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을 걷다, 먹다] 23. 안동의 맛, 고향묵집

안동에 살기 시작했다. 서울이나 대구 등 대도시에 비해 안동에 사니 편안하다. 안동은 좋다. 날마다 안동을 걷고 안동 음식을 먹는다.

익숙한 그것들이 어느 날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동의 주름살이 보이기 시작했고 안동이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안동국시와 안동찜닭, 안동간고등어 혹은 헛제사밥의 심심한 내력도 내 귀에 속삭거리기 시작했다.

무심했던 안동에 대한 내 시선이 한결 부드러워졌고 투박한 내 입맛도 호사스럽게 안동을 먹게 됐다. 안동에 대한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그냥 안동이야기다.

사진: 고향묵집의 기본 찬 (저녁상) 사진: 고향묵집의 기본 찬 (저녁상)

23번째 이야기 안동의 맛. 고향묵집

맛있다, 딱 맞다, 됐다, 괜찮다. 경상도식으로 음식의 맛을 표현하는 말은 간단해보이지만 오묘하다. 맛있다는 것인지 그만하면 그냥 대충 먹을만하다는 것인지 아니면 맛이 없다는 뜻인지 종잡을 수 없을 때도 있다. 그러나 '됐다'는 정도의 표현은 '맛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안동에서는 '쓰다 달다 짜다 싱겁다 혹은 간이 어떻다'는 식으로 음식에 대해 투정을 부리지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어머니의 손에서 나온 음식처럼 맛있게 받아들인다. 달착지근하고 입에 착 달라붙는다는 식의 시시껄렁한 수식이나 허세도 부리지 않는 게 이 동네의 법도다.

'안동국시'의 슴슴한 맛이나 '안동간고등어' 구이나 찜의 담백함에 굳이 '자질부레한'(군더더기같은) 수식어가 붙을 계제는 아예 없는 셈이다. 있다면 북어를 다듬어서 보푸라기처럼 긁어내는 정성 가득한 '북어보푸라기'에 경탄을 금치 못하고 지르는 '아'하는 탄성뿐이다.

외지인들이 안동에 와서 즐겨먹는 음식 중에 '헛제사밥'이 있다. 차례나 제사를 지내지 않고서 제사때 음복으로 먹던 음식을 흉내낸, 즉 '가짜 제사밥'이라는 뜻이다. 제사를 지낸 후 먹는 음식은 양념간을 하지 않아서 경상도식 표현을 빌자면 '밍밍하다.' 그래서 제사상에 올랐던 음식들을 챙겨서 탕국을 끓여 함께 먹는 것이 제삿밥인데, 제사음식이 푸짐하니까 남들 보기 민망해서 헛제사를 지내고 몰래 먹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헛제사밥이라고 부르지만 한상가득 올라오는 반찬들은 여느 대갓집 주안상 부럽지 않을 정도다. 안동소주나 안동막걸리 한 잔 하기에 좋다.

사진: 안동국시 건진국시다. 사진: 안동국시 건진국시다.

그렇다고 이처럼 '슴슴하고 밍밍한 그야말로 담백한' 맛을 경상도 특히 안동의 맛이라고 특징 짓거나 대표한다고 치부할 수는 없다.

'안동은 맛있다.'

안동시내에는 도처에 웬만한 도시처럼 온갖 종류의 식당이 즐비하고 안동한우로 만든 안동갈비골목이 있고, 당면을 넣어 조리한 독특한 안동찜닭 골목도 사람들의 발길을 당긴다. 고춧가루를 넣은 물김치같은 비주얼의 '안동식혜'는 먹어보지 않고서는 그 맛을 감히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조선 선조 때 좌의정을 지낸 권철(1503~1578)이 어느 날 벼슬에서 물러나 경북 안동으로 내려와 지내는 퇴계 이황을 찾았다. 퇴계는 끼니때가 되자 손님상을 내오도록 했다. 세계 10위안에 드는 잘사는 요즘에는 종가집의 '접빈'(接賓) 음식은 정갈하면서도 품위있는 '7첩 반상'을 내놓겠지만, 퇴계의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퇴계는 평소는 물론 손님이 와도 한결 같았다.

