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주관식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해마다 이 날이 되면 대한민국은 마치 종말이라도 온 듯 조용해진다. 북적대던 출근길은 쥐 죽은 듯 조용하고 비행기들도 한동안 상공을 맴돌다 무전을 받은 뒤에야 대한민국 땅에 착륙할 수 있다. 다른 나라에선 보기 힘든 이 희한한 광경이 일어나는 날은 바로 1년 중 딱 하루 있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날이다. 우리나라에선 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이 인생을 결정짓는 시험이라고 생각하며 이 수능을 위해 학생들은 10년을 공부한다. 그리고 이날 수험생들이 자신의 능력을 모두 발휘할 수 있게 온 나라가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이다.

수능의 시험 문제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객관식과 주관식이 그것인데 객관식은 주어진 보기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고 주관식은 빈칸에 알맞은 답을 적어 넣는 것이다. 학생들은 난이도가 높은 객관식 문제도 어려워하지만 보기가 없는 주관식 문제를 더욱 어렵게 느끼곤 한다. 객관식 문제는 어쨌거나 보기 중 하나는 답이기에 답을 모르는 경우라도 5분의 1 확률로 정답을 찾아낼 수 있다. 하지만 주관식 문제는 그 문제에 관한 나만의 생각과 해답을 적는 것이기에 알지 못하면 답을 적을 수 없다. 또한 단답이 아닌 경우에는 답을 대강 알고 있어도 그 내용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적어야 할지 결정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주어진 보기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생각을 나만의 문체로 이야기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비단 시험 문제를 풀 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어려서부터 다 큰 성인이 된 후에도 나만의 답을 나만의 생각으로 이야기하는 일은 쉽다.

필자가 초등학생일 때의 일이다. 당시 HOT와 젝스키스가 아이돌계의 양대 산맥을 이루며 유행할 때였다. 어느 날 친구들이 어느 가수를 좋아하느냐 물었고 필자는 외국 아이돌 밴드를 좋아한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 순간 필자는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친구들은 자신들이 기대한 아이돌 그룹 중 하나를 이야기하지 않고 보기에도 없는 외국 아이돌 그룹을 말하는 필자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린 마음에 더 이상 이상한 사람이 되기 싫었던 필자는 그 이후부터는 당시 친구들이 좋아하는 가수 중 하나를 골라 그 가수를 좋아 한다고 말했다. 남들이 기대하는 것과 다른 이야기를 하면 이상한 사람이 된다는 걸 깨달은 이후부터는 내 마음에 드는 답이 없어도 그저 주어진 보기 중 선택하는 쪽을 택하며 그렇게 성장해 온 것이다. 어른이 된 지금은 나만이 주관적인 답을 찾으려 더 노력하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쉽다.

항상 주관적 판단만이 가치 있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진짜로 내가 선호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면서 내가 어떠한 사람인지를 발견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사회와 타인이 제시하는 객관식의 문항들 외에 나만의 취향을 드러내는 주관적인 해답들을 찾아보는 일은 나라는 사람을 완성하는 여정에서 매우 중요한 과정이 될 것이다.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관련기사

AD

오피니언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

기획 & 시리즈 기사

[매일TV] 협찬해주신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