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따로] 독자 전상서(前上書)

신창환 경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신창환 경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독자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그러나 요즘은 안녕하셨습니까?라는 인사말이 좀 무색합니다. 일본의 무역 보복에 이어 법무부 장관의 임명을 둘러싼 논란까지 지난여름부터 대한민국의 정국은 그야말로 총칼 없는 전쟁이 따로 없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혼돈스럽고 어지럽기까지 합니다. 독자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여길 가도, 저길 가도 다들 현 정국을 둘러싸고 정치 논쟁이 벌어집니다. 술집에서도 커피숍에서도 동네 목욕탕에서도 뜨거운 논쟁이 이어집니다. 각자의 프레임을 지지하는 유튜브 방송으로 열심히 학습하신 양쪽의 논객들은 사실과 논리로 무장하고, 상대방의 주장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치열하게 논쟁을 벌입니다. 논쟁이 절정에 다다르면 목소리는 커지고, 얼굴은 달아오르고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과 서로에 대한 불신만 남습니다. 혹자는 해방 이후 새로운 국가 건설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좌우익 분열만큼이나 현재의 상황이 심각한 정도라고까지 말하더군요.

그도 그럴 것이 동일한 사안을 두고 같은 날 서울 광화문에서, 서초동에서 서로의 주장과 프레임을 광장과 거리에서 표현하는 특이한 현상이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졌으니 말입니다. 광장의 정치가 의회 정치를 대체하고, 광장민주주의가 대의민주주의를 대체하는 특이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과거 독재와 부패와 싸웠던 여당과 야당의 단일한 대결구도가 아닌 국민들 간의 대결 구도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1987년은 우리 사회가 산업화에서 민주화로 시대정신이 변화한 중요한 변곡점의 시기였습니다. 과거 보릿고개를 걱정해야 했던 시대를 지나 산업화를 통해 경제성장을 이룬 만큼 새로운 시대정신은 민주주의의 정착이었습니다. 직선제를 통해서 우리 손으로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게 되면서 이전의 형식적인 민주주의가 아닌 실질적인 민주주의가 도래할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대통령의 자살, 대통령 탄핵과 투옥까지 우리의 민주화라는 시대적 과업은 여전히 제자리인 것 같습니다. 대통령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면서 모든 이슈는 대통령에 의해 빨려 들어가다 보니, 정권이 바뀌면 전직 대통령은 모두 비참한 말로를 걷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민주화라는 시대정신은 아직 요원한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는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을 이끈 지도자였던 그 유명한 정치인 처칠의 이름을 한두 번은 들어보셨겠지요? 아시다시피 2차 세계대전의 말기까지도 영국을 비롯한 연합군은 독일군에 무력하게 패배를 이어갑니다. 그런데 처칠 정부는 하나의 보고서를 발표합니다. 그 유명한 '베버리지 보고서'입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가 최소한의 기본적인 삶을 보장하겠다는 베버리지 보고서는 전쟁이 한참 진행되던 와중인 1942년에 발표된 정부의 보고서입니다.

전쟁 와중에, 그것도 유가지로 판매했던 정부의 보고서가 당시에 60만 부 가까이 팔렸다고 합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 60만 부가 유료로 판매되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공전의 히트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한국전 와중에 우리나라 보건복지부에서 발간한 보건복지백서를 국민들이 유료로 구매해서 읽었다는 것이지요. 베버리지 보고서는 각종 사회보험, 공공부조, 사회서비스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어 사회복지학에서는 현대 복지국가의 출발점으로 평가합니다. 이 보고서를 가지고 군대 내무반에서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는 기록도 있다는 것을 보면, 구체적인 정책 내용은 차치하고 전쟁 이후 영국의 국가재건에 대한 청사진을 국민들에게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저는 평가하고 싶습니다.

정치는 이런 것이 아닐까요? 국민들에게 새로운 시대에 대한 비전과 희망을 주는 것, 대의민주주의를 통해서 국민들이 바라는 바를 실현시켜 나가는 과정, 그런 것이 정치의 본질이 아닐까요? 안타깝지만 현재 대한민국은 그런 정치는 실종된 듯 보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미래에는 좀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겠지요. 독자 여러분의 건강과 각자 생업에서의 안정을 기원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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