말이 손님상이지, 보리밥에 산나물과 가지무침과 미역 등 반찬 세 가지가 전부였다. 퇴계는 마치 기름진 고기를 먹는 듯 맛있게 밥을 먹었다. 반면 따로 상을 받은 권철은 한양 입맛에 맞지 않는 밥상에 제대로 밥을 먹지 못했다.

퇴계의 집에서는 정승의 밥상이라고 해서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선비길이 시작되는 선성현 객사에 퇴계의 밥상이 재현돼있다.

이처럼 내륙 깊숙한 안동의 밥상은 소박하다 못해 초라했다. 해산물과 젓갈류가 풍부한 전라도의 여염집 밥상에 비한다면, 퇴계의 밥상은 머슴의 밥상보다 나은 게 없었다.

사진: 안동 고택 오류헌의 아침상 닭죽과 문어 등 대여섯 가지 찬이 나온다. 사진: 안동 고택 오류헌의 아침상 닭죽과 문어 등 대여섯 가지 찬이 나온다.

안동 등 경북 북부에는 종가집이 유달리 많이 있다. 문화재로 지정된 종가만 120여 곳에 이른다. 종가집 마다 나름의 문중음식이 전해 내려오고 있고 주조법도 남달랐다. 반가(班家)마다 손님 접대가 달랐고 제례법도 달랐다. 손님을 대접하는 '접빈'(接賓)과 조상을 모시는 제례(祭禮)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음식과 술이었다.

이 지역에서 전해내려 온 대표적인 고(古)조리서는 '수운잡방'과 음식디미방, 온주법 그리고 시의전서다.

지금의 안동음식은 종가음식이 대중화된 측면이 강하다. '간고등어'와 '문어'가 제수의 중심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고조리서 중에서 수운잡방은 안동 군자마을의 광산 김씨 예안파의 시조 김효로의 둘째 아들인 탁청정 김유와 그의 손자 김령이 공동저술한 한문본 음식 조리서로 국내에서는 가장 오래된 조리서다. '온주법'은 내앞마을 의성 김씨 낙봉파 김시우 씨가 소장하고 있던, 1700년대 후기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작자 미상 한글 조리서다. 이런 종가음식의 전통이 자연스럽게 대중화된 것이 지금의 안동음식이다.

그 식당, '고향묵집'

사진: 안동문어숙회 사진: 안동문어숙회
사진: 경상도식 무전 사진: 경상도식 무전

어느 도시에 가더라도 골목 안 깊숙이 숨어있는 보석같은 오래된 식당이 있다.

봄비 내리는 고즈넉한 봄날에는 '배추전'이나 '부추전' 한 장 부쳐놓고 막걸리 한 잔 편안하게 마시고 싶은 그런 고향집 같은 식당 말이다.

안동 신시장에서 한 블록 너머 역시 안동우체국과 안동교육청이 자리한 오래된 구도심에 속한다. 우체국 건너 그 골목 살짝 들어간 동네가 '당북동'이다. 그 골목 눈에 띄는 입구 쪽에 자리잡은 '고향묵집'이 있고 더 들어가면 돼지국밥 식당과 안동칼국수 식당 순대국밥집도 보인다.

그 자리에서만 13년이나 됐다. 1997년 고향묵집이라는 상호의 식당을 열 때는 지금의 안동세무서 앞에 있었다. 고향묵집은 애초 '묵' 잘하는 식당으로 이름이 났다. '손맛' 좋은 사장님이 묵을 쑤어서 차린 식당이었는데 내 입맛에는 그것이 안동의 맛이라 느껴진다. 여기선 안동국시와 메밀묵을 주재료로 한 '태평초'가 가장 인기를 끄는 메뉴다.

종편의 유명 먹방 프로그램였던 '수요미식회'에 소개된 적이 있을 정도로 이 식당의 명성은 자자하다. 북어찜과 오징어와 낙지 명란젓갈 등 입맛을 돋우는 철마다 다른 젓갈과 나물무침 등 어느 것 하나 정갈하지 않은 찬은 없다.

