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목의 아침놀] '뒤돌아보는' 힘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바깥 출입을 자제하고 외부와 격리되는 요즘, 빈둥거리며 자신을 '뒤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서 좋다. 보들레르의 말처럼 "마침내! 혼자가 되었군!…이제 나는 어둠의 늪 속에서 휴식할 수 있게 되었다! 먼저 자물쇠를 이중으로 잠그자…인면(人面)의 폭력은 사라지고…나를 외부로부터 격리시키는 바리케이드가 더욱 단단해지는" '새벽 1시'의 고요도 누릴 수 있다.

안팎으로 얽힌 번뇌를 항복받는(降伏其心) 그 시간, 상처 주는 언어나 싫어지는 얼굴들과 아득히 멀어진 지점에, 내 생각의 거처가 마련된다. 읽지 못했던 책장이 넘어가고 먼 곳의 강물이 가만 다가와 뒤척인다. 예전에 갈피갈피 휘갈겨뒀던 허접한 낙서나 그림들이 눈동자에 머무는 동안 잊고 살았던 '뒤돌아보는' 힘이 솟구친다.

류시화는 "새는 날아가면서/뒤돌아보는 법이 없다/ 고개를 꺾고 뒤돌아보는 새는/ 이미 죽은 새다"라고 하였으나, 글쎄, 사람 사는 곳이 꼭 그렇기만 하랴. "그대 슬픈 눈에 어리는 이슬처럼 맑은 영혼이/ 내 가슴에 스며들어와…"로 시작하는 조용필의 '슬픈 베아트리체'를 들으면 엘리사베타 시라니가 그린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화가 떠오른다. 애비를 잘못 만나 성폭력과 맞서다 의연히 사라지는 여인. 그녀는 단두대에 오르기 전 힐끗 뒤돌아본다. 그 슬픈 눈동자를 잊긴 어렵다. 쿨하게 앞만 보고 갈 순 없고, 이쪽에 더 남아 있고 싶은 미련을 어쩌겠는가.

'뒤돌아보는' 모습은 베아트리체에 그치지 않는다. 머리에 청금색 터번을 두른, 헤이그 마우리츠호이스의 베르메르 작 '진주 귀고리의 소녀'도 있다. 네덜란드(북유럽)의 모나리자로 불리는 이 그림을 나는 좋아한다. 짙푸른 바다색을 이고 '뒤돌아보는' 눈동자에서 인간다움의 희망을 느껴서이다. 돌아섰다가 다시 '뒤돌아보는' 이중성에서도 그렇다.

윤동주의 시 '자화상'은 인간으로 사는 애증과 연민을 잘 담고 있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 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처럼, 한 마음에 두 생각이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차라리 돌아갈까' 하며, 미망을 떠돈다. "돌담길 돌아서며 또 한 번 보고/ 징검다리 건너갈 때 뒤돌아보"는 게 인간의 맨 얼굴 아닌가. 자꾸 '뒤돌아보며' 살아도 괜찮다.

이렇게 문득 '뒤돌아보는' 마음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과 타자를 향한 애증이 아닐까. 눈은 전면을 응시하고 바깥만을 증거 삼는다. 눈을 감아야만 내면의 문이 열리고 그 심연에 다가설 수 있다. 뒤돌아볼 '고'(顧)자에는, 봄에 강남 갔던 제비가 되돌아오듯이 '뒤돌아보는' 생명을 보살피는 마음씨가 들어 있다. 교토의 절 에이칸도(永觀堂)에는, 자신을 뒤따라오지 않을까 걱정하며 '뒤돌아보는 아미타불'이 있다. 물론 '절대 뒤돌아보지 마라, 그랬다간 망해!'라며 경고하는 그리스나 아시아의 신화, 설화도 있다.

이렇듯 삶은 뒤돌아봄의 은유로 가득하다. 십자가에 못 박혀, 오랜 수모와 박해의 삶을 마감하고 죽음으로써 천상의 하느님 그 영광의 시간으로 진입하던 예수는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했다. 누군가가 남을 위하여 죽어야만 하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측면에서 예수는 모든 것을 성취했고 하느님의 등 돌림을 전적으로 수긍했을 터다. 그래서 지상을 뒤돌아보고 싶은 미련은 없었겠으나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인간적 현실 긍정마저 아예 포기한 것은 아닐 것이다.

뒤돌아봄은, 자신에겐 이성적 성찰과 회고의 눈짓이고, 타인에겐 감성적 구원과 배려의 손짓이다. 잘 산다는 것은 물질적 풍요만이 아닌 사유의 수준까지 포함한다. 앞만 보고 달려온, 상처 많은 우리 사회가 점점 흉흉해지고 있다. 우한발 신종코로나바이러스로 발이 묶이는 이때 '뒤돌아보는' 자아 성찰과 타자 배려의 이중 면역체계로 건강해졌으면 좋겠다.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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