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세상 읽기] '없는' 일자리 '있는' 그림자 노동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아르바이트생 비중이 매장 직원의 90%를 넘는 패스트푸드 업체들이 '무인기계 고용'을 확대하고 있다. 대구시내 한 KFC 매장에 설치된 무인주문기인 디지털 키오스크 앞에서 한 고객이 주문을 하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아르바이트생 비중이 매장 직원의 90%를 넘는 패스트푸드 업체들이 '무인기계 고용'을 확대하고 있다. 대구시내 한 KFC 매장에 설치된 무인주문기인 디지털 키오스크 앞에서 한 고객이 주문을 하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이상철 자유기고가 이상철 자유기고가

셀프 주유소, 셀프 세차장, 셀프 계산대...

직원을 만날 수도, 만날 필요도 없게 되었다. 패스트푸드점이나 영화관에서도 직원 대신 '터치스크린'이 소비자를 먼저 맞이한다. 주문도, 결제도, 뭐든지 직접 우리가 해야 한다. 로봇카페, 무인편의점, 무인정육점 등 사람이 없는 매장을 보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일이 아니다.

커피숍에서는 주문과 서빙은 물론이고 먹고 난 후, 테이블도 직접 치워야 하고 식당에서도 앱 주문이 확산돼 '이모'라 부르는 서빙 직원을 부를 필요도 없다. 이제 '직원'이라고 불렸던 그들은 점점 없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하던 일은 여전히 존재하며 그 일은 '고객'의 몫이 되고 있다. 우리는 돈도 받지 않고 일해 주는 '착한 소비자'가 되어 가는 듯하다. 철학자 '이반 일리치'가 말한 것처럼 아무런 대가도 얻지 못하고 떠넘겨진 일을 해야만 하는 '그림자 노동'의 시대를 살고 있다.

가격이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현실의 경제를 읽을 수 있다고 했던가! 한 푼이라도 아끼려면 DIY(Do It Yourself)라는 이름으로 새로 산 가구도 직접 조립해야만 하고, 소비자에게 전가된 배달비나 배송비를 절약하기 위해서는 직접 발품도 팔아야 한다. 자동화·무인화가 준 '셀프'라는 이름은 우리를 점점 더 바쁘게 하고 소비라는 행위를 노동이라는 이름으로 하게 만든다.

IT기술 발달과 자동화는 생활을 더 윤택하고 편리하게 만든 것은 사실이지만 왠지 모르게 우리 삶은 더 팍팍해진 거 같다. 한 번의 전화로 콜센터 상담원의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다. 본인확인 단계부터 직접 키패드로 입력해야 하며 전화를 건 이유까지 직접 선택한 후에야 상담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또, 컴퓨터나 스마트폰의 개인정보보호 프로그램 설치와 디지털 기기의 업그레이드도 직접 해야 하며, 비대면 거래를 위해서는 각종 인증 절차도 스스로 직접 거쳐야만 한다.

저렴한 상품을 사기 위한 포털 검색은 일상이 되었고 구매부터 반품까지 직원들을 만날 수도 없고 전화 문의마저 힘들 때도 있다. 제품 결함 호소나 환불·교환도 이메일 문의가 기본이 되었으며 할인쿠폰을 받기 위한 제품 사용후기나 SNS 인증샷도 알고 보면 제품 홍보를 위한 노동행위가 되었다. 또, 소비자들이 가지는 정보들이 업로드되고 공유되면 될수록 포털이나 동영상공유서비스 기업들의 광고 수입은 올라가며, 멋진 사진이나 동영상 포스팅을 통해 '팔로워'나 '좋아요'를 얻어서 행복해 하는 그 순간,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관련 기업들의 가치는 높아져만 간다. 이런 점들을 본다면, 소비자나 이용자들은 최고의 직원이 되는 셈이다.

1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진행된 '2019 홈·테이블데코페어'에서 임대선 오프라인 부문 본부장이 야놀자의 신규 자동화 솔루션인 와이 플럭스(Y FLUX) 호텔 셀프 체크인 키오스크와 어메니티 벤딩머신을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1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진행된 '2019 홈·테이블데코페어'에서 임대선 오프라인 부문 본부장이 야놀자의 신규 자동화 솔루션인 와이 플럭스(Y FLUX) 호텔 셀프 체크인 키오스크와 어메니티 벤딩머신을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술이 고도로 발전하고 무인화 시스템이 보편화 될수록 저임금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의견이 많다. 단순 업무는 자동화나 플랫폼 등으로 대체되며, 기간제 일자리나 사내하청의 업무는 소비자의 '그림자 노동'으로 둔갑될 지도 모른다. 고용 없는 성장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소비자의 그림자 노동을 더 늘어나게 만들 것이다. 또, 인력 채용에서도 기술의 진화는 지원자들에게 더 많은 스펙을 요구한다. 그래서 취업 전에도 많은 자격증이 필요하지만, 취업 후 '멀티맨'이 되기 위한 '스펙 쌓기' 압박은 가중되며 자기계발이라는 이름으로 강요될 수도 있다. 역설적으로 더 높은 '스펙'은 동료들의 일자리를 뺐어 가며 그 부작용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증가될 우려가 있다.

