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종문의 한시산책] 붕새도 안 부럽소 - 장유(張維)

백로는 원래 희고 까마귀는 원래 검고 白鷺自白烏自黑(백로자백오자흑)

반 희고 반 검은 건 가지 끝의 까치라오 半白半黑枝頭鵲(반백반흑지두작)

하늘이 만물 낳아 그 모습을 부여한 걸 天生萬物賦形色(천생만물부형색)

희고 검은 빛깔로써 선악이라 할 순 없소 白黑未可分美惡(백흑미가분미악)

비단보다 더 찬란한 제 무늬에 반한 꿩이 山鷄文采錦不如(산계문채금불여)

맑은 못에 비춰보다 물에 빠져 죽잖아요 照影淸潭或自溺(조영청담혹자익)

가지 하나 위에 사는 뱁새가 불쌍타고? 獨憐鷦鷯占一枝(독련초료점일지)

천만에! 저 하늘 나는 붕새도 안 부럽소 逍遙不羨垂天翼(소요불선수천익)

* 원제: 古意

다 알다시피 백로는 희고 까마귀는 검다. 그것은 스스로의 자율적인 의지에 따른 주체적인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타고난 색깔이 원래부터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백로는 선(善), 까마귀는 악(惡)이라며 제 마음대로 규정하곤 한다. "가마귀 디디난 곧애 백로야 가디 말아/ 희고 흰 긷헤 거믄 때 무칠셰라/ 딘실로 거믄 때 무티면 씨을 낄히(씻을 길이) 업사리라" 선오당(善迃堂) 이시(李蒔: 1569-1636)의 '오로가烏鷺歌'라는 작품인데, 이 시조도 그와 같은 인식의 소산임은 말할 것도 없다.

태어나 보니 백로는 이미 백로였고, 까마귀는 이미 까마귀였다. 그런데도 날개의 빛깔을 유일한 기준으로 하여 선악을 함부로 규정하다니,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가? 물론 말이 될 리가 없다. 따라서 백로와 까마귀에 대한 이와 같은 일방적 인식은 피부색의 흑백을 유일한 기준으로 한 인종차별과 아무것도 다를 바가 없다. 그러니까 사물의 색깔은 애초부터 선악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아름다운 피부색이 오히려 난데없는 불행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예컨대 장끼의 털은 아름답지만, 그 고혹적인 아름다움에 스스로 도취되어 물에 빠져 죽는다. 제가 생각해도 너무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그 아름다움에 익사한 여자들도 한둘이 아니다.

뭐라고, 뱁새가 붕새를 따라가려다가 가랑이가 찢어지는 수가 있다고? 정말 터무니가 없는 흑색선전이고 유언비어다. 그런 헛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먼저 꿀밤을 몇 개씩 선물하고 싶다. 그리고 나서 변소 청소를 시킨 뒤에 이런 시를 들려주고 싶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느냐고?/ 그럼 수박에다 줄 지우면 호박 되나?/ 웃기네, 호박이 언제 수박 될라 카더나?"(졸시, '천만에')

이종문 시조시인(계명대 한문교육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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