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존재세계와 생명의 신비

전헌호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전헌호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전헌호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내가 이렇게 편안하게 책상 앞에 앉아서 보는 나의 주변 세계를 멀리서 바라본다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과는 상당히 다르게 보일 것이다. 아폴로 우주비행사가 달에 가고 오고 하면서 찍은 지구의 모습은 조금 더 크고 푸른색이라는 것 외에는 여기서 달을 보는 것과 거의 같은 형태였다.

내가 지금 체험하는 이 땅은 엄청나게 크고 한없이 펼쳐져 있는 것 같은데, 그 사진에 의하면 한없이 큰 진공 상태인 공간에 떠 있는 공과 같다. 보이저호가 태양계를 벗어나면서 찍은 지구의 모습은 저 멀리 수많은 별들 중에 옳게 구별하기도 힘들 정도로 작은 크기여서 안내가 없이는 알 수도 없었다.

그런데 이 지구와 온 우주에 있는 모든 천체와 물체는 물리적 법칙을 따라 어김없이 움직이고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이 짧은 칼럼에 물리 법칙을 좀 더 자세히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이 모든 것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신비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아가 생명현상의 신비도 언급하고 싶다. 지구 표면에서 일어나는 모든 움직임은 햇빛을 통해 전달된 태양에너지와 지구 내부의 대류현상 그리고 중력의 복합작용에 의한 것이다.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는 최종적으로 중력의 지배를 받아 아래로 끌려 내려온다. 그런데 생명체만은 지구의 중력을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풀과 나무가 그렇게 자라고, 물고기들은 물속에서, 새는 하늘에서, 사람을 포함한 온갖 동물들은 지표면에서 그렇게 움직인다.

이러한 현상은 신비하다는 말이 아니고서는 옳게 표현하기가 어렵다. 우리들 중 어떤 사람은 '본래 그런 것인데 뭘 그렇게 생각하나?'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모든 것이 너무도 신비하여 놀랍고 감탄스럽다. 이성적 노력으로 아무리 많은 탐구를 한다 해도 이 모든 것에 대해 논리적으로 정갈하게 정리할 수는 없다. 이것은 이성에 의한 논리적 탐구의 대상 이전의 것이고 또한 이후의 것이다. 열심히 공부하여 배우고 탐구하면 최종적으로 이러한 신비의 요소들을 만나게 되고 그 앞에서 이성적으로는 더 나아갈 수 없는 장벽도 만나게 된다.

하지만 호기심 많은 인간은 이것에 대해서도 어떤 말로 정리를 해야 하는데 이때 동원되는 단어가 바로 '신비'이다. 아인슈타인과 같은 천재도 이 장벽 앞에서 신비라는 단어를 동원하는 것 말고 달리 할 수 없었다.

여기서 진정한 종교의 영역이 시작되는 것으로 보고 싶다. 오늘날에도 '종교는 나약하고 죽음이 두려운 인간이 기대는 허상일 뿐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강한 부류에 속한 사람들 중에도 종교를 가진 이들이 많다. 종교에 귀의하는 사람들 중에는 외롭거나 병든 사람, 가난하고 두려운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이들이 귀의할 수 있는 종교가 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마저 없다면 이들은 살아가기가 참으로 힘들 것이다.

종교단체들의 조직과 활동에서 비난을 던질 일들이 발생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들은 주변의 많은 비난을 통해 정화되어야 한다. 비난의 대상이 된 조직과 활동은 종교의 주변적인 요소에서 발생하는 것이지 핵심적인 요소는 아니기 때문이다.

올바른 종교는 있는 것은 있다 하고 없는 것은 없다 하며, 선한 것은 권하고 악한 것은 하지 말라 하며, 신비한 것에 대해서는 신비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시종일관 외치는 것은 존재 세계와 생명에 대한 믿음과 희망 그리고 사랑이다. 이 세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허망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창조하신 것이니 그것을 믿는 마음으로 희망하며 사랑으로 살아가자고 한다. 이 외침은 종교의 핵심적인 요소로서 어떤 경우에도 신뢰의 대상이 될 것이고 인간의 삶에 늘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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