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들여다보기]변화를 이끈 북한의 손 전화기

허영철 공감씨즈 대표 허영철 공감씨즈 대표

'친구야 생일 축하해' '너의 눈이 항상 반짝이고' '지망한 대학 찰떡같이 딱 붙어야 해!' '너의 미래가 창창하길' '기도할게' '17살 순정, 너의 딱친구로부터'.

2015년 일본의 북한 전문 매체인 아시아프레스가 북한 주민들이 주고받은 메시지를 입수해서 보도한 내용들이다. 우리네 청년들이 주고받는 메시지 내용과 큰 차이가 없다. 이처럼 북한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시그널 중의 하나가 휴대전화이다.

북한 말로 휴대전화는 손전화기라고 한다. 북한의 휴대전화 보급 확대는 북한 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원동력 중의 하나이다.

1995년 태국의 록슬리 그룹은 대만과 핀란드의 통신회사와 공동으로 록슬리 퍼시픽을 설립해 북한의 동북아전화통신회사와 함께 나선시(나진·선봉)에 북한 사상 처음으로 휴대전화 서비스를 시작했다.

2002년에는 평양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휴대전화 서비스를 시작했으나 비싼 가격과 인프라 부족 등으로 생각한 만큼 휴대전화 사업이 활성화되지 않자 록슬리는 더 이상의 사업 확대를 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게 된다. 때마침 터진 룡천역 폭발 사고가 휴대전화를 통한 정보 유출에 따른 사고라고 판단한 북한 당국은 당시 2만 대에 달하던 휴대전화를 전부 몰수 조치했다.

그러다가 북한의 휴대전화 사업이 다시 시작된 것이 2009년 3월의 일이다. 사업 재개 이유는 경제 활성화와 외자 유치가 명분이었다고 한다. 당시 장마당을 비롯한 시장경제가 활성화하면서 북한 주민들의 휴대전화 사용 요구가 높아진 것을 더는 막을 수 없다 보니 경제 활성화라는 명분으로 포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재개된 휴대전화 사업은 사업체가 바뀌게 된다. 이집트의 오라스콤과 북한 정부가 합작회사를 만들어 '고려링크'라는 휴대전화 통신사를 설립해 서비스가 재개됐다.

2014년 미국 RFA(자유아시아방송) 보도에 따르면 북한의 휴대전화 가입자 규모는 240만 명으로 성장했으며, 2014년 당시 환율로 북한 돈 1천원(달러로 약 12센트, 한화 129원)으로 한 달 200분 무료 통화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저렴한 휴대폰 요금 정책이 북한 휴대전화의 확대에 더욱 기여한 것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2018년 11월 국회 상임위에 출석한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북한의 휴대전화 보급률을 600만 대 정도라고 답변했다. 이로 미뤄 짐작건대 지난 10년간 북한 휴대전화 보급의 성장은 북한 사회와 북한 주민들의 일상생활 패턴을 완전히 바꿔 놓은 사건인 것이다.

북한의 휴대전화는 한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휴대전화처럼 전 세계인들과 인터넷으로 연결된 휴대전화는 아니다. 인트라넷으로 북한 내에서만 연결되는 통신망을 사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대전화를 통한 북한 주민들의 의사소통 확대는 북한 사회의 일상을 바꾸고 있고, 장마당을 비롯한 시장경제의 진화와 더불어 사용되는 필수 생활품이 되었다.

최근에는 북한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해서는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 인스타그램에 실시간 사진이 올라오기도 하고, 일전 방북한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북한에서 트위터로 실시간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우리에게 당연하게 보이는 이러한 모습들이 북한 내 변화를 보여주는 신호다. 그리고 변화의 가능성에 무게를 둘 필요가 있다. 한국 사회가 지난 10년 동안 스마트폰을 통해 5G로 나아가는 엄청난 변화를 겪어 왔듯이 북한 사회도 휴대전화 보급 대수 600만 대 시대가 되었으니 더 많은 변화의 가능성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남북 경제 교류 시대가 성큼 다가와서 전 세계인들이 사용하는 한국 브랜드의 휴대폰을 북한 주민들이 구입해 사용하는 그러한 날이 오길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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