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공존의 정원 랑데부 정원

장병관 대구대 도시조경학부 교수

장병관 대구대 도시조경학부 교수
장병관 대구대 도시조경학부 교수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인지, 최근 인간과 자연의 공존에 대한 관심이 강해지고 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란 인간도 자연계의 일원으로, 다른 생물들과 균형을 유지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겸손함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런데 의외로 일반 정원은 물론 생태정원을 돌아봐도 이와 같은 공존의 개념이 제대로 구현되고 있는 곳이 그리 흔하지 않다. 우리 대다수는 정원을 생물이 살아가는 장소로서보다는 인간이 최대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자연의 공간을 순수히 생물에게 내어준 사례도 있다.

파리시 센 강변에 미테랑도서관이 있다. 책을 세워둔 듯한 도서관 건물 외형도 독특하지만, 도서관 건물 내부로 산소를 불어넣을 수 있도록 조성된 정원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이 정원은 석회암 땅을 약 3m 정도 파서 식물이 잘 살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1만㎡에 달하는 정원의 전체 면적 중 4분의 3 이상이 숲이며 나머지는 초지이다. 침엽수 위주의 큰 나무가 숲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으며 그중 100여 그루의 구주소나무는 노르망디 지역 숲에서 옮겨온 것이다.

미테랑도서관의 정원 조성에서 가장 특별한 점은 조성 후 13년 동안 정원사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정원에 들어갈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곳은 요즘도 사람들에게 쉽게 개방되지 않고 있다. 매년 6월 랑데부의 날 3일간만 예약 없이 방문할 수 있고, 방문 예약의 경우도 월 2~4회 정도로 제한하고 있다. 정원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45분 이내이며 가이드가 동반된다. 이런 노력 덕분에 수많은 동식물과 곤충이 이 정원에 터전을 잡고 안전하게 살고 있다. 말 그대로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원 조성을 놓고 본다면 우리 사회는 여전히 공존의 참의미에 닿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연못 정원을 조성할 때 물 안과 물 밖을 경계 지어 안은 생물의 공간, 밖은 사람의 공간으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그런데 세밀하게 둘러보면 작은 동물이나 곤충은 한곳에서만 붙박은 듯 살지 않는다.

그들은 물가에서 알의 형태로 있다가 어느 정도 자라면 풀숲에서 생활하는데 풀숲은 이미 사람의 공간으로 정해져 있어 그들을 위한 공간이 없다. 사람들이 자신의 공간을 다른 생물들에게 양보해 주지 않는다면, 인간만 존재하는 기묘한 세상이 눈앞에 펼쳐질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사람과 식물만으로 자연이 지속될 수는 없다. 그곳에는 작은 동물과 곤충도 있어야 한다. 생물다양성이 존재해야 인간의 삶도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오래전 가족과 미국 캘리포니아주를 여행하다가 철나비가 서식하는 여관에서 묵은 적이 있다. 마침 나비가 부화하는 시기로 여관 한쪽에는 집 뒷마당 출입을 통제한다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나비에 대한 주인의 세심한 배려 때문에 조용한 여행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참으로 감동적인 경험이었다.

21세기, 인간의 최대 화두가 기후변화 대응과 생물다양성의 증진이다. 구호에 그치지 말고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다양하게 세심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도시 정원 어딘가에 작은 생물들의 서식 공간을 조성하여 작은 동물이나 곤충이 살 수 있도록 하는 데서 그 첫걸음을 시작해보자. 아침이 되면 사람은 활동이 시작되지만 자연 속의 생물은 대개가 야행성이므로 수면을 해야 한다는 것도 기억해두자. 사람과 생물의 공존은 이처럼 사람이 자연 세계를 이해할 때 가능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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