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미강의 생각의 숲] 젊은 대구 잠 깨어 오라

권미강 작가 권미강 작가

도시도 나이가 있다. 도시가 생성된 세월의 나이도 있겠지만 도시가 뿜어내는 향기, 보여주는 몸짓, 풍기는 이미지가 젊으면 그 도시는 오래됐어도 젊다.

불의에 맞선다는 것은 정신이 젊다는 것이고 대구는 줄곧 그래 왔다. 역사 속 대구를 보면 중요할 때마다 젊은이들이 있었다. 서슬 퍼런 일제강점기 때 학생들의 비밀결사운동이 있었고 이승만 독재정부 때는 학생들이 일으킨 최초의 민주운동인 2·28 학생운동이 있었다. 3·15 부정선거 규탄 시위로 이어지며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2·28 학생운동이 일어난 도시가 대구다. 우리나라 노동사에서 가장 빛나는 인물 전태일 열사도 대구 젊은이다. 그렇다면 지금 대구는 어떤가?

한 청년이 있었다. 대구를 아주 많이 사랑하는 청년이었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기발하고 다양한 문화 기획물을 많이 만들어냈다. 문화예술 분야의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대학원에서 예술행정도 공부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던 공구상가로 가득한 북성로에서 젊은이들을 끌어모아 다양한 예술실험도 했다. 그것이 발단이 된 것인지 지금 북성로는 도시재생의 모델이 됐다.

어느 해인가 그 청년은 동성로에 클럽을 열었다. 클럽이라면 젊은 사람들이 술 마시고 춤추는 공간. 연세가 조금 지긋하거나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낼 수 있는 클럽을 청년은 왜 열었을까? 청년은 젊음과 자유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힙합, 인디문화를 사랑했다. 그러한 청년문화를 대구에서 꽃피우고 싶어 했다.

젊기에 몸속에서 꿈틀대는 자유, 갈망을 풀어내고 자신이 사랑하는 대구에서 청년문화를 꽃피우고 싶어 했다. 청년은 음성적인 클럽이 아니라 건전한 클럽문화 정착을 위해 동성로라이브클럽협의회도 결성하고 대구라이브클럽 춤 허용 조례 제정을 위해 포럼도 열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청년문화를 공론화시키고 대외적인 지지도 받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주장했다. 대구에 젊은이를 위한 문화가 활성화되어야 젊은 사람들이 떠나지 않는다고. 소규모 라이브클럽이나 힙합클럽은 인디밴드 등의 공연문화이고 대구 젊은이들의 커뮤니티 활동의 중심이라고. 그 순기능을 무시한 채 버닝썬 같은 기업형 클럽에 대는 잣대를 들이대지 말라고. 하지만 보수의 벽은 높았고 청년은 SNS에 자신의 심정을 올렸다. "그저 내가 해오던 공연, 힙합, 슬램 이런 거 다 불법이었네요? 대구는 미래가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얼마 전, 청년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한때 대구 춤판은 유명했다. 국채보상공원이나 2·28공원에서 비보이, 힙합 등 스트리트댄스를 연습하며 세계의 유명한 비보이댄스대회에 나가 우승한 저력도 있다. 하지만 대구는 여전히 청년문화에는 마음의 빗장을 닫아버렸다. 자유롭고 활기 넘치는 서울 홍대거리를 벤치마킹하고 부러워하면서도 정작 대구 안의 청년문화는 허용하지 않는 듯하다.

대구시는 대구형 청년보장제를 만들어 청년들이 희망을 가지고 행복을 찾는 다양한 정책을 추진 중이다. 더없이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청년들이 정말 행복하려면 그들이 원하는 다양한 청년문화 기반도 만들어야 한다. 라이브클럽을 하나의 청년문화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불순하게만 보는 꼰대 시각은 거뒀으면 한다.

그리고 대구의 보수성에 숨막혀 하면서도 사랑하는 대구를 위해 자신의 젊음을 바쳤던 아름다운 청년 배두호의 명복을 빈다. 젊은 대구 잠 깨어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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