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순간이 만드는 평범한 기적

김수경 국악밴드 나릿 대표

김수경 국악밴드 나릿 대표 김수경 국악밴드 나릿 대표

몇 주 전 옮긴 집 창문을 열면 앞으로 뒤로 온통 논이며 밭이다. 그리고 사방으로 둘러싼 굽이굽이 산은 이 곳에서의 새로운 생활을 무척 기대하도록 만든다. 하루하루 다른 해와 바람이 보여주는 주옥같은 창밖 하늘 캔버스, 계절을 거스르지 않고 땅을 일구는 사람들의 모습, 하루에도 몇 번씩 창밖을 내다보며 도시에서는 보기 어려운 모든 것을 신기해하기도 했고 크게 심호흡하며 탁 트인 풍경을 감상하며 지금의 시간과 나의 삶에 마음 놓고 감사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어느새 뜨거운 여름에 접어든다. 온도가 바뀌고 낮의 길이가 길어지고 땅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층을 지어 가지런히 정리된 마른 농경지에 몇 날을 살피며 물이 채워지고 하루 이틀은 하늘이 도와 비가 쏟아지고 나더니 그렇게 마른 땅은 얕은 물로 찰랑이며 하늘을 담는 그릇으로 변해있었다. 땅에 물이 차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리고 한 곳 한 곳 가지런히 줄 지은 초록의 모로 채워지는 변화를 보며 그저 곱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빽빽하게 자라 싱그러운 물결로 일렁일 모습을 그리고 샛노랗게 익어 고개를 숙이고 풍성하고 풍요로운 금빛으로 춤출 땅의 새 모습을 기다리며 자연이 만드는 시간의 마법, 순간의 기적들을 가슴 설레며 지켜볼 것이다. 너무나 기대가 된다.

그러다 문득 생각하게 되었다. 살아있는 생명 중에 영원히 같은 모습인 것은 없구나. 순간순간, 찰나의 짧은 시간동안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며 찰나의 순간을 살고 다음 찰나에 의해, 그 다음 찰나를 위해 계속 바뀌어가며 살아가고 혹은 죽어가고 또다시 살아가고 있구나하고 말이다. 그 속에 수도 없이 많은 움직임이 존재하여 마른 땅이 비옥한 논이 되고 그 결실을 맺은 뒤 다시 겨울을 맞아 다음 봄의 기지개를 기다리는 것을 보자면 아무리 짧은 시간도 무의미하지만 않고 결코 찰나의 순간일지라도 소중하지 않을 수가 없다.

키가 지라고 뽀얀 첫니가 올라오고 잘자고 잘먹고 엎드리는 법, 앉는 법을 깨우치며 1분 1초가 다르게 자라는 딸이 보여주는 기적 역시 이 순간들이 모여 만드는 기적일 것이다. 어찌 무의미하고 소중하지 않을 수가 있으랴! 나 역시도 그러할 것이다. 대지의 흐름에 충실한 봄, 여름, 가을, 겨울처럼 생명의 이클에 맞추어 무한 성장 중인 딸처럼 나 역시 지금에 집중하여 일도 휴식도 온전한 결실을 맺기를, 그렇게 미련 없이 새롭게 만나게 될 순간에도 집중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오늘은 어떤 순간들이 만드는 하루가 될까. 크건 작건 사소하건 대단하건, 중요한 건 그게 아닐 것 이다. 그저 순간순간이 선사하는 기쁨을 만날 수 있기를. 그 평범한 기적으로 하여금 보다 유쾌하고 즐거운 하루가 되기를, 못난 미련과 후회로 낭비하지 않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한다. 김수경 국악밴드 나릿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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