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영원회귀의 오솔길

장정옥 소설가

장정옥 소설가 장정옥 소설가

더위를 밀치고 9월이 온다. 내 가을은 귀뚜라미 울음소리와 함께 시작되곤 했다. 주택에서 아파트로 옮긴 후 귀뚜라미 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했다. 가을보다 먼저 다가와, 문풍지를 흔들듯 삶의 틈새를 비집고 들던 그 소리가 몹시 그립다. 귀뚜라미 소리는 여리면서도 강하다. 기분 좋은 음악처럼 끼륵대던 그 소리는 창을 닫아도 용케 잠결을 비집고 들어 가을이 끝나도록 내 삶의 언저리를 지켰다. 젖먹이들이 성인으로 자라도록 주택에서 살았다. 온 세상이 재개발로 뒤집어지지 않았으면 아름드리 라일락나무가 있던 그 집에서 아직 살고 있을 것이다. 주택의 소멸과 함께 4월마다 골목어귀까지 향기를 날리던 보라색 라일락꽃을 잃었고, 가을 벌레소리를 잃었고, 마당에서 탁구를 치던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를 잃었다. 주택에서만 들을 수 있는 가을 전령사들의 우짖음과 함께 디테일한 아름다움이 사라지고 삶은 급격히 단순화되었다. 가을이 오는데, 벌레울음소리 대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다. 음악을 크게 틀어놓았더니 옆집에서 벽을 쿵쿵 두드렸다. 음악이 들릴 정도로 벽이 얇은가?

32세의 슈트라우스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연주 시간 33분의 교향시를 지었다. 뮌헨대학교에서 철학 강의를 들을 때였다. 그는 니체의 원작 서문을 교향시 서두의 표제로 사용했고, 에피소드를 가져와 제목도 붙이고 설명을 곁들여 아홉 개의 곡으로 나누었다. 슈트라우스는 인간의 기원이 담긴 니체의 사상을 극적으로 구성해내고, 1896년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에서 직접 초연을 했다.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완성한 것이 1884년이고, 12년 후 곡이 발표되었다. 니체가 살아 있을 때였다. 당시 생존했던 두 사람이 직접 만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영혼이 교감을 이루었으리란 연상은 충분하다. 시공간을 초월한 만남. 생각해보니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유의 전부일 것 같기도 하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완성하고 출판사를 찾았지만 책을 내주겠다는 곳이 없어서 자비로 출판했다. 그는 친구가 많지 않아서 고작 일곱 명에게 책을 나누어주었을 뿐이다. 책의 맨 앞장에 씌어 있는 글귀가 책의 내용만큼이나 심오하다. '모든 사람을 위한, 그러면서도 그 어느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 아마도 니체는 이 책이 쉽게 사람들의 이해를 받지 못하리란 사실을 알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니체는 살아서 그 책을 위한 교향시를 받았다. 작가에게 이보다 큰 선물이 또 있을까. 장정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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