이 식당 음식의 압권은 안동이 자랑하는 적당히 삶아야 탄력 있는 문어숙회나 수육이 아니다. 겨우내 잘 저장한 제주무를 얇게 저미듯 썰어 부쳐내는 '무전'이 가장 맛있을 때가 지금이다. 경상도식 배추전과 파전은 '장물'이 아니라 초장에 찍어 먹어야 제맛이 난다는 것을 여기 와서야 확인할 수 있다. 장물은 헛제사밥에 넣어 비빈다면 심심한 안동국시에 간을 할 때는 장물이 아니라 간장에 파 송송, 고춧가루 한 숫갈 투하한 빨간 '장물'을 넣어야 제대로 국시 맛이 난다는 것도 배운다.

사진: 안동신시장 노점의 안동간고등어 사진: 안동신시장 노점의 안동간고등어

고향묵집에서는 특별히 메뉴를 시키지 않더라도 사장님이 알아서 주는 대로 먹는 방법도 편하게 선택할 수 있다.

봄비는 내리지 않더라도 오늘 같이 봄볕 좋은 저녁 무렵, 퇴근 후 낙동강을 가로질러 구도심 언저리를 어슬렁거리다가 그 식당에 들어서면 간혹 지인 한 둘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 정도로 안동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진 식당이다.

물오른 '무'를 적당한 두께로 잘라 전을 부치면 무가 익으면서 내는 시원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배가된다. 고향묵집에서 처음으로 '무전'을 만나는 날에는 아주 어릴 적 어머니가 해주시던 그 무전 맛이 떠올랐다. 입맛은 혀에서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가슴 속 깊숙이 간직하고 있는 기억을 되살려낼 때 더 감동을 받는다. 아마도 경상도 지방 이외에서도 군것질거리로 무전을 해먹었을 텐데 그 기억이 생생한 건 내가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구순이 가까워진 어머니는 고향집에 다니러 갈 때마다 어린시절에 내가 맛있게 먹던 음식들을 기억해내서 당신이 꼬부랑 할머니가 됐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곤 부엌에 서곤 한다.

사진: 시레기무 콩나물을 넣은 비빔밥 사진: 시레기무 콩나물을 넣은 비빔밥

고향묵집에선 후식까지도 호사스럽다. 마지막엔 늘 안동식혜를 먹는다. 시중에 파는 '비락식혜'는 안동에선 식혜가 아니라 '감주'다. 술이 아니지만 달콤한 맛에 '단술'이라고도 불렀다. 안동식혜는 아무리 포식을 해도 소화를 도와주는 그런 엄마의 '약손'같은 후식이었다.

아니면 저녁 든든히 먹고 가라며 슬쩍 내어주시는 '시레기무 비빔밥'도 고향묵집의 별미중의 별미로 꼽힌다.

'고향묵집'(054-855-3077)은 간혹 예약하지 않고 갔다가 자리가 없어 낭패보기 십상이다. 안동여행을 계획한다면 2~3일 전에 미리 전화를 해서 예약하는 것이 좋다.

예미정의 수육 한 접시 예미정의 수육 한 접시

안동에는 고향묵집 외에도 유명한 먹방 프로그램에 소개된 맛있는 식당들이 꽤나 많다. 그러나 진짜 안동의 맛은 종가음식보다는 그저 시장통 한 귀퉁이에 있는 낡고 오래된 식당에서 오히려 더 제대로 느끼기도 한다.

시내를 다니다보면 '간고등어구이'를 맛있게 하는 식당도 많고 안동갈비를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많이 먹으면 지갑이 가벼워지는 단점이 있지만) 갈비골목도 있고, 헛제사밥이나 찜닭 혹은 안동 권씨 종가음식을 정성껏 내놓는 대감댁 같은 '예미정' 도 있다. 오래된 짜장면을 먹을 수 있는 중화반점도 안동세무서 앞의 서울식당 등 여럿 눈에 띈다. 그런 맛이 모두 안동을 맛있게 하는 다양한 맛이다.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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