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위안부 문제는 정쟁 대상이 아니다

­노동일 경희대 교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후원금 사용이 불투명하다며 폭로하면서 이 할머니와 정의연 측의 진실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11일 오후 대구 2·28기념중앙공원 앞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모습.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후원금 사용이 불투명하다며 폭로하면서 이 할머니와 정의연 측의 진실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11일 오후 대구 2·28기념중앙공원 앞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모습.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노동일 경희대교수 노동일 경희대교수

"고무신이 벗겨진 채 소녀는 끌려갔네/ 부를수록 집은 멀고 총칼은 목에 닿고/ 악문 채 몸을 봉해도 군홧발에 녹아갔네/ 총을 물고 울었건만 목숨은 욕(辱)을 넘어/ 헐은 몸 닦고 닦아 옛집 앞에 섰건만/ 코 베인 고무신처럼 생이 자꾸 벗겨지네."(정수자, '슬픈 고무신')

시에서처럼 '고무신이 벗겨진 채 끌려간 소녀'였던 위안부 할머니들이 이제는 편안한 여생을 보내시는 줄 알았다. '정의연'(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주최 수요 시위 덕분에 위안부 문제는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지지 않고 있다. 많은 시민들이 후원금 등을 통해 그분들에 대한 마음의 빚을 갚곤 한다. 하지만 최근 불거진 이용수 할머니의 증언은 피해 할머니들이 여전히 마음고생을 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코 베인 고무신처럼 생이 자꾸 벗겨지는' 경험이 아닐까 싶다.

정의연 관련 이용수 할머니의 분노는 크게 두 가지다. 후원금 사용과 지금까지 정의연의 운동 방식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요구이다. 우선 회계 문제에 대한 여러 지적은 정의연이 귀담아들어야 한다. 정의연은 '공익'재단법인이기 때문이다. 법에 따라 정의연은 기부금과 국고보조금을 받고 세금 혜택이 부여된다. 대신 모든 활동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주무관청의 엄격한 감독을 받아야 한다. 공개된 기록만 보아도 회계 기준에 비추어 엉성하고 투명하지 않은 돈의 쓰임새가 드러난다.

이런 상황을 방치한 국가인권위원회와 세무 당국의 감독과 함께 정의연은 외부 감사 등을 통해 의혹에 대해 성실하게 해명해야 할 도덕적·법률적 의무가 있다. 책임질 일이 있다면 합당한 책임을 지는 게 정의연 활동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회계에 대한 비판이 그간 정의연의 활동과 성취를 부인하는 게 아님은 당연하다. 따라서 '친일파' '보수세력' 운운하는 여권 일각의 대응은 어처구니없다. 생뚱맞은 프레임 전환 시도는 의구심을 키우는 일이다.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당선인의 개인적 의혹을 여권이 정쟁으로 확대하는 것은 문제 해결을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권력형 비리 등 야당이 거들어야 할 사안도 아니다.

정치권은 오히려 이용수 할머니의 다른 지적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정의연 활동 방식에 대한 재검토가 그것이다. 이 할머니는 "학생들에게 증오만 키우는" 수요 시위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용당할 만큼 당하고 참을 만큼 참았다는 이 할머니의 증언에서는 피해자들의 진정한 의견이 배제된 활동가 중심의 운동에 대한 서운함이 드러난다. 그간 위안부 관련 활동을 해 온 여러 인사들이 국회와 행정부 요직에 진출한 바 있다. 윤 당선인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국회의원이 되면 안 된다는 이 할머니의 발언은 그간 많은 이들이 위안부 문제를 출세(?)의 관문으로 삼아온 데 대한 피해 의식의 발로라 생각된다. 이른바 피해자 중심주의와는 거리가 먼 정의연 활동에 대한 반성과 방향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할머니의 발언처럼 위안부 관련 운동이 미래지향적이 되려면 실질적 문제 해결 능력을 가진 정치권이 나서야 한다.

2011년 헌법재판소는 위안부 문제 등의 외교적 해결책을 모색하지 않는 정부의 부작위가 위헌이라고 결정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이강국 재판관 등은 반대의견을 남겼다. "일본에 의하여 강제로 위안부로 동원된 후 인간으로서의 삶을 송두리째 박탈당하고 그 가해자인 일본국으로부터 인간적 사과마저 얻어내지 못하고 있는 이 사건 청구인들의 절박한 심정을 생각한다면…어떻게든 우리 정부가 국가적 노력을 다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우리 모두 간절하다…청구인들이 처해 있는 기본권 구제의 중요성, 절박성을 해결할 수 있는 법적 수단을 헌법이나 법령, 기타 헌법적 법리에 의하여도 발견해 낼 수 없다면, 결국 이들의 법적 지위를 해결하는 문제는 정치권력에 맡겨져 있다…."

친일·반일 논쟁을 떠나 정치권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개원도 하기 전에 정쟁부터 시작하는 21대 국회라면 그 전도는 보나 마나다. 여야는 정치적 드잡이를 그치고 위안부 할머니들 생전에 발에 꼭 맞는 고무신을 신겨드리는 일부터 시작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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