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흔적] <13> 비녀

조선 후기 부인들 쪽 찐 머리에 꽂으며 일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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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녀는 내면세계를 드러내는 장신구이다. 그래서 여인이 비녀를 잃거나 빼면 정절이나 긍지를 잃는 것을 뜻한다. 그런가 하면 외형상 남근을 상징하며, 남자를 경험한 여인 즉 기혼녀만이 꽂을 자격이 있다. 다만 단옷날에 한해서 처녀도 창포 뿌리를 깎아서 만든 비녀를 꽂을 수 있다. 단오는 4대 명절 가운데 하나이다.

예부터 혼인한 여인은 머리를 곱게 빗어 둥글게 쪽을 찌었다. 그렇게 다듬어서 틀어 올린 머리가 풀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비녀를 꽂았다. 또한 관(冠)이나 가체(加髢)를 머리에 고정시키기 위하여 꽂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남자들이 관을 쓸 때 벗겨지지 않도록 고정시키는 용도로 쓰였다. 그러다가 조선 후기에 이르러 부인들의 쪽찐 머리에 꽂는 것이 일반화되면서 여인들의 전용물로 인식되었다.

조선 중기에 이르러 가체에 의한 얹은머리가 유행하였다. 얹은머리는 본머리와 다리를 합쳐 땋아서 위로 둥글게 둘러 얹은 모양을 이르는 말이다. 그때 다리를 본체에 고정시키기 위해 비녀를 꽂았다. 그밖에도 궁중 의식용인 큰머리, 궁중이나 양반 집안의 예장용인 어여머리에도 비녀를 사용하여 가체를 고정시켰다.

얹은머리는 그에 소요되는 다리의 값이 지나치게 고가였다. 그뿐 아니라 장식을 위한 금옥주패(金玉珠貝)의 사치가 날로 더하였다. 그런 폐단이 심해지자 영․정조 때에 이르러 발제개혁(髮制改革)과 더불어 이에 대한 금령이 여러 차례 있었다. 순조 때에 이르자 쪽머리가 일반화되면서 비녀가 다채로워졌을 뿐 아니라 기교도 크게 발달하였다.

비녀는 관을 고정시키는 데도 사용되었다. 남자들의 경우 면류관에 꽂는 옥잠도(玉簪導) 또는 금잠도(金簪導), 조정 신하의 양관(梁冠)에 꽂는 각잠(角簪)이 있었다. 여인들의 경우에는 화관(花冠)에 비녀를 꽂아서 관을 고정시켰으며, 신분에 따라 사용에도 차별이 있었다. 상류층에서는 계절과 용도에 따라 금은주옥(金銀珠玉)을 다르게 사용하였으며, 민서들은 나무나 뿔, 백동이나 은 종류 외에는 사용할 수 없었다.

비녀의 종류는 참으로 다양하다. 모양은 한쪽 끝이 뭉쳐져 빠지지 않도록 되어 있는데, 그 부분을 비녀머리라 한다. 비녀머리에 장식이 있는 비녀를 꾸민잠, 별로 꾸밈이 없는 비녀를 민비녀라 한다. 또한 재료에 따라 금․은․백동․놋․진주․옥․비취․산호․나무․뿔․뼈 비녀로 나눈다. 그리고 비녀머리 형태의 장식에 따라 용잠(龍簪)․봉잠(鳳簪)․원앙잠(鴛鴦簪)․불두잠(佛頭簪)․어두잠(魚頭簪)․모란잠(牡丹簪)․석류잠(石榴簪) 등으로 구분한다. 이 같은 비녀머리에는 부귀․장수․다남을 상징하는 길상(吉祥) 문양을 조각하거나 보석류를 박은 것도 있다. 그리고 실용성 외에도 장식과 신분을 상징하는 장신구였다.

김종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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