대구 북구노인복지관이 운영하는 스마트폰 교실에서 참여 어르신과 대학생 자원봉사자가 환하게 웃고 있다. 매일신문 DB 대구 북구노인복지관이 운영하는 스마트폰 교실에서 참여 어르신과 대학생 자원봉사자가 환하게 웃고 있다. 매일신문 DB

한편, IT기술 격차는 우리사회에 '디지털 래그'(디지털 시대에 뒤떨어지는 현상)를 발생시킨다. 한 예로 KTX 모바일앱을 할 줄 알면 순방향을 타고, 할 줄 몰라 역에서 직접 예매하면 역방향이나 입석을 타야만 한다는 일부 노년층들의 하소연이 있다. '비대면서비스'의 확산은 분명 편리함이라는 선물을 안겨주었지만 고객이나 이용자의 디지털 학습의무나 그림자노동을 점점 증가시켰다. 또, 디지털 정보격차는 '디지털 문맹'을 확산시켜 금융사기 등의 피해 위험을 커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요즘 임대료 및 인건비 상승 등으로 힘들어 하는 자영업자들이 늘고 있다. 해외 여행지나 도심 번화가에서만 볼 수 있었던 'Break Time' 표지판이 동네 식당가에도 버젓이 놓여있다. 저녁에 소주 몇 병 더 파는 것보다 일찍 문 닫는 것이 마진에 유리하다는 볼멘소리가 많다. 과거 '물은 셀프'라는 안내문구는 저렴한 소규모 식당들이 서빙 인력 부족 및 인건비 절약을 위해 쓰던 방편이었지만 이제는 기본적인 테이블 세팅은 물론이고 식당 내 거의 모든 것이 셀프다. 이처럼 인건비 등 영업비용을 아끼기 위한 소상공인들의 '원가 전쟁'은 일자리를 줄이고 소비자들의 '그림자 노동'을 더 많이 생겨나게 할 것이다.

일자리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한 사람의 월급은 출퇴근길 교통비로, 생활비로, 취미·여가비와 유흥비로 사용되어 또 다른 일자리를 창출하는 원동력이 된다. 지금 이 시대의 최고의 복지와 최고의 애국은 일자리 창출이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창조적 파괴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든다고 하지만 기업의 해외 이전, 제조업의 불황, 금융자본의 득세, 안전자산인 부동산 선호, 현금제일주의, 자영업의 구조적 위기 등 일자리 창출을 위한 주변 환경은 녹록치 않다.

결국 비용절감의 전쟁과 자동화 기술의 발달은 무인화를 촉진시키고 소비자들의 그림자 노동을 광범위하게 확산시켜 우리 삶의 기회비용을 증가시킬 것이다. 어쩌면 고객이 '왕'이 아닌 고객이 '종업원'인 시대가 곧 도래할 지도 모른다. 또한, 그림자 노동이 없는 고급서비스는 많은 금액을 지불할 수 있는 일부 상류층만의 전유물이 되어 빈부격차의 체감도는 더욱 더 커질 수도 있다.

경제발전과 성장의 이데올로기는 장밋빛 전망과 많은 일자리를 약속했지만 우리의 일자리는 점점 줄고 그림자 노동은 점점 더 늘고 있다. 성장이 주는 환상에 인질이 된 것은 아닐까? 그래도 성장의 힘을 믿고 싶다. 그나저나 노동자도 아닌 '그림자 노동자'들은 누구를 대상으로 단체교섭을 해야 하나? 어쩌면 성질 급한 정치인들은 가까운 시일 내에 일자리 창출과 소비자 주권을 위해서 '그림자 노동'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할지도 모르겠다.

소비자의 무급노동이 유급의 일자리를 없애는 아이러니한 현실이 우리 앞에 놓여있지만 일자리 창출을 넘어 일자리 발명이 필요한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자리발명특허, 그림자노동감독관 등의 새로운 업종과 직업들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시대, 최고의 영웅은 누구인가?

일자리혁명을 선도할 수 있는 그 영웅들을 기다려본다.

이상철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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