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둘레] 그날이 오면

백옥경 구미과학관 관장 백옥경 구미과학관 관장

남편은 산에 가는 걸 내켜 하지 않았다. 직장 근처 뒷산에 올랐다가 멧돼지를 봤기 때문이다. 당시 앞서 가던 사람들이 혼비백산을 하며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그 너머를 보니 멧돼지가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고 한다. 삼십육계 줄행랑을 쳤지만 그 후론 산에 가는 걸 두려워한다. 부모님 기일에 함께 산소에 가려던 계획은 난관을 맞게 되었다. 말을 꺼낸 사람도 마음이 편치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두려움은 전염되고 있었다.

요즘 도시 주변의 산뿐 아니라 도심 내 야산과 주택가로까지 멧돼지가 내려와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한 번이라도 멧돼지와 맞닥뜨려본 사람이라면 그에 대한 불안은 공포감 수준일 것이다. 그런데 멧돼지가 인간의 영역에 출몰하는 것이 멧돼지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활동해야 할 공간에 인간이 나타나는 것이라 느낄 것 같다. 사실 그들의 천적인 호랑이가 사라지고 그들이 야생의 최상위 포식자가 되어 늘어난 개체 수를 감당 못해 서식지를 배회하는 상황이 된 것은 우리가 그들의 오랜 터전을 밀고 깎은 탓이 크다.

멧돼지를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남편은 멧돼지 사냥을 많이 해본 마을 분께 조언을 구했다. 남편이 준비한 건 깡통에 넣은 쇠 수저였다. 흔들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 멧돼지가 겁을 먹고 나타지 않을 거라 했다. 멧돼지는 시각보다는 청각과 후각이 뛰어나니 멀리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면 숨어서 가만히 있을 테고 소리 나는 쪽으로 불쑥 나타나는 불상사는 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불안감은 상상 속 멧돼지 출몰에 대한 두려움과 통하는 듯하다. 두려움을 잠재울 수단이 필요한 것도 그렇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사스, 메르스와 더불어 박쥐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박쥐라면 언젠가 깊은 계곡에 있는 펜션에 놀러갔다 가슴을 쓸어내리게 만든 주범이다. 무척이나 큰 거실이었다. 마룻바닥에 이불을 깔고 막 잠이 들려는 순간 무언가 이쪽에서 저쪽으로 휙휙 날아다니는 게 느껴졌다. 비행 속도며 낮게 나는 고도가 예사롭지 않았다. 불을 켜자 재빨리 어디론가 사라진 범인은 박쥐였다. 모처럼 만의 나들이가 난리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불을 켜 놓은 채 잠을 설친 다음 날 혹시나 하여 거실에 걸린 커다란 액자 뒤편을 들춰보니 세상에. 그곳에 네댓 마리의 박쥐가 들어있었다.

박쥐는 개발로 인한 서식지 파괴로 먹이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인간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바이러스 창고로 불리는 그들 몸속에 있는 많은 종류의 바이러스는 유전물질 간 재조합으로 변이를 일으켜 새로운 바이러스 종을 만들고 포유류와의 접촉을 통해 그것을 쏟아놓는다. 서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치사율 60%의 끔찍한 에볼라 바이러스도 종간 장벽을 뛰어넘은 신종 바이러스다. 그 또한 야생박쥐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과일박쥐는 번식기 동안 엄청난 양의 과일을 먹는다고 한다. 그들은 소화되지 않은 과일을 뱉어 바이러스를 노출시키고 원숭이들과 먹이 다툼을 벌이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원숭이를 감염시키고 바이러스에 걸린 원숭이는 다시 침팬지를, 그리고 침팬지는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인간에게 에볼라 바이러스를 옮겼을 거라 추정하고 있다. 벌목과 개발로 인한 산림 황폐는 먹이를 찾아 헤매는 야생동물과 사람과의 잦은 접촉을 가져오고 생명의 위협을 증가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몹쓸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외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인간의 DNA는 약 8%가 바이러스 DNA에서 유래했다. 또한 우리 몸속에는 조(兆) 단위의 바이러스가 들어있다. 그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와 함께 진화했으며 우리 몸속에서 유익하거나 해로운 다른 균류, 세균들과 공생하며 미생물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우리 몸속의 미생물군 또한 어느 한 종의 숫자가 급증하거나 잘못된 장소에 있으면 우리에게 해를 끼친다. 외부환경뿐 아니라 우리 몸 내부에서도 생태계 다양성과 균형이 필요한 것이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밝은 햇살이 비추는 평화로운 정경이었다. 발걸음은 날아갈 듯 가벼워지고 우리는 어느덧 두려움과 일상의 경계선을 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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