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중앙분리대에서 자란 이름 모를 풀

전헌호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전헌호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전헌호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어제도 여느 때와 같이 앞산 밑 북카페에서 수요일마다 하는 강의를 위해 길을 나섰다. 태풍이 부는 상황이긴 했지만 특별한 일은 없는 일상의 날이었다. 그런데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키가 1m 정도는 될 그 풀이 지난 봄부터 그 자리에서 자라고 있었겠는데 어제 처음 나의 인식 범위에 와닿은 것이다. 범안로에서도 고가도로인 롯데플라자 옆을 지나 시내로 가는데 저 앞에서 그 풀이 태풍에 흔들리고 차가 지나갈 때마다 흔들렸지만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그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건강한 모습으로 가지마다 씨앗을 잔뜩 달고 있었다.

중앙분리대 콘크리트 틈새에 바람을 타고 모인 먼지들과 각종 풀잎과 낙엽들에 뿌리를 박고 자라서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일 거다. 그의 동료들이 씨앗으로 저 넓은 땅에 떨어져 뿌리를 내리며 자라는 동안 그는 저 좁고 열악한 곳에 떨어졌건만 발아하여 자라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동안 나의 차를 비롯하여 얼마나 많은 차들이 바로 옆을 지나가면서 흔들어댔으며 소음과 매연은 또한 얼마나 대단했겠는가. 비오는 날들이 있어서 저렇게 자랐겠지만 지난여름 한낮의 강력한 햇빛은 얼마나 목마르게 했겠는가.

그의 건강한 모습은 이 모든 열악한 상황을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하여 그 자신이 되어갔으며 자신의 삶을 살아온 것이다. 도대체 어떤 힘이 그로 하여금 그 열악한 상황에서도 자라고 그 모든 분란을 견디게 했는지 궁금하다. 그가 그곳에서 자라는 동안 어떤 의식과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도 궁금하다.

그 풀은 금년 봄에 그곳에서 발아할 만큼의 조건이 되지 않았더라도 원망하고 불평하기보다 씨앗의 상태 그대로 여러 해들을 기다릴 것이다. 태풍도 지나가고 가을이 짙어지면 그가 맺은 수많은 열매들은 다음 해를 위한 씨앗이 되어 이리 저리 흩어져갈 것이다. 그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모습으로 자랄지는 알 수 없지만 강력한 생명력으로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그동안 어떤 의식과 생각으로 살아왔는지,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때마다 나의 수고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육십 중반에 이르도록 살면서 겪었던 온갖 일들은 글로 소상하게 쓴다 하더라도 제대로 다 기록할 수 없을 것이고 망각의 세계로 접어든 부분 또한 대단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중앙분리대에서 자란 그 풀만큼 의연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부모님을 비롯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왔는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고 기억에 떠올릴 수도 없으며 말로 다 한다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다. 대한민국이라는 조국과 국제사회가 나의 생존과 성장 그리고 교육을 위해 제공한 것은 또 얼마나 많은가. 대충 들여다본다 하더라도 이 역시 다 헤아릴 수 없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이다.

나의 생존을 위해 지구환경이 나에게 제공한 것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지금도 절실하게 필요한 이 공기를 아무런 조건 없이 무상으로 계속 제공하고 있다. 지면 관계로 물과 땅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기로 하자. 내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날마다 먹는 음식을 위해서는 또 얼마나 많은 생명체들이 희생되고 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수고가 들어가 있는가.

그런데 나는 나의 삶에 대해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대해왔는가. 이 수많은 요소들에 대해 인식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얼마나 갖고 살아왔는가. 참으로 반성하며 다시 생각해 볼 부분이 너무도 많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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