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탐방]김승영 '신라를 다시 본다' 국립경주박물관(3월 3일까지)

김승영 작 김승영 작

 

15년 쯤 전인가, 설법을 듣다가 알게 된 교리가 있다. 불교에서는 남녀의 사랑을 여섯 가지로 나눈다. 색욕, 인상욕, 형모욕, 언어음성욕, 세활욕, 위의자태욕이다. 흔히 이야기되는 색욕은 주로 시각적인 면에서 비롯되고, 인상욕은 상대의 사랑스런 용모에 혹하는 욕정이다. 형모욕도 인상욕과 비슷한데, 전자가 이목구비의 예쁨 때문이라면 형모욕은 스타일에 관한 끌림이다. 언어음성욕은 목소리나 말투 같은 청각적인 면으로 유혹하는 탐욕이며, 세활욕은 살결의 느낌 같은 촉각적인 욕정이다. 향기를 맡는 후각이 빠졌네. 뭐가 모자라거나 겹치거나 간에 불교가 인식하는 에로스는 야훼 혹은 여호와라는 유일신을 섬기는 유대교 천주교 이슬람교 개신교 등과 달리, 아주 골똘히 분류되고 고찰된다. 기도 정진의 끝이 해탈이 맞나 싶을 정도다. 집착과 해탈은 통하는 모양이다.

김승영의 작품 '슬픔'이 전하는 명제는 바로, '고요한 부처의 마음에도 다양한 감정들이 있다'는 가정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설치미술가 중 한 사람인 그는 국립경주박물관이 개관 이래 최초로 기획한 현대 미술 전시 '신라를 다시 본다'에서 벽돌 더미 위에 앉은 부처를 공개했다. 작가가 따로 진행해오던 벽돌에 텍스트를 남기는 작업과 불상 조각 작업이 이번 전시에서 만난 셈이다. 신라로부터 전해온 반가사유상을 재현한 그 자태는 웬일인지 슬픔이 깃들어있다. 해탈과 초월의 경지에 오른 부처가 슬픔을 품었다니. 눈물을 흘리듯 고개 숙인 그 모습을 보는 관객들은 수긍이 되다가 안 되다가 한다. 불교의 신론은 무결점의 전능한 신이라기보다 모든 부족함과 그릇됨을 품은 그 자체로서의 존재에 가깝다.

슬픔 실망 갈등 반성 불안 권태 상실 수치심 무안 멜랑콜리 고립감 비애 등과 같이 부정적인 뜻의 낱말이 벽돌마다 새겨져 있다. 이는 희망 부드러움 안도 포옹 자유 동행 행복처럼 좋은 뜻의 단어가 새겨진 벽돌들과 어울려 사랑의 감정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슬픔도 사랑도 그 속에는 단지 하나가 아니라 수많은 복잡 미묘한 감정의 총체란 걸 알고 있다. 왜 사랑에 빠지면 마냥 행복하지 않지 않고, 더 외로워질까? 사랑 또한 충만함 대신 비워냄을 더 가치 있게 여기는 불교의 인생관에서 보자면, 김승영의 '슬픔'은 단순히 유쾌하지 못한 비탄이 아니라 희열에 가까울 수도 있다. 작가도 보살상을 조각하고, 벽돌에 말을 한 자씩 새겨 넣을 때, 분명히 그런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윤규홍 (갤러리분도 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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