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예술의 기억] 카잘스와 번스타인이 응원한 대구

임언미 대구문화 편집장 임언미 대구문화 편집장

'대구교향악단 창단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이 단체는 한국에 있는 음악가들, 음악 애호가들을 비롯해 일반 사람들 모두에게 행복과 문화적 충만함을 가져다 줄 것으로 확신한다. 음악은 시대를 가리지 않고 어디에서나 소통되는 신비로운 언어이며, 모든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는 신의 선물임을 믿는다.'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1876~1973)가 대구방송교향악단(대구시향의 전신) 창단 연주회를 축하하며 보낸 편지의 일부다. 1963년 2월 28일, 대구시향 창단을 한 해 앞둔 때였다. 1960년대 초반, 6·25전쟁이 끝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았던 시기에 교향악단이 창단되고, 세계적인 음악가가 축하 편지까지 보냈다. 도대체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기홍(1926~2018) 지휘자를 비롯한 음악가들은 6·25전쟁 직후부터 교향악 운동에 뛰어들었다. 음악으로 사회를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1957년 대구현악회를 창단하고 뒤이어 대구교향악단, 대구관현악단 등으로 변모시켰지만, 항상 자금난에 허덕여야 했다. 안정적으로 공연할 수 있는 단체로 자리 잡게 하려면 사람들의 관심을 더 모아야 했다. 우선 대구방송국(KBS대구방송의 전신) 사장을 설득해 후원을 받는 데는 성공했지만, 더 노력해야 했다. 이들이 생각한 방법은 세계적인 음악가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우편 상황이 좋았을 리 없는데도 세계 무대에 이름난 음악가들의 연락처를 일일이 찾아 대구방송교향악단 창단 소식을 알렸다. 음악에 대한 열정만으로 뭉친 이들의 진심이 국경을 넘어서도 통했던 것일까. '그들'이 일제히 회답해왔다. 명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 피에르 몽퇴, 유진 오르만디, 스토코프스키, 피아니스트 루빈스타인, 첼리스트 카잘스 등이 그들이다. 대부분의 음악가들이 짧은 축하 전보를 보내왔지만, 카잘스는 특별히 한 장 분량의 편지를 친필 사인까지 해서 보냈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80대 후반의 첼리스트가 아시아의 작은 나라, 작은 도시의 오케스트라 창단 소식에 상당한 분량의 편지를 보낸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도 공연 날짜에 맞춰서 편지가 도착하지 못할 것을 걱정하는 문구까지 덧붙여서 말이다. 살펴보면 카잘스의 이름 앞에는 항상 '휴머니즘'이라는 수식어가 따른다. 카잘스의 조국은 에스파냐 왕정의 통치 아래 있었지만, 고유한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부단히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카탈루냐다. 약소민족의 일원으로서 치열하게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삶을 온몸으로 겪은 카잘스에게, 일제강점기를 거쳐 6·25전쟁과 남북 분단이라는 현실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던 한국의 음악가들이 보낸 SOS는 특별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카잘스의 편지는 대구방송교향악단 창단 연주회가 끝나고 한 달가량 뒤에야 도착했지만, 그 편지를 받은 대구 음악가들은 자신들의 선택에 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전쟁의 상처, 그리고 한국사회가 처한 현실의 여러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 음악의 힘, 예술의 힘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믿음 말이다.

이기홍 지휘자는 생전에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세상의 모든 일은 하루아침에 변하는 게 아니다. 숙원이 이루어져야만 그 가치가 높다. 현재 대구의 음악계는 교향악 운동을 하면서 오로지 음악 발전을 위해 헌신한 수많은 음악인들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 이는 특정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 지휘자는 어려운 시기 자신들을 응원해준 예술가들의 메시지들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의 서재 깊숙이 들어있던 그들의 편지가 얼마 전,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의 가족이 유품 중 일부를 대구시에 기증했기 때문이다. '모두를 위한' 예술에 평생을 바친 선생의 뜻을 기리는 방법을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예술가는 특별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특별한 감수성과 지각력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도 예술가의 목소리는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카잘스의 말처럼, 이기홍 선생을 비롯한 이 땅의 예술가들은 보다 '특별한 책임감'을 가지고 생을 살아오신 것 같다. 이제 우리는 그 정신을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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