포도 감췄으나 황제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가톨릭 신부가 '개종과 스페인 국왕에 대한 충성'을 압박하자 스스로가 신이었던 황제는 거부하였고, 동시에 대포와 화승총이 불을 뿜었다. 잉카인들은 모두 놀라서 흩어졌고, 황제는 포로가 되었다. 7천 명의 수행원을 대동했던 황제가 순식간에 포획된 것이다. 당시 잉카인들은 미래에 흰 사람들이 큰 동물과 함께 나타나 그들을 구한다고 믿어왔는데, 말 탄 백인 기병들이 그들 앞에 나타나자 순간 온몸이 얼어붙었다고 한다.

도도한 잉카 황제 탁상종. 19세기 남미. 도도한 잉카 황제 탁상종. 19세기 남미.

황제는 자기를 석방해 주면 구금된 방을 금으로 채워 주겠다고 제안하고, 제국의 금 장식을 뜯어 바쳤다. 그러나 피사로는 금만 받고 그를 교수형에 처하였다. 후일 다시 공격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대병력은 즉시 흩어졌고 이후 간헐적인 저항이 무산되며 결국 1533년 잉카제국은 스페인 식민지가 되었다. 잉카에는 소통 가능한 문자가 없었기에 세상에 무지했고 황제는 침략자를 알지도 못하면서도 모두 자신의 권위에 굴복할 것이라고 오만하게 생각하다 자멸했다.

잉카 청년 도기 종 잉카 청년 도기 종

아즈텍, 잉카가 손쉽게 정복되자 황금 제국 엘도라도를 찾겠다는 유럽인들의 침탈이 이어졌다. 단단한 철이 없었기에 청동기와 돌 무기로 무장했던 잉카인들은 대포와 총칼을 지닌 유럽인들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잉카의 폭정에 시달리던 다른 부족들이 스페인 군대에 협력한 것도 결정적이었다.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이 잉카인을 신민으로 인정하는 대신 그들의 무료 노동력 사용을 허용하자 잉카인들은 합법화된 착취와 지난한 노동과 기근을 견뎌야 했다. 천연두를 비롯한 유럽의 전염병도 면역력이 없던 남미 원주민 2천만 명 이상을 몰살시켰고, 잉카 인구도 50만 명으로 줄었다.

굿바이 보이 굿바이 보이

스페인 정복자를 피해 안데스의 깊은 정상에 새 도시 마추픽추를 건설했던 잉카인들은 또다시 어디론가 사라졌고, 이 잉카의 도시는 400년이 지나서야 세상에 알려진다. 페루의 마추픽추를 돌아본 후 내려오는 버스를 탈 때면 한 남자아이가 손을 흔든다. 한국 사람에게는 "굿 바이"와 "안녕-가세요"를 함께 외친다. 버스가 산길을 돌며 내려오는 동안 소년은 깎아지른 경사를 가로질러 버스를 만나는 길목마다 미리 대기하다가 같은 인사를 반복한다.

소년을 일곱 번 정도 만나면 정류장에 도착하는데, 이미 내려와 있던 소년은 버스에 올라 인사를 하고 관광객들은 박수와 함께 돈을 건넨다. '굿바이 보이' '헬로 보이'라 불리는 이 소년은 옛날 잉카의 산길을 뛰어다녔던 파발꾼 '차스키'의 후예이다. 진흙으로 만든 마추픽추의 채색한 소년 종을 흔들면 잉카 파발꾼들의 고난했던 발걸음 소리도 같이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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