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연꽃이 필 즈음에

장정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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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수생식물원과 수목원에 빅토리아연이 피었더라고, 사진작가 친구가 일러주었다. 꽃 중의 여왕으로 찬사를 받는 빅토리아연의 생멸 과정을 보기 위해 수목원으로 갔다. 빅토리아연은 흰 봉우리가 열리고 왕관을 쓴 채로 스러지기까지 사흘 안에 생멸 과정을 다 한다.

사진작가들이 수목원 연지를 둘러싸고 있었다. 모기 때문에 일찍 자리를 뜨지 않기 위해 긴 셔츠와 긴 바지를 입었다. 등으로 땀이 흘렀다. 사람이 올라앉아도 끄떡없을 정도로 크고 단단한 잎사귀 십여 장이 물에 떠 있고, 뜨거운 해를 받으며 연꽃 두 송이가 피어 있다. 열 송이 스무 송이도 아닌 달랑 한 송이, 인심 쓰듯이 그 옆에 또 한 송이. 그 두 송이의 꽃이 사진작가 삼십여 명을 불러 모았다. 빅토리아 연꽃 피어 있는 곳이 수목원뿐이랴. 지난 밤에 생을 마감한 꽃은 생을 다하고도 여전히 붉기만 한데.

새벽에 흰색이었던 꽃이 분홍빛으로 변하다 오후부터 초벌 꽃잎을 벗기 시작했다. 연이 꽃잎을 한 겹 열고 나머지 한 겹마저 열고 있을 때 연지에 꽃의 몸 내음인 듯 향기가 가득 서렸다. 단단히 오므리고 있던 꽃잎이 손으로 젖힌 듯 발딱 일어서며 천천히 뒤로 젖혀지는 모양을 슬로우 비디오를 보듯이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긴 오후가 지나고 어둠이 덮일 즈음 대관식이 가속화되었다. 한 장씩 벗겨진 꽃잎이 꽃받침인 듯 몸을 눕히자 가운데서 꽃술이 올라왔다. 소복하게 자란 꽃술 끝부분이 살짝 젖혀지고 왕관모양이 되며 절정을 이루었다. 서른 명 넘는 사람이 연지를 둘러싸고 있지만 비어 있는 듯 조용했다. 카메라는 꽃이 변하는 매순간을 잡아채어 자동접사로 저장하고, 여왕은 왕관을 쓴 채로 우아하게 스러진다.

단 하루 만에 최고의 순간을 누리고 미련 없이 생을 접는 꽃, 빅토리아연은 겸손과 절제를 아는 꽃이었다. 여느 연과 달리 푸른 잎사귀는 최대한 몸을 낮춰 수면에 납작하게 깔려 있고, 물 위로 얼굴만 살짝 내민 꽃은 그 낮음으로 하여 바라보는 사람들을 고개 숙이게 만든다. 사진작가들이 빅토리아 연의 생멸을 두고 단순히 연꽃이 핀다고 하지 않고, 여왕의 대관식이 열린다고 호들갑을 떠는 이유에 공감했다. 그 찬란한 지존의 아름다움을 꽃의 자존심이라고 해야 할까. 빅토리아 연이 하루 이틀 사흘이 아니라 열흘 보름 끄떡없이 피어 있어도 그렇게 여왕이라는 찬사를 보내며 환호할까. 여름 끝자락의 후덥지근한 더위에 온몸이 땀에 젖고 모기가 극성을 부려 연신 긁어대면서도 차마 발길을 돌리기 어려웠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저물고 만 것이 아쉬웠던지, 스러진 꽃 옆에 어느새 흰 봉우리 하나가 솟아오르고 있어서 내일을 예약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꽃 또한 내일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생생하게 보여줄 터여서. 장정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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