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기묘한 사람들 (랜섬 릭스 지음, 조동섭 옮김, 월북, 2017)

에둘러 찌르는 상상력

해변 축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사람처럼 초가을 바람은 조금 호젓하고 조금 쓸쓸하다. 견딜 수 없을 것 같던 열기와 습기가 얼마 못 가 서늘하고 파삭한 바람이 되는, 이런 계절의 변화는 모든 이론을 떠나 매번 기묘하다. 살갗에 닿는 낯선 바람결의 기묘한 힘에 이끌려 자꾸 들썩이는 발걸음을 가볍게 잡아 앉힐 뭔가가 필요하다. 할머니가 들려주던 옛날 이야기 같은 책은 어떨까?

'기묘한 사람들'은 어른인 우리의 눈과 귀를 다시 아이 때처럼 바짝 당겨 앉히는 이야기책이다. 편집자인 밀라드 눌링스가 세계 곳곳의 옛날이야기들을 모았고, 작가 랜섬 릭스가 특유의 입담과 필력으로 썼다. 대학에서 문학과 영상을 공부한 작가가 30대의 나이로 2011년 부터 발표한 '미스 페레그린' 시리즈는 40개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영화화도 되었다. 이로써 그는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것이다.

제목만으로 벌써 독자들의 호기심을 끌어당기는 이 책 속에는 10편의, 그야말로 기묘한 사람들 이야기가 실려 있다. 팔과 다리를 잘라내도 다시 돋는다거나, 몸이 젤라틴 덩어리로 변할망정 갈퀴 혀의 상대를 못 받아들인다는 상상은 단순한 오락적 재미를 넘어선 어떤 뜨끔함을 독자들에게 안겨준다. 말도 안 된다고, 터무니없다고 책을 덮어버리고 싶은 순간 보통 사람들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마는 것이다.

김남이 작 '장사도 해상공원' 김남이 작 '장사도 해상공원'

"자기 집이 스웜프머크에서 제일 아름답다고 알려지기 원했지만 이미 팔다리는 엄청난 대출 이자를 매달 갚는 데 쓰고 있었으며 귀는 벌써 팔고 없었다.(36쪽)" '아름다운 식인종'에 나오는 문장이다. 우아하고 예의 바르지만 인육밖에 소화할 수 없는 식인종과, 팔다리가 아픔 없이 잘릴 수도 있고 다시 자라기도 하는 농부들의 이야기. 팔다리 맛에 질린 식인종에게 농부들이 다시 돋지 않는 제 귀, 코, 혀까지 파는 이야기.

다시 이것은 물질 만능 사회 속의 사람들, 바로 우리 이야기이다. 돈을 미끼로 점점 더 색다른 맛을 추구하는 식인종은 자본주의 사회의 얼굴 그대로다. 더 큰 집과 화려한 외관을 욕망하다가 마침내 볼 수도,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는 몸으로 뒤뜰에 묶여 하루 두 번 물과 음식을 받아먹는 농부들. 그들이 식인종의 식재료인 팔과 다리를 길러내는 것처럼, 나도 내 것이 아닌 몸으로 살고 있지 않은지 묻게 된다.

'메뚜기'라는 글은 자기 종족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면, 자신이 가장 크게 결속력을 느끼는 생물 형태로 변하는 사람 이야기이다. 메뚜기로 변한 아들에게 아버지는 "너한테 먹을 것을 주고 잠자리를 준 사람이 누구야? (생략)그게 사랑이 아니면 뭐겠어?(179쪽)"라고 말한다. 상상으로만 존재하는, 현실과 동떨어진 기묘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의 끝이 없는 상상력으로 현실을 잘 에둘러 풍자한 책이다.

이 사회의 구령에 발맞춰 따라가느라 경직된 몸과 마음을 가끔 상상의 늪에 푹 적셔도 좋으리라. 아이처럼 말랑해져 제 안에서 즐거울 것이다.

김남이 학이사 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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