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로 읽는 동서양 생활문화] 양피지…기술개발로 경제전쟁 극복

김문환 세명대 교수 김문환 세명대 교수

LG디스플레이가 지난 9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생산에 필수적인 고순도 불화수소의 완전 국산화에 성공했음을 알렸다. 일본이 정치논리 아래 경제전쟁을 걸어온 지 세 달 만의 성과다.

일본과의 경제전쟁은 지난 11일로 100일을 넘겼다. 기술 개발이 곧 살 길이라는 교훈은 터키의 서부 해안, 이오니아 지방 페르가몬 유적지에서도 나타난 동서고금의 진리다.

페르가몬은 한국인 여행객도 많이 찾는 유적지 트로이와 에페소스 중간에 있다. 현지 이름은 베르가마(Bergama). 작은 시골 도시인 베르가마 신시가지에서 페르가몬 유적지로 올라간다. 길이 가파르다. 그리스인들의 도시는 산꼭대기 아크로폴리스를 중심으로 형성됐기에 고지대다.

헬레니즘시대(B.C 331년~B.C 30년) 문명을 꽃피우던 유적지로 들어가기에 앞서 2천300여 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B.C 332년 이집트를 정복한 알렉산더가 B.C 323년 33세의 나이로 급사한다.

알렉산더의 부하 장군들은 치열한 제위 계승 전쟁을 통해 알렉산더 시대에 일군 제국을 나눠 갖는다. 알렉산더 사후 46년 만에 최종 4강 구도가 형성된다.

이집트, 파피루스 수출 금지령

①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②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 ③마케도니아의 안티고노스 왕조 ④페르가몬이다.

헬레니즘 시대 페르가몬 왕국 도서관 터. 양피지 개발의 산실. 터키 베르가마 헬레니즘 시대 페르가몬 왕국 도서관 터. 양피지 개발의 산실. 터키 베르가마

알렉산더 사후 실력자이던 트라키아 리시마코스의 재무 담당 필레타에로스는 주군 리시마코스가 죽자 페르가몬의 통치자임을 선언한다. 그의 아들 에우메네스 1세를 이어 그의 사촌이자 양아들 아탈로스 1세가 B.C 238년 왕위에 올랐음을 선포하면서 페르가몬 왕조로 발전시킨다. B.C 197년 아탈로스 1세가 죽고 왕위를 계승한 큰아들 에우메네스 2세(재위 B.C 197년~B.C 159년)는 아버지가 일군 업적을 토대로 최고 전성기를 일군다.

아버지가 전쟁에서 얻은 각종 전리품은 페르가몬을 부국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에우메네스 2세는 이를 기반으로 학문예술 진흥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당대 최고의 부국이자 학문을 발전시키던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국립도서관 겸 학술연구기관 무세이온(Museion)을 본떠 도서관도 세웠다.

에우메네스 2세가 만든 페르가몬 도서관은 20만 권의 책을 소장할 정도로 컸다. 50만 권의 알렉산드리아 무세이온에 이어 헬레니즘시대 두 번째로 큰 도서관이었다.

에우메네스 2세는 페르가몬 도서관을 발전시키기 위해 알렉산드리아 무세이온의 도서관장 아리스토파네스에게 스카우트 손길을 내민다. 아리스토파네스는 당대 헬레니즘 문명권의 최고 인문학자로 칭송받고 있었다. 고전기 그리스 시문학이나 희곡에 정통했고, 그리스어 문법을 정비한 학자였다.

B.C 5세기 아테네의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와는 동명이인이다. 페르가몬 도서관으로부터 제안을 받았다는 사실을 안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5세는 크게 노해 아리스토파네스를 가둔다. 페르가몬이 감히 학문의 왕국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 도전한 것으로 간주한 것이다. 페르가몬에는 파피루스를 수출하지 못하도록 금지령도 내린다. 정치적 이유로 무역규제를 가한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늘 반전으로 변화를 일구는 법. 파피루스 수출 금지령은 페르가몬에 전화위복의 계기를 안긴다. 에우메네스 2세는 페르가몬 도서관 학자들에게 파피루스 대체품 발명을 명한다. B.C 190년경 양가죽을 부드럽게 펴 만든 양피지(羊皮紙)다. 물론 이전에도 양피지를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페르가몬의 기술 혁신으로 우수한 양피지를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

페르가몬 기술 혁신 전화위복

후한시대 채륜이 종이를 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품질을 개량한 것과 같다. 종이는 전한시대부터 제작됐고 채륜의 업적은 공정 단순화와 품질개량대량생산이었다. 기술개발로 경제전쟁을 극복한 페르가몬은 이후 양피지 생산지로 명성과 부를 얻었다. 영어로 양피지(parchment)는 로마시대 라틴어로 페르가몬(pergamenum)을 가리키는 말이 프랑스어 페르가몬(par chemin)을 거쳐 나온 말이다. 양피지 이전 필기도구의 대명사 이집트의 파피루스(Papyrus)에서 종이(Paper)라는 말이 나온 것처럼 말이다.

관련기사

오피니언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

기획 & 시리즈 기사

[매일TV] 협찬해주신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