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통찰력은 작은 것을 크게 사랑할 때 탄생한다

 

벌레가 꼬인 가로수 등을 보니 아프리카 아이들이 생각났다. 아이들은 모기장이 없어서 말라리아라는 병에 노출되어 있다. 빅아이디어연구소 벌레가 꼬인 가로수 등을 보니 아프리카 아이들이 생각났다. 아이들은 모기장이 없어서 말라리아라는 병에 노출되어 있다. 빅아이디어연구소

통찰력(insight)라는 단어는 정말 매력적이다. in이라는 접두어는 '안'을 의미한다. sight는 보는 것이다. 즉, 인사이트는 안을 보는 것이다. 참 오묘한 단어이다. 밖에서 안을 어찌 꿰뚫어 본다는 말인가.

예쁘게 포장된 선물이 있다고 치자. 하지만 그 속에 보석이 있을지 똥이 있을지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인사이트라는 단어는 매력적이다. 광고인이 가장 갖고 싶어 하는 능력 중 하나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볼까? 이제 겨우 40대인 내가 인사이트에 대해 얘기한다는 게 조금 낯간지럽기도 하다. 하지만 강연을 다닐 때마다 이런 질문을 늘 받으니 아는 만큼 설명해 드리고 싶다.

인사이트는 작은 것을 크게 사랑할 때 얻을 수 있다. 성경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사실 말이 좋지, 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 혼자 먹고살기에도 빠듯한 세상에 무슨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한단 말인가.

하지만 가장 지키기 힘든 끝판왕 격인 구절이 등장한다. "원수를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는 것까지는 힘드니 우리 이웃을 사랑하는 선에서 합의를 보자.

어느 여름날, 예비군 훈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가로등에 벌레, 파리, 모기들이 엄청나게 꼬여 있었다. 여름철 흔히 볼 수 있는 가로등의 모습이었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게 가로등이어서 그렇지. 사람 같았으면 엄청 힘들겠다'라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이게 웬걸, 실제로 그런 사람들을 뉴스에서 본 적이 있다. 바로 지구 정반대편의 아프리카 아이들. 어릴 적 TV에서 본 그 친구들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얼굴에는 파리가 들끓었고, 몸에는 벌레가 붙어 있었다. 가로수 등을 보며 그 이미지가 겹쳐 보였다. 동시에 번쩍하고 이미지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그래 이거다. 가로수 등에 아프리카 아이 얼굴만 붙여두자. 스티커 한 장으로 공익 광고가 될 수 있겠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얻고 싶다면 지금 당장 사랑을 시작하라. 픽사베이 제공 기발한 아이디어를 얻고 싶다면 지금 당장 사랑을 시작하라. 픽사베이 제공

하지만 메시지가 관건이었다. 밤에 벌레들이 꼬인 얼굴이 된다 해도 광고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의미 정박이 필요했다. 벌레가 꼬인다는 건 단순히 불편한 문제가 아니다. 말라리아라는 병이 벌레 물림으로 감염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아프리카에서는 말라리아가 유행이다. 모기장을 기부해달라는 메시지는 어떨까? 고민했다. 모기장을 받을 수 있다면 자는 순간에라도 편히 잘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말라리아라는 병에서도 한발 물러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냥 널빤지에 모기장을 기부해달란 카피를 쓰기엔 뭔가 심심했다. 낮엔 보이지 않는 카피지만 밤에 그 카피가 노출된다면 재밌을 것 같았다.

아프리카 아이 스티커가 붙어 있는 등의 아랫부분에 카피를 거꾸로 붙였다. 이렇게 되면 낮에 카피가 보이지 않는다. (가로수 등 뒤에 감춰져 있으므로) 그리고 가로수 폴대에 널빤지를 붙여뒀다. 이렇게 되면 밤에 불이 들어왔을 때 카피가 널빤지에 비치게 된다. 거꾸로 붙여둔 글이니 반사되면 그대로 보인다. 결국, 거꾸로 써둔 donate mosquito net(모기장을 기부해주세요)이라는 카피가 제대로 보였다. 나는 광고에 이런 장치들을 숨겨두었다. 낮엔 사람들이 이 광고를 당연히 지나쳤다. 아무런 메시지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밤엔 사람들의 시선을 확 끄는 광고가 되었다. 스티커와 벌레가 자연스럽게 조화되어 임팩트를 줬기 때문이다. 나는 광고에서 이런 점을 꼬집고 싶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무관심한 사람들. 눈에 보여야 비로소 이타심을 갖는 사람들의 이중성을 꼬집고 싶었다.

슬프게도 나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로 살았다. 하지만 이런 공익 광고를 만들었으니 조금 양심의 가책을 던 것 같다. 내가 어릴 적 뉴스에서 봤던 아프리카 아이들의 모습에 충격받지 않았더라면, 이런 광고를 만들 수 있었을까? 내게 그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조금은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는 그 사랑이 이런 아이디어를 만나게 했다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능력, 인사이트는 그렇게 작은 것도 크게 사랑할 수 있을 때 탄생한다.

광고로 이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 또 다른 아이디어를 찾고 싶다. 픽사베이 제공 광고로 이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 또 다른 아이디어를 찾고 싶다. 픽사베이 제공
김종섭 위원 김종섭 위원

㈜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

'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

광고를 보는 건 3초이지만 광고인은 3초를 위해 3개월을 준비한다.

광고판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를 연재한다

 

 

 

 

 

 

 

 

㈜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

'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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