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기억을 걷다

이응규 EG 뮤지컬 컴퍼니 대표

이응규 EG 뮤지컬 컴퍼니 대표 이응규 EG 뮤지컬 컴퍼니 대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기억을 걷다'는 인생의 중요한 가치를 다시금 깨닫게 하는 작품으로, 먼 미래의 달콤함을 위해 현재의 소중함을 망각하며 살아가는 어리석은 현대인들을 꼬집는 작품이다. 귀국 후 야심 차게 준비해 온 이 작품은 이미 지난해 공모전에서 쓰디쓴 실패를 맛보았었다. 하지만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청년은 1년을 기다려 다시 도전 했고 그 결과 창작 지원작에 선정되어 마침내 2017 어워즈에서 후보로 오를 수 있는 영애를 얻게 되었다.

시상식장에 참석한 청년은 동료들과 함께 자리에 나란히 앉아있다. 수많은 뮤지컬 스타들과 관객들이 참석한 가운데 무대 위 LED 화면을 통해 노미네이트 작품들이 하나씩 소개되고 있다. 청년은 초조한 마음으로 발을 동동 구르는 가운데 선정작을 발표하는 팀파니 소리가 극장을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 짧은 찰나의 순간, 청년은 유학시절 일어난 그의 강렬했던 기억 속 블랙홀로 빨려 들어갔다.

"도와줘!!"

친구의 다급한 목소리에 놀라 잠에서 벌떡 깨어나 보니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요 며칠 뉴욕으로 오고 싶다고 주야장천 연락을 해오던 한국 친구의 전화번호다. 뉴욕대 졸업 논문 발표를 코앞에 앞두고 있던 청년은 자신을 만나러 뉴욕으로 온다는 친구의 요청을 한사코 거절해왔다. 잠자는 것조차 아까운 이 시간에 한국에서 온 친구를 데리고 센트럴파크를 걷는다는 건 사치였다.

"말했듯이 너무 바쁘니깐…" 그런데 소화기 넘어 낯선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친구분이 2015년 2월 15일 오후 10시에 사망하셨습니다…"

청년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믿기 어려운 소식에 멍한 눈으로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봤다. 뉴욕은 15일 밤 10시가 아닌, 14일 오전 8시를 지나고 있었다. 어쩌면 14시간 안에 한국에 도착할 수 있는 제트기가 있다면 지금 당장 한국으로 날아가 친구를 살릴 수 있지 않을까?

"2017년 창작뮤지컬상은…"

팀파니 소리가 정점을 향해 치닫고 마침내 수상 작품의 제목이 발표되었다.

'실패!'

결과를 인지한 찰나 블랙홀에서 빠져나온 청년은 수상의 실패에 대한 큰 상실감에 숨을 쉴 수 없었다. 작품의 성공만을 바라보며 수년간 경주마처럼 달려온 지난 세월이 야속하기만 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도움을 요청하던 친구마저 차갑게 외면했던 유학시절의 기억들, 보이지 않을 달콤한 미래를 위해 지금의 행복을 사치라고 생각했던 지난 시절. 그렇게 기억을 걷다 보니 뮤지컬 '기억을 걷다'에서 던지는 메시지가 이제야 비로소 청년 자신에게 하는 말임을 깨닫게 되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동료들이 그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현재 주어진 이 모든 것에 감사해야 함을 결심한 순간 상실감이 기회로 바뀜을 느낄 수 있었다. 청년은 동료들을 향해 외친다.

"다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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