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오기연저(吳起吮疽)의 리더십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8일 오후 전북 군산시 코로나19 백신접종용 최소잔여형(LDS) 주사기 생산시설인 풍림파마텍에서 생산라인을 시찰하며 주사기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8일 오후 전북 군산시 코로나19 백신접종용 최소잔여형(LDS) 주사기 생산시설인 풍림파마텍에서 생산라인을 시찰하며 주사기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상헌 선임기자 이상헌 선임기자

드디어 국내에서도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다. 지난해 12월 8일 영국의 90세 마거릿 키넌 할머니가 세계 최초로 예방주사를 맞은 지 80여 일 만이다.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은 26일,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은 27일부터 접종에 들어간다.

하지만 박수 치고만 있을 일은 아니다. 대다수 국민들의 불만처럼 너무 늦었다. 영국 옥스퍼드대의 통계 사이트 '아워 월드 인 데이터'(Our World in Data)를 보면 OECD 37개국 가운데 아직 백신 접종이 이뤄지지 않은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다.

안타깝지만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란 속담 역시 현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다. 백신 접종률 세계 최고인 이스라엘에서조차 여전히 신규 확진자가 매일 수천 명씩 쏟아진다. 세계적인 물량 부족으로 백신 확보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1호 접종자를 둘러싼 정치권 공방은 가뜩이나 힘든 국민을 더욱 짜증 나게 한다. 불안감 해소를 위해 대통령이 솔선수범하란 야당 요구에 청와대는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1호가 대신 되겠다며 엄호에 나선 여당 의원들의 충성 경쟁은 낯 뜨겁기만 하다.

어쩌면 매년 백신을 맞아야 할지도 모를 판에 누가 먼저 맞는다 해도 비난할 일은 못 된다. 대통령이 아니라도 좋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인 정세균 총리, 박병석 국회의장, 김명수 대법원장이면 어떠랴?

첫 백신이 AZ 백신이 아니었더라도 이런 논란이 있었을까 문득 궁금하다. '원산지' 영국에서조차 원하던 백신이 아니라며 접종을 취소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인기가 낮은 탓은 아닐까. 결국 '백신 추정 주사' 같은 해괴한 표현으로 불안감을 부추긴 자업자득이다.

한국·중국·일본의 '백신 내로남불' 상황이 묘하게 닮은 것도 눈길을 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고령층 접종이 시작되면 순서에 따라 백신을 맞겠다"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의 "정부가 정한 우선순위에 따라 백신 접종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말과 비슷하다.

백신 외교에 열 올리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또한 자국 백신을 맞았다는 소식이 아직 없다. 중국 백신은 효과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친중 성향인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최근 중국 백신을 공개적으로 맞은 것도 정치적 행위에 다름없다.

한·중·일 3국은 코로나19 방역에 그 나름 성공했다. 일부에선 그 배경으로 통제에 대한 군중 반발이 거의 없었던 점을 꼽으며 유교문화 영향을 거론한다. 그럼에도 이들 국가에서 코로나 없는 세계로 가는 첫 문을 스스로 연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 것은 매우 아쉽다.

기자는 얼마 전 전문가 10명과 '위드 코로나 시대'란 주제로 릴레이 인터뷰를 했다. 주로 앞으로 닥칠 패러다임 전환을 각 영역에서 짚어보는 내용이었지만 공통적으로 우려한 대목도 있다. 방역이 최우선시되면서 '큰 정부'(big government)가 소환됐다는 점이다.

팬데믹과의 사투가 이어지는 만큼 국민 생활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큰 정부의 등장은 어쩌면 불가피하다.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다. 하지만 선거를 앞두고 사상 최대 지원금을 뿌리고, 수십조원짜리 신공항을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는 '빚만 큰 정부'를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아닐 터이다.

중국 전국시대 장수 오기는 오기연저(吳起吮疽)란 고사성어의 주인공이다. 장군이 부하 병졸의 상처 고름을 입으로 빨아냈다는 소식을 들은 그 어미가 외려 감복한 아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다 죽을까 봐 통곡했다는 사연이다. 우리에겐 그런 리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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