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FOCUS] '보우소나르 리스크', 비틀거리는 '남미의 거인'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이 지난 12일(현지시간) 브라질리아의 한 행사장에 참석해 머리를 만지고 있다. 연합뉴스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이 지난 12일(현지시간) 브라질리아의 한 행사장에 참석해 머리를 만지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하원의 탄핵안이 통과되는 시점에 '브라질의 트럼프'로 불리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도 탄핵 위기에 처해 국제사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브라질 현지 언론에 따르면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자기 아들이 연루된 연방검찰의 수사에 개입하는 등 직권남용을 한 데다, 의회와 대법원 폐지를 주장하는 친정부 집회에서 지지자들을 부추기는 등 반민주적 행태를 보여 탄핵 사유를 쌓았다. 코로나19에 대한 안이한 인식과 부실한 대응으로 지난 7일 사망자가 20만 명을 넘어서는 등 막대한 인명 피해를 낳은 것도 그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브라질변호사협회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불법적이고 무책임한 행태 때문에 탄핵 논의가 필요하며 여론과 의회의 움직임이 중요 변수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브라질변호사협회는 탄핵을 추진할 수 있는 영향력이 있는 단체로 과거에도 앞장서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낸 바가 있다. 이러한 움직임이 조성되자 대통령 탄핵 절차를 개시할 수 있는 하원의장의 결정에 눈길이 모아지고 있다. 호드리구 마이아 하원의장은 최근 자신이 대통령 탄핵 절차를 시작하지 않겠지만, 탄핵요구서를 폐기하지는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마이아 의장은 이달 말로 임기가 끝나게 돼 그의 발언은 후임 의장이 탄핵 절차를 개시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금까지 하원의장에게 접수된 보우소나루 대통령 탄핵 요구서는 60여 건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탄핵이 이뤄지려면 하원에서 전체 의원 513명 가운데 3분의 2(342명) 이상, 상원에서 전체 의원 81명 가운데 3분의 2(54명)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이탈리아 이민자 후손으로 젊은 시절 군인으로 복무하다 정치인으로 인생 행로를 바꾼 인물이다. 군 장교 재직 시절 군 수뇌부의 부패를 폭로해 유명해진 후 정계에 투신, 지방의원을 거쳐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대통령이 된 후에도 한결같이 막말을 일삼으며 극우 성향의 정치색을 보였다. 그의 거칠고 폭력적인 막말은 트럼프를 능가할 정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보우소나루의 독설과 폭언은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으로 그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는 과거에 여성과 흑인은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흑인이 조종하는 헬기는 위험하다는 등 성차별적이고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군인들이 원주민 사회를 말살하지 않은 것이 슬프다 라는 말도 해 논란을 일으켰고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외국인 이민을 반대하고 흉악 범죄자는 즉각 사살해야 한다는 주장도 거리낌없이 했다.

또한 고문의 효과는 즉각적이라며 고문을 옹호하는가 하면 군부 정권 시절 반정부 인사들을 죽이지 않은 것은 실수라는 등 과거 군의 정치 개입과 군사독재를 찬양하기도 했다. 그는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과거의 군사정권 시절을 그리워하는 듯한 발언을 했고 자신의 내각에 군출신 인사들을 대거 기용하는 행태를 보였다. 코로나19 피해가 커지는 상황에서는 코로나19를 감기처럼 대수롭지 않다고 여기거나 사망자가 늘어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 등 지도자로서 자질이 의심받는 행동을 했다. 그에 대한 비판이 커져갔지만, 들은척 하지 않고 막말을 멈추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적 인물이 어떻게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 됐는지 의문이 들지만, 그는 브라질 정치가 격변의 회오리에 휘말리는 와중에 대권을 거머쥐게 됐다. 브라질은 2003년부터 시작된 좌파 노동당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과 그의 후계자인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집권기에 빈곤층에 대한 교육과 복지 확대 정책의 성공, 두드러진 경제 성장 등으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호세프 대통령 집권 중반기에 시작된 일명 '세차 작전' 수사가 정계를 강타했다.

