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지식지능형 청년기록가를 양성하자

유경상 (사)경북기록문화연구원 이사장

유경상 유경상

'시경'(詩經)은 유교의 기본 경전인 사서삼경(四書三經) 중 하나로 고대 중국 시대의 시가(詩歌)를 모아 엮은 책이다. 3천여 편 중 공자가 편집해 300여 편이 보존됐다고 한다.

이 중 150편을 '풍'(風)이라 칭하는데, 황하 유역 15개 제후국에서 불리던 노래를 채집한 것으로 알려진다. 채시관(采詩官)들이 마을에 들어가 목탁을 두드리며 수집한 민요다.

백성들의 노래엔 전쟁터에 끌려간 고통과 가혹한 부역, 억압에 시달렸던 고달픈 삶이 담겨 있었다. 당시 사람들의 보편적인 삶의 정서와 생활을 담아냈기에 이 시집은 수천 년간 경전으로 거듭 읽혔을 것이다.

필자가 몇 년간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채집'과 '수집'이라는 목적의식적인 활동이다. 백성들은 노래와 이야기를 구술했고 채시관들은 이를 받아 적는 기록 행위를 통해 문자로 남겼다는 점이다.

근대화 이후 기억과 기록은 더 다양한 형태의 정보로 가공되고 있다. 단지 정보를 생산하는 도구가 필사에서 인쇄, 사진, 영상, 인터넷으로 확장되었을 뿐이다.

우리 민족이 걸어온 근현대 100여 년은 파란만장했고 성취 또한 대단했다. 그만큼 지역 공간에서 삶을 영위해 온 주민들은 풍부한 기록물을 생산했다.

그러나 사진·서지(문서류)·영상·음원 등 다양한 원천자료가 흩어진 채 사라지고 있고, 이를 설명해 줄 기억은 소멸 중이다.

척박한 생활환경 속에서 생산한 기록물이 더 값진 유산이고 더 소중한 기억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울 중심의 중앙단위 기록물만 중요하다고 세뇌당해 왔다.

공동체의 혼이 담긴 민간기록물은 아직도 하찮게 취급되고 있으며 수집과 보존, 나아가 지역 가치와 자산으로 전환시키려는 상상력에는 무감각하다.

안타까운 마음에 2016년 경북기록문화연구원을 결성해 근현대 시기 경북도민의 기록물을 수집하고 보존, 재정립하는 것이야말로 공동체의 정체성을 재확립하고 지역적 삶을 재발견할 수 있다고 설파해 왔다.

4년 동안 지역과 주민 속으로 들어가 보니 그곳은 기록과 자취, 기억이 가득한 보물창고였다. 은빛세대를 만나 그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지역과 사람을 재발견할 수 있었고, 유산과 기억이 담긴 기록물을 수집하게 되었다.

기록과 자취, 기억이 스며 있는 생활 현장이야말로 깊이 있는 문화와 풍부한 지식이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동시에 지방소멸을 극복할 지혜가 묻혀 있었고 미래의 자산으로 재창출해 낼 기록·기억 콘텐츠도 엿볼 수 있었다.

늦었지만 하루빨리 '채집'과 '수집'의 현대적 적용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문제는 힘 있는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지역은 쇠퇴하고 있고 은빛세대는 기억을 고증해 줄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 청년들은 중앙의 화려한 불빛을 좇아 지역을 떠나고 있다.

민간의 풍부한 기록과 기억을 매개로 삼고, 디지털 청년세대와 구술자 은빛세대의 접점을 통해 청년기록문화일자리를 창출해낼 수는 없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고 있다.

청년아키비스트를 양성해 지역과 삶의 현장으로 파견하고, 현장에 능숙한 지식지능형 청년일자리로 전환해낸다면 양질의 문화콘텐츠 구축은 물론이고 명랑한 지역사회 건설에 일익을 담당할 수 있다.

청년아키비스트들이 지역사회에 잠재돼 있는 민간 기록유산을 모으고 갈고닦는다면 경북형 청년기록문화 일자리 모델도 가능할 것이다. 지나온 30년, 50년, 100년의 지역사와 지역적 삶을 얼마나 잘 기록하고 알고 있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바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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