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불청객

김사윤 시인

김사윤 시인 김사윤 시인

물건은 놓여야 할 곳에 놓여야 어울린다. 사람도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어색하지 않다. 한번쯤 이곳이 나와 어울리는 곳인지 돌아봐야 한다. 물건은 안 어울리면 치워버리면 그만이지만,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인간관계를 맺고 끊는 것이 그리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인이라면 치적이나 실정을 두고 법적 책임공방까지 벌여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은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결국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고 그 자연이 가공의 무엇으로 인해 훼손되면 돌이킬 수조차 없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사람다워야 할 덕목을 제일로 꼽는 것이다. 선생님은 선생님다워야 하고, 어른은 어른다워야 한다. 이는 체면이나 위계를 강조하는 말이 아니다. 누구보다 겸손해야 할 사람도 그들이고, 누구보다 격을 갖추어야 할 사람도 그들이라는 말이다. 체벌 금지 이후로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고 낙담하는 교사들이 늘고 있다. 평생직장이라는 인식도 많이 사라진 것 같다. 먹고 살기에 급급했던 60년대 이후의 부모세대는 알고 있다. 그 당시에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했던 이들 중에 상당수가 교사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TV나 자동차 수까지 조사를 했던 가정환경을 바탕으로 아이들의 불평등이 조장된 바가 많았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물론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 하긴 고등학교에서 군사교육까지 실시했던 시절이었음을 감안하면 어울리는 불평등이긴 했다. 뿐인가. 대학생들은 병영이라고 해서, 며칠 군부대에 입소하여 군사훈련을 받고 오면 3개월의 단축복무 혜택이 주어지기도 했다. 입대를 하면 대학을 진학하지 못한 선임자보다 일찍 전역하는 후임자도 다수 있었다. 참으로 말도 안 되는 시절이었다.

순우리말 중에 '그냥'이란 말이 있다. 말 그대로 그냥은 그대로 대가나 조건 없이 쓰이는 부사어다. 그냥이란 표현은 어른들의 무책임한 표현에도 많이 쓰인다. 그냥 그렇게 되었다는 말은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결과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어찌하다보니 이렇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 결과에 대해서는 실망이나 좌절이 있을 수 없다. 그냥 그렇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냥 한번 해보는 것에는 부담조차 없다. 심지어 '그냥'이란 표현이 점점 그 의미를 넓혀가고 있는 요즘이다. 긍정적인 방향이 아니라 부정적인 방향으로 말이다. 어떻게 지내냐는 안부에 '그냥 그렇지. 뭐'라고 하면,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의미 내지는 별다른 진전도 없다는 의미도 내포한다. 우리는 그냥 살아가서는 안 된다. 그야말로 치열하게 어울리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역할이 우리와 어울리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의사가 그냥 진료를 하고 판사가 그냥 판결을 내리면 우리는 그냥 피해를 입게 되기 때문이다. 스스로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었다고 판단되면 즉시 벗어던지고 가장 어울리는 옷을 입어야 한다. 부르지도 않은 자리에 불쑥 자리하는 이를 두고 불청객이라고 한다. 다 함께 만들어가는 세상에서 어떤 역할에도 어울리지 않는 불청객으로 살아가는 일은 슬픈 일이다. 그냥 살아가지 말고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일, 단 한 번의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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