지난해 3월7일 미국을 방문한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오른쪽)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별장인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담소를 나누며 활짝 웃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3월7일 미국을 방문한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오른쪽)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별장인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담소를 나누며 활짝 웃고 있다. 연합뉴스

'세차 작전' 수사는 국영석유업체 페트로브라스가 계약 수주 대가로 오데브레시(OAS) 등 대형건설사들로부터 뇌물을 받은 정황이 불거지면서 시작돼 이에 연루된 정·재계 인사들을 줄줄이 구속시켰다. 수사를 이끈 세르지우 모루 판사는 브라질 사상 최대의 비리를 파헤치며 일약 영웅으로 떠올랐다. 집권 노동당의 주요 정치인들이 기업으로부터 정치 자금을 받는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해 수사의 덫에 걸려 들었고 보수적인 정치인들도 수사망을 피하지 못했다.

이 와중에 호세프 대통령은 비리 혐의를 받지는 않았지만, 정부 계정을 조작했다는 회계법 위반 의혹으로 의회에서 탄핵안이 통과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보수 진영의 미셰우 테메르가 후임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도 부패 의혹에 시달리는 인물이어서 짧은 임기를 마치고 정계 전면에서 퇴장했다. 이후 대통령 선거에 룰라 전 대통령이 다시 나서 대중적 인기를 모았지만, 건설사로부터 고급 리조트를 뇌물로 받았다는 죄가 인정돼 구속되고 말았다. 구심점을 잃은 좌파 진영은 룰라가 지명한 페르난두 아다지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지만 이 무렵 등장한 보우소나루에게 패하고 말았다.

'세차 작전' 수사에서 비롯된 브라질 정치의 격변에는 살펴 볼 요소가 있다. 룰라 전 대통령의 부패는 증거가 뚜렷하지 않았지만 유죄로 인정됐고 호세프 대통령은 탄핵 사유가 미약한데도 탄핵안이 통과됐다는 지적이 많다. '세차 작전' 수사를 이끈 모루 판사가 성역 없이 엄정하게 수사하는 듯해 국민의 열광적 지지를 받았지만, 실상은 우파에는 너그럽게, 좌파에는 엄격하게 법을 적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모루를 중심으로 한 브라질의 보수적인 법조계, 우파 정치 진영, 우파 족벌 언론이 합작해 좌파 진영에 일대 타격을 가한 것이라는 시각이 존재한다. 혹자는 브라질의 정치 상황이 우리나라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그렇더라도 룰라와 호세프, 노동당이 부패의 관행을 개혁하지 못했고 거기에 한 발을 걸쳤다는 비판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보우소나루는 극단적인 성향에도 불구하고 보수 정당의 중심 인물로 떠올라 우파와 중도우파, 보수 기독교도층들의 찬성표를 골고루 흡수해 대권을 거머쥐었다. 2019년 1월 임기를 시작한 그는 정치적으로 분열된 국가를 통합해야 했지만, 지지층과 반대층을 가르는 발언과 정책으로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말았다. 그의 정치적 행보는 트럼프를 빼다박듯이 닮아 지지층을 결집하는 데에만 힘씀으로써 사회적 계층 갈등을 더 키우고 말았다. 대통령이 되기 이전에 정당을 자주 옮겨 철새 행보를 보였으며 대통령이 된 후에는 소속 정당을 탈당해 극우 정당을 창당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보우소나루는 그가 친밀감을 나타냈고 흠모했던 트럼프가 고립무원의 처지에서 퇴장하게 되자 비슷한 처지에 빠졌다. 그는 국내 정치에서 탄핵될 수 있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고 국제무대에서도 외톨이가 되어가고 있다. 그는 트럼프를 추종해 반중 노선을 걸음으로써 중국의 반감을 사고 있다. 또 '지구의 허파'라고 하는 아마존 삼림을 파괴하면서 개발을 강행했고 온실가스 감축 과제를 무시해 환경 문제를 중시하는 유럽연합(EU)으로부터도 외면을 받고 있다.

브라질은 자원이 풍부하고 발전 잠재력이 큰 '남미의 거인'이다. 그러나 정치적인 부패와 혼란, 개혁을 거부하는 기득권층의 단단한 결속, 경제의 양극화와 개선되지 않는 빈곤 등여러 문제가 뒤얽혀 국가적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정치가 세상을 나아지게 하기는커녕 발목을 잡고 있는 꼴이다. 거기에다 보우소나루가 야기한 '지도자 리스크'는 브라질의 처지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으며 그는 정치적 위기 속에서도 지지층이 굳건해 '마이 웨이'를 외치고 있다. 보우소나루가 내년 말까지로 예정된 임기를 다 채울지 불투명하지만, 앞날이 어떻게 펼쳐지든 브라질의 앞날이 밝아보이지는 않는다.

관련기사

AD

오피니언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