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 옛그림 예찬]심사정 그림, 강세황 글 '산수'

1768년(영조 44년), 비단에 담채, 40.5×51㎝,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768년(영조 44년), 비단에 담채, 40.5×51㎝,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 후기에는 그림을 애호하고 모으는 사회적 분위기가 생겨 좋은 그림을 얻으면 안목 있는 구안자(具眼者)의 평문을 받아 함께 표구하기도 하고, 화가와 문인이 시정화의(詩情畵意)의 이상을 공유하며 합작하기도 했다. 이렇게 짝 짓는 것을 그림과 글씨가 세트를 이루어 더욱 보배롭다고 해서 '서화합벽'(書畵合璧)이라고 했는데, 여러 점을 모아 스케치북처럼 첩(帖)으로 만들기도 했다. 이 작품도 원래는 서울 근교의 명승지 8곳을 그리고 각각 화평을 붙인 '경구팔경첩'(京口八景帖)의 시리즈 그림이었는데 지금은 4세트만 전하고 흩어져 액자로 꾸며져 있다.

크기는 작지만 화가와 구안자 모두 당대 최고이다. 화가는 현재(玄齋) 심사정(1707~1769)으로 겸재(謙齋) 정선(1676∼1759)에게 그림을 배웠는데 스승보다 30여년이나 아래 임에도 나란히 겸현양재(謙玄兩齋)로 불린 용생용(龍生龍) 봉생봉(鳳生鳳)의 대가였고, 그림 평을 쓴 강세황(1713~1791)은 시서화 삼절로 '예원(藝苑)의 총수'로 불린 당대의 안목으로 이 두 분은 자주 어울리던 사이였다.

가을에 그린 <산수>인 이 그림에서 지붕 높이의 두 배나 되게 그려놓은 노적가리가 눈에 띈다. 추수한 나락이 집집마다 이렇게 쌓여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심사정의 희망이 반영된 높이일까? 산 아래 아늑하게 자리 잡은 이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오른쪽 아래 모서리에 나 있고 소를 앞세운 목동이 조그맣게 보인다. 쓱쓱 물감을 풀어 바림을 하고, 툭툭 점을 찍어 산세를 나타내고, 스스럼없는 선으로 나무와 집 등을 붓이 가는 데로 그려 그림이 저절로 드러난 것 같은 만년의 노숙함을 보여준다.

조선 후기에 서울 근교의 8경은 인왕산, 삼각산, 백악산, 도봉산, 용산, 노량진, 남산, 밤섬 등이 꼽혔다. 강세황은 이 그림이 '경구팔경' 중 대체 어디를 그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비슷한가 안 비슷한가 하는 사여불사(似與不似)가 아니라 안개와 구름, 아지랑이 속에 그윽하고 차분한 유심정적(幽深靜寂)의 맛이 있어 현재의 득의필(得意筆)이라고 했다. '득의'한 그림이라고 한 것은 최상의 칭찬이다. 아무리 대가라도 결과물이 뜻한 바와 흔연히 일치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농가와 목동이 있는 실제 경치인 진경(眞景)도 심사정답게 우아하고 고요한 맛으로 그렸다. 강세황은 대안목답게 심사정의 장점으로 심사정을 평했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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