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살아줘서 고맙다! '영천아리랑'

유대안 대구합창연합회 회장 유대안 대구합창연합회 회장

2000년 6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때 우리 측 일행은 약간의 당황스러운 일을 겪었다. 회담 첫날 만찬장 테이블에 나란히 앉은 두 정상은 진돗개와 풍산개 사진을 두고 환담을 하고 있었다. 분위기가 익어갈 즈음 흥겨운 민요가 흘러나왔는데 처음 듣는 노래였다. 그런데 가사에서 '영천'이란 말이 들렸다. 우리 일행은 귀를 의심하면서 이 노래가 북한 용천에서 부르는 '용천아리랑'이냐고 물었더니 "아니야요, 사과가 많이 나는 경상도 영천에서 부르던 영천아리랑이야요"라고 답했다.

평양에서 출판된 책자에는 영천아리랑의 발원지 영천에 대해 밀양과 함께 곡창지대며 낙동강으로 흐르는 금호강 유역에 전설도 많고 은요(隱謠)도 많은 지역이라고 설명한다.

"아주까리 동배야 열리지 마라 산골 집 큰 애기 신바람 난다. 아라린가 스라린가 영천인가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몇 년 전 필자는 북한 공훈 배우가 부르는 영천아리랑 동영상을 보고 적잖게 충격을 받았다. 곡이 매우 아름다울 뿐 아니라 가수가 멋들어지게 노래했다. 남한에서 온 귀한 손님에게 왜 이 곡을 들려주었는지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남한에서는 영천아리랑의 존재를 몰랐다. 정상회담 이후 남한 아리랑 연구자들이 북한에 들어가 영천아리랑의 실상을 알아보았다. 초등학생들 밴드 합주 장면을 카메라에 담던 PD가 한 아이에게 제목을 물어보니 영천아리랑이라고 대답했다. 아이에게 연주한 곡을 노래할 수 있느냐고 했더니 스스럼없이 노래를 불렀다. 종편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탈북민들이 영천아리랑을 익숙한 듯 함께 불렀던 것도 같은 맥락으로 설명될 수 있었다.

남한에서도 모르는 영천아리랑이 북한에서 불리고 있는 까닭은 대충 이러하다. 일제강점기에 일제는 '조선이민정책대강'을 수립하고 조선인들을 대거 만주로 이주시켰다. 북한 사람들이 국경과 가까운 요녕성이나 길림성 지역에 미리 정착해 있는 바람에 경상도 사람들은 더 먼 흑룡강성 쪽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동토의 땅에서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과 싸우며 겨울을 보냈다. 황무지를 개간해 씨감자와 보리를 심어 겨우 식량을 얻었다. 지금도 흑룡강성 로가기향 홍신촌에는 '경상도 마을'이 존재하고 후손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지치고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동안 고향의 노래를 불렀다. 그것이 바로 영천아리랑이다. 당시 만주에서 활약하던 독립군들이 영천아리랑의 가사를 개작하여 독립군가로 사용했다. 본래 영천에서 부르던 영천아리랑은 메나리토리로 구성진 흐름이었지만 경기토리로 바꾸어 활달하게 불렀다. 영천아리랑이 북한에 유입된 과정이었다. 현재 중국 연변지역과 북한에서는 양산도장단과 엇모리장단의 두 가지 버전이 유행하고 있다.

다행히 영천시 임고면에 사는 고로(古老)가 옛 영천아리랑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전통 영천아리랑과 북한 영천아리랑이 서로 만났다. 70년, 한 많은 세월을 돌고 돌아 고향의 품에 안겼다. 얼굴에 패인 주름을 보니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살아줘서 고맙다. 그리고 사랑한다! '영천아리랑'

유대안 대구합창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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