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공공의 존재 이유

다양한 영역서 공공과 민간이 협력
행정은 사회가 잘 유지되게 도와야
요즘처럼 불확실하고 불안한 시대
공공의 존재 이유를 철저히 검증을

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최근 다양한 영역에서 공공과 민간이 만나서 협력하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특히 정부 차원에서 '지방분권'이 강조되면서 협치 혹은 거버넌스라는 형태의 구조는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실제로 '혁신'을 가능하게 하려면 민간의 역량을 공공 영역으로 어떻게 끌어들일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이다. 그럼에도 공공과 민간이 만나게 되면 항상 불협화음이 생기게 된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발생하는 일은 별도로 하더라도 지방자치단체만 놓고 본다면 힘의 불균형과 속도의 차이가 가장 두드러진다.

공공이 갖는 가장 큰 힘은 역시 '예산'이다. 지금처럼 불안한 사회에서는 그나마 공적 자금만큼 안정적으로 기댈 수 있는 곳이 없다. 많은 예술가들이 불합리한 지원 제도에도 불구하고 공모사업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에 이런 부분도 포함될 것이다. 공공의 모든 사업은 예산을 기초로 한다. 차기 연도 예산을 수립하는 시기가 되면 정부나 지자체 모든 부서는 예산 확보를 위해 '전쟁'을 치른다. 정해진 예산에서 자기가 속한 부서나 사업에 조금이라도 더 예산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때론 눈물겹다. 최근에는 추가경정예산도 치열해져서 사실상 '예산 전쟁'은 1년 내내 전개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동네 곳곳에 '예산 확보'라는 플래카드를 열심히 내거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실제로 예산이 없으면 사업을 진행할 수 없으며 사업을 진행할 이유도 없다. 특히 공공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공공 조직에서는 매년 정해진 사업과 예산에 의해서만 움직인다. 실무자 정체성이 강할수록 이러한 원칙을 더 강조한다. 그렇다 보니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 매년 하던 사업들을 없애는 일이 쉽지 않고, 새로운 사업을 하기 위한 예산을 책정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다. 매년 반복되는 보도블록 교체도 비슷한 이유이고, 공공 혁신이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이것은 시민들이 공공 영역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시민과 가장 밀접해야 할 공공이 시민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으로 남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공공 혹은 행정의 존재 이유라는 물음에 가 닿는다. 행정은 시민들이 모여서 살아가는 국가와 사회가 잘 유지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게 기본적인 책무일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작동할 때가 많다.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출발해서 사고하거나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이라는 틀에 나와 있는 법과 규정을 적용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아래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위의 규칙을 만들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 전도되어 위의 규칙으로 아래를 통제만 하는 것이다. 사회 변화에 따른 새로운 현상이나 여러 가지 문제가 얽혀 있는 복잡한 사례에 대해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최근 정부가 도시재생과 생활SOC 사업에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조만간 가장 먼저 두드러지는 결과는 새로운 시설이나 공간 등 하드웨어의 변화일 것이다. 문제는 하드웨어의 변화까지는 공공이 책임을 지지만 대부분 그 후에는 제대로 안 된다는 점이다. 공간 운영의 방향과 주체마저도 공간이 완성된 이후에 고민하는 일이 많다. 순서가 바뀌어야 한다. 처음 예산과 사업 계획이 정해지면 바로 운영 기획과 방향, 주체 등을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 226개의 전국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공공시설 중에 현재 제대로 활용되지 않거나 방치되어 있는 시설과 공간은 수없이 많이 있다. 그런데도 지역 예술가들이나 활동가들은 공간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이 불균형과 불일치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앞으로 민관 거버넌스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언젠가 공공은 시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말 것이다.

공공 영역의 가장 큰 위험성은 자신의 존재, 즉 정체성을 스스로 완성하려고 할 때이다. 자기 스스로 완결 구조를 갖추려고 하는 순간, 더 이상 공공성이 설 자리는 없게 된다. 공공성은 철저하게 시민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만약 정부나 지자체가 자기 완결성을 갖는 조직이 된다면 대기업과 다를 바 없다. 기업은 이윤을 내기 위해 혁신을 하고 잘못하면 망하기라도 하지만, 공공은 잘 망하지도 않는다. 지금처럼 불확실하고 불안한 시대에 공공의 존재 이유는 더욱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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