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절망의 늪, 희망의 늪

노동일 경희대 교수

노동일 경희대 교수 노동일 경희대 교수

제 밥값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은

절망의 늪이 아닌 희망이 가득한 늪

대구여! 경북이여! 대한민국이여!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힘을 냅시다!

'밥값'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밥을 먹는 데 드는 값'이 본디 뜻이겠지만 '밥을 먹은 만큼의 일이나 대가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더 많이 쓰입니다. 밥값을 해라. 밥값 좀 했다. 밥값을 하고 있다. 내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말입니다. 말 그대로 밥값은 하며 사는지 묻는 것이지요. 강의 등으로 쳇바퀴 도는 일상에서는 내가 선생으로서 밥값 하며 살고 있는지 느끼기 쉽지 않습니다. 마음이 많이 힘들었는데 나 덕분에 용기를 얻어 학교를 마칠 수 있었다는 학생의 고백을 들을 때 그래도 밥값을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늘 따분하지만 아주 드문 이런 경험을 통해 그나마 밥값과 삶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겠지요.

"어머니/ 아무래도 제가 지옥에 한번 다녀오겠습니다/ …너무 염려하지는 마세요/ 지옥도 사람 사는 곳이겠지요/ 지금이라도 밥값을 하러 지옥에 가면/ 비로소 제가 인간이 될 수 있을 겁니다."(정호승, '밥값') 시인은 밥값을 하기 위해 지옥에 다녀와야겠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지옥은 종교와는 관계 없는 인생의 바닥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진정한 인간으로서의 나를 한번 성찰해 보기 위해서는 인생의 바닥에 다시 가봐야 한다는 게 시인의 생각입니다.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어 보이는 절망의 늪이 곧 바닥이요 지옥일 것입니다.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마찬가지겠지요.

작금의 코로나19 사태는 우리에게 바닥이요 지옥입니다. 누가 원해서 이런 바닥에 이르렀겠습니까. 시인의 비유처럼 아무리 '밥값'하는 사람이 된다 해도 일부러 경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특히 대구경북 주민들에게는 정말 날벼락이지요. 외환위기와 같이 모든 국민이 겪는 위기라면 다를 수 있습니다. 대구경북 지역과 주민들에게만 유독 가혹한 시련은 더 견디기 힘듭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이런 바닥의 경험을 통해 더욱 성숙한 사람들로 거듭난 전력이 있습니다. 외환위기를 함께 극복해낸 경험이 그것입니다. 상식적으로는 감추기 바빠야 할 금붙이를 꺼내든 대한민국 국민들을 보고 외국인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태안 기름 유출 사고 때도 그랬습니다. 시커먼 기름에 전 바위를 맨손으로 닦아내다니. 미친 거 아닌가라는 게 외부 관찰자들의 솔직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전국에서 달려온 수많은 국민이 함께 자갈과 바위의 기름을 닦아낸 태안은 놀랄 만큼 빠르게 자연을 회복했습니다. 대구도 그럴 것입니다. "대구에는 공황도, 폭동도, 혐오도 없다. 고요함만 있다." 대구가 조용한 가운데 코로나19 종식을 선언하는 날, "대구가 코로나19 극복 모델이 될 것"이라는 외신의 관측은 과장이 아닙니다. 이제 바이러스와의 공존은 인류의 일상이 될 것입니다. 그때 대구는 집단적 인생의 바닥을 경험한 시민들 모두가 밥값을 해내는 지역의 모델이 될 것입니다.

의료진과 공직자들의 헌신 역시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나는 인류에 봉사하는데 내 일생을 바칠 것을 엄숙히 맹세한다…."(히포크라테스 선서). "…나는 성심으로 보건의료인과 협조하겠으며, 나의 간호를 받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하여 헌신하겠습니다."(나이팅게일 선서). 의료진이 멘 십자가는 피하려 했으면 피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순간순간 감염의 위험을 느끼며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는 전신 방호복을 그들은 기꺼이 입었습니다. 인류에 대한 봉사와 헌신이라는 숭고한 첫 맹세를 지키고 있는 것이지요. 생명을 구했다는 보람, 밥값을 제대로 했다는 충만함은 결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의료인이 된 것은 바로 '이때를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다시 시인의 말입니다. "지금부터/ 절망의 늪에 빠졌다고 말하지 않겠다/ 남은 시간이/ 한 시간도 채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희망의 늪에 빠졌다고 말하겠다…만일 절망의 늪이 있다면/ 희망에도 늪이 있다/ 희망의 늪에는/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 가득 빠져 있다."(정호승, '늪'). 아무리 어둡고 힘들어도 절망의 늪이라고 하지 맙시다. 모두가 제 밥값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은 희망의 늪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사람들이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대구여! 경북이여! 대한민국이여! 힘을 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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