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을 걷다, 먹다] 16. 원이엄마와 월영교

안동에 살기 시작했다. 서울이나 대구 등 대도시에 비해 안동에 사니 편안하다. 안동은 좋다. 날마다 안동을 걷고 안동음식을 먹는다.

익숙한 그것들이 어느 날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동의 주름살이 보이기 시작했고 안동이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안동국시와 안동찜닭, 안동간고등어 혹은 헛제사밥의 심심한 내력도 내 귀에 속삭거리기 시작했다.

무심했던 안동에 대한 내 시선이 한결 부드러워졌고 투박한 내 입맛도 호사스럽게 안동을 먹게 됐다.안동에 대한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그냥 안동이야기다.

16번째 이야기. 원이엄마와 월영교

원이엄마의 편지 원이엄마의 편지

사랑이 사라진 시대, 사랑의 감각이 무뎌진 시대, 사랑이 부족하거나 혹은 사랑이 메말라 버린 시대다.

우리는 늘 '사랑한다'고 속삭이지만 인스턴트커피처럼 달콤하면서도 새털처럼 가벼워서 매일 한 잔씩 소비하고 버리는 종이컵같은 사랑일지도 모른다. 아니라고? 우리 시대의 사랑이 그렇게 가벼울 리가 없다고 우겨대지만 목숨보다 더 소중하고 아름다운 그런 사랑은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다.

날마다 사랑하고 헤어져도 내일은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나는 것이 일상이다. 사랑을 소비하는 시대에 우리는 영화를 통해 <사랑과 영혼>을 느끼고 소설 속에서나 <사랑>을 읽는다.

그래도 요즘은 사랑하기 좋은 계절이다. 첫 눈이 펑펑 내렸고, 교통정체가 짜증나고 집에 갈 일이 걱정되기는 해도 눈 내리는 풍경에는 마음이 설렌다.

오늘도 걷고 또 걸었다. 걷는 것이 무슨 대단한 건강비법은 아니지만 코로나시대 정신건강을 유지하는 방법 중의 하나다.

오늘은 안동대교에서 시작해서 안동댐 쪽으로 향했다. 강변 둔치는 걷기에 딱 좋은 길이다. 시베리아 한파가 사라진 오늘처럼 낮 기온이 영상 10도까지 치솟아 오른 날에는 마치 차가운 강바람도 봄바람처럼 느껴진다. 미세먼지만 없다면 금상첨화였다.

강변길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안동철교는 이제 폐로가 됐다. 안동역이 이전하는 바람에 기차는 더 이상 이 다리를 지나지 않는다. 다리를 지날 때마다 꽥~하며 기적을 울리던 풍경을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조금 더 걸으면 인도교로 바뀐 옛 안동교가 나오고 그 옆으로 안동의 강·남북을 잇는 영호대교가 있다. 그 다음 만나는 다리가 영가대교로 안동의 신도시 '정하동'으로 통하는 길목이다. 법원과 한전 경북본부 등이 들어섰고 아파트 등 주거단지가 줄줄이 조성됐다.

원이엄마 테마공원의 조형물 원이엄마 테마공원의 조형물

원이엄마 편지

500년 전의 한 조선여인이 '원이엄마'라는 호칭으로 비련(悲戀)의 주인공이 등장하게 된 것은 정하동 신도시 택지 조성 때문이었다. 1998년 안동 신도시 택지개발지구 조성을 위해 주인없는 무덤을 이장하는 과정에서 '철성 이씨'라 적힌 명정(무덤에 덮는 천)이 발견됐다. 이에 고성 이씨 문중 입회 아래 발굴 작업이 이뤄졌다. 이 무덤의 주인은 서른 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이응태(李應台1556~1586)로 밝혀졌고 부장물 중에는 아내가 쓴 장문의 한글 편지와 '미투리' 한 쌍이 온전한 형태로 있었다.

무덤 속에 봉인돼 있다가 412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아내의 편지는 사랑하는 남편을 떠나보내는 젊은 아내의 절절한 심정이 담겨있어 사랑에 무심해진 우리 시대에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원이엄마'는 아들 원이와 뱃속에 유복자를 둔 채 세상을 떠난 원이아빠를 그리며 가로 58㎝, 세로 34㎝의 한지에 붓으로 빼곡히 쓰다가 할 말을 다 쓰지 못한 것인지 한지의 위쪽 여백에도 돌아가면서 썼다.

조선여인이 사랑하는 남편의 호칭은 '여보'나 '자기'가 아닌 자내'였다.

"자내 샹해 날다려 닐오대 둘히 머리 셰도록 사다가 함께 죽쟈 하시더니 엇디하야 나를 두고 자내 몬져 가시노. 날하고 자식하며 뉘 긔걸하야 엇디하야 살라하야 다 더디고 자내 몬져 가시난고."(당신 늘 나에게 이르되, 둘이서 머리가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자식은 누구한테 기대어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시나요.)

우리가 결혼식에서 늘 듣던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사랑하겠느냐'는 말을 원이엄마는 '둘히 머리셰도록 사다가 함께 죽쟈하시더니 엇디하야 나를 두고 자내 몬져 가시노'라고 원망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구구절절이 담겨있다.

이어지는 편지를 우리가 이해하기 쉽도록 옮겨본다.

"...당신이 나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고,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 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수 없어요. 빨리 당신에게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요.

