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 엄마 때문이잖아!

소아재활분야가 전공이다 보니 한 환자를 10년 넘게 보기도 하고, 갓난아기일 때 만나서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인이 될 때까지 만나는 환자도 있다. 그러다 보면 학교에서 상받은 얘기, 부부싸움한 얘기 등 그 가족의 속내까지 나누게 되기도 한다.

현수 씨는 뇌병변을 가지고 태어난 경직성 뇌성마비 환자였다. 하지만 걸음걸이말고는 인지기능도 좋아서 좋은 대학교를 졸업한 인재였다. 아버지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한 분이었고,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한 현수 씨를 뺀 다른 자식들은 다 좋은 직업을 가진 것 같았다. 현수 씨는 성인 환자인데도 늘 어머니와 동행했었다. 현수 씨의 어머니에게 그 아들은 아픈 손가락 중의 아픈 손가락인 듯 했고, 엄마로써 그 인생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훤히 눈에 다 보이는 그런 분이었다.

하루는 내가 지시한 운동을 게을리하고 보행이 불편해져 내원했었다. 어머니가 진료중에 "너 앞으론 꼭 운동해라"고 한마디를 거드시는데, 현수 씨가 갑자기 벌컥하며 "다 엄마 때문이잖아! 엄마가 나를 병신으로 낳아서 이렇게 고생하는 거쟎아!"라고 말했다.

순간 나도, 현수 씨의 어머니도 할 말을 잃었다. 그러다 어머니가 돌아 앉아 우시는 거였다. 나는 너무 어이가 없었다. 이게 마음졸이며 나이 서른 되도록 키운 엄마가 들을 얘기인가.

내 환자 중에는 부모가 게임중독에 빠져서 7살짜리 누나가 1살짜리 동생의 분유를 태웠다는 얘기도 들었고, 친아빠가 딸을 성폭행해 신고당한 환자도 있었다. 그 뿐인가. 부유하고 배운 집안인데도 아이가 기형을 가지고 태어나니 신생아실에서 바로 입양보내는 부모도 봤다. 물론 각자의 사정이 있고 힘듬이 있겠지만 적어도 현수 씨는 어머니에게 그러면 안되는 거였다.

"현수 씨가 장애가 있고 불편해서 힘든 거 나는 다는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를 해요. 하지만 현수 씨 어머니는 당신을 낳아줬고, 버리거나 포기하지 않았어요. 지금은 성인이 되었는데도 비싼 대학병원까지 찾아와서 진료받게 하고, 뭐라도 해달라고 하시죠. 이 세상에서 그게 당연한 권리는 아니예요. 자기 잘못도 아닌데 아프게 태어났다고 버림받고, 빵셔틀하고, 놀림받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사는 사람도 정말 많거든요. 게다가 어머니는 현수씨를 똑똑하게 낳아줬어요. 현수 씨가 노력한 것도 있겠지만 제 환자중에는 뇌손상이 심해서 엄마 소리 한번 못하고 죽는 애들도 있어요. 현수 씨가 대학까지 간 게 100% 현수 씨의 노력이라고 생각해요? 내 친구중에는 5등하는데도 가정형편 때문에 자퇴한 친구도 있어요. 현수 씨는 이제껏 끼니걱정하며 산 적 있어요? 그게 현수 씨 노력때문인가요?"

손수민 영남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손수민 영남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세상에는 본인의 힘듦에 늘 남탓을 하는 사는 사람이 있다. 누가 날 힘들게 하고, 그래서 나의 비난을 받아 마땅하고, 다른 사람들은 나를 배려해주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힘든 사람을 주위에서 돕는 게 마땅하지만 본인 스스로도 해야 할 일이 있다. 좌절보다는 손톱만큼일지언정 긍정을 선택하는 것, 어차피 똑같은 상황이라면 조금이라도 좋게 생각하는 것이 본인 마음도 더 편하고 어두운 동굴을 걸어나갈 힘도 생길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현수 씨가 어둠을 걷고 긍정을 택하길, 그리고 희망을 선택해 이룬 성공의 기억으로 이 험한 세상에 단단히 자리매김하길 기도한다.

손수민 영남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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