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범죄 혐의자들이 법을 주무르는 희한한 나라

윤석열 전 검찰총장 사퇴 다음 날인 5일 현직 대구지검 서부지청 검사가 검찰 내부망에 '법무부 장관님, 살려주십시오'라는 풍자글을 올려 "현재 중대 범죄로 취급하여 수사 중인 월성원전 사건, 라임·옵티머스 사건, 김학의 출국금지 사건 등에 대한 수사를 전면 중단하고, 현재 재판 중인 조국 전 장관과 그 가족 등 사건, (청와대) 울산시장 하명수사 사건 등에 대해서도 모두 공소를 취소하면, 저희 검찰을 용서해 주시겠느냐"며 여권이 신설을 추진하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의 목적이 정권 관련 수사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역대 정권에서도 검찰은 정권 핵심의 비리를 수사했다. 김영삼 정부 때는 검찰이 대통령 아들 김현철 씨를 구속했다. 김대중 정부 때는 대통령의 셋째 아들 김홍걸 씨를 구속한 데 이어 한 달 만에 둘째 아들 김홍업 씨까지 구속했다. 이명박 정부 때는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을 구속했다. 비리가 있으면 대통령의 자식이나 대통령의 형도 가리지 않았던 것이다. 전임 대통령들은 '대국민 사과'를 했지, 검찰을 해체하겠다고 덤비지는 않았다. 그 정도의 국정 철학과 원칙, 양심은 있었다.

문재인 정권은 검찰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그 일가 수사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혐의 수사를 시작한 이래 전방위적으로 검찰을 압박했다. 솎아내기 인사, 수사 검사 좌천, 친정권 검사 요직 배치로 수사 방해, 특정 사건에 대한 검찰총장 수사지휘권 박탈, 검찰총장 직무 정지, 헌정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징계 등 그야말로 미친 듯이 몰아쳤다. 그뿐만 아니라 검경 수사권 조정, 검찰의 수사와 기소권 분리, 공수처 설치에 이어 검찰에 남은 6대 중대 범죄 수사권까지 박탈하는 중수청을 추진, 사실상 검찰 해체로 나아가고 있다.

이용구 법무부 차관은 법무실장이던 지난해 4월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조국 전 장관 일가 수사를 비난하며) (허위) 표창장은 강남에서 돈 몇십만 원 주고 다 사는 건데 그걸 왜 수사했느냐!"고 따졌다. 범죄를 나무라는 게 아니라 수사를 나무란 것이다. 현 정부 여당이 꼭 이렇다. 산 권력의 위법을 비난하는 대신 위법을 수사하는 검찰을 비판한다. 범죄를 덮고 수사를 막기 위해 법까지 마음대로 주무른다. 범죄 혐의로 기소된 자들이 수사 관련 법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나라에 우리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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