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재의 대구음악유사]껌 씹는 사람들

전 대구적십자병원 원장

"껌을 씹는 유쾌한 씨를 보라/ 껌을 씹는 유쾌한 씨를 보라/ 번득이는 눈 커다란 입술/ 약간 삐뚤어진 코털/ 껍 씹는 방법도 여러 가지/ 앞니로 씹기, 어금니로 씹기, 송곳니로 가르기/ 풍선도 불고, 소리도 내고, 밥 먹은 후엔 항상./ 유쾌한 씨는 유쾌도 하지/ 유쾌한 씨는 유쾌도 하지/ 유쾌한 씨는 유쾌도 하지/ 유쾌한 씨는 유쾌도 하지.-1996년 7월 20일 삐삐밴드의 '유쾌한 씨(Mr. Simpatico)의 껌 씹는 방법'

우리나라 껌은 1956년 해태제과에서 최초로 만들었다. '해태풍선 껌', '설탕 껌', '또뽑기 껌'이 생산되어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사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직후에도 껌은 있지만 국산 껌은 해태가 최초로 만들었다. 나중에는 롯데가 끼어들어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껌의 대량 생산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해방 때 미군을 따라 들어 온 껌은 당시 일반인들이 즐기기에는 귀한 물건이었다. 키네마 극장 앞이나 동성로, 중앙통에서 애들이 미군들의 뒤를 따르며 '기브 미 어 껌'이라며 제법 영어를 쓰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우리말로 외쳤다.-'할로야 껌 좀 도고'라고.

미군들이 껌을 던져주면 모이 쪼는 닭 모양 애들이 머리를 박고 껌을 주웠다. 어떤 애들은 껌이 생기면 1박 2일도 씹기도 했다. 낮에 씹던 껌을 벽에다 붙여 놨다 다음 날 아침에 떼서 다시 씹었다. 점방에서 껌을 팔기도 했는데 전부 불량품이었다. 너무 단단해서 씹을 수가 없는 것도 있고 어떤 껌은 씹다 보면 건더기가 없어지기도 해 복불복 심정으로 껌을 씹기도 했다. 밀 한 웅쿰 입에 털어 넣고 씹다가 나중에 덩어리가 생기면 그 것을 껌처럼 씹었다. 양초도 씹었다. 어떤 것은 한 참 씹으면 찌꺼기가 남아 씹히는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유교 풍습이 짙게 남아 있던 시절이라 껌이 미군 병사나 양공주(洋公主)등을 통해서 시중에서 거래된 것들인데다가 짝짝 소리를 내며 껌을 씹는 모습이 경박스럽다고 껌 씹는 사람은 깔보았다. 1947년경에 '국치낭(國恥娘)'이라는 말까지 있었다. 나라를 치욕스럽게 하는 여성이란 뜻인데 당시 껌은 화류계 여성들이나 미군 위안부들이 많이 애용해서 그런 말이 나온 것 같다.

"구찌베니(빨간 입술) 화장, 빠마(퍼머넨트)머리, 종아리 노출, 빼딱구두(뒷 굽 높은 구두), 길거리에서 껌 씹는 여자"는 나라를 망신시킨다고 그런 말이 나왔다. 2018년 12월 27일 서울 봉천동에서 시흥동 가는 서울시내 버스 안 안내판에 다음과 같은 글이 붙어져 있었다. "공공장소에서 음식물을 먹거나 껌 소리를 내는 것은 흉한 행동이다. 껌은 천박하고 넉살 좋은 늙은 여자가 씹는 것이다"는 내용이다. 너무 거친 내용이라 광고는 몇 시간 뒤 삭제되긴 했다. 이런 일화를 보면 껌 씹는 여자에 대한 편견이 아직도 일부 사람들에는 지속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문물이 발전하면 그에 따르는 문화도 함께 성장해야 한다. 서양 문물이 들어오면 그들의 예의범절도 배워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 껌 씹는 행동을 보면 옛날 껌 씹는 사람을 조롱하는 말이 다시 등장해야 할 것 같다. 중앙로나 동성로의 보도는 물론이고 큰 거리 버스 정류장 부근에는 온통 뱉어 논 껌투성이다. 바닥에 다닥다닥 붙은 검은 반점을 외국인들이 보면 대구 시민들이 무슨 전위 예술하는 줄 착각할 정도이다.

껌 씹고 종이에 싸서 버리는 사람보다 아무 데나 뱉어 버리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이런 인간들이 큰 광장에서 종교모임을 하면 쓰레기 하나 버리지 않는다. 정말 얄밉다. 때와 장소에 따라 행동을 달리하니 말이다. 젊은이들은 길바닥에 껌을 뱉는 갑질을 하고 가난한 그들의 엄마들은 자식들의 껌 값을 보태주기 위해 주걱 칼로 인도에 눌어붙은 껌을 떼느라 오늘도 허리가 휜다. 누구는 인삼 뿌리 먹고 누구는 무 뿌리 먹는 세상이다.

전 대구적십자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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