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미강의 생각의 숲] 100일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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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이 동굴에서 쑥과 마늘만 먹고 사람이 됐다는 100일은 인고의 세월처럼 느껴진다. 오랫동안 참고 견디면 하늘도 감동해서 동물을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마법 같은 이야기. 그 시간을 견뎌내지 못한 호랑이는 사람이 될 수 없었으니 100일은 단군신화에서 인내에 대한 가르침의 시간이다.

하루 유동인구 100만 명이 넘는다는 서울 강남역 사거리. 그곳을 내려다보는 CCTV 철탑에 100일 넘게 올라가 있는 남자가 있다. 키 180㎝의 그는 아파트 10층 높이쯤 되는 25m 지름 150㎝, 1.65㎡(0.5평)에서 102일째 살고 있다. 아니 살아내고 있다. 그중 55일간은 단식을 했다. 철탑 아래에는 그의 손발이 되어 위험한 고공농성을 벌이는 이유를 세상에 알리는 또 한 남자가 있다. 세계인이 다 아는 강남의 중심에서 두 남자가 목숨을 걸고 기업의 부당함을 외치고 있다.

철탑 위에 있는 김용희 씨는 해고되지 않았다면 지난 7월 정년퇴임했을 것이다. 경남 지역 삼성 노조 설립위원장을 맡았다가 1995년 해고됐다. 그 여파로 그의 아버지는 행방불명됐고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철탑 아래에 있는 이재용 씨는 그들을 해고한 그룹 후계자와 이름이 같다.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 위원장으로 당선된 후 수많은 회유와 협박에 시달렸다. 결국 1997년 부당 해고됐다.

20여 년 전 단지 노조 설립을 시도했다는 이유만으로 두 남자는 자신들이 몸담고 일했던 회사로부터 협박당하고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회사로 인해 가족조차 해체됐다. 1938년 창립 후 지금까지 80년 동안 무노조 경영을 유지해온 기업은 헌법에 명시된 노조 설립을 하려는 두 남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지만 어떤 보상도 사과도 하지 않는다.

이제 예순을 맞은 두 남자는 20년 전 노조 설립 과정에서 겪었던 인권 침해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 듣기 위해 100일을 넘겼다. 하늘이 감동하여 동물을 사람으로 만든 그 100일 동안 기업은 여전히 침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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