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1950·1960년대의 추상미술과 세대교체

박민영 대구미술관 교육팀장

박민영 대구미술관 교육팀장 박민영 대구미술관 교육팀장

1950년대 이후 대구의 추상화가들은 꽤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1950년대는 전후 새로운 형식을 추구하던 이들을 중심으로 세대가 교체되고 있었고, 그들은 단체 결성을 통해 화단에 존재감을 과시하였다. 1955년에는 정점식을 중심으로 장석수, 신석필, 강우문 등이 함께 '대구미술가협회'를 창립하였고, 다시 1957년에는 정점식이 새롭게 작가들을 규합하여 '경북미술협회'를 창립하였다. 특히 '대구미술가협회'는 전쟁에도 사회와 무관하게 이어진 자연주의 미술을 비판하였는데, 창립문에 '변동하는 사회나 이체(弛體)되어 가는 일단의 인간'을 두고도 회피하는 '쇄말(瑣末)적인 묘사'에 대한 반성을 주장하였다. 또한 이들 중 정점식, 장석수, 박광호, 신석필, 정준용 등은 1950년대 말 당대 한국의 전위적 미술을 집대성한 조선일보현대작가초대전(1957년 창립)에도 수차례 참여하면서 중앙화단에 이름을 알렸다.

전후 아직 안정되지 않았던 한국 사회에 또 다른 큰 변화를 일으킨 사건은 1960년 4·19혁명이다. 부정하게 권력을 연장하려던 세력에 반발했던 민주화운동으로 이때 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희생되었다. 그런데 권력화된 것은 정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독재에 저항했던 것처럼 아카데미적인 경향을 고집하던 대한민국미술대전(이하 국전)에 대해 젊은 작가들은 그들만의 방법으로 저항하였다. 서울대에 재학 중이던 김익수, 김정현, 김형대, 박상은, 박병욱, 박홍도, 유병수, 유황, 이동진, 이정수, 이영륭 등이 참여한, 1960년부터 1964년까지 열린 '벽(壁)전'은 덕수궁 벽에 작품을 거는 방법으로 국전의 구태의연함을 일갈하였다. 전시에서는 철망, 콜타르와 같은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재료가 등장하였고, 현실의 돌파구를 찾는 듯 한 앵포르멜 형식의 평면과 설치, 오브제, 액션을 작품에서 보여주었다. 특히 '벽전'에 참여한 이영륭, 이동진, 유병수, 유황, 김익수 등은 대구에 정착해 대학에 재직하면서 대구 화단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1960년대에는 대구 화단에도 앵포르멜의 영향이 컸는데, 1950년대와는 또 다른 신진들이 집단화된 목소리를 내었다. 1963년 열린 '앙그리전'에는 당시 앵포르멜 경향에 영향 받은 소장교사, 룸펜, 군인 등 다양한 이력의 작가 김진태, 김구림, 김인숙, 정도화, 이정혜, 정주호(정일), 이륭(이영륭), 마영자, 권영호, 박병용, 박휘락, 박곤, 박설 등이 참여하였다. 단체명 '앙그리'는 영국의 전후 저항정신을 담은 문학운동 '앵그리 영 맨'에서 착안한 이름이라 한다. 이들은 '무서운 인간의 고독이 벽을 부수는 허무한 고독', ' 링케리의 사막에서의 폭음'과 같은 문학적 서사의 선언문을 통해 생동하는 생명의 갈구와 변화를 촉구하였다. 그들의 작품은 추상이 주를 이루었고, 표현에서는 흘리고 찢거나 우연성이 혼재된 기법을 보여주었다. 또한 저항적 패기가 넘쳤던 그들은 작품을 제목 없이 전시하였는데, 화면에 구현된 대상을 감상하는 것이 아닌, 그 자체로 사유하는 대상으로 작품의 위상 변화를 시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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