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민의 나무오디세이] 12월에 존재감 드러내는 호랑가시나무

 

청라언덕 선교사 블레어 주택에 있는 호랑가시나무. 청라언덕 선교사 블레어 주택에 있는 호랑가시나무.
이종민 선임기자 이종민 선임기자

대구동산병원 옆 청라언덕에 있는 '선교사 블레어 주택' 옆에는 두툼하고 빳빳하며 길쭉한 오각형 혹은 육각형 모양의 잎 가장자리에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 있는 호랑가시나무 한 그루가 있다. 대구경북에서 자생하는 나무는 아니고 보통 가정집에서 볼 수 있는 정원수도 아니라서 '니가 왜 거기서 나와?' 하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선교사들의 주택과 호랑가시나무에는 무슨 사연이 있는가.

호랑가시나무가 정서적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 이유는 유럽에서 전해 내려오는 많은 이야기를 들으면 이해가 된다. 예수가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갈 때 작은 새 한 마리가 예수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부리로 이마에 박힌 가시를 빼려고 힘을 다 쏟았으나 끝내 가시에 찔려 피를 흘리며 죽었다고 한다. 예수를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진 이 새는 티티새(지빠귀과)인 '로빈'으로 빨간 호랑가시나무 열매를 즐겨 먹는다. 프랑스에서는 로빈이 먹는 호랑가시나무의 열매를 신성하게 여겨 밟으면 불행해진다고 믿었고, 독일에서는 예수의 왕관을 짜는 데 이 나무를 쓴다는 말이 있다. 호랑가시나무로 지팡이를 만들면 마귀를 쫓을 수 있다고 여기는 영국에서는 1851년 런던 시내 크리스마스 장식에 이 나뭇가지 25만 다발을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한다. 성당에서도 성탄절 장식에 호랑가시나무 가지나 열매를 사용하고 있고 크리스마스카드에도 호랑가시나무의 빨간 열매나 녹색 잎이 그려져 있다. 서양에서 '크리스마스 나무'라고 부르는 이 나무가 기독교인들의 주목을 받고, 개신교 선교사 주택에 심어진 연유가 이런 까닭이 아닐까 짐작된다.

호랑가시나무는 추운 겨울에도 초록빛을 잃지 않는 두꺼운 잎을 가지고 있고 잎겨드랑이에 달린 열매가 빨갛게 익어 아름답기 때문에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의 관심도 많이 받는다. 나무를 꺾어 오래 두어도 잘 시들지 않으므로 크리스마스트리나 리스(화환)를 만들기에 아주 좋은 재료다. 은행나무처럼 암나무와 수나무로 나뉘어 있어 열매를 볼 요량으로 조경수로 심으려면 암나무를 선택해야 한다.

 

대구 앞산 용두골에 있는 호랑가시나무 대구 앞산 용두골에 있는 호랑가시나무
구골나무 구골나무

우리나라에서 불리는 호랑가시나무라는 이름은 호랑이 등을 긁는 데 쓰인다고 해서 붙여졌다. 중국에서는 새끼 고양이의 발톱을 닮았다 해서 묘아자(猫兒刺)라고도 하고, 나무 줄기가 개 뼈를 닮았다 해서 구골목(枸骨木)으로도 불린다. 감탕나뭇과에 속하는 호랑가시나무는 물푸레나뭇과의 목서 종류(은목서나 구골나무)와 잎이 비슷해 헷갈리기 쉬운데 잎이 서로 어긋나면 호랑가시나무, 잎이 마주나면 은목서나 구골나무다. 또 10월 말에서 12월 초쯤에 향기가 진한 하얀 꽃이 피면 구골나무이고 이 시기에 빨간 열매가 달려 있으면 호랑가시나무다.

호랑가시나무의 영어 이름은 홀리(holly)로 '성스러운' 나무라는 뜻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도 이 나무 숲 때문에 생긴 지명이다.

사실 식물학적으로는 나무의 열매가 빨간 것은 새들 눈에 잘 띄어 번식하기 위함이요, 잎에 가시가 있는 것 또한 잎을 식탐하려는 초식동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생존 무기인 셈이다. 호랑가시나무가 잘 자라서 키가 크고 잎이 오래되면 가시는 퇴화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전북 부안군 도청리의 호랑가시나무 군락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캐럴'에 나오는 주인공 구두쇠 영감 스크루지가 개과천선하는 과정에 여러 유령을 만난다. 이 유령들이 손에 들고 있거나 머리에 쓴 화관이 바로 호랑가시나무다.

달력의 마지막 장만 남은 12월이다. 예년 같으면 거리가 송년 인파로 북적였겠지만 지금은 '코로나19 시대' 3차 대유행이라 거리두기 등 방역에 소홀히 할 수는 없다. 올 성탄절에는 비대면의 시간을 갖고 조용히 자기를 성찰하며 아기 예수가 이 땅에 오신 의미를 되새겨보면 어떨까. 호랑가시나무 열매의 붉은색이 상징하는 희생과 대속(代贖)의 큰 사랑을 묵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chungha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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