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의 옛그림 예찬]최북(1712-1786?) '설중귀려'

미술사 연구자

종이에 수묵, 21.5×62.5㎝,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종이에 수묵, 21.5×62.5㎝,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겨울산수이다. 하늘은 흐리게 먹으로 바림하고 산과 집은 윤곽선으로 형태를 잡으며 희게 남겨 설경임을 나타냈다. 찬 겨울 숲을 그린 한림(寒林)산수는 중국 북송 때부터 그려졌다. 겨울산수는 메마르고 삼엄한 나뭇가지 뿐 아니라 깨끗하고 차가운 눈과 추위 때문에 저절로 세상과 멀어지는 느낌이 있어 고인일사(高人逸士)의 뜻을 담기 적합했다. 설경은 겨울에만 볼 수 있는 특유의 경관이다. 수묵화에서 눈 그리는 법은 차지위설(借地爲雪), 곧 종이나 비단의 '바탕을 빌려 눈으로 삼는' 유백법(留白法)을 가장 격조 있게 여겼고, 불투명 흰색 물감인 호분을 산봉우리에 칠하기도 하고, 호분을 퉁겨내 눈발이 날리는 광경을 나타내기도 했다. 바람에 날리는 눈인 풍설(風雪), 강 위에 내리는 눈인 강설(江雪), 밤에 내리는 야설(夜雪), 봄눈인 춘설(春雪), 저녁에 내리는 모설(暮雪), 눈 개인 모습인 제설(霽雪) 등으로 설경을 다양하게 구분해 그렸다.

설경은 계절의 변화를 주제로 시리즈로 그려지는 사계산수, 사시산수에 항상 들어간다. 8폭으로 그려질 때는 사시팔경(四時八景)이 되어 한 계절을 초동(初冬), 만동(晩冬) 식으로 나눈다. 관동팔경처럼 특정지역의 명승을 뽑아 그리는 경우에도 계절이 결합되고, 보통의 산수병풍에도 설경을 넣어 끝 폭을 삼는 예가 많다. 사시산수는 자연을 씨줄로, 계절을 날줄로 하여 시간과 공간을 함께 직조한 회화이다. 자연의 네 계절을 어떻게 산수로서 인식하고, 그림으로 나타낼 것인가를 고민한 화론이 일찍이 나왔다. 북송 때 산수화론인 『임천고치(林泉高致)』(1117년)에서 겨울산수를 이미지화 한 몇 줄 뽑아보면 이렇다.

 

자연의 운기(雲氣)은 네 계절이 같지 않아 겨울에는 어둑어둑하고 침침하다.

자연의 연람(煙嵐)도 네 계절이 같지 않아 겨울산은 침침하니 쓸쓸하여 잠자는 듯하다.

겨울산은 어둡고 흐리며 가려지고 막힌듯하여 사람들 마음이 외롭고 쓸쓸해진다.

 

'설중귀려(雪中歸驢)'는 해질녘 모설(暮雪)의 어둑한 풍경 속을 나귀 탄 한 남자가 산 아래 외딴 집을 향해 다리를 건너가고 있는 그림이다. 그 뒤를 짐을 매단 작대기를 어깨에 걸친 동자 하나가 따른다. 산수를 잘 그려 '최산수'로 불렸던 최북은 설경을 많이 그렸다. 오행(五行)에서 북(北)은 계절로는 겨울이다. 최북과 동갑인 신광수는 「최북설강도가(崔北雪江圖歌)」를 지어주며 겨울산수를 그려 달라고 했고, 동생 신광하는 삼장설(三丈雪)의 눈 속에서 얼어 죽은 최북을 「최북가(崔北歌)」로 기리며 그 이름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으리라고 했다. 겨울산수의 주제는 외로움과 쓸쓸함이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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