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1990년대 대구의 미술가들

박민영 대구미술관 교육팀장

박민영 대구미술관 교육팀장 박민영 대구미술관 교육팀장

1990년대 이후의 한국 사회를 언급하는 데 있어, 큰 변화의 계기를 만든 두 개의 사건이 있다. 첫 번째는 1988년 서울올림픽이고, 다음은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은 사건인데 사회 전반 뿐 아니라 미술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국제화, 여행자유화와 같은 개방적인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1990년대 들어 대학가의 민주화 운동은 점점 잦아들었다. 예술에서도 이념이나 투쟁, 무거운 역사의식보다는 큰 명제에 가려졌던 주변부의 목소리가 나타났다. 예를 들어 여성, 약자, 환경, 신체, 성 등의 주제가 부각되었다. 또한 형식적으로 주도적 흐름이 없는 다원화 양상이 나타났는데, 추상과 구상, 모더니즘과 리얼리즘과 같은 대립적 구조가 아닌, 혼성, 차용 등의 형태로 나타났다. 두 번째 사건은 1998년 IMF로 국내 경제는 곤두박질 쳤던 것이다. 국내 경제의 타격으로 미술시장 역시 붕괴되었다. 기존의 미술계가 작동하지 않는 현실에서 작가들은 기존 시스템과는 다른 대안을 모색하게 되었고, 탈중심, 탈주류의 움직임을 나타났다.

작가들은 경제적 상황이나 현실에 흔들리지 않는 자생성을 확보하고자 하였고, 자연스럽게 스스로의 생존을 모색하거나, 문제해결을 위한 단체의 조직과 협업과 같은 활로를 추구하게 되었다. 이때 대구에서는 국내 최초의 대안공간이 탄생한다. 1997년과 1998년 사이 결성된 대구현대미술가협회는 이듬해 1998년 6월에 '스페이스129'를 만들었다. 스페이스129는 서울로 옮긴 인공화랑이 1996년까지 있던 중구 삼덕2가 129번지에 자리 잡았다. 이 공간은 상업화랑과는 다른 대안공간(Alternative Space)으로 작가들이 직접 작가의 자유로운 발표를 지원하는 협동조합(Co-Op)방식으로 운영되었다. 공간은 회원뿐만 아니라 뜻을 같이 하는 비회원들에게도 개방되었고, 전시장 사용료는 기존 상업 화랑의 절반수준으로 낮췄다. 이곳은 작가들에게 형식과 내용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발표의 장을 제공하였다.

1990년대 중반에는 경향, 지역, 학연을 불문한 모임들이 다수 나타났다. T.A.C(The Area of Colloquy)는 노중기 등이 중심이 되어 출발하였고, 1995년 창립전 '시대정신'에서 미술 형식의 제한 없는 풍토 형성과 집단이 아닌 개인의 자유표현을 표방하였다. 이들은 작가들의 기획으로 시의성을 반영한 주제전을 개최하였고, 홍보지를 발행하고, 후원회가 조직되기도 했다. 아트신테(Art Synthe)는 1995년 권정호가 중심이 되어 창립하였고, 주도적 힘이 사라진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에 대한 논의와 실천을 이들의 과제로 생각했다. 대구현대미술가협회는 30에서 40대 중심으로 180여 명의 많은 작가가 모였고, 그들이 함께 스스로 필요한 일들을 찾아 해결하는 거점이 되었다. 1998년 '스페이스129' 개관을 비롯해 2004년 전국 대안공간 네트워크전 개최, 2007년 가창창작스튜디오를 개관하는 등 작가들에 의해 작가들을 위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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