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태의 세상속의 종소리] 버뮤다의 흑인 노예 사라 바세트

사라 바세트 청동 종, 1900년경, 미국, 10cm 사라 바세트 청동 종, 1900년경, 미국, 10cm

 

이재태 경북대 의대 교수 이재태 경북대 의대 교수

숨을 쉴 수 없어요! 무릎에 목이 눌렸던 아프리카계 미국인 조지 플로이드는 이 말을 반복해서 외쳤지만, 백인 경찰 데릭 쇼빈은 숨이 끊어질 때까지 계속 눌렀다. 미국에서 경찰의 폭력이나 인종 차별에 관한 사회적 문제들은 지난 수십 년간 반복되었던 일이었으나, 코로나19 확산으로 모두가 우울한 가운데 일어난 이번 일은 엄청난 후유증을 낳고 있다. 분노한 흑인들을 중심으로 차별에 대한 항의 시위가 일어났고 일부는 폭동화되고 있다.

18세기 영국 식민지였던 서인도제도의 버뮤다섬에 사라 바세트라는 할머니가 살았다. 노예로 끌려온 흑인과 백인의 혼혈인 뮤라토 혈통이었는데, 당시 흑인들과 뮤라토인 대부분은 지배층 백인들의 노예로 살았다. 그녀도 백인의 노예였는데, 주인은 나이가 많아지자 값어치가 없다며 그녀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하여 노예에서 풀려나 궁색하게 살고 있었다. 1730년 백인인 포스터 부부와 그들의 하녀가 갑자기 아팠는데, 여러 치료에도 병세가 호전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하녀가 집에서 숨겨둔 독극물을 찾았다며 경찰에 신고하였다. 독극물을 숨겨두었던 범인을 찾는 조사가 시작되었고, 이 집의 노예였던 바세트의 손녀 벡크가 취조를 못 견디며 할머니가 그녀에게 독극물을 투여시켰다고 증언하였다. 할머니는 강하게 무고를 주장하였으나, 교구의 마녀 재판은 독극물에 의한 살인미수죄로 화형 판결을 내렸다.

사라 바세트 동상 사라 바세트 동상

그녀는 매우 더웠던 6월 21일 버뮤다 해밀턴 항구의 크로우 거리에서 화형되었다. 그녀는 시종일관 평온하였고, 유머를 잃지 않았다. 화형 장면을 구경하기 위해 자기보다 앞서가는 군중들에게 "그렇게 빨리 서둘러 갈 필요가 없네. 내가 거기에 다다를 때까지는, 아무 볼 것도 없어"라고 했다.

전설에는 그날 그녀를 불태웠던 장작불이 꺼진 뒤, 잿더미에서 보라색 '버뮤다 신세계 붓꽃'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처형 전 "내가 죽은 자리에는 무죄를 증명하는 증거가 나타날 것"이라 했는데, 버뮤다인들은 불덩이가 꺼지자 활짝 핀 보라색 꽃이 나타난 것이라 믿었다. 버뮤다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꽃이다. 평생을 노예로 살았으나, 나이 들어 주인에게서 버려진 후 누명을 쓰고 화형당했던 그녀의 이야기는 버뮤다 민중들에게 구전되었다. 희망도 없이 살던 이 섬의 흑인 노예들은 할머니를 통하여 자신들의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았고, 마침내 노예 해방 운동을 위해 봉기하게 된다.

버뮤다 붓꽃 버뮤다 붓꽃

버뮤다섬 해밀턴시에는 양손이 묶인 채로 화형대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그녀의 당당한 최후가 동상으로 세워져 있다. 그러나 작은 청동 종 속의 그녀는 다른 모습이다. 구부러진 허리의 초췌한 늙은 노예 할머니의 모습이다. 공식적으로 노예제도가 폐지되었으나, 여전히 차별에 시달리고 있는 바세트의 후예 미국 흑인들은 이 종이 들려주는 무거운 소리로 그녀와 공감하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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