이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 주세요.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써서 넣어 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 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갖 그 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 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 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 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병술 유월 초하룻날 집에서 아내 올림

원이엄마의 애틋한 사랑을 테마로 건립한 월영교 원이엄마의 애틋한 사랑을 테마로 건립한 월영교

서른 즈음의 젊은 아내가 사랑하던 남편을 떠나보내는 안타까운 심경이 구구절절 담긴 편지 한 장은 조선시대의 한 여인의 애틋한 사랑이 어쩌면 이토록 우리 가슴에도 와 닿는지 눈물이 난다. 사랑이란 시간을 거스를 수도 있고 시대와 국경을 뛰어넘기도 한다.

현재 원이엄마의 편지와 무덤에서 발굴된 수의 등 부장품들은 안동대학교 박물관에 전시돼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이 무덤의 주인은 밝혀졌으나 편지의 주인공은 원이의 엄마라는 사실 외에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았다. 사랑을 잃은 가여운 이름도 모르는 조선의 여인이다.

그녀는 원이와 뱃속에 둔 아이까지 두고 떠난 남편을 위해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만든 미투리 한 켤레도 삼아 넣었다. 이 미투리를 싼 한지에도 한글 편지였으나 "이 신 신어보지도 못하고.."라며 미투리 한 켤레를 넣어 보내는 원이엄마의 안타까운 심경을 담은 글귀 외에는 확인할 수 없었다고 한다. 안동대박물관은 코로나10 확산에 따른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문을 닫았다. 코로나사태가 완화되면 박물관을 다시 열어 누구나 볼 수 있을 것이다.

원이엄마가 남긴 사랑가는 메마르고 퇴색한 사랑을 노래하는 우리 시대의 사랑에 경종을 울렸다.

원이엄마의 편지가 발견된 무덤은 안동법원에서 500m 남짓 떨어진 언덕빼기에 지어진 '현진에버빌' 104동 자리다. 그 곳에서 멀지않은 영가대교 입구 사거리에는 원이엄마 테마공원이 있다. 공원 한켠에는 원이엄마의 편지가 조각된 비석이 박제된 사랑의 표상처럼 세워져있었고 동상으로 세워놓은 '원이엄마'는 저녁놀이 비치는 낙동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꽃피는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면 이 거리에는 능소화가 흐드러지게 필 것이다. 이 공원에서 영호루가 있는 낙동강변 1km 거리는 능소화 거리다. 원이 엄마 그녀가 먼저 보낸 남편을 그리워하며 걸었을 그 길에 능소화가 흐드러지게 피고 질 때 우리는 다시 5백년 전 그 사랑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문득 나는 기형도의 시 한편이 떠올랐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우리 시대의 사랑표현보다 사랑에 대한 조선여인의 감성이 얼마나 가슴 저미는 아픔이었는지 새삼 느낀다.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 주세요"라는 여인의 속삭임보다 더 절절한 그리움이 있을까.

월영교

월영교의 설경. 안동시청 제공 월영교의 설경. 안동시청 제공

월영교(月映橋)에 도착했다. 달빛이 교교하게 비치는 월영교의 야경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안동호 하부 보조댐 호수를 가로지르는 월영교는 원래 있던 다리가 아니다. 2003년 완공돼 개통된 국내 최대 길이의 목책 인도교다. 원이엄마의 애틋한 사랑을 기린다는 의미로 다리의 전체적인 형상을 원이엄마의 미투리를 모티브로 삼았다. 총 길이는 387m에 이른다. 다리 한 가운데에는 달빛이 비치는 정자라는 의미의 '월영정'(月映亭)이 있다. 동절기에는 동파방지를 위해 분수대를 가동하지 않지만 봄부터 가을까지 저녁에는 시원한 분수를 가동해서 색다른 재미를 주기도 한다.

사진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출사지이기도 하다.

월영교 건너편 민속박물관 쪽 강변길은 원이엄마 테마길로 조성돼있어 작은 병(상사병)과 사랑의 자물쇠를 걸어 영원한 사랑을 기원할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그러나 인근 박물관 매점에서 파는 상사병이나 자물쇠가 중국 유명관광지에서 볼 수 있는 상술이 그대로 드러날 정도의 조악한 수준이라 관광객들의 호응이 없다.

오히려 호젓하게 산책을 원한다면 원이엄마 테마길에서부터 강변에 조성해놓은 나무데크 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보는 것이 더 좋겠다.

아니면 원이엄마 테마길 바로 옆 언덕위에 있는 '석빙고'와 '선성현 객사', 수몰지역에서 옮겨 놓은 초가집 등을 둘러보자. 안동 석빙고는 조선 영조 13년 (1737년) 부임한 예안 현감 이매신이 지은 것으로 낙동강에서 많이 잡히는 은어를 왕에게 진상하기 위한 얼음을 저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석빙고 석빙고
월영대 바위 월영대 바위

이 석빙고 바로 앞에 이끼가 낀 커다란 장방형의 바위가 하나 있다. 바위에는 '월영대'(月映臺)라는 글자가 새겨져있는데 시기를 알 수 없는 아주 오래 전에 이 곳에 '금하재'라는 정자가 있었다는데 옛 선비들이 달빛을 바라보며 풍류를 즐기던 곳이었던 모양이다. 최근에 지은 월영교는 이 월영대에서 이름을 차용한 셈이다.

석빙고 옆에는 조선시대 건물 한 채가 있는데 안동댐 수몰지인 도산에서 이건해 놓은 '선성현 객사'다.

서명수 슈퍼차이나 대표 서명수 슈퍼차이나